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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3-07 (일) 16:59
분 류 사전1
ㆍ조회: 1279      
[역사] 사관 (민족)
사관(史觀)

역사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관점 또는 가설.

[가설과 사관]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한다. 그러나 과거란 글자 그대로 이미 지나간 일이며, 지금은 사라져 없으니, 대화할 수가 없다. 우리가 대할 수 있는 것은 흔적인 사료뿐인데, 그것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질문을 하고, 답으로서 알고자 하는 사실들과 그 연관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일련의 질문, 곧 ‘하나의 질문표’(Bloch, M.)를 마련하지 않고는 과거의 탐구에 나설 수 없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당연히 기왕의 연구들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미 밝혀진 것과 질문표가 답으로서 예상하는 것이 함께 하나의 작업가설을 구성하게 마련된다. 그 가설을 검증하는 작업과 함께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가설이 매양 명확하게 구성된다거나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어렴풋한 것이나마 어떤 예상이 있어야만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 방향을 정하지 않고는 탐구에 나설 수 없는 것이다.

처음 어렴풋한 예상에 지나지 않았던 가설이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점차 명확해지기도 하고, 거꾸로 명확하게 작성된 질문표가 예상한 답이 안 나오기 때문에 수정되기도 한다. 아무튼 그러한 가설이 검증됨으로써 연구가 끝나는 것이다.

역사란 궁극적으로는 사회생활의 변화를 추적하고 그 원인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그러한 연구를 하는 동안에 변화의 패턴(pattern)을 나름대로 알아차리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개별사례의 연구를 통해서 어떤 요인이나 요인들이 어떻게 작용해서 변화를 가져오는가 하는 방식을 나름대로 알아내는 것이다.

그러한 ‘정형’이나 ‘방식’을 정식화한 것이 곧 사관이다. 그것은 사례연구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선험적(a priori)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것이다. 또 그것은 개별적인 변화들을 통하여 알아낸 일반적인 방식을 정식화한 것이므로, 이론적 성격을 지닌다. 그래서 ‘이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실험이나 관측으로 확인된 자연과학적 이론과는 달리 몇몇 사례를 일반화한 것이므로 한낱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지침이 될 작업가설이나 ‘질문표’를 마련해야 한다. 그때 사관은 그러한 지침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말하자면 ‘공식’의 구실을 한다.

[어원]

사관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본래 있었던 한자어가 아니다. 이 낱말은 서양말의 역어로 우리 말에 들어왔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사전들을 훑어보면, 표제어로서 ‘사관’보다 ‘유물사관’이 먼저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순서가 뒤바뀐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서양 여러 나라 가운데 사관이라는 낱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독일뿐이다. 독일 말의 ‘Geschichtsauffassung’이 있을 뿐인 것이다. 그나마 단독으로는 쓰이지 않고 수식사와 함께 나타나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곧 유물사관이다. 마르크스주의가 풍미했던 그 시절의 사전에 ‘유물사관’이 먼저 나타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뒤 ‘사관’을 따로 떼어 풀이하게 된 것은, 그것이 처음으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사관의 모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빼기만 하면 형식적으로 사관을 쉽게 정의할 수 있었다.

유물사관은 오늘날도 대표적인 사관의 하나이다. 마르크스(Marx, K.)는 ≪경제학 비판≫ 서문에서 그의 사관을 요약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사관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첫째, 경제적 요인의 작용으로 마침내 사회 전체가 변혁되는 방식을 정식화한 것이다. 둘째, 인간 사회가 어떤 단계들을 거쳐 발전해왔는가를 제시한다. 셋째, 그 단계들을 ‘전진적인 시대들’이라고 하여 역사를 진보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생산관계의 마지막 적대적 형태’인 부르주아 사회와 함께 ‘인간 사회의 전사는 끝난다.’는 것이 사회주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변화의 공식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예언되어 있다.

