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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1-27 (목)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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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850      
[현대] 대한민국 사회1-사회관계 민속 생활 (민족)
대한민국(사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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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관계

[인구 및 계층구조]

우리 나라의 인구는 광복 직전에 38°선을 기준으로 북한이 약 830만 명, 남한이 대략 1600만 명으로 추산되었으나, 1949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남한의 인구는 약 2019만 명으로 광복 후 약 4년 동안 400만 명 정도가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인구증가는 자연증가뿐 아니라 주로 해외로부터의 귀환인구와 북한으로부터의 월남인구의 대규모 유입에 기인한 것이기도 한데, 광복 이후 1949년까지 해외로부터 남한에 귀환한 동포는 일본에서 약 120만 명, 만주 등지의 중국에서 약 40만 명, 기타 지역에서 약 3만 명이었고, 북한에서 월남한 동포가 약 60만 명으로 모두 약 220여만 명이 이동하여 왔다.

그 뒤 6·25전쟁으로 또 한 차례 대규모 인구이동이 있었는데, 당시 북한에서 약 100만 명이 남하하였다. 휴전 후 남한의 인구는 계속 급증하여 1960년 약 2500만 명에 달하여 광복 전의 전국 인구수와 비슷하게 되었고, 1967년 약3000만 명, 1975년 약 3500만 명, 1984년 40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1988년 4197만 명, 1997년 4599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와 함께 우리 나라의 인구밀도는 광복 직전 약 120명·㎢이던 것이 광복 후 남한의 경우 1949년 200명·㎢에서 1966년 300명·㎢, 1985년 400명·㎢, 1997년 463명·㎢로 증가하였다. 반면, 남한의 인구증가율은 1961년의 2.9%에서 1971년 이후 2% 미만으로 점차 낮아져서 1986년 1.25%를 나타내었다.

1980년대 후반기에 처음으로 1.0% 이하를 기록하였으며, 1990년대 초반에는 다시 1.0%를 다소 상회하다가 1997년에는 0.98%를 기록하였다.

이와 더불어 오랫동안 다산다사(多産多死)의 피라미드형 구조를 나타내었던 연령별 인구구조는 1960년대 후반 이후 가족계획사업 등에 힘입어 점차 소산소사형(小産小死型)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유·소년층 인구의 감소가 두드러져 생산연령층에 대한 비생산연령층의 비율, 즉 부양비가 1971년의 82%에서 1986년 51.6%로 감소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40%대로 감소하였는데, 1990년 44.3%, 1995년 41.45%, 1996년 40.7%를 기록하였다.

한편, 광복 후 남한 인구의 성비(性比)는 1949년 102의 남초현상(男超現象)에서 1955년 100을 기록하였고, 1960년 100.8, 1970년 100.8, 1980년 100.5로 대체로 균형 있는 성비를 나타냈다. 그러나 1982년 이후 101을 상회하기 시작하여 1982년 101.8, 1989년 101.6, 1995년 101.4, 1997년 101.5를 기록하는 등 남초현상을 보이고 있다.

연령별 구조에서 볼 때, 1996년의 경우 50세 이상 인구는 연령이 많아질수록 남성인구가 적은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80세 이상의 경우 0.47% 대 1.31%로 남성이 여성보다 단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4세 이하의 유·소년층 인구는 상대적으로 남아인구가 많은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밖에 대한민국 인구구조의 또 하나의 특징은 도시인구의 급격한 팽창이다. 1960년대 초 이후 공업화정책이 급속히 추진됨에 따라 도시화 추세도 더욱 가속화되어 광복 직전 약 10% 안팎에 불과하였던 남한의 도시인구율은 1949년의 18%에서, 1970년 43%로, 1985년 65.4%로 증가하였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많은 농어촌인구가 도시지역 및 개발지구를 향하여 이주함에 따라, 대도시지역의 과밀화와 농어촌지역의 과소화현상이 사회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1985년 도시인구는 2644만3000명이었고, 전체인구의 약 24%가 수도 서울에 거주하였다. 1996년 현재 서울인구는 전체의 22.5%이다.

1994년 현재 도시근로자 가구월소득은 약 170만 원이며, 농가소득은 약 169만 원으로 도농(都農) 사이의 소득 차는 심각한 편은 아니다. 따라서 1990년대 말 현재 이농현상보다는 오히려 귀농현상이 일부 목격되고 있다.

