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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7 (토)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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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448      
[국가] 이란 (두산)
이란 Iran

서남 아시아에 있는 나라.

I. 개관

위치 : 서남 아시아 페르시아만 연안
면적 : 162만 9918㎢
인구 : 6625만 5000명(2003)
인구밀도 : 40.6명/㎢(2003)
수도 : 테헤란(Tehran)
정체 : 이슬람공화제
공용어 : 페르시아어
통화 : 리얄(Rial)
환율 : 8,315Rial = 1$(2003.9)
1인당 국민총생산 : 1,680$(2003)
나라꽃 : 올리브

면적은 162만 9918㎢, 인구는 6625만 5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40.6명/㎢(2003)이다. 정식 명칭은 이란이슬람공화국(Jomhuri-ye Eslami-ye Iran)이다. 옛날에는 페르시아(Persia)라고 불렸으나 1935년에 '아리아인의 나라'라는 뜻의 이란으로 개칭하였다. 동쪽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북쪽은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서쪽은 터키, 이라크에 접하며, 남쪽으로 페르시아만(灣), 오만만(灣)을 사이에 두고 아라비아반도와 마주하고, 북쪽은 카스피해(海)에 면한다.

II. 자연

이란은 국토의 절반이 산악지대, 1/4이 사막과 황야지대, 나머지가 평야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경작지가 거의 없는 나라다. 중앙부에 펼쳐진 이란고원과 이를 둘러싼 북쪽의 엘부르즈산맥, 남쪽에서 서쪽으로 뻗어 있는 자그로스산맥, 그리고 이들 산맥의 바깥쪽을 가로지른 카스피해(海) 연안의 저지대와 페르시아만(灣), 오만만(灣) 연안의 평야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이란고원은 기복이 심하지 않은 내륙 고원으로서 남동부는 해발고도가 극히 낮으나(300m) 북서부로 갈수록 점차 높아진다(1,500m). 엘부르즈·자그로스 두 산맥은 알프스히말라야조산운동으로 생겨난 해발고도 3,000m의 대습곡산맥으로서 화산을 동반한다. 엘부르즈산맥에 있는 성층화산(成層火山)인 다마반드산(5,604m)은 이란의 최고봉이다.

이란은 특히 호수가 많은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해인 카스피해는 러시아와 접경지역에 있으며, 수면이 해면보다 28m나 낮다. 또 폭 50㎞, 길이 130㎞로, 이란에서 가장 큰 호수인 레자이야호(湖)를 비롯해 곳곳에 크고 작은 호수가 있으나 대부분 강한 소금 성분을 띤다. 기후는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엘부르즈·자그로스 두 산맥으로 인해 해역에서 멀리 떨어진 이란고원 일대는 강수량이 극히 적어 겨울철에만 비가 내리며, 건조한 내륙성 기후로 인해 연교차가 심하다. 테헤란의 7월 평균기온이 29.5℃인 데 반해 1월은 3.5℃에 지나지 않아 연교차가 26℃에 이르며, 페르시아만 연안과 오만만 연안의 여름은 특히 무더워 45℃를 넘는 것은 보통이다.

동부와 중부 지역에도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 연강수량이 100㎜에도 미치지 못하며, 소금 성분이 많은 카비르사막과 루트사막이 이 지역에 펼쳐져 있다. 반면 카스피해 연안은 연간 1,000㎜ 이상의 강수량을 보이며, 동부는 겨울에 비가 많은 지중해성 기후, 서부는 연중 비가 오는 온대습윤 기후로 활엽수가 무성하다. 엘부르즈·자그로스산맥의 산간지대나 북서부의 아제르바이잔고원은 겨울 추위가 극심하고, 적설량이 많다.

대표적인 강으로는, 자그로스산맥에서 발원해 메소포타미아의 샤트알아랍강(江)과 합류하는 카룬강, 이란고원에서 발원해 엘부르즈산맥에 횡곡(橫谷)을 만들면서 카스피해로 흘러들어가는 세피드루트강이 있다. 엘부르즈·자그로스 두 산맥지대는 지진대(地震帶)로서, 심한 지진으로 인해 큰 피해를 내기도 한다. 국토의 반 이상이 염성 사막으로 황무지를 이루어 경지율은 낮으며 삼림은 주로 카스피해 주변에 분포한다. 떡갈나무·너도밤나무 및 활엽상록수가 주종을 이루며, 사막지대에서는 내염성 식물이 자란다.

