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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5 (목)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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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759      
[국가] 베트남 (한메)
베트남 Vietnam

인도차이나반도 동부에 있는 나라.

면적 32만 9566㎢. 인구 7512만 4000(1997). 정식 명칭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한문 명칭은 월남(越南). 옛날에는 안남(安南)이라고도 하였다. 북서쪽에서 남동쪽까지 최대길이는 약 1370㎞이고 동서간의 최대나비는 북쪽에서 550㎞, 남쪽에서 340㎞ 정도이다. 동쪽과 남쪽은 통킹만〔東京灣〕·남중국해에 면해 있고, 서쪽은 라오스·캄보디아·타이, 북쪽은 중국과 접하고 있다. 수도는 하노이.

[자연]

베트남은 중서부를 통과하며 남북으로 뻗은 안남산맥, 북부의 홍강 삼각주, 남부의 메콩강 삼각주, 동부의 해안평야 등 지형상 4부분으로 나뉜다. 화강암·편마암질의 높고 험한 산지인 안남산맥은 윈난〔雲南〕고원의 남쪽연장 부분으로 전국토의 약 2/3를 차지하는데, 서쪽은 메콩강 본류를 향해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동쪽은 북쪽의 송코이강에서 남쪽의 메콩강까지의 사이에 많은 급류를 갖고 있는 급사면에서 이들 강이 자잘한 평야와 석호를 형성하고 있다.

북서―남동 방향으로 나란히 뻗은 산맥들에는 해발고도 1830m가 넘는 봉우리가 여러 개 솟아 있으며, 심하게 침식된 세로로 뻗은 평균고도 760~1500m의 고원들이 남반부로 뻗어내린다. 산맥 사면에는 고무·차를 재배하는 넓은 농장이 있다. 중국 윈난성[雲南省] 산지에서 남하하는 홍강은 다강·송감강과 합류하여 통킹만[東京灣]으로 흘러드는데, 연간 1억 3000만t의 진흙을 운반하여 1만 5000㎢의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다.

퇴적 진흙 때문에 홍강과 그 지류들은 대규모로 범람하는 경우가 많아 예로부터 제방공사가 이루어져 제방 총연장은 4570㎞나 된다. 중부 하천은 강의 뱃길로 물건을 운반하는 운수상의 이용가치는 낮으나 수력발전에는 알맞다. 산맥이 해안선에 가까운 곳에서는 강어귀에 모래톱이 발달했으며, 다낭항구와 같은 훌륭한 항구를 형성한다.

티베트고원에서 시작되는 길이 4020㎞의 메콩강은 면적 약 7만 ㎢의 메콩삼각주를 형성하는데, 캄보디아 프놈펜 남방에서 두 강으로 분류(分流)된 뒤 다시 분류하여 9개의 강어귀에서 남중국해로 흘러든다. 각 삼각주의 토질은 주로 점토질, 곳에 따라서는 모래질이다. 송코이삼각주는 전체적으로 해발고도 3m를 넘지 않는 낮고 평평한 지역이며 1㎢당 1000∼1500명이나 되는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메콩삼각주는 해발고도 1∼2m밖에 안되는 낮은 땅으로, 연중 일정한 메콩강의 범람으로 범람원에 매년 퇴적물이 쌓여 기름진 토지가 계속 늘어난다. 이 범람원에는 사탕수수·바나나·코코넛 등을 재배하는 넓은 농장들이 형성되어 있다. 두 주요 삼각주는 길이 약 1000㎞에 이르는 좁은 저지대해안평야를 통해 연결된다.

기후는 북회귀선의 남쪽이자 아시아대륙 동쪽 끝이라는 위치 때문에 열대몬순기후를 나타낸다. 전국적으로 기온이 38℃ 이상 올라가는 경우가 많으며, 겨울에 남부는 덥고 북부는 서늘하다. 연평균기온은 하노이는 23.3℃, 1월평균기온은 16.6℃이며, 남쪽의 호치민시는 연평균기온 27.1℃. 1월평균기온은 25.7℃이다.

