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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6-18 (금) 10:04
분 류 사전4
ㆍ조회: 400      
[고대] 단양 신라 적성비 (두산)
단양 신라적성비 丹陽新羅赤城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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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 때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의 적성(赤城)에 세워진 비석.

1979년 5월 22일 국보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93cm, 윗너비 107cm, 아랫너비 53cm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에 대해서는 545년(진흥왕 6) 이전, 550년, 551년 등 각기 다른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1978년 1월 단국대학교박물관 조사단이 발견하였다.

단단한 화강암을 물갈이한 뒤 그 위에 직경 2cm 내외의 글자를 음각하였다. 윗부분은 파손되었으나 좌우 양측면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비문은 전체 22행에 각 행당 20자씩 새겨져 있지만, 제20행에서 제22행까지는 18~19자씩만 있어서 전체 글자수는 430자 내외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글자 수는 비면의 288자와 주변의 발굴을 통하여 수습된 21자를 합쳐 309자이다.

오랫동안 땅속에 파묻혀 있었던 탓인지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는 거의 없지만, 윗부분이 파손되어 전체 내용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문장은 순수한 한문식이 아니라 신라식 이두문(吏讀文)과 한문이 섞여 있다. 서체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해서체(楷書體)이지만 예서풍(隸書風)이 강하게 남아 있다.

이 비는 이사부(伊史夫)를 비롯한 여러 명의 신라 장군이 왕명을 받고 출정하여, 고구려 지역이었던 적성을 공략하고 난 뒤, 그들을 도와 공을 세운 적성 출신의 야이차(也尒次)와 가족 등 주변 인물을 포상하고 적성 지역의 백성들을 위로할 목적에서 세웠다. 여기의 이사부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사부(異斯夫)로 알려졌다.

이 비에는 기존의 문헌 자료에 보이지 않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어 신라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예를 들면 대중등(大衆等)ㆍ군주(軍主)ㆍ당주(幢主)ㆍ사인(使人) 등의 명칭을 통해 중앙과 지방의 통치 조직 및 촌락의 존재 양상을 보다 깊이 파악할 수 있고, 국법(國法)ㆍ적성전사법(赤城佃舍法)ㆍ소자(小子)ㆍ소녀(小女)ㆍ여(女)와 같은 용어를 통해서 율령(律令)과 조세 제도 등 사회사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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