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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1-12 (수) 13:10
분 류 사전3
ㆍ조회: 1387      
[근대] 임화 (인물)
임화(林和 1908∼1953)

시인, 평론가, 좌익운동가, 카프(KAPF) 서기장, 정치인, 혁명가

1. 출생 및 성장

1908.10.13 서울 낙산(駱山)의 중산층 집안에서 출생. 형제관계 및 기타 가족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음. 본명은 인식(仁植). 필명은 성아(星兒), 임(林)다다, 쌍수대인(雙樹台人), 김철우(金鐵友), 청로(靑爐), 임화(林華).

문필활동을 시작한 1926년에 성아, 임(林)다다라는 필명을, 1928년부터 임화, 김철우, 쌍수대인, 청로 등의 필명을 씀. 보성중학(普成中學) 입학(1921), 고리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등 섭렵함 . 졸업 직전(5학년) 집안의 파산으로 중퇴(1925). 당해 모친사망 후 가출, 문학과 인연을 맺으며 다다이즘, 사회(공산)주의등 최신 유행 사상과 예술 사조를 접하게 됨.

매일신보와 조선일보에 시와 수필, 평론을 발표(1926. 1:성아(星兒)라는 필명사용)하고 잡지[학예사(學藝社)]의 주간을 거쳐 카프(KAPF) 가입(1926.12). 임화라는 필명을 쓰며 <혁토>, <화가의 시>, <지구와 박테리아> 등 다다이즘적인 성격의 시를 발표하는 한편, 정신분석학을 기초로 계급문학을 비판하는 글을 쓰다가, 서서히 무산계급문학에 관심을 보임.

[예술운동] 창간호(1927)에 계급의식과 국제주의 및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의지를 표방한 시 <(曇(담:흐릴 담) -1927년>을 발표하여 카프 진영과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은 이후 박영희(朴英熙), 윤기정(尹基鼎)과 교유하며 카프(KAPF) 중앙 위원에 피선(1928)됨.

영화와 연극에 참여(1928년 카프 정통의 영화부인 청복 키노(1930년 7월)가 제작한 김유영 연출의 <유랑(流浪)>, <혼가(昏街)> 등의 영화에 주연 배우로 출연). 카프 지도자 중의 하나인 김팔봉을 공격하는 논전 <탁류에 抗(항)하여>를 씀으로 써, 박영희(朴英熙)의 강경노선을 지지하여 카프의 주 논객으로, 계급성을 강조하는 박영희(朴英熙)와 형식을 중요시하는 김기진 사이에 벌어진 '내용과 형식 논쟁'시 김기진을 유화주의, 도피경향의 소유자로 비판·공격하고, 이후 벌어진 김화산 등 아나키스트와의 아나키즘 논쟁시 '일언하면 피등은 좌익문예가의 가면을 쓰고 대중에게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고자 하는 예술파적인 소시민의 근성을 발현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 일침한 후 김화산이 좌익 진영 내에 잠재하여 혼란을 획책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 조직내 아나키스트들에게 일격을 가하며 논쟁을 잠재우고 박영희(朴英熙)를 지지함으로써 카프내 이데올로기논쟁에서 주도권을 잡고 조직활동에 깊숙히 관여하게 됨.

1929년 <우리 옵바와 화로>, <네거리의 순이(順伊)>, <우산 밧은 요코하마(橫濱)의 부두>등의 단편 서사시 계열의 시를 발표, 경향시가 지향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대표적 프로 시인의 위치를 점함. 박영희(朴英熙)의 도움으로 동경유학을 떠남(1929).

일본 동경에서 무산자사(無産者社)를 경영하면서 카프 동경지부를 운영하고 일본 나프(NAPF)에 관계한 이북만(李北滿), 김두용과 교분을 나누며 이후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의 핵심인물들인 소장파 안막(安漠), 김남천(金南天), 권환(權煥) 등 ‘무산자파’ 그룹과 교유함. 첫 부인이 된 이북만의 누이동생 이귀례를 만나 동거 생활 시작.

이귀례와 결혼, 귀국(1931)한 뒤 이데올로기의 간접표현이 '극도로 재미없는 정세'의 타결책이 될 수 있다는 김기진의 주장을 후퇴주의이자 프로문학을 포기하는 패배주의라 비판하고 같은 동경유학생 김남천, 권환, 안막등 소장파의 지지를 얻어 카프의 분열을 수습하고 헤게모니를 장악, 카프를 볼세비키화로 재조직 하는 제2차 카프의 방향전환을 주도하며 서기국장에 피선 됨.

박영희, 김기진, 이기영, 윤기정, 고경흠 등과 공산당재건동맹을 조직, 지하당 재건을 획책한 혐의로 70여명이 검거되는 공산당 재건사건과 관련된 제1차 카프검거사건에 연류되어 검거되었으나 3개월간의 옥살이 후 불기소처분으로 석방됨(1931. 8. ~ 10). 딸 혜란을 낳음(1931.12).

