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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2-27 (토) 18:09
분 류 사전3
ㆍ조회: 1106      
[현대] 가치관 (민족)
가치관(價値觀)

삶의 목적 체계와, 시비선악(是非善惡)에 대한 윤리의식 내지 윤리적 태도를 묶어서 일컫는 개념. 삶을 설계하는 중심을 이루는 목적의 체계와 시비선악에 대한 태도 가운데는 실천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과, 단지 당위의식에 머무르고 행동에까지는 이르지 않는 것이 있다.

전자를 ‘행동경향으로서의 가치관’, 후자를 ‘당위의식으로서의 가치관’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가치관은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같은 사회 안에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은 크게 볼 때 유사성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가치관이더라도 생활의 공통분모(公通分母)로서의 자연적 조건과 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가치관’이라고 한다면 모든 한국인이 가지고 있었거나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가치관의 개인차를 제거한 일반적 경향을 뜻한다.

한 국민이 가진 가치관의 일반적 경향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가치관은 각 나라 문화의 핵심을 이루며,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가운데 전통이라는 침전물을 남긴다.

한국인의 가치관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뿌리에 해당되는 옛날의 모습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당위의식으로서의 가치관’을 반영한 문헌은 많으나 ‘행동경향으로서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문헌은 모범적이거나 특출한 사람들의 일화 또는 전설적 기록으로 남아 있다.

[전통적 가치관]

옛날의 우리 조상들이 보람있는 삶을 위하여 강하게 추구해온 가치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가족중심적 가치이고, 둘째는 출세를 통한 가문의 명예이며, 셋째는 삼강오륜 등 도덕률이 가리키는 바를 따라서 사람의 도리를 지킴으로써 명예롭고 깨끗한 삶을 갖는 일이다.

위의 세 가지를 모두 겸할 수 있다면 매우 바람직한 삶이 될 수 있을 테지만 실제 그 가운데 한두 가지만을 택해야 할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럴 경우, 우리 조상들이 어떠한 우선순위를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일률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리 조상들의 가치서열도 개인 또는 가풍을 따라서 그 우선순위가 다양했을 것이며, 당위의식으로서의 우선순위와 행동경향으로서의 우선순위 사이에도 차이가 있었다. 추측하건대, 일반 서민층의 경우 행동적 실천에 나타난 가치관에 있어서는 첫째 부류, 즉 물심양면으로 안정된 삶을 가지고자 하는 태도가 가장 강했다.

특권층의 경우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역시 같았을 것이나, 부귀와 공명의 길을 물심양면의 안정을 얻는 첩경으로 생각했으므로 이 둘째 부류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셋째 부류의 가치, 즉 ‘사람의 도리를 지켜가며 명예롭고 깨끗한 삶을 가짐’의 가치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소망은, 당위의식으로서의 가치관에 있어서는 첫째 부류와 둘째 부류에 대한 그것보다 더 앞섰을 것이며, 실천적 행동에 있어서는 그보다 뒤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소설에 나타난 여러 가지 이야기와 그밖의 사료에 입각해볼 때 이 셋째 부류에 대한 옛 조상들의 소망과 추구는 현대의 한국인 또는 서구인들의 그것에 비하여 훨씬 강했으리라고 추측된다.

학문과 예절을 앞세우는 유교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조선시대에는 정신적 가치를 강조하는 전통이 압도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산업에 종사하는 농공상의 직업인들이 천대를 받고 육체노동을 멀리했던 양반계급이 부귀를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은, 생산 및 물질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학문과 도덕을 비롯한 정신적 가치를 숭상하는 기풍을 더욱 조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반계급의 비교적 풍요로운 생활 자체도 농공계급의 노동으로 생산된 재물을 탈취함으로써 가능했으며 일반 서민층의 기본생활을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재물이 절대로 요청되었던 까닭에, 현세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우리 조상들이 물질적 가치를 실천적으로 경시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위의식에 있어서만은 경제적 가치에 너무 애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관념이 강했고, 일부 사람들의 경우는 실천생활에 있어서도 안빈낙도의 길을 걸었을 것으로 보인다.

유교사상의 지배적 영향을 받았던 조선시대에는 이상적 인간상을 위한 조건으로 인품에 있어서의 도덕성이 강조되었으며, 특히 효성·충성·관후(寬厚)·고결·지조·겸손 등의 유교적 가치들이 바람직한 인간상을 위한 주된 덕목으로 숭상되었다.

