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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5-13 (목) 07:55
분 류 사전4
ㆍ조회: 593      
[원시] 원삼국 시대 (민족)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

우리 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 철기 시대 이후에 등장하는 시기. 서력 기원을 전후로 한 시기부터 300년경까지의 약 3세기간을 이른다.

[명칭 문제]

김원룡(金元龍)에 의해 삼국 시대 원초기(原初期) 또는 원사(原史)단계의 삼국 시대라는 취지에서 원삼국 시대(Proto-Three Kingdoms Period)라는 명칭이 제안되기 전까지는 이 시기에 대한 명칭은 다양하였다.

고고학에서는 김해 시대ㆍ웅천기(熊川期)ㆍ철기 시대 Ⅱ기 등으로, 또 문헌사학에서는 삼한 시대ㆍ부족국가 시대ㆍ성읍(城邑)국가 시대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러왔다.

최근에는 초기철기시대(서기전 300∼?)에 등장한 위만조선을 우리 나라 최초의 고대국가로 인정하고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삼국의 기원 및 형성 연대를 사실로 받아들여 이 시대를 삼국 시대 초기 또는 전반기를 의미하는 뜻에서 '삼국 시대 전기'라고 부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화 특징]

이 시기에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으로는 청동기의 실용성 소멸, 철기 생산의 보급 및 확대, 김해토기의 출현, 농경 특히 벼농사의 발전, 고인돌의 소멸, 돌널무덤[石槨墓]의 발달 등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김해ㆍ양산ㆍ동래ㆍ고성ㆍ창원ㆍ성산 등지의 낙동강 하류지역에 밀집, 분포하고 있는 조개더미 유적과 보성강 유역에서 조사된 승주군 낙수리ㆍ대곡리ㆍ구산리, 그리고 해남 군곡리의 집자리 유적을 들 수 있다. 또 춘천 중도(中島), 가평 마장리, 양평 대심리, 수원 서둔동 등의 중부 지방에 위치한 유적들도 이 시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토기는 일찍부터 그 존재가 알려진 김해 조개더미의 이름을 딴 김해토기이다. 대표적인 김해토기는 회청색ㆍ적갈색의 삿자리[승석문繩蓆文-새끼줄무늬] 경질토기이다. 이는 종래의 민무늬토기에 중국식의 회도(灰陶)기법이 가미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해토기는 매우 정선된 바탕흙으로 제작되었으며, 그 소성도 종래의 노천요보다 고온을 낼 수 있는 등요(登窯)에서 이루어졌다. 시문은 도박(陶拍)이라고 하는 시문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장식적인 효과보다는 기벽을 단단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제작 과정에서 아가리 부분에 돌림판을 사용한 흔적도 보인다. 기형에는 평저ㆍ원저의 감(龕)ㆍ고배(高杯)ㆍ광구호(廣口壺)ㆍ장경호(長頸壺)ㆍ화로형토기 등이 있으며, 시루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철기류는 전시대에 비해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종류는 크게 무기ㆍ농경구ㆍ공구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기술적인 면에 있어서도 이전 시기의 주조품에서 발전한 단조품이 많이 보이는데, 마장리ㆍ이곡리ㆍ중도ㆍ성산 등지에서 확인된 야철(冶鐵) 유적의 존재는 이를 방증해준다.

그리고 철기가 많이 보급되기는 하였지만 석기류의 사용흔적도 계속 보여진다. 짐승의 뼈나 뿔을 이용한 생활용구도 조개더미 유적에서 많이 보인다. 장신구로는 벽옥(碧玉)ㆍ수정ㆍ활석 등으로 만든 구슬류가 많이 출토되고 있다.

집자리는 이전 시기부터 사용되던 움집터[竪穴住居址]가 아직 주류를 이루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시기 주거양상의 특징은 지상가옥으로의 전환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특이한 예로 김해 부원동 유적에서는 원형ㆍ방형의 움집터라 초석을 지닌 양식이 함께 확인되었으며, 춘천 중도에서는 강돌을 깐 뒤 그 위에 진흙을 덮은 새로운 양식의 화덕시설을 갖춘 집자리가 보고된 바도 있다.

묘제에 있어서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즉, 고구려 지역에서는 대형의 돌무지무덤이 축조되고, 낙동강 유역에서는 판석이나 괴석을 이용한 돌널무덤이 많이 보이며,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독무덤이 유행하는 한편, 이전 시기부터 축조되어왔던 널무덤계통도 역시 지속된다.

이 시기에 있어 특히 중요한 고분형식으로는 경주 조양동에서 보이는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가 있다. 이는 초기 철기 시대의 토광목곽묘의 전통을 이어 고신라의 적석목곽분으로 이어지는 과도기적인 양식으로 보인다.

[의의]

이러한 문화 양상을 보이는 원삼국 시대는 우리 나라에 있어서 선사 시대에서 진정한 의미의 역사 시대로 전환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로서 역사학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참고문헌≫

韓國考古學槪說(金元龍, 一志社, 1986), 원삼국시대-회고와 전망 및 문제점-(崔夢龍, 韓國考古學年報 10, 1983), 韓國考古學의 時代區分에 대한 약간의 提言(崔夢龍, 崔永禧先生華甲紀念韓國史學論叢, 1987), 鐵器時代와 古代國家의 發生(崔夢龍, 제2판 韓國史硏究入門, 知識産業社, 1987), 原三國期 土器의 변천과 문제점(최성락, 嶺南考古學 5, 1988), 原三國時代 土器의 유형ㆍ계보ㆍ편년ㆍ생산체제(李盛周, 韓國古代史論叢 2, 1991), 原三國時代論 檢討(李賢惠, 韓國古代史論叢 5, 1993), 원삼국 토기의 계통과 성격(崔秉鉉, 韓國考古學報 38, 1998).

<최몽룡(崔夢龍)>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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