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1-30 (일) 15:36
분 류 사전3
ㆍ조회: 1617      
[현대] 북한-경제 (두산)
북한-경제

세부항목

북한-개관
북한-자연
북한-정치
북한-경제
북한-사회
북한-문화

lV. 경제

(1) 사회주의적 소유제도

북한경제에서는 토지·생산설비 등 생산수단이나 그로부터 생산되는 생산물들은 거의 대부분 개인적으로 소유하거나 처분할 수 없다.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의 기초가 되는 생산수단과 생산물이 사회화(집단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적 소유형태는 전인민적 소유와 협동적 소유로 대별된다.

전인민적 소유는 국가 소유의 형태로 나타나며 협동적 소유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발생하는 사회주의적 소유의 한 형태이다. 이 밖에 북한에서는 극히 부분적이나마 개인 소유를 인정한다. 북한의 개인 소유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의 토대에서 발생한다고 하여 ‘사회주의에서의 개인 소유’라고 북한은 차별을 둔다. 개인 소유의 대상은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이나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받는 분배 몫과 그것으로 구입한 소비품들뿐이다.

북한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개조를 1946년에 착수하여 1958년에 완수하였다고 주장한다. 즉 1946년 2월에 조직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같은 해 3월 5일 ‘토지개혁에 관한 법령’을 발표하여 무상몰수·무상분배의 원칙에 따라 토지개혁을 실시하였고, 같은 해 8월 10일에는 주요산업의 국유화 법령을 발표, 공장·광산·철도·체신·은행 등의 주요산업을 국유화하였다.

1947년부터는 산업에서의 국유화부문을 계속 확대시키는 한편, 농업부문에서는 국영 농·목장을 설치하는 등 ‘사회주의적 개조’를 점진적으로 실시해 나갔다. 그러다가 1953년 휴전 이후부터 농업의 집단화와 개인 상·공업의 사회주의화를 더욱 강화하여 1958년에는 사회주의적 개조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현재 북한의 농업부문은 아직까지 국영농장(전체농장의 10% 수준)을 제외하고는 사회주의의 과도적 소유형태인 ‘협동적 소유’ 형태로 남아 있으나 상·공업부문은 국유인 ‘전인민적 소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2)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북한 경제는 중앙집권화된 경제이며 유일적인 지휘에 따라 움직이는 경제이다. 따라서 북한은 계획수립을 비롯한 모든 경제적 의사결정과 이에 필요한 경제정보의 흐름이 중앙당국에 집중되어 있으며 하부조직은 중앙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중앙집권적 명령(지령)경제체제’라고도 한다. 오늘날 북한과 쿠바 외에는 이와 같은 체제를 고수하는 나라는 없다. 이는 경제체제 자체의 구조적 모순과 경제규모의 확대에 따른 경제운용의 복잡성으로 인해 중앙집권적인 경제관리가 기술적으로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정무원의 국가계획위원회가 경제 전분야에 걸쳐 노동당의 정책을 계획화하고 집행을 감독하는 것을 담당하고 있다. 정무원의 각부 및 위원회들도 각기 계획부서를 가지고 있는데, 이 모든 계획수치들은 일원적으로 국가계획위원회에 집결되어 통제와 조정을 받는다. 이를 북한은 계획의 일원화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계획의 세부화라는 것이 있다. 이는 북한경제에서 산업부문간, 단위기업소간의 계획이 세부적인 것까지 상호 맞물리도록 하기 위해 취하는 계획의 원칙적 체계이다. 이러한 계획의 세부화는 계획의 일원화와 함께 중앙집권화의 기본축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한편 계획 작성 과정은 통상 4단계를 거친다. 제1단계는 ‘예비숫자’ 작성단계로서 하부 생산단위에서부터 상향으로 작성·제출된 계획 숫자를 지구계획위원회 및 정무원의 각 위원회와 부에서 이를 통합, 국가계획위원회에 제출하는 과정이다. 제2단계는 보고된 예비숫자를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별도로 제시한 정책목표 및 방향을 기초로 하여 ‘통제숫자’로 작성하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통제숫자는 계획작성의 기준이 되는 예비숫자와는 달리 당의 지령으로서 거의 법적 의무성을 띤다. 통제숫자는 당의 비준을 받도록 되어 있다.

제3단계에서는 비준된 통제숫자가 국가계획위원회를 통해 다시 하부 단위기관으로 시달되는데, 이 통제숫자를 근거로 하여 해당 계획부서에서 계획초안을 만들어 상향 보고하고 국가계획위원회는 이를 토대로 종합적인 계획초안을 작성한다. 제4단계는 국가계획위원회가 제출한 계획초안을 정무원 전원회의나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검토·확정하는 마무리 과정이다. 여기에서 ‘전망계획’은 형식상 최고인민회의 승인을 받은 후에 확정된다. 확정된 계획의 수행은 법적 의무가 된다.

2. 경제정책

(1)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

북한의 경제정책은 자력갱생의 원칙에 입각한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한다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자력갱생은 모든 재화와 용역의 대내 수요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의 생산에 요구되는 과학기술의 발전까지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북한 경제운영의 대원칙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경제는 국제경제에 대해 배타적으로 폐쇄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내자동원에 의한 경제개발이 한계에 직면하자, 대외무역 및 경제협력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는 사회주의권 붕괴를 계기로 서방자본주의 국가들과의 무역증대로 인해 북한의 정책적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경제협력부문에서도 1984년 9월에 제정된 ‘합영법’을 근간으로 하여 지금까지 외자 유치에 주력하고 있으며 특히 1992년 12월에는 ‘경제특구’설치에 대한 종래의 부정적인 태도를 바꾸어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 개발구상을 공식 발표하였다. 대외경제 관계에서 그 동안의 폐쇄적 입장은 점차 완화되는 추세이다.

(2) 중공업우선정책

북한은 분단 이후 시종일관 중공업을 우선으로 하는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중공업 우선정책의 무리한 추진으로 인하여 최근 북한경제는 산업부문간의 구조적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다. 경공업은 물론이고 농업과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매우 낙후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부문간 유기성을 상실, 효율적인 경제발전이 어려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일시적으로나마 중공업을 위한 중공업이 아니라 경공업의 발전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중공업의 발전에 주력할 것을 강조한 시기도 있었다. 북한이 1989년에 '경공업발전 3개년계획'(1989∼1991)을 발표하고 1989년도를 '경공업의 해'로 설정한 것이나 제3차7개년계획의 완충기(1994∼1996) 중점과업으로서 농업제일주의, 경공업제일주의, 무역제일주의 등 3대 제일주의 방침을 제시한 것을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1998년부터 선군(先軍)사상을 앞세우면서 다시 중공업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구조적인 경제침체로 심대한 타격을 입은 전력, 석탄, 금속 등 이른바 '선행부문'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여전히 기본적으로 중공업부문의 산업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정책적인 관심도 경공업부문보다 중공업부문에 치중하고 있다.

(3) 군사경제 병진정책

북한의 경제발전과 군사력 강화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이 정책은 1966년 10월 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주요 내용은 경제발전을 지연시키더라도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이에 따라 1966년까지는 예산에서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 정도에 불과하였으나 1967∼1971년에는 30% 이상으로 대폭 증액되었다. 1970년대 초에 들어오면서 동서화해와 남북대화가 시작됨에 따라 북한은 군사비를 종전의 절반 정도(예산 총액의 17% 이하)로 축소시켜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군사비 지출 규모를 실제로 감축하지 않았으며, 다만 대외적으로 평화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군사비를 예산의 다른 지출항목에 은폐시킨 것에 불과하다. 이는 북한의 군수산업이 대부분 기계공업을 중심으로 한 중공업과 계열화되어 있어서 민수산업과 엄격히 구별할 수 없기도 하지만, 예산상의 군사비가 감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병력이나 장비 등 군사력은 오히려 매년 강화되어 왔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북한은 중공업의 발전 없이는 국방력을 강화할 수 없다는 논리를 기초로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3. 경제계획 및 실적

북한의 경제계획은 1947년부터 실시되었다. 당시는 단기계획으로서 1947년과 1948년 2회에 걸쳐 각각 1개년계획으로 추진되었으며, 1949년에는 2개년계획을 착수하였다. 2개년계획에서는 각 산업 분야에서 일제의 식민지적 잔재와 폐해를 제거하고, 생산을 급속히 늘릴 목표를 세웠으나, 이 계획은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다. 1954년 전후(戰後)에는 전후복구 3개년계획이 실시되었다.

