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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2-30 (화) 22:17
분 류 사전3
ㆍ조회: 874      
[종교] 천주교-신조와 의식, 현대 가톨릭 (브리)
로마가톨릭교-신조와 의식, 현대의 가톨릭

세부항목

로마가톨릭교-가톨릭의 형성
로마가톨릭교-선교활동과 교회조직
로마가톨릭교-신조와 의식, 현대 가톨릭
로마가톨릭교-한국 천주교

신조

신앙

신앙의 개념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가 공유하는 신앙에 대한 관념은 〈신약성서〉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신앙 관념은 단순하지 않으며, 그 의미는 폭이 넓어 단일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조차도 다양하게 이해된다. 대부분의 현대 〈신약성서〉 해석가들은 〈신약성서〉에서의 신앙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신앙의 전(前)단계 및 동인

신앙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연구에는 소위 신앙의 전단계와 신앙의 동인에 대한 조사가 포함된다. 신앙의 전단계에는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결론에 신자들이 도달하게 되는 과정이 포함된다. 한 개인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한 예이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신앙의 동인이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권위'라고 설명해오고 있다. 신앙의 전단계를 거친 사람은 이성적인 의심을 뛰어넘어 하느님이 존재하고 자신을 계시한다는 것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계시하는 하느님의 권위라는 관념은 동인이라기보다 신앙의 대상인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이 권위와 계시 사실의 결합은 역사적인 경험의 대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딜레마 때문에 20세기 중반에 와서는 신앙이 계시된 진리를 따르는 것이라기보다 하느님께 자신을 인격적으로 위탁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견해에 동조하는 가톨릭 신학자들의 수효가 증가하게 되었다.

이단

이단은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 계시된 진리를 부인하거나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계시된 진리라고 인정한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단이 성립되려면 3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그가 세례받은 신자이어야 하고, 둘째, 계시된 진리, 즉 교리에 관한 오류나 의심이 있어야 하며, 셋째, 오류나 의심을 지속하려는 완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단에 대해 심각하게 대처했다는 것은 고대의 파문 형벌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이단의 개념이 달라졌다. 또한 이단과 이단자라는 말을 피하고, 대신 갈라진 비(非)가톨릭 그리스도교인 혹은 갈라진 형제라 부른다.

계시

계시의 개념

다른 종교에도 계시의 관념이 있지만, 〈구약성서〉·〈신약성서〉와 그리스도교에서 발견되는 계시의 관념과 흡사한 관념을 지니고 있는 종교는 없다. 성서는 '거룩하신 야훼 하느님'이 계시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성서의 계시는 가장 거룩한 존재자인 인격적 신이 자유로이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는 데 그 특색이 있다.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은 광의의 계시와 엄밀한 공식적 의미의 계시를 구분하고 있는데, 전자는 자연과 인간으로부터 연역되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실제로는 철학)을 의미하며, 후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계시를 본래 한 인격에 관한 계시라기보다는 신조에 관한 계시로 간주해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따라서 예수까지도 자신의 존재와 행위를 통해 하느님을 드러내는 하나의 실재(實在)로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하느님에 대해 말하는 대변자로 생각해왔다.

내용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계시의 고유한 내용이 신비라고 가르치는데, 이 주제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중시되었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초자연적 계시가 그 본질상 하느님이 스스로 자신을 인류에게 열어 보일 때 성립된다고 천명함으로써 계시의 개념을 순수 지성적으로 추구하려는 경향을 배척했다 (→ 색인 : 초자연주의).

초자연적 계시는 피조물의 자연적 인식 가능성을 뛰어넘는 하나의 신비라는 것이다. 통속적 언어로 표현하면 신비는 하느님이 말해 주지 않으면 인간은 하느님이 누구고 무엇을 하는지, 왜 그것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 이성은 혼자의 능력만으로는 하느님의 실재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계시의 내용을 신비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신비는 계시가 이루어질 때에도 하느님의 실재와 그의 일들은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색인 : 자연철학). 이런 관점에서 신학자들은 신비에 대해 오랫동안 불가해하다는 말을 사용해왔다. 신비는 신적 실재와 신적인 세계의 운영 모두에 관련되어 있다. 신적인 세계의 운영은 그 결과를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운영 그 자체는 보이지 않으며 그 동인도 역시 보이지 않는다.