한편, 이민은 1962년 〈해외이주법〉이 공포된 이후 미국·브라질·서독·캐나다·아르헨티나 등 각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주로 미주지역 국가가 주요 대상이 되고 있는데, 특히 미국에 대한 이민은 약 30만 명에 달한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광복 이후 새로운 계층구조가 재편성되기 시작하였다. 우선, 미군정청에 귀속되었던 재산의 불하를 통해서 새로운 재산가들이 형성되었고, 또 일본인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농지도 미군정청에 귀속되었다가 그 뒤 토지개혁을 통해서 농민들에게 유상분배하여 새로운 농촌사회관계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인하여 귀속재산의 불하를 통한 새로운 사회관계의 형성은 일단 무산되고 말았다. 전쟁의 여파로 그 뒤 수년간 대한민국 사회의 계층구조는 매우 유동적이며 혼미스럽기까지 하였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실시된 이래 강력한 공업화정책의 추진으로 새로운 사회계층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한편으로는 취업과 교육기회의 확대 등으로 인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농촌경제의 악화와 그에 따른 농민층 분해 및 탈농화현상(脫農化現象)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계층구조는 급격한 계층간·계층 내 이동을 통하여 형성되었다.

1955년부터 1980년 사이의 계층구조의 변화를 보면, 자본가계급이 3.3% 증가하였으며, 구중산층이 34.2% 감소한 반면 신중산층은 11.1% 증가하였으며, 노동자층도 19.9%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계층구조의 변화는 지난 30여 년간 자본주의적 산업화과정이 크게 진전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에 따라 근대적 계층분화, 즉 자본가·경영자 및 노동자에로의 분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30여년간 자영자가 감소되고 노동자층이 증가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자본주의와 산업주의의 발전을 뜻하지만, 이것은 서구형과는 매우 다르다.

예컨대, 노동력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업 분야에 있어서 근대적 계층분화현상이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도시의 사회계층에 있어서도 자본가의 경우 거의 대부분 소유권과 경영권이 분리되어 있지 못하다. 노동자의 경우도 대부분 독립적으로 가계를 부양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구주의 가계보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구중산층의 경우 거의 대부분 빈농·소농 또는 영세상이기 때문에 오히려 소산층 또는 저소득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문기술직의 종사자일지라도 그들의 약 2분의 1이 봉급생활자이기보다는 오히려 구중산층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에 있어서 사회계급의 직업적 성격은 아직 구미의 경우처럼 역할과 권력이 분화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과도기적 성격이 매우 강한 편이다. 다시 말해서, 계층과 직업의 성격에 있어서 전통성과 근대성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지배층은 1950년대까지 전통적 구중산층의 성격이 매우 강하였고, 1960년대 이후부터 점차 신중산층의 성격으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정치지배층의 경우, 그 의식과 행동면에 있어 구중산층의 특성이 강한 반면, 관료지배층의 경우는 신중산층의 성격이 강하다.

그것은 정치지배층이 대개 지주 출신이며 식민지시대에 교육을 받은 데서 기인한 것이며, 관료지배층의 경우 대체로 중산층 출신인 데다 그들의 사회화가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혼합으로 형성된 문화적 주변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기업이 정치권력에 크게 의존하였지만, 오늘날 권력지배층은 점차 기업합리성의 영향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한민국 사회의 경우 선진산업사회와 그 구조적·역사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서구적 계급의식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날 기업을 비롯한 취업 및 고용은 합리적 계약관계에 따라 구성되기보다는 오히려 지연·혈연·학연 등의 연고관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실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산업발전은 분명히 사회 내에서도 자본주의적 원리 및 제반 법칙을 꾸준히 관철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사회관계 및 온정주의적 무계급성에서 탈피될 가능성이 지난 30여 년간 구중산층이 급격히 감소하고 신중산층과 노동자층이 급증하고 있다는 객관적 사회조건 속에서 생성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중산층은 1980년 말 현재 가사종사자를 제외하면 전체 직업인구 가운데 53.1%를 차지한다. 그 가운데 구중산층이 35.8%, 신중산층이 17.3%이다. 1980년 이전 25년 동안 구중산층은 연평균 1.4%가 감소되었지만, 신중산층은 연평균 0.4%가 증가되었다.

한편, 산업화의 결과 구중산층은 감소되고 있고 신중산층은 증가되고 있지만, 후자의 증가율은 전자의 감소율에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아서 중산층은 다소 감소하고 있다.

생산직 노동자는 1980년 말 현재 전체 직업인구의 43.3%를 차지하며, 이들은 지난 25년 동안 연평균 8%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들은 주로 제조업과 건설업 및 서비스업 분야에 많이 종사하며, 기본 특성으로는 처녀공(處女工)·저연령·고학력·저임금·농민출신·연고취업·가족별거 등을 들 수 있다.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사회계층의 형성과 변화는 6·25전쟁과 농지개혁, 자본주의적 산업화, 교육기회 확대 등 다인적 요인(多因的要因)에 의한 것이었다.