이 계획은 생산수준을 전쟁 전인 1949년 수준으로 높일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 계획은 중·소의 원조 등에 힘입어 4개월 조기 달성되었다고 발표하였으나, 실제는 석탄·시멘트·곡물 등 대부분이 계획에 미달되었다. 1957년부터 착수한 5개년계획은 사회주의 경제의 공업기반 구축과 주민의 의·식·주 문제를 기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토지개혁, 주요 산업 국유화 등과 같은 사회주의화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1958년 8월 농업의 협동화와 수공업 및 중소 상공업의 협동화가 완료됨으로써 생산관계의 사회주의화는 일단락되었다.

북한에서 사회주의적 경제의 틀을 바탕으로 한 본격적인 경제계획이 시작된 것은 1961년 제1차 7개년계획(1961∼70)부터이다. 제1차 7개년계획은 1950년대 후반의 5개년계획에서 구축된 공업기반을 한층 견고하게 발전시키고 주민생활의 향상을 목표로 추진되었다. 이 시기에 북한경제는 기계제작공업을 중심으로 한 중공업 우선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 결과 공업화를 위한 초보적인 기반 조성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와 함께 대내지향적 공업화 정책의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더욱이 1962년 10월의 쿠바 위기를 계기로 북한은 군사력 증강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4대군사노선을 채택하고 군사부문의 지출을 대폭 증대시켰다. 또한 중·소 이념분쟁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북한 원조는 격감되었다. 이에 따라 계획기간을 3년간 연장하였으나 당초 계획목표는 전반적으로 미달된 상태에서 끝을 맺었다.

다음의 6개년계획(1971∼76)은 3대기술혁명 수행과 산업의 체질 개선을 기본목표로 하였다. 이 기간 중에는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서구로부터의 자본·기술 및 설비 도입에 관심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북한은 서방국가로부터 도입한 차관 및 연불수입대금을 제때 상환하지 못함으로써 1975년 이후부터는 심각한 외채 문제가 야기되었다. 또한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에너지·수송 등 사회간접자본 부문에서도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남으로써 당초 계획 목표의 달성이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북한은 1975년 8월 갑자기 이 계획을 1년 6개월 조기 완수했다고 발표한 다음 2년간의 완충기를 설정, 부진한 부문을 조정하는 데 주력하였다. 제2차 7개년계획(1978∼84)에서는 인민경제의 ‘주체화·현대화·과학화’를 표방하고, 1977년에 비하여 국민소득 1.9배, 공업총생산 2.2배, 알곡 1000만t 생산 등을 주요 목표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실적 부진으로 목표년도인 1984년이 지나도록 추진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다가 1985년 2월 16일 국가계획위원회 중앙통계국을 통해 뒤늦게 계획이 완료되었다는 내용의 단순 발표로 끝을 맺었다. 한편 북한은 계획기간 중 ‘사회주의경제건설 10대전망목표’ ‘4대자연개조사업’ 등 별도의 목표를 제시하고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기간 중 대외경제사업 및 무역 확대·발전 방침 채택, 합영법 제정·공포 등과 같은 경제적 대외개방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제2차 7개년계획 역시 실패로 종료되자 북한은 제3차 7개년계획에 착수하기까지 2년간의 조정기를 거쳤다. 이 시기에 주목할 점은 북한에서 주민들의 소비생활에 대한 욕구충족 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주요한 과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3차 7개년계획(1987∼93)의 기본과업은 제2차 7개년계획과 마찬가지로 경제의 주체화·현대화·과학화에 두고 국민소득 1.7배(연평균 7.9%), 공업생산 1.9배, 농업생산 1.4배 등 성장목표와 이미 발표된 10대 전망목표를 일부 수정하여 주요 생산 및 건설목표를 설정하였다.

제3차 7개년계획의 목표치는 대부분의 산업생산 분야가 이전의 경제계획에 비해 하향 책정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계획의 추진실적은 특히 1989년 이래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붕괴로 북한의 대외경제 환경이 극도로 악화됨에 따라 전반적으로 매우 부진하였으며 북한 역시 이 계획이 실패로 종료되었음을 시인하였다.

반면 이와 같은 경제적 어려움이 대외개방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1991년에는 UNDP의 두만강 하구 개발계획 추진과 관련하여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 개발계획을 발표하였고, 남북경제교류·협력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나타냈다.

북한은 당중앙위원회 제6기 21차 전원회의(1993.12.8)에서 제3차 7개년 경제계획의 주요 지표들이 목표에 미달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향후 3년간(1994∼1996)을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완충기'로 설정하고 심각한 산업구조 불균형, 의·식·주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농업제일주의·경공업제일주의·무역제일주의를 경제개발의 전략적 방침으로 제시하고 이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완충기 설정을 통해 경제의 시급한 문제들을 해소해보겠다는 당초의 목적과는 달리 북한경제는 점점 더 위축되었다. 북한이 1997년에 새로운 경제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농업·경공업·무역제일주의의 철저한 관철을 재천명함으로써 1996년 종료하기로 한 완충기 경제전략은 또다시 연장되었다.

4. 국민소득

북한에서는 현재 총량부문의 경제지표로 ‘사회총생산’과 ‘국민소득’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사회총생산물(GSP:Gross Social Product)이란 일정한 기간(보통 1년)에 사회의 모든 생산부문에서 창조된 물질적 부를 전사회적 범위에서 개괄한 총량을 말한다. 즉 사회총생산물은 공업·농업·건설·화물수송 등 물질적 생산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생산적 노동에 의하여 창조된 생산물의 총계이므로 국가관리, 교육·과학·예술, 여객수송, 주택건설 등 비생산적 부문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 개념상의 특징이다.

한편 북한 개념의 국민소득(NMP:Net Material Product)은 사회총생산 중에서 소비된 생산수단을 보상한 나머지 부분, 즉 그 해에 새로이 창조된 가치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소득이란 사회총생산에서 고정자본의 감가상각충당금과 중간재 투입비를 제외한 부분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북한의 국민소득은 우리의 국민소득(NI:협의의 국민소득) 개념과 유사한 면도 있으나 북한의 국민소득에는 비생산적 서비스부문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본질상 간접세에 해당하는 거래수입금과 정부가 농업생산이나 생필품 생산 등에 지급하는 보조금이 가감되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북한의 경상 GNP 및 1인당 GNP는 경제체제의 구조적 경직성, 근로자의 생산성 저하, 산업구조 불균형 심화, 국제경제 환경의 악화 등 대내외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1990년대에는 계속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1인당 국민총생산액(GNP)은 1998년 말 현재 573달러로 추정되며, 1990년의 1,064달러에 비해 53% 이상 감소하였다.

5. 재정금융

북한 재정의 기능 및 포괄범위는 자본주의 국가의 재정보다 넓고 크다. 이는 북한 경제가 사회주의적(집단적) 소유에 기초함으로써 거의 모든 경제활동이 재정에 반영된다는 데 연유한다. 북한의 예산은 정무원이 편성, 제출한 예산 초안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가 심의한 후 법령 형식으로 채택함으로써 성립된다. 최고인민회의는 예산집행에 대한 연간 결산(북한은 이를 예산총화라고 함)의 승인권도 가지고 있다. 한편 정무원은 국가예산의 편성과 집행 및 감독 업무를 담당한다.

부문별 집행기관의 하나인 재정부를 통하여 국가예산 초안을 편성한 다음 최고인민회의에 제출하며, 최고인민회의에서 예산이 승인되면 분기별 집행계획과 집행대책을 세우며, 지방행정위원회의 예산집행을 지도한다. 북한의 예산집행에 관한 회계년도(북한은 예산년도라고 함)는 매년 1월 1일에 시작하여 12월 31일에 종료되며 회계년도 독립의 원칙이 적용된다.

