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4 (수) 15:27
분 류 사전1
ㆍ조회: 1818      
[국가] 인도사 (두산)
인도사 history of India 印度史

고대부터 1947년까지의 인도 역사.

I. 개관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일찍이 문화가 발달한 나라이다. BC 2500년무렵에는 이미 인더스강 유역에 정연한 계획 아래 세워진 도시문명이 형성되었다. 이 문명은 약 1,000년에 걸쳐 영화를 누렸으나 최종적으로 북서쪽에서 이주하여 펀자브를 점거한 아리아인에게 멸망되었다. 아리아인은 도시문명의 선주민(先住民)보다 뒤진 야만인(野蠻人)이었으므로, 도시문명의 대부분은 계승되지 않고 잊혀졌으나 아리아인이 선주민과 융합하면서 갠지스강 중류유역에 진출하여 농촌사회를 확립한 BC 7세기 무렵까지 인도의 특색 있는 문화와 사회의 초기형태를 만들어냈다.

펀자브에 들어온 아리아인은 부족 또는 씨족(氏族)을 단위로 하여 집단을 만들고 그 수장(首長)이 통솔하였으며, 주로 목축생활을 하고 이륜전차(二輪戰車)를 구사해서 사격전을 벌였으며, 그들이 정복한 선주민을 예속민(隸屬民)으로 삼았다. 갠지스강 중류 유역에 진출할 무렵에는 지배계급인 크샤트리아와 사제계급(司祭階級)인 브라만이 특별한 사회적 신분을 형성하였다. 브라만은 제식(祭式)의 시행을 독점하여 《리그베다》를 비롯한 베다 문헌을 저술하고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 4종성(種姓)의 종교상 ·사회상의 의무를 정해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BC 6세기에 갠지스강 중류 유역에는 코살라국(國)이나 마가다국과 같이 전제적인 권력을 가진 왕이 부족체제를 파괴하고 새로운 행정 ·군사제도를 가지고 지배하는 국가가 출현하였다. 이들은 농업생산의 증대와 도시상업의 발전을 배경으로 주변의 여러 부족제국가를 병탄(倂呑)하고, 갠지스강 중류 유역의 패권을 다투었다. 이 무렵 불교나 자이나교 등의 새로운 종교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주로 지배계급과 상인계급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이어서 패권을 장악한 마가다국은 다시 북인도의 여러 지방에 세력을 뻗치고 상업도 지배하였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 북서 변경 침입 후 곧 마가다국의 발전을 완성시켜 인도의 통일제국을 이룬 나라가 마우리아제국(帝國)이다. 마우리아제국은 BC 317년 찬드라굽타에 의해 건설되고 3대(代) 1세기에 걸쳐 강대한 상비군(常備軍)과 정비된 관료제도를 주축으로 하여 아프가니스탄 남부에서 마이소르 북부에 이르는 영토를 지배하였다.

당시의 선진지역(先進地域)은 갠지스강 중류 유역으로서 불교를 포함한 고도의 문화와 진보된 농업기술이 급속히 퍼져서 여러 지방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그러면서도 제3대의 아소카의 ‘법(달마)’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를 실천했으나 왕이 죽은 후 이 제국은 쇠퇴하였다. 그 후 약 5세기 동안 통일지배는 무너지고 여러 세력은 분열된 상태가 되었다.

특히 그리스인 ·샤카족 ·쿠샨족이 북서쪽에서 잇달아 침입하여 서부 인도를 지배하고, 또 BC 1세기 무렵에는 사타바하나가 출현해서 데칸의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이 시기에는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성립이나 시바와 비슈누의 새로운 신앙의 확립 등 문화사상으로 주목할 만한 현상이 많았으며, 또 《마누법전(法典)》 등이 저술되어 브라만의 종교적 권위와 사회적 특권이 확립되었다.

4세기 전반에 출현한 굽타제국은 북인도 일대를 지배하고, 마우리아제국 이후의 지배체제와 사회구조를 재편해서 다음 시대의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에는 모든 지방의 발전이 현저하였으며 그것을 배경으로 유력한 여러 왕국이 할거(割據)하였다. 5∼6세기 무렵부터는 상업 ·운수가 쇠퇴하여 지방마다 자급자족 경향이 진전되고 법(法)도 지방이나 집단에 의해 분리되면서 여러 세력의 지방적 분립은 더욱 현저해졌다. 그것들 중에는 갠지스강 중류 유역, 벵골 ·데칸 ·타밀나두의 3대지방에 강력한 대왕국이 성쇠(盛衰)하고 여러 왕국 간에 영토의 확대와 재물의 약탈을 둘러싼 전쟁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정치 ·사회 ·경제상으로 느리지만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고, 또 여러 왕조의 분립과 더불어 지방의 언어나 문화가 발달하고 힌두 사원(寺院)이 각 지방의 특징 있는 양식으로 건설되었다. 힌두철학도 더욱 체계화되었으며 신(神)에 대한 헌신적인 신앙이 번창하였다. 이 현상은 다음 시대로 계승되면서 인간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II. 중세

