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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2-04 (수) 20:30
분 류 사전3
ㆍ조회: 852      
[삼국] 화랑도 (두산)
화랑도 花郞徒

신라 때 청소년으로 조직되었던 수양단체.

국선도(國仙徒) ·풍월도(風月徒) ·원화도(源花徒) ·풍류도(風流徒)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무리를 뽑아서 그들에게 효제(孝悌)와 충신을 가르쳐 나라를 다스리는 데 대요(大要)를 삼는다’라고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처음에 군신(君臣)이 인재를 알지 못함을 유감으로 여기어 사람들을 끼리끼리 모으고 떼지어 놀게 하여, 그 행실을 보아 거용(擧用)하려 하였다’ 하고, 이들은 ‘서로 도의를 닦고, 서로 가악(歌樂)으로 즐겁게 하며, 명산과 대천(大川)을 찾아 멀리 가보지 아니한 곳이 없으며, 이로 인하여 그들 중에 나쁘고, 나쁘지 아니한 것을 알게 되어, 그 중의 착한 자를 가리어 조정에 추천하게 되었다’고 그 설치목적과 수양과정을 적고 있다.

이로써 화랑도의 설치는 인물을 양성하여 그 가운데 인재를 가려서 국가에 등용함을 목적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소기(所期)의 성과에 대해 《삼국사기》는 ‘현좌(賢佐:賢相)와 충신이 이로부터 솟아나고, 양장(良將)과 용졸(勇卒)이 이로 말미암아 나왔다’고 하였다. 그 설치연대에 대해서 《삼국사기》에는 576년(진흥왕 37)이라 하였으나, 562년에 이미 화랑 사다함(斯多含)이 대야성(大耶城:高靈)을 공격하여 큰 공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음으로 보아 신라는 이때에 이르러 이전부터 있었던 미비된 상태의 청소년 집단이던 화랑도를 국가조직 속에 편입시켜 무사단의 성격으로 강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화랑도는 처음에 남모(南毛) ·준정(俊貞) 두 미녀를 뽑아 이를 원화(源花)라 하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조직하여 300여 명의 무리가 모였으나, 이 두 여단장은 서로 시기하다가 준정이 남모를 자기 집으로 유인하여 억지로 술을 권해 취하게 한 뒤 강물에 던져 죽여버렸다. 이 일이 발각되어 준정도 사형에 처해지고, 그 무리들도 화목을 잃어 해산하였다. 그 후 나라에서는 귀족 출신의 외양이 잘생기고 품행이 곧은 남자를 뽑아 곱게 단장하여 이름을 화랑이라 하여 받들게(단장으로) 하자 무리가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이로써 화랑도에는 그 지도자에 화랑이 있고 그 밑에 낭도가 있었는데, 초기의 화랑도는 조직도 미미한 것이었으나 576년 이후 국방정책과 관련하여 이를 관에서 운영하게 되면서 총지도자에 국선(國仙:源花 ·花主)을 두고 그 밑에 화랑이 있어 각각 문호(門戶:編隊)를 맡았다. 화랑도의 총지도자인 국선은 원칙적으로 전국에 l명, 화랑은 보통 3∼4명에서 7∼8명에 이를 때도 있었으며, 화랑이 거느린 각 문호의 낭도는 수천 명을 헤아렸다.

화랑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① 소도제단(蘇塗祭壇)의 무사(武士)들이 화랑도화하였다는 설(申采浩), ② 조선 고유의 신앙단인 부루교단(敎團)에서 연유하였다는 설(崔南善), ③ 원시 미성년집회에서 연유하였다는 설(李基白) 등이 있다. 화랑도는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에 우리의 옛 사회에는 소년들이 모이는 집이 있다 하여 ‘소년유축실(少年有築室)’이라 한 바와 같이 대체로 원시시대 이래로 촌락 또는 부족단위로 일정한 연령층의 청소년들이 모여 단체생활과 공동의 의식(儀式)을 수행하면서 사회의 전통적 가치와 질서를 터득하고 동일한 이상을 추구하며 가무와 무예를 익히던 연령급단조직(年令級團組織)이, 신라의 국세(國勢)가 팽창하여 부족집단의 규모를 넘어선 정치 ·군사조직으로 발전하자, 확대된 영역과 인구를 지닌 새로운 국가적 발전에 뒷받침될 인재의 양성을 목적으로 재편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화랑도는 그 조직과 수양과정을 통하여 ① 위로는 국가를 위하고, 아래로는 벗을 위하여 죽으며, ② 대의(大義)를 존중하여 의에 어그러지는 일은 죽음으로써 항거하고, ③ 병석에서 죽는 것을 꺼리고 국가를 위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함을 찬양하며, ④ 오직 전진이 있을 뿐, 물러섬을 부끄럽게 여겨, 적에 패하면 자결할지언정 포로가 됨을 수치로 아는 등 독특한 기질과 기풍을 연마, 함양하였다. 또한 원광법사(圓光法師)가 귀산(貴山) ·취항(蕭項) 두 화랑에게 주었다는 세속오계(世俗五戒:事君以忠 ·事親以孝 ·交友以信 ·臨戰無退 ·殺生有擇)가 화랑의 정신적 기저(基底)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화랑의 기풍은 당시 신라의 종교적 정신세계가 받쳐주었다. 그것은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 서문(鸞郞碑序文)에 나타나, 그는 ‘우리 나라에는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다. 이를 풍류(風流)라 하는데, 이는 삼교(三敎:儒敎 ·仙敎 ·佛敎)를 포함한 것으로, 모든 민중과 접촉하여 이를 교화하였다. 그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니, 이는 공자(孔子)의 가르침이며(儒敎), 또한 모든 일을 거리낌없이 처리하고, 말을 아니하면서 일을 실행하는 것은 노자(老子)의 가르침이며(仙敎), 모든 악한 일을 행하지 않고, 착한 행실만 신봉하여 행하는 것은 석가(釋迦)의 교화(佛敎)’라 하였다. 실상 화랑도에게 일종의 수호신같이 숭배되었던 미륵존(彌勒尊)이나, 낭도 중에 승려가 많았으며, 승려가 화랑의 집회에 관계하였다는 점 등은 화랑도와 불교와의 관련을 말하여주는 것이다.

