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7 (토) 08:18
분 류 사전1
ㆍ조회: 1680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두산)
사우디아라비아 Saudi Arabia

아시아 서쪽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나라.

I. 개관

위치 : 아시아 아라비아 반도
면적 : 214만 9690㎢
인구 : 2400만 8000명(2003)
인구밀도 : 11.2명/㎢(2003)
수도 : 리야드
정체 : 세습군주제
공용어 : 아랍어
통화 : 사우디 리얄(Riyal
환율 : 3.75SRls = 1$(2003.9)
1인당 국민총생산 : 7,230$(2003)

면적은 214만 9690㎢, 인구는 2400만 8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11.2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사우디아라비아왕국(The Kingdom of Saudi Arabia)이다. 사우디란 '사우드가(家)의', '사우드왕조(王朝)의'라는 뜻이다. 북쪽으로 요르단·이라크, 동쪽으로 페르시아만(灣) 연안의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남쪽으로 오만, 예멘에 접하고, 서쪽으로 홍해를 사이에 두고 이집트, 수단, 에리트레아와 마주한다.

II. 자연

사우디아라비아는 사막에 오아시스가 점재하는 전형적인 건조지대이다. 서부의 홍해 쪽에는 해안을 따라 헤자즈 산맥이 뻗고, 이 산맥에서 북동 방향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다가 중앙부의 네지드 고원에 이른다. 이 고원은 네푸드사막과 다하나사막에 둘러싸여 있으며, 북동쪽으로 점차 경사가 낮아져 페르시아만 연안의 하사 지방에 이른다. 남부에는 ‘허무의 사막’으로 부르는 룹알할리 대사막(65만㎢)이 있다. 강이나 호수 대신 강우기에 물이 흐르는 와디가 있을 뿐이나 연안지방은 습도가 높다.

국토 대부분이 모래나 자갈로 덮혀 있는 사막지대로 토양은 척박하며, 경지의 0.5% 정도가 관개에 의존하고 있다. 모래폭풍과 먼지폭풍이 자주 발생한다. 기후는 비교적 습윤한 남부 아시르 지방과 서부 산악·초원지대, 그리고 국토의 95%를 차지하는 사막지대로 3구분되며, 전체적으로 사막기후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겨울 평균기온은 14~23℃이지만 여름은 폭서가 나타나 38℃가 넘고 종종 54℃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식생은 대추야자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자생나무이며, 그외 약간의 목초와 관목이 자란다.

III. 주민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민은 아랍인(아라비아인)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부족집단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종교와 언어는 통일되어 있다. 아랍인이라 하면 아라비아반도 출신의 순수한 아랍인과, 그들에게 정복당하여 ‘아랍화’한 이민족 아랍인(이집트인이나 모로코인)이 있는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민은 예멘인 등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아랍인에 속한다.

따라서 이들이 사용하는 아랍어는 정통파에 속하며, 이슬람교의 성지(聖地) 메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슬람교 성전 《코란》의 아랍어는 아랍 세계의 공통어가 되어 있다. 주민의 99%가 이슬람교도(수니파 90%, 시아파 10%)이다.

IV. 역사

사우디아라비아가 건국된 것은 1927년이다. 전에는 홍해 연안의 헤자즈 지방(중심은 메카)과 중앙 고지로부터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에 걸쳐 전개되는 네지드 지방(중심은 리야드)으로 갈라져 있던 것을 리야드 출신의 압둘 아지즈왕(통칭 이븐 사우드)이 통일하였다. 1932년 9월에 현재의 국명으로 바꾸었다. 왕은 1953년에 사망하고 장남 이븐 사우드가 뒤를 이었다. 1950년대에는 중동의 여러 나라들이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민족주의를 앞세워 정치적 격동기를 맞이함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도 그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외교는 물론 국내 정책까지도 시류(時流)에 따라 보수와 혁신 사이에서 방황하였다.