북한의 예산편성구조를 보면, 기본적으로 예산수입 부분과 예산지출 부분으로 이루어지며, 예산수입·지출 항목은 각각 행정기관 조직별, 예산의 성질별로 분류되고 다시 관·항·목으로 세분된다. 이들 예산 항목별 내용은 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며 임의 변경하여 집행할 수 없다.

북한의 예산체계는 중앙예산과 지방예산으로 구성되며, 중앙예산과 지방예산이 합쳐진 전체예산을 국가예산이라고 부른다. 중앙예산과 지방예산이 국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체로 85:15이다. 북한의 지방예산제는 1972년까지 일부 지역에서 부분적으로 시행되다가 1973년 이후부터 북한 전역에 확대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예산수입의 원천으로는 거래수입금, 국가기업이익금, 협동단체이익금, 봉사료수입금 및 기타 수입 등이 있다. 거래수입금은 원칙적으로 소비재를 생산·판매하는 국영기업소나 생산협동조합이 제품의 도매가격의 일정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추가하여 소비자에 판매함으로써 얻어지는 부가수입으로서, 국가에 납입하여야 하는 금액을 말한다. 거래수입금은 성질상 소비재 거래단계에서 부과되는 간접세의 일종이며 국가예산수입의 가장 큰 원천이 되고 있다.

국가기업이익금이란 모든 국영기업소가 그 기업경영 활동에서 얻어지는 기업소 순소득 중에서 국가의 결정에 따라 기업소에 남겨놓고 쓰기로 된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으로서, 국가에 납부하여야 하는 금액을 말한다. 따라서 국가기업이익금은 기업이윤에 부과되는 일종의 법인소득세라고 볼 수 있다.

협동단체이익금은 생산협동조합·편의협동조합·수산협동조합 등이 국가로부터 각종 생산수단을 공급받거나 국가의 지도하에 경영활동을 한 대가로 국가에 납입하는 사용료 또는 수수료적 성격의 납부금으로서 생산협동조합과 편의협동조합에 대해서는 분기별 결산이윤에, 수산협동조합에 대해서는 판매수입에 일정한 비율로 부과된다. 협동단체이익금은 지방예산 수입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봉사료수입금은 편의봉사부문 독립채산제 기업소들의 봉사료 수입에서 자체 경비와 이윤을 공제하고 남는, 국가예산에 납부하여야 하는 수입금으로서 업종별 봉사요금에 대한 일정 비율로 부과된다. 이에는 편의봉사료수입금·사회급양봉사료수입금·수송운임봉사료수입금·체신업무봉사료수입금, 극장·영화관 관람료수입금 등이 있다.

국가예산의 기타 수입으로는 기업소의 고정자산에 대한 감가상각비, 국가재산 판매수입, 가격편차 수입 등이 있다. 북한의 국가예산 수입에서 특이한 것은 조세라는 명목의 세입원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금이 거래수입금, 국가기업이익금 등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이다.

북한의 국가예산지출은 인민경제에 대한 지출(인민경제비), 사회문화시책에 대한 지출(사회문화시책비), 국방에 대한 지출(군사비), 국가관리에 대한 지출(관리비) 등으로 구분된다. 인민경제비는 생산 확대를 위하여 각종 시설물을 건설하는 데 들어가는 기본건설자금, 원자재나 중간재를 생산·유통하는 데 소요되는 유동자금, 기타 식량이나 생필품에 대한 가격 보조금, 독립채산제 공업·기업소 지원자금, 농촌에 대한 지원자금, 과학기술발전사업비, 도시경영사업비, 지방사업비, 대외경제사업비 등이 포함되는 가장 중요한 지출항목이다.

사회문화시책비는 교육·문화·보건·체육·사회보장 및 사회보험에 소요되는 자금이 포함되며, 군사비는 군수공업 발전과 군사시설 구축을 위한 기본 투자, 장비현대화, 병력유지 및 전인민무장화 등에 소요되는 자금을 포함한다. 관리비는 국가관리기구를 유지하기 위한 경상적인 지출이다. 북한은 매년 4월경에 개최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소위 재정보고의 형식을 빌어 정무원 재정부장이 전년도 국가예산의 결산내용과 당해년도 국가예산을 최초로 공개한다.

그러나 공개하는 내용은 국가수입예산이나 지출예산의 총규모 및 성질별 내역의 총괄적인 사항뿐이다. 특히 북한이 발표한 예산지출의 성질별 내역은 군사비를 인민경제비, 사회문화시책비 등 여타 항목에 은폐시키고 있기 때문에 신뢰성이 없다. 최근 북한은 군사비를 전체예산의 11∼12% 수준으로 낮추어 발표하고 있으나 실질 군사비는 30% 수준을 웃돌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 사후인 1995년 이래 예산과 결산을 발표하지 않다가 1999년부터 발표하고 있다.

북한의 재정규모는 미 달러화 표시로 1993년 현재 187억 2000만 달러(세출기준)에 이른다. 그리고 북한의 재정규모가 GNP에서 차지하는 비율(재정부담률)은 80% 내외로서 사회주의 경제체제 특성상 한국의 재정부담률(14∼15%)보다 월등히 높다. 1999년 예산은 1994년도의 예산수입총액 416억 20만 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일 뿐 아니라,

1994∼1998년의 4년 동안에는 연 평균 6.6%나 감소하였는데, 이는 식량이나 생필품 등의 배급체계가 붕괴되어 실물 경제에서 국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였음을 반증해준다. 또한 1998년도 재정수지는 2억 2441만 원(1억 2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함으로써 1994년 이후 적자재정 상태가 지속되어왔음을 시사하였다.

북한은 금융의 기능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즉 사회주의 금융은 생산과 유통을 자금적으로 보장하여 경제건설을 도와주는 자원 배분적 기능, 올바른 독립채산제 시행을 위한 감독 등 재정 통제적 기능, 외화거래의 합리적 조직기능 등이 그것이다. 더욱이 북한에는 자본주의 국가에서와 같은 단기자본시장, 증권시장, 기타 유사금융시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책당국이 특정목적을 위하여 재정정책을 시행하고자 하는 경우, 자본주의 국가에서보다 훨씬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강점을 가진다.

따라서 북한에서는 금융의 주임무를 맡는 은행들이 화폐자금의 수입과 공급과정에서 기관·기업소를 강력히 통제하고 있는 바, 금융은 오히려 재정의 한 부분으로서 재정통제적 기능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북한의 은행체계는 조선중앙은행과 몇 개의 특수은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1946년 1월에 설립된 조선중앙은행은 발권은행으로서 타 은행을 지도·감독·통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기관·기업소들에게 기본건설자금, 유동자금 등 일체의 자금수요를 보장하고 국가수입금을 수납하며 고정자산의 형성, 보수 이용사업 등에 대한 감독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중앙은행은 중앙의 본점, 각 행정구역 단위별로 설치되어 있는 총지점(도), 지점(군) 등을 통하여 일반주민들을 상대로 저금·보험사업·귀금속 관리 등의 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특수은행으로는 무역은행, 대성은행, 금강은행, 조선합영은행, 조선낙원금융합영회사, 조선통일발전은행 등이 있다. 무역은행은 대외무역에 따르는 결제업무, 외국환업무, 무역기관들을 위한 지불보증, 환율의 결정·공표, 그리고 ‘외화와 바꾼 돈표’발행 업무 등을 수행한다.

금강은행과 대성은행은 1970년대 후반에 대외무역 증대 방안의 하나로 설립된 무역결제업무 전담 은행이며, 조선합영은행·조선낙원금융합영회사는 합영기업의 유치를 위한 정보 및 자금의 제공과 이들 기업의 수출업무를 도와주기 위하여 설립된 은행이다.

북한에서의 저축은 자본주의 국가에서와는 달리 재산 증식을 위한 자발적 저축이라기보다는 주로 재정계획상의 자금동원목표 달성을 위한 강제저축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저축의 종류로는 보통저금(연리 3%), 준비저금(3.6%), 정액저금(4%) 및 당첨금을 지급하는 추첨제저금 등 4종류가 있다. 일반주민들은 저금 또는 저금인출시 조선중앙은행의 총지점이나 지점 이외의 우편, 전화업무를 취급하는 체신소를 이용한다.