13세기 초부터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이민족(異民族)이 인도에 들어왔으며, 그 후 5세기 동안 그들과 그 후계자의 국가가 인도에 뿌리를 내려 인도 태반의 토지를 통치하고 그때까지의 지배체제를 계승하면서 점차 독자적인 체제를 구축하였다. 보통 이 시대를 중세라고 부르고, 그보다 이전의 시대를 고대라고 부른다.

이슬람교는 7세기 이래 아시아에서 발달한 종교로, 이미 13세기에는 확고한 교양과 생활규범을 가지고, 고도의 문화와 알라라는 유일신(唯一神)의 신앙, 우상의 부정, 간소한 예배, 신자간의 동포의식이나 생활규범 등에서 힌두교와 큰 차이가 있었다. 이 시대에는 힌두교 ·이슬람교는 서로의 교의(敎義)를 확고하게 전개하였다. 그러면서도 양자는 서로 융합해서 새로운 신앙을 형성하였고, 또 언어 ·문학 ·회화 ·음악 ·건축이나 의식면(衣食面)에서도 내용이 풍요해졌다.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나왕조 치하의 이슬람교도는 11세기 초부터 인도를 본격적으로 침략하였고, 가즈나왕조를 대신한 구르왕조는 12세기 말에 벵골에 이르는 북인도의 대부분을 정복해서 1206년 부장(部將)이 독립하여 인도에 최초로 이슬람교도의 정권을 수립하였다. 최초의 왕통은 궁정노예가 황제가 되었으므로 노예왕조라고 불렸으며, 거기에서는 투르크계(系)부족의 군사체체를 바탕으로 그때까지의 인도의 행정 ·징세제도를 답습(蹈襲) 사용하였다.

할지왕조와 투글루크왕조가 되자 남인도의 힌두의 여러 왕조를 무너뜨리고 영토를 남인도까지 확장하여 황제권을 강화하고 독자적 지배체제를 정비하였다. 그러나 투글루크왕조 후반에는 북서쪽에서 몽골과 티무르의 침입 위협을 받은 데다가 통치의 약화가 드러나 서남인도에는 힌두교도의 비자야나가르 왕국이 건국되고, 벵골이나 데칸 등지에는 이슬람교도의 제왕국이 독립해서 분열할거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 후 델리의 정권은 쇠약해지고, 아프간계 부족이 세운 로디왕조 때에는 모든 귀족이 서로 싸워 결국 1526년 무굴의 바부르에게 멸망되었다. 무굴제국은 제3대 왕 악바르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는 우선 주변의 모든 세력을 무찌르고 무굴세력을 확립하는 동시에 황제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구축하였다. 이어서 만사브다르제(制)의 창설, 지방제도의 재편성, 징세제도의 개혁을 주축으로 지배체제를 수립하고 구자라트 ·벵골 등의 모든 지방을 침략해서 광대한 지역을 영토로 하였다.

악바르 때부터 그 증손(曾孫) 아우랑제브 때까지 약 150년 동안 무굴제국은 번영을 과시하여 장려한 건축물을 세웠으며 상업도 극도로 번창하였다. 그러면서 아우랑제브 때에 악바르의 지배체제가 무너져서 자민다르 계급을 누를 수 없어 농민의 반란이 일어나고, 또 마라타 ·라지푸트시크 교도 등의 모든 세력이 반항하였다. 특히 데칸에서는 오랫동안 황제 스스로 진압을 하였으나 결국 안정할 수 없을 정도여서 황제가 죽은 후에는 무굴제국은 급속도로 쇠퇴하였다.

18세기가 되면서 전술한 모든 세력이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굴제국의 세력 내에 있었던 지방에 모든 세력이 독립해서 분립하거나 혼란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시대는 델리에 도읍을 둔 전술한 정권이 인도의 패권을 장악하고 모든 지방의 왕국은 그 영향을 크게 받았으나 그들 왕국은 각각 지방에서 독자적인 지배를 하고 문화를 조장하였으므로 결코 무시될 수 없었다. 이들 중에서 17~18세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라타왕국이다.

