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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1 (일) 17:45
분 류 사전1
ㆍ조회: 1286      
[근대] 존왕양이운동 (브리)
존왕양이운동 尊王攘夷運動

일본 에도 시대[江戶時代 : 1603~1867] 말기 바쿠후[幕府]를 타도하고 외세를 배격하고자 한 정치운동.

그 사상적 기반이 된 것은 후지다 도코[藤田東湖], 아이자와 세이시사이[會澤正志齋] 등이 제창한 미토가쿠[水戶學]이다. 바쿠후는 1854년 미일화친조약에 조인하고 그 비준을 조정에 요구했다. 해외사정에 어두웠던 조정은 양이론의 거점인 미토 한[水戶藩]의 압력도 있어 칙허를 내리지 않았다. 한편 극심한 빈곤 속에서 바쿠후의 정치에 불만을 품고 있던 여러 한의 하급 무사층은 배격해야 마땅한 서양 열강의 압력에 굴복하여 바쿠후가 국교를 연 것에 분격했다.

1858년 때마침 쇼군[將軍] 계승문제를 둘러싸고 분열되어 있던 바쿠후 측에서는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가 다이로[大老]에 취임하여 칙허를 기다리지 않은 채 반대파를 누르고 미일통상조약에 조인하고, 이어 '안세이[安政]의 대옥(大獄)'을 단행하여 존왕양이파에 대한 대탄압을 시작했다. 외국무역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생활이 더욱 힘들어진 하급 무사층은 이후 조정의 존양파 공가(公家)와 연결하여 활발한 양이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여기에 미토 한, 조슈 한[長州藩] 등이 존왕양이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공무합체파(公武合體派 : 조정과 바쿠후의 제휴에 의한 정국안정을 주장)는 1863년 8월 18일 정변을 일으켜 존왕양이파와 조슈 한의 무사들을 추방했다. 또 가고시마[鹿兒島], 시모노세키[下關]에서의 4개국 함대와의 교전을 통해 양이의 무모함을 인식하게 되면서 양이운동은 급속히 쇠퇴했다. 이후 존왕과 바쿠후 타도로 그 운동방향을 바꾸어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원동력이 되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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