더욱이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압둘 아지즈가 죽은 뒤 사우드와 파이잘로 대표되는 보수·혁신 양파의 대립은 심각한 양상을 빚었으며 외교·경제적 측면에서 시대적 요구에 따르지 못한 사우드왕은 1964년 왕족회의의 결정으로 물러났다. 그의 뒤를 이은 파이잘왕은 왕정(王政)의 유지와 석유산업 개발을 위한 친미정책(親美政策)을 기반으로 온건·진보적 보수주의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파이잘왕은 특히 이집트와의 관계 개선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1967년 북예멘의 내란과 남예멘의 독립운동을 둘러싸고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계속 악화하였다.

그러나 1967년 3월 제3차 중동전쟁(中東戰爭)에서 패배한 이집트가 북예멘 파견군을 철수하고 수에즈운하 폐쇄로 인한 손해액의 상당 부분을 사우디아라비아가 쿠웨이트와 함께 원조해줌으로써 두 나라 관계는 크게 호전되었다. 1973년 10월의 제4차 중동전쟁에서는 이집트·시리아와 함께 참전하고, 석유 전략을 주도하였다.

그 결과 파이잘왕은 보수주의의 리더로서 아랍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1975년 3월 조카에게 암살되고, 왕족회의에서는 할리드 황태자가 새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1982년 6월 할리드왕이 죽고 황태자인 제1부총리 파드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현재 GCC(Gulf Cooperation Council:페르시아만안협력회의)의 중심지이자 중동지역의 평화와 결속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V. 정치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체제는 정교혼합정체(政敎混合政體)로서 국왕은 왕인 동시에 종교상의 수장이며 와하비즘을 건국의 기초이념으로 하고 있다. 국왕의 권한은 입법·사법·행정 등 각 방면에 걸쳐서 절대적이지만 무제한은 아니며, 이슬람법과 관습법에 따라 정치를 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이슬람법은 울라마라고 불리는 이슬람교 장로들에 의해 해석 운용된다. 현재 국왕은 1982년 6월 13일 즉위한 파드이다.

성문헌법은 존재하지 않고 정당도 인정되지 않지만 1953년의 칙령으로 각료회의가 설치되었다. 대신은 행정면에서는 국왕을 보필하고, 입법면에서는 법안을 제출하여 국왕이 재가하면 칙령이 된다. 왕과 왕족회의가 실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특히 황태자의 발언권이 강하다. 왕족 내의 신구세력의 갈등, 신흥 중산계급의 등장, 이란·시리아·리비아 등 아랍 급진 세력의 선동 등이 정치적 과제로 남아 있다.

더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가 엄격한 이슬람교 교리의 지배를 받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이지만, 걸프전쟁으로 인해 국내 이슬람교 정통주의 세력과 테크노크라트 간 반목이 심화되는 양상이 어느 정도 보이고 있다.

1994년에는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침공, 주변국가들에 의해서 포위되어 있어 자립할 수 없게 되자,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간 합병이 추진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대외정책목표는 왕정의 유지와 석유 자원의 보호이며, 또한 이슬람교문화를 수호하는 것이다. 걸프전쟁 이전에는 온건 친서방 노선을 견지하면서도 비동맹 중립을 표방하여 모든 국가의 주권 존중, 내정 불간섭, 외세 배격의 원칙을 유지해왔다. 걸프전쟁 이후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자체안보를 강화하는 데 외교정책을 치중하고 있다.