III. 주민

이란은 다인종 국가로, 크게 페르시아족(族)·인도유럽어족·투르크족·셈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주류인 페르시아인이 전체 인구의 절반이 조금 넘는 51%를, 터키인과 같은 투르크족 계통의 아제르바이잔족이 24%를, 인도유럽어 계통의 언어를 구사하는 길락-마잔다란족이 8%를, 쿠르드족이 7%를, 아랍족이 3%를, 투르크멘족이 2%를, 그밖에 유태인 기타 소수민족이 1% 정도를 차지한다.

공용어는 페르시아어이며, 아랍문자를 사용하고, 일부 소수민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이슬람교 시아파 교도들이다. 이란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페르시아인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의 요직을 두루 겸해 국회의원 290명 가운데 5석을 제외한 285석(2001)을 독점하고 있다.

인도유럽어족은 루르족·바흐티아르족·발루치족·쿠르드족·아르메니아족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루르족과 바흐티아르족은 이란 서부의 자그로스산맥 중부에서 남부에 걸쳐 부족 단위로 유목생활을 하거나 정착생활을 한다. 발루치족은 수니파 유목 민족으로, 전근대적인 부족 통치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란 내에서는 가장 오지인 파키스탄 접격지역에 거주한다.

쿠르드족은 터키·이라크·시리아·이란 접경지대에 광범위하게 거주하는 민족으로, 오래 전부터 독립국가 건설을 지향하며 게릴라전을 벌이기도 했으나, 2001년 현재는 진압된 상태로, 부족 단위 또는 부족간 연합체를 구성해 살아 간다. 아르메니아족은 테헤란 북부 등 대부분 도시에 거주하며, 주로 상업·전문직에 종사하는 인텔리들이다.

투르크족 계통은 터키와 접경지대에 위치한 동서아제르바이잔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터키어의 방언을 사용하며 이란 전체 인구의 24%를 차지하는 아제르바이잔족, 남부 시라즈 주변에 거주하는 유목 민족인 카슈카이족, 투르크메니스탄과 접경지대에 거주하는 투르크멘족 등이 있다. 그밖에 셈족계로, 단순노동자나 농수산업에 종사하는 아랍족, 초기 형태의 기독교를 신봉하며 아시리아어를 사용하는 아시리아족, 종교의 자유는 인정받고 있으나 어느 정도의 차별을 받고 있는 유태인 등이 소수민족으로 꼽힌다.

이란 전체로 볼 때 인구증가율은 계속 감소해 1986년 3.91%에서 1996년에는 1.47%로 출산율이 급감하였고, 농업인구도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200만 명(1999)에 달하는 난민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IV. 역사

이란에는 BC 4000년 이전부터 인간이 살기 시작해 당시의 선사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란고원에 처음으로 국가를 건설한 것은 BC 559년으로, 아케메네스왕조의 페르시아제국이 건국되면서부터다. 특히 다리우스1세는 흑해·나일강·인더스강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등 제국을 건설하였으나, BC 490년 그리스와 마라톤전투에서 패한 뒤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셀레우코스왕조·파르티아제국을 거쳐, 3세기 초 사산왕조페르시아 건국으로 페르시아의 부흥시대를 맞아 400여 년 영화를 유지하다 651년 아랍인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그 후 7세기부터 16세기까지를 중세로 보는데, 이 기간은 타민족의 지배를 받은 이란 역사의 암흑기다. 7세기부터 11세기까지는 아랍인의 지배를 받아 이때부터 이슬람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전통적인 파할레비문자 대신 아랍문자가, 조로아스터교[拜火敎] 대신 이슬람교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9세기에 한때 사파르왕조·사만왕조가 일어났으나 얼마 가지 못했고,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는 투르크계 셀주크왕조의 지배를, 이후 16세기까지는 몽골계 티무르제국(帝國)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1502년 사파비왕조가 일어나면서 강력한 이란 민족국가를 형성, 당시 수도 이스파한은 '세계의 중심'으로 불릴 만큼 큰 번영을 누렸고, 이때 비로소 시아파 이슬람교가 국교로 정해졌다. 18세기 후반부터는 투르크멘족의 카자르왕조가 창건되어 수도를 테헤란으로 옮겼다. 19세기 초 카자르왕조시대 후반에는 러시아의 압박을 받았고, 1857년에는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영국과 싸워 패하였다. 이러한 대외적인 패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여전히 전제정치가 행해지자 결국 국민의 반발을 초래, 1906년 헌법 제정을 비롯해 의회 제도가 성립되었다.