북한에서는 가격을 중앙당국에서 자의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실제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유재산제도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화폐의 가치척도 기능이나 축재기능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북한은 8·15광복 이후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화폐개혁 또는 화폐교환을 실시하였다. 특히 1992년 7월에 실시된 화폐교환은 사장통화환수를 통해 부족한 재정자금을 조달하려는 목적으로 취해진 조치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현재 이용되고 있는 화폐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지폐 5종과 주화 5종 등 10종이 있고, 방북(訪北) 외국인이 외화를 북한에서 사용하려는 경우 외화와 교환 가능한 무역은행 발행의 특수화폐 9종이 있다.

북한의 환율은 공정환율(북한은 이를 공식환산비율이라고도 함), 무역환율, 비무역환율 등 세 가지로 구분된다. 공정환율은 북한 당국이 국민소득 등 총량지표를 외국화폐로 발표하거나 수출입상품의 대내가격으로의 환산시 적용하며, 이 환율은 북한의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무역환율은 표본으로 선정한 몇 가지 상품에 대해 거래국의 도매가격을 기준으로 외국상품가격에 대한 국내상품가격의 비율로서 결정한다. 이 환율은 외국과의 무역거래에 적용하며 북한 무역은행은 수시로 이를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무역환율은 무역환율과는 달리 거래국의 소매가격을 기준으로 상호 대비하여 결정하며 여행자에 대한 환전이나 외국과의 비상품교역 또는 자본거래시 적용한다. 북한은 외화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통일적인 외화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북한에 유입되는 모든 외화는 무역은행에 집중시키고 ‘국가의 수령’만 외화를 쓰도록 규제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북한 주민이나 기관·기업소들의 외화 유통은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6. 산업부문별 실태

북한은 사회주의 농업이 직면한 본질적인 문제를 농업의 낙후성과 도시·농촌 간의 격차로 규정하고,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농업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는 농촌에서의 기술·문화·사상 혁명 수행, 농업에 대한 공업의 지원과 농촌에 대한 도시의 지원 강화, 협동적 소유형태의 전인민적 소유화(국유화) 추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북한의 농업은 경제체제의 한계, 자연적으로 불리한 영농조건 등으로 생산의 체감 현상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북한의 재배면적은 1993년 현재 158만 6000정보, 이중 논은 총 재배면적의 36.8%인 58만 3000정보이다. 농가인구는 850만여 명으로 전체인구의 약 37.1%를 차지한다. 1997년 현재 재배면적은 199만 2000ha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중 논은 58만 5000ha, 밭은 140만 7000ha이다. 북한의 축산업은 국영과 협동농장 축산을 위주로 개인부업 축산을 배합하는 체계로 되어 있다. 그러나 낙농기술이 뒤떨어져 있고 사료 확보가 어려워 초지면적의 확대와 자연생 사료의 취득에 역점을 두면서 소·돼지 등 큰 가축보다는 토끼·오리·닭·산양 등의 사육에 더 치중하고 있다.

북한의 과수정책은 1961년 4월 김일성이 지시한 30만 정보의 과수원 조성과 수종의 다양화 방침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과일의 종류는 주로 사과, 배, 복숭아, 살구, 자두, 버찌, 포도, 감, 대추 등이다. 북한의 임야 면적은 총 920만 정보로 북한지역 전체면적의 약 74%에 달한다.

특히 주요 원목생산지인 압록강과 두만강 상류지역과 백두산 지역에는 침엽수 및 활엽수가 고루 분포되어 있다. 북한에는 60여 개의 임산사업소 및 갱목생산사업소가 조직되어 있어 통나무, 갱목 등을 생산하고 있다. 조림은 연2회(춘계 3∼4월, 추계 9∼10월) 정기적인 식수조림기간을 설정하고 기업소·기관·협동농장 등 각급 경제단위와 사노청조직, 학교단위별로 조림구역을 할당, 실시하고 있다. 주요 수종은 낙엽송, 포플러, 은행나무, 분홍꽃, 아카시아나무 등이다.

그러나 북한은 20만 정보 새 땅 찾기 운동, 전국토 다락밭 만들기 운동, 각종 건설자재용 목재, 심지어 땔감 획득을 위한 남벌 등의 영향으로 산림이 매우 황폐한 실정이다. 연간 목재생산량은 약 300만㎥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부족한 임산자원 확보를 위해 러시아연방 시베리아 지역에 원목 벌채를 위한 노동자를 파견하고, 그 대가로 원목을 들여오고 있다.

북한의 자연적인 수산환경은 양호하다. 특히 동해안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 세계적인 어장으로 꼽힐 만큼 어족이 풍부하다. 현재까지 밝혀진 유용 수산자원은 300여 종이며, 이중 120여 종이 생산되고 있다. 주요 수산자원은 어류로서 명태, 조기, 멸치, 꽁치, 이면수, 갈치, 민어, 청어, 오징어, 가자미, 대구 등 연근해 어족과 잉어, 붕어, 초어, 숭어, 은어, 빙어, 열목어, 산천어, 누치, 전장어 등 민물고기가 있다. 기타 수산자원으로는 김, 다시마, 미역 등 해조류와 조개, 소라 등 패류, 게 등 갑각류가 있다.

북한의 수산체계는 국영수산사업소와 수산협동조합을 기본생산단위로 하며 어선세력은 원양어업을 위한 3,750t급 선미트롤선과 연근해어업을 위한 450t급 어선을 비롯하여 총 2만여 척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의 어로사업은 여름철 물고기잡이(3∼9월)와 겨울철 물고기잡이(11∼2월)로 나누어 실시되는데 주 어로작업은 명태의 회유기인 겨울철에 실시된다. 동해어장에는 계절에 따라 일시 다획성 어족이 많아 트롤·저인망 위주의 어업을 하고 있으나, 서해어장은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심해 소규모 안강망어업에 의존한다. 최근 명태, 오징어, 정어리 등 주요 어족자원의 감소로 수산부문의 생산여건은 점차 악화되고 있으며, 특히 어선 부족, 어로장비 및 기술의 낙후, 선박용 유류 부족 등으로 수산물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양식업 및 수산물가공업 발전의 일환으로 이 분야에 대한 합영기업 유치 또는 해외진출에도 주력하고 있는데 평양양어합영회사(1989.1), 동성수산물생산판매회사(1985.5), 연간 4,000여 t의 수산물 가공회사인 대덕산합영회사(1990.10) 등의 합영회사들이 북한 내에 설립(조총련과의 합영)되었고, 성게합영공장·해조류가공합영공장·섭조개양식합작회사 등이 러시아연방 지역 내에 설립 운영되고 있다.

북한의 부존자원 현황을 개관하면, 북한지역에는 지금까지 총 360여 종의 광물부존이 확인되고 있으며, 그중에서 경제성이 있는 유용광물만도 200여 종에 이른다. 특히 마그네사이트는 전세계에서 매장량 1위를 차지하고, 10위 이내에 드는 광물도 중석, 몰리브덴, 흑연, 중정석, 형석 등 7종이나 된다.

이처럼 북한지역에는 금속광물과 에너지광물이 풍부하게 부존되어 있어 공업원료 및 연료의 70%를 국내에서 자급하고 있다. 그러나 석유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석탄도 무연탄과 갈탄의 매장량은 풍부하나 제철·제강공업에 반드시 필요한 역청탄(코크스의 원료)은 거의 매장되어 있지 않다.

현재 북한의 광업에서 비중이 큰 부문은 석탄, 철광석, 납·아연 등 비철금속광물, 석회석, 마그네사이트 생산부문이다. 철광석은 무산광산을 비롯하여 은율, 재령, 하성, 천동, 이원, 덕성, 용원, 풍산 등 20여 개 광산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 중에서 무산광산은 매장량이 약 10억t, 연간 생산능력이 800여 만t에 이르는 북한의 최대 철광산이자 세계적인 노천광산이다.

