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1-30 (일) 07:01
분 류 사전3
ㆍ조회: 1432      
[현대] 북한-문화1 (민족)
북한(문화1)

세부항목

북한
북한(정치1)
북한(정치2)
북한(경제)
북한(사회1)
북한(사회2)
북한(문화1)
북한(문화2)
북한(전망)
북한(참고문헌)

1. 언어·문자

[정책]

오늘날 북한에서 쓰이고 있는 우리말과 글은 그 형태와 뜻에 있어서 남한에서의 그것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의도적이고도 체계적인 언어정책을 적극 펴온 데서 비롯되었다. 북한에서는 언어가 지닌 의사소통의 기능 또는 민족을 특징짓는 요소뿐만 아니라 혁명의 무기로서의 기능도 중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언어의 혁명성·계급성·투쟁성을 강조함에 따라 인위적이고 적극적인 언어정책을 펼쳐왔다.

8·15광복 이후 북한에서도 한글과 한자를 혼용했으나 1949년부터는 한자사용을 폐지하고 한글을 전용,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글전용은 한자어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한글로만 표기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낳아서, 북한은 말을 쉽고 간결하게 다듬는 언어정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처음에는 어려운 한자말과 일본말 찌꺼기들을 대상으로 하여, 기본적인 한자어는 그대로 쓰되(예:동서남북·강산) 어려운 한자어는 고유한 우리말로 다듬기 시작하였다(예:근래→요즘, 독백→혼잣말). 그 뒤 북한은 1966년부터 우리말찾기와 국어순화운동인 ‘문화어운동’을 전개하였다.

‘문화어’라는 것은 남북한이 광복 전까지 함께 사용하던 서울말 중심의 표준어를 대신하여 사용한 평양말을 가리키는데, 북한은 이 문화어를 서울말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면서 정치적 의미까지 부여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북한은 서울 표준어에 부르주아적 요소와 복고주의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면 사람들의 의식 속에 ‘반동적 부르주아사상’과 봉건·유교사상을 비롯한 온갖 낡은 사상이 머리를 쳐들게 될 것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에 맞고 김일성이 몸소 쓰는 우리말, 즉 문화어를 써야 한다고 했으며 1997년 문화어는 김일성민족어로 규정되었다.

[실태]

북한은 ‘문화어운동’을 통하여 한자말 사용을 억제하고 있으며, 쓰지 않는 한자말은 한어(漢語)사전에만 올리고 국어사전에서는 빼고 있다. 또 외래어는 가급적 우리말로 고쳐 쓰되, 다른 나라의 고유명사는 그 나라의 발음대로 쓰고 있다. 그리고 방언을 포함한 고유어를 근거로 고장이름이나 각종 용어들을 고쳐 쓸 뿐만 아니라 우리말 어근(語根)에 따라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는 데 주력하고 있다.

맞춤법에 있어서는 광복 이후 10년 동안은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사용하여 남북한간에는 철자법에서 차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1954년 북한이 종래의 맞춤법에 적지 않은 수정을 가한 〈조선어철자법〉을 제정, 우리말의 전통적인 24자모를 부정하고 40자모를 채택하는가 하면 두음법칙을 폐지하는 등 외형상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 뒤 1966년 가로쓰기를 원칙으로 하며 맞춤법·띄어쓰기·문장부호법·표준발음법 등에서 다시 수정을 가한 〈조선말규범집〉을 채택함으로써 그 틈은 더욱 벌어졌다. 오늘날 북한에서 사용하고 있는 철자법에서 남한의 그것과 다른 점 가운데 두드러진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자모에 있어서, ㄲ·ㄸ·ㅃ·ㅆ·ㅉ·ㅐ·ㅒ·ㅔ·ㅖ·ㅚ·ㅟ·ㅢ·○·ㅝ·ㅙ·ㅞ의 복음자모를 포함시켜 40자모로 하고, 그 명칭도 ㄲ(된기역)·ㄸ(된디귿)·ㅃ(된비읍)·ㅆ(된시읏)·ㅉ(된지읏)으로 바꾸었다. 또 차례에서도 ㄲ·ㄸ·ㅃ·ㅆ·ㅉ과 ㅏ·ㅑ……ㅡ·ㅣ의 홀소리 글자를 ‘ㅎ’ 다음에 두고 ㅐ·ㅒ·ㅔ……ㅞ를 맨 뒤에 두었다. 따라서 ‘깨’는 ‘ㅎ’낱말 다음에서, ‘웽웽거리다’는 사전의 맨 뒷장에서 찾아야 한다.