17세기 중엽 시바지는 푸나에 가까운 서고트산맥의 견성(堅城)에 의해 데칸과 델리의 군대를 무찌르고 마라타왕국을 건설하였다. 그 후에도 무굴제국과 싸웠으나 18세기에 푸나의 페슈와(宰相) 밑에서 북인도의 각지에 진출하여 델리까지도 습격해서 당시 최대의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1761년 파니파트전투에서 패하여 진출이 막히고 제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여 점차 왕국의 실력은 쇠퇴하였다. 이와 같이 인도가 분립된 상태일 때 영국의 식민지침략이 본격화되었다.

III. 근현대

15세기 말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 내항한 것을 비롯해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의 상인들이 인도에 건너와서 각지에 상관(商館)을 설치하여 면직물이나 향신료(香辛料) 등의 무역에 종사하였다. 그들은 인도의 모든 세력과 교섭하고, 때로는 전쟁을 하였으며 유럽 제국 간에도 무역의 패권을 둘러싸고 싸웠다. 이 싸움은 유럽에서의 군사력과 경제력의 성쇠에 대응하여 유럽에서 현저하게 발전해온 영국이 점차 다른 나라를 제압하고, 18세기 중엽에는 프랑스를 격파해서 패권을 장악하였다.

1765년 영국은 벵골의 영유권을 획득해서 인도식민지 지배를 시작하였다. 영국에서는 1600년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인도 이동(以東)의 무역에 대하여 독점권을 주어 회사의 활동을 지원해왔다. 동인도회사가 벵골을 영유하게 되자 인도를 통치할 기관으로서 인도총독을 두었다.

그 무렵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영국은 카르나타카전쟁 ·마라타전쟁 등 인도의 모든 왕국을 상대로 한 수차에 걸친 전쟁을 통해 영토를 빼앗거나 복속시켜 북서부를 제외한 인도의 모든 지방에 걸쳐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이 동안에 예로부터의 징세제도를 새로운 제도로 개정하고, 또 사법 ·경찰 등의 제도를 수립해서 식민지의 지배체제를 만들어냈다. 인도의 부(富)는 약탈되고 소수의 계급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위협하였다.

19세기에 이르자 영국 본토에서 산업혁명으로 양산된 면직물을 비롯한 공장생산품이 한층 다량으로 인도시장을 유린하여 인도는 영국의 상품시장이 되고 예로부터의 상품생산지는 큰 타격을 받았다. 1857년 영국 군대의 인도 용병(傭兵:세포이)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것이 북인도 일대에 퍼져 농민에서 구지배계급까지 광범한 사람들이 참가한 대반란(大反亂)으로 발전하여 영국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인도인측의 미약한 조직, 불명확한 지도원리 등으로 영국에 굴복하였다. 이 항쟁으로 동요된 영국 본국은 1858년 동인도회사에 의한 통치를 끝마치고 인도를 직접 통치하였다. 기구(機構)나 법률을 재정비하고 북서부의 영토를 굳혀서 제국주의시대의 막을 열었다. 인도인은 식민지지배 하에서 영국문화를 접하고 지주 ·상인 등 새로 생긴 부르주아 계급 사이에 힌두교의 종교와 사회를 반성, 개혁하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또 당시의 영국정치사상이 도입되었다.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봄베이 등지에서 인도인은 스스로 근대적 방적공업을 일으키는 등 부르주아 계급이 발달하였다. 그들은 계급적 이익을 요구하기 위해 1885년 인도 국민회의파(國民會議派)를 창설하였다. 회의파는 당초에는 온건하였으나 당시 이미 인도 경제의 빈곤은 부가 영국으로 유출하는 것에 있다고 상세하게 설명하였고, 또 인도인의 정치향상을 위해서 힌두교도의 종교와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19세기 말에 티라크는 인도의 독립이 무엇보다도 선결문제라 하여, 민중을 정치운동에 참가시키는 길을 열었다.

인도총독 G.N.커즌에 의한 벵골 분할과 같은 제국주의적 식민지정책이 시행되자 회의파는 티라크 등의 의견을 채택해서 스와라지(자치 ·독립) ·스와데시(국산품사용) ·민족교육의 강령(綱領)을 내걸고 반항하였다. 그러면서도 티라크 등의 정치적 급진파와 고카레 등의 온건파가 독립을 위한 투쟁방법에 대해서 대립하였고, 또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와의 대립도 깊어져서 1906년에는 무슬림연맹이 발족하였다. 이슬람교도는 19세기 중엽부터 사회나 종교의 개혁운동을 추진하여왔으나 영국정부의 분열정책에도 영향을 받아 그들의 독자적인 요구를 주장하게 되어 이후 힌두교도와의 대립이 격심해졌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암리차르 학살사건을 거쳐 간디의 지도하에 제1차의 비폭력적 저항운동이 시작되어 새로운 민족운동이 전개되었다. 1920년대에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이 뿌리를 내리고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이 활발하여졌다. 또 면공업 ·철강업이 한층 발전하였다. 대공황(大恐慌) 후 제2차의 비폭력적인 저항운동에 의해 또다시 독립에의 부르짖음이 높아져서 영국측의 탄압과 양보가 되풀이되는 중에 인도민중의 힘이 결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회의파는 전쟁 비협력을 선언하고 이어서 영국의 철수를 요구하는 투쟁을 해서 큰 탄압을 받았다. 이 동안 전(全) 인도무슬림연맹은 파키스탄의 분리를 결의하고 전후에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에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각지에서 일어나 결국 47년 8월 15일 인도연방과 파키스탄공화국으로 분리해서 각각 독립하였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인도의 역사

