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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4 (수)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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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103      
[국가] 인도 (두산)
인도 India 印度

남부 아시아에 있는 나라.

I. 개관

위치 : 남부아시아
면적 : 316만 6414㎢
인구 : 10억 6546만 2000명(2003)
인구밀도 : 336.5명/㎢(2003)
수도 : 뉴델리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힌디어(제1공용어), 영어(제2공용어)
통화 : 루피(Rupee, Re)
환율 : 45.87Re = 1$(2003.9)
1인당 국민총생산 : 460$(2003)
나라꽃 : 파파베르

면적은 316만 6414㎢, 인구는 10억 6546만 2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336.5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인도 공화국(Republic of India)이다. 힌디어로는 바라트(Bharat)라고 한다. 아시아 문명의 원천으로 불교가 발상한 곳이며, 천축(天竺)이란 이름으로 예부터 알려진 곳이다. 1947년 8월 15일 3세기 반에 걸친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한 민주국가로, 영국 연방을 구성한다. 국토면적은 세계 7위이며, 인구는 세계 2위이다.

II. 자연

1. 지형

인도는 히말라야산맥·인도대평원(타르사막)·데칸고원·해안과 도서의 4대 지형구로 되어 있다.

⑴ 히말라야산맥:인도의 북쪽 경계를 이루며, 파키스탄에서 미얀마 국경에 걸쳐 전체길이 2,400km, 너비 약 20km에 이른다. 대(大)히말라야 ·소(小)히말라야 ·시왈리크 등 3개의 습곡축(褶曲軸)이 나란히 달린다. 대빙하와 만년설로 뒤덮인 대히말라야산맥에는 에베레스트산(8,848m)을 비롯하여 8,000m 내외의 고봉이 인도 쪽에만 14개봉이 있으며, 변성된 퇴적물을 주변에 갖는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히말라야산맥은 선캄브리아대(代)에서 에오세(世)에 이르는 각 시기의 암석이 강하게 압축되어 변성된 것으로 이루어졌으며, 봉우리는 5,000m, 계곡은 1,000m 정도의 높이를 이룬다. 히말라야산맥의 남쪽에 있는 시왈리크산맥은 남쪽을 향해 급경사를 이루며 마이오세에서 플라이오세에 이르는 히말라야 조산운동(造山運動)에 의해 융기, 그후 히말라야의 하천에 의한 침식과 운반으로 퇴적된 지층으로 이루어졌다.

⑵ 인도대평원:갠지스강(江)과 브라마푸트라강(江)을 주된 수계(水系)로 하는 70만㎢의 면적을 차지하는 대평원이다. 갠지스강 하구에서 1,600km에 달하는 상류도 해발고도 150m에 불과한 저평한 지대를 이룬다.

⑶ 데칸고원:면적이 약 160만㎢에 달하며, 잔구, 산정평탄면(山頂平坦面), 연속되는 고원, 그리고 준평원 중에 협곡과 넓은 하곡 등이 전개된다. 이 고원의 북서부를 북동에서 남서로 달리는 아라발리산지는 최고(最古)의 습곡산지 유물이다. 서고츠산맥은 고원의 서단에서 남북으로 달리면서, 아라비아해(海) 사면과 벵골만(灣) 사면의 분수계(分水界)를 이룬다.

고원의 모든 하천은 여기에서 발원하여 고원상을 흘러 벵골만으로 유입하는 것이 많다. 동고츠산맥은 서고츠산맥과는 달라 모든 하천에 의해 분단되어 있다. 데칸고원은 곤드와나 대륙의 일부가 남아 있는 것으로서, 오래된 지층으로 구성되어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북서부는 넓은 용암대지로 풍화토양은 목화 재배에 적당하다.

⑷ 해안과 도서:인도반도의 서안(西岸)은 일반적으로 넓은 평야가 없다. 다만 북단에 카티아와르반도가 돌출하여 쿠치만(灣)과 캄베이만(灣)을 만들고, 후자의 연안에 구자라트 평야를 전개시킨다. 동안(東岸)에는 고다바리·크리슈나·코베리 등의 모든 하천유역에 넓은 평야가 발달되었다. 도서도 동과 서로 나눌 수 있다.

아민디비섬(래카다이브섬)·미니코이 등 아라비아해의 도서는 오랜 지괴(地塊)가 침강할 때의 잔존물이 핵(核)이 되어 훗날 산호초가 형성된 것이다. 벵골만의 안다만제도·니코바르제도는 해발 750m 높이로 융기한 제3기층의 습곡축(褶曲軸)으로 형성되어 있다.

2. 토양

인도의 토양은 라테라이트[紅色土]화가 지배적이지만 다음과 같이 6개의 토양군으로 분류된다.

⑴ 충적토양(운砒躬?:충적 롬층과 석회질점성 충적층으로 분류된다.

⑵ 용암토양(熔岩土壤):흑토(黑土)로, 레구라고도 한다. 식물의 영양분, 보수력(保水力)이 풍부하여 목화 재배에 적당하다. 용암성 흑색점토와 용암성 흑색 롬층으로 나누어진다. 전자에는 실트가 65∼80%, 후자에는 30∼40% 포함되어 있다.