연강수량은 전국적으로 1500㎜를 넘는데, 하노이는 1763㎜, 중부의 위에는 2867㎜, 호치민시는 1882㎜, 산악지대는 3000㎜를 넘는다. 5∼10월의 몬순기에 특히 많은 비가 내리고 연강수량의 85%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습도도 평균 80%나 되며, 우기에는 90%까지도 오른다. 그러나 해발고도 600m 이상인 산지에서는 아열대기후가 되며, 사바나기후를 보이는 곳도 있다.

전체국토의 약 2/5는 열대상록수림과 참나무·너도밤나무·밤나무·소나무·티크·흑단 등의 아열대 낙엽수림으로 덮여 있다. 대나무는 숲속의 나무 그늘이나 주로 강 연안지대에 널리 퍼져있다. 해안의 조석평야에서는 홍수림을 많이 볼 수 있고, 사바나형 목초와 관목이 남서부의 산악지방과 고원을 뒤덮고 있다. 또 1000여종의 조류·곤충류가 있고, 코끼리·들소·범·원숭이·사슴·멧돼지·맥·무소·호저(豪猪) 등의 포유류도 300종 정도 있다. 어류는 1000종 정도 있고, 산호·진주·거북·바닷말도 많다.

[역사]

베트남의 역사는 BC 200년 무렵 베트남어를 쓰는 민족언어 집단이 남베트(NamViet, 南越)라는 독립왕국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이 왕국은 한동안 베트남 북동부와 중국 남부를 지배했으나 BC111년 중국의 전한(前漢)에 점령되었다. AD1세기에는 인도와의 접촉으로 인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푸난왕국의 메콩강삼각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6세기에 멸망하였다.

939년 고퀜[吳權]이 중국군을 격파함으로써 북부지역이 약 1000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968년 딩보링[丁部領]이 북부를 통일하여 대구월(大瞿越)이란 국호로 베트남 초대왕조인 딩왕조를 일으켰다. 1407년 중국에 다시 정복되었지만 거국적 저항운동으로 28년 중국에서 독립하였다. 딩조에 이어서 리왕조[李王朝]·친왕조[陳王朝]·레왕조[黎王朝]가 일어났는데, 레왕조 치하에서 중국식 관료주의 정부가 수립되었고 국경은 점차 남쪽으로 밀려났다.

15세기에는 중부 이남지역에 인도네시아계 참족이 세운 참파왕국을 격파하고 남방으로 지배영역을 확대하였고, 16세기에 왕조 분열을 일으키긴 했으나 위에의 구엔〔阮〕씨가 그 영역을 메콩강 방면에까지 확대시켰고 18세기에 거의 현재의 영역을 확립하였다. 17세기에 포르투갈인이 찾아온 이후 가톨릭 신부 등이 내방하곤 하였으나, 18세기 말엽 레왕조 뒤에 구엔왕조를 세운 구엔푹안[阮福映]이 농민반란인 타이손당[西山黨]의 난을 진압하기 위하여 프랑스인의 힘에 의존함으로써 점차적으로 프랑스의 힘이 강화되었다.

1859년에 사이공, 1862년에 프로콘도르섬이 점령되고, 1873년 남부베트남(코친차이나) 전지역이 식민지로 변하였다. 1883년 수도 위에가 공략되고 중부베트남(安南)·통킹(북부베트남)이 보호령이 된 뒤 1885년 톈진조약에 의하여 전베트남이 식민지로 되었다. 1887년 캄보디아를 포함하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연방에 편입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중인 1941년 일본군의 베트남 진주를 기회로 호치민[胡志明]이 지도하는 베트남독립동맹(베트민)이 결성되고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1945년 일본군이 퇴각함과 동시에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났고 공산주의자 및 민족주의자들이 호치민의 지휘 아래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7년 동안 프랑스는 독립을 반대하였고 호치민이 프랑스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제1차인도차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1954년 5월 7일 디엔비엔푸에서 베트남이 승리하면서 끝났다. 같은 해 7월 21일에 체결된 제네바협정에 따라 베트남은 북위 17°를 경계로 하여 공산주의자가 주도하며 소련이 지원하는 북부와, 미국이 지원하는 남부로 임시분할되었다.