둘째, 한자말 적기에서 두음법칙을 없애고 본디 소리대로 따라 ‘녀자·락원·로동·류월·리성’ 등으로 적고 읽는다. 또 한자어에서 모음 ‘ㅖ’가 들어 있는 음절로는 ‘계·례·혜·예’만을 인정한다. 그에 따라 肺·閉(폐) 등은 ‘페’로 적는다. 셋째, 사잇소리가 나는 말에 사이시옷(ㅅ) 따위는 적지 않고 ‘시내가·기발·일군·리과’ 등으로 적되, 읽기는 된발음으로 읽는다.

넷째, 어간모음이 ㅣ·ㅐ·ㅔ·ㅚ·ㅟ·ㅢ인 경우는 어미를 ‘여(엿)’로 적는다. 즉, 비여(였다)·개여(였다)·세여(였다)·희여(였다)·쥐여(였다) 등이다. 다섯째, 띄어쓰기에서 불완전명사는 그 앞 단어에 붙여 ‘칠것’, ‘한시간’, ‘먹을수 있다’·‘종을 칠것’ 등으로 한다. 여섯째, 한자어 가운데 잘못 비롯된 소리를 그대로 읽고 적는다. 예컨대, 개전(改悛)→개준, 객혈(喀血)→각혈, 발췌(拔萃)→발취, 사주(使嗾)→사족, 오류(誤謬)→오유, 왜곡(歪曲)→외곡, 준설(浚渫)→준첩, 퇴고(推敲)→추고, 표지(標識)→표식 등이다.

한편 북한은 정무원 직속으로 설치된 국어사정위원회의 통제 밑에 1966년 이래로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산하 18개 용어분과위원회를 통하여 문화어운동에 따른 용어제정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때부터 우리말은 두 갈래로 갈린 셈이 되었고 남북한 사이에는 언어의 차이가 심화되고 있다.

예컨대, 이질화된 어휘를 보면 같은 말을 사용해도 뜻을 전혀 달리하거나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언어, 또는 같은 뜻을 지녀도 표현방법이 다른 언어들이 늘어가고 있다. 또 형태는 다르지만 뜻이 같거나(예:채소→남새, 무질서하다→무연하다), 형태는 같으면서 뜻이 다른 어휘도 많다(예:어버이·빨치산). 이 밖에 북한은 남한에서 훈민정음을 반포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는 것과는 달리 1월 15일을 ‘훈민정음 창제일’로 기념하고 있다.

2. 학술·사상

[학술연구의 정책과 실태]

북한의 학술연구에 대한 정책은 1946년 3월에 발표된 ‘20개정강’에서 최초로 언급된 이후, 주로 김일성 발언에 의해 그 방향이 여러 차례에 걸쳐 밝혀져 왔다. 이들 발언대로라면 북한의 학술연구는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을 막론하고 사회주의·공산주의 건설에 공헌해야 한다.

곧 사회과학은 당정책의 정당성을 논증해야 하고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사회현상들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 임무로 되고 있으며, 자연과학 역시 조선노동당의 주된 방침의 하나인 기술혁명을 발전시키는 데 주력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다. 이에 따라 북한에서는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주체를 철저히 세울 것이 학술연구의 입각점이 되고 있다.

이로 볼 때 북한의 학문은 이데올로기성과 과학성을 구분하지 않는 ‘당적인 과학’이며 ‘계급적인 과학’이 된다. 이는 학술연구의 불편부당성(不偏不黨性)과 초계급성을 강조하는 ‘가치로부터의 자유’라는 관점에는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적인 과학’이니 ‘계급적인 과학’이니 하는 것은 공산세계의 일반적인 학문경향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더라도, 북한에서 당정책의 정당성을 논증하고 주체를 세워야 한다는 것은 북한의 권력구조상 당의 유일사상이라는 ‘주체사상’에 입각해야 하는 것을 뜻하게 된다.

예컨대 1975년 10월 조선노동당 창건기념일을 기해서 일제히 나온 ≪주체사상에 기초한 언어이론≫·≪주체사상에 기초한 문예이론≫·≪주체사상에 기초한 사회주의 교육이론≫·≪주체사상에 기초한 3대혁명이론≫·≪주체사상에 기초한 경제이론≫·≪주체사상에 기초한 사회주의 경제관리이론≫·≪주체사상에 기초한 공산주의이론≫·≪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이론≫ 등의 저작물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1972년 4월에 열렸던 전지역사회과학자대회에서 김일성이 북한 사회과학의 창시자이며 ‘위대한 스승’이라는 찬사가 나왔으며, 대회참가자들은 ‘맹세문’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김일성교시’를 각 학문 분야에서 구체화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즉 철학에서는 주체사상을 지침으로 삼아 사적유물론(史的唯物論)을 체계화시키고, 경제학에서는 사회주의 정치경제학과 김일성의 이른바 ‘사람과의 사상사업’을 접목시키고 있다.