남자의 경우에도, 투쟁적이며 야망적인 사람보다는 부드럽고 온화하며, 남 앞에 겸손하고 오직 안으로 자신을 향해 극기심이 강한 선비형의 인물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점에 있어서 진취적이며 투쟁적인, 강건한 남성을 숭상했던 신라나 고구려시대의 가치풍토와는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여자의 경우에는 효성과 겸손 등 남자들과 공통으로 숭상된 덕목 이외에 여성만을 위한 덕목으로 정절·현숙·순종·근면 등의 부덕이 강조되었다.

바람직한 남성상을 위해서 실용적 기예는 크게 요구되지 않았으나, 바람직한 여성상을 위해서는 사대부 계층의 경우 바느질·길쌈·음식솜씨 등이 뛰어나야 한다는 조건이 강조되었다.

유교적 덕성뿐 아니라 유교적 교양의 주종을 이루었던 학식·문장·서예 등이 탁월한 것도 양반계급의 이상적 인간상을 위한 요건으로 숭상되었다. 교양으로서의 정신적 탁월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바람직한 가치로 숭상되었지만, 특히 사대부계층의 남자들을 위하여 더욱 필수적 조건으로 강조되었다.

이상적 남성상 또는 이상적 여성상이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타고난 용모와 체격, 그리고 재질 등 자연적 특성의 탁월성도 중요시하였다.

조선시대 소설의 대부분은 이상적인 남자 또는 이상적인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데, 그들이 묘사한 주인공들은 도덕적 인품과 학문, 그리고 문장과 서예 등만 탁월하였던 것이 아니라, 용모와 체격 그리고 천부적 재능도 탁월한 사람들이다.

다만, 이상적 인간상을 위하여 갖추어야 할 조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정된 것은 역시 도덕과 학문, 그리고 문장 등이 뛰어난 경지에 이르는 일이었다.

우리 조상들에게 전통적으로 가족주의적 사고와 행동이 강한 경향을 보인 것은 그들의 가치관, 특히 윤리관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가족주의적 사고방식이 발달하게 된 사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가친척끼리 한 고장에 모여 살게 된 농업사회, 재산이 자동적으로 자손에게 계승되는 상속제도, 유교사상의 영향 등은 모두 가족주의를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근본이 된 것은 혈연 또는 핏줄에 대한 관념이다.

즉, 같은 가족 내지 친족에 속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씨’에서 파생된 하나의 생명체에서 비롯된 분신이라는 관념이 가족주의적 사고방식의 바탕을 이루었다.

여자보다 남자를 더 귀중하게 여긴 근본 원인도 ‘씨’가 소속하는 곳은 오로지 남성의 세계뿐이요, 여성은 ‘씨’의 번식과 성장의 조건에 불과한 ‘밭’에 해당한다고 본 생물학적 관념과 깊은 관계가 있다.

가족주의적 사고가 강한 사회에 있어서 가족윤리가 윤리체계 전체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리고 가족주의적 사고를 떠받드는 근본이 혈연의 관념이라면, 가족윤리에 있어서 혈연의 관념이 차지하는 위치가 막중하리라는 것도 당연하다.

혈연의 관념이 막중한 위치를 차지하는 가족윤리는 혈연의 원근이 윤리적 의무의 경중을 결정하는 척도로 작용한다. 혈연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것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이다. 따라서 오륜을 윤리의 기본으로 삼는 유교윤리에 있어서, 부자간의 윤리를 가장 중요시하는 동시에 효도를 모든 덕목의 으뜸이라고 단정한 것도 당연한 이치였다.

‘효도’의 구체적 내용으로, 첫째로 손꼽은 것은 아들을 낳아 가계를 잇는 일이었다. 온갖 불효 가운데에서 아들을 못 낳는 것이 가장 큰 불효였으며, 남의 가문에 시집을 간 여자가 아들을 못 낳는 것은 칠거지악의 하나에 해당되었다. 이 때문에 아들을 낳기 위하여 소실을 두는 것은 아주 떳떳한 일이었다.