군대는 지원제이며, 총병력은 정규군 10만 6000명(육군 7만 명, 공군 1만 8000명, 해군 1만 8000명), 방위군 7만 6500명, 경찰 2만 명, 국경해안 경비대 1만 5000명이다. 2000년 현재 국방비 규모는 281억 달러이다. 국방비의 많은 부분을 미국의 군사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VI. 경제

사우디아라비아는 혼합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개발도상국으로 석유의 생산과 수출이 산업의 중추 역할을 담당한다. 농업은 불리한 자연조건 때문에 GNP의 약 6%(1998)를 차지하여 저조한 편이며, 식품의 약 70%를 수입에 의존한다. 공업은 GNP의 약 1/4을 차지하며, 1970년대 중반 석유개발과 함께 시작되었다. 따라서 주요 수입품목은 공산품과 식료품 등이며, 수출품목은 석유화학제품 및 원유 등이다. 또한 전력은 전적으로 석유에 의해 발전되고 있다.

유전은 페르시아만 연안에 몰려 있으며, 다란이 중심지이다. 석유의 추정매장량은 2615억 배럴(채굴기간 83년)로 세계 총매장량의 25.2%를 차지한다. 천연가스도 전세계의 4%가 매장되어 있으며, 그밖에 보크사이트·구리·납·철광석 등도 매장되어 있다. 라스타누라에 정유소가 있어 그 적출항과 사막을 횡단하여 지중해 연안(레바논의 시돈항)으로 빠지는 대규모 파이프라인을 이용하여 수출된다. 석유 개발은 미국계의 아람코석유(캘리포니아 스탠더드, 엑슨, 텍사코, 소코니바큠의 4대 회사가 공동 출자)가 독점하여왔으나, 1977년 국유화 시책에 합의하였다.

또 쿠웨이트와의 중립지대에는 미국계의 게티석유, 중립지대 앞바다의 해저유전 개발에는 일본의 아라비아 석유가 진출해 있다. 산유량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급상승하였으며, 지금은 세계 원유 생산의 반을 차지하고, 하루생산량은 1060만 배럴에 달하여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또한 OPEC(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개발기구)의 결렬과 지역 내부의 대립을 원하지 않는 반면, 가능한 한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경제의 흐름에 보조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가 인상에 따른 비산유국들의 충격을 최소한 억제하고 OPEC의 단일유가 책정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며, 1983년 석유가격 인하 경쟁으로 해체 위기에 직면한 OPEC를 결속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는 막대한 석유수입을 바탕으로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국제통화기금)의 약 30%를 담당하고 있으며 아랍 경제사회개발기금, 역내의 각종 금융기구 등을 통하여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UN(United Nations:국제연합) 산하 주요기관, AFDB(African Development Bank:아프리카개발은행), 인근 비산유국을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 아시아 국가에 이르기까지 대외지원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한편 대내적으로는 수자원(水資源)의 획득과 사막의 녹화(綠化), 수리사업 등을 착실히 진행시키고 있다.

1981년 페르시아만에서 홍해까지 아라비아 횡단 송유관을 건설하여 북미지역과 유럽 등지에 대한 수출로를 크게 단축시켰으며, 1988년 11월 석유산업의 전면적 재편성과 새로운 국영석유회사 설립을 결정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석유시장은 미국·프랑스·네덜란드·일본 등이며, 이들 나라는 공산품과 농산품이 주요 수입원이 된다. 2000년 수출은 800억 달러, 수입은 285억 달러이다.

VII. 사회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민은 대부분이 유목민이고 나머지는 도시나 오아시스의 정착민이다. 이들은 모두 이슬람교를 믿으며, 수니파(派) 중에서 원시 이슬람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와하브파에 속한다. 이 종파는 사우디아라비아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그 계율은 이슬람 세계를 통틀어 가장 엄격하며, 음주는 외국인마저 엄금하고 있다. 우상 숭배를 부정하는 마음이 매우 강하여 최근까지도 수입 인형 및 마네킹을 점포에 장식하려면 그 머리를 잘라야 허가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또 일반적으로 배외의식(排外意識)이 강하기 때문에 재외공관의 설립도 홍해 연안의 지다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외국인의 내륙여행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슬람의 성지 메카에는 해마다 약 30만 명의 순례자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어 1990년 7월에는 순례자 압사사건으로 1,4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 종교순례에 의한 수입은 석유시대 이전에는 국고의 중요 재원이었다. 그러나 성지에는 이교도가 절대로 못 들어가게 되어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우상 예배와 통하는 것이라 하여 최근까지 없었으나 지금은 종교 프로를 중심으로 방송되고 있으며, 위성안테나를 설치하여 서구문화 및 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은 다수의 아랍어 일간지와 ≪아랍 뉴스 Arab News≫ 등 3개의 영자일간지가 발행되고 있으며, 통신사는 국영 사우디통신(SPA)이 있다.