현대의 계시신학자들은 계시를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직접적인 말씀이라는 원시적인 계시 관념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은 계시를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방법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으나, 고루한 계시 관념을 타파한다고 해서 계시의 전체적인 관념이 파괴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새로운 계시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성은 결코 신비를 꿰뚫어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이미 계시된 신비를 계속 탐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성서와 성전(전승)

로마 가톨릭은 성서와 함께 성전(聖傳) 또는 전승(傳承)을 받아들인다. 거룩한 전통을 뜻하는 ' 성전'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알려진 용례는 기록되지 않은 형태로 교회의 초창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과 실천적 관행을 가리키며, 기록된 성서의 말씀과 형식상 구별된다.

로마 가톨릭 신학은 성전 또는 전승이 매개의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내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매개로서 성전은 가톨릭 교회의 살아있는 교도권과 동일시된다. 성전의 내용은 신앙과 도덕에 관해 계시된 진리, 즉 '신앙의 저장물'이다. 로마 가톨릭 신앙에서 계시는 사도들의 죽음과 함께 끝나며, 그 저장물은 사도들을 계승하는 주교단에 전달되었다고 본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이고, 성전은 교회의 말씀임을 인정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회가 〈신약성서〉 이전에 존재했다는 논의를 진전시켰다. 사실상 교회는 〈신약성서〉를 생기게 하였으며, 그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임을 확증시켰다.

최소한 이런 믿음에 대해서 성전은 유일한 원천이다. 바로 이 관념은 진리의 본체가 주교단을 통해 교회에 전달되고, 구전(이 말은 성서에 기록되지 않았음을 의미)에 의해 보존되어왔다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주장에 대해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규준으로 '성서와 함께 성전도 인정해야 한다'는 가톨릭의 입장은 '성서만' 인정하는 개신교의 입장과 사실상 맞서왔다. 개신교의 성서 유일주의에 대한 가톨릭의 주요반론은, 성서 자체가 모든 계시를 다 간직하고 있다거나 신앙의 유일한 규준이라고 주장한 구절이 성서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양식 비평(樣式批評)이 입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성서는 히브리 전통과 사도들의 전통이 낳은 문학적 산물이기에 그러한 전통이 없었다면 성서는 존재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성서를 성전이라는 본래의 배경에서 분리·독립시켜 버리면 성서가 가지는 본래의 가치와 생명력을 없애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교회의 교도권(敎導權)

교도권의 개념

로마 가톨릭 교회는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교도권을 주장한다. 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이 교도권에 대한 반란이었으며, 종교개혁자들은 그들이 로마 교회에서 거부한 교도권을 자기들의 교회에서 주장하지 않았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신약성서〉에 나와 있듯이("너희의 말을 듣는 사람은 곧 나의 말을 듣는 사람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침의 권한을 위임한 것에서 교도권의 유래를 찾는다. 그리스도는 가르치는 직무를 사도단의 구성원인 사도들에게 주셨고(마태 28:18~20), 사도단의 단장이요 최고 목자인(요한 21:15~17) 시몬 베드로에게는 그 형제인 모든 사도들을 신앙 안에서 견고하게 하는 임무까지 맡겼다(루가 22:32).

따라서 교회 안에서 주교직을 계승하는 주교들과 교황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단에게 주신 교도권을 이어받고 있다.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고,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고, 그것을 거룩히 보존하고 성실히 진술하는 권한이다.

교도권의 행사기관

교도권은 성직자단의 교도권과 평신도단의 교도권으로 구분되고, 성직자단의 교도권은 다시 그 행사상 장엄교도권과 통상교도권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교황이 교좌에서 선언하거나, 주교단이 공의회에 모여 선언할 경우에 성립된다. 후자는 주교들이 권한을 갖고 발표하는 일반교시를 말하는데, 이는 회칙 형식이나 지역 주교단의 공동교서 형식으로 발표된다.

평신도단의 교도권은 평신도가 성직자단의 교도권을 통한 가르침을 받아들여 이를 세속문화에 적응시키고 깊이 이해함으로써 그 진리를 옹호하고 설명하는 데 공헌한다. 이 순종의 동기는 교황이나 주교들의 인간적 지식이나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교황과 주교들을 통해 교회를 지도하고 지배하고 있다는 확신에 있다. 또한 가톨릭 교회는 성령이 주교들로 하여금 오류없이 가르치도록 도와주듯이, 평신도들이 오류를 믿지 않도록 도와준다고 믿고 있다.