또 역사학에서는 김일성의 당과 건설이론에 따른 투쟁경험을 일반화시킬 것을 맹세하고, 교육학에서는 김일성의 ‘사회주의 교육학’ 원리에 따라 후대들을 혁명가로 만들고, 문예학은 김일성의 주체적인 문예사상을 해설, 선전하여 노동자를 공산주의사상으로 무장시키며, 언어학에서는 김일성의 지시대로 서울말의 표준성을 거부하고 평양말을 발전시키겠다고 결의하고 있다.

1973년 4월의 북한 과학문헌에 따르면 사회과학자뿐 아니라 자연과학자들도 김일성의 ‘노작’과 ‘교시’를 연구하여 자기의 뼈와 살로 만들고, 거기에서 연구의 방향과 방도를 찾을 것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자연과학의 논문에서도 주제와 관련된 김일성의 말이 모두(冒頭)에 인용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김일성 사후에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1990년대부터는 철학논문에도 김정일의 말이 인용되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밝히신 혁명의 본질에 관한 사상이론〉(철학연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98년 제1호)과 같이 김정일의 말을 동어반복적으로 해설하고 있음은 김일성시대처럼 여전하다.

북한의 학술연구기관으로는 중요 대학에 설치된 연구원·박사원 외에 종합연구기관인 과학원·사회과학원·교육과학원·의학과학원·농업과학원 등이 있다. 과학원은 1952년에 설립되었으며 1994년 국가과학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998년 환원되었다. 산하에 3개 연구원, 220여 개 연구소와 1개 분원이 있다.

사회과학원은 1964년 2월 과학원에서 분리되어 설치되었으며, 북한의 사회과학 연구의 방향제시와 지도, 간부급 사회과학자의 양성, 대외활동 및 간행물 출판을 하고 있다. 산하에 고고학연구소·경제연구소·역사연구소·언어학연구소·법학연구소·철학연구소·주체사상연구소·문학연구소·고전연구소 등 19개 연구소를 두고 있다. 교육과학원은 1963년 12월 설립되었으며, 산하에 교육학 및 심리학연구소·일반교육연구소·기술교육연구소·교편물 및 실험기구설계연구소를 두고 있다.

이러한 학술연구기관에 대한 지도체계는 당과 행정기구에 의하여 이중관리되고 있다. 당 과학교육부가 각 연구기관들을 지도·감독하면서 연구과제를 결정하며, 내각 교육성이 당의 결정을 구체화하여 연구기관에 연구과제를 배당·부과하는 한편, 운영을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체계에 따른 사회과학의 몇몇 학문 분야별 연구동향은 다음과 같다.

(1) 철학

초기의 북한 철학계에서는 소련 과학원 발행의 마르크스철학 해설서가 연구와 교육의 지침이 되었으며, 철학계의 학문적 관심도 북한의 현실을 마르크스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광복 이후 6·25전쟁 전까지 철학계의 중심 연구과제는 조선혁명의 성격에 관한 것이었고, 휴전 이후에는 토대와 상부구조에 관한 논쟁을 비롯하여 평화공존에 관한 문제, 봉건사회로부터 공산주의사회로의 비약적인 이행 가능성, 우리 나라에서의 유심론 철학의 발생과 발전에 관한 문제 등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1960년대에는 중소분쟁의 노골화와 관련하여 ‘주체확립’·‘자주노선’의 정당성을 논증하는 데 주력하여 우리 나라 철학사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때부터 소련 철학서를 번역한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유물론≫ 같은 책에 김일성의 말이 인용, 삽입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저술로는 정진석·정성철·전창원의 ≪조선철학사≫와 최봉익의 ≪조선철학사상사연구≫가 있다. 이들 연구서는 우리 나라 철학사를 관념론에 대한 유물론의 투쟁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순수한 철학적 사유 외에 계급투쟁의 정치사상·경제사상까지 연구대상으로 삼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비학술성은 196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우상화와 결부되어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오늘날에도 북한철학계의 연구논문은 주체사상과 혁명이론의 독창성과 창조성을 강조하고 해설, 선전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가령 북한의 ≪철학 논문집≫ 20권(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3.4.)을 보면 〈최한기의 인식론 연구〉를 제외한 나머지 논문은 모두 사회주의 건설, 주체철학, 집단주의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김일성 사후 철학계에서 주목되는 것은 김일성 3년 탈상을 앞두고 김정일이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 데 대하여〉(1997.6.19.)를 발표한 것이다. 이 논문의 골자는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자.”는 데 있지만, 민족성과 민족주의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함으로써 향후 북한의 모든 정책기조가 주체성과 민족성을 근간으로 삼아 전개되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2) 역사학

