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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2-29 (월) 21:16
분 류 사전3
ㆍ조회: 1056      
[교육] 대학 (민족)
대학(大學(고등교육기관))

중등교육기관 다음으로 연계되는 고등 교육기관의 중핵(中核). 초등학교 교육을 초등교육,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을 중등교육이라고 하는데 비하여 대학교 교육을 고등교육이라 한다.

우리 나라 〈고등교육법〉 제28조에서 대학교육의 목적을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교수·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고등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학교의 종류에는 대학, 산업대학, 교육대학, 전문대학, 방송·통신대학, 기술대학과 각종 학교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대학만을 다룬다.

대학의 수업연한은 4년이나 의학과, 한의학과, 치의학과와 수의학과는 예과(豫科) 2년을 포함하여 6년이다. 대학에는 일반대학원,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을 설치할 수 있다. 대학의 장은 학생을 선발하기 위하여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적, 대학별 고사의 성적과 자기소개서 등 교과성적 외의 자료 등을 입학전형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대학은 중국 주나라 때의 국학기관이나 기원전 387년경에 플라톤(Platon)이 설립한 아카데미아 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나 교수와 연구의 기능을 담당하는 근대적 의미의 대학은 중세 말경 유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2세기에 설립된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Bologna)과 살레르노(Salerno)대학을 비롯하여 프랑스의 파리(Paris)대학, 영국의 옥스퍼드(Oxford)대학과 케임브리지(Cambridge)대학, 독일의 하이델베르그(Heidelberg)대학 등이 초기 대학의 전형적인 형태로 출발하였다.

이러한 대학은 유럽 각국에서 급속도로 발전하여 1500년경에는 그 수가 80여 개에 이르게 되었으며, 19세기에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다. 오늘날 국가에 따라 그 형태와 기능은 다르지만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학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어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발달]

우리 나라의 대학은 중국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삼국시대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발전해 왔다. 민족항일기의 고난 속에서도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이념 하에 뜻있는 선각자들과 학생들의 의지로 면면히 맥을 이어 오늘날의 눈부신 성장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① 전통시대

우리 나라 최초의 대학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설립된 태학(太學)에서 비롯되었으며, 귀족의 자제를 대상으로 유학의 경전과 무예 등을 가르쳤다. 그 뒤 통일신라의 신문왕 2년(682)에는 국학(國學)을 설립하였고, 고려 성종 11년(992)에 설립된 국자감(國子監)은 신라의 국학과 함께 유교에 의한 관리양성 기관으로서의 구실을 담당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에는 최고 학부로서 정치적·문화적 지도자의 주된 공급원이었던 성균관(成均館)이 있다.

이들 전통적 대학의 모형은 1500여 년 동안 왕조의 성쇠와 정권의 교체를 넘어 존속·유지되어 왔으며, 그 이념이나 목적, 교육내용과 방법, 그리고 운영방식 등에서 공통적인 배경과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즉 계급주의적 사회조직과 한문 문화권의 테두리 안에서 교육과 학문의 중심이 된 전근대적·전통적 대학은 유교적 인생관과 세계관의 원천이 되었으며,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고등 교육기관으로서의 구실을 담당하였다.

② 개화기∼광복 이전

우리 나라에 근대적인 대학교육이 실시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 문호개방과 함께 근대식 학교제도가 유입됨에 따라 비롯되었다.

최초의 근대식 학교는 1883년(고종 20)에 통역관 양성을 위하여 묄렌도르프(M─ llendorf,P.G.)가 설립한 통변학교(通辯學校)를 비롯하여 관립학교로는 육영공원(育英公院, 1886),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 1895),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 1895), 경성의학교(京城醫學校, 1899), 농상공학교(農商工學校, 1904) 등이 설립되었다.