제1차세계대전 중에는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국토는 싸움터로 변하였다. 그 결과 이란에 진출하려던 영국·러시아에 눌려 반식민국가 상태를 면치 못하다가, 1918년 페르시아-영국조약으로 영국보호령이 되었다. 이에 항거하여 이란 카자크 병단(兵團)의 대장(隊長) 레자한이 무력 정치개혁을 일으켜 카자르왕조를 무너뜨리고 1925년 스스로 레자샤라 칭한 뒤, 팔레비왕조의 기초를 닦았다.

레자샤는 중앙집권제를 실시하고, 치외법권의 철폐, 철도의 부설, 여성의 차도르 착용 금지 등 후진성 탈피에 노력하는 한편, 각종 불평등조약을 폐기하고, 국제연맹에도 가입하였다. 이어 서아시아 여러 나라와 동맹을 맺고 지속적으로 유럽세력 배제를 위한 투쟁을 펼치는 한편, 1935년에는 국호를 이란으로 바꾸었다.

1941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즉위한 모하마드 레자샤는 민족주의 기치 아래 모든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1955년에는 중동조약기구에 가입하는 한편, 1959년에는 미국과 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또 석유 수출로 얻은 막대한 수입을 바탕으로 1961년에는 농지개혁·문맹퇴치·중립외교·여성참정권 등을 골자로 하는 '백색혁명'을 단행하였으나, 이로 인해 반백색혁명 시위와 반정부 운동이 격화되었다. 1973년 제5차 5개년경제계획 시행 중 석유·중화학공업에 치우친 나머지 보수 시아파의 반(反)팔레비투쟁이 격화되기 시작해 결국 1979년 1월, 팔레비는 이집트로 망명하고, 반정부 이슬람혁명을 주도한 호메이니가 이슬람공화국을 수립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80년 9월 샤트알아랍수로와 아트그섬 영유권을 둘러싸고 이라크와 8년간의 전쟁을 치르면서 국제적인 고립과 막대한 인적·물적·경제적인 손실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전후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과 함께 1989년 호메이니의 사망으로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계승하고, 라프산자니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전후복구 및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실용주의 정책을 채택하였다.

1997년 하타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에도 역시 경제난 회복을 위한 개방·개혁정책을 추진하였으나, 외교·국방·사법 등 실질적인 권력은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성직자와 보수파가 장악함으로써 가시적인 개혁은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2001년 6월 대선에서 강력한 개혁파인 하타미가 77%의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이란의 개혁노선은 훨씬 많은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V. 정치

1. 외교

이란은 국제적 고립 탈피를 위한 대외 선린 우호관계 추진, 유럽 및 아시아와의 관계 강화, 이슬람권의 지도자적 역할 추구, 주변국과의 관계 강화를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즉 대화와 이해를 기초로 모든 국가와 선린 우호관계를 추진하고, 국가간 자주·독립·평등·내정불간섭·주권존중 원칙을 지지하면서 일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반대하는 한편, 1990년대 말부터 그리스·독일·바티칸시국·오스트리아·이탈리아·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시아 3국과도 관계를 강화하고, 2001년 현재 이슬람제국회의기구(OIC) 의장국으로서 이슬람의원연맹 창립총회(1999)를 주최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지지 및 반이스라엘 정책을 견지하는 등 주변 이슬람권과 관계를 강화하면서 지도적 위치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 왔다.