⑶ 고대암석의 풍화토양:용암토양을 제외한 반도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다공질(多孔質)이기 때문에 보수력은 적다. 적색롬토양 ·적색사질토양 ·라테라이트화토양으로 나누어진다. 적색롬토양은 흙덩이가 많은 구조로, 부서지기 쉽고 영양분이 적다. 적색사질토양은 삼림의 생장을 억제하지만 한발에 견디는 작물에는 적당하다. 라테라이트화 토양은 화강암 가수분해(加水分解)에 의해서 전형적으로 발달하였고 건조되면 암석처럼 굳어진다.

⑷ 산지토양(山地土壤):히말라야 산지의 토양이며, 한랭습윤한 겨울과 온난한 여름이 있는 삼림지대(森林地帶)의 포드졸 토양과 기타의 산지토양으로 나누어진다.

⑸ 사질사막토양(砂質砂漠土壤):인도 북서부의 건조·반건조한, 풍화로 발달된 토양으로 사질과 역질(礫質)이 주성분이며, 식물 영양분이 적다. 모래의 함량은 동부에서 46%, 서부에서는 95%에 달한다. 염성토양(鹽性土壤)이 반점상(斑點狀)으로 점재한다.

⑹ 해안토양(海岸土壤):하성(河成)의 충적토양과 조류(潮流)·조석(潮汐)에 의한 해성(海成) 토양과 혼합되어 있다.

3. 기후

인도는 위도로 볼 때 기후가 아열대에서 온대에 위치하지만, 히말라야산맥이 장벽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열대몬순기후를 나타낸다. 몬순(계절풍)은 태양이 북반구로 북상하고, 또한 남반구로 남하함에 따라 겨울과 여름의 두 계절이 나타나고, 남서와 북동의 바람이 교대하는 것으로서 인도양을 항해하던 아라비아인(人)이 명명한 것이라 전해진다.

10월 하순에 시작되는 겨울은, 인도 북부에서는 곳에 따라 영하로 내려가고 강수량이 적고 건조한 것이 특색이다. 3월부터는 기온이 급상승하고 강우가 없으며 상대습도(相對濕度)는 급감하고 열풍이 불 때도 있다. 5월 말에는 인도 북서부에 저기압이 형성되고, 6월 중순에 걸쳐 많은 강우를 동반하는 여름의 몬순이 시작된다.

우기 개시의 지속, 강수량의 변동 등은 인도 농업의 풍흉을 좌우한다. 인도 북동부 메갈라야주(州) 체라푼지는 연강수량 1만mm가 넘는 세계 제1의 다우지역이다. 여름의 몬순이 인도 각지 연강수량의 대부분을 내리게 한다. 4,000mm 이상 되는 곳은 아삼지방과 서고츠 산맥 서쪽 사면이며, 2,000mm 이상은 벵골 평야이고, 갠지스강 중류에서는 1,000mm, 델리 부근에서는 600mm로 감소한다. 라자스탄에서는 200mm 이하로 되어 타르 사막을 이룬다. 다만 마드라스 부근과 같은 반도 남동부는 벵골만을 건너오는 겨울몬순이 비를 가져와 1,000mm 이상이 된다.

인도의 계절은 3월에서 5월에 이르는 건조혹서기(乾燥酷暑期)와 6월에서 10월 상순에 걸친 습윤고온기(濕潤高溫期), 그리고 10월에서 2월에 이르는 건조한랭기(乾燥寒冷期) 등의 삼계(三季)로 되어 있다. 최고기온은 하지와 우계 직전에 나타난다. 해안 가까이 있는 캘커타에서는 낮에도 그늘의 기온이 40℃를 넘는 경우가 가끔 있으며, 갠지스강 중류지역에서는 43℃ 정도로 오르는 것은 보통이다. 밤에도 실내는 더우므로 사람들은 마당이나 길 가에서 노숙을 많이 한다. 남부 인도는 원래 상하(常夏)의 지방이나, 북부 인도의 겨울은 기온이 내려가 한국의 초가을과 같으며 하늘은 맑게 개어 순례(巡禮)의 계절이 된다.

4. 동물

인도의 동물은 약 7만 6000여 종이 기록되어 있으며,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무척추동물과 많이 알려진 척추동물로 나뉜다. 어류는 1,650종에 이르고 뱀 종류도 400종이나 되며, 이 중에서 코브라 등의 11종은 독사이다. 조류는 풍부하여 세계의 14%에 달하고, 공작은 옛날부터 애육(愛育)되었으며, 지금은 국조(國鳥)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포유동물(哺乳動物)로는 긴팔원숭이·곰·여우·표범·코끼리·사자·호랑이 등 46종이 있다. 그러나 삼림의 파괴와 수백 년에 이르는 자유수렵의 결과 치타 등 몇 종은 멸종되었으며, 현재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47개의 보호구역과 23㎢에서 1,550㎢에 이르는 국립공원이 설치되었고, 사자는 인도의 국민수(國民獸)로 지정되어 있다.

5. 식물

인도의 식물은 전국적으로 약 3만 종에 이르는데 열대 기원의 식물로부터 극 기원에 이르기까지, 사막의 선인장에서 열대의 정글에 가까운 상록수림까지 다양하다. 미얀마·중국 종(種)과 유사하고, 오스트레일리아·동아프리카 등 환인도양(環印度洋) 지역과도 어느 정도 친근성을 가진다.

그러나 삼림면적은 국토 총면적의 17%에 지나지 않고, 그 지역적 분포도 넓지 못하다. 안다만제도·니코바르제도에서는 도서의 약 80%, 방글라데시 동부의 트리푸라주(州)에서는 63%가 삼림지대이나 인도대평원에는 거의 삼림이 없다. 그러나 각주(各州)의 여러 곳에 남아 있는 삼림자원은 경제적으로 중요하다.