교도권은 전체 교회에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정의된 기관들에 부여된다. 이 기관들은 고위 성직자 계급인 교황과 주교들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교회를 '가르치는 교회'와 '듣는 교회'로 구분하고 있다. 고위 성직자 계급 이하의 성직자들은 '듣는 교회'에 포함된다.

로마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전체적인 교도권을 부여받고 있으며, 이 점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엄숙히 선언되었다. 이것은 교황이 전체 로마 교회의 유일한 대변자임을 의미한다. 교황은 본래의 사목자로서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주교는 교구에서 활동하는 진정한 교사이다. 따라서 교회를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르침에 대해서도 내재적인 갈등이 존재한다.

주요 교의와 교리

로마 가톨릭 교회는 세례 예식서를 통해 영세 후보자들이 믿어야 할 교리를 믿는다는 표시로 사도신경을 암송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초기교회 교부들은 이 사도신경을 기초로 세례 준비자들에게 세례 강론(설교)을 했다. 이 강론은 현대 로마 가톨릭 교리들과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한 신조들보다 훨씬 풍부한 내용을 가졌다.

로마 가톨릭 신앙은 신앙의 구조 속에 〈구약성서〉를 통합시키고 있다. 또한 〈구약성서〉에서 원죄에 대한 신조를 끌어내고 있다. 원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늘의 뜻을 성취하지 못하게 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품위마저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유전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적 결함으로 생각된다.

이 교리의 중요성은 인간의 상황이 하느님의 실수가 아닌(또는 현대 가톨릭 신학이 말하듯이 악마의 영향에 의해서도 아닌) 인간의 실수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설명하는 데 있다. 인간은 오직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의해서만 그러한 인간상황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이 구원행위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에 의해 성취되었다. 예수 안에서 하느님은 성자(聖子)에게 구원 사명을 주어 파견하는 성부(聖父)로서 계시되며, 성자를 통해 성령은 구원받은 인간들 가운데 임재한다. 위격(位格)의 삼위일체는 이렇게 계시되며, 인간의 운명은 3위격의 신적인 삶을 공유하는 것이다.

예수의 구원행위는 세상에 은총을 가져오는데, 이 은총은 여러 차례 격렬하게 논란된 신학적 관념이다. 로마 가톨릭 신앙에서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 사랑으로 인해 인간 안에서 생기는 결과도 의미한다. 은총의 현존에 대한 신앙인들의 응답은 믿음·희망·사랑의 3가지 신학적 덕목이다.

이 3가지 덕목은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은 세례로 인해 은총을 받고 교회에 나오게 되는데, 회개와 믿음이 세례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은총의 삶은 성사(聖事)를 통해 교회 안에서 지속된다.

의식

전례

성찬의 전례 또는 미사

로마 가톨릭의 전례는 유대교와 〈신약성서〉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초기부터 전례의 중심적 행위는 성찬의 전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만찬을 기념하는 예식이었다. 이것은 전례기도의 구조로 고정되었다. 그리스도 교회가 성립된 후 6세기 동안 매우 다양한 전례제도가 발전되었는데, 그 가운데 많은 제도가 동방교회의 전례 속에 남아 있다.

11세기에 전례는 고전적인 형식을 갖추게 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유지되었다. 완전한 전례는 매일 거행하는 장엄(엄숙) 대미사와 성가대가 바치는 성무일도의 낭송을 포함했다. 장엄 대미사는 최소한 3명의 성직자(주례자, 부제, 차부제)가 집전하였고, 이들은 많은 시제(侍祭)와 복사(服事)의 시중을 받았다.

대림절(待臨節)과 사순절의 참회시기 외에는 제단이 장식되었으며, 수많은 촛대(중세시대에는 장식용이라기보다는 어둠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되었음)와 향이 사용되었다. 노래와 성가는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불렀는데,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의 대주교가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제대로 갖추어 놓지 않고 미사곡을 작곡하도록 강요한다고 불평한 일도 있다.