파이잘 왕 이후 노예 제도 폐지, 주택·병원 확충 등 근대화로 부(富)의 혜택이 일반 국민에게도 돌아가고 있다. 학교는 초등·중등·고등학교가 모두 전액 국고부담이다. 이븐 사우드왕의 통치 말기에는 초등학교 938개교, 중고등학교 138개교, 교원 8,300명, 학생 16만 2000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파이잘시대에 들어서부터 사범학교·여자 전문학교 외에 각종 기술 전문학교가 설립되었으며, 또 국비에 의한 해외유학제도의 장려 등 교육 제도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크게 개선되었다. 현재 대학은 1957년 최초로 설립한 킹사우드대학교(1982년 리야드대학교를 개칭)를 비롯하여 7개 국립대학교와 8개의 단과대학이 있으며, 대학 교육은 무료이나 최근 경제 침체로 기숙사비, 월 학비 보조금을 줄여나가는 학교도 있다.

보건·공중위생 상태는 일반적으로 열악한 편이며, 아직도 말라리아·콜레라와 같은 풍토병이 발병하고, 높은 유아사망률(1,000명당 51.25명)과 낮은 평균수명(68.09세), 15세 이상 인구의 높은 문맹률(평균 37.2%, 남자 28.5%, 여자 49.8%) 등은 전통적인 이슬람교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또한 대부분의 이슬람교 국가가 그렇듯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을 보여 정당·결사·언론의 자유는 허용되지 않으며, 노동조합도 결성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다국적군의 주둔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개방화 물결이 확산되고 있다.

VIII. 문화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반도의 4/5를 차지하는 회교 군주국(정교 일체)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반도의 태반을 차지하는 왕국으로 이슬람교의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있으며 계율이 엄한 와하비파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나라이다.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이 꿈속에서마저 동경하는 성지 메카는 예언자 마호메트가 태어난 곳이다.

거리의 중앙에 솟은 성스러운 모스크와 카아바 신전은 지극히 성스러운 곳으로 이슬람 신앙 최고의 성역이다. 평생 단 한번의 순례를 위해 온세계에서 많은 신도가 모여든다. 모든 축제나 휴일은 이슬람교와 관계된 것들이며 그중 가장 큰 것은 한 달간 해뜬 후부터 해질 때까지 단식을 행하는 라마단이다.

IX. 과학기술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중 통신 서비스를 위한 본회선수는 1998년 현재 310만 회선이다. 1953년 통신부가 설립되었고, 1970년 MOPTT(Ministry of Posts, Telegraphs and Telecommunications)가 설립되었다. MOPTT는 통신 기간망을 감독하고, 망의 개발, 운용 및 유지, 면허발부, 장비 형식승인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국제 광섬유망이 1994년 개통되어 지다와 동남아시아, 중동 및 서유럽을 잇는 망이 구축되어 있으며, 일본과 영국을 잇는 2만 8000km의 케이블 시스템에도 접속할 예정이다. 또, 1990년에 구축된 70km의 광섬유망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레바논간의 고품질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셀룰러 전화 서비스는 1981년 중동국가 중 처음으로 에릭슨이 제공한 시스템을 운용하여 시작되었다. 셀룰러 서비스 사업자는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MOPTT이고, 가입자수는 100만 명이다. 2001년 현재 인터넷 서비스 제공사업자(ISP)는 42개이며 인터넷 사용자는 40만 명이다. 정보부가 TV방송에 대한 규제를 하고 있으며, 전국방송을 실시하는 방송사는 1957년 설립된 국영방송사인 다하란 텔레비전(채널3)과 112개 방송국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영방송사인 사우디아라비안 텔레비전이 있다. 유료 TV로는 아랍 라디오 앤 텔레비전(ART)이 있다.