또한, 신선(神仙)사상을 좋아하던 진흥왕이 화랑도를 창설하면서 나라를 흥하게 하는 데는 반드시 풍월도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최치원이 말한 신라 고유의 신앙인 풍류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밖에 화랑의 원유지이던 포석정(鮑石亭)이 국가의 제의(祭儀)와 결합되었고, 김유신 등 화랑의 출전(出戰)에 주술적(呪術的)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고대의 전쟁에는 주술적인 면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과 같이 화랑도에도 제의적인 면이 남아 있어, 화랑은 무장(武將)으로서 사령자(司靈者)의 성격도 겸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결국 화랑도는 전래의 청소년 연령급단조직에 통일전쟁을 위한 현실적 국가주의와 유불선의 보편적 정신세계를 융합, 건전한 청소년을 양성함으로써 신라의 삼국통일에 필요한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다. 성덕왕(재위 702∼732) 때 김대문(金大問)의 《화랑세기(花郞世記)》에는 낭도를 이끌었던 역대 화랑은 200여 명에 이른다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전하지 않는다.

이밖에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나 안축(安軸)의 《관동유기(關東遊記)》에 나오는 고성(高城) 삼일포(三日浦)의 단서(丹書) ·마애단서(磨崖丹書) ·36봉비(峰碑), 강릉(江陵) 한송정(寒松亭)의 사선비(四仙碑), 통천(通川) 총석정(叢石亭)의 애상비(崖上碑) ·동봉고갈(東峰古碣) ·동봉비(東峰碑) 등은 화랑의 유적을 알려주는 것들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나타난 대표적 화랑을 시대순으로 열거하면 사다함(斯多含) ·백운(白雲) ·설원랑(薛原郞) ·미시랑(未尸郞) ·김유신 ·김영윤(金令胤) ·근랑(近郞) ·죽지랑(竹旨郞) ·호세랑(好世郞) ·구창공(瞿浚公) ·거열랑(居烈郞) ·실처랑(實處郞) ·보동랑(寶同郞) ·관품(官品) ·문노(文努) ·보천(寶川) ·부례랑(夫禮郞) ·준영랑(俊永郞) ·기파랑(耆婆郞) ·김응렴(金膺廉) ·요원랑(邀元郞) ·예흔랑(譽昕郞) ·계원(桂元) ·숙종랑(叔宗郞) ·효종랑(孝宗郞) 등이 있다.

신라 말에 이르러 화랑이란 말은 쓰이지 않고 대신 선랑(仙郞) ·국선(國仙) 등으로만 불렸다. 고려에서도 화랑이란 말은 쓰지 않고 선랑은 팔관회(八關會)의 무동(舞童)을, 국선은 충렬왕 이후 양반의 군역(軍役)을 지칭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선랑 ·국선이란 말은 쓰지 않게 되고 화랑이란 말은 초기에 남무(男巫:覡)를 가리키게 되어 이를 ‘화랑이’라고 하였으며, 조선 중기 이후에는 무부(巫夫:兩中), 걸립승(乞粒僧)의 무동, 사당(寺堂)의 거사(居士) 등을 지칭하게 되었다.

화랑도는 그 창설로부터 삼국통일이 완성된 문무왕에 이르는 약 l세기 동안 융성하여, 삼국통일의 어려운 시기에는 강한 무사도정신으로 나타나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나, 통일 후 나라에 태평시대가 계속되면서 쇠퇴하여 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그 정신은 소멸되지 않고 고려와 조선에 이어 내려오면서 국난을 맞을 때는 의병 등의 의기로 치솟아, 오늘날에도 그 정신은 도(道)로서 재흥(再興)을 염원하는 소리가 높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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