IV. 역사

1526년 성립된 무굴제국은 1857년 세포이반란을 계기로 멸망하고 인도 전역이 영국의 직할식민지로 편입된다. 1920년대 초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국가의회당(Indian National Congerss Party)을 영국 식민정치에 대항하는 대중적운동으로 전환하였다.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영국연방 중에서 총리 네루 아래 주권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힌두교인과 이슬람교인의 반목이 영국으로 하여금 인도를 분열하게 하여 이슬람교인이 대부분인 동서파키스탄이 탄생하였다.

인도는 1950년 1월 26일 새로운 헌법을 공포한 후에 영국연방 안에서 공화국이 되었다. 독립 이후 간디와 네루의 의회당은 네루의 영향력 아래 인도를 통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는 네루의 딸과 손자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인도를 통치하였다. 총리인 네루는 그가 사망한 1964년까지 인도를 통치하였다. 이후 샤스트리(Shastri)에게 권력이 넘어갔다가 1966년 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에게 이양되었다.

인디라 간디는 1966년부터 1977년까지 인도를 통치하였다. 1975년 심각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에 둘러싸이게 된 간디 여사는 국가의 위기 상황을 선포하고 국민들의 자유를 제한하였다. 그녀의 정책을 국민들이 따라주기 바라며 1977년 선거를 실시하였으나 데자이(Desai)가 이끄는 5개 야당의 혼합인 자나타당 (Janata Party)이 승리하였다. 1979년 데자이 정부는 붕괴하였다. 이후 싱(Singh)이 임시정부를 형성하였으나 권력은 다시 1980년 1월 간디 여사에게 이양되었다. 1984년 10월 간디 여사는 암살되었으며 그녀의 아들 라지브 간디가 국민의회당에 의해 그녀의 자리를 계승받았다. 그의 정부는 1989년 부패혐의에 의해 붕괴되었으며 셰크하르(Shekhar)에게 정권이 이양되었다.

1989년 야당의 연합인 자나타달(Janata Dal)은 라지브 간디의 의회당을 물리쳤다. 1991년 5월27일 라지브 간디는 타밀라두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하다가 암살당하였는데 이는 스리랑카의 타밀 극렬주의자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선거에서 승리한 의회당이 213석의 의석을 차지하였으며 라오(Rao)의 지도력 아래 다시 권력을 잡았다. 라우는 30년만에 간디나 네루 가계의 출신이 아닌 첫번째 의회당 출신 총리가 되었다. 라우의 정부는 5년의 임기를 모두 채웠다.

이 시기는 인도가 경제적으로 점차 자유화되고 개혁하는 과정이었으며 세계로 인도의 경제를 개방하는 시기였다. 인도의 국내정치는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되었는데 각 계급, 종교, 민족 단체들의 지역적, 정치적인 소규모 정당들이 난립하였다. 라우가 이끄는 정부의 임기 마지막해인 1996년 봄 몇 가지 정치적 부패 스캔들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로 역사상 의회당에 의해 치러진 최악의 선거가 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인도' 항목에서
   
윗글 [국가] 인도사 (한메)
아래글 [국가] 인도 (브리)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913 사전1 [국가] 베트남 (브리) 이창호 2004-11-25 2633
2912 사전1 [국가] 베트남 (한메) 이창호 2004-11-25 1761
2911 사전1 [국가] 베트남 (두산) 이창호 2004-11-25 1851
2910 사전1 [국가] 인도사 (브리) 이창호 2004-11-24 3044
2909 사전1 [국가] 인도사 (한메) 이창호 2004-11-24 1993
2908 사전1 [국가] 인도사 (두산) 이창호 2004-11-24 1818
2907 사전1 [국가] 인도 (브리) 이창호 2004-11-24 4058
2906 사전1 [국가] 인도 (한메) 이창호 2004-11-24 2551
2905 사전1 [국가] 인도 (두산) 이창호 2004-11-24 2102
2904 사전1 [근대] 스와라지 (한메) 이창호 2004-11-24 1207
12345678910,,,301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