성무일도(聖務日禱)

성무일도는 수도자로부터 성직자에게 전해진 유산이었다. 성무일도는 기본적으로 시편의 낭송(1주일 주기로 함), 기도문 암송, 성서봉독(후에 교부들의 저작에서 발췌한 것을 첨가)으로 구성된다. 미사와 함께 성무일도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기도가 되어왔다.

다른 모든 기도문 형식은 비록 수백 명이 함께 암송한다 해도 '비공식적인' 기도이다. 사제와 부제는 성무일도를 바칠 의무가 있으며, 수사들은 수도회의 규칙에 따라 성무일도를 바친다. 교회는 일반신자들도 바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전례의 주기와 언어

전례는 오래전부터 1년 주기로 배열되어 왔는데, 이 전례주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영화(榮化)의 구원사건을 재연한 것이다. 이 구원사건은 구원 행위가 종말론적 완성에 도달할 것임을 보여주는 보증으로써 재연된다. 전례는 그리스도교적 희망의 표현인 동시에 확증이라고 할 수 있다.

라틴어는 6세기 이전까지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례 용어가 아니었다. 라틴어의 영향으로 전례는 성직자의 영역이 되었고, 평신도는 순전히 수동적인 입장이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 라틴어 사용이 폐지되자 교회 내에서 심한 반대가 일어났다.

그것은 사람들이 라틴어 전례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는 영원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표상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어 전례의 복원은 처음 수세기 동안에 전례가 지녔던 2가지 기능, 즉 개종자를 가르치고 신자들의 신앙을 확고하게 하는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사(聖事 Sacrament)

성사의 개관(槪觀)

로마 가톨릭 신학에서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정한 것으로 내적 은총을 가져오는 외적인 표징이다. 전례는 가톨릭 교회가 성서와 성전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공인한 의식으로 개인의 신앙생활과 구별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를 통해 우리 속죄의 구원사업이 수행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된 교회의 본질을 다른 이에게 드러내 보이고 명시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전례는 하느님과 구원될 인간의 결합이며, 끊임없는 만남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전례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미사와 성사이다.

성사의 수는 7가지로서 7대성사라고 부른다(이 수는 트리엔트 공의회가 성사의 수를 줄인 종교개혁자들에 대항하기 위해 규정한 것). 현대신학에서 성사는 흔히 '신비와의 만남'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이 신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구원행위이다.

성세성사

성세 또는 세례는 신앙 안에서 다시 태어나 교회의 일원이 되는 성사이다. 유대인의 성인 개종자 할례 신앙에서 영향을 받은 듯이 보이는 사도 바울로의 논지에 따르면, 세례는 과거의 삶을 마감하고 새 이름을 받는 예식에서 드러나듯 하나의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세례는 과거의 죄를 전적으로 폐기하는 것이며, 전적으로 순결한 인간으로 출현하는 것이다. 그는 교회의 일원이 되며 그리스도의 몸과 합쳐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생명을 부여받게 된다. 순수한 자연수 외에는 아무 것도 세례에 사용될 수 없으며, 세례는 반드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져야 한다. 세례는 통상적으로 사제들이 집행한다. 세례는 태어남의 성사이므로 반복될 수 없다.

견진성사

성세성사를 받은 신자에게 성령과 그 선물을 주어 신앙을 성숙시키고 증거하게 하여 교회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게 하는 성사이다. 가톨릭 교회는 성서에서 견진성사를 집행한 사례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서(사도 8:14·17), 바울로가 직접 세례를 준 적이 없는(고린 1:17) 에페소에서(사도 19:1~6) 이미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신자에게 안수를 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게 함으로써 견진성사를 집전한 사실을 들고 있다. 견진성사는 11세기 이래로 주교가 기름을 바르고 안수해주는 방식으로 집행되어 왔는데, 한편 성사 집행자는 성령이 임하신다는 선언을 한다.

성체성사

성찬식(주의 만찬, 성체배령)은 성세성사와 더불어 〈신약성서〉에서 가장 명확하게 발견되는 2가지 성사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 교회는 어떤 형태로든 이 성사를 지키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성찬식을 희생제사( 미사)와 성사(영성체)로 구분하고 있다.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빵과 포도주 형태 안에 실체로 현존하는 것을 말한다 (→ 색인 : 화체설).

