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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08 (월)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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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낭만주의미술 (브리)
낭만주의

낭만주의는 대개 19세기 초반의 예술운동이라고 간주되지만 그 전후를 포함하여 1760~1870년경 사이의 약 100년에 걸친 유럽 예술의 변화를 나타내는 말이다. 낭만주의는 18세기의 물질주의·이성주의 등에 대한 반동으로서, 개성·주관성·비합리성·상상력·자발성·감정·환상·초자연성을 강조한다 (→ 색인 : 개인주의). 낭만주의는 문학에서 시작되었으므로 낭만주의 회화도 문학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 당시에는 문학과 회화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이 상호교감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에 따라 외젠 들라크루아는 그림과 음악의 유사성을 탐구했다.

낭만파 화가들은 내적 감동의 체험을 창조의 원천으로 생각하고 기존 사상과 제도화된 미적 가치를 불신했다 (→ 색인 : 미학). 또한 예술적 천재를 찬양했는데 예술가는 각자 개인적인 미의 기준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자들은 그들 작품의 주제로서 비극적인 것과 중세 문화에 대해 흥미를 가졌으며 자연을 찬미했다. 자연에는 신성한 정신이 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림에서 자연 속의 순간적 광선, 대기, 그리고 그것들이 풍경에 주는 효과를 연구했다. 낭만파 화가들은 19세기의 사회적 격동기에 혁명에 참여하고 약한 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고무했다.

영국

1760년대말과 1770년대에 로마에서 활동한 영국의 화가 헨리 푸젤리, 조지 롬니 등은 이미 아카데미의 규범이 부적절함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림의 주제로서 비극적·영웅적인 것, 특히 푸젤리는 악마적·초자연적인 주제를 선호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독창적인 개인적 우주론을 표현하기 위하여 상상력에 의한 이미지를 창조했다. 그는 유화물감·템페라·수채물감을 사용하여 선묘 양식의 그림을 그렸다. 작품 〈연민〉(1795, 런던 테이트 미술관)에서처럼 하늘로 떠오르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그림자 없는 세계를 묘사했다. 그가 합리주의와 물질주의를 거부하고 자연주의를 경멸한 것은 '시적인 천재'만이 영원성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대표적 풍경화가인 존 컨스터블과 윌리엄 터너는 예술 활동의 원천은 개인적인 감정이라고 믿었으며 자연에 대하여 신비적인 공감을 느꼈다. 그들은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대기와 광선을 표현했다. 컨스터블은 스스로를 자연의 화가로 간주했듯이 상상력보다는 정확한 묘사에 능했다. 터너의 작품에서 빛은 대상을 점차 흩어지게 만들었고, 그의 '숭고' 개념은 문학적인 거친 바다, 폭풍 그리고 대화재 등의 주제를 심화시켰다. 터너의 기법적인 혁신은 영국에서보다 프랑스에서 더 잘 받아들여졌다. 후일에 클로드 모네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터너의 빛의 표현을 흠모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독일

1800년경에 활동한 독일 화가들이 고전주의와 아카데미에 대한 반동을 나타냈지만 작품보다 이론이 선행했다. 1797년에 빌헬름 하인리히 바켄로더가 쓴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승의 심정 토로〉는 이당시 널리 영향을 미쳤다. 그는 초기 독일 거장들의 그리스도교 미술을 지지했으며, 예술가에게 개인적 감정을 통한 신성한 영감의 해석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필리프 오토 룽게는 17세기 독일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고 자랐으며, 18세기말에 드레스덴에서 독일의 탁월한 풍경화가인 카스파어 다피트 프리드리히와 친밀한 교류관계를 맺었다. 또한 룽게는 프리드리히처럼 풍경의 상징적·우의적 힘에 흥미를 가졌으며 이를 종교적 표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는 프리드리히와 같은 범신론적 자연관을 지녔다. 1803년에 그린 〈밤〉은 선묘 디자인 같은 반면, 만년에는 사실적인 인물화도 그렸으며 독일의 우화·신화·민담 등을 종합한 작품을 그렸다. 프리드리히는 지극히 종교적인 인간으로서 자연에 내재한 신의 정신에 완전히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풍경화를 통해 창조주의 영원한 존재를 암시함으로써 감상자에게 종교적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1809년 빈에서는 '성 루가 길드' 그룹이 생겼는데 수도승 같은 그들의 생활방식 때문에 ' 나자렛파'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그룹의 주도자는 요한 프리드리히 오버베크였으며, 이들은 이탈리아식 풍경을 거부하고 주변의 시골풍경과 독일의 회화 전통으로 관심을 돌렸다. 이들의 풍경화는 후에 낭만주의적 사실주의, 자연주의적 사실주의, 세속적 역사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화가들 사이에서는 당대의 사건을 묘사하는 관심이 고조되었다. 이들은 자크 루이스 다비드가 보여준 선례에 따라 현대적 영웅주의를 지지하고 제국의 영광을 찬양하기를 요구한 나폴레옹 1세의 뜻에 부응하여 정확한 기록화를 그렸다. 그러나 앙투안 장 그로는 스승인 다비드를 떠나 낭만주의의 선봉이 되었다. 그가 자파에 가지 않고 제노바에서 본 페스트의 회상에 의존해 그린 〈자파의 페스트 환자를 방문하는 나폴레옹〉(1804)에서, 그는 나폴레옹을 권위와 낭만주의적 영웅의 특징인 인도주의적 감수성을 지닌 존재로 표현했다.

