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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5 (목) 13:15
분 류 사전1
ㆍ조회: 1709      
[국가] 라오스 (한메)
라오스 Laos

동남아시아 북부, 인도차이나반도 중앙부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 면적 23만 6800㎢. 인구 511만 7000(1997). 동쪽으로는 베트남, 북쪽으로는 중국, 북서쪽으로는 미얀마(버마), 서쪽으로는 타이, 남쪽으로는 캄보디아에 둘러싸인 내륙국이다. 남북의 길이가 1000㎞ 이상, 동서는 가장 나비가 넓은 곳이 500㎞이고 좁은 곳은 150㎞이다. 중국과 인도차이나 각국 사이의 접촉지대로서 군사전략상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의 간섭을 많이 받아왔다. 수도는 비엔티안.

[자연]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이고, 지형은 북부산지, 동부고원, 비엔티안 이남의 메콩강 좌안(左岸) 저지대로 3분된다. 북부 산지의 고(高)라오스지방은 중국의 윈구이〔雲貴〕고원, 미얀마의 샨고원에 연결되는 해발고도 1500~2000m의 고원(高原) 모양의 산지로, 지각구조가 복잡하다. 국토의 동쪽은 북에서 남으로 안남산맥이 뻗어 있고 북에서 약간 남서를 향해 또다른 산줄기가 뻗어 있는데, 이 2개의 산줄기 사이가 해발고도 1200~1400m의 동부고원이다.

동부고원은 자르평원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약간 남쪽에 라오스 최고봉인 비아산(2820m)이 있다. 안남산맥에는 자르평원에서 농헤트를 거쳐 베트남으로 향하는 바르테레미령(嶺), 나페와 비니(베트남 중부지방의 도시)를 연결하는 케오누아령, 캄무옹에서 비니로 나가는 무지아령, 사바나케트에서 위에로 나가는 아이라오령이 있고, 남쪽으로 갈수록 서쪽 경사가 급해져 메콩강 좌안 저지로 빠진다.

메콩강은 라오스 영내를 1800㎞에 걸쳐 흐르고, 그 중 1500㎞가 타이와 국경을 이룬다. 비엔티안평야 등 연안평야는 이 나라의 쌀 생산지대로서 중요한 생활무대가 되고 있다. 기후는 두 계절로 나누어지는 열대몬순기후로, 5~9월이 우기, 10~4월이 건기이며, 각지에서 1300~2000㎜의 강수량이 기록된다. 11~1월은 비교적 서늘하며, 북쪽의 루앙프라방지방에서는 가장 무더운 5월이 27.8℃, 가장 서늘한 1월이 19.2℃, 비엔티안의 평균기온은 25.5℃이다.

[역사]

타이계 종족의 일파인 라오족(族)은 중국 윈난성[雲南省] 방면에서 남하하여 10세기경부터 이 땅에 몇 개의 작은 나라를 형성했다. 12세기경까지는 크메르왕국(캄보디아)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12세기 말 루앙프라방지방에 무앙수와국(國)이 성립했으며, 1353년에는 파굼이 여기에 시앙쿠앙을 합쳐 란상왕국을 건설했다.

그 후 베트남·버마(미얀마)·시암(타이) 등의 침략을 받아 1707년 2분되었고, 13년에는 3분되어 루앙프라방·비엔티안·참파사크 등의 3왕조가 병립하게 되었다. 이 3왕조는 상호 대립으로 약화되어 모두 시암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시앙쿠앙은 베트남의 구엔조[阮朝]가 다스리기에 이르렀다. 1892년 시암이 프랑스의 압력에 굴복하고 메콩강 좌안을 프랑스에게 할양하여, 1893년에는 거의 현재의 국경이 확정되었다. 1899년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연방에 편입되어 루앙프라방왕국은 보호국이 되었고 나머지는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1945년 4월 일본군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군대를 해체함에 따라 루앙프라방왕국의 시사방 봉이 베트남·캄보디아 등과 보조를 맞춰 독립을 선언했지만 일본군의 패전으로 무효화되었다. 국내는 독립을 관철하고자 하는 라오 이사라(자유라오스)와 프랑스 복귀파로 나누어져, 라오 이사라는 1945년 10월 비엔티안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라오스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1946년 4월 프랑스군의 비엔티안 복귀에 의해 인도차이나전쟁이 일어났고 라오 이사라의 베사라트공(公)등은 방콕으로 망명했다.

프랑스파의 시사방 봉 국왕은 프랑스와 1949년 7월에 맺은 조약으로 부분적 독립을, 1953년 10월의 조약으로 완전독립을 달성했다. 한편, 수파누봉공(公) 등 철저한 항전파는 1950년 8월 시앙쿠앙에 네오 라오 이사라(자유라오스전선)를 조직하여 자유라오스 항전 정부를 수립했다. 1954년 인도차이나휴전에 관한 제네바협정에 의해 프랑스의 라오스 간섭은 끝났지만 내전 정지는 한순간에 불과했으며, 1956년 파테트 라오(라오스애국전선)로 개칭한 네오 라오 이사라와 중립파 푸마공(公), 친미 우파 분 움공(公) 사이에 주도권다툼이 계속되었다.

중립파의 푸마공은 1957년과 1962년 두 차례에 걸쳐 3파 연합정부를 수립했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중립파도 좌우로 분열되었다. 베트남전쟁이 격화됨과 동시에 북베트남에서 남베트남으로의 수송로(후즈밍루트)가 라오스를 통과한다는 이유로 미국이 군사개입을 하여 내전이 격화되었다.