성체의 제전은 초대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교 신자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가톨릭 교회는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Ⅰ고린 11:24)는 말씀대로 매일 미사성체를 통해 이 성체제전을 거행한다고 말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법은 신자들에게 최소한 1년에 1번(사순절·부활절 기간에)은 영성체를 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고백(고해)성사

4번째 성사의 이름인 고해는 교회 초기의 참회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은 공적인 참회기간을 통해 회개의 표시를 하기 전까지는 성체를 배령할 수 없었는데, 공적인 참회에는 금식, 대중 앞에서의 금욕적인 행위, 참회의 표시인 삼베옷 입기, 다른 금욕생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참회기간이 끝나면 그들은 공적으로 교회와 화해하게 되었다.

죄 중에는 대죄라고 하는 죄(살인·간음·배교)가 있었는데, 어떤 지역교회들은 한때 이 대죄에 대해서는 참회의식을 베풀지 않았다. 이것은 하느님이 이런 죄를 용서하시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죄를 지은 사람은 교회에서 영원히 설 땅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고백성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화해성사로 수용되었다.

병자성사 (병자의 도유)

이 성사는 전례서에 규정된 기도문을 봉송하면서 성유(聖油)를 병자의 각 신체기관(눈·귀·콧구멍·입술·손, 전에는 발과 허리까지였음)에 도유(塗油)하는 것이다. 이 성사는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집행할 수 있다. 동일한 병으로 앓고 있는 동안에는 단지 1번만 이 성사를 받을 수 있으나, 회복 후 다시 앓게 될 경우에는 또 1번 이 성사를 받을 수 있다. 신앙적으로 보면 병자의 도유는 고백성사를 보완하고, 수령자가 무의식 상태일 경우 고백성사를 대체하는 매우 유익한 성사이다.

혼인성사

로마 가톨릭 교회는 혼인을 성사에 포함시킴으로써 국가와 사회에서 비(非)가톨릭 신자나 단체에게도 관심사가 되고 있는 제도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현대의 세속 국가 안에서 이 관할권을 주장하지 못하지만 가톨릭 교회 신자들의 결혼에 대해서는 전적인 관할권 행사를 주장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혼인성사는 혼인 당사자들의 혼인서약의 교환으로 이루어진다. 사제는 혼인예식에 반드시 참석하여 권한을 위임받은 공적인 증인이 된다. 교회는 사제 이외에 다른 2명의 증인들을 요구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혼인성사를 집전하기 전에 당사자들에게 결혼에 대해 매우 엄밀한 검토를 할 것을 요구하며, 따라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충동에 의한 결혼이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혼인성사가 어떤 결함 때문에 나중에 무효로 선언되지 않도록 완벽을 기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혼을 반대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완고한 입장은 특히 교회 밖에서 중요한 비난의 표적이 되어 왔다. 혼인 계약의 조건들을 엄격히 규정함으로써 로마 가톨릭 교회는 민법에 규정되지 않은 혼인무효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 색인 : 혼인의 무효).

신품성사

이 성사는 성직 후보자들에게 성무에 관한 권한, 즉 성사를 집행할 수 있는 신권(神權)을 부여하는 것이다. 서품(사제직 수임)식은 주교만이 집행할 수 있으며, 서품식에는 안수와 도유, 성직의 상징적인 물건을 전달하는 예식이 포함된다. 서품식은 반복되거나 무효가 될 수 없다.

사제직의 권한 행사를 정지당한 신부나 환속한(영원히 평신도로 살도록 허락받은) 신부는 성직 권한을 보유하고는 있으나 긴급시를 제외하고는 그 행사가 금지되어 있다.

전례에 준하는 봉헌의식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온전한 의미의 전례는 미사전례, 성직전례, 성사(聖事)들이지만, 전례에 준하는 예배 형태들도 발전되어 왔다. 전례에 준한다는 말은 이 예배 형태들이 전례에 속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전례와 배치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행위들은 봉헌이나 봉헌의식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성만찬 봉헌

성만찬 봉헌의식 중에는 축복받은 성사의 성체강복식과 '진열'이 있고, 찬송, 오르간 반주, 향, 행렬이 동반되는 성만찬 빵의 장엄한 공개가 있다.

