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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2-30 (화) 22:17
분 류 사전3
ㆍ조회: 936      
[종교] 천주교-선교활동과 교회조직 (브리)
로마가톨릭교-선교활동 교회조직

세부항목

로마가톨릭교-가톨릭의 형성
로마가톨릭교-선교활동과 교회조직
로마가톨릭교-신조와 의식, 현대 가톨릭
로마가톨릭교-한국 천주교

선교활동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로마 가톨릭 교회 전파

가톨릭 교회는 19세기에 와서 처음으로 세계적인 존재로서 면모를 드러냈다. 이러한 교세 확장은 2가지 요인, 즉 아프리카·아시아에서 유럽 국가들이 제국주의 국가로서 출현한 것과 그리스도교의 선교정신이 부활한 것에서 기인한다.

초기 아프리카 선교

아프리카 북부에서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수세기에 걸쳐 북부 아프리카는 대부분 이슬람화되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의 선교는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지역에서 토속 종교인들이 저항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노예매매를 했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노골적으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다.

초기 아시아 선교

아시아에서의 가톨릭 교회는 16세기부터 시작된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람들의 아시아 탐험으로 인해 덕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충돌이 발생했다. 아시아인들은 이슬람 교도들과 달리 역사와 운명에 대한 성서적인 견해를 접촉한 적이 없었다.

불교·도교·유교·힌두교 신자들은 신·시간·역사에 대한 서양의 견해와는 판이한 세계관을 신봉하고 있었다. 가톨릭 교회는 이들과의 만남에서 동양적인 생활방식, 인생관, 동양의 제의, 동양적인 종말관을 과연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분열되었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상대적인 고립상태에 있던 중국과 일본이 서양인들에게 스스로를 개방하는 중요하고도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19세기 중국에서는 성당·병원·학교 등과 같은 가톨릭 기관들을 친숙하게 볼 수 있었다. 1900년에 발생했던 의화단 사건은 서양 문물에 대한 중국인들의 저항이 다시 고개를 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일본에서는 나가사키[長崎] 부근의 한 섬에 고립된 분파를 이루고 있었던 가톨릭 교도들을 제외하고는 16세기 포교 활동의 결과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언제나 소수의 국민들만이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1949년 중국에서 공산주의가 정권을 장악하자 가톨릭 선교 활동과 가톨릭 예배는 끝을 맺게 되었다. 중국 특유의 가톨릭 정신은 남아 있어 로마 가톨릭 교회에 충실한 측과 중국인 자치 가톨릭 교회를 지지하는 측으로 분리되었다. 전후 일본의 가톨릭 교회는 각 종교의 부활과 새로운 세속적 사조에 밀려 침체되었다.

국가정부와의 갈등관계

근세기의 가톨릭 교회의 활동이 보편적 교회로서 가톨릭 교회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면 이는 또한 가톨릭 교회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서양의 그리스도인들은 흔히 개발도상국을 착취했고, 자원을 약탈했으며, 주민들을 노예로 만들거나 천민으로 취급했고, 그들 고유의 종교와 문화를 근절시키기도 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당이나 공산당들이 공공연하게 그리스도교를 반대했는데, 이는 가톨릭 교회의 쇠퇴를 뜻하는 것이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새로운 세계의식

다른 한편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타종교에 대해 더욱 긍정적인 정의를 내리는 등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이는 전세계를 개종시켜 그리스도에 대한 명시적 신앙을 갖고 로마 교회에 대해 복종하도록 하려는 의욕을 감소시켰다.

가톨릭 교회는 급변하는 사회 상황에 새롭게 대응하는 내부 개혁에 착수했다. 교회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회에 그 지역에 맞는 교회의 토착화를 몇 가지 허용했고, 현대의 교황들은 서양 제국주의를 단죄했다.

세계를 개종시키고 신앙으로 지배하려는 생각이 완전히 사멸한 것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세계의 대부분 국가에서 가톨릭 교회는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타종교 신자들을 형제로 맞이하고 있으며, 세속적 인간성의 계발에도 새로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교회 조직

교회의 본성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단을 단죄하던 초창기부터 가톨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설립된 공동체에서 유래하는 유일한 예배공동체라고 생각해왔다. 가톨릭에서 이탈한 사람들은 신앙적으로 볼 때 가톨릭에 전혀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성 키프리아누스(200~258)가 3세기에 "교회의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가르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러나 현대 가톨릭 교회는 교회와 구원의 관계에 대해 훨씬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위의 말은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교회생활로 부르는 그리스도의 계명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마르 16:16)이 구원에서 제외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오히려 하느님이 요구하는 일을 무엇이든 충심으로 지키겠다는 솔직한 지향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을 뿐더러, 솔직한 마음 때문에 교회에서 성원의 자격까지도 누린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여러 가지 표상으로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성인들의 친교와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개념도 이에 속한다. 성인들의 친교라는 개념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교회(현세에서 투쟁하는 교회)와 죽은 사람들의 교회(작은 죄를 사함받기 위해 연옥에서 고통 중에 있는 상태와 천국에서 승리한 교회)를 포함하는 전체 교회를 의미한다.