광복 후 10년간 북한 역사학계의 주된 관심은 세계사의 유물사관적 서술을 한 소련 역사학의 방법을 본뜨는 데 있었다. 이에 따라 우리 민족사의 유물사관적 해석에 주력함으로써 우리 나라에도 노예사회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문제 같은 것이 논쟁거리로 되었다. 1950년대 중반 이후에는 실학사상에 대한 광범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정약용의 사상이 유물론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하였다.

이 시기에 출간된 과학원 역사연구소의 ≪조선통사≫(3권)를 보면, 사회발전 5단계법칙에 따라 우리 나라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는 한편, 또한 대외항쟁사로만 파악하고 있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북한 사학계는 우리 나라 근대사와 현대사 연구에 주력, 김일성의 항일투쟁 경력과 그가 내놓은 사회주의 건설이론 및 경험을 이론화하는 데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연구경향은 날이 갈수록 보다 심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북한 사학계는 1973년 파리 동양학자대회에서, 한반도에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가 독자적으로 존재했음이 증명됨에 따라 한반도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고 발표하여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역사학 연구에서는 고고학 분야의 연구가 비교적 활발하여 전기구석기시대의 유적 발굴 외에 신석기·청동기시대의 주거지와 100기의 고구려 고분, 그리고 성지 등을 발굴하는 등 다채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에서도 이데올로기적 당파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예컨대 고구려 고분벽화 발굴을 통해 평양 중심의 고구려문화를 신라·백제에 비해 크게 부각시키려고 의도하는가 하면, 문화적 우수성보다 계급투쟁적 관점에서의 해석과 평가에 치중하여 왔다.

최근의 역사학 동향으로 주목할 것은 단군의 역사인물화이다. 주지하듯이 그간의 북한 역사학에서는 단군의 존재가 부인되었다. 광복 이후 북한에서는 단군이 신화상의 존재일 뿐이었다.
1957년 역사학자 정희영에 의해 단군조선 시인과 단군신화의 의미 부여가 있었지만 전장석을 비롯한 많은 북한학자들은 이를 ‘고루한 민족주의’로 비판하였다. 1950년대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노예제 결여설’이 우세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원시공동체에서 노예제를 거치지 않고 바로 봉건사회로 넘어갔다는 주장이 지배하던 때여서 정희영의 노예소유를 전제로 한 단군조선설은 용납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김석형(金錫亨)·임건상(林建相)·정찬영 등이 우리 나라 역사에서 노예제 사회를 인정하면서 고조선·부여·진국(辰國)을 노예제 국가로 보았다. 이로써 단군은 신화상의 존재로서라도 인정이 되었지만 이지린(李趾麟) 등의 주장에 의해 여전히 고조선의 건국 시조는 아니었다. 이러한 단군인식에 근거하여 북한은 한국에서의 단군국조설과 홍익인간정신 숭상에 대해 ‘인민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며 배타적인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해 왔다.

그러나 1993년 10월 북한 사회과학원은 단군릉 발굴조사 사실을 발표하면서 단군은 5011년 전에 실재했으며 평양에서 고조선을 세웠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은 이 발굴보고에 이어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학술발표회를 개최(1993.10.)하였고, 이후 간헐적으로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이 일련의 학술발표회에서 발표된 논문내용은 ① 단군 유골조사를 통해 단군이 5011년 전에 있었던 실제 인물이고, ② 단군이 오늘의 평양에 세운 고조선이 우리 나라의 첫번째 고대국가이며, ③ 오늘의 평양은 단군의 출생지이자 건국지이며, 또한 고조선의 수도로 인류발상지의 하나이고 조선민족의 발상지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처럼 북한이 단군을 신화의 주인공에서 국조이며 민족의 시조로 만든 것은 정권의 정통성 확보 의도와 관련된다고 보겠다.