둘째로 조상의 제사를 정성껏 받드는 것도 자손의 도리 가운데 중요한 것이었다.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제사만은 격식대로 지내야 하는 것으로 믿었다. 셋째로 늙은 부모 또는 조부모를 편하게 모시는 것이 효도의 임무임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의 가르침이나 명령에 순종하는 것도 자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였다.

넷째로,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길에 오름으로써 입신양명하고 가문을 빛내는 것은 가장 적극적인 효도의 방법이었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기를 쓰고 벼슬하기를 꾀한 것은, 자기 한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라기보다도 가문을 빛내 조상에게 효도하고자 하는 뜻이 더 컸다.

조상에 대한 자손의 도리인 효도가 강조된 데 비하여, 자손에 대한 부모 내지 조상의 도리를 강조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것은 유교의 영향을 받은 사회의 도덕이 주로 아랫사람들의 도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이유는 자손에 대한 조상의 도리라는 것은 어버이 사랑의 테두리 안에 포함되는 것이며,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런 정을 통하여 저절로 실천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있었을 것이다.

부자 내지 조상의 윤리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부부의 윤리였다. 부부의 관계는 혼인을 통하여 맺어지는 것이므로, 혼인에 대한 관념도 전통적 가치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가족주의가 지배했던 옛날에는 결혼을 단순히 두 남녀의 결합으로 보지 않고 두 가문의 결연으로 보았다.

결혼은 두 개인만을 당사자로 삼는 것이 아니라, 두 가문 전체를 당사자로 삼는 ‘인간의 대사’였다. 가문 전체가 관여하는 큰일이었기에, 혼인의 상대자를 결정하는 권한과 책임은 신랑과 신부에게 맡길 수 없었고, 가문의 어른들이 그 결정권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가문의 어른들이 혼인의 상대자를 선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한 것은 상대편 가문의 귀천이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혈통의 우열이 인간의 우열을 결정한다.’고 믿었던 까닭에, 신랑감 또는 신부감의 개인적 특성보다도 그 가문의 영욕을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훌륭한 가문은 훌륭한 자손을 보증한다는 관념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가문에 대한 판단을 기본으로 삼아 일단 결혼을 약속하게 되면, 이를 하늘이 정한 인연으로 이를 소중히 여겼고, 파혼 또는 이혼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겼다. 일단 결혼이 성립하여 부부가 된 다음 두 남녀의 관계는 ‘남존여비’의 관념에 의해서 큰 영향을 받았다.

‘여필종부(女必從夫)’라든가 남편을 ‘소천(小天)’이라고 부른 말이 상징하듯이, 남편이 아내를 자기의 보조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부부를 독립된 두 개인으로 보지 않고 한 결합체로 보는 견해가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남편을 하늘처럼 섬겨야 했던 아내가 지켜야 할 도리 또는 책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의 전부를 바쳐서 평생 한 지아비를 지극히 섬기는 일, 아들을 낳아서 잘 기르는 일, 시부모를 정성으로 섬기고 그들이 죽은 뒤에는 예절을 다하여 제사를 모시는 일, 남편의 일가친척들이 찾아오면 융숭하게 대접하는 일 등이었다.

이들 아내의 도리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시된 것이 정절을 지키는 일이었음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이 정절의 의무 가운데에는 남편이 일찍 죽더라도 평생 수절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혈연을 인륜의 근본으로 생각했던 전통윤리에 있어서는 형제와 자매, 그리고 그밖의 일가와 친척은 모두가 하나의 ‘우리’라는 관념이 전체의 바탕을 이루었다. 형제와 자매가 모두 한몸을 쪼갠 분신일 뿐만 아니라, 촌수가 닿는 친척들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핏줄로 이어진 공동체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형제간에는 한몸처럼 서로를 아껴야 하며, 그밖의 일가와 친척들도 모두가 그 촌수의 가깝고 먼 데에 따라서 응분의 상부상조를 하여야 마땅하다는 것이 일반적 윤리의식이었다.

친척끼리 서로 돕는 것은 바람직한 행위라기보다는 마땅한 의무였으며, 따라서 친척을 돕지 않는 것은 부덕한 행위였다. 가령 죄인을 다스리는 공직을 맡은 사람이 자기 친척의 범죄를 발견했을 경우에 그 죄를 밝혀서 처벌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가족과 친척 이외의 사람들과의 대인관계 또한 그 근본정신은 가족윤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시 말해서, 가족윤리의 정신을 연장하여 가족과 친척의 울타리 밖에까지 적용하면 되었고, 특별히 새로운 원리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

가족 밖의 인간관계에까지 관련되는 덕목 가운데 중요한 것들은 충성·신의·보은·예절 등이거니와, 이러한 덕목들의 바탕을 이루는 것도 넓은 의미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가족윤리의 덕목들과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다.