그러나 북베트남의 게릴라 활동과 남베트남 내 친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은 미국의 개입과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 곧 베트남전쟁(1955∼75)을 일으켰다. 미국은 1964년 통킹만사건을 계기로 1965년 북베트남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이래 1975년 4월 공산군에 사이공이 함락될 때까지 남베트남 정부를 지원하였다.

1969년 파리평화회담, 1973년 베트남평화협정의 체결을 거쳐 미국은 철군을 시작했으나 전투는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1975년 3월 북베트남의 대공세에 남베트남은 그 해 4월 무조건 항복하였다. 이와 함께 남베트남공화국 임시혁명정부가 남베트남의 정권을 장악하자, 1975년 11월 남북통일에 관한 정치협의회가 이룩되었다. 이 협의회의 결정에 의해서 1976년 4월 총선거가 실시된 뒤 남북이 통일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성립되었다.

78년 베트남군과 캄보디아군 사이에 국경분쟁이 일어나고, 화교들이 정부의 정책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는 이유로 베트남을 탈출하면서 캄보디아·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79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해 폴 포트 정부를 무너뜨리고 친베트남 정권을 수립하자 중국이 이에 대응해 중·월(中越)전쟁이 일어나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1980년대초 베트남은 라오스·캄보디아에 자국 군대를 주둔시키며 인도차이나반도 대부분을 장악하여 몇몇 국가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한편 폴 포트의 추종자들은 캄보디아 내 베트남군에 대항해 전투를 벌려, 마침내 베트남은 단계적으로 군대를 철수하기 시작해 89년 철군을 완료했다.

[정치]

1976년 6월 사회주의 독재국가를 선포한 베트남은 1980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행정권을 부여받은 국가회의 의장이 각료회의와 그 의장을 임명하는 권한을 갖는다. 임기 5년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입법기관인 국회는 국가회의 의장을 선출하고 행정부의 안건을 공식승인한다. 최고인민재판소가 최고 상소법원으로 하급 인민재판소들을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가장 중요한 정치기구는 베트남공산당이며 당원들이 정부고위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정책은 전권을 가진 공산당 정치국이 결정한다. 공산당이 국회의원들을 선출하며 이들은 경쟁 없는 단일 후보명만으로 선거인들에게 인준받는다. 베트남은 당의 우위와 지도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나 개혁추진 과정에서 정부권한이 점차 강화되는 추세이다. 1986년 12월 제6차 베트남공산당전당대회에서 구엔 반 린이 서기장에 취임한 후 전시형 외국의존경제에서 탈피, 자조자립의 사회주의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베트남식 개혁개방정책인 <도이 모이〔刷新〕>정책을 채택하였다.

또 공산당은 1990년 3월 중앙위원회에서 동구식의 다당제 채택을 거부, 1당 지배체제 원칙을 고수하고 부정부패 척결, 당 체질 개선, 대중과 밀착한 당 건설 등 구체적인 쇄신방안을 채택하였다. 91년 6월 제7차전당대회에서 <도이 모이>노선을 재확인하였고, 1992년 9월 제9기 국회에서는 레둑안을 주석에 선출하고 보 반 키에트 총리 등 개혁파 각료들을 유임시킴으로써 경제개혁 가속화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한편 경제개혁 추진 과정에서 이권개입, 밀수 등 공직사회의 부정부패가 만연하자 정부는 1992년 부패방지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부정추방운동을 전개하였다.

[경제·산업]

1976년 남북통일 후 사회주의경제건설을 목표로 하는 경제의 남북통일을 꾀하고 있으나 순조롭지 못한 형편이다. 1981∼85년 제3차 5개년계획에서 경제활동 일부에 자유화를 허용하였으나, 이것은 오히려 북측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되었다. 이에 1986년 제6차 당대회에서 사회주의 이식 실패에 따른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도이 모이>정책을 채택하고, 1987년 신외자법을 제정했으며, 1988년 1월 외국인투자법과 외국환관리법을 제정, 외국기업에 대하여 99%까지 베트남합작투자를 허용하고 이윤 전액의 본국송환을 보장하는 등 투자환경을 정비하였다.