사회계층의 형성요인으로서 일반적으로 재산과 분업이 지적되고 있으나 모든 기회를 제공해 주는 권력, 그리고 사유재산제도하의 상속을 통한 세습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요인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의 형성은 소수 독점재산의 형성과 더불어 특히 상대적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다.

정부의 ≪제5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서≫에 의하면 상위 20%의 소유점유율이 1965년의 41.8%에서 1980년에는 45.4%로 증가되고, 하위 40%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에 19.3%에서 16.1%로 감소되었다.

그런데 통계청의 사회통계조사에 의하면 상위 20%의 소득 점유율이 1988년의 42.2%에서 1993년 39.4%로 감소되고 하위 40%의 소득 점유율이 같은 기간에 19.6%에서 20.4%로 증가되어 이 기간 중에는 비교적 건전한 소득분배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의 위기가 초래된 1997년 이후 이러한 불평등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97년 상반기 92만2100원에서 1998년 상반기에는 78만4700원으로 14.9%나 줄어든 반면, 상위 20% 가구는 1997년 상반기 422만3400원서 1998년 상반기에 432만600원으로 2.3%나 늘어났다. 이에 따라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격차는 1997년보다 1998년에 오히려 7.1% 확대되었다.

1980년 국제통화기금이 지적한 바와 같이, 억대가 넘는 재산을 소유한 가구는 전국 가구 수의 5.4%에 불과하지만, 그 소유재산은 전국 재산의 51.2%에 달한다.

[가족]

1970년대 중반 대한민국의 가족구성원의 종류는 가구주(家口主)를 포함하여 약 28종에 달한다. 그 가운데 가구주를 제외하고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가족원은 그 자녀와 배우자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은 아들의 배우자, 손자·어머니·아버지·형제 등 대부분 남계(부계)의 근친자로서 구성되어 있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세대별 가족유형의 변화를 보면 다음 〔표 3〕과 같다.

세대별로는 [표 3]과 같이 2세대 이하 가구의 비중이 커지는 반면 3·4세대의 비중이 작아져 핵가족화가 심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평균가구원 수는 4, 5명이다. 1세대가족과 2세대가족은 그 대부분이 부부가족이며, 3세대가족 이상은 거의 대부분 직계가족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지난 20여 년간 가족유형도 크게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1955년의 부부가족의 비율은 약 63.6%였던 것이 1975년에 와서는 71.6%로 늘어 8% 증가된 반면에, 한국의 전통적 가족형인 직계가족은 20년 사이에 30.7%에서 19.5%로 약 11.2% 감소하였다. 20년이 지난 1990년대에 오면 가족형태는 더욱 다양화되고 있다. 1990년과 1995년의 가구구성을 보면 다음 〔표 4〕와 같다.

〔표 4〕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대별로 가구구성을 보면 총 일반 가구 가운데 2세대가구(180.9)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1세대가구(43.1), 1인가구·3세대가구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2세대 가구는 바로 핵가족 단위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이고, 1세대가구와 1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은 인구고령화와 핵가족화가 서로 연계성을 가진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 가족 내의 권력구조에 있어서, 농촌가족의 경우 현재도 전통적인 가족 가치관이 어느 정도 강하게 잔존하여 성별 분업과 세대의 권위가 강한 남편우위형 내지 가장우위형의 권력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가족을 대표하는 것은 언제나 남편이며, 보관권에는 성별 분업이 뚜렷하여 귀중문서는 남편이, 식료품은 부인이 보관한다.

결정권에 있어서도 남편이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으나 성별 분업이 뚜렷한 편이며, 아들이 혼인하여 동거하게 되면 아들 부부에게도 권력의 많은 부분이 이양된다. 도시가족의 경우에도 이와 크게 다를 바는 없으나, 직계가족에 있어 세대의 권위가 많이 약화되어 있다는 점과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그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역할구조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성별 분업이 뚜렷하여 남자와 여자의 분담역할의 구분이 확연히 나타난다. 그러나 오늘날의 도시의 부부가족의 경우,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 일을 한다는 전통적 가족역할규범이 많이 약화되어 농촌가족만큼 지켜지고 있지는 않다. 또한, 육아나 교육 등 부부 공동의 역할범위가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다.

한편, 부모와 아들 부부가 동거하는 경우 세대적으로 역할이 분화되고 있으나, 대체로 아버지세대에서 아들세대로 역할이 이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속에 있어서는 장남이 제사를 상속하고 재산상속도 장남이 우대받는 상속제도가 보편적이다.

〈민법〉에도 상속에 관한 규정이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장남이 법정비율보다 더 많은 비율을 상속받고, 여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속을 받지 못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인 실정이다.