X. 대한관계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1962년 10월 16일에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1973년 7월에는 주(駐)사우디아라비아 상주 대사관이 개설되고 1975년 4월에는 서울에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이 설치되었다. 이를 계기로 양국은 정치·경제·문화의 각 분야에 걸쳐 선린외교정책이 강화되었다. 석유파동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기술인력 부족과 사회간접자본 미비가 경제개발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어, 한국은 기획전문가·의료단·어업기술자 등을 파견하여 기술 협력을 제공하였다.

또한 사회간접자본 개발에 일익을 담당, 도로·항만 등의 건설계약 실적이 1978년까지 100억 달러를 상회하였으며, 한국 총건설 수출의 80% 이상이라는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였다. 건설공사 수주(受注) 규모도 단일공사가 10억 달러를 상회하는 등 대형화하였으며, 시멘트공장, 담수화(淡水化)공장, 석유화학공장 등의 대형 플랜트를 건설하는 등 건설공사 유형이 기술 집약적으로 고도화하였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발전소 건설 및 전화사업(電化事業)에 참여하는 등 양국간의 경제·통상 관계는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양국은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1975년 1월에는 한국·사우디아라비아 경제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양국의 협력을 더욱 구체화하기 위해 연례(年例) 합동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합의, 1975년 8월에 제1차 회의를 열고, 1980년에는 제5차 회의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하였다.

한편 1980년 5월 11일부터 3일간에 걸친 대통령 최규하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으로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제 협력, 통상 증대, 원유의 안정 공급 루트 확보 및 홍보외교 강화 등 경제·외교 부문의 협력관계를 굳게 다져, 대(對)사우디아라비아 진출을 가속화하는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하였다. 1997년에는 교육교류약정,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하였다.

1998년 압둘라 왕세자가 외무장관, 석유광물장관, 공업전력장관, 기획장관과 함께 방한하였으며, 2000년 석유광물자원장관 나이미, 상무장관 파키, 제2부총리 겸 국방항공장관 술탄이 방한하였다. 한국에서는 1998년 산업자원부장관 박태영, 1999년 산업자원부장관 정덕구, 2001년 통상교섭본부장 황두연, 정보통신부장관 양승철, 국무총리 이한동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였다.

2000년 현재 대(對) 한국 수출액은 56억 6400만 달러이고, 수입액은 13억 29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상품은 원유, 석유화학 제품 등이며, 수입품은 직물, 섬유제품, 전기·전자제품, 타이어, 자동차, 철강제품, 화학제품, 기타 생활용품 등이다. 2001년 12월 현재 한국 교민 및 체류자는 1,270명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윗글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한메)
아래글 [근대] 아랍인 (브리)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983 사전1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브리) 이창호 2004-11-27 3296
2982 사전1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한메) 이창호 2004-11-27 1669
2981 사전1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두산) 이창호 2004-11-27 1680
2980 사전1 [근대] 아랍인 (브리) 이창호 2004-11-27 1313
2979 사전1 [근대] 아랍인 (한메) 이창호 2004-11-27 1204
2978 사전1 [근대] 아랍인 (두산) 이창호 2004-11-27 1149
2977 사전1 [근대] 마론파 (브리) 이창호 2004-11-26 1309
2976 사전1 [근대] 마론파 (한메) 이창호 2004-11-26 1389
2975 사전1 [근대] 마론파 (두산) 이창호 2004-11-26 1169
2974 사전1 [근대] 와하비 (브리) 이창호 2004-11-26 1271
12345678910,,,301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