카프의 조직원 전체를 검거하기 시작, 80여 명이 검거되고 이기영, 나웅, 송영, 한설야, 박영희(朴英熙), 권환, 김유영, 백철, 정청산(鄭靑山), 홍구(洪九), 윤기정, 이갑기(李甲基), 이동규(李東珪), 박완식(朴完植) 윤기정(尹基鼎)등 23명이 기소된 제2차 카프검거사건(1933년의 ‘신건설(新建設)사사건’ 또는 ‘신건설(新建設)사건’)이 발생하였으나 지병인 폐병을 빌미로 구속에서 제외 됨. 윤기정의 후임으로 카프 서기장이 됨(1932).

평양 고무공장 사건으로 2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온 김남천의 체험적인 창작물 <물!>을 둘러싸고 김남천과 소위 '물논쟁'을 벌여 이를 계기로 소설비평가로 문단에 주도적인 이론을 전개함(1933). 사회주의 리얼리즘 수용 찬반논쟁을 둘러싸고 낭만주의론 제창(1934)함.

카프 2차 검거 사건 이후 카프의 지도자 박영희(朴英熙)가 “다만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상실한 것은 예술이다.”라는 전향문을 쓰고 조직의 이론가인 신유인, 백철(白鐵), 신석정 등과 함께 퇴맹계를 제출한 뒤 카프에서 탈퇴하자 크나큰 내부 혼란에 빠져들어 소위 전향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이에 서기장이던 임화가 퇴맹계 제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퇴맹계를 무효로 선언,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일제의 지속적 탄압과 제2차 카프 검거로 조직이 와해되고 활동이 정지된 상태에서 일제의 직접적인 해산 압력을 받게되자 카프 지도부는 제2차 검거로 구속된 동맹원들에 대한 서면질의 형태를 밟아 1935년 5월 20일 김남천, 임화, 김기진이 카프의 해산을 협의하여 임화가 동대문서 고등계에 카프해산계를 제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해체된다.부인 이귀례와 이혼(1935).

이후 악화된 폐결핵 요양차 내려간 마산에서 두 번째 부인이 된 거창출신의 이현욱(필명 지하련(池河連:소설가. 동경소화여고(東京昭和女高), 동경경제전문학교 졸업. 임화와 함께 월북함. 임화 사형 당시 만주에 소개돼 있다 사형소식을 접한 후 귀국하였으나, 시체도 보지 못하게 되자 미쳐 버려 평양시내와 두만강변을 헤매다 평북 희천 근처 산간 오지로 끌려가 교화소에 격리수용되다 1960년 초 병사함.)을 만나 재혼(1935)함.

이후 문학작품 창작과 세태소설론, 본격소설론, 개설 신문학사 등의 평론을 발표하고 사회주의 사실주의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활발한 비평활동을 벌임.

제 1시집 [현해탄(玄海灘)](1938)을 발간하고 학예사를 경영함. 평론집 [문학의 논리] 발간(1940). 총독부 소속 총력연맹 문화부장 矢鍋永三郞과 대담, 일제의 신체제문화운동에 어떻게 협력해야 합당한지를 논의하였으며 일제의 탄압끝에 전향, 일제말 친일 문인 단체인'조선문인보국회'에 가입하고 조선영화문화연구소의 촉탁으로 1944년까지 근무하며 [조선영화발달사] 집필.

광복 2일 후 조선문인보국회를 기반으로 이원조, 이태준, 최용달 등과 함께 이전 카프문인들과 좌익문인들을 규합, 최초의 문학단체인 조선문학건설본부(1945. 8.17)를 조직, 서기장에 취임.

범좌파문학단체 조직을 목적으로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구카프계의 비해소파 이기영, 윤기정, 한효, 한설야, 이동규, 윤규섭, 송영, 홍구, 김승구, 권환(權煥) 등이 1945. 9.17 결성)과 문학건설본부와의 연합을 논의한 '아서원 좌담회' 및 '봉황각 좌담회(1945.11∼12. 해방공간하에서 우익진영에 대항할 전국적 규모의 사회주의 계열 문인들의 구심체 조직을 목적으로 북한 쪽에서 파견된 이기영, 한설야, 한재덕, 연안에서 귀국한 김사량 등과 남한측의 임화, 이원조, 이태준, 김남천 등이 서울소재 중국집 아서원과 봉황각에서 만나 가진 두 차례의 모임을 일컫는 말로 이태준, 김사량 등의 전향문인의 친일행위에 대한 공격과, 임화의 자기 반성론 등의 대토론이 벌어졌으며 이를 계기로 가칭 조선문학가동맹의 결성을 결정하고 이 조직의 명칭을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확정하게 되는 전조선문학자대회의 개최를 합의, 문학건설본부와 문학동맹의 합동위원회를 개최(1945.12. 3)하여 문학건설본부와 문학동맹의 통합(1945.12. 6)하고 전조선문학자대회(1946. 2. 8 - 9)를 개최하게 된다.)를 주선하여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조선문학건설본부에 흡수하고 다수의 순수문인들과 중간노선을 걷던 문인들을 참여시켜 이를 확대 개편한 한국 문단사상 최대의 문학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의 결성(1945.12. 3)을 주도 함.