기독교 계통의 사립학교로는 광혜원(廣惠院, 1885), 이화학당(梨花學堂, 1886), 연희전문학교(1915) 등이 민간 사립학교로는 보성전문학교(1905) 등이 차례로 설립되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점차 분화 발전하여 현재의 대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국권상실 후에는 일제에 의하여 고등교육이 크게 억압되어 대학의 발전에 많은 지장을 받았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과 1920년대 초 민족지도자들에 의한 민립대학 설립운동 등으로 일제는 이른바 문화정치를 표방하며 1923년 〈경성제국대학설치에관한법령〉을 반포, 우리 나라에서 최초의 대학교육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에 대한 입학 제한과 전공 제한 등으로 진정한 의미의 대학교육이 이루어지지는 못하였으며 1943년 당시 전문학교는 20여 개가 있었다.

③ 광복 이후

광복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교육계에도 커다란 전환을 가져왔다. 식민지교육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한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음은 물론, 고등교육에 있어서 일제의 폐쇄적·억압적 정책과는 대조를 이루어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학의 설립과 운영이 이루어졌다.

≪문교통계요람≫에 의하면 광복 당시 남한에는 19개의 고등 교육기관이 있었으며, 교원 1,490명(일본인 포함), 학생 7,819명(일본인 포함)이었다고 한다.

미군정 하에서의 교육심의회는 미국의 교육제도를 도입하여 종래의 고등 교육기관을 4년제 대학으로 개편하고 의과대학은 6년제로 하였으며, 의과대학을 제외한 일반 대학에는 1년 이상의 대학원 과정을 두도록 하였고, 3학기제를 2학기제로 개정하였다.

1946년 8월 15일에 처음으로 연희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가 전문학교에서 4년제 대학으로 승격 발족하였고, 같은 해 8월 22일 국립종합대학교인 서울대학교가 발족하였다.

1948년 정부수립 당시 고등 교육기관은 모두 42개가 있었는데, 이 중 종합대학교가 4개, 단과대학이 23개(국립 3, 공립 4, 사립 16), 초급대학이 4개(사립), 대학 정도의 각종 학교가 11개 등이었으며, 교원수는 1,265명, 학생수는 2만 4천 명이었다.

1949년 12월 31일에 〈교육법〉이 제정·공포됨에 따라 대학의 이념, 교육과정, 운영방식 등에 대한 제도가 마련되어 대학교육의 근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1951년 3월에 개정된 〈교육법〉에 의하면 대학은 단과대학과 종합대학으로 구분하고, 종합대학에는 3개 이상의 단과대학과 대학원을 두도록 하였으며, 단설 단과대학에도 대학원을 두도록 하였다.

또한 대학의 교원은 총장·학장·교수·부교수·조교수·강사·조교 등으로 구분되고 야간수업 또는 계절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학사·석사·박사학위 등에 대한 규정을 법제화하였다.

그러나 6·25전쟁은 대학교육의 발전을 위한 그 동안의 노력에 커다란 타격과 피해를 가져왔다. 그러나 1951년 5월 이산된 교수와 학생들을 모아 전시연합대학(戰時聯合大學)을 운영하였는데, 이는 독창적인 적응 방식으로서 특기할 만한 것이었다.

전시연합대학들은 부산·대구·대전·전주·광주 등에 설치되어 6,455명의 학생이 수학하였으며, 약 1년간 계속되다가 1952년 5월 말에 폐지되었다.

전시연합대학의 운영은 지방 국립대학의 설립을 활성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여 1952년 10월에 경북대학교·전북대학교·전남대학교, 1953년에 부산대학교·충남대학교 등이 설치되었다.

이들 지방 국립대학의 발족과 더불어 대학교육의 개방정책에 따라 수많은 사립대학이 설립되거나 개편되었으며 1954년에 13개의 종합대학교와 31개 단과대학으로 증가되었다. 그러나 교수·시설 등을 비롯하여 모든 여건이 부실한 상태에서 양적으로만 팽창하여 대학교육에 관한 정비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1955년 8월에는 〈대학설치기준령〉이 공포되어 무계획적인 대학이나 학과의 신설 및 정원을 억제하고 기존 대학이나 학과에 대해서도 일정한 수준에 달하도록 법적 제약을 가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하여 1950년대 말까지 우리 나라의 대학교육은 성장보다는 안정을 지향하여 내실 있는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보다 적극적인 조처로는 5·16군사정변 이후 1961년 9월에 공포된 〈교육에관한임시특례법〉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은 학생 정원의 감축과 국가권력에 의한 통제로는 그 성과를 거두기 어려우며, 재정적인 지원과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대학의 부실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1960∼1970년 내에 취하여진 조처 중 특기할 만한 것들은 1963년의 〈사립학교법〉 제정, 1965년의 대학생정원령의 공포와 학위등록제 실시, 1968년의 대학입학예비고사 실시, 1969년에 국회가 사학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1969년에 서울대학교종합화안이 제시되면서 구체화되었다.

