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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1-11 (월) 23:09
분 류 사전3
ㆍ조회: 1262      
[현대] 신탁통치반대운동 (한메)
신탁통치반대운동 信託統治反對運動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채택된 한국신탁통치안에 대하여 범민족적으로 반대하였던 국민운동.

1945년 12월 27일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위하여 미소공동위원회(美蘇共同委員會)를 구성한다는 발표가 있자, 12월 28일 김구(金九)를 비롯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회합, 반탁과 즉각 독립을 내걸고 반탁운동의 선두에 나섰으며, 12월 29일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결성됨으로써, 전국적인 반탁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반탁운동은 민족감정을 자극,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었는데, 처음에는 좌·우익을 막론하고 모두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문제를 놓고 좌·우익의 의견이 크게 대립, 끝내 결렬되자 인민공화국과 조선공산당으로 대표되는 좌익은 태도를 바꾸어 46년 1월 민족주의민족전선을 결성,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정을 지지함으로써 신탁통치를 통해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좌익계열의 이탈로 말미암아 통일된 전민족적 반탁운동에 균열이 생겼으며 갈수록 좌우분열은 심화되었다. 그리고 신탁통치문제를 둘러싼 찬탁·반탁의 두 갈래 흐름은 이후 1947년 8월 미소공동위원회가 완전히 결렬, 신탁통치가 완전히 포기될 때까지 한국 근대정치사에 있어서 주된 논쟁점이 되었다.

사실상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정은 <신탁통치와 임시정부 수립 및 그를 통한 독립>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신탁통치문제를 둘러싸고 반민족친일세력과 민족세력간의 대립구도가 좌·우익간의 대립구도로 바뀌고, 김구 등의 통일정부수립 노력이 이승만(李承晩)의 남한 단독정부수립노선에 의해 좌절됨으로써 결국 신탁통치안은 친일분자 및 우익세력에게 도덕적 명분을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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