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4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5-14 (금) 22:07
분 류 사전4
ㆍ조회: 427      
[고대] 부여 (두산)
부여 夫餘

고조선(古朝鮮) 시대와 거의 같은 시기에 지금의 북만주 일대에 웅거한 부족 국가.

BC 2세기경부터 494년까지 존속한 예맥족계(系)의 나라이다. 부여는 토지가 광활하고 농업을 하기에 적합한 지금의 북만주 눙안[農安]ㆍ창춘[長春] 일대에서 농업을 주로 하면서 궁실(宮室)ㆍ성책(城柵)ㆍ창고ㆍ감옥 등 진보된 조직과 제도를 가졌던 나라이다.

정치는 완전한 귀족 정치로서 지배 계급에는 왕과 그 밑에 가축의 이름을 붙인 마가(馬加)ㆍ우가(牛加)ㆍ저가(猪加)ㆍ구가(狗加)와 대사(大使)ㆍ사자(使者) 등의 관직이 있었으며, 또 전국을 사출도(四出道) 혹은 사가도(四街道)라 칭하는 지역으로 나누어 마가ㆍ우가 등의 제가(諸加)가 각각 그 일부 지역을 맡아 다스렸다. 사출도 중의 큰 지역은 수천 호(戶), 작은 것은 수백 호가 되었다. 피지배계급인 하호(下戶)는 모두 노예에 속하였다고 한다.

산업은 농경을 주로 하였고, 명마(名馬)ㆍ적옥(赤玉)ㆍ미주(美珠)ㆍ돈피(獤皮) 등이 산출되었고, 풍속 중에는 영고(迎鼓)라는 제천대회(祭天大會)가 있었고, 법률이 매우 엄정하여 도둑질ㆍ간음(姦淫) 등에 대하여는 특히 엄벌하였다. 부여의 주위에는 서쪽으로 선비(鮮卑)ㆍ오환(烏桓), 동쪽에는 읍루(挹婁), 남쪽으로는 고구려와 한(漢)나라의 현도군(玄菟郡)이 인접해 있었다.

해부루왕(解夫婁王) 때 아란불(阿蘭弗)의 권고로 가섭원(迦葉原)으로 수도를 옮긴 후부터는 동부여라고 칭하였다. 가섭원은 《삼국사기》를 근거로 하여 지금의 강원도 강릉이라는 설, 중국의 지린성[吉林省] 훈춘[琿春]이라는 설 등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후에 동부여의 땅은 모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윗글 [고대] 부여 (한메)
아래글 [고대] 부여 (민족)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40 사전4 [토기] 미송리형토기 (두산) 이창호 2010-06-06 527
39 사전4 [토기] 미송리형토기 (민족) 이창호 2010-06-06 881
38 사전4 [고대] 부여 (브리) 이창호 2010-05-14 575
37 사전4 [고대] 부여 (한메) 이창호 2010-05-14 493
36 사전4 [고대] 부여 (두산) 이창호 2010-05-14 427
35 사전4 [고대] 부여 (민족) 이창호 2010-05-14 916
34 사전4 [원시] 원삼국 시대 (브리) 이창호 2010-05-13 547
33 사전4 [원시] 원삼국 시대 (한메) 이창호 2010-05-13 444
32 사전4 [원시] 원삼국 시대 (두산) 이창호 2010-05-13 539
31 사전4 [원시] 원삼국 시대 (민족) 이창호 2010-05-13 592
12345678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