오늘날 서로 생활에 연관을 맺고 있는 친족의 범위를 살펴보면, 부계친(父系親)은 대개 8촌 이내를 친족의 범위로 보고 있으며, 여자혈족에 있어서는 이보다 훨씬 좁아진다. 예를 들면, 형의 손자는 친족의 범위에 들지만 누이의 딸의 자녀는 그 범위에 들지 않는다. 이는 친족의 범위가 부계친 남자 위주의 친족의식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부계친의 친족범위는 대체로 현 〈민법〉상의 범위와 일치한다.

반면에 모계친(母系親)의 경우 어머니의 형제자매의 자녀들까지, 그리고 어머니의 남자사촌의 자녀 및 여자사촌까지가 친족의 범위에 포함된다. 이는 외사촌까지를 친족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 〈민법〉의 범위보다 다소 확대된 것이지만 부계친에 비하면 매우 축소된 것이다.

한편, 부계친족(夫系親族)은 과거 관습법에 따르면 남편의 친족범위보다 좁은 범위를 친족으로 규정하고 있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남편의 친족범위와 일치하는 8촌까지를 친족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현 〈민법〉의 규정과 일치하는 범위이다. 대개의 경우 같은 마을에는 부계친(夫系親)만 사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접촉도 매우 밀접하다.

반면에, 처계친(妻系親)에 있어서는 처의 부모만을 친족으로 간주하고 있고, 현 〈민법〉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제도상으로는 그렇지만, 오늘날 일상생활이나 감정의 측면에서 본다면 적어도 처의 형제자매나 이들의 자녀들은 모두 친족의 범위에 포함되고 있다.

[사회보장]

현대국가에 있어서 사회정책의 핵심은 예방적 특성과 방빈적 특성(防貧的特性)을 지닌 사회보장에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1960년대 이후에 복지의 기본적 제도인 사회보장에 관한 입법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대한민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대체로 사회보험·공적 부조(公的扶助)·사회복지서비스의 세 가지 형태가 골간을 이루고 있다.

우선, 사회보험은 연금보험·의료보험·산재보험·실업보험·가족수당 등을 말하는데, 이에 속하는 입법으로는 〈공무원연금법〉(1960년 시행)·〈군인연금법〉(1963년 시행)·〈산업재해보험법〉(1964년 시행)·〈의료보험법〉(1977년 시행)·〈국민복지연금법〉(1988년 시행) 등이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사회보험의 실태로는 연금보험의 경우 공무원·군인·교원·사원 등 비교적 직업 및 생활안정이 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전체 국민의 2.1%만이 가입되어 있다.

의료보험의 경우에는 1963년 제정된 의료보험법을 토대로 하여 1977년 시행된 지 12년 만인 1989년 7월 전국민의료보험을 달성하였다. 따라서 우리 나라 국민이면 의료보험법에 의한 의료보호대상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의료보험 적용대상자가 되며, 1997년 1월 현재 의료보험 적용인구는 전 국민의 96.1%이며, 공적 부조제도인 의료보호대상자는 3.6%이다. 산업재해보험의 경우 16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의 24.6%만이 그 적용을 받고 있다.

한편, 1973년에 제정되어 1974년에 실시될 예정이었다가 보류되었던 국민복지연금제도는 국민종합복지대책의 일환으로 1988년 사업장부터 시작하여, 1995년 7월에는 농어촌지역의 주민에게까지 확대하여 시행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노령연금·장애연금·반환일시금·유족연금 등 4종류로 구분, 시행되며, 이에 따른 재원은 모두 근로자와 사용자가 부담하고 제도운영에 필요한 행정관리비만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1996년 현재 742만 여명이 가입하여 있다.

공적 부조는 생활보호법상 정부의 보호를 받게 되어 있는 영세민들에 대한 생계지원대책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에 속하는 입법으로는 〈생활보호법〉(1962년 시행)·〈군사원호법〉(1961년 시행)·〈아동복지법〉(1962년 시행)·〈재해구호법〉(1963년 시행)·〈의료보호법〉(1977년 시행) 등이 제정, 시행되고 있다. 1994년 현재 전체 국민의 약 4.8%가 그 수혜를 받고 있으나 생계비의 70∼80% 미만에 불과하다.

한편, 1997년 1월 현재 전체 인구의 3.6%인 164만 명은 생활보호대상자로서 정부가 무료진료혜택을 주는 의료보호를 받고 있다. 이 밖에 사회복지서비스는 불우아동 및 장애자·불우여성 등에 대한 시설수용보호와 재활사업을 말한다. 현재 사회복지시설은 양로시설·성인불구시설·모자보호시설·부녀직업보도시설·아동복리시설 등으로 전문화되고 있다.

