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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2-27 (토) 22:18
분 류 사전3
ㆍ조회: 1523      
[교육] 교육-한국의 교육 (한메)
교육-한국의 교육

세부항목

교육-개관
교육이란 무엇인가
근세교육의 이념과 전개
국민교육제도의 발전
각 나라 교육의 역사
한국의 교육

[한국의 교육]

<선사시대의 교육>

한국 선사시대의 교육은 무의식적·비조직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생활을 근거로 하는 지식·기술의 습득과 이의 전승,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 행사와 그 전수, 종족유지와 보호에 따른 전쟁훈련이 그 전부였다.

<고조선시대의 교육>

고조선시대 역시 원시적 교육상태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였지만 교육사상과 이념의 기초가 되는 정신적인 영역의 기틀이 다져지기 시작하였다. <단군신화>에 나타나 있는 홍익인간의 이념은 고대인의 생활철학인 동시에 교육철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자조선 때의 <팔조법금(八條法禁)>을 통하여 이 시대의 사회가 인권을 존중하고 남녀간 도덕을 엄격히 하였으며, 상하관계가 뚜렷한 계급사회, 가부장제 사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고대 우리 민족의 도덕·윤리교육이었고 민중교화를 위한 교육지침이었다.

<삼국시대의 교육>

삼국시대에는 국가에 의한 학교교육이 시작되었으며, 교육에 불교와 유교가 절대적 영향을 주었다.

⑴ 고구려의 교육

문헌상으로 볼 때 고구려에서 처음 설립된 교육기관은 태학(太學)이었다. 유교를 교육이념으로 삼아 372년(소수림왕 2)에 설립된 태학은 국가가 세운 최고교육기관으로서, 귀족 등 특수계급의 자제들을 위한 관리양성기관이었다.

고구려에는 관학인 태학 이외에도 한국 최초의 사학인 경당이 있었다. 여기서는 미혼자제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이와 같은 점에서 경당은 신라의 화랑도와 유사한 성격을 지녔을 것으로 보이며, 고려 이후 성행한 서당(書堂)의 기원으로 파악할 수 있다.

⑵ 백제의 교육

문헌에 나타난 교육기관은 없으나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 나타난 백제와의 문화교류에 관한 기록에서 백제의 학술이 발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58년(고이왕 25) 박사 왕인(王仁)을 일본에 보내어 《논어》 《천자문》을 전한 일이 있고, 374년(근초고왕 29) 박사 고흥(高興)이 백제의 역사책인 《서기(書記)》를 편찬하였다.

⑶ 신라의 교육

신라는 국내제도 정비에 힘쓰는 한편 재래의 무(武)를 중심으로 한 인재교육에 힘썼다. 단군고유정신을 강화한 청년집단 화랑도가 생겨났으며, 화랑도교육을 통하여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다.

학교교육은 통일신라에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628년(신문왕 2)에 설립된 국학(國學)이 그것이다. 국학은 예부(禮部)에서 관할하였으며, 경덕왕 때 태학감(太學監)으로 개칭하였다가 혜공왕 때 다시 국학으로 환원시켰다.

교과과목은 《주역》 《상서(尙書)》 《모시(毛詩)》 《예기》 《춘추》 등이었다. 한편, 788년(원성왕 4) 태학 안에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설치하여 상품·중품·하품으로 나누어 관리등용의 기준으로 삼았다.

<고려시대의 교육>

고려시대에는 정치·사회적 변혁에 따라 교육정책도 변모를 거듭했다. 성종 때 설립된 국자감(國子監)은 고려시대 최고의 학부로, 국가의 유교적 이념과 결부하여 교육의 중추적 구실을 담당했다. 고려의 교육제도는 크게 관학과 사학으로 구분된다.

관학으로는 중앙에 국자감과 학당이 있고 지방에 향교가 있었으며, 사학으로는 십이도(十二徒)와 서당이 있었다. 예종 때 국자감을 국학으로 개칭하고, 1109년에 새로운 성격의 문무칠재(七齋)를 두어 전공별로 연구하게 했다. 국자감에는 국자학·태학·사문학·율학·서학·산학의 6학이 있었는데, 각각의 입학자격은 계급과 신분에 따라 규정하였다.

교육내용은 《주역》 《상서》 《주례》 《예기》 《모시》 《춘추》 《좌씨전(左氏傳)》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을 각각 1경(一經)으로 하고, 《효경》 《논어》는 필수과목으로 한 것으로 보아 국자감의 교육목적은 귀족자제를 대상으로 한 관리양성인 동시에 유교적 학문의 연구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의 향교(鄕校)는 지방에 설립된 중등 정도의 관학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향교의 학생 중 성적이 우수한 자는 국자감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지방의 향교와 같은 정도의 교육기관으로 중앙에는 학당이 있었다.

한편, 사학인 십이도는 중앙의 관학인 국자감과 비슷한 비중을 갖는 교육기관으로서, 12개의 사학으로 되어 있었다. 이는 사설교육기관이지만 국가에서 감독했다.