1970년에 발표된 개편안은 대학의 졸업학점을 140학점으로 하는 것을 비롯하여 계열별 학생모집과 부전공제의 도입 등을 구상했으며, 대학의 관리조직이나 시설 면에서도 대담한 개선안을 제시하였다.

또 문교부와 각 대학이 함께 대학교육의 문제를 진단하고 개혁 방향을 폭넓게 논의한 결과 1973년에 10개의 실험대학이 발족되었으며, 이것은 선도적 시범단계를 거쳐 그 적용대상 대학을 확대하여 나갔다.

실험대학의 운영과 더불어 대학개혁추진에 핵심이 된 것은 대학의 특성화 추진이다. 대학의 특성화는 교육재정의 효율적 활용, 대학간의 역할 분담, 지방대학의 육성, 산학협동의 촉진 등의 정책적 의도를 가지고 1974년부터 시행에 옮겨졌다.

이의 실효를 얻기 위하여 특성화 학과에 대해서는 실험실습비의 지원, 교수연구비의 중점지원, 장학금 지급, 차관(借款)의 우선 배정 등 폭넓은 지원책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울러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1976년도 졸업생부터 졸업논문제의 실시가 법제화되었다.

제5공화국에서는 대통령 직속으로 교육개혁심의회를 설치·운영함으로써 21세기를 주도할 한국인상을 자주적인 인간, 창조적인 인간, 도덕적인 인간으로 정립하고, 교육개혁의 기본원칙으로서 교육의 수월성 추구와 다양성 조장 등을 설정하였다.

고등교육 부문에서는 대학별 독자적인 입학전형 실시, 대학의 기초과학연구 체제의 확충, 대학교육의 수월성 추구, 대학기능의 분화 및 특성화, 대학원중심 대학의 선별육성을 제시하였다.
1987년 6·29선언으로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고, 당시 문교부에서는 대학자율화 실천계획을 발표하면서 대학행정의 민주화, 대학운영의 자율화 분위기를 맞게 된다.

제6공화국에서도 대통령 직속의 교육정책자문위원회를 통해서 대학 유형의 다양화와 특성화, 대학설립인가의 합리화와 대입정원의 단계적 자율화, 대학입시제도의 합리적 개선, 대학평가인정제 도입, 대학의 연구기능 활성화, 권역별 대학원중심대학 중점육성을 제시하였다.

문민정부로 들어서면서 고등 교육개혁의 방향을 자율화·다양화·특성화로 잡고 대통령 자문기관인 교육개혁위원회를 통해서 교육수요자 중심의 대학운영 확대,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 및 단설전문대학원 설립, 포괄승인제 형태로 대학정원자율화, 대학교육·연구의 세계화·첨단화, 세계 수준의 대학원중심 대학의 집중육성책을 제시하였다.

문민정부에 이은 국민의 정부도 대통령 자문기구로 새교육공동체위원회를 설치하고 학부학생 모집단위의 광역화를 통한 학부제 추진, 교육중심의 지방대학 지원, 대학원중심 대학의 육성, 무시험제를 통한 대학입시 혁신 등 고등 교육체제 전반의 재구조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

[현황]