(3) 민속학

북한은 민속학을 역사과학의 한 분야로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민속학의 과제는 과거의 전통문화를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새로운 의미와 해석에 따라 재구성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민속학에서는 민족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계급적 원칙을 떠난 무조건적 복고주의는 배격하고 새로운 사회주의적 문화의 생활풍습을 생성, 발전시킬 것을 촉진시키는 방향에서 연구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민속학계는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에 걸쳐 300여 종의 민속조사사업을 벌였다. 그 결과 1964년 조선의 민속놀이 62종을 정리하여 소개하였다. 여기에는 가무놀이 16, 경기놀이 15, 겨루기 11, 아동놀이 20종이 포함되어 있으며, 북한은 이 민속놀이에 대해 인민성이 풍부하고 노동의 즐거움과 생활의 기쁨을 반영하고 있으며, 집체적 성격이 강해서 단결과 투쟁에 고무적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북한에서 민속학은 공산정권 수립 초기에는 복고주의와 봉건적 잔재를 불식(拂拭)한다는 정도로 평가되었으나 최근에는 공산주의와 민족사를 결부시키려는 의도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4) 경제학

경제학계는 초기에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확립과 공산당의 경제정책, 예를 들면 토지개혁이나 각종 경제계획의 수립에 필요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며, 그 실행과정에서 제기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연구에 주력하였다. 특히 8·15광복 이전의 우리 나라 사회·경제 구성에 관한 이론연구에 집중하였는데, 그 결과 토지개혁이 낡은 자본주의제도를 폐기하는 데 필수불가결의 정당한 행위임을 논증하는 데 주력하였다.

경제학계는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론적인 문제보다 당장 경제현실에 도입할 수 있는 실천문제에 주력했고, 1963년 이후에는 농업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또 경제사 연구에서는 봉건 말기의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논쟁을 계속하였다. 그 뒤 1960년대 말부터는 다른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김일성의 경제사상과 경제이론을 해설, 선전하는 데 치중하여, 북한경제학은 ‘당의 경제학’에서 ‘김일성의 경제학’으로 변모되었다.

현재 북한의 사회주의경제이론의 해설은 당에 의해 독점되어 있고, 경제학자의 연구는 이 해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구자의 독자적인 논리 전개가 없는 학문풍토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경영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부분적으로 소련·동구권에서 실시되고 있는 리베르만방식에 의한 이윤추구와 독립채산제에 대해 초보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5) 교육학 북한에서의 교육은 처음부터 ‘혁명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고 ‘공산주의 교육은 정치교육’이라는 구 소련의 교육관에 입각해서 교육목표가 세워졌기 때문에 교육학도 마르크스-레닌주의 교육이론에 따라 수행되어 왔다.

따라서 북한의 교육학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교육의 기술적 문제해결에 기여한다는 차원의 학문이며, 공산주의교양과 계급교양이 종국적인 목표로 제시되었다. 즉, 기존의 이론을 뒤엎는 새로운 교육이론이 제시되어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실천적인 방법연구에만 주력하는 것이다.

오늘날 북한은 교육에 대한 김일성의 견해를 ‘사회주의교육학’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깊이 연구하고 널리 해설, 선전하는 것을 교육학의 연구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곧 교육학 연구의 대상이 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김일성·김정일의 의견인 것이다. 몇몇 학문 분야의 개괄적인 연구동향에서 보듯이 북한의 학술연구는 그 자체가 자기완결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학자 개인의 탐구욕에 의한 연구결과를 당이 정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책화를 위해 연구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학술연구 풍토에서는 ≪철학논문집≫·≪문예논문집≫·≪언어학논문집≫·≪고고민속논문집≫·≪경제논문집≫·≪법학논문집≫·≪수학과 물리≫ 등의 전문학술지와 논문집이 발간되고, ≪조선왕조실록≫이 번역, 출간되며, ≪조선전사≫·≪조선유적유물도감≫(전20권)·≪조선지리전서≫(30권)가 발간되었다고 하더라도 학문의 정치에 대한 시녀성(侍女性)은 면하기 어렵다.