2. 민속

[세시풍속]

우리 나라는 국토가 온대에 속하고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하여 우량이 알맞기 때문에, 일찍부터 농경을 주업으로 삼아 그에 관련한 농경문화를 하나의 생활문화로서 정착시켜 왔다.

또한, 농경생활에서 비롯된 세시풍속이 다양하게 뿌리를 내려 명절만도 설·상원(上元)·입춘·한식·초파일·단오·유두·칠석·추석·동지 등의 각종 의례와 놀이, 조상을 모시는 차례를 비롯하여 각종 신을 모시는 여러 가지 의례가 행해져 왔다.

악귀를 쫓고 복을 비는 행위로서 고사(告祀)·굿·고수레·부적 등의 민속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정월이면 토정비결을 보고 점을 치는 일 등도 유구한 역사에서 이루어진 민속유산으로 남아 있다. 이 밖에 세시풍속에 맞추어 정초에는 설빔으로 갈아 입고 어른에게 세배하며 조상의 무덤에 성묘도 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덕담을 나누는 등의 민속은 오늘날에도 흔히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미 농업국가에서 상공업국가로의 전환점을 넘어서 버렸고, 영농도 기계화되면서 세시풍속도 근본적인 대변동을 겪고 있다. 그러한 징후는 1960년대부터 나타나다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화되었다. 무엇보다도 기본 인구면에서 이제는 도시인구가 농촌인구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에 따라 세시풍속도 그 생활주기면에서부터 크게 달라졌다. 즉, 재래농민이 대개 1년 단위의 생활을 해온 데 반하여 도시인들은 연·월·주의 삼원체제생활을 전개시키고 있다. 종래의 화전놀이·화류놀이·등고(登高)·단풍구경 등은 오늘날 주말이나 휴가계절의 관광 내지는 등산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천렵(川獵)은 낚시행락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현대적인 세시풍속의 변모는 농촌에서도 일어난다. 농촌도 영농기계화와 제초제 등의 화학약품 사용으로 시간이 많이 남게 되었고, 길쌈이나 바느질도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편, 오늘날 각종 국가공휴일과 급증한 교육인구의 방학 및 봉급생활자들의 휴가라는 새로운 세시풍속도 등장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공휴일로는 현대생활에도 깊이 뿌리내려서 우리 세시풍속의 2대 정점일로서 집약되고 있는 3일간의 설날(음력 1월 1일)과 3일간의 추석(음력 8월 15일)이 있으며, 양력 정초 1일간의 신정(新正), 삼일절(3월 1일)·식목일(4월 5일)·어린이날(5월 5일)·석가탄신일(음력 4월 8일)·현충일(6월 6일)·제헌절(7월 17일)·광복절(8월 15일)·개천절(10월 3일)·성탄절(12월 25일)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설날은 한때 음력과 양력의 이중 역법체계의 갈등을 해소, 단일화한다는 명분 아래 폐지되었다가, 실제적인 이중과세가 여전히 잔존하고 전통민속문화의 계승이라는 문제가 대두되면서 명칭을 구정(舊正)에서 ‘민속의 날’로, 다시 ‘설날’로 개칭하여 국정공휴일로 정해졌다. 실질적으로 설날과 추석은 우리 나라의 2대 명절로서 민족의 대이동일(大移動日)이라는 새로운 풍속도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모든 상황들은 종래의 농촌문화와 전통적인 신앙성을 당연히 약화시키고 있으며, 그에 따라 대형 집단민속놀이의 세시풍속들도 소멸되어 가는 추세에 있다. 내무부에서는 1960년대 새마을사업 초기에 동제(洞祭)의 폐지, 제당(祭堂)·장승 등의 철거를 전국에 지시한 일이 있었고, 그 상태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영남이나 호남에 많았던 동제·농악·줄다리기 등과 함께 이루어지는 마을 단위의 세시풍속들은 아무래도 점차 소멸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 이 전체적인 소멸추세에 대하여 문화재 보존이라는 차원에서 반성과 보존운동이 국가적인 관심 속에 새로이 전개되어 가고 있다. 이른바 향토문화제라는 이름으로 관 주도형(官主導型)의 대형 지방축제들이 전국적으로 80∼90개로 성황을 이루며 세시풍속화하는 것도 근래의 한 경향이다.

[관혼상제]

우리 나라 고유의 민속인 관혼상제의 의례는 광복 이후 가정의례에 관한 법규가 제정되면서 관 주도의 새로운 풍속이 형성되었다.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어른이 되는 데는 남자는 관례(冠禮)를 행하고 여자는 계례(渠禮)를 행하여 어른과 아이를 구별하는 관습이 있었으나, 광복 이후 점차 사라지고 관례는 혼례에 포함되고 말았다.

