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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2-05 (수) 19:48
분 류 사전3
ㆍ조회: 761      
[조선] 고부 민란 (두산)
고부민란 古阜民亂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이 된 농민봉기. 1894년(고종 31) 1월 고부 지역의 동학접주(東學接主) 전봉준(全琫準)이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에 항의하고자 이 지역 농민들을 규합하여 일으켰다.

조병갑은 고부군수로 부임한 이래 ① 농민에게 황무지를 개간하게 하여 면세(免稅)를 약속하고서도 추수시에 강제로 세금을 받고, ② 군민들에게 불효·불목(不睦)·음행(淫行)·잡기(雜技) 등의 죄명을 날조하여 2만냥 이상을 강탈하고, ③ 태인군수(泰仁郡守)를 지낸 적이 있는 그의 부친의 송덕비각(頌德碑閣)을 짓는다고 1,000냥 이상을 농민들로부터 강제로 징수하였으며, ④ 대동미(大同米)를 농가에서 거둘 때는 좋은 쌀 16말[斗]을 표준하고, 상납할 때는 나쁜 쌀을 사서 바치게 하여 그 차액을 착복하였다. ⑤ 만석보(萬石洑)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데도 임금 한푼 주지 않고 농민을 강제로 동원하여 신보(新洑)를 쌓게 하고 가을에 가서 1두락에 1~2말의 수세(水稅)를 받아 700석이나 착복하였다.

처음 전봉준 등은 두 차례 40∼60명이 조병갑에게 가서 만석보 수세에 대한 감면을 진정하였으나, 조병갑은 이를 일축하였다. 이에 전봉준은 1894년 1월 10일 약 1,000의 동학도와 농민을 이끌고 고부 군아(郡衙)를 습격하였다. 농민군은 먼저 무기고를 부수어 총을 빼앗고, 옥을 열어 억울한 죄수들을 석방하였으며, 불법으로 약탈한 수세미를 농민에게 반환하고 만석보의 신보를 파괴하였다. 이 틈에 조병갑은 전라감영으로 달아났다가 정부에 의해 체포되고, 박원명(朴源明)이 새로 고부군수로 부임하여 사태를 잘 수습하고 농민들도 흩어져 귀가하였다.

그러나 안핵사(按衍史)로 임명된 이용태(李容泰)는 민란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죄없는 농민들을 함부로 체포하고 부녀자들을 능욕하며 재산을 약탈하는 등 패악을 자행, 농민들을 극도로 자극하게 되었다. 이에 전봉준은 3월 21일 백산(白山)에서 동학군 8,000으로 전면전을 일으켰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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