[사상]

북한에서는 광복과 더불어 ‘소련을 따라 배우자.’라는 구호처럼 모든 사유와 행동의 준칙이 구 소련의 영향 밑에서 마련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주체사상이 등장하면서 북한의 모든 사상체계는 주체사상으로 단순화되고 있다. 주체사상이 하나의 사상으로서의 체계를 갖추고 있는가 없는가를 떠나, 그것은 오늘날 북한에서 배타적인 유일사상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산주의국가에서는 사상이나 정치 이데올로기가 당에 의해 유일적으로 채택되고 해석의 독점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그것이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라는 목표 밑에 이미 죽은 한 사람에만 의거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우주관·자연관·혁명관·사회정치관·윤리관·인생관 등 모든 가치관과 인식의 준거가 주체사상적 관점에서 일색화되고 있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당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실정에 맞도록 창조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주장되었으나, 1975년 이후부터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독창적인 사상체계라고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주체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태내(胎內)에서 생성된 것인지, 아니면 마르크스유물사관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사상체계인지에 대해 북한은 애매하게 표현하고 있다.

때로는 주체사상이 현재와 미래의 가장 과학적인 세계관을 밝혀준 마르크스철학의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사상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주체사상에 따른 혁명관이나 세계관이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다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서, 지금은 마르크스와 레닌이 혁명을 하던 시대와 다르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주체사상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중심개념으로 삼고 있다. 얼핏 보아 이 원리는 사회발전과정 또한 인간의지와는 관계없는 자연사적 과정으로 규정하는 유물사관에 어긋난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은 마르크스나 엥겔스가 이미 사람의 의식이 물질에 반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논리이다. 다만 북한의 실정에 맞추어 인간의식의 물질에 대한 반작용을 좀더 강조했을 따름이다.

북한의 철학서들이 물질의 선차성과 의식의 부차성에 근거하여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을 논증하면서, 이 합법칙성은 사람 중심의 ‘주체철학’에서도 정당하다고 서술하고 있는 데서도 이 점은 확인된다. 북한의 철학서에 의하면 사람 역시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이며, 사람을 중시한다고 해서 사람의 의식이 선차적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또한 주체사상의 기초원리가 함의(含意)하고 있는 자주성·창조성·의식성 역시 일찍이 마르크스나 레닌에 의해 언급되었던 개념들이라는 점에서, 주체사상은 아무리 마르크스철학의 태내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더라도 김일성의 독창품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주체사상은 학문적 사상으로 출발하지 않고 대내통치와 대외관계의 전술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모방적인 통치 이데올로기의 성격이 강하다.

김일성 사후의 오늘날에도 북한 주민의 모든 사고는 주체사상에 의해 규율되고 있다. 그리하여 주체사상 이외에는 어떠한 사상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주체사상은 북한에서 모든 사고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것으로 찬미되고 있다. 심지어 인간의 아름다움을 규정하는 근본요인을 역사상 최초로 밝힌 것조차 주체사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문맥에서 북한 주민에게는 모든 것을 주체의 요구대로 해야 하며, 주체사상에 따라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일이 삶의 목적이자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하여 주체사상을 제시한 김일성은 ‘살아 있는 신(神)’이 되었던 것이며 죽은 뒤에도 영생하고 있다고 주장된다.

북한은 김일성 사후 ‘김일성을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받들어 모셔야 한다.’면서 평양에 김일성영생탑(92.52m)을 세우고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 연호를 제정하였다. 그리고 김일성민족·김일성조선·태양민족·태양국이라는 신조어를 쓰면서 김일성 생일을 태양절로 정하였다.

나아가서 김일성에 대한 믿음을 내면화시키기 위하여 육체적 생명보다 정치적 생명을 중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정치적 생명은 혁명에 대한 정신적 풍모에 따라 결정되며, 이 정신적 풍모의 높이는 김일성에 대한 충실성의 정도에 따르는 것으로 규정되고 있다. 결국 북한 주민에게 있어서 삶의 행복은 김일성이 바라고 당이 의도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된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이것이 정치적 생명을 가지는 것이 된다. 따라서 물질적 만족이나 이기심의 충족보다는 집단에의 충성과 혁명에 가치를 부여하는 주체의 인생관 확립은 김정일 시대에도 여전히 요구되고 있다. 이것은 혁명관·윤리관·인생관 등 북한사회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있어서 가치관과 의식구조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林采郁〉

3. 과학기술

[정책]

북한의 과학기술은 소련으로부터 영향받은 기술제일주의와 일제시대부터 기반이 닦여진 공업시설, 그리고 비교적 풍부한 지하자원을 토대로 발전되어 왔다. 북한의 과학기술정책 방향은 자체 부존자원과 기술인력에 의거한 ‘주체과학’을 실현하려는 데 있으며, 기술혁명을 통한 과학기술 발전, 자체 실정에 맞는 선진과학기술의 도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부존자원 개발 및 이용의 극대화 방안을 비롯하여 기계·전자·자동차공업 발전과 생산의 자동화·로보트화·전자계산기화 등 기술현대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북한의 과학기술은 1990년 이전까지가 기반을 다지는 시대였다면, 1991년∼1994년의 제2차 과학기술발전 3개년계획은 첨단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이 계획에는 전자공학을 비롯하여 열공학·생물공학·기계공학·화학·새로운 재료 등 6개 부문, 15개 종합과제, 44개 대상과제를 내놓아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가진 듯하였다.