식생구는 습윤열대림·건조열대림·아열대림·온대림으로 나뉜다. 인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삼림인 습윤열대림에 속하는 열대낙엽수림은 사과나무·티크·자단·백단 등 경제성이 큰 수종이며, 그 밖에 삼각주의 해안, 하구부(河口部)에는 조석(潮汐)의 영향으로 맹그로브의 삼림이 발달해 있다. 건조열대림은 연강수량 1,000mm 이하 지역에 분포하는데 건조상록수림·건조낙엽수림·열대유자관목림 등으로 임상이 바뀌며 아라발리산맥의 서부에는 불모의 사막이 전개된다.

아열대림으로는 떡갈나무·밤나무·너도밤나무·소나무 등이 있고 히말라야 산기슭에는 야생의 올리브가 무성하다. 온대림으로는 목련·월계수·석남 등의 고유종을 비롯하여 유칼리·키나 등의 외래종도 무성하나 대체로 활엽상록수와 침엽수의 혼합림을 이룬다.

III. 주민

1. 언어

1951년의 조사에 의하면 인도에는 방언까지 합하여 700가지에 달하는 언어가 사용되었다고 하나, 인구의 약 90%는 아리안계의 9개 방언, 드라비다계의 4개 방언을 쓰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아리안계의 중심은 전 인구의 45%가 사용하는 힌디어로서, 헌법은 인도의 장래 표준어로 채택하였다. 힌디어는 델리 부근에서 우타르프라데시주(州)를 중심으로 사용된다. 갠지스강 중류부의 비하르주에서는 비하르어가, 하류부의 서벵골주에서는 벵골어가 사용된다.

벵골어는 전인구의 8%가 사용하나, 방글라데시에서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인구를 합하면 힌디어에 버금가는 세력을 갖는다. 시성(詩聖) 타고르도 벵골인이며 벵골인은 벵골어를 가장 진화된 언어라고 주장한다. 그 밖에 아삼주의 아삼어(약 2%), 오리사주의 오리아어(4%)가 있으며,인도 북서부에는 펀자브주(州)의 펀자브어(3%), 라자스탄주(州)의 라자스탄어, 구자라트주(州)의 구자라트어(5%), 마하라슈트라주(州)의 마라티어(9%) 등이 쓰이는데 모두 아리안족의 고어(古語)인 산스크리트에서 분화된 방언이다. 드라비다계(系)도 안드라프라데시주 방면의 텔루구어(8%), 마드라스 부근 타밀나두주(州)의 타밀어(7%), 카르나타카주의 카나다어(4%), 케랄라주의 말라얄람어(4%) 등으로 나누어진다.

아리안어계와 드라비다어계는 문법이 다른 이종(異種)의 언어로, 각각의 방언은 그들의 문자를 갖는다. 인도의 주(州)는 각 지방의 언어에 의해 구획된 언어주(言語州)이며, 각 지방은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자랑으로 삼는다. 힌디어의 표준어화에 대하여 남부의 드라비다어계 여러 주에서 격렬한 반대가 있어, 현재도 영어가 공용어로서 병용되며 지식계급의 공통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밖에 헌법에서 공인된 주 언어가 17개이다.

2. 종교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갖는 많은 지역이 하나의 인도문화권을 구성하고, 광대한 국가로 통일된 것은 주로 종교의 힘에 의한 것이다. 인도 민중의 대다수는 힌두교를 믿는다. 힌두교는 원래 아리안족의 원시종교인 브라만교에서 발달하였다. 사제계급(司祭階級)으로서 브라만이 많은 자연신(自然神)을 숭배하였으나 그 후 점차 철학적으로 정리되었다.

BC 6∼BC 5세기 도시국가시대에 이르러 많은 사상이 생겨나서 불타에 의한 불교, 마하비라에 의한 자이나교 등이 브라만교에 대한 종교개혁으로서 전도되었다. 이들 신흥종교는 한때 인도를 풍미하였고, 불교는 아시아 각지에 퍼져 지금에 이른다. 그러나 그 후 이슬람교가 들어와서 불교를 배격하여 오래된 브라만교는 민간의 신앙과 결합하여 대중들이 믿게 되었다. 브라만은 여러 신 중에서 비슈누를 최고신으로 하는 비슈누파(派), 시바를 신으로 하는 시바파, 둘가 여신을 신앙하는 샤리티파 등 다수의 종파로 나뉘어 있으나 이것들을 총괄하여 힌두교라고 한다.

이로 인하여 한편으로 깊은 철학을 가진 힌두교는 종교생활에서도 난행(難行)과 고행(苦行), 엄격한 계율을 갖는 것에서부터 성(性)의 숭배로 신(神)에의 접근을 모색하려는 것 등 여러 갈래이며, 인도 민중의 모든 계층을 포괄한다. 힌두교도는 국민의 82.6%를 차지하며 전국의 여러 곳에 성지와 사원이 있고, 농한기에는 마을 도사(導師)를 따라 순례길에 나선다. 인종적·언어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힌두교도로 귀일(歸一)함으로써, 인도의 정신적 풍토가 조성된다고 할 수 있다. 외래의 종교 중에는 이란에서 인도로 이주한 사람들이 신봉하는 배화교(拜火敎)가 있다. 인도반도 아라비아해 연안의 남단에 가까운 코친에는 유대교도의 거주구(居住區)가 있다.