특히 모든 형태의 테러리즘을 반대해 각종 국제 테러리즘 척결에 동참하고, 핵확산 방지 및 마약 근절, 난민 보호에 앞장서면서 페르시아만(灣) 외국군 주둔 반대, 대 이라크 군사조치 반대, 중동지역 비핵화 추진 등 지역안보에도 힘쓰고 있다. 주요 대외 관계는 크게 미국·유럽연합·아시아·주변아랍·국제기구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대미관계는, 미국이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고 1995년 대 이란 금수조치를 내린 이후 경제제재법이 시행 중이나, 2000년 총선에서 개혁파가 승리함으로써 미국 역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2001년 6월 대선에서 하타미가 대통령에 재선됨으로써 개혁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여 미국과의 관계도 호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은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미국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관계 강화에 적극적이고, 이란 역시 국제적 고립 탈피와 자본·기술 도입을 위해 관계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아시아, 특히 한국·중국·일본과의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이어서 경제회복을 위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희망하는 한편, 주변 아랍국과도 이집트를 제외한 모든 국가와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1년 현재 국제연합, 국제통화기금,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 석유수출국기구, 세계보건기구, 국제노동기구,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국제민간항공기구, 관세협력이사회 등 각종 국제기구에 가입하였으나, 세계무역기구(WTO)에는 가입 신청만 해 놓은 상태다.

2. 군사

이란은 1979년 이란혁명 이후 군을 재편성하고 징병제를 실시하였으며, 1989년 개정된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최고안전보장위원회(SNSC)가 신설되었다. 군대는 16세이상 의무병제이며 복무기간은 2년이다. 군사조직은 정규군과 혁명군(IRGC)으로 2원화되어 있지만, 지휘계통은 같다.

2001년 현재 정규군은 40만 명(육군 35만, 공군 3만, 해군 2만)으로, 육군은 4개 기계화사단, 6개 보병사단과 특수전여단·공수여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4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해군은 잠수함 3척, 구축함 3척, 프리깃함 5척을, 공군은 300여 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혁명군은 12만 명(육군 10만, 해군 2만)으로, 산하에 50만 명의 민병대가 조직되어 있다.

특히 걸프전쟁이 끝난 후 군비증강계획(軍備增强計劃)에 따라 러시아에서 잠수함 3척을 도입해 중동 국가 가운데 최초로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무기는 주로 러시아·중국·북한 등으로부터 공급받는다. 또 걸프전쟁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스라엘·파키스탄의 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미사일 개발도 적극 추진, 1998년과 2000년에 각각 사정거리 1,300㎞의 중거리미사일을 시험 발사해 성공하였다.

VI. 경제

이란은 6500만의 인구와 석유·천연가스 등 풍부한 부존자원을 가지고 있고, 인근 중앙아시아 국가로 진출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동 지역 최대의 시장이자, 오랜 역사와 전통, 문화적 긍지 등 경제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중동 지역 안에서 공업화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국가 경제가 지나치게 석유에 의존하고, 과도한 정부보조금과 복수환율제 채택 등 경제를 비효율적으로 운용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7년 출범한 하타미 정부는 지속적으로 개혁·개방 정책과 적극적인 대외 선린우호정책을 추진, 대외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산업화에 필요한 기술과 자본의 유입이 증대되고 있으며, 연 5%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입 대체산업 육성, 비석유 부문의 수출산업화, 산업 간접시설 확충 등 산업화 정책을 추진한다.

2000년의 경우 경상수지 흑자는 47억 달러로, 전년도에 21억 달러 적자를 기록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역시 2000년 총수출액은 197억 달러로, 이 가운데 석유 수출액이 163억 달러를 차지하며, 수입액은 135억 달러로, 62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추정에 따르면, 2001년 현재 약 13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0년 9월 기준 총외채는 90억 달러로, 외채구조도 안정적이다.