빛나는 색채와 새로운 감정적 분위기 등의 낭만주의 회화의 특징은 테오도르 제리코와 들라크루아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1815년 이후, 그림으로 당대의 사건을 다룬 화가는 제리코뿐이었다. 그가 1819년경에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은 사건을 집단적인 비극으로보다는 개인적 고통으로 해석한 것이다. 박진감 넘치는 형태는 카라바조파의 영향을 반영한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지도자인 들라크루아의 그림들은 1820, 1830년대의 살롱전에 전시되었는데, 그 격정적인 색채와 감정적 에너지로 파문을 일으켰다. 1815년 이후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프랑스가 중산층 사회로 변하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그결과로 이 시대의 미술은 우울하고 이국적인 주제 선택과 사회의 하층 계급에 대해 고조된 관심을 보여준다. 들라크루아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문학적·역사적 주제에서 죽음·패배·고통 같은 인생의 비극성에 대한 인식과 놀라운 기법으로 낭만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었다.

그의 힘찬 화법과 뛰어난 색채 사용은 이후 프랑스 회화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그가 1824년에 그린 〈키오스 섬의 학살〉은 당대의 사건을 비극적인 허구의 영역으로 전환시켰다. 눈부신 색채와 용솟음치는 형태를 보여주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1827)에서는 고대의 전설적 주제가 채택되었다. 이 두 작품의 동양적 주제는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먼저 1808년에 그린 〈발팽송의 욕녀〉에서 그 선례를 볼 수 있다. 앵그르는 이외에도 서정적인 여인 누드화들을 그렸으나 라파엘로의 영향으로 아카데미적 규범으로 돌아갔다. 또한 그의 순수한 선적 양식은 영국의 블레이크 등과 비교할 수 있다.

1830, 1840년대에 오노레 도미에는 사회 하층계급의 체념적인 인고를 그렸으며, 반대로 특권계급의 오만과 악덕을 비판하기도 했다. 1848년 이전의 사실주의는 다소간 낭만주의적이었으나 1848년 혁명과 공화정 공포를 계기로 본격적인 사실주의로 변모했다. 장 프랑수아 밀레는 농민들의 생활을 주제로 삼아 거기에 영원성을 부여했다. 귀스타브 쿠르베는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을 〈돌 깨는 사람들〉(1849) 같은 그림으로 표현했다. 〈오르낭의 매장〉은 고향의 장례식 풍속을 그린 것인데, 당시의 교회를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1830, 1840년대에 프랑스 풍경을(그때까지 많은 프랑스 화가들은 로마에 가서 로마 풍경을 그려 가지고 왔음) 그리는 민족 풍경화파가 있었다. 그중에서 퐁텐블로 숲에서 그림을 그린 일단의 자연주의 화가들을 바르비종파라고 한다. 이들은 자연에 가까이 접근하면서 순간적인 광선효과에 흥미를 가졌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 화가인 테오도르 루소는 "우리의 예술은 오로지 진실을 통해서만 그 페이소스를 획득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그린 황량하고 우울한 석양 풍경은 그의 기질을 반영한다.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는 광선과 대기의 일시적 효과를 포착했다. 명멸하는 석양, 물 위에 반사된 광선 묘사는 컨스터블의 표현기법을 반영한 것 같다. 카미유 코로의 작품은 고전주의적이지만 자연주의적 감각에 의해서 생기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바르비종파는 인상주의 혁명의 기초를 마련했지만 낭만주의의 자연미에 대한 이해와 대상과의 정서적 교감을 잃지는 않았다.

미국에서는 독립전쟁이 일어나 18세기말 이후 낭만적 사실주의 회화를 고무시켰다. 벤저민 웨스트는 신고전주의 화가였지만 당대의 현실적 주제를 다루어 서사화 양식으로 발전시켰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서양회화사' 항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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