외래 종교 중에서는 이슬람교가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지는데, 10세기경부터 이슬람교도군(敎徒軍)이 델리 지방을 점거, 이슬람 왕국을 건설하고 무력으로 힌두교도를 개종시켰으나 하층의 카스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주로 응했다. 이슬람교는 힌두교와는 달리 알라의 신 외에는 신이 없으며 마호메트가 알라의 예언자인 일신교(一神敎)로서 다신교인 힌두교처럼 이교(異敎)에 대한 관용성이 없다. 그래서 때때로 양 교도간에 충돌이 일어났는데, 인도가 독립할 무렵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하였다.

인도 쪽에 남아 있는 이슬람교도는 현재 전인구의 11%를 차지한다. 인도의 헌법에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대통령도 이슬람교도 중에서 선임되지만, 지방에서는 때때로 양 교도간에 유혈참사를 일으킨다. 펀자브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시크교는 이슬람교의 박해에 대항해서 일어난 힌두교의 개혁파로서, 무장단결하고 순교(殉敎)정신이 강하다. 신도는 전인구의 약 2%이다. 2002년 2월에는 이슬람교도들이 힌두교도들을 태우고 가던 열차를 습격, 방화함으로써 최악의 종교분쟁이 일어났으며, 이후 서로간의 공격으로 인하여 4월 말까지 850여 명이 사망하였다.

유럽인의 내항(來航) 이래 로마 카톨릭교, 프로테스탄트가 전도되었으며, 영국 식민지시대에 각 도시에 그리스도교 교회가 세워졌다. 그리스도교도는 전인구의 약 2.4% 정도이다. 인도전통의 자이나교도는 약 0.5%, 불교도는 약 0.7%에 불과하다.

IV. 역사

1526년 성립된 무굴제국은 1857년 세포이반란을 계기로 멸망하고 인도 전역이 영국의 직할식민지로 편입된다. 1920년대 초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국가의회당(Indian National Congerss Party)을 영국 식민정치에 대항하는 대중적운동으로 전환하였다.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영국연방 중에서 총리 네루 아래 주권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힌두교인과 이슬람교인의 반목이 영국으로 하여금 인도를 분열하게 하여 이슬람교인이 대부분인 동서파키스탄이 탄생하였다.

인도는 1950년 1월 26일 새로운 헌법을 공포한 후에 영국연방 안에서 공화국이 되었다. 독립 이후 간디와 네루의 의회당은 네루의 영향력 아래 인도를 통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는 네루의 딸과 손자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인도를 통치하였다. 총리인 네루는 그가 사망한 1964년까지 인도를 통치하였다. 이후 샤스트리(Shastri)에게 권력이 넘어갔다가 1966년 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에게 이양되었다.

인디라 간디는 1966년부터 1977년까지 인도를 통치하였다. 1975년 심각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에 둘러싸이게 된 간디 여사는 국가의 위기 상황을 선포하고 국민들의 자유를 제한하였다. 그녀의 정책을 국민들이 따라주기 바라며 1977년 선거를 실시하였으나 데자이(Desai)가 이끄는 5개 야당의 혼합인 자나타당 (Janata Party)이 승리하였다. 1979년 데자이 정부는 붕괴하였다. 이후 싱(Singh)이 임시정부를 형성하였으나 권력은 다시 1980년 1월 간디 여사에게 이양되었다. 1984년 10월 간디 여사는 암살되었으며 그녀의 아들 라지브 간디가 국민의회당에 의해 그녀의 자리를 계승받았다. 그의 정부는 1989년 부패혐의에 의해 붕괴되었으며 셰크하르(Shekhar)에게 정권이 이양되었다.

1989년 야당의 연합인 자나타달(Janata Dal)은 라지브 간디의 의회당을 물리쳤다. 1991년 5월27일 라지브 간디는 타밀라두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하다가 암살당하였는데 이는 스리랑카의 타밀 극렬주의자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선거에서 승리한 의회당이 213석의 의석을 차지하였으며 라오(Rao)의 지도력 아래 다시 권력을 잡았다. 라우는 30년만에 간디나 네루 가계의 출신이 아닌 첫번째 의회당 출신 총리가 되었다. 라우의 정부는 5년의 임기를 모두 채웠다.

이 시기는 인도가 경제적으로 점차 자유화되고 개혁하는 과정이었으며 세계로 인도의 경제를 개방하는 시기였다. 인도의 국내정치는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되었는데 각 계급, 종교, 민족 단체들의 지역적, 정치적인 소규모 정당들이 난립하였다. 라우가 이끄는 정부의 임기 마지막해인 1996년 봄 몇 가지 정치적 부패 스캔들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로 역사상 의회당에 의해 치러진 최악의 선거가 되었다.

V. 정치

1. 외교 ·군사

독립 후의 인도 외교는 총리 네루의 이상주의와 함께 평화외교를 축으로 전개되었다. 그 특징은 첫째 국제정치의 무대에 자주적으로 직면한 점이다. 1949년 12월에는 같은 해 10월에 수립된 중공을 신속하게 승인하였다. 둘째는 대국(大國)과의 군사동맹을 거부한 점이다.

