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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5-21 (수) 16:24
분 류 사전3
ㆍ조회: 1296      
[근대] 찬송가 (민족)
찬송가(讚頌歌)

한국의 개신교에서 예배나 경건한 신앙심을 북돋우려 할 때 부르는 노래.

[개요]

때로 찬양가(讚揚歌)·찬미가(讚美歌)·복음가(福音歌) 등으로도 불리지만, 이들을 일괄하여 이르는 말이다. 한국의 찬송가는 한국 근대음악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신문학운동, 특히 신시운동(新詩運動)에도 많은 자극을 주었다.

한국 최초의 찬송가는 감리교회 선교사인 존스(Jones,G.H., 趙元時)와 로스와일러 (Rothweiler,L.C.)가 공동 편집한≪찬미가≫(1892)로서 악보 없이 가사만 적은 것이었다.

한편, 서북지방에서는 장로교의 백홍준(白鴻俊) 등이 중국어 찬송가를 번역하여 선교활동을 하였다고 하나 그 간행·보급의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 1894년 북장로교의 선교사인 언더우드(Underwood,H.G., 元杜尤)는 가사뿐만 아니라 악보도 함께 들어 있는 ≪찬양가≫를 편집, 간행하였다.

이는 최초의 곡조 찬송집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 특색은 인간이 지은 죄의 심각성,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가 치른 대속적(代贖的)인 죽음, 그에 대한 속죄 경험과 그로 인한 기쁨 등이 강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1912년에 간행된 ≪복음찬미≫라는 찬송집과는 현격하게 대조가 된다.

이 찬송집은 침례교 선교사였던 펜위크(Fenwik,H.C.)가 펴낸 것으로 단지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만을 노래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언더우드의 ≪찬양가≫ 전117장 중에는 7장의 한국인 작사 노래가 들어 있는데, 백홍준의 것만이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감리교회에서는 1895년 별도로 ≪찬미가≫를 간행하여 사용하였는데, 대부분 중국어와 영어를 번역한 가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국인이 작사한 것은 한 곡뿐이었다.


[구성 및 내용의 변천]

이러한 초기 찬송가들은 가사의 구성이 유치하고 표현이 거칠었다. 이는 외국가사를 그대로 번역하여 수와 길이만 맞추어 편찬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이 점차 부각되면서 한국인들의 신앙경험에서 우러나온 찬송가의 출현이 기대되었다.

서양선교사 편찬의 찬송가는 한국교회 자체의 토착적 찬송가가 나올 때까지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것뿐이라는 지적과 함께, 생경한 번역투가 아니라 보다 문학적으로 세련되고 감정에 직접적인 호소력을 지닌 찬송가가 요청되었다.

1905년 윤치호(尹致昊)가 편집한 ≪찬미가≫는 감리교회의 공식 발행이 아니라는 점, 애국송과 황제송이 여러 편 들어 있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최초의 자발적·토착적 찬송가였음을 알 수 있다.

1908년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연합하여 총 266장의 ≪찬송가≫가 예수교서회에서 발행되었다. 가사의 문학적 세련도가 현저하게 높아졌으며, 우리 나라 고유의 가락으로 노래부를 수 있다는 찬송가가 다섯 곡 실렸다.

현재의 찬송가는 이 ≪찬송가≫의 골격과 정신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보완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찬송가는 인도자가 먼저 한줄을 노래하면 회중이 그 말과 곡을 반복하고, 둘째 줄로 옮겨가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찬송가≫는 1931년 ≪신정 찬송가≫가 나올 때까지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정 찬송가≫의 편집과 발행과정에서 나타난 몇 가지 문제점으로 인하여 장로교가 사용을 거부하여 감리교만이 사용하게 되었다. 장로교 측은 장로교 단독의 찬송가 편찬방침을 천명하고, 1935년 총 400장의 ≪신편 찬송가≫를 발행하였다.

일제 말기에 총독부는 일본황실에 모독된다는 이유로 하나님에 관한 찬송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였고, 시오니즘(Zionism)적 색채가 있는 것, 선민의식을 고취하는 찬송가를 금지시켰다.

8·15광복 후인 1946년 각 교파들은 합동 찬송가 사용에 뜻을 모으고 회합을 가지기 시작하여 1949년에는 장로교·감리교·성결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총 586장의 ≪합동 찬송가≫를 간행하였다.

그러나 장로교회에서는 번역 등의 문제로 일부 수정을 가하였고, 장로교에서 분립된 고려파에서는 예전의 ≪신편 찬송가≫를 그대로 사용했다. 1959년 장로교회가 다시 합동파와 통합파로 나누어지게 되자, 합동파에서는 고려파와 함께 찬송가 편집사업을 결의하고, 1962년 총 671장의 ≪새찬송가≫를 발행하여 그들 나름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편, 기독교장로교·감리교·예수교장로교(통합), 그리고 성결교회에서는 기독교연합회 주관으로 ≪합동 찬송가≫의 개편을 결의하고, 1963년부터 그 작업에 착수하였다.

개편의 원칙은 중첩된 것의 단일화, 국가 및 민요 형태의 곡조와 가사의 재검토, 종류별 편찬에 유의, 예배용 찬송의 보강, 특정 예배나 절기용 찬송의 보강, 한국 가사나 곡조의 보강을 통한 토착화의 지향, 교독문의 보충, 가사의 전면적 검토 등이었다.

이러한 원칙들을 근간으로 하여 한국인 작사·작곡 27편을 포함한 총 600장의 ≪찬송가≫가 1967년에 간행되었다. 또한, 1977년에는 한국 개신교 전체가 공동으로 사용할 ≪통일 찬송가≫의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져 보수·진보의 양진영 교파를 포괄한 단일 찬송가의 편찬을 위하여 작업한 결과, 1983년에 총 558장의 ≪통일 찬송가≫가 간행되어 찬송가 사용의 일치를 보게 되었다.

≪참고문헌≫

韓國詩歌文學史(宋敏鎬, 韓國文化史大系 Ⅴ,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1967), 韓國洋樂八十年史(李宥善, 中央大學校 出版部, 1968), 讚頌歌學(조숙자·조명자, 長老會神學大學 出版部, 1981), 韓國基督敎會史(閔庚培, 大韓基督敎 出版社, 1982).

<민경배>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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