철광석 생산량은 철광산의 계속적인 확장 및 개발로 1970년대 이후 연평균 2~3%씩 증대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탐사실적 부진, 광산설비 노후화 등으로 정체상태를 맞고 있다. 1989년 당시 900만t에 이르던 철광석 생산량이 1998년 현재에는 1/3 수준인 289만t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무연탄은 평안남도의 증산·덕천·강동·개천군 등과 평안북도 구장, 함경남도 고원, 강원도 천내, 자강도 전천, 평양 등지에 대량 매장되어 있고, 갈탄은 함경북도 은덕군·아오지 일대를 비롯한 새별·회령, 종성, 평안남도 안주, 함경남도 영흥지역에 상당량이 매장되어 있다. 북한은 석탄생산을 위해 평남의 안주지구 탄광연합기업소를 비롯하여, 개천지구, 덕천지구, 강원지구, 온성지구, 새별지구, 명천지구 등 지구별로 연합기업소를 조직하고 있다. 연합기업소 산하에는 여러 개의 탄광들이 조직되어 있다.

북한의 석탄 총매장량은 147억t에 달하며 그 중 채굴이 가능한 가채량은 약 79억t으로 알려져 있다. 1993년도 석탄의 실제 생산량은 2710만t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에도 신규 탄광의 개발 부진, 채굴의 심부화, 장비의 노후화 등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1998년에는 1,860만t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같은 석탄생산의 부진은 최근 외화부족으로 인한 원유도입량 감소와 함께 에너지 부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사정으로 북한은 저열탄과 초무연탄을 취사와 난방용 및 소규모 지방산업공장의 에너지원으로 개발·사용할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비철금속광산으로서 납·아연은 검덕광산, 계생광산, 성천광산, 화풍광산 등이 있으며 검덕광산은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광산이다. 이 광산은 1983년에 이미 연간 1000만t의 광석을 처리할 수 있는 대규모 선광장(제3선광장)이 건설되어 가동 중이다. 그외에도 중석은 만연광산, 경수광산, 전창광산에서, 금·은·동은 운산광산, 대유동광산, 홀동광산, 상농광산, 성흥광산 등에서 생산되고 있다.

주요 제철·제강공장으로 김책제철연합기업소(함경북도 청진), 황해제철연합기업소(황해남도 송림), 청진제강소(함경북도 청진), 4·13제철소(서부지역에 위치), 성진제강연합기업소(함경북도 김책), 8호제강소,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대동강제철소 등이 있다.

이중에서 북한이 자체 건설한 것은 4·13제철소, 8호제강소, 대동강제철소뿐이며, 나머지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시설들을 개건·확장한 것들이다. 김책제철연합기업소는 북한 최대의 제철소로서 1989년 9월 소련 지원하에 제2단계 확장공사를 완료함으로써, 1998년 현재 선철 541만t, 강철 598만t, 압연강재 404만t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의 철강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각 공장의 시설규모가 영세하고 대부분의 공장이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소규모시설을 기본으로 하여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부분적인 시설의 개건·확장을 통해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에 일관공정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유색금속(비철금속)공업 부문의 발전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주요 비철금속공장은 남포제련소, 문평제련소, 흥남제련소, 해주제련소, 북창알루미늄공장, 단천제련소, 평양유색금속공장, 청화제련소 등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납·아연·구리를 비롯하여 금·은·니켈·몰리브덴 등을 생산해 오고 있으며 1983년 북창알루미늄공장 건설을 계기로 알루미늄과 텅스텐, 니오비움, 세리움 등 희소금속 생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소련 및 서방 국가로부터 설비를 들여와 건설된 북창알루미늄공장은 연간 생산능력이 2만t 규모인데, 원료인 알루미나는 순천에 있는 부산리알루미나공장(연간 4만t 규모)에서 공급받고 있다. 1990년 2월에는 스테인리스스틸, 내열강 등 합금특수강 생산의 주요 원료인 니켈광산이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새로 조업되었다.

1991년 4월에는 북한에서 채굴되는 희유원소 광물의 정련 및 해외수출을 목적으로 북한 용악산무역총회사와 조총련 국제트레이딩상사 간에 설립된 함흥화학합영회사가 조업(이트륨 등 연간 1,000t 생산)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북한의 비철금속공업은 제철·제강공업부문과 마찬가지로 제련기술 및 생산설비가 국제 수준에 크게 뒤떨어져 있어 이들 시설의 근대화가 당면한 과제이다.

북한은 기계공업의 발전이 선행되지 않으면 중공업과 경공업·농업·운수·기본건설 등과 국방력을 강화하는 과업도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북한은 일찍부터 기계공업을 가장 핵심산업으로 육성해 왔으며, 그 수준도 다른 산업부문에 비해 가장 앞서 있다.

주요 공장으로는 각종 공장건설에 필요한 대형설비를 제작하는 북중기계연합기업소, 낙원기계연합기업소를 비롯하여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 승리자동차종합공장, 금성트랙터종합공장,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 남포조선소, 함경북도조선연합기업소 등이 있으며, 자동화기계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10월5일 자동화종합공장이 있다.

이와 함께 제3차 7개년계획 기간에는 로봇·집적회로 등 전자·자동화에 필요한 부품생산부문에도 정책적 관심을 기울였으나 아직 초보단계에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북한의 기계공업은 질적으로는 국제수준에 미달되나 공정설비의 대부분을 자체생산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자동차, 조선, 통신기계공업은 크게 낙후되어 있다. 화학공업은 석탄화학계열공업으로 발전해온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화학공업의 제품은 다양화되어 있지 못하며 품질도 크게 낙후되어 있고 공해문제까지 유발하고 있다.

북한의 주요 화학비료공장은 흥남비료연합기업소,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 청수화학공장 등이다. 1993년의 화학비료 생산능력은 질소비료·인비료를 합하여 351만 4000t이나 실제 생산량은 에너지 및 원자재 부족으로 161만t에 불과하며 1998년에는 70만t으로 줄어들었다. 북한의 화학비료 생산체계는 단비 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비료공급상의 불균형이 심하며, 특히 칼리비료의 생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북한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3차 7개년계획 기간 중 연산 51만t 규모의 사리원칼리비료공장, 연산 5만t 규모의 단천미량원소혼합비료공장,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현재 건설 중단) 내에 연산 90만t 규모의 질소비료생산공장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1991년 12월에는 기존 흥남비료연합기업소의 생산설비 대형화·현대화 공사가 완료되었다.

다음으로 화학섬유는 함흥의 2·8비날론연합기업소, 신의주화학섬유연합기업소, 청진화학섬유연합기업소와 1981년 건설된 함흥모빌론공장 등에서 연간 약 17만 7000t의 화학섬유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생산량은 1993년 현재 5만 3000t에 불과하다.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는 제3차 7개년계획의 화학공업부문 중점사업으로 북한이 건설하였는데 지난 89년 10월 제1단계 공사가 완공된 이후 제2단계 공사는 투자 재원 부족으로 중단된 상태에 있다.

석유화학공업은, 정유공장은 중국의 지원으로 건설된 봉화화학공장(피현군)과 구소련의 지원으로 건설된 승리화학공장(나진선봉시)이 있는데, 각각 150만t, 200만t의 정유능력을 보유하며, 가솔, 나프타, 등유, 경유, 제트연료, 중유, 윤활유 등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원유도입량은 1988년 이후 매년 감소추세에 있으며, 1993년 원유도입량은 136만t, 1998년 50만t에 불과하다.

석유화학공장으로는 서유럽에서 설비를 도입하여 건설한 청년화학연합기업소(평안남도 안주)가 있는데, 이 공장은 승리화학과 봉화화학으로부터 나프타를 공급받아 요소비료, 폴리에틸렌, 에틸렌글리콜, 아닐론섬유(폴리에스테르섬유), 펄프, 종이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밖에 석탄액화에 의한 인조석유공장인 아오지화학공장에서는 연간 유연탄 100만t을 처리하여 약 10만t의 인조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북한 전역에는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이 풍부히 매장되어 있어서 시멘트공장이 북한 전역에 두루 분포되어 있다.