예를 들면, SEATO(Southeast Asia Treaty Organization:동남아시아 조약기구)를 예리하게 비판하고는 이를 거부했다. 셋째는 반식민주의(反植民主義)를 분명히 한 점이다. 1955년 4월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회의에서의 네루의 역할이 이에 집약되어 있다. 이러한 네루의 외교방침은 일반적으로 비동맹정책(非同盟政策)이라 불리며, 국제평화의 유지와 추진에 하나의 역사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1959년 이래 중·인국경분쟁(中印國境紛爭)에서 인도 외교의 위신은 급속히 저하되었다. 1962년 10월에는 동부 인도의 맥마흔라인에서 인도와 중국 양국의 대규모적인 무력충돌이 발생하였고, 이것을 정점으로 하여 인도 외교는 종래의 비동맹노선에서 미국과 소련을 배경으로 중공에 대립하는 노선으로 전환하였다. 1971년 3월 총리 간디는 미국 대통령 닉슨의 방중(訪中) 발표에 의해 미국의 대(對) 중공정책의 전환이 분명해지고, 중공과의 대립으로 미국의 지지를 얻기 어렵게 되자 소련과 일종의 안보조약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고, 한때 소련으로 기울었다.

인도는 이와 같은 소련의 지지를 배경으로, 같은 해 12월 파키스탄이 동(東)파키스탄의 자치확대 요구를 둘러싸고 내전(內戰)상태에 들어간 것을 틈타 파키스탄과 개전(開戰)하여, 다카를 점령하고 동파키스탄을 ‘방글라데시 인민공화국’으로 독립시켰다. 인도·파키스탄 관계는 1971년의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후 인도 우위의 상태로 안정기에 들어갔고, 1976년에는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대사(大使)의 교환 및 무역·교통이 재개되었다. 인도와 중공관계도 1973년 이후 개선되었고, 1976년 4월에 대사 교환에 합의했다. 1978년 3월에는 대외우호협회(對外友好協會) 회장 왕빙난[王炳南]이 인도를 방문하고 국경분쟁을 교섭으로 해결할 것에 합의했다.

1988년 12월에 총리 라지브가 파키스탄을 방문하여 핵시설불공격 협정에 조인하였고, 1991년 1월에는 중국의 총리 리펑[李鵬]이 인도를 방문했다. 1992년 6월에는 총리 라오가 일본을 방문했고, 7월에는 인도 국방장관이 중국을 방문하여 국경문제의 평화적 해결뿐 아니라 경제·문화 교류의 확대에 합의했다.

인도 외교의 기본노선은 비동맹주의와 균형주의이다. 미국과 영국의 군사원조는 1971년의 제3차 인도·파키스탄전쟁 이후 중지되었고, 주로 소련 원조로 장비의 근대화를 도모했다. 1974년 5월, 평화 이용의 지하핵실험을 하였고, 세계에서 6번째의 핵보유국이 되었다. 1990년 들어 정부의 이슬람교도 시위 무력진압과 파키스탄 이슬람교도들의 월경행진, 파키스탄의 핵무기개발설 등으로 인해 이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1997년 1월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부탄 및 네팔과 경제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소규모의 지역포럼을 결성하기로 협의하였다. 1997년 파키스탄 총리 샤리프가 파키스탄의 핵무기제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 선언하므로써 인도의 핵무기개발을 자극하고 있다.

병역은 지원병제이며, 2001년 현재 병력은 정규군 127만 3000명, 중앙경찰군 12만 명, 국경경비대 12만 명이다. 국방예산은 156억 달러이다. 1998년 5월 3차례의 지하핵실험에 이어 사정거리 50㎞의 단거리미사일'트리슐'의 실험발사에 성공하였다.

VI. 경제

1. 농업

인도는 전국토 면적의 약 절반이 경지로 이용되며 삼림면적은 1/5을 차지한다. 우기(雨期)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는데, 변동하는 우기 시기나 강수량에 의해 농업생산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인도의 농업은 몬순의 도박이라 하기도 한다. 국토가 넓고 강우의 시기가 일정치 않기 때문에 작물의 파종기와 수확기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남서몬순이 시작되는 5월에서 7월에 걸쳐 파종을 하고 9∼11월에 수확하는 쌀·사탕수수·땅콩·목화·옥수수 등 여름작물과 10∼11월에 파종해서 2∼5월에 수확하는 밀·콩·유지작물·감자 등 겨울작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독립 이후 다모다르 하곡개발계획(河谷開發計畵:DVC)과 같은 대규모적인 관개개발과, 1960년대 중반 이후 우물물을 이용한 관개의 보급으로, 관개면적은 1950년대의 2배로 늘어나 총 작부면적(作付面積)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관개면적 중 용수로와 우물에 의한 것이 각각 40%이고, 나머지는 저수지 등에 의한 것이다. 특히 북서부 인도의 펀자브주·하리아나주에서는 용수로(用水路)와 모터가 부착된 우물에 의한 관개가 발달하였다. 인도의 경지면적은 세계3위에 이르나 생산성이 낮고 농가의 약 70%가 경지면적 2ha 미만의 영세농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밀·참깨·목화·사탕수수·옥수수 등이며 이들의 생산량은 계속 증가되어 왔다. 특히 쌀·밀·땅콩·황마·사탕수수·잎담배 등은 세계 생산량 순위에서 1~5위를 차지하는 것들이다. 차·담배·생고무·카르다 몸(향료의 일종) 등의 플랜테이션 작물은 인도경제에서 중요한 수출품목이다. 현재는 식량자급이 거의 달성되었으며, 쌀과 밀을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쌀과 밀의 증산은 주로 펀자브주·하리아나주 및 우타르프라데시주의 ‘녹색혁명’, 즉 개량품종의 도입과 비료주기에 의한 단위면적당 수확량의 비약적인 증대와 1965년 식량공사(食糧公社)의 설립, 농산물가격위원회의 설치에 의한 쌀·밀을 중심으로 한 가격유지정책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농업생산성이 매우 낮았으나 녹색혁명의 중심지역은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졌다. 대형 트랙터와 콤바인을 사용하는 대규모의 기업화된 농장경영이 다수 출현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인도 북동부와 데칸고원 북동부의 정글에는 미개 민족들이 거주하여 원시적인 화전농업을 하고 있다.