또 1988년 3월 대외경제부를 신설하는 한편 1989년 3월 금리실세화, 통화의 25% 평가절하 등 경제개혁을 단행하였다. 1991년 제7차 당대회는 <도이 모이>정책을 최우선 국가과제로 재확인하고 경제개발 10개년계획(1991∼2000년)을 수립, 2000년에 1인당 국민소득을 400달러대로 배증(倍增)시키기로 하였다. 외국인투자법 제정 이후 1993년 중반까지 60억달러의 외자를 유치하였다. 이에 따라 1992년 8.3%의 경제성장을 기록하는 등 성장기반을 마련하였으며 물가도 인상폭이 한자리수(1993년)에 그쳐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군제대병 증가로 노동인구 3500만 명 중 약 700만 명의 실업자(실업률 20%)가 발생하고 호치민시 등 남부지역에의 개발이 편중되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한편 아시아개발은행(ADB)은 1993년 약 57만 달러의 대(對)베트남 기술원조계획에 서명함으로써 15년만에 원조를 재개하였으며, 세계은행도 1993년말 3년간 1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할 것임을 발표하였다. 베트남 총노동력의 약 3/5이 농업부문에 종사하며, 농업·광업·제조업·건설업·공공사업·운송업·상업 부문의 순재화생산의 상당 부분을 이들이 차지한다. 타이·미국에 이어 세계 제3위 쌀 수출국이다.

쌀 이외의 작물로는 고구마·카사바·옥수수·소르검(서스)·콩류가 있고, 상품작물로는 천연고무·주트·사탕수수·코코야자 등이 있다. 축산은 순조로이 발전하여 물소·돼지·양·염소 등 외에 닭·집오리 등이 사육되고 있다. 수산업은 넓은 대륙붕 덕분으로 연안어업이 성행된다. 꼬치고기·상어·새우 등이 잡히며 대부분이 생선상태로 소비된다. 천일염 생산도 많고, 이 소금과 어류를 사용하여 베트남 특유의 조미료가 생산된다.

광산물은 북부에 치우쳐 매장되어 있고, 석탄·철·인·크롬·니켈·주석·망간·보크사이트·안티몬·텅스텐 등 종류도 많고 양도 풍부하다. 홍게이의 무연탄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매장량은 12억t이고, 탄층이 두껍고 지표에 가까워 노천굴이 된다. 철광석도 매장량이 매우 많으며 인광석은 약 1억t이 매장되어 있다. 크롬은 세계적으로 질이 좋고 1000만t이 매장되어 있다.

메콩삼각주 앞바다에 많은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데, 러시아 등과의 공동개발이 추진되었다. 이 나라 하천에서는 수력발전도 유망한데, 베트남전쟁 초기까지도 이미 10여 곳에다 수력발전소를 건설, 가동하였다. 공업의 남북 불균형도 통일된 베트남으로서는 큰 문제로 되어 있고, 1970년대로 접어들자 기계 조립 및 시멘트·식품가공·섬유 등 소비재 중심의 경공업이 남부에서 계획되었으나, 농업과 마찬가지로 뜻대로 되지못하고 있다.

베트남은 러시아를 비롯한 외국원조에 크게 의존해왔으며 수입액이 수출액을 초과하고 있다. 일본이 주요 수입국이고 홍콩이 주요 수출국이다. 주요 수출품목으로는 석탄·고무·차·커피 등이 주종을 이루고 의류·수공예품도 있다. 주요 수입품목으로는 기계·비료·석유제품·밀 등이 있다.

철도는 전쟁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으나, 통일 후 대부분 복구되어 현재는 총연장 3216㎞에 달하고 있다. 하노이―호치민시 사이 1730㎞가 가장 중요한 간선이고, 그 밖에 하노이를 기점으로 한 동쪽의 중요항구 하이퐁, 북쪽의 중공업중심지 타이구엔, 중국 국경 라오카이〔老開〕에 이르는 철도가 있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2개의 철도는 1978년 중국·베트남 관계 악화 이후 폐쇄되어 있다.

도로 총연장은 약 6만㎞이고, 내륙 수로 총연장은 1만 783㎞인데, 삼각주지역에서의 하천·운하 이용도가 높다. 메콩강은 캄보디아·라오스를 연결하는 국제수운상 중요하다. 항구는 북부에서는 하이퐁, 중부에서는 다낭·퀴논, 남부에서는 하항인 호치민시가 중요하다. 1976년에 베트남 민간항공이 설치되어, 하노이와 호치민시를 중심으로 한 국내항로와 러시아·프랑스·타이 등의 국제 정기노선이 있다.