<조선시대의 교육>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적 도학정신이 정신적인 지표와 교육이념의 중추를 이루었다. 이에 기초한 유교교육은 일반 서민을 위한 교육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이상 실현을 위한 것으로 등장하였다. 또한 교육내용에 있어서 경전 중심의 인문교육을 숭상하고 실업교육을 천시하여, 교육의 대상과 내용에 배타성이 깊이 내재되었다.

이러한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의 유학교육은 그 자체가 생활규범화되어 전국민에게 도덕적 윤리관을 심어 주었으며, 유학자들의 깊이있는 학문체계는 한국 교육사상 및 정신문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조선 후기에는 성리학에 대한 비판으로 실학사상이 대두되어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의한 새로운 학풍이 등장했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을 근거로 한 조선시대의 교육제도는 성균관(成均館)이 있어 최고학부의 구실을 하였고, 중등교육기관으로 중앙의 사학(四學)과 지방의 향교가 있었으며, 사립교육기관으로 서원(書院)과 초등사설교육기관인 서당 등이 있었다.

이에 대한 교육행정은 육조 중 예조가 주관했으며,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감독하기 위해 <학령>과 《경국대전》 등 각종 교육법규를 제정했다. 성균관에서는 유학교육을 실시하였는데, 교육내용은 경술(經術)과 문예를 주로 하여 강독·제술(製述)·서법으로 나눈다.

향교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지방재정에 의하여 운영되던 중등 정도의 교육기관으로, 조선시대에는 부·목·군·현에 각각 향교를 하나씩 설립하게 되었다. 향교의 기능은 성현에 대한 향례와 유생교육 및 지방민의 교화 등이었다. 서당은 조선시대에 더욱 활발해져서, 선비와 평민의 자제로서 사학이나 향교에 입학하지 못한 8∼16세에 이르는 동몽(童蒙)들의 유학도장으로 중요시되었다.

서원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의 명유인 안향(安珦)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하여 향례를 지냄과 동시에 인재를 모아 학문을 가르쳤는데, 이를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 한 것이 그 시초이다.

<개화기의 교육>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문호개방이 시작되면서 교육에 있어서도 근대교육사조에 입각한 신교육 실시가 요청되었다. 근대학교는 1883년에 설립된 동문학(同文學)과 1886년의 육영공원(育英公院) 등 관학의 설치로부터비롯되었다. 육영공원은 양반의 자제를 대상으로 하여 영어·자연과학·수학·지리·경제학 등의 신교육을 실시하였다.

사학의 설립은 크게 그리스도교계 학교와 민간인 사학으로 나눌 수 있다. 1880년대에 세워진 그리스도교계 학교들은 배재학당(培材學堂)을 비롯하여 경신학교(儆新學校)·이화학당(梨花學堂)·정신학교(貞信學校) 등을 들 수 있다.

민간인에 의해 설립된 사학은 1883년 개항장 원산에 설립된 원산학사(元山學舍)가 최초로, 이는 한국 최초의 근대학교이기도 하다. 1894년의 갑오개혁을 계기로 하여, 제도상으로 신학제에 따른 교육이 실시되었다. 종래의 문교행정을 담당하던 예조가 폐지되고 학무아문(學務衙門)이 설치되었으며 과거제를 폐지하였다.

1895년 고종은 <홍범 14조>를 선언한 가운데 근대교육을 받아들일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으며, 이어 교육조서(敎育詔書)를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재천명하였다. 1895년 4월에 교사양성을 위한 <한성사범학교관제>를 공포하였다. 이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학교법규이다. 근대학교로서의 관학은 외국어교육·교원양성·실업교육면에 치중하여 교육하였다.

<일제강점기의 교육>

초기의 교육방침은, 1911년 발표된 <조선교육령>과 <사립학교규칙>에 집약되어 있다. 즉, 조선교육령에서 <교육은 교육에 관한 칙어의 취지에 기초하여 충량한 국민을 육성하는 것을 본의로 한다>고 되어 있어 한민족의 민족의식을 빼앗고 문화를 말살하여 일본제국에 절대 복종하고 순종하도록 만들겠다는 뜻이 나타나 있다.

그 뒤 각종 교육법령 제정으로 교육제도가 정비되어, 보통학교(3·4년)·고등보통학교(4년)·여자고등보통학교(3년)·실업학교(2·3년)·간이실업학교(수업연한 제한규정 없음)·전문학교(3·4년) 등이 설치되었다.

그 뒤 3·1운동을 계기로 일본의 교육정책에 약간의 수정이 있었다. 이른바 문화정치를 표방하여 1922년에 개정교육령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한국 학생들에게 사범학교 및 대학에 진학할 길이 열렸다.

1938년 3월에 일제는 제3차조선교육령을 반포하여 교육을 완전히 전시체제화하고 <국체명징(國體明徵)> <내선일체(內鮮一體)> <인고단련(忍苦鍛鍊)> 등 3대교육방침을 내세우고 있었다. 1943년에는 제4차조선교육령인 <교육에 관한 전시비상조치령>에 의하여 철저한 전시교육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1941년 4월 보통학교였던 소학교가 국민학교로 개칭되었다.