이와 같이, 과거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언하는 유물사관이 준 지적 충격은 사관이라는 말을 독립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가설의 검증]

그러면 하나씩 살펴나가기로 한다. 우선 변화의 방식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이므로, 연구하고자 하는 특정한 사례에 들어맞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규정을 구체화해서 적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사례에서의 ‘생산력’과 ‘생산관계’, ‘경제적 구조’와 ‘상부구조’,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갈등’ 또는 ‘모순’, 그리고 생산관계의 ‘적대적 형태’를 구체적으로 규정짓고, 과연 그 방식대로 ‘경제적 기초의 변화’가 ‘상부구조 전체’의 ‘변혁’을 가져왔는지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연구의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 과거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있으며, 무릇 가설이란 그러기 위한 한낱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검증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날 때에는, 주저없이 알맞게 보완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들어맞지 않는 사실을 묵살하거나 왜곡하려 든다면, 진실을 압살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되고 말 것이다.

오늘날 경제적 요인을 ‘유일의 궁극적 원인’으로 보지 않더라도 중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토니(Tawney, R. H.)의 말처럼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닐지라도 마르크스 이후의 사람(post-Marxian)일 수밖에 없다.” 그 점에서 경제적 ‘기초’와 ‘상부구조’라는 공학적 표현으로 결정적인 의의를 천명한 유물사관은 가설로서의 사명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종교가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난다. 쿨랑주(Coulanges, F. D.)는, ≪고대도시≫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사회적 변화의 연구에 입각해 종교적 요인의 결정적인 의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고대인의 신앙을 도외시하고 그들의 제도를 고찰해 보라. 그 제도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해괴하고 또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그러나 이들 제도와 법률에 신앙을 가져다 대어 보라. 사실이 곧 더 명백해지고 그 설명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신앙과 법률을 비교, 고찰함으로써 원시종교가 그리스와 로마의 가족제도를 구성하고, 혼인의 제도와 가장의 권위를 확립하고, 소유권과 상속권을 신성화하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종교야말로 가족을 더욱 확대해서 보다 큰 공동체인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가족과 마찬가지로 도시도 지배한 것이었다. 고대인의 모든 제도는 그들이 사법(私法)과 마찬가지로 거기서 나왔다. 도시가 원칙·법규·관습 및 관직을 가진 것도 종교 때문이었다. 그러나 때가 지남에 따라 이 오래된 종교가 변하고 희미해졌으며, 이와 더불어 사법과 정치제도도 변하였다. 그때 일련의 혁명이 일어났으며, 사회적 변화가 언제나 지적 변화에 수반했다.”

이는 유물사관이 경제적 제약의 관점인 데 대하여, 종교적 제약의 관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종교적 요인이 ‘유일의 궁극적 원인’일 수는 없으며, 그것이 작용하는 ‘정도’나 ‘방식’은 그때마다 점검되어야 하지만, 시대나 사회에 따라서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데 유물사관이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인 것과는 달리, 쿨랑주는 고전고대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는 공식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와 같이 일반이론이 아니고 특정한 사회의 ‘변화의 방식’을 정식화한 특수이론도 사관이라고 한다.

터너(Turner, F. J.)의 ≪변경이론 Frontier Theory≫이 좋은 보기이다. 미국 특유의 것-미국적 성격-을 가져온 원인과 방식을 제시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미국의 사회적 발전은 계속적으로 되풀이해서 ‘변경’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생활에 끊임없는 재생과 유동성과 새로운 기회를 주고, 원시사회의 소박함과 끊임없이 접촉하게 한 서부로의 확대가 미국적 성격을 지배하는 여러 요인을 마련하였다.”