우리 나라의 혼례예식도 요즈음에 와서는 외래사조의 영향을 받아 양가가 따로따로 잔치를 차리고 또 친영(親迎)의 예를 행하는 등의 번폐를 없애고 많이 개선하여 행하며, 특히 도시에서는 재래식 혼례예식보다는 현대식 혼인을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신식 혼인식은 서양식 혼인식과 비슷한 것으로 원래는 기독교 교회식에서 나온 것이다. 혼인식이 끝나면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으며, 시부모에게 드리는 폐백도 식이 끝나면 별실에서 곧바로 행해진다.

한때 호화혼인식이 사회문제로 등장하자 혼인식을 법령으로 간소화하는 조처가 행해지기도 하였다. 한편, 상례 및 제례의 예식도 1969년부터 대통령고시로 제정, 공포된 〈가정의례준칙〉에 의거하여 간소하게 시행되었다. 물론, 지방이나 집안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종래의 절차보다 대체로 간소화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3. 생활

[의생활]

근·현대에 이르러, 개화의 물결은 의생활에 있어서도 변화를 가져와 기존의 의복제도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서구문물의 영향으로 점차 양복이 정착되는 한편, 한복에 있어서도 거추장스러운 옷차림에서 벗어나 평상복을 중심으로 한 한복 고유의 기본형으로 돌아가 간소화되었다. 또한, 신분에 따른 의복의 외형적인 차이점도 거의 사라졌다.

특히, 광복과 함께 의생활은 외래의 유행이 일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들어오게 되어 또 하나의 변혁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6·25전쟁을 계기로 외국의 구호·원조 물품이 대량 유입됨으로써, 서양의 복식문화가 일상화되기 시작하였다. 전반적인 흐름으로 보면, 광복 이후 현대사회의 의생활 부문은 초기의 공백기를 지나 서구화가 가속화되고 정착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이에 따라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이르러 양복은 일상적인 생활양식으로서의 지위를 굳히고, 나아가서 생활양식 및 의식변화와 더불어 의류산업이 급성장하여 1970년대 말에는 기성복이 정착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또한, 국제교류가 증진됨에 따라 외국 유행의 영향도 보다 직접적으로 받아, 1960년대는 미니스커트와 판탈롱이 유행하였고, 1970년대는 핫팬티가, 그리고 1980년대는 디스코 스타일의 배기룩이 크게 유행하였다. 1990년대는 무정형과 다양성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양복이 일상복으로 정착된 반면 한복은 예복·특수복으로 분화되었으며, 그 결과 장식성을 더하여 고급화되고 있다. 한복의 고급화는 맞춤복화로 가능하여진 것이지만, 1970년대 말부터는 한복도 기성복화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로써, 가풍에 의해서까지 구속되었던 자가봉제 한복의 보수성에서 벗어나 패션성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1990년대에는 전통적 한복을 실생활의 편의에 따라 개량한 생활한복이 등장하였다.

의복재료에 있어서는, 1950년대 초엽까지 옥양목이나 광목·베·모시, 또는 부유층의 경우 비단이나 모직물 등 주로 천연섬유를 많이 사용하였으나, 1953년 처음 수입된 나일론을 비롯하여 합성섬유들이 질기고 손이 덜 간다는 장점 때문에 1950년대 말부터는 널리 보급되어 복식상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섬유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다시 고급화된 천연섬유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식생활]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 의생활과 주생활이 서구화되면서 식생활도 여러 가지 변화를 겪었다. 특히 6·25전쟁 이후, 지역간·사회계층간의 극심한 이동은 광복 이전까지 남아 있던 지방 고유의 독특한 조리법과 전통음식의 특성을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인공조미료의 보급으로 국민들의 식성이 획일화되는 등 광복 이후 50여년 동안 식생활양식이나 질뿐만 아니라 미각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또한, 산업화 이후 생활의 합리화, 도시의 아파트생활 등 근대생활문화는 인스턴트식품시대와 식품공장화시대를 초래하여 식생활역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960년대 중반 라면이 등장한 이후로 통조림·분말식품·훈제식품, 각종 조미료 등이 속속 개발되어 식생활을 편의 위주로 몰고 갔으며, 이러한 가공·편의식품의 소비량은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또한, 간장·된장·고추장 등 전통적인 저장식품의 공장생산화가 이루어져 이들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늘었고, 1980∼1990년대에 들어서는 각종 패스트 푸드 업체들이 급성장하는 등 외식산업(外食産業)이 급속히 번창하고 있다.