주요 시멘트공장으로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승호리, 2·8, 해주, 천내리, 8·2, 부래산, 고무산 시멘트공장과 1970년대 후반에 완공된 순천시멘트공장, 1989년 4월에 완공된 상원시멘트공장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에서 순천시멘트공장의 생산품은 다른 공장제품과 구별해서 ‘금강’이라는 상표로 동남아시아와 중동지방에 수출되고 있다.

유리공장으로는 북한에서 가장 큰 유리 생산공장으로 알려진 남포유리연합회사(구 남포판유리공장)가 있다. 이 회사는 판유리뿐만 아니라, 광학유리, 방탄유리, 현미경, 쌍안경까지 생산이 가능하다고 하나, 기술수준은 전반적으로 크게 낙후된 수준이다. 특히 최근에는 원자재 조달이 어려워 판유리의 대내 수요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내화물공장으로는 단천마그네샤크링카공장(연산 200만t 규모)이 대표적이다. 벽돌 및 기와공장은 각 지역에 걸쳐 평양벽돌, 순천벽돌, 강남벽돌공장 등 25여 개 공장이 있다. 최근 북한은 표면이 고르고 단단해 별도의 외장공사가 필요없고, 여러 가지 형태로 생산이 가능한 실리카트벽돌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경공업은 북한의 공업부문 중 가장 뒤떨어진 산업분야이다. 경공업의 낙후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경공업 낙후는 특히 심각하여 주민들에 대한 생필품 공급난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1980년부터 경공업 발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84년부터 김정일 주도로 전개되고 있는 이른바 ‘8·3인민소비품증산운동’, 1989년의 ‘경공업의 해’ 설정과 ‘경공업발전 3개년계획’ 제시, ‘전국경공업대회’ 개최(1990.6), 외국과의 합영·합작을 통한 경공업 제품의 공급증대 모색 등이 그 예이다.

북한에서의 경공업제품 생산체계는 대규모의 중앙공업, 중·소 규모의 지방공업, 그리고 제품생산과정에 발생하는 각종 부자재, 폐자재를 활용하여 소위 ‘8·3인민소비품’을 만들어내는 공장, 기업소의 생필품직장, 작업반 등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중앙경공업공장은 주로 수출품을 생산하고, 내수용 생필품은 규모가 영세한 지방경공업공장들의 생산품과 8·3인민소비품에 의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의 경제개방, 경공업제일주의 방침표명 등과 관련하여 대외무역이 강화되면서 경공업 부문에서 직물·의류·봉제 등을 중심으로 임가공교역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주요 공장으로는 화학섬유공장으로 2·8비날론공장을 비롯하여 스프사 계열의 청진화학섬유공장, 신의주화학섬유공장, 그리고 연산 5만t 규모의 순천비날론공장 등이 있고, 방직공장으로는 평양종합방직공장을 비롯하여 강계방직공장, 사리원방직공장, 개성방직공장, 구성방직공장 등이 있다.

전력부문에서는 수자원이 풍부한 데다 지형상 산악지대가 많아 수력발전에 매우 유리한 자연적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수풍, 장진강, 부전강, 허천강, 회령, 금강산 발전소 등을 기초로 하여 1960년대까지는 수력의존적인 발전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구조는 강수량 차이에 따라 발전량의 변동이 심하고 송배전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어 1970년대부터 화력발전소 건설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최근에는 대도시의 전력수요를 충족하고, 발전소에서 방출되는 폐열이나 여열을 도시지역 주택의 난방용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대도시 주변에 화력발전소를 집중 건설하고 있다.

북한의 주요 수력발전시설은 시설용량 70만kW의 수풍, 어랑천, 흥주발전소 등이나 추진성과는 전반적으로 부진한 실정이다. 북한의 화력발전소는 발전설비용량 160만kW의 북창화력을 비롯하여 평양화력, 웅기화력, 청천강화력, 청진화력, 순천화력 등이 있으며, 1993년 현재 건설 중인 화력발전소는 12월화력, 동평양화력, 해주화력, 사리원화력 등이다.

한편, 북한은 1985년 12월 구소련과 체결한 ‘원자력 건설에 관한 협정’에 의거, 소련 지원하에 원자력발전소(44만kW급×4기)를 1990년 초부터 건설에 착수할 예정이었으나 지금까지 복합적인 이유로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1998년 말 북한의 발전설비용량은 총 738만 8000kW로서 이 중 수력이 443만 7000kW, 화력이 295만kW로 추정된다.

북한의 전력공업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보면, 먼저 수력발전소의 경우 산림황폐화에 따른 수자원의 감소와 기존 수력발전소의 설비노후화 등으로 인하여 가동률이 낮고 계절에 따라 전력생산의 변동이 심하다는 것이며, 화력발전소의 경우도 주된 연료인 석탄 생산과 수송이 한계에 도달하여 발전소의 가동률이 저조하다는 점이다. 더욱이 송배전체계의 불합리로 누전율이 높고 전압이 고르지 못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낙후되어 있는 실정이다.

북한지역은 대부분 험준한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철도 및 도로망이 비교적 지대가 낮은 서해안지대에 발달되어 있으며, 동해안지대에는 해안선을 따라 철도와 도로망이 집중되어 있다. 북한 수송체계의 특징은 철도수송이 주축을 이루고 도로수송, 하천 및 해상수송은 철도수송과의 연계를 위한 보조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물수송의 경우 철도수송이 전체 물동량의 86% 수준을 담당하며, 여객수송의 경우도 철도수송이 전체 교통인구의 60% 수준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의 철도망은 평양~신의주, 평양~혜산, 평양~남포, 평양~해주, 평양~만포, 평양~사리원~평산, 평양~지하리~원산, 평양~원산, 평양~나진선봉~무산, 평양~만포~혜산을 주요간선으로 하여 구성되며 대부분이 단선철도이다.

북한은 철도수송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제1차 7개년계획 이후 기존철도의 전기화, 광궤화와 함께 새로운 철도를 부설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북한지역 내에서 수송수단이 가장 취약한 북부지구의 자강도 만포에서 양강도 혜산을 연결하는 북부순환선(북부철길)을 완공(1988.8)하여 운행 중이다.

또 제3차 7개년계획에서는 철도의 수송능력을 높이기 위해 8축 전기기관차와 100t 화차 생산을 통한 철도의 중량화와 주요 간선철도망의 복선화를 적극 추진하기도 하였다. 1999년 말 현재 북한의 철도총연장은 5,214km(그중 98%가 단선철도)이며 전철화구간은 4,030km, 지하철총연장은 34km이다.

도로망은 지형적인 특성으로 경사가 심하고 노폭이 협소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 비포장으로서 도로수송의 제약요인이 되고 있다. 도로총연장은 1999년 말 현재 2만 3407km인데, 이중 포장도로는 2,339km로서 약 10% 수준에 불과하다. 고속도로는 1992년 4월에 완공·개통된 평양~개성(170km) 간 고속도로를 비롯하여 평양~남포(53km), 평양~원산(172km), 평양~순안(15km) 및 원산~금강산(114km) 등 1999년 말 현재 총연장 682km에 달한다.

항만은 입지조건이 유리한 동해안이 서해안보다 발달되어 있으나, 1986년 2만t급 선박의 통과가 가능한 서해갑문(남포갑문)이 완공됨으로써 서해안의 해상수송능력은 물론 대동강·재령강을 이용한 하천수송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항만하역능력은 1998년 말 현재 연간 약 3,501만t으로 추정되고 있다.

항공수송능력을 보면 유일의 항공사인 고려항공이 21대의 민항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제선으로 평양~베이징[北京], 평양~모스크바~베를린, 평양~하바로프스크, 평양~모스크바~소피아, 평양~방콕 등 5개 정기노선이 운행되고 있다. 비행장시설은 국제공항으로는 유일하게 순안비행장이 있으며, 국내선 운행을 위하여 순안, 원산, 선덕, 청진, 혜산, 삼지연, 순천, 과일 등 10여 곳에 항공터미널이 설치되어 있다.