통화 단위는 리얄(Rial)이며, 환율은 적용환율제(1달러당 1,750리얄)와 변동환율제(1달러당 8,000리얄)를 채택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15%(2000) 내외이지만 체감물가는 20% 이상이다. 또 물가 상승과 함께 이란 경제의 최대 과제로 꼽히는 것이 고용 문제로,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총생산이 중동 지역에서 가장 높은 나라로, 풍부한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한 석유 이권료(利權料)와, 매상이윤 배당으로 들어오는 막대한 국고수입이 주요 재정수입원이며, 최근에는 공업 발전도 현저하다. 산업구조로 볼 때 노동인구의 약 33%가 종사하는 농목업(農牧業)이 기간산업이지만, 기후와 지형조건 때문에 농경지는 총면적의 10%에 불과하며, 휴한지(休閑地)가 많아 실제 경작 가능한 면적은 매년 농경지 면적의 1/3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낙후한 농업기술과 대토지소유제도로 인해 생산성도 낮다. 주요 농작물은 밀·보리·채소·사탕무·목화·포도·멜론 등이며, 카스피해(海) 연안에서는 벼·차·오렌지도 재배한다.

목축업은 국토 면적의 약 1/4이 목초지여서 상당히 발달했는데, 주로 농민과 유목민에 의해 이루어진다. 산양·면양·소 등이 사육되며, 육류·모피·유류 등으로 상품화된다. 어업은 카스피해에서 산출되는 캐비아가 유명하며, 그밖에 페르시아만(灣)에서 정어리·새우 등이 많이 잡힌다.

석유자원은 1908년, 마스젯솔레이만(灣) 유전이 발견되면서 앵글로페르시아(지금의 브리티시) 석유회사가 상업적 채유를 시작한 이후 미국·네덜란드·프랑스의 여러 회사들이 출자한 국제재단(컨소시엄)이 발족하여 이권을 계승하였다. 또 1958년부터는 이탈리아·캐나다·독일·일본 등에도 새 광구(鑛區)의 이권이 주어졌고, 그 후 전면 국유화해 오늘에 이른다. 2001년 현재 총매장량은 약 900억 배럴로, 세계 5위이며, 생산량은 세계 4위,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에서는 생산량 2위를 차지한다. 총생산량 가운데 68%를 수출한다.

여기서 얻은 막대한 재정은 제조업 부문에 투자되며, 1990년 이후 비석유제품의 수출 확대 정책에 따라 공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주요 공업은 전통적인 직물을 비롯해 식품가공·자동차·철강 등이다. 그렇지만 숙련 노동력과 사회간접자본·원료 등의 부족으로 인해 아직까지는 낙후한 상태다. 수출품은 석유와 석유 관련 제품이 주종을 이루며, 수입품은 기계·자동차·화학제품 등이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이란혁명 후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독일·영국·이탈리아·에스파냐·일본·한국 등 유럽·동북아시아 국가가 대부분이다.

육상교통은 산유국답게 잘 정비된 도로망에 주로 자동차가 이용된다. 원거리 버스노선도 잘 발달해 북·서유럽 여러 나라와 국제버스로 연결된다. 그러나 도시교통이 전적으로 택시·버스에 의존하기 때문에 교통 정체가 아주 심하다. 철도는 테헤란을 중심으로 페르시아만 연안, 카스피해 연안, 아제르바이잔·호라산·케르만과 통하며, 총 연장은 5,000km에 달한다. 터키와는 철도로 연결되며, 테헤란에는 서남아시아 최초로 지하철도가 건설되어 운행 중에 있다.

테헤란의 메헤라바드 국제공항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중계공항으로서 주요국의 항공편은 대부분 기항한다. 그밖에 아바단·반다르에아바스·시라즈·자헤단에 국제공항이 있다. 국가의 주요 산업과 은행·보험회사 등은 모두 국유화되어 있으나, 자유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제1차 경제개발계획(1990~94), 제2차 경제개발계획(1995~2000)을 거쳐 2001년 현재 제3차 경제개발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VII. 사회

이란의 인구는 6500만 명(2001)으로, 인구증가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급속한 도시화와에도 불구하고, 교육·보건·환경 등 공공행정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에 따라 산업별 종사인구 비중도 변화해 34%에 달하던 농업 인구가 1996년 이후 23%로 감소하는 한편, 서비스업 인구는 30.9%에서 46.8%로 증가하는 등 많은 변모를 보이고 있다.

식생활은, 시아파 이슬람교 국가라 예배·단식 등 종교적 의식이나 돼지고기 금기(禁忌) 등 계율이 엄격하지만,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하면 자유로워 도시에서는 음주도 가능하고 여성들도 개방적이다. 단식과 시아파(派) 시조의 애도행사 등은 매년 이슬람력(태음력)에 따라 거행되지만 일상생활은 춘분(春分)을 1월 1일로 하는 독자적인 태양력(太陽曆:1년 12개월)에 따라 영위된다.