전조선문학자대회(1946. 2. 8 - 9, 초청 임석자 804명, 출석문인 약 100명, 서기장으로 권환(權煥)을 선출함.)에서 중앙 집행 위원으로 선출된 뒤 좌파의 문학 운동을 주도, 박헌영의 '조선공산당'과 깊은 관련을 맺고 문학의 정치 투쟁으로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후 남로당의 외곽단체로 활동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수행함.

박헌영(朴憲永), 이강국(李康國)노선의 민전(민주주의민족전선) 기획차장을 역임하며 지하로 잠입하여 활동함. 제 2, 3 시집 [찬가(讚歌)](1947), [회상시집](1947) 발간. 1947년 8월12일 새벽 좌파에 대한 대 검거령 이후 이여성, 백남운, 유영준 등이 검거되고 좌파 전체에 대한 검거와 조선문화단체총연합이 자리잡은 건물이 폐쇄되고, 조선문화단체총연합의 기관지인 문화일보가 간행 금지당하는 등 한층 더 강화된 미군정과 우파의 조직적인 탄압과 압박에 더 이상 남한에서의 활동이 불가하다 판단하고 박헌영을 따라 이원조가 있던 해주(이원조가 주필로 있던 좌파신문 이었던 현대일보와 조선인민보, 조선중앙일보가 하지 중장의 성명에 대한 반박문을 실었다는 이유로 발행금지 당하고 관여자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진 1946년 9월 초 월북, 황해도 문화부장으로서 해주에서 활동함.)로 월북(1947.11.20).

월북 후 북한 해주 제1인쇄소에서 남로당 문화담당자이자 남조선문화단체총연합의 일원으로 남과 북 사이의 연락과 남한에서의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며 평양의 남조선문화단체총연합 대표로 있던 김남천, 오장환 등과 함께 좌파문학운동을 이끌었으나 친일 경력과 박헌영의 남로당파로 분류되어 북한의 문단조직 장악에 실패함.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과 남조선문화단체총연맹이 합동으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 발족(1951년 3월)하자 평양으로 가 상무위원 겸 문학동맹 위원으로 활동(상무위원회 위원장 한설야, 부위원장 이태준, 부위원장 조기천, 서기장 박웅걸, 위원 이기영, 신고송, 임화, 김순남, 정관철, 김조규, 박영신, 김남천, 문학동맹위원장 이태준, 부위원장 박팔양, 서기장 김남천, 위원 이기영, 한설야, 임화, 최명익, 이원조, 조기천, 김조규, 안회남, 이용악, 안함광, 민병균, 현덕)하며 6·25 발발시 까지 조·쏘출판사 사장 및 조·쏘문화협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조·쏘문화협회가 발간하는 [조쏘문화] 주필을 맡음.

박헌영·이승엽을 지지하는 문학노선 견지하다 이 시기 이후 박헌영이 이끄는 남로당의 그늘에서 벗어나 김일성에게로 전환하는 정치적 노선 변화의 모습을 보임. 6·25 발발이후 서울로 와(1951) 조선문화총동맹을 조직하고 부위원장을 맡음.

다시 문화공작대의 일원으로 낙동강 전선에 종군한 뒤, 9월 인민군 퇴각과 함께 자강도로 후퇴한 후 다시 북으로 감. 이 때의 전선체험을 담은 <너 어느 곳에 있느냐>, <바람이여 전하라>, <흰 눈을 붉게 물 들인 나의 피우에>등의 서정시를 남김.

전쟁중 김순남이 곡을 부친 ‘인민항쟁가’를 작사, 빨치산과 인민군의 군가로 사용됨. 6.25 전쟁이 휴전에 들어갈 무렵, 카프 시절부터 정치노선과 문학이념의 차이로 갈등하던 한설야, 이기영, 송영 등의 비판에 직면함. 김남천의 <꿀>, <이태준의 <고귀한 사람들>과 함께 <너 어느 곳에 있느냐>, <바 람이여 전하라>, <흰 눈을 붉게 물들인 나의 피 위에> 등의 작품이 한설야의 측근인 평론가 엄호석에 의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원칙에 의한 창작방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으로 비판, 공격됨.