그 동안 끊임없는 미각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종류의 식품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식생활 양태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한식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각 가정에 냉장고가 보급되고 조리기구가 달라져도 밥·국·김치 등으로 차려지는 식탁의 기본만큼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대한민국의 일상음식은 기본적으로 밥을 주식으로 하고 반찬을 부식으로 하여 차리는 주식·부식 분리유형이 주조를 이룬다. 밥은 곡물음식이므로 반찬은 되도록 곡물이 아닌 식품으로 만들어 밥에 없는 영양소를 보완하고 밥의 맛을 더하게 할 수 있도록 관습화되어 있다.

반찬의 수에 따라서 3∼12접시의 다양한 내용을 가지며, 모든 음식이 한 상에 한꺼번에 차려서 나온다. 그런데 오늘날 과거와는 달리 첩수와 그 내용이 정확히 지켜지지는 않고 있다.

아침·저녁의 상차림은 가정마다의 기호, 생활규범, 향토적 특성 등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어느 가정에서나 김치류·장류·젓갈·마른 반찬류 등을 상비하여 일상음식에 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김치는 익는 동안에 생긴 유기산 맛과 발효미(醱酵味)가 잘 조화된 상용음식으로 밥상에서 밥 다음으로 상용적 위치를 차지한다. 김치는 일종의 상비·저장 식품이며 장류(醬類)와 밑반찬도 그에 속한다.

한편, 김치를 담그는 김장은 추운 겨울 동안의 3∼4개월을 위해서 채소공급원을 준비하는 주요 행사인데, 오늘날 비닐하우스의 채소재배와 저장식품의 상품화 추세에 따라 예전에 비하여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그리고 상차림과 접대하기의 격식은 20세기 초반 이후 많이 바뀌어 노인·어른 이외는 모두 함께 모여 두레상차림에서 밥을 같이 먹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요즈음에는 식탁을 사용하여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양식으로 크게 변하였다.

한편, 생활이 나아지고 전반적인 식생활 개선이 이루어짐에 따라 곡류섭취량은 감소하는 반면 동물성단백질의 섭취량이 증가하고, 과일·채소·두류의 섭취량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식량자급도는 계속 저하되어 수요량의 절반 수준이다. 주곡인 쌀의 자급도는 완전자급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정도이지만 식생활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작아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추세와 관련하여 과잉영양섭취로 인한 비만아·성인병 등이 오늘날 새로운 문제거리로 등장하고 있으며, 지나친 가공·편의 식품 위주의 식단은 영양의 불균형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주생활]

8·15광복 후 정치·사회적 불안정으로 항구적인 주택건설사업에 역점을 둘 여력이 없는 데다가, 월남민들과 만주·일본 등지에서 귀환한 동포들의 수적 증가로 심한 주택난에 시달렸다.

더욱이, 6·25전쟁을 겪으면서 전국토가 파괴되고, 북한으로부터의 수백 만의 피난민 이주는 주택사정을 극한적으로 어렵게 만들었다. 극심한 주택부족은 UN의 원조와 자체의 건설 노력에도 불구하고 판자촌과 천막촌 등 무허가주택을 난립시키는 폐해를 가중시켰다.

1960년대까지의 이러한 어려움은, 정부 주도의 공공주택 건설의 노력과 민간자본의 주거건설참여로 1980년대까지 적극적인 단지개발과 주거의 질적 내용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급증하는 인구와 세대구성의 핵가족화 및 택지의 절대적 부족이 높은 토지가격의 부담과 함께 주택보급을 과거보다 더 악화시키고, 국민소득의 한계로 말미암아 손쉬운 주택취득은 아직도 기본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특히, 산업화과정에서 인구의 도시집중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도시의 주택부족률은 계속 증가하여 1983년 말 현재 약 46.5%에 달하고 있다. 이를 농촌지역의 8%와 비교해 볼 때, 오늘날 대한민국의 주택난은 바로 도시지역에 있어서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셋방살이는 대한민국의 도시서민들 사이에 일반화된 삶의 형태가 되었다.

1995년 말 전국의 가구수는 1113만 가구, 주택수는 957만 호로 86.1%의 주택보급률을 보였다. 1988년에 시작된 200만 호 건설계획과 1993년부터 시작된 신경제5개년계획은 1988년의 70%에도 미달하던 주택보급률을 상승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196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아파트생활문화는 급속한 속도로 국민들의 주생활에 파고 들었다. 전국의 모든 주택 가운데 아파트는 1983년 말 현재 약 17%를 차지하고 있다. 1997년 전국에서 건설된 주택물량의 81.3%가 아파트이다.