그래서 3개년계획이 끝나기도 전인 1992년경 2000년까지의 새로운 과학기술발전 전망을 하였는데, 이 안에는 첨단기술과제 7개와 실용기술과제 49개 등 56개 과제 이외에 4개 기초과학으로 수학·물리학·생물학·화학을 더욱 발전시킨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과학기술자 수를 인구 1,000명당 1명 수준, 박사를 30배, 준박사를 15배, 연구개발투자도 매년 1.5배씩 증액시켜 2000년까지 GNP대비 5%를 돌파하겠다는 의욕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북한의 과학기술은 구조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그 동안 ‘주체과학’의 입장 때문에 선진 제국과의 실질적인 과학기술 교류가 부족하고 최신 연구설비가 빈약할 뿐만 아니라 응용연구에만 치중하여 기초과학에 대한 지식이 전반적으로 뒤떨어져 왔다. 최근에 이르러 ‘주체과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소련·일본·미국 등으로부터 선진과학기술 자료를 수집하는 한편, 자체 과학기술 연구수준을 높이려는 환경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실태]

북한의 과학기술은 경제 침체로 인하여 2000년까지의 과학기술 발전과제는 성공한 것이 전무할 정도이다. 다만 첨단기술과제 중 핵동력으로 우라늄 효과의 이용을 제고시킨 것은 핵사용목적으로 집중 개발하였기 때문에 성과를 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첨단기술과제 중 메모리 집적도는 진척이 없는 편이지만, 정보기술의 전자계산기망의 구축노력은 가시적이며, 정보산업은 전자자동화공업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비교적 활발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컴퓨터관련 기관은 1990년 10월 조총련의 지원을 받은 조선컴퓨터센터, 평양정보센터가 있고, 각 주요 대학에 컴퓨터센터가 설립되어 있다.

1998년 신학기부터는 대학의 컴퓨터 프로그램학과의 증설과 함께 고등학교 2학년 이상 전학생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대학생 컴퓨터 경연대회 등 각종 컴퓨터프로그램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1999년 11월 단과대학 수준인 컴퓨터과학대학이 신설되었고, 2000년에는 평양컴퓨터기술대학·함흥컴퓨터기술대학이 신설되었다.

일반 기술 분야는 1989년 10월 완성한 1만t 프레스 외에는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 그 밖에 연료 및 전기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메탄가스 등 대용연료 개발과 2002년까지 2,000개의 중소형 수력발전소와 소형 풍력발전소 건설이 주목된다. 그러나 자전거를 이용한 발전기를 평양철도국에서만 1998년 3월 한 달에 200여 개를 건설하였다고 발표한 것은 북한 과학기술의 발전현황을 가늠하게 하는 것이다.

북한의 과학기술연구체계는 구 소련의 형태를 모방하여 발전하여 왔다. 따라서 주요 연구기관은 정권기관의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과학기술행정은 당과 내각의 이원화체계로 되어 있다. 당에서는 조선노동당 과학교육부, 내각에서는 교육성·경공업성·보건성·농업성·과학원 등이 산하 연구기관을 관장하고 있다.

주요 연구기관으로는 과학원·경공업과학원·농업과학원·의학과학원·국방과학원·원자력연구단지를 비롯하여 각 대학 연구소와 정무원의 각 부처 산하연구기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북한의 연구기관을 대표하는 과학원은 설계연구소 등 220여 개 연구소와 함흥분원, 철도·석탄·건설건재 등 10개의 연구분원, 그리고 천문대 등을 설치하고, 과학기술 연구개발과 선진과학기술 도입, 창의 및 발명품에 대한 시험과 시제품 생산, ‘국가 학위·학직’ 수여 등을 맡고 있다.

이 밖에 북한은 1976년 평안남도 도청소재지인 평성시를 종합과학도시로 건설, 과학연구의 단지화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 과학기술의 분야별 연구실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기초과학 분야

수학에서는 응용수학의 연구에 치중하여 해석학의 연구수준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최근 전자계산학을 비롯하여 수치계산법·회로이론·통계학·게임 및 최양성판정 등 현대산업과 연관된 새로운 분야에 연구의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자유진영국가에서 많이 연구되는 위상수학(位相數學)은 거의 없는 편이다.

