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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2-30 (화) 20:03
분 류 사전3
ㆍ조회: 904      
[종교] 개신교-개신교의 형성 2 (브리)
개신교-개신교의 형성 2

세부항목

개신교의 형성 1
개신교의 형성 2
20세기의 개신교
개신교의 교의와 영향
한국의 개신교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유산

미국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서구사회의 역사와 그 안에서 발전한 개신교 운동의 역사를 변화시켰다.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규정한 미국 헌법은 식민지시대의 유산이었던 자유로운 교회가입의 정신, 유럽에서 끊임없이 도래한 이민자들의 종교적 혼합, 영국에서 지배했던 '교회와 왕'의 동맹에 대한 반작용, 계몽주의의 세속 정신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 및 나폴레옹과 더불어 세속의 국가이념은 수많은 유럽 자유주의자들, 특히 로마 가톨릭 국가들의 반성직주의자들의 이상이 되었다. 미국의 유형은 나폴레옹의 유형보다 유럽 개신교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국교화된 개신교 교회에 익숙했던 독일·스칸디나비아·네덜란드·스위스·영국·스코틀랜드의 세속국가들에서는 한동안 국교 폐지의 강력한 요구가 없었다.

이 모든 나라에서 독립교회 혹은 비국교도 교회의 교인들은 19세기 동안 완전한 관용과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개신교 국가가 아닌 곳에서는 19세기 동안 국가와 국교회 사이의 형식적 연계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예외가 있다면, 영국국교회가 소수파로 존재하였던 아일랜드(1871)와 웨일스(1914~19)뿐이었다. 그러나 국교회는 최소한 외적이고 역사적인 형태로 영국·스코틀랜드·스칸디나비아 등 3국에 남아 있었다.

재통합을 위한 운동

종교개혁 이후 재통합을 향한 가장 중요한 법령이 제정된 것은 19세기초였다. 17세기 후반 유럽의 국가들은 한 교파 이상을 허용하면서 서서히 만인에 대한 관용 쪽으로 움직여 그들이 훌륭한 시민인 한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다. 한편 그리스도교 지도자들, 특히 새로운 합리주의 학파, 혹은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주의 학파의 지도자들은 개신교도들을 서로 분리시켜온 교리들이 그들이 동의한 진리보다 중요하지 않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개신교 팽창의 시대

이런 형태로 세속국가는 개신교(그리고 로마 가톨릭)의 팽창과 다양성을 지원한 셈이지만 동시에 모든 교회들과 긴급한 새 문제들을 놓고 대결하게 되었다. 헌법으로 국가와 종교를 분리시킨 미국의 유형은 과거의 회중교회 전통과 계몽주의의 이념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그 의도가 반종교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유형은 보다 역사가 깊은 유럽 교회들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래로 국가와 교회가 동맹관계에 있었던 개신교 국가들에서 그 효과는 이중적으로 나타났다. 첫째, 국가는 그 지역의 대표적인 교파들에 대해 더욱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둘째, 국가교회는 모든 형태의 국가 통제로부터 독립을 얻기 위해 더 강력한 압력을 가하게 되었다. 루터교가 지배적인 독일에서는 19세기 중반에 독립을 향한 강력한 운동이 나타났다.

스코틀랜드의 복음파 운동은 목회자들을 교구에 임명하는 것과 관련하여 국가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였다. 이 요구안을 왕실과 정부가 거부하자, 거의 절반에 가까운 스코틀랜드 교회는 토머스 찰머스(1780~1847)의 지도 아래 국교회를 떠나 스코틀랜드 자유교회를 창설하였다(1843). 이 두 교단은(1929년 최종적으로 재통합될 때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계속 유지되었다. 스위스에서는 개혁파 신학자 알렉상드르로돌프 비네(1797~1847)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위해서 압력을 가했으며 1845년 자유교회(Free Church)를 창설하였다.

세계에서 미국 개신교 영향력의 향상

16세기 이래 개신교 정치권력의 두 중심은 독일과 영국이었다. 프로이센의 영향력 아래 독일이 통일되고 영국이 세계적인 세력으로 등장함에 따라 19세기에는 개신교의 정치적 역량이 종교개혁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했다. 그러나 1860년경 제3의 세력이 미국에서 출현하였다.

1820년 이후 미국의 개척 상황은 다양한 개신교 세력을 확장시켰고, 1832년 부흥운동집단들로부터 형성된 그리스도의 제자회와 같은 교파들이 등장하였다. 이와 때를 맞추어 개신교 교파들은 미국의 경계를 넘어서서 그들의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미국 이민자들의 상당수는 로마 가톨릭교도였으며, 따라서 한동안 미국에서 가장 큰 단일 교파는 로마 가톨릭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지도력과 문화의 기조는 앵글로색슨적·자유주의적·개신교적인 것으로 유지되었다. 대체로 루터파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독일인들과 스칸디나비아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함에 따라 미국 루터교가 확장되었으며 마침내 루터교의 본산지인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 버금가는 비중을 지닌, 루터교적 생활과 사상의 중심지가 되었다.