엄호석은 인민항쟁가 <너 어느 곳에 있느냐>가 전쟁 현실을 비관적으로 노래하면서 인민에게 비통, 연민, 향수라는 독소를 주입한다는 이유로 장병들의 전의를 상실시키고 염전사상을 고취 시키는 작품이라고 혹평하고 한설야는 센티멘탈한 화자의 목소리가 애국주의를 파렴치하게 왜곡하고 영웅적으로 투쟁하는 어머니, 아버지를 모욕했다고 비판함.

이에 소련파의 기석복이 <우리 문학평론에 있어서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로 엄호석의 비판을 다시 비판하고 임화 등을 옹호함. 휴전 직후 남침 실패의 책임 전가 대상으로 몰린 박헌영의 남로당계로 분류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 전복 음모와 반국가적 간첩 테로 및 선전선동 행위에 대한 사건'으로 체포, 구금됨(1953. 7).

숙청대상으로 전락한 처지에 절망, 구치소에서 쓰고 있던 안경을 깨 그 파편으로 오른손의 동맥을 끊고 자살을 기도함. 최고재판소 군사재판부의 최후진술에서 '이와 같이 저는 1945년 12월 미군정청 홍보처에 자료를 제공할 때부터 1952년 9월까지 간첩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라 자인한 임화는 이강국(李康國)등 남로당 일파 및 이원조(李源朝), 설정식(薛貞植), 이승엽, 김남천(金南天) 등의 문인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 군사재판부 법정에서 미제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 받고 총살형에 처해짐(1953. 8. 6. 향년 45세).

이후 북한에서는 김남천, 이태준 등 문학가동맹 문인들에 대한 반종파투쟁(1953 ~ 56)이 계속되고 종파분자로 몰린 임화의 모든 문학기록이 삭제되어 조선문학예술사전 및 북한문학사에서 제외되었으며 반동작가, 미제 간첩이라는 평가만이 남음.

남한에서도 월북작가로 접근자체가 금지되다 120여명의 월북(납북)문인 작품이 해제된 1988년 7.19 해금조치로 다시 빛을 보게 됨.

2001년 9월4일  재미사학자 방선주 교수와 국사편찬위원회 정병준 박사가 미 정부측에 비밀해제를 요구, 공개된 미육군 정보국 문서파일과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돼 있던 '베어드 조사보고서'에 박헌영의 직계인 남로당(南勞黨)출신 북한 외무성 초대 부상(副相) 이강국(李康國)이 미(美)군 방첩대(CIC:Counter Intelligence Corps) 요원이었다는 기록과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남로당 선전부장, 임화가 미군방첩대(CIC)와 연계되어있다는 비밀문서의 기록이 있다는 보도가 있어 그의 행적과 진위여부에 관한 연구필요성이 제기됨. 300편이 넘는 방대한 량의 평론이 전해짐.

2. 활동 및 작품경향

한국의 랭보로 비견되는 천재시인 임화는 시, 비평 등 문학장르에서 뿐 아니라 연극, 영화 등 다방면의 예술분야에 걸쳐 1930년대 한국문단을 주도하며 좌파문학인의 총수로서 선지자에 비견될 만한 걸출한 능력을 발휘하며 지대한 문학적 성과를 남겼다.

식민지하 일제치하에서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에 이르기까지 피 바람이 몰아쳤던 격동의 한국근대사에서 문학과 사상과 정치의 전위에 나서 온 몸으로 투쟁하며 치열한 비판의식 속에서 보낸 그의 파란만장했던 짧은 인생역정과 반역과 스파이라는 이름으로 숙청, 처형당함으로써 끝을 맺게 되는 그의 삶은 비극의 극치요 또 하나의 천재시인 이상의 삶을 능가한다 하겠다.

그의 삶을 지극히 정치지향적인 문인의 행로로 폄하하는 비판에 대해 식민지하 비참한 민족의 운명을 타계할 현실적 수단과 해방된 신생국가를 이상적 국가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는 실행과정에서 보여지는 일면으로 본다면 일제말기의 친일전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행동하는 지성, 실천적 지식인이자 탁월한 조직운동가요 혁명가라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단지 문학과 예술분야뿐 아니라 현실정치와 시대의 정치사상논쟁에 깊이 관여하여 상당한 역할과 비중을 점하고 있었기에 그를, 그의 저작물을 이해함에 있어 정치적 시대적 역사적 사회성과 연관성을 특히 주목해 고려해야 한다.

이는 당시의 문인은 바로 최고의 지식인이자 정치세력화 할 수 있는 계층이요 조직화된 단체에 가입, 시대상황에 대해 지속적인 논쟁과 작품활동 및 기고를 통한 여론형성과 간접정치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특히 그가 대표적인 정치문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출전 : 인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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