한편, 주택규모는 1970년의 14.5평에 비하여 1985년에는 22.3평으로 7.8평이 증가하였으며, 가구당 주거면적도 1970년의 11.4평에서 1985년에는 14.2평으로 2.8평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주택규모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방 1개에 거주하는 가구는 전체가구의 32.6%, 방 2개 이하에 거주하는 가구는 전체가구의 66.2%에 달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이 월세·전세 형태의 셋집을 살고 있는 등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의 주거생활을 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더욱 공공주택을 개발, 주거밀도를 높이고, 임대주택으로의 분양방법을 전환함으로써, 토지의 공개념(公槪念)을 통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주택 자체의 양식은 생활양식의 급격한 서구화 추세로 편익성·기능성 우선의 구성과 설비로 바뀌고, 또 건설의 경제성을 추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주거의 전통성이 많이 잠식당하고 있다. 그 결과로 오늘날 일반주택의 건축에 있어서 전통적 한옥양식을 갖춘 집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창호지를 바른 봉창이나 문은 유리와 합판으로 짠 문으로 바뀌었고, 마루는 벽과 유리로 막아 현관을 통하여 출입하도록 변형되었다. 흙으로 구운 한식 기와나 이엉 같은 전통적 지붕재료들도 그다지 사용되지 않으며, 전통한옥의 지붕곡선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목조가옥은 시멘트나 블록건축물로 대체되었다.

가옥의 입지도 전통적으로는 자연환경 및 풍수지리설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최근 도시지역에 건축되는 많은 가옥의 위치나 방향은 접근이 쉬운 도로를 따라서, 또는 도시계획에 의하여 정리된 구획형태에 따라서 배열되고 있다. 이러한 외형적 변화는 물론 주생활 자체도 사회 전반의 서구화 추세에 따라 크게 변화하고 있다.

스테인레스 스틸로 된 조리대, 바닥이 높아져 마루나 방과 똑같은 높이의 평면이 된 입식 부엌, 목욕탕 설비, 수세식 좌변기가 갖추어진 현대식 주택이 등장하여 널리 보급되었다. 이러한 시설의 확충은 수도의 일반가정 보급과 난방 및 취사연료의 변화를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동선이 길고 조리자세가 불편한 재래식 부엌의 작업환경의 변화는 나무를 때던 아궁이가 연탄아궁이로 바뀌고, 다시 보일러를 사용한 중앙난방 방식이 보급되고, 수도가 부엌 안까지 들어오고, 거기에 난방연료와 취사연료가 분리, 사용됨으로써 이루어졌다. 1980년대 도시가스가 개발되어 가스의 지역별 집단공급 방식이 대두되어 연탄의 비중은 계속 감소하였다.

[여가생활]

공업 부문의 발달은 대체로 국민소득 증대에 기여하였고, 생산시설의 근대화와 대량생산 체제로의 돌입은 생산직 근로자 등 직장인들의 생활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여가생활의 추구방식도 다양해지고, 이에 따른 수요증가로 점차 여가와 관련된 산업의 발전도 촉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여가활용비 지출이 도시 및 농촌 가구에서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나, 교양오락비 지출율에 있어서는 도시가구가 1975년 1.9%, 1980년 1.8%, 1985년 3.3%, 1990년 4.4%, 1994년 4.9%의 수준으로 같은 시기 농가의 1.2%, 1.7%, 0.9%, 0.7%, 0.9%보다 높다.

여가활용은 1993년 전국을 기준으로 수면 및 가사 잡일이 45.4%로 가장 많으며, TV 시청이 24.4%, 연극·영화 등의 감상이나 박물관 등의 관람이 4.9%, 스포츠·여행이 14%이다. 여가계획을 세울 때의 주요 고려사항은 마음의 여유와 비용이다.

가족의 여가계획에 영향을 미치는 가족구성원은 주로 아버지(남편)이다. 핵가족화의 진전에 따라 할아버지·할머니의 존재가 약화되고 아버지·어머니 중심으로 바뀌고 있으며,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여타의 구성원 또는 어머니(처)의 영향력이 크다.

여가활동은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하며 혼자인 경우도 적지 않은 반면, 직장동료나 이웃과 함께 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여가활용 만족도는 1993년 전국을 기준으로 14.8%에 불과하여 낮은 편이며, 텔레비전시청률이 1977년 54.4%, 1980년 84.3%, 1983년 84.2%, 1990년 93.9%, 1993년 94.8%로서 텔레비전 시청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1985년의 국민생활시간 조사에 의하면 성인이 생활필수시간에 소비하는 시간량은 남자가 평일 10시간21분, 토요일 10시간24분, 일요일 11시간12분이며, 여자는 평일 10시간18분, 토요일 10시간23분, 일요일 11시간3분이다.

노동시간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남자의 경우 평일에는 다소 증가하였으나 토요일에는 감소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고, 여자도 남자와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여가활동을 하고 있는 비율은 남자의 경우 평일과 토요일에 증가한 반면, 여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높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성모>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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