‘변경’이 서부로 뻗어나갈 때마다 다시 새로운 원시적 환경에서 생활하게 된 결과, 독특한 기품-개척자 정신-이 함양되고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쳐 ‘미국적 성격’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론’ 역시 설명의 공식을 제시한 하나의 가설이다. 따라서 개개의 사례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터너 자신이 ‘미국적’ 민주주의에 그 공식을 적용해서, 개척자들 사이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독립 불기의 개인주의와 자유의사에 의한 협동에서 합의에 의한 통치를 바탕으로 하는 독특한 민주주의가 성립한 결과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뒤 이 이론은 개별 연구에 의해 많이 수정되기는 했으나, 동시에 많은 것이 밝혀졌다. 가설로서의 사명을 충분히 다한 것이다. 가설은 중요한 것일수록 반론도 거세게 마련이어서, 찬반 양측에서 시도하는 철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이론을 바로잡으면서 진실에 다가선다.

그런데 터너는 ‘변경’을 ‘미국화의 선(線)’이라고 하면서도, ‘유일의 궁극적 원인’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변경’이나 지역적 차이라는 요인이 너무 도외시되기 때문에,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내세웠을 뿐이다. 그의 관심은 여러 요인의 ‘상호관계’로써 미국의 오늘을 설명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사관이라고 하는 이론이나 가설은 어떤 요인을 ‘유일한’ 원인으로 간주하여 명쾌하게 정식화하기 쉽다. 그러한 경우에 그 일면성을 망각하면, 인식을 그르치는 한낱 ‘도그마’가 되고 만다.

[비교 분석]

다음은 발전단계에 관한 것이다. 첫 단계를 제외한 나머지 네 단계는 노예제사회·봉건사회 및 자본주의사회라는 서양에서의 역사 발전을 본뜬 것이다. 그러한 단계가 고대·중세 및 근대라는 전통적인 시대구분과 맞아떨어진 것이 강점이기도 하다.

서양에서 잇따라 나타난 사회유형과 이행과정을 개괄하여 단계적 발전의 ‘모델’을 만드는 것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것은 이상형(理想型)적으로 구성되게 마련이므로, 베버(Weber, M.)의 말처럼 하나의 ‘기준’으로서 지역적 차이를 분석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유형론적 고찰(類型論的考察)을 하는 하나의 ‘틀’이 될 수 있다. 이와같이 그것은 서양의 역사적 발전을 연구하는 수단으로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세계사적 발전법칙’으로 간주하고 동양에도 적용시키려 드는 데에 있다. 그것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한번 그렇다는 것이 일단 확인되면, 다른 때 다른 곳에도 적용된 자연과학적 법칙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그와 같은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실증되어야 한다. 그 경우에 서양에서의 발전은 유추에 의거한 가설의 구실을 할 뿐이다. 마지막 단계인 자본주의사회는 우리가 바로 알아볼 수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예제사회나 봉건사회의 경우는 다르다. 동양에서도 서양에서와 똑같은 단계적 발전이 이루어진 것인지 선험적으로 단정할 수 없으므로, 그러한 사회가 동양의 어떤 나라, 이를테면 우리나라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경험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교를 해야 한다. 서양의 노예제사회나 봉건사회를 어떤 시기의 그 나라의 사회상태와 비교해서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분간해야 하는 것이다. 힌체(Hintze, O.)가 봉건사회에 대해서 그러한 비교 고찰을 했는데,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는 대개 `맹아’나 ‘단편’ 또는 ‘단편의 맹아’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 ‘단편’이란 부분적 현상을 뜻한다.

그는 서양의 봉건사회를 이룩한 세 가지 요인으로 봉토로 주종관계를 맺은 특권적 전사(戰士)신분, 수입원인 장원제 및 지방분권화를 제시하였다. 그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이 나타난 것을 단편,맹아 등으로 불렀다.

그러한 부분적 현상을 대할 때에는, 서양에서와는 달리 사회 전체가 그렇게 되지 못했던 까닭을 밝히고 특성을 드러내려 해야 보람 있는 연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단계적 발전을 ‘세계사적 법칙’으로 받아들이고, ‘단편’만으로 ‘시대구분’을 하려고 드는 데 있다.