'친교'(Communion)라는 개념은 초기 교회 문헌에 나타나는데, 하나의 교회에서 일치됨을 서로 인정하고 서로 봉사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체' 개념은 바울로의 편지에 나온다. 피우스 12세는 1943년 '신비체'(Mystici Corporis)라는 회칙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간주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이 신비체의 일원이 되는 길을 마련해주기 위해 이보다 훨씬 완화된 견해를 취하고 있다.

사도의 계승

로마 가톨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설립된 공동체로부터 합법적으로 계승되어 오는 유일한 교회임을 천명하는 것은 12사도로부터 전래되어 오는 사도권 계승(使徒權 繼承)에 근거하고 있다. 이 사도권 계승을 상징하고 유효하게 하는 외적 표시는 현재 서품식 때 거행하는 안수이다.

성서에 의하면, 예수는 제자들 중 12명을 뽑아 사도로 삼고(마태 10:1~4, 마르 3:13~19), 그들 중에서 베드로를 단장으로 삼아(요한 21:15~17) 단체의 형태를 정했다. 각 사도는 그리스도로부터 선발되고 파견된 그리스도의 사도이지만, 그 권위는 개별적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사도단과 더불어, 베드로의 영도 아래 있을 때에만 인정된다.

사도가 권한을 갖는 것은 사도단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점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주교들은 개인자격으로서가 아니라 단체적으로 사도들의 계승자이며(교회헌장 20), 사제들과 부제들은 불완전하나마 진실로 주교들의 직무에 참여한다(교회헌장 22,28) (→ 색인 : 주교단론).

사제의 권한은 신품성사를 함으로써 개인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위임한 사명을 단체적으로 상속하고 지속시키는 성직자단에 입단할 때 그 권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단체의 기능은 대사제인 그리스도의 직무를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에서 대표로서 이행하는 것이다.

사도의 권한은 가르침의 권한, 성사 집행의 권한, 교회통치의 권한에 한정된다. 로마 가톨릭에서 사도권 계승은 오직 로마 교황이 인정해야만 정당성을 갖게 되며, 또한 사도신경에서 '사도적'이라는 말은 로마 교황의 수위권 아래 있는 이 3가지 권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학자들은 가톨릭 교회 밖의 신앙공동체에서도 사도권 계승성을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찾으려고 애썼다. 하느님은 성사를 통해서만 역사하는 것이 아니며, 사도들의 직무는 주교 직무에서뿐 아니라 전체 교회 안에서도 지속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예언자적·사제적·왕적인 3가지 사명에는 전체 교회가 참여하므로(교회헌장 30) 이들 직무를 사도와 주교의 직무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 교회에 속하지 않는 신앙공동체를 '교회'로, 그 구성원을 '형제와 자매' 및 '그리스도 교인'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 이외의 교회에서 수행되는 직무도 부분적으로 사도권 계승성을 지닌다고 본다.

교황직

교황 집무실

교황직(라틴어로 'Papatia', 아버지란 뜻의 'Papa'에서 유래)이라는 말은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교황의 직위와 재치권(裁治權)을 가리키는 말로서 중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일차적인 의미는 교황(로마)의 집무실을 가리키며, 따라서 교황이 직접 관장하는 교회적·세속적인 정부를 나타낸다.

교황의 집무실이 특별한 이유는 로마의 주교가 수위제자인 성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때문이다. 베드로 집무실의 재임자로서 교황은 보편적인 교회의 최고 주교 또는 수좌(首座)로서 홀로 탁월한 지위를 가진다 (→ 색인 : 교황의 수위권).

교황의 수위권 주장의 토대는 베드로 위임설인데, 이는 그리스도가 공생애 기간 중 베드로에게만 수위권을 약속했으며(요한 21:15~17), 그리스도가 부활한 후 실제로 베드로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는 주장이다.