[사회의 변동과 가치관의 변화]

19세기 말엽부터 우리 나라에도 서구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농경사회와 유교사상을 배경으로 삼고 형성되었던 전통적 가치관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광복을 계기로 우리는 아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사회의 양상도 크게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급격한 사회변동은 사람들의 가치관에도 큰 변화를 초래하였고, 그 변화는 지나친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여 이따금 혼란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가족주의를 중심으로 성장한 전통적 가치관이 남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적 산업사회의 새로운 가치관이 받아들여져, 전체적 가치풍토는 매우 복잡한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광복 이후에 우리 나라로 밀려들어온 서구적 가치관의 주류를 이룬 것은 개인주의와 물질숭상을 특색으로 삼는 풍조였다. 개인으로서의 ‘나’보다도 가족 내지 가문으로서의 ‘우리’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물질적 가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천시하였던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과는 대조적인, 새로운 가치관과 만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재래의 전통적 가치관과 외래의 서구적 가치관의 갈등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이러한 갈등은 어떠한 형태로든 해결해야 할 문제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온 국민이 한가지 색깔의 가치관으로 통일될 필요는 없으나, 서로 다른 가치관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에는 사회적 갈등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전통적 가치관을 올바른 것으로 믿는 경향이 강한 늙은 세대와 서구적 가치관으로 쏠리는 경향이 강한 젊은 세대 사이의 갈등이다.

사회가 순조로운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같은 목표를 향한 협동이 필수적이나, 오늘날 두 세대의 가치관이 조화를 얻지 못하고 있는 까닭에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동이 잘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가치관의 갈등은 한 개인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현대 한국인의 대부분은 전통적 가치관과 서구적 가치관의 영향을 함께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같은 인격 안에 이질적인 두 가지 가치관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공존할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당위의식으로서의 가치관과 행동경향으로서의 가치관 사이에 커다란 거리가 생기게 된다.

오늘날 한국인의 경우에는 당위의식으로서의 가치관은 전통적 가치관을 따르고, 행동경향으로서의 가치관은 서구적 가치관을 따르는 사례가 많다. 다시 말해 말과 생각은 전통적 가치관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행동은 서구적 가치관을 좇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말과 행위의 불일치는 누구에게나 약간은 있게 마련이지만, 현대 한국인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말과 행위의 차이가 지나치게 클 경우에는 위선의 현상이 나타나는 동시에 불신 풍조가 일반화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전통적 가치관과 서구적 가치관의 갈등문제를 양자택일적인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일가와 친척끼리 한 고장에 모여서 농업에 종사하던 전통사회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이상, 전근대적 가치관만을 가지고, 광범위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대산업사회를 무리없이 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한편, 서구적 가치관에도 문제가 많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대산업사회에 팽배한 물량주의의 가치관이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폐단을 갖고 있으며, 인간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신적 가치의 우위성을 회복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망된다.

현대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들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한편, 정신적 가치 내지 인간적 가치의 우위를 지킴으로써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높은 차원의 새로운 가치체계를 수립하는 일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하겠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五倫行實圖, 退溪言行錄, 擊蒙要訣, 聖學輯要, 內訓, 韓國大學生의 價値觀(金泰吉, 一潮閣, 1967), 小說文學에 나타난 韓國人의 價値觀(金泰吉, 一志社, 1977), 韓國人의 價値觀(孫仁銖, 文音社, 1978), 韓國人의 價値觀(李永鎬, 一志社, 1979), 韓國人의 價値觀硏究(金泰吉, 文音社, 1982), 韓國大學生의 價値觀(洪承稷, 亞細亞硏究 20-1, 1963), 現代小說에 나타난 韓國知識層의 政治意識(金泰吉, 學術院論文集 19, 1981), 近代化의 過程과 價値觀의 混亂(金泰吉, 學術院論文集 21, 1982).

<김태길(金泰吉)>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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