<광복 이후의 교육>

광복 후 한국의 교육은 새로운 민주국가의 교육정책과 이념을 수립하기 위해 많은 연구와 협의를 거듭하였다.

미군정에 의해 실시된 교육정책은 종래의 복선형 학제를 단선형으로 바꾸고 교육행정의 자치화를 꾀하였으며, 교사재교육, 문맹퇴치운동, 국어의 회복, 각급 교육기관의 확충 등 새로운 교육체제의 정비에 주력하였다.

교육심의회는 1946년 6월 학제를 6·6·4로 개혁하고, 학교교육을 학령 전 교육·초등교육·중등교육·고등교육·특종교육의 5단계로 설정하였다.

정부수립 후 강조 된 교육의 표어는 민족적 민주주의 교육이었다. <교육법>이 제정·공포됨에 따라 교육의 근본이념을 홍익인간으로 결정하고 평등사상에 입각한 교육의 기회균등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추진되었다.

1960년대 초기의 혁명정부는 <조국근대화>라는 기치 아래 재건국민운동을 추진했다. 교육에 있어서도 1961년 9월 <교육에 관한 임시 특례법>을 제정·공포하여 교육자치제가 폐지되었다. 1962년 사범학교를 폐지하고 2년제 교육대학을 설치했으며, 2년제 사범대학을 폐지하고 중등교원양성을 위한 4년제 사범대학을 운영했다.

1970년에는 전문학교를 설치하고, 1972년에 방송통신대학을 신설했다. 제4공화국이 출범한 1973∼79년까지의 교육은 <국적있는 교육>이라는 기치 아래 반공안보교육·주체성교육 등에 역점을 두었으며, 과학기술과 산학협동교육이 강화되어 전국민의 과학화운동이 실시되었다. 특히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교육의 사회적 기능을 개발하기 위한 새마을교육이 전개되었다.

1980년 제5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7·30교육개혁조치를 통해 과외수업의 근절, 고교내신제와 국가학력고사에 의한 대학입시제도, 교육대학 및 방송통신대학의 4년제 승격, 졸업정원제 시행 등 일련의 중요한 교육정책이 결정되었다.

문교부에서는 1981년에 문교정책으로서 국민정신교육의 강화, 취학 전 어린이교육의 확대, 초·중등교육의 충실, 대학교육개혁의 정착 및 질적 향상, 과학기술 및 직업교육의 강화, 사회교육의 확산, 국민체육의 진흥, 국제교육의 강화, 교육풍토의 쇄신 등을 주요과제로 삼았으며, 장학방침으로 국민정신교육의 강화, 기초교육의 내실, 과학기술교육의 진흥, 전인교육의 충실 등을 채택했다.

이어서 1982년에는 민주정의사회 건설을 위한 국민정신교육의 강화, 고도산업사회에 부응하는 과학기술교육의 진흥, 복지사회 구현을 위한 평생교육 확충, 창조·개혁·발전을 위한 전인교육 확충을 문교시책으로 결정했다.

광복 후 한국은 정부의 교육진흥정책과 국민의 교육열 고조로 교육의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교육의 양적 증가는 1983년 학생수를 1945년의 숫자와 비교해 볼 때 초등교육에서는 약 4배, 중등교육에서는 56배, 고등교육에서는 137배의 성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러나 학급의 과밀화, 학교규모의 비대화와 교직원수의 부족, 교육시설의 노후 등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한편 중등교육은 광복 후 뚜렷한 양적 성장을 이룩한 부문이다. 특히 60년대 말부터 중등교육의 기회는 크게 확대되었는데, 중등교육의 보편화 현상은 1968년에 시행된 중학교 무시험진학제도와 1973년부터 추진되어 온 고등학교평준화시책에 힘입은 바 크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중학교의 의무교육화를 위한 교육정책에 따라 일부 도서벽지와 접적지역의 중학교에서 의무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정규학교 이외에 산업체 부설 중·고등 학급이나 학교 등이 있고 고등공민학교·고등기술학교·방송통신고등학교 및 중등학교 수준의 특수학교도 설치되어 있어 중등교육의 기회는 널리 개방되어 있다.

광복 후 다른 어떤 수준의 교육보다도 학생수 및 학교의 증가율이 급격한 부문은 고등교육이다. 이러한 고등교육의 급성장은 중등교육의 보편화와 상향적 계층이동에 대한 기대 또는 가치관에 기인한 바 크다.

특히 1980년대에 와서는 고등교육의 대중화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이러한 고등교육의 확충과 기회균등의 확대는 국민의 교육수준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대학의 자율성 및 창의성 통제, 우수교원의 확보문제, 현대적인 시설과 설비부족 등 대학운영에 지장을 주는 요소들이 과제로 남아 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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