우리 나라의 대학교육은 광복 후 50여년 동안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광복 당시 고등 교육기관의 재학생 수가 일본인을 합하여도 7,819명에 불과하였으나, 15년 후인 1960년에는 12.5배인 9만 7819명이었으며, 1999년 현재는 203배인 158만 7667명에 달하고 있다. 또한 대학(교) 이외의 다른 고등 교육기관까지 합한다면 고등교육의 발전은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는 성장을 이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에 비하여 대학의 본질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제반 여건은 미흡한 상태이다. 따라서 보편화 단계에 들어서 있는 우리 나라 대학교육의 양적 성장 및 질적 수준의 향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학교육 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보완과 나아가 충분한 교수요원의 확보, 시설확충 및 행·재정적인 지원 등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학교육의 양적 성장과 질적 수준 향상이 균형적으로 이루어질 때 대학의 본질적 기능인 교육·연구·사회봉사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며, 따라서 국가 발전을 이끌어 갈 유능한 인재들을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1999년 현재 대학의 실태와 현황을 부문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학교와 학과수

1999년 현재 대학은 총 158개 교로서 이 중 국립이 24개, 공립 2개, 사립 132개이며, 지역별로 보면 전체 대학의 25.3%인 40개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학과수는 총 8,854개가 개설되어 있는데 이 중 인문 계열이 1,420개, 사회 계열이 2,126개, 자연 계열이 3,541개, 예·체능 계열이 930개, 의약 계열이 318개, 사범 계열이 519개이다. 사립대학의 경우 전체의 84%룰 차지하고 있으며, 재적 학생 구성비도 국·공립과 사립이 약 22:78이다.

이처럼 대학교육에 있어서 사학의 비중이 보다 증대되고 있어서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려면 사립대학의 내적 충실이 선결 요건임을 알 수 있다. ② 학생수:재적 학생수는 총 158만 7667명으로 이 중 여학생은 35.3%인 55만 9836명을 차지하고 있다.

전공별로는 인문 계열에 21만 8815명, 사회 계열에 41만 8507명, 자연 계열에 69만 8620명, 예·체능 계열에 12만 7272명, 의약 계열에 5만 8889명, 사범 계열에 6만 5564명이 재학하고 있다. 야간대학에 재적중인 학생은 12.3%인 19만 5358명이며, 1999년의 입학생은 31만 9278명이고 졸업생은 총 20만 4390명을 배출하였다.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학생수는 학교의 증가에 비하여 감당하기 어려운 비율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교수확보 및 제반 시설 확충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③ 교원

총 인원은 4만 1226명으로 이 중 총(학)장과 조교를 제외한 전임 이상의 교수는 4만 1068명이다. 학생수의 증가에 비하여 교원의 수가 뒤따르지 못하는 현상은 사립대학이 보다 심한 실정이다.

이는 교원 1인당 학생수를 볼 때 국·공립이 32명이고 사립이 41명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교수 확보율의 부족은 교수 1인당 수업시간의 증가와 대단위 강의를 초래하게 되어 대학의 연구와 교육기능을 저하시키고 있다.

전체 4만 1226명의 교원 중 여자는 13.3%로 5494명이며, 박사학위 소지자가 82%, 석사학위 소지자가 15.8%, 학사학위 소지자가 2.1%, 기타 0.11%이다.

④ 교육과정

대학의 교과과정은 교양교과가 46학점(33%), 전공교과가 63학점(45%), 선택교과가 31학점(32%)을 유지해 오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총 이수학점은 축소되면서 전체비율에 있어서 전공교과는 낮아지는 추세이고, 교양교과와 선택교과는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총 이수학점은 140학점이지만 계열화·학부제 실시를 통해 유사학과를 통폐합하여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소속학과 없이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하여 다기능 인간을 배출한다는 취지에 따라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韓國敎育史(박상만, 大韓敎育聯合會, 1957), 韓國近代敎育史(孫仁銖, 延世大學校 出版部, 1971), 韓國高等敎育硏究(金鍾喆, 培英社, 1979), 大學論(金玉煥, 文音社, 1983), 대학, 갈등과 선택(이형행 역, 삼성경제연구소, 1996), 고등교육법 및 동법시행령 해설자료(교육부, 1998), 교육50년사(교육부, 1998), 교육통계연보(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 1999).

<이형행(李亨行)>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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