교황직과 외부 세계의 역사적 관계

교황직과 외부 세계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그 시대에 확립되어 있던 정치적 관념을 반영해왔고, 그 관념과 긴장상태를 유지해왔다. 교황은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 교회의 지도적 성직자로 간주되기도 했고, 속사(俗事)에서도 최고의 직접적 권한을 가지는 위엄있는 군주로 간주되기도 했고, 세속 일에서는 단지 간접적인 중재의 힘만을 갖는 근본적으로 정신적인 지도자로 간주되기도 했다.

종교개혁 후 그리스도교의 분열, 세속주의 성장, 국경내의 사법적 전권을 주장하는 통일된 근대국가의 출현으로 세속적인 일에 대한 교황의 간접적인 권한 행사마저도 점차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 교황은 국가 수뇌들간의 외교적 관례에 따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교황청의 위엄과 위광(威光)에서 비롯되는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권위의 힘은 한 인간으로서 교황이 갖는 도덕적 명망, 그 가르침의 설득력, 교회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열의에 달려 있다.

성직자단

교황청과 추기경단

교황은 교회의 수좌로서 일상적인 업무를 결정할 때, 교황청 내의 각 부서, 즉 성성(聖省)의 보필을 받는데, 성성이라는 명칭은 11세기 교황 보좌단 칭호에서 유래한다. 추기경단은 이 교황 보좌단에서 발전한 것이며, 1179년 이래로 교황을 선출하는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의 교황들은 전통적으로 70명 이내로 되어 있던 추기경단 수 제한을 폐지하고 추기경들의 국적의 폭도 넓혔으며, 각 추기경이 교회의 국제적인 성격을 대표하도록 하고 있다.

추기경은 교황이 직접 선발하나 교황은 추기경을 선발할 때 교황청의 추기경들과 협의하거나 추기경회의를 거친 후 결정한다. 추기경들은 자기 관구에서 주교로 재직하거나 바티칸에서 교황의 최고위 고문과 성성의 임원으로 재직한다.

주교단

로마 가톨릭 교회는 주교단이 베드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사도단의 계승이란 점을 강조해 오고 있다 (→ 색인 : 사도권 계승). 그리스도는 베드로에게 수위권을 주었지만 단독으로 교회를 사목하게 하지 않고 동료 사도들과 형제적·공동체적 일치 속에서 사목했다.

같은 이유에서 베드로의 계승자인 교황은 사도단의 계승자들인 동료 주교들과의 일치 속에서 교회를 다스린다. 주교들의 단체적 성격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때는 공의회를 소집하여 함께 모이는 경우이다. 가장 최근에 열린 공의회는 1962~65년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다.

이 공의회 마지막 회기중에 교황 파울루스(바오로) 6세는 교회에 주교들의 단체적 협력을 도입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곧 ' 주교 회의'이다. 주교 회의는 전세계 주교를 대표하는 모임으로 교황이 소집하며, 교회가 당면한 문제와 사목문제를 협의한다. 이 협의를 통해서 주교들은 교황을 단체적으로 보좌하며, 전세계 주교 및 신자의 의사와 관심을 교황에게 제출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주교는 사도권을 계승한다고 믿는데, 이 사도권이란 가톨릭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집행을 통해 교회를 성화시키고, 교회를 통치하는 권한이다. 한 지역에 상주하는 주교는 그 관할지역에서 이 3가지 직분을 수행하며, 로마 교황을 제외한다면 최고의 상급자이다.

가톨릭 교회에는 많은 지역교회 또는 교구가 있다. 대주교는 수도교구, 즉 통상적으로 한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거나 오래된 교구로서 여러 교구를 포함하는 관구(管區)를 관장한다. 관구 대주교는 관구회의나 교회회의를 소집·주재하며, 사목 방문권을 갖고 있으나, 관구관할교구, 즉 예하 교구에 대한 관할권은 없다.

주교는 자기 교구만을 관할하는 권한이 있다. 교구를 맡고 있는 주교를 교구장이라고 하는데, 그 교구에서 행사하는 권한을 지적하는 칭호이다. 때로는 교구장에게 한 사람 또는 그 이상의 보좌주교 또는 부주교를 두어 신자들을 돌보는 일을 돕게 한다. 그러나 주교의 권한은 자기 교구에서조차도 절대적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법은 주교가 일종의 자문기관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 주교들은 사목자나 교사라기보다 해당 교구의 업무 관리자로서의 모습을 더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 주교의 직책은 책임이 매우 중대하며 지도력뿐 아니라 유능한 참모에게 업무를 위임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주교는 교구를 다스리면서 교황의 참모진과 같은 성격의 교구성 참모진의 도움을 받는다. 참모진의 구성은 어느 정도까지는 교회법에 의해 규정된다. 그밖의 경우 주교는 자신의 재량으로 교구의 필요에 따라 참모를 임명할 수 있다.