한편 아삼주와 데칸고원 남서부 등지에서는 영국인이 개발한 차·커피 등 재식농업(栽植農業)을 행하고 있다. 1952년 이래 정부가 추진한 촌락사회 개발계획은 농업생산의 증대, 농촌의 보건·위생·주택·교육의 개선, 소규모 촌락공업의 진흥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약 60만 개의 촌락에서 실시되었다. 한편 제4차계획기간 이후, 녹색혁명에서 제외된 농업 노동자나 영세민, 또는 후진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소농민 개발기구, 한계농민(限界農民)·농업노동자계획, 한발상습지역계획, 부족민 개발계획, 산악지역 개발계획 등도 실시되었다. 인구의 50% 이상이 기본적 생활을 충족하지 못하는 빈곤농가이며, 2000년 현재 농업이 차지하는 GDP 비중은 약 25%이고 노동인구의 67%(1995)가 농업에 종사한다.

2. 광공업

인도의 철광·망간 매장량은 세계적이며, 그 밖에 크롬광, 석탄 형석, 마그네사이트, 내화점토(耐火粘土), 보크사이트, 운모(雲母) 등의 풍부한 광상(鑛床)이 있다. 석탄은 철도의 발달과 함께 생산이 급속히 신장되었고, 철강업·화력발전용으로 공급이 증가하였다. 철광석은 55% 이상 고품위의 것이 많다.

인도는 에너지 수요의 65%를 석탄 등의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부족한 에너지는 주로 중동산 석유로 충당한다. 인도의 에너지 산업은 공공부분에 속하는데, 원유와 천연가스의 개발 및 생산을 국영회사가 담당하고 있다. 석탄의 추정 매장량은 1995년 현재 1920억t에 달하며 실제 채탄 가능한 석탄량은 780억t 이다.

채굴 가능한 원유의 추정매장량은 약 61억 배럴에 달하며, 봄베이(뭄바이) 앞바다에서 주로 생산된다. 천연가스는 주로 서부 해안의 탑타와 트리푸라에서 산출되는데 그 매장량은 8,580㎥에 이른다. 1999년 현재 인도의 연간 전력생산능력은 4545억 6100만kWh에 이르는데, 총발전능력 중 수력발전이 17.77%, 핵발전 2.52%, 화력발전 79.41%, 기타 0.3%를 차지한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환경 및 경제적 이유에서 수력과 화력의 비율을 장기적으로 40:60으로 유지할 계획이다.

공업은 독립 당시는 목화·황마 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재공업에 치우쳤으나 1950년대 후반에는 철강·알루미늄·기계, 1960년대 이후에는 화학·석유화학·전기기계 등의 생산재·중간재(中間財) 생산부문이 급속히 발전하였다. 인도는 독립 이후 농업부문의 근대화와 더불어 국가 주도의 기간산업 및 중공업(重工業) 육성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현재 대부분의 중공업은 국영기업이나 공기업의 형태로 운영되는데 비해, 소비재부문은 민간부문으로 운영되고 있다. 제조업부문에서 비교적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 부문은 제지·인쇄업과 화학, 비철금속, 전기·전자부문 등이다. 화학공업 및 비철금속산업이 원유 및 광물의 생산 증대에 힘입어 비교적 고속성장을 나타내고 있으며, 전기·전자부문도 정부의 기술개발투자가 가시적 성과를 보임으로써 빠른 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인도의 공업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는 에너지 자원의 부족, 특히 전력의 부족과 수송체계의 미발달, 설비 노후화로 인한 가동률 저하 등을 지적할 수 있다.

3. 무역

인도는 독립 전까지는 원료수출, 제품수입의 전형적인 식민지형 무역이었으나 독립 후의 계속된 5개년계획으로 공업화가 진행되어 원료수출국에서 점차로 제품수출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제2차 5개년계획기간 이후, 공업개발을 위한 기계설비의 수입격증과 식량수입 증가 등으로 무역수지의 적자폭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이후 공업투자의 저하, 식량생산의 증대로 수입이 감소되고 적자폭이 축소되었으며, 1972∼1973년에는 흑자를 기록하였는데 석유위기를 맞아 다시 큰 적자폭으로 전환되었다. 매년 무역 규모가 늘고 있지만 자급자족형 경제구조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전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며, 1980년대 중반 이후 세계교역량 비중이 크게 낮아졌다.

주요 수출품은 보석,의료,면사·면포,해산물,금속제품 등이다. 주요 수입품은 원면·석유·화학비료 등의 기초생필품과 철강·비철금속 등을 비롯한 가공수출용 중간재나 자본재가 주종을 이룬다. 곡물의 수입규모는 해에 따라 변동폭이 매우 크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미국, 홍콩, 영국, 아랍에미리트, 벨기에, 스위스, 독일, 일본, 등이다. 2001년 수출은 445억 달러, 수입은 538억 달러이다.