[사회·문화]

다민족국가로, 베트남인이 전체인구의 90%를 차지한다. 대표적 소수민족은 북부의 중국인, 몽족, 타이어를 사용하는 여러 민족, 눙족, 타이(토)족 등과 남부의 고산족·크메르족·찬족 등이다. 대나무·목재·벽돌 등으로 지면에다 직접 집을 세우고, 여자는 아오자이라는 민족의상을 입고 있다. 소수민족은 화전농경을 하며 가축도 사육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과는 달리, 이 나라는 과거 1000년간에 걸쳐서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공용어는 베트남어이고 프랑스어·중국어·영어·크메르어도 사용된다. 사상은 유교 철학의 비중이 크며 주요 종교는 불교와 도교이다. 그리스도교(가톨릭 ), 이슬람교, 호아하오교, 카오다이교 신자도 있다. 출생률과 사망률은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비슷하지만 세계 수준에서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연평균 인구증가율도 2.0%로 비교적 높다. 인구의 약 2/5가 15세 미만이다. 그러나 해외로 나가는 수많은 이주민 때문에 인구증가율이 다소 낮아졌다.

1974년 약 100만 명의 난민이 북베트남을 떠났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해외이민이 금지되었다. 75∼79년에 베트남인과 상당수의 화교를 포함한 100만 명 가량이 베트남을 탈출하였다. 평균수명은 약 62세이다. 1955∼75년 베트남전쟁 동안 시골에서 도시지역으로 인구의 대이동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남부에서 큰 이동이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전체인구의 1/5에 달하였다.

1976년 베트남 정부는 남부지방을 위주로 86년까지 도시인구 중 1000만 명을 농촌의 <새 경제구역>으로 재배치하려는 계획을 시행하였다. 이에 따라 1976∼86년 사이에 새 경제구역에 정착한 인구는 4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은 공식적으로 의무교육이며 10년간 무상이다. 정부발표에 따르면 문맹은 1970년대말 근절되었다고 한다.

고등교육은 하노이대학교와 그 밖의 대학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복지제도를 실시해 농촌지역과 마을 단위까지 공공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척수성소아마비·장티푸스·디프테리아·결핵 등의 발생이 감소되었다. 언론을 비롯한 모든 방송매체는 정부와 공산당이 운영하고 규제한다. 공식당기관지인 《난단》 등이 발행되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베트남이 한국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1950년대부터인데, 한국은 1956년 5월에 남베트남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그 뒤 64년 9월 22일 베트남전쟁에 병력을 파견하기 시작해 75년 사이공이 함락되기 직전까지 남베트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군사적인 면에서는 의무중대 파견 이래 맹호·청룡 등 한국 전투사단이 파견되어 한때 한국군 남베트남 파견 장병수가 4만명을 기록하기도 하였으나 파리휴전협정에 따라 1973년 3월 24일 모두 철수하였다.

남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은 사이공이 함락되기 직전인 75년 4월 29일 폐쇄되었고 미처 철수하지 못했던 일부 공관원들과 교민들은 76∼80년에 걸쳐 한국으로 송환되었다. 그 밖에도 베트남전쟁 특수(特需)를 타고 1965년 9월부터 한국 기업의 진출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으며, 남베트남 파견한국인 문제와 국제결혼으로 인한 한국과 남베트남의 혼혈아 문제가 대두되기도 하였다.

남베트남 정권이 무너지고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로 통일된 후 한국은 최근까지 국교를 수립하지 않고 있다가 1992년 12월 22일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되었고, 1993년 5월에는 키에트 총리가 방한하였다. 1993년 현재 체류자는 730명이다. 1993년 현재 대한수입은 6억 5179만 달러, 대한수출은 8100만 달러이다.

남베트남 패망 후 한국에는 공산 베트남에서 탈출한 선상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이 부산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폐쇄되었다. 베트남은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 12명의 선수를 참가시켰다. 북한과는 1950년 1월 31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그해 10월 25일 각각 공관을 개설하였다.

<윤길진>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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