교육제도는, 1943년 초등의무교육법이 공포된 이래 교육의 근대화가 추진되고 있으며, 국민의 교육열도 높은 편이다. 이란혁명 이후 교육과정과 내용도 이슬람식으로 개편되었는데, 성년과 미취학아동을 중심으로 한 문맹률이 60%에 달하는 등 교육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다. 초등학교는 5년제, 중학교는 3년제, 고등학교·대학은 4년제이지만 의과대학·치과대학은 6~7년제다. 매년 9월 중순부터 학기가 시작되고, 중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대학은 테헤란에 테헤란대학·공과대학 등 3개 대학이 있고, 아바즈·마슈하드·타브리즈·이스파한·시라즈 등에도 있다. 또 1981년에 창설된 개방대학은, 정부의 예산 지원 없이 자체 운영되는 교육기관으로서 정규대학에 진학 또는 진학시기를 놓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고등교육 수요를 충족한다. 학생수는 70만 명이며, 134개의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

언론은 이란혁명 이후 크게 진전되어 1978년 88개에 불과하던 언론사가 1999년에는 1,155개로 늘어났고, 특히 하타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언론자유가 향상되는 듯하다가, 2000년 4월 언론통제를 강화하는 언론법이 통과되면서 20여 개의 개혁성향 신문·잡지가 폐간되는 등 다시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위생 상태는 열악하여 백일해·성홍열·장티푸스와 같은 전염병이 널리 퍼져 있고, 유아사망률도 세계 평균을 웃돈다. 그러나 5세 이하 사망률이 1천 명당 37.3명, 산모사망률이 10만 명당 90명으로, 1980년대에 비해 훨씬 줄어드는 등 발전 추세에 있다. 그밖에 국경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은 뚜렷한 지방색을 띠는데, 걸프전쟁 이후 전체인구의 7%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의 자치운동이 활발해 내정불안의 요인이 되기도 했지만, 2001년 현재는 진압된 상태다. 이란은 또 이슬람문화권의 중심국으로서, 이슬람사원을 비롯한 건축예술이 일찍부터 발달하였고, 특히 양탄자 직조 기술은 뛰어난 예술성과 장인정신으로 인해 세계에서도 명물로 손꼽힌다.

VIII. 문화

이란은 유럽·아프리카·아시아 중간지대에 위치하여 동서문명(Silk Road)의 가교역할을 하는 한편, 북방 유목민족 문화와 인더스문명·메소포타미아문명을 흡수해 복합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다. 또 복합민족국가로서 인종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90% 이상이 시아파 이슬람교를 믿는 까닭에 국가의 단일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러한 종교적 단일성으로 인해 11세기에서 16세기에 걸친 셀주크투르크·몽골 등 이민족의 지배에도 동화되지 않았다.

이슬람교 이전의 페르시아적인 조로아스터교·노루즈(Nou Roz) 등 고유문화도 이슬람 문화에 융화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이란혁명 후 국민생활의 이슬람화가 촉진되었는데, 특히 금요기도회는 종교행사인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일체감과 정치 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시아파 최대 종교행사는 아슈라(Ashura)로서, 제3대 이만 후세인이 전장에서 순교한 날을 기념해 전국가적인 애도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라마단(금식월)을 준수하고, 매년 이슬람 성지를 순례하는 기간인 하지(Hajj) 때는 8만~9만 명의 순례객이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 성지를 방문하기도 한다. 이슬람 율법(Islamic Code)은 특히 남녀의 유별성을 강조해 여성들은 외출시에 항상 차도르를 둘러야 하지만,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과는 달리 이란에서는 개방·개혁정책에 힘입어 이러한 관습이 퇴조하고 있으며, 여성참정권도 일부 인정된다.