예하 성직자에 대한 주교의 권한은 주교의 인간적인 온정을 제외하고는 효과적인 제지책이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사제평의회가 구성되면서부터 점차 변화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구의 의결과정이 원칙적으로 주교의 재량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했으나 주교들에게 이 과정에 사제들을 참여시킬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공의회

교리와 규율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 주교회의는 2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세계 주교를 대표한 최초의 전체 공의회는 325년 소아시아의 니케아에서 개최되었다 (→ 색인 : 니케아 공의회).

교회법은 공의회와 그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 교회법이 채택한 것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절차이다. 공의회에 대한 어떤 실제적인 기준은 없으며, 단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에큐메니컬한 것으로 간주하는 교회회의를 공의회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공의회를 최고의 권위로 인정한다. 공의회와 교황은 2개의 최고 권위이다. 로마 교회는 교황과 함께 보조를 맞추는 공의회가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논리적 딜레마를 조정한다. 오직 교황만이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으며, 교황이나 교황의 사절만이 회의를 주재할 수 있다. 공의회의 권한에는 제한이 없으나 공의회에서 정한 교령(敎令)은 교황의 인준을 통해서만 효력을 발생한다.

제1차,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의회의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공의회는 매우 광범위한 합의에 의해 산출된 대중적·심리적 영향은 접어놓더라도 교황청에서 입수할 수 없는 전세계적인 경험과 지혜의 자원을 교회가 이용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공의회 회원이 통상적인 생각과 행동 수준보다 더 높은 정신 상태를 갖도록 한다.

사제직

〈신약성서〉는 사제라는 칭호를 어떤 교회 관리에게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분은 2세기에 나타나는데, 이는 절대적 권한을 갖는 주교직의 발달과 함께 나타났음이 분명하다. 주교가 가르치고, 성화(聖化)시키고, 다스리는 3중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사제는 주교의 보조자로서 권한을 행사했다 (→ 색인 : 성직자).

본당 신부는 전형적인 사제이다. 규모가 큰 본당에서는 주로 행정가로서 역할을 수행하지만, 가톨릭 신자들은 본당 신부를 통해 직접 교회 생활을 하게 된다. 가톨릭 신자들은 본당에서 강론을 듣고 미사를 드리며 성사(聖事)를 받고 신앙 상담과 지도를 받는다.

오락에서부터 교육과 사회사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활동이 본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이 모든 활동은 본당 신부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다. 역사적으로 볼 때 로마 가톨릭 교회의 힘은 교회의 사제들, 특히 본당 신부들에게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수도 단체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도 단체들은 공동생활을 하고, 청빈·정결·순명(복음적 권고에 따르는 것)의 3대 서약을 통해 자신을 오로지 하느님께 봉헌하며, 복음적 권고를 실천하고 증거하는 남성 또는 여성들의 집단으로 구성된다.

수도생활의 목적은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성(신학적으로 완전한 사람으로 정의됨)에 도달하는 것이며, 따라서 수도생활은 단지 소수의 가톨릭 신자들만이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생활이다. 수도단체의 전통은 2,3세기의 은수자들로부터 비롯되었다.

후에 수도단체의 실제생활은 후대의 수도원 생활과 규율을 규정한 베네딕투스 수도회 회칙으로 공식화되었다(→ 색인 : 베네딕투스 규율, 공주수도원제도).

평신도

하나의 계급으로서 평신도는 〈신약성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성직자가 생겨나면서 비로소 평신도라는 개념도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평신도들은 교회의 수동적 요소에 불과했다. 교회의 직분이 가르치고 성화시키고 다스리는 것으로 이해된다면, 평신도의 기능은 주로 가르침을 받고 성화되고 다스림을 받는 것으로 이해된다.

교회법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모든 권한이 그리스도로부터 오며(마태 28:18),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백성의 선악, 교회 및 신앙의 성장을 위해 제자들에게 다스릴 권한을 부여했다(마태 16:19)고 믿는다. 따라서 이렇게 위임받은 사목권에 의해 교황과 주교들은 법규를 내놓았다.

최초의 개별적인 교회법은 캐논(Canon:'규칙'·'자'·'표준'을 뜻하는 그리스어 'kanon'에서 유래)으로 불렸는데, 이 '캐논들'이 마침내 교회법(Canon Law)으로 불렸다. 교회법들은 교회의 권위와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났으며, 〈신약성서〉의 일부 구절들은 초기의 규칙들을 반영한다. 교회법이 최초로 수집·종합된 것은 1142년이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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