최근에는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대한 항로개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1992년 일본과는 직항로 개설에, 타이와는 정기항로 개설에 각각 합의하였으며, 1993년 12월 22일에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50주년 기념행사를 계기로 민간항공분야의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해 ICAO측에 북한의 영공 개방과 함께 베이징~평양~도쿄[東京]의 직선항로를 설정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하였다.

북한의 고려항공은 1999년 말 현재 평양-베이징(주2회), 평양-방콕(주1회), 평양-모스크바-베를린(주1회), 평양-블라디보스톡(주2회) 노선을 운행중에 있으나, 이중에서 평양-북경 및 평양-블라디보스톡 노선을 제외하고는 승객부족 등으로 결항상태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국 항공사의 북한취항 정기노선으로는 러시아 '아에로플로트'의 하바로프스크-평양(주1회) 노선과 중국 '북방항공'의 북경-평양(주1회) 노선이 있었으나, 러시아는 1998년, 중국은 1999년부터 각각 적자운영 등을 이유로 동 노선을 폐쇄한 바 있다. 따라서 현재 외국 항공사의 북한 취항노선은 전무한 실정이다.

북한은 사회간접자본으로서의 통신을 ‘체신’이라 부른다. 체신사업은 전기통신(유·무선 전신 전화), 우편통신(편지·소포·송금), 방송(유·무선 라디오, TV) 등 3대 부문으로 분류되며, 정무원의 체신부를 비롯하여 체신관리국과 체신소·전신전화국·방송국 등에 의하여 업무가 수행된다. 북한의 통신부문은 그 기능이 행정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주민들에게 정책을 전파하는 데 주목적이 있기 때문에 수송부문과 함께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다.

국내통신망은 평양을 중심으로 →시·군 →리의 종적으로 연결된 중앙집중체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평양을 비롯한 주요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동교환 시스템에 의존한다. 국제통신망은 평양~베이징·모스크바를 연결하는 유선망이 형성되어 있고, 평양~싱가포르·홍콩 간의 단파무선과 중국의 베이징지구국을 중계지로 하는 간접통신망이 연결되어 있다.

1986년 3월 평양 근교에 일본·프랑스 기술진의 참여로 위성통신지국이 건설되어 위성통신을 통한 직접통신도 가능하다. 텔렉스시설은 1980년부터 대외무역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일본, 독일로부터 텔레타이프를 도입해 지방의 관공서와 주요 기업소, 무역상사 등 무역관계기관에 설치하는 등 텔렉스망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1990년 8월 정지위성과 궤도위성으로부터 기상자료를 수신할 수 있는 기상수문국 기상위성수신소를 준공함으로써 보다 신속 정확한 중장기 기상예보가 가능해졌다.

7. 무역 및 대외경제협력

북한의 대외무역은 기본적으로 자립적 경제기반을 구축하는 하나의 보조적 수단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중·소로부터의 원조 삭감과 군사·경제 병진정책 추진에 따라 종래의 폐쇄적 또는 소극적 대외무역정책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0년대 들어와서 대내적으로는 6개년계획이 착수되고 대외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가 대부분 차관으로 대체되었으며, 이전에 받은 차관의 상환기간이 도래되어 심각한 외채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0년대 말부터 북한은 수출증대와 외화수입증대를 위한 대외무역정책의 변화를 추진하였는데, 대외무역 전담회사인 대성무역상사와 봉화무역상사를 설립하고 이들의 대외거래를 지원하기 위한 대성은행과 금강은행 등을 설립한 것이 그 예이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도 북한은 자본주의 국가 또는 제3세계 국가와의 교역증대를 위한 여러 가지 방침들을 제시하면서 대외무역정책의 변화를 도모하여왔으며, 이러한 대외무역부문 강화정책은 1990년대 들어 사회주위권의 붕괴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1991년 12월에 실시한 나진·선봉경제무역지대의 특구정책과 지대활성화조치(1997.6), 잇달은 외자유치 관련법령의 제·개정과 대규모 외자유치설명회, 개정헌법(1998.9)에서의 대외무역 및 경제개방 확대 강조 등은 대내외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북한당국의 대외경제정책의 변화 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은 그들의 대외무역정책에 따라 무역업무를 수행하는 다양한 기구를 정무원 내에 두었으며, 이들 중앙기관의 통일적인 감독과 지도하에 실제로 무역업무를 집행하는 각종 산하기관을 중앙이나 지방에 설치 운영하였다. 먼저 정무원 내의 기구로서, 각 생산부문별 계획과의 연계하에 무역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국가계획위원회, 경제분야 외교업무와 함께 외국의 투자유치, 기술도입 등을 담당하는 대외경제위원회 등이 있었으며 특히 대외경제위원회 산하에는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국제무역촉진위원회, 합영공업총국 등이 조직되었다.

실제로 수출입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이행하며 필요한 정보나 금융, 기타 부수적 업무를 지원하는 무역업무 집행기관으로는 통신, 품질검사, 보험, 운송 등을 담당하는 세관검사국의 공장·기업소, 국제금융업무를 전담하는 무역은행, 금강은행, 대성, 수출입검사국, 국제보험회사, 대외운수회사 등이 있으며, 100여 개의 무역상사와 수출 전담은행, 조선낙원금융합영회사, 조선합영은행 등이 있다.

북한은 1998년 9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를 통해 권력구조를 개편한 이후, 대외무역 관련조직을 단계적으로 정비해오고 있다. 이번 조직개편의 특징은 무역성의 권한이 대폭 강화된 점과 무역상 아래 6명의 부상이 지역별 담당체계를 갖췄다는 점이다. 또한 각종 투자설명회 등을 통해 자본주의경제체제를 자주 접할 수 있었던 1940년대 출생의 젊은 인물들이 많이 등용되었다는 점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북한은 종래의 정무원을 내각체제로 바꾸면서 대외경제위원회를 폐지하고 내각에 무역성을 신설하여 무역 및 대외경제협력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또한 각도(직할시)는 1개의 무역회사만 보유할 수 있게 하고, 그 이외에는 모두 무역성의 통일적인 관리를 받게 함으로써 무역성의 지위와 권한을 강화시켰다.

북한의 무역거래 형태는 교역상대국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즉 구소련이나 중국 등 사회주의 제국과의 교역은 전통적으로 쌍방간의 장기무역협정을 통해 매년 수출입 품목·규모 등을 결정하는 한편, 1년간의 교역결과에 대해서는 쌍방의 결제은행 간에 청산결제를 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는 물론, 구소련·중국 등 북한에 우호적인 교역관계를 견지해 왔던 주요 교역상대국마저 경제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이들 나라와의 무역거래 형태 및 결제방법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즉 북한·구소련 간에 1990년 11월 ‘조·소 무역결산체계 변경에 관한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양국간에 1991년부터 국제시장가격에 의한 경화결제 방식을 적용하고 있으며, 북한·중국 간에도 1992년부터 이와 같은 결제방식을 적용하기로 합의하였다.

한편, 서방권 국가와의 무역은 교역절차나 대금결제방식에서 자본주의 국가간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무역방식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자본주의 국가에서와는 달리 북한 원화와 결제통화 간의 환율이 수출거래 성립과정에서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북한의 무역 통계는 북한이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무역상대국이 발표하는 무역통계자료를 기초로 하여 간접적으로 파악한다. 북한의 무역상대국은 1993년 현재 80여 개국이며, 1998년 현재 무역 총규모는 14억 4000만 달러로서 국민총소득(GNI)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수출이 4.4%, 수입이 7.0%로서 무역의존도는 11.4% 수준이다.

연도별 무역추세를 보면, 1950∼1960년대에는 무역규모가 꾸준하고 완만하게 상승하였으나, 1970년대에는 급증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1980년의 수출·수입액은 1970년 수출·수입액에 비해 각각 4.8배, 3.9배 증가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전반기 중에는 대서방권 외채상환문제와 북한의 주종 수출품인 광산물의 가격폭락, 외화부족 등으로 무역이 전반적으로 침체상태를 보인 결과, 1985년의 수출액이 1980년 대비 26.6%나 감소하였고, 수입액은 4.1% 감소하였다.