성인 숭배

그밖의 봉헌의식들은 성인숭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중재를 부정한다고 하여 성인숭배를 비난했다 (→ 색인 : 경배) .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반대는 가톨릭 의식(儀式)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지만, 봉헌 의식들이 미신에 가까워진 경우도 흔히 있었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하느님께 바치는 예배와 마리아나 성인들에 대한 경모를 서로 구별한다. 개신교도들은 성인들을 참된 그리스도교 정신의 모범으로 보는 원리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성인들의 개입은 전적으로 불필요하고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못박는다. 성인들의 개입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이해는 성인들의 친교에 대한 신앙을 확대시킨 것이다.

성인들에 대한 경모심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 하나의 중재자 이외에 여러 중재자들을 상정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소박하고 유쾌한 친밀감을 조성해온 것도 사실이다 (→ 색인 : 전구).

지나친 동정녀 마리아 숭배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고, 고통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미신의 경향을 띠거나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일이 종종 나타나기도 했다. 마리아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여성의 원리를 대표한다. 다른 종교에서도 이 원리가 여신으로 인격화되는 경우가 흔하다.

마리아에게는 동정심과 부드러움 같은 여성의 특징이 부여되어 있다. 이 특징은 아버지나 왕의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신에게 부적합한 것은 아니다. 마리아가 여러 차례 출현한 것(예를 들면, 프랑스의 루즈, 포르투갈의 파티마)은 어떤 지역 혹은 국가에서 마리아 임재의 상징을 필요로 한 것에서 비롯된 현상이며, 그 지역 혹은 국가의 로마 가톨릭교도들은 그와 같은 임재를 마리아와 동일시했다.

역사적 인물로서 마리아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가톨릭 교도들은 그들이 찾아야 할 이상적인 인물의 모든 특질을 마리아에게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언제나 봉헌의식들에 대한 공식적인 감독권을 주장해왔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인정한다고 해서 환상이나 출현의 역사적 실재성이 저절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로마 가톨릭교도는 마리아가 루즈나 파티마의 누구에겐가 나타났다는 것을 믿어야 할 의무가 없으며, 로사리오(기도용 묵주)가 사적(私的)인 계시를 통해 전달되었다거나 예수가 성스러운 하트 모양으로 자신을 드러냈다고 믿어야 할 의무도 없다.

또한 가톨릭교도들은 이 봉헌의식 중 어느 하나를 의무적으로 실행할 필요가 없다. 대체로 이 봉헌의식들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행해지는 강론과 전례를 통해 그 뜻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몇 가지 요소를 강조하는 데 이바지한다.

사회적 역할

선교

그리스도교는 초기부터 대종교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인종과 국가 또는 문화의 구별없이 만인을 향해 호소하는 진정한 세계 종교임을 자임해왔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선교 추진력을 어떤 비가톨릭 교회들보다 더 충실히 간직해왔다고 믿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식민주의적인 선교형태를 공식적으로 종식시켰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를 완전히 종식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선교지에서 배출된 인사들이 충분한 선교 지역에서는 교회의 운영을 토착적인 위계질서와 성직자들에게 일임해오고 있다.

교육

야만족의 침입부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발생하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유럽의 교육은 아랍족과 유대인들의 학문 중심지를 제외하고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실시되었다. 15세기의 문학과 예술은 교황권과 가톨릭 군주들 및 고위성직자들의 후원으로 꽃을 피웠다(→ 색인 : 교육사, 종교학교).

현대 과학의 태동은 종교개혁 및 유럽의 팽창시기와 동시에 이루어졌다. 새로운 철학 체계를 동반한 새로운 과학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반응은 적대적인 것이었다. 1600년 이후 유럽의 학문세계는 오로지 신앙 수호를 위한 학문만을 보호하였던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유럽과 아메리카 지역의 여러 나라들, 특히 미국에서 교육을 위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노력은 하나의 방대한 사업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와서는 교육 경비의 급등과 교육기관에 종사하는 신자 직원들의 감소로 인해 가톨릭 학교들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고, 여러 지역에서는 학교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또한 가톨릭 교회는 현대의 학문세계가 소중히 여기는 지적인 자유에 역행한다는 기존의 평판에 대처해야 했다.

자선활동

가난한 사람, 병자, 고아, 다른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제도적인 자선활동은 그리스도 교회가 초기부터 행해온 특색이었다 (→ 색인 : 빈곤). 교회는 이런 방식으로 예수의 치유 선교를 수행하고 있다. 비판받을 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자선활동은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여러 난관에 봉착했다.