역사연구는 본래 그것이 어떠한 사회나 시대였는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단지 부분적으로만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같은 표지를 붙여서 한가지로 다루는 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며 본말을 전도하는 것이다. 서양의 봉건사회와 아주 흡사한 것은 일본의 경우이다. 그런데도 차이가 있으며, 보기에 따라서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군신관계는 서양의 경우처럼 쌍무계약적인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것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주자학이 ‘관학’으로서 장려되었다.

그런데 서양의 ‘계약’이야말로 한편으로는 근대적 대의제도의 전단계인 신분의회제가 나타나는 발판이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인 사회계약설이 태어나는 모태였다.

그러니 그것은 동과 서를 갈라놓는 차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차이를 무시하거나 묵살하면, 특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요컨대,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잘 살펴서 왜 그랬는지를 밝히는 것이 역사연구의 올바른 자세인 것이다.

[진보의 기준]

역사를 ‘진보’의 과정으로 보는 견해는 18세기 계몽사상에서 비롯하였다. 계몽사상가들은 기독교적 종말론을 세속화해서, 역사를 이상적인 사회상태에 이르는 향상의 과정으로 보았다. 마르크스도 그러한 맥락에서 자본주의사회와 함께 ‘인간사회의 전사’가 끝나고 다음 단계인 사회주의사회와 함께 참된 역사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다.

진보의 이념은 베리(Bury, J. B.)의 말처럼 ‘과거의 종합과 미래의 예견을 포함한 이론’이다. 그것은 인류사회가 지금까지 향상해 왔으며, 앞으로도 향상해 나아갈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진보한다고 할 수 없는 분야가 있는 것이 문제이다. 예술의 분야가 그렇다.

페이디아스의 조각과 미켈란젤로의 조각, 다빈치의 그림과 피카소의 그림, 또는 고대 그리스의 건축과 중세의 고딕건축의 우열을 가리는 객관적 기준은 없다. 예술의 세계에서는 진보를 운위할 수 없다. 기술이나 기법은 향상되지만, 그것은 가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더 나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나타날 뿐이다.

그러면 마르크스는 무엇을 기준으로 진보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생산력이라는 기준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한 생산력의 향상은 명백한 사실이다. 생산력의 증대가 풍요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원동력인 데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누적적(累積的)이어서 진보의 본보기처럼 되어 있다.

또 하나의 기준은 자유이다. ‘자유의 왕국’이 진보의 목표인데다가, 그가 ‘자본주의적 생산 이전의 여러 형태’에서 공동체적 소유형태로서 아시아와 고전고대의 두 형태를 계기적으로 배열하고 있는 것은, 한 사람만이 자유인 상태에서 소수나마 여러 사람이 자유인 상태로 진보하였다는 헤겔의 견해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역사를 자유가 증대하는 과정으로 본다면, 첫단계는 노예나 농노라는 예속으로부터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일 것이다.

그러나 진보는 직선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농노가 해방된 후에도 다시 노예제가 모든 사람이 자유임을 선포한 민주주의 혁명 뒤까지 살아남아, 미국은 남북전쟁이라는 고역을 치르기도 하였다.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또는 이른바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는 그만큼 생산력이 향상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오늘날 서유럽에서는 복지사회의 형태로 이루어져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역사의 마지막 장이 아니라 새로운 장이 펼쳐질 뿐이다. 그리고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장들이 잇따를 것이다.
우리가 예견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들이 뒤를 이을 것이므로 ‘천년 왕국’적인 종말론은 지양되어야 한다. 미래는 열려 있다.

그리하여 우리들 인간은 새로운 시대마다 마르크스의 말과 같이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자신에게 제기’하여 해결해왔으며, 앞으로도 해결해나갈 것이다. 그 점에서 역사는 진보의 과정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참고문헌≫

事實과 理論(梁秉祐, 歷史論抄, 知識産業社, 1987), 봉건제의 본질과 전파(힌체, 강철구 역, 나종일 편, 봉건제, 까치, 1988).

<양병우(梁秉祐)>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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