이 기간 중에 북한의 수출이 특히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은 주로 대서방권 수출의 격감(45.3%)에서 비롯된 것이다. 1986∼1988년의 무역규모는 매년 15% 이상의 높은 신장률을 보였으나, 1988년을 고비로 매년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대외무역 현황과 관련하여 남북한간의 교역규모를 보면, 1988년 7월의 7·7특별선언 및 같은 해 10월의 남북한 물자교역지침 시행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993년 말 현재 남북 교역규모는 1억 9000만 달러로서 중국·일본·러시아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다. 1995년부터 남한은 러시아를 제치고 중국, 일본에 이어 북한의 3대 교역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99년 7월 말까지 남북교역은 총 2만 3809건으로 19억 6032만 달러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 교역은 아직까지 주로 홍콩·중국·일본 등 제3국을 중개지로 하는 간접교역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남북한간 반출입 실적은 이들 중개국과의 수출입통계에 포함되어 있다. 북한의 GNP에서 무역규모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제3차 7개년계획 기간 중(1987∼1993년)에는 연평균 18.2%로서 제2차 7개년계획 기간(1978∼1984년)의 21.4%보다 3.2% 포인트 감소되었다. 이는 1990년대 들어 구소련 및 동유럽 국가의 붕괴를 계기로 종래의 무역패턴이 크게 변화하였으나, 이를 적절히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북한의 대외거래가 크게 위축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북한의 국가별 시장구조는 교역대상국 80여 개국 중 무역상대국별로는 중국, 일본, 홍콩 순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구소련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5위권 내외의 주요한 교역상대국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구소련·동유럽 등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전에는 북한의 국가별 교역구조가 규모면에서 러시아(34% 내외), 중국(18% 내외), 일본(14% 내외)의 순위를 나타냈으나 1991년부터는 러시아와의 교역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러시아를 대신하여 중국이 제1위 교역국으로 부상하였다.

북한의 대중국 교역규모는 1989년까지 5억 달러 내외를 유지하였으나 1993년 9억 달러로 크게 신장되었고, 1998년에는 4억 1000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북한의 주요수출상품 구조를 보면 철강 및 철강제품, 아연괴 등 비철금속제품이 총수출 규모의 31.3%를 점유하였으며, 그 다음이 위탁가공제품인 섬유제품(21.4%), 광물, 수산물이 각각 8.3%, 7.5%로 3·4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수입상품구조를 보면 석유제품·코크스탄 등 에너지자원을 중심으로 한 광물성 생산품이 1위, 임가공을 위한 섬유제품 원료가 2위, 비금속 및 그 제품이 3위, 수송장비 등 기계류 4위, 식량 5위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결국 북한의 무역상품 구조의 특징은 저부가가치의 1차산물이 주종수출상품인 데 반해, 수입상품은 기계류·수송장비 등의 고부가치의 상품이나 에너지원, 식량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음으로써 북한의 구조적인 무역역조에 따른 외환부족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북한의 경제협력은 아직까지 영세자본을 중심으로 한 합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투자여건 미비로 경제협력이 활발하지 못한 실정이다.

합영기업이란 한 나라의 회사·기업소와 다른 나라의 회사·기업소가 공동투자, 공동경영, 이윤의 공동분배, 손실에 대한 공동부담을 전제로 창설하는 기업을 말한다. 북한은 1984년 9월 전문 5장 26개조 ‘합영법’을 제정하여 서방 자본주의국가를 포함한 세계 각국 회사, 기업소가 북한 역내에서 합영기업을 설립, 운영하는 것을 권장해오고 있다.

북한은 합영법 시행을 위한 후속조치로서 1985년 합영법 시행세칙, 외국인 소득세법 및 외국인 소득세법 시행세칙 등을 제정하였으며, 1986년 8월에는 조총련과 합영사업의 주선, 조정, 정보제공 등을 목적으로 각각 60만 달러씩 출자하여 조선국제합영총회사를 설립하였다.

북한이 1984년 합영법 발표 이후 1992년 7월까지 계약체결된 140건 가운데 116건의 1억 5000만 달러는 조총련동포가 투자한 사업이고, 조업중인 66건 가운데 85%인 56건이 일본(조총련) 기업들이었다. 그나마 실제로 조업중인 기업 가운데 모란봉합영회사, 평양피아노합영회사, 국제화학합영회사 등 일부 대표적인 합영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운영이 부진한 상태이며 출자규모가 대부분 100만 달러 내외의 소규모 형태인 것이 특징이다.

북한의 합영기업 유치 또는 해외진출정책은 조총련 및 구소련과의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며, 외화부족 문제 해결에 다소나마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나 그나마도 1989년을 고비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구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후 대외경제협력 기반이 와해되고 경제난이 가중됨에 따라 서방과의 경제협력이 절실한 북한은 서방자본 유치를 위해 1991년 12월 나진-선봉지역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설정하였으며, 이 지대를 동북아의 국제적 화물중계기지, 관광·금융·서비스기지, 수출가공기지의 기능을 종합적으로 갖춘 국제교류거점도시로 발전시킨다는 목표하에 2010년까지의 2단계 개발계획을 수립하였다.

또한 서방자본과 기술유치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1992년 10월~1993년 말까지 외국인 투자법·합작법·외국인 기업법 등을 비롯하여 총 13건의 외국인 투자관련법들을 제정 또는 개정하였다. 1995년부터는 김일성 유훈사업의 일환으로 별도의 대내외 투자설명회와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1998년 말 현재까지 제정·정비된 외국인투자관련 법규는 총 57개에 달하고 있다. 특히 1997년 6월에는 통화와 환율체계 변경, 자영업 허용과 자유시장 개설 등 나진·선봉지대 활성화 조치를 발표하였으며, 이에 힘입어 1999년 3월 현재까지 총 111건에 7억 5077만 달러의 계약 체결과 1억 4000만 달러의 투자실적을 보였다.

대외원조에서는 8·15광복 이후 무상원조 12억 8000만 달러, 유상원조 34억 7000만 달러 등 총 47억 5000만 달러의 외국자본이 북한에 들어와 전후 복구사업, 군사력증강, 경제개발 등에 투자되었다. 이 중 20억 4000만 달러(전체의 약 43%)는 1960년대 이전에 구소련·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도입된 유·무상 차관이었으며, 12억 4000만 달러는 70년대 들어와서 서방 선진국으로부터 도입된 유상차관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외채상환 불능상태가 발생한 이후 최근까지 서방권 국가로부터의 차관도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며, 주로 구소련·중국 등에서 약간의 차관이 제공되었을 뿐이다. 북한은 유엔개발계획(UNDP) 또는 유엔공업기구(UNIDO)와도 지속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경제 협조관계와 대외무역 적자에서 비롯된 외채는 1993년 103억 2000만 달러, 1998년 121억 달러에 달했다. 이로 인해 외채상환능력 측정지표 중의 하나인 GNP 대비 총외채 비율은 1990년 34%에서 1998년에는 96% 수준으로 크게 높아져 국제신용도는 회복불능 상태에 달하고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윗글 [근대] 의병 (브리)
아래글 [근대] 윌슨 (두산)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838 사전3 [현대] 제17회 월드컵축구대회 (두산) 이창호 2004-01-11 1775
2837 사전3 [근대] 1920년대의 한국사회와 독립운동 (민족) 이창호 2003-06-06 1756
2836 사전3 [조선] 사상의학 (민족) 이창호 2002-12-31 1754
2835 사전3 [근대] 근대 사학 (민족) 이창호 2003-10-23 1753
2834 사전3 [현대] 프로축구 (두산) 이창호 2004-01-10 1752
2833 사전3 [종교] 기독교=개신교 (민족) 이창호 2003-05-23 1749
2832 사전3 [현대] 서울올림픽대회-성과 및 의의 (민족) 이창호 2004-01-11 1742
2831 사전3 [현대] 대한체육회 (브리) 이창호 2004-01-10 1727
2830 사전3 [현대] 박경리 (브리) 이창호 2004-01-09 1723
2829 사전3 [현대] 조연현론 (김윤식) 이창호 2004-01-02 1720
1,,,11121314151617181920,,,303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