자선활동 경비와 교육 경비가 급등하여 가톨릭 교회가 혼자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선 것이다. 또한 교회조직도 도시의 빈곤이나 국제적인 빈곤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효율적인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이론과 실천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언으로 가장 중요한 변화를 맞게 되었다. 이 선언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현대의 세속적이고, 다원적인 국가를 하나의 정당한 정치사회로 인정했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정치단체가 아니며, 교회의 목적을 위해 정치적 지원을 요청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국가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중요한 태도 변화는 이 공의회가 종교의 자유에 관해 명시적으로 선언한 내용에 나타나 있다.

경제적인 견해와 그 실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실제적으로는 재산의 소유권과 생산적인 투자의 소유권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을 용인했다. 가톨릭 교회는 교회 재원에 대한 책임을 평신도에게 맡기지 않고 성직계급이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재산은 오랫동안 비밀로 되어 왔으며, 교권을 반대하는 탐욕스런 세속정부에게는 매력적인 탈취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속정부가 가톨릭의 재산을 공개하고 탈취했다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재산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이 과장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 내에는 재정보고를 공개하자는 강한 움직임이 있었다.

가정

가정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은 보수적이어서 가정에 도덕적 중심성을 부여하고 있지만, 많은 현대 사상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와서 가톨릭 교회는 낡은 권위주의적 구조를 가족에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가정에서 사랑과 책임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보존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난제 중 하나는 산아제한의 실천이었다. 산아제한을 반대하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도덕적 논거는 대체로 그 설득력을 잃어갔으며,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전통적인 산아제한 금지를 되풀이한 1968년 교황 파울루스(바오로) 6세의 선언을 맹목적인 권위의 행사로 보기도 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로마 가톨릭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가 겪어온 쇄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 교회의 쇄신으로 유익한 점도 많았지만,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이래로 일찍이 교회가 겪지 못한 가장 심각한 내적 소요가 초래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내에는 중재할 여지가 없는 진보파와 보수파의 양극대립이 있어왔다. 이러한 불일치는 실제로 분열의 위험을 안고 있지만 몇몇 사소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단적 이탈은 없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탈자의 수는 관심을 불러 일으킬 만큼 많아지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자신이 '유일한 참된 교회'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고자 개신교와 에큐메니컬한 대화를 시작했다. 가톨릭 교회는 교리와 교회 규율에 대해 양보할 자세가 되어 있음을 표명했으나 어느 정도 양보할 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또한 가톨릭 교회 내에서는 진보적인 면보다는 문제점들이 더 많이 드러나고 있다 (→ 색인 : 에큐메니즘). 오랫동안 잠재되어 왔던 고위성직제도와 일반 성직자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사제들은 그들의 생활과 사목에서 전통적으로 중시되어온 장상(長上)에 대한 '절대 순종'에 저항하고 있다. 이 갈등은 성직자의 독신제도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확실한 통계는 없지만, 가톨릭 성직자 중 최소한 반 정도는 독신제도를 임의의 선택으로 변경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성직자의 생활방식과 사목에 대한 불만은 사제직과 수도단체에 대한 지원자의 격감 등 큰 손실을 초래하게 되었으며, 어떤 수도회는 폐회될 위기를 맞고 있다.

로마 가톨릭의 전례도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변화의 결과가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어떤 관측통들은 말하기를 새 전례의 효과는 새 세대가 자라나서 그 전례를 알게 될 때까지 평가할 수 없다고 한다.

교회의 의사결정에서 하급 성직자의 위치도 그렇지만 평신도의 위치는 더욱 모호하다. 주교와 하급 성직자, 평신도는 일반적으로 과거의 교회 경험에서 지침을 구할 수 없는 교회 정치의 변화에 소극적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책임의 공유가 예외로 간주되지 않고 당연한 규칙이 되어야 할 교회의 정치와 사업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활용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고위 성직자들 역할을 심사하는 것은 그들의 신뢰성을 문제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의 전반적인 추세는 교회의 각 구성원들, 즉 고위 성직계층, 일반 성직계층, 평신도가 자기 나름대로 보다 큰 책임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관춘(李官春) 옮김>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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