물리학에서는 1970년대 중반보다 반도체나 초음파·유체역학에 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으며, 레이저와 플라스마, 광학 등 최신과학에 대한 연구과제도 발표되고 있다. 실험물리학 측면에서는 반도체 및 결정체에 관한 것이 주종을 이루며, 자동차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물성론 연구와 인조금강석 등 초경질물(超硬質物) 합성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다.

핵물리학은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핵에너지 스펙트럼’ 등에 관한 연구논문도 발표되고 있다. 화학연구에서는 대부분 초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그 동안 자체 자원에 의거한 연구 결과 암모니아합성·비닐론·염화비닐·메타놀합성 등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1980년 이후에는 석유화학과 유기합성공업에 관한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 응용과학 분야

기계공학에서는 해석학적 연구를 위주로 하여 장치에 대한 설계 분야 연구보다는 기초역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그 중에서도 재료역학·유체역학·진동역학·기구동력학에 대한 연구논문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금속공학의 연구수준은 높지 않으나 비교적 다양하고 많은 연구가 추진되고 있다. 대부분 탐광 및 선광에 관한 연구논문이 발표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특수강·합금강 연구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는 군수장비 개발과 공작기계의 질적 제고를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공학에서는 북한의 풍부한 전력자원을 반영하듯이 생산현장에서 제시된 문제점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실제적인 데이타를 활용함이 없이 일반모형이나 기본적인 회로를 중심으로 한 연구에만 머물러 있다. 최근에는 저질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 개발, 전기절감 공정문제 등의 연구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전자공학에서는 자동차공업에 필요한 전자관·자성체·저항축전기와 반도체·전자소재 및 소자(素子)의 연구가 비교적 활발하다. 그러나 반도체 연구는 산업실용화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주파수증폭기·전압안정기·전자기 기억장치 등 기기류(機器類) 개발연구에서는 설계와 작동에서의 문제점 탐구에 집중되고 있다.

토목공학에서는 북한이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농업용지 간척사업과 그 이용, 수력발전소 건설, 관개용댐 건설의 설계 등에 관한 기초연구 및 응용개발연구가 대부분이어서 대형 토목사업계획이나 구조기술연구는 등한시되고 있다. 건축 분야에서는 구조역학 및 설계를 비롯하여 건축부재 생산 등 건축생산학, 조립식 시공을 위주로 한 건축시공학 등이 취급되고 있으나 초보적인 단계의 이론문제를 다루는 연구가 대부분이다.

농학 분야에서는 이상기온과 한랭전선을 극복할 수 있는 농작물 육종, 간척지 토양의 변화과정이나 제염(除鹽) 방법 등에 관한 연구가 추진되고 있다.

컴퓨터기술은 강성대국 건설의 방향에서 제시된 과학기술 중시정책에 따라 북한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현재 컴퓨터기술 분야에서는 컴퓨터 다매체기술, 문자인식, 음성인식, 화상인식, 인공지능방법에 의한 환경인식방법, 안내로보트 개발 등이 수준급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컴퓨터기술에 힘입어 평양·원산 등지에 컴퓨터로 책 대출을 하고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는 전자도서관도 운영되고 있다.

<임채욱ㆍ조재수ㆍ오양룡>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윗글 [현대] 경제개발계획 (두산)
아래글 [근대] 창가 (브리)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708 사전3 [근대] 주시경 (브리) 이창호 2003-05-20 1436
2707 사전3 [현대] 경제개발계획 (두산) 이창호 2003-12-15 1435
2706 사전3 [현대] 북한-문화1 (민족) 이창호 2003-11-30 1432
2705 사전3 [근대] 창가 (브리) 이창호 2003-05-21 1430
2704 사전3 [현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브리) 이창호 2004-01-16 1427
2703 사전3 [현대] 서정주 (브리) 이창호 2004-01-02 1426
2702 사전3 [현대] 대한체육회 (한메) 이창호 2004-01-10 1424
2701 사전3 [현대] 대한체육회 (두산) 이창호 2004-01-10 1422
2700 사전3 [현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민족) 이창호 2004-01-16 1420
2699 사전3 [현대] 국민체육진흥법 (브리) 이창호 2004-01-10 1419
1,,,31323334353637383940,,,303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