4. 교통ㆍ통신

인도에서 철도가 최초로 부설된 것은 1853년으로 꽤 오랜 역사를 가진다. 또한 1.676m의 광궤(廣軌)로부터 0.6m의 협궤(狹軌)에 이르는 4종류의 궤도폭이 있는데 총연장의 50%가 광궤, 40%가 중궤(中軌:궤폭 1m)이다. 1960년대 이후 전화(電化)가 진척되고 증기기관차에서 전기기관차 또는 디젤기관차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화차 부족에 의한 석탄수송의 지연이 공업생산의 중요한 장애가 되고 있다. 1998년 현재 철도 총연장은 6만 2915km이고 1만 2307km가 전화되었다.

도로수송에서는 아직도 우마차(牛馬車) 등이 이용되고 있으나 화물자동차수송량이 급속히 늘어 전육상 수송량의 약 35%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1996년 현재 332만km의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포장률은 45.6%이다. 여객운송의 약 60%는 도로교통을 이용한다.

인도의 주요 무역항으로는 캘커타·마드라스·비샤카파트남·코친·봄베이(뭄바이) 등이 있는데, 특히 뭄바이는 외국 무역량의 25%를 취급하고 있다. 인도에는 3개의 국영선박회사와 수개의 회사가 315척(GRT 1000톤 이상)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 이들의 선박 총선복량(船腹量)은 662만t(GRT)에 달하는데, 이 중 1/3은 비료수출과 철강수입에 사용되는 벌크선이며 25%는 유조선이다. 컨테이너 선박 수는 극히 적은 편이다.

주요 대형조선소가 봄베이·비샤카파트남·캘커타 등지에 있으며 모두 국유이다. 항공사업은 국내선과 인접국노선은 인도국내항공이, 그 밖의 국제선은 인도항공이 독점하고 있는데, 다같이 국영기업이다.

국제공항은 봄베이(산타쿠르즈) ·캘커타(덤덤) ·델리(인디라간디) ·마드라스(메남바캄) 등지에 개설되어 있다. 우편·전신전화는 철도에 다음가는 국영사업으로 전화회선수는 1994년 현재 800만 회선이다. 주로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방송사업은 1927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국영 AlR(All India Radio)가 독점하여 라디오는 AM 153, FM 91, 단파 62개 채널이 있고, 힌디어·영어 방송 외에 각 주(州)의 언어로 방송하고 있다. 텔레비전은 1959년 9월부터 델리에서 시험방영을 시작했으나 일반화된 것은 1965년 8월부터이다.

VII. 사회

1. 촌락 ·도시

인도는 촌락의 국가로서 지방에 따라 다소의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인구의 74%(1991)가 촌락에서 거주한다. 최근에 교통의 발달에 의해서 촌락과 도시 간 교류가 용이해졌으나, 아직도 양자간에는 문화적·사회적으로 격차가 크고, 촌락민의 생활은 빈곤하며, 전기·수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이 많다. 읍 규모 이상의 도시만 하더라도 3,000개 이상에 달하며,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는 캘커타·뭄바이·델리·마드라스·방갈로르·하이데라바드·아마다바드·칸푸르·푸나·나그푸르·러크나우·자이푸르 등 12개에 이른다. 그러나 전체로 보면 인구의 이동은 적은 편이다.

출생지에서 떠나는 일은 사회적 관습이나 언어의 차이로 인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촌락사회를 유지해온 것은 토지소유관계였는데, 독립 후 1951년에서 1954년에 걸쳐 각주에서는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지주적 토지소유제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고, 20만 이상의 소작농에 토지를 분배하여, 소작농 보호에 힘썼다.

1959년 이후에는 토지소유 면적의 최고 한도를 정하고, 광대한 토지소유를 제한했다. 토지개혁은 촌락사회의 변혁을 의도한 것이 아니었으며 충분히 실시되지 못했기 때문에 촌락사회의 구조에는 큰 변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독립 후의 정치·경제상의 모든 변화는 촌락까지 미쳐 점진적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 카스트제도

아리안족이 인도로 이주하면서 선주(先住) 민족을 정복하고 동화시켜가는 과정에서, 소위 카스트 제도라고 하는 특유한 사회제도가 발달했다. 바라문 또는 브라만[神官], 크샤트리아[武士], 바이샤[庶民], 수드라[奴婢] 등의 4성(姓)으로 나누어지는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각기의 카스트에 속하며 결혼·직업 등은 동일한 카스트 내에서 행해진다.

브라만교 이후의 힌두교 제사(祭祀)는 브라만에 속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시행된다. 크샤트리아는 무사계급으로서 왕족이 여기에서 나왔다. 바이샤는 농목업(農牧業)·상업·수공업과 기타 각종 직업에 종사하는 서민계층으로, 후에 각 직종(職種)에 따라 2차 카스트가 생겼다. 카스트의 최하위는 수드라로서 대부분 피정복민으로 구성되었고, 상위 카스트의 노비(奴婢)로 종사한다.

4성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아우트 카스트라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 생겨, 이들은 거주(居住)·직업 등에 엄격한 차별대우를 받아왔다. 간디는 이들을 신(神)의 아들이라 부르고, 그들의 해방을 위해 노력했다. 독립 후 불가촉천민제를 폐지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그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였다. 정부에서는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장학금제도를 설치하고, 의석의 일부를 할당하기도 하였다. 헌법상 카스트 제도는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나마 대도시에서는 점차로 차별이 해소되어가지만, 지방에서는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다.