식생활은 유목·촌락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날 것이나 뱀장어·조개처럼 비늘 없는 해산물은 먹지 않지만, 새우만은 예외다. 돼지고기와 개고기는 금기시한다. 이란인들은 또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고, 훼르도우시(Ferdowsi)·사디(Sadi)·하페즈(Hafez) 등 뛰어난 시인의 작품을 즐겨 읽음은 물론, 이들을 민족적 영웅으로 숭상하는 이도 적지 않다. 이슬람 문명과 이란혁명에 바탕을 두고 있던 문화·사회생활은, 그러나 1997년 8월 하타미(Khatami) 정부의 출범과 함께 2001년 현재 제2기 하타미 정부에 이르기까지 계속 개혁·개방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급격히 변해가고 있다.

IX. 과학기술

이란은 석유·가스 개발, 석유화학·광공업·전력·자동차·통신·섬유 등을 중심으로 과학기술 정책을 전개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2000년 3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3차 5개년경제개발계획을 통해 석유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개혁, 전 분야의 적극적인 산업화를 목표로 과학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석유화학의 경우 신규공장 건설, 기존공장 확장, 노후시설 교체 등 각종 석유화학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자동차 산업의 국산화 정책을 적극 추진해 자체 기술과 부품으로 연간 30만 대의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은 미진한 상태다. 통신은 우편전신전화부의 주관하에 국영기업인 이란전기통신사(TCI)가 국내외 통신망을 운영·관리·개발한다. 1876년 전신청이 설립된 이래, 1908년 우정성과 전신성이 통합되고, 다시 1952년 전화사업의 국유화를 추진해 국영기업인 이란 전화사가 설립되어 오늘에 이른다.

특히 국토의 광역성과 경제에서 차지하는 통신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통신개발 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한편, 중앙아시아·카프카스(코카서스)와 인접 아랍국 등 중동 지역에서 통신 분야의 중심 역할을 하기 위해 3차 5개년경제개발계획 기간에 650만 전화선 신설, 130만선 디지털화, 1만 5천 대의 지방도시 전화 보급, 300만 대의 이동전화 공급, 데이터통신망 개발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인공위성 발사 계획도 추진하는 등 과학기술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방송사업자는 1958년 설립된 국영방송사인 이란이슬람공화국 텔레비전이 있으며, 산하에 1,250개의 자체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다.

X. 대한관계

이란은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중동 국가로는 최초로 한국과 교역관계를 이루었는데, 1962년 10월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하고 1967년 4월 주(駐)이란 한국대사관이 설치되면서 관계가 긴밀해진 이후 한국의 대(對)유엔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1973년 10월 석유파동 이후 급격히 증대된 석유 수입을 배경으로 상품교역·건설·인력 등 여러 면에서 양국간 협력관계가 급진적으로 확대되어 1975년 8월에는 주한 이란대사관이 설치되었다.

1975년 '경제 및 기술협력에 관한 협정'을, 이듬해 3월에는 '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란혁명 후 관계가 소원해져 1981년부터 1988년까지 대사대리급 관계로 변경되었다가, 1989년에야 다시 대사급 관계를 회복하였다. 북한과는 1973년 4월 수교하였다.

1989년 이란·이라크전쟁이 끝난 뒤 한국은 이란의 전후 복구사업과 이란 경제개발계획에 참여해 건설과 통상 협력이 신장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이란의 산업화 추진과 연계해 양국간 관계가 산업협력의 형태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렇듯 산업협력이 고도화됨으로써 한국은 이란의 2대 교역국(1999), 이란은 한국의 3대 원유공급국으로서 상호 의존성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양국 관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해 전기·전자·자동차·선박·제철·발전·석유화학·통신·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석유·가스 개발, 댐 건설 등 한국 측의 건설 분야 진출도 늘어나고 있다.

2001년 현재 한국은 이란과 우호조약(1969.5), 문화협정(1974.7), 수산협력협정(1988.4), 투자보장협정(1998) 등 9개 협정을 체결하였다. 1988년 6월에는 이란 내 한국의 건설현장을 이라크가 폭격하여 한국 노동자 13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계속 순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 말 기준 대한(對韓)수입액은 13억 7500만 달러, 대한수출액은 23억 9300만 달러로, 주요 수출품은 원유·액화석유가스(LPG)·석유화학·농수산물 등이며, 이 가운데 원유가 90%를 차지한다. 수입품은 자동차·선박·전자전기·섬유·철강 등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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