루터교의 지도자들은 대체로 유럽의 경건주의 집단들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미국의 루터파 교회는 독일 교회보다 더 보수적인 신학과 계율을 갖게 되었다. 미국 그리스도교의 부흥운동은 19세기 내내 계속되었으며, 개인적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개념이 미국적인 생활방식에 깊이 침투하게 하였다.

선교의 확산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세력, 미국 세력의 증가, 유럽에서 일찍이 보지 못했던 오랫동안의 평화 등으로 인해 개신교 교회들은 가장 위대한 팽창의 시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새로 생겨나는 도시들에서 개신교 교회들은 전례없는 규모로 사회봉사를 전개하였다.

병원, 고아원, 금주운동, 노인보호, 젊은이들과 성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의 확대, 교회학교, 도시 빈민지역에서 청소년 및 성인 클럽 운영, 19세기 새로운 도시생활이 필요로 하는 무수한 조직체들의 설립이 그것이다.

개신교 교회들은 프랑스나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지 않은 아프리카의 모든 지역에 개신교를 효과적으로 전파함으로써 남아프리카에서는 반투족이 주로 개신교 교인들의 동맹체가 되었다. 인도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선교사들이 신생 인도 그리스도교 교회들의 힘을 끊임없이 증가시켰다.

중국의 그리스도교는 항구도시와 17세기 로마 가톨릭 선교의 잔류자들에게 국한되어 있었으나, 영국이나 미국의 재정 지원과 중국내지선교회 설립의 재정 지원을 받았던 다양한 복음파 집단들은 중국 내지(內地) 깊숙히 들어가 회중을 만들었다.

일본은 1630년 이래 그리스도교에 대해 폐쇄적이었으나, 1859년 재개방 이후 미국과 영국의 선교사들이 일본 그리스도 교회들을 창설하였다. 미국 선교사들은 중앙·남아메리카에 개신교를 소개하였다. 주요한 개신교 교파들(루터교·장로교·성공회·회중교회·침례교·감리교)은 모두 세계적 규모의 단체로 발전하였으며, 자신들의 조직체를 여러 나라의 극히 새로운 요구들을 충족시키도록 조정하는 데 상당한 긴장을 겪었다.

19세기 개신교가 직면한 새로운 문제들

19세기(그리고 그 이후)에 교회 비판은 2가지였다. 하나는 사회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적(知的)인 것이다. 급속한 도시성장과 공업발전은 종교생활과 소원한 프롤레타리아를 창출하였고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특히 유럽에서), 교회는 노동계급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사회질서의 보루라고 주장하였다.

초기 형태의 사회주의의 일부는 무신론적이거나 최소한 이신론적이었으며, 교권과 왕권 사이의 동맹을 의심하는 만큼 독립교회들에 대해서도 커다란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카를 마르크스(1818~83)와 같은 사회·경제 사상가들은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며 인류로 하여금 자신의 운명에 만족해서는 안되는 데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만족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한 응답으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에서 '그리스도 사회주의자들'이 출현하였다. 그들은(적어도 이론적으로) 노동자들이 사회적·경제적 정의를 누릴 권리를 갖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인이라면 노동자들을 위해 더 많은 정의를 이룩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들을 향해 양심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견해를 제외하면,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관점과 이념은 정치적·신학적인 면에서 서로 크게 달랐다. 베를린의 왕실 설교자였던 아돌프 슈퇴커(1835~1909)는 반유대인적인 급진적 정치가였다. 영국의 성직자이자 소설가였던 찰스 킹즐리(1819~75)는 노동계급을 깊이 동정하고 이해했던 온정적인 보수주의자였다.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심오한 인물은 프레더릭 데니슨 모리스(1805~72)였다. 그는 1853년 추방당할 때까지 런던 킹스 칼리지의 신학자였으며, 그후 런던의 목회자로 있다가, 말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 도덕철학 교수였다.

영국과 미국에서 소수의 성공회 신학자들의 지적인 지도력 못지않게 노동자들의 종교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한 것은 개신교급진파, 특히 침례교와 원시감리교였다. 어떤 경우에는 이들의 노력으로 사회주의 정당들이 그리스도교인들의 표를 얻을 수 있었다.

또 그들은 그리스도교인 유권자들이나 정치가들에게 실제로 사회주의 정당에 표를 던지지 않더라도 복지국가로 이끌어가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설득하였고, 한편으로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더 많이 의식하도록 교육하였다. 미국에서 사회복음은 19세기말에 교회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사회복음의 가장 영향력있는 지도자는 침례교회 월터 라우셴부시(1861~1918)였다.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그리스도교인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자신의 이름에 그리스도교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많은 정당들이 나타난 데 반해, 개신교 국가들에서는 모든 정당들이 그리스도교인 유권자들에게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고, 세속적임을 표방한 정당들이 정치적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J. C. Godbey 글 | 강원돈(姜元敦) 참조집필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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