3. 교육 ·여성운동

인도는 빈곤한 생활로 인해서 교육을 받지 못한 15세 이상 인구의 문맹률이 48%(여성은 62.3%, 1995)에 달한다. 이처럼 높은 문맹률은 인도공화국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되어 있으며, 이를 위해서 정부는 교육에 힘쓰고 있다. 특히 초등교육의 보급을 위해서 촌락에서는 사원(寺院), 기타 공공건물을 빌려서 공민학교를 개설하였다.

따라서 취학 연령의 아동 문맹률은 급속히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교육재정이 부족하여, 교원의 대우가 좋지 못하며 교육내용도 질이 낮다. 초등교육은 무료이나 일부 주에서만 의무교육으로 실시되고 있다. 도시는 촌락에 비해서 발전되어 있으며, 영국의 것을 모방한 특권계급의 학교도 있다.

학교제도는 주에 따라 다르나 초등학교(의무교육)이 4년, 중학교가 4년, 고등학교가 3년으로 되어 있다. 고교생에 대해서는 주교육위원회에서 대학입학자격의 검정시험을 시행하고, 그 성적에 따라서 각 대학의 입학이 승인된다. 독립 후 대학과 대학생이 급증하였고, 정부는 자연계 분야의 육성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급증하는 대학 졸업생에 비해 그들을 수용할 적당한 직장이 증가되지 않아 실업자를 많이 내고 있다. 여성의 지위는 일반적으로 낮으나 법률에 의한 남녀평등의 원칙이 인정되고 있다. 여자는 가정에서 가사를 돌본다는 의식이 강하지만, 하층의 여자는 토목공사나 농업노동 등 남자에 못지않게 일을 한다. 총리 간디를 비롯하여 많은 지식계급의 여성이 정치가·교원·공무원으로 일하고, 여성운동도 활발하다.

VIII. 문화

인도의 문화는 문학·미술·음악 분야에서도 다채로운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힌두 문학을 비롯한 현대 인도의 모든 민족문학은 오늘날에도 모든 외국에 소개되지 않은 민족의 보고(寶庫)로 남아 있다. 미술에서는 전통적인 수법에 새로운 유럽의 기법을 채택하여 봄베이(뭄바이)·캘커타 등의 대도시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음악에서는 힌두스타니 음악이나 카르나타카 음악이 전통을 자랑하고 있으나 근년 유럽 음악의 기법으로 민족음악을 편곡하는 것에도 주력하고 있다. 구미의 악단에 새로운 선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지휘자 주빈 메타는 조로아스터교도로 뭄바이 출신이다. 인도는 세계 3대 영화산업국의 하나로서 매년 800편 이상 만들어지며, 인도 영화는 세계적으로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샤타지트 라이는 1992년에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IX. 과학기술

동전의 발견이나 해상무역의 뚜렷한 증거들이 인도의 수학, 기하학, 천문학 분야의 우수성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의 순수 수학의 우위는 고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0(zero)의 개념 발견이나, 과학 개발에의 매진 등이 유럽을 거쳐 아랍까지 전해져 세계의 과학발전에 공헌한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유명한 수학자인 마하비라차르야(Mahaviracharya)는 AD 850년에 0(zero)의 중대성을 언급했다.

BC 15세기경 브라막굽타(Brahmagupta)는 펠리안(Pellian) 방정식을 푸는 최초의 수학자가 되었다. 위의 이러한 예가 인도의 긴 역사속에서 인도가 낳은 초기의 훌륭한 수학자들이다. 보스-아인슈타인(Bose-Einstein) 통계학으로 유명한 S.N. 보스(Bose), 천채물리학에서 연구되는 스펙트럼의 이해에 아주 중요한 열에 의한 이온화 이론인 사하(Saha) 이론의 창시자인 메그나드 사하, 호일(Hoyl)과 함께 우주의 진화이론에 크게 기여한 자얀트 나리카(Jayant Narlikar)등이 과학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사들이다.

현재 인도는 GNP의 0.83%를 과학기술 개발에 사용하고 있다. 현대 들어서는 이론적인 부분에 큰 발전을 이루어 원자 에너지, 우주 원격측정, 생명공학, 전자학, 정보통신, 해양학 등에서 다양한 분야 연구를 하고 있다. 인도는 위성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제조하며 발사시킬 수 있는 5개국 중의 하나이다.

X. 대한관계

인도는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한국과는 1962년 3월 총영사관계를 수립하였고, 1964년 4월 한·인무역협정과 1974년 문화협정을 체결하였다. 1973년 12월에 대사급 외교관계로 승격하였으며, 1977년 6월에 한·인 공동경제협의회를 창립하여, 제l차 합동회의를 가졌으며, 이후로 2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양국은 과학기술분야 협정(1976), 이중과세 회피 및 탈세방지를 위한 협정(1985), 공업표준화 및 품질관리에 관한 상호협력협약(1989), 항공협정(1992), 공동위원회 설립에 관한 협정(1996), 투자보장협정(1996)을 체결하였다. 1996년 2월 대통령 김영삼이 인도를 방문하여 양국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였다.

2000년 현재 대한수출은 13억 2600만 달러이고, 수입은 9억 85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유류제품, 금속광물, 농산물, 섬유사이고, 수입품은 유기화학 제품, 철강, 전자제품, 기계류, 선박 등이다. 2001년 현재 한국 교민 46명, 체류자 1646명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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