파테트 라오는 미국의 군사개입에 완강히 저항했으며, 1973년 파리에서 베트남평화협정이 조인되면서 푸마공을 총리로 하는 임시민족연합정부가 3번째로 수립되었다. 1975년 8월 베트남·캄보디아에서 해방세력이 전면 승리를 거두고 인민정권을 확립하자, 같은 해 12월 2일에는 라오스인민민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시사방바타나 국왕은 퇴위하여 14세기 이래의 왕제(王制)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정치·군사·외교]

최고인민평의회가 입법기관이며, 형식상 최고기관으로 수파누봉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다. 실권은 라오스인민혁명당(LPRP)이 쥐고 있으며 총리 겸 당서기장은 P. 카이손이다. 각료평의회 밑에는 14부(部)와 5개 위원회가 있다. 지방행정은 전국이 16주(州) 1자치시(비엔티안)로 구성되고, 그 아래 시·군·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고재판소 밑에는 각 주(州)·구(區)의 재판소가 있으며 그 밖에 정치 및 중대사건을 취급하는 인민재판소가 있다. 국내에는 구(舊)우파·중립파·산악민족 등이 반정부세력을 이루고 있으며, 라오스 해방세력의 통일조직으로는 라오스 국가건설전선이 있는데, 그 중핵이 인민혁명당이며, 그 연혁에 있어 베트남공산당과는 <형제당>이다. 게릴라세력은 4만에 이른다. 총병력은 육군 33만, 해군 518, 공군 3478(1996)이다.

소련 및 베트남으로부터 과거에 군사원조를 받았으며, 5~6만의 베트남군이 주둔하다가 1989년 10월에 본국으로 모두 철수하였다. 라오스는 외교면에선 비동맹국이지만 사회주의 여러 나라와의 연대를 기본으로 하여 친베트남, 친러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베트남·캄보디아전쟁 및 중국·베트남전쟁 때에는 베트남측을 지원하였지만 1987년 중국과 8년 만에 관계정상화에 합의하였고 1988년 6월 대사급 외교관계가 재수립되었다. 북한과는 1974년 6월에 수교한 반면, 한국과는 1975년 2월 외교관계를 단절, 아직까지 비수교국으로 남아 있다. 1955년 국제연합에 가입했고,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약 65개국이다.

[경제]

국토의 대부분이 밀림으로 덮여 철도와 해항(海港)이 없는 내륙국이기 때문에 경제개발이 매우 늦어서 동남아시아 최악의 빈국(貧國)이다. 프랑스령 당시의 인도차이나 개발도 이 지역에는 미치지 못했으며, 장기간 내전과 정치정세의 불안이 개발을 더욱 저해해 왔다. 새 정권 탄생 후 경제의 후진성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농업은 쌀을 중심으로 하는 자급적 농업으로서, 메콩강 좌안 저지에는 논벼가, 고지에는 화전에 의한 밭벼가 재배되고 있다. 경지면적은 국토의 4%에 불과할 뿐 거의 관개되어 있지 않으므로, 생산성이 낮아서 타이·필리핀 등에서 쌀을 수입한다. 1975년 이래 사회주의경제계획하에 농업집단화 등이 시도되었다. 초기에는 기후 불순 때문에 쌀 생산고가 생각만큼 늘지 않았으나, 84년에 132만t에 달해 비로소 식량을 자급할 수 있게 되었다.

쌀 이외의 자급작물로는 옥수수·토란 등이 있고, 상품작물에는 커피·잎담배·파인애플·바나나·면화 등이 있지만 모두 생산량은 빈약하다. 북부산지 삼누아·시앙쿠앙·퐁사리 등 <황금의 삼각지대>라 불리는 지역에서는 산지 소수민족인 먀오족[苗族]이 양귀비를 생산한다. 농가에서는 물소·소·돼지·닭·코끼리를 사육한다. 열대몬순기후여서 삼림이 풍부하며, 티크재(材)·흑단 등이 소중한 외화 획득원이다. 또 향료인 안식향(安息香)·생강도 생산된다.

광산자원은 석탄·철광석·주석·구리·금·아연·안티몬 등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개발은 극히 부진하며, 주석만 프랑스령 때부터 개발되어, 약 60만t이 생산되는 귀중한 수출품이다. 1978년 외국원조로 동남아시아 최대의 남굼댐(출력 17만 ㎾)이 완성되어 매시 11만 ㎾의 전기를 일으키고 있지만, 국내수요가 적기 때문에 대부분은 타이로 수출된다.

공업은 정미(精米)·제재(製材)·담배·식품 등의 소규모 경공업이 비엔티안지구에 있을 뿐이다. 무역규모도 항상 수입초과로 수출 3억 4820만 달러, 수입 6억 2780(1995)이다. 수출품은 전력·목재·커피이고, 수출 상대국은 타이·독일·프랑스 등이다. 수입품은 석유제품·기계·금속 등인데, 공업제품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수입 상대국은 타이·일본·중국 등이다.

내륙국으로 교통망의 발달이 늦어져 철도는 없다. 타이의 철도가 비엔티안의 메콩강 대안(對岸) 농카이 및 팍세의 대안 우본라차타니에 닿아 있지만, 타이 교통망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는 베트남의 여러 항구로 통하는 국도 정비가 시급하다. 도로 총연장은 1만 3000㎞이지만 전반적으로 포장률이 낮아 우기(雨期)에는 거의 사용이 불가능하다.

메콩강의 물길이 가장 유효한 교통수단이며, 라오스 영내의 약 1600㎞의 본류(本流)와 그 지류 250㎞가 이용 가능하지만, 몇 군데에 폭포·급류가 있어 운행에 어려움이 따른다. 국영 라오스항공이 비엔티안을 거점으로 루앙프라방·사반나케트·팍세 등지로 운항한다. 비엔티안과 방콕·하노이·프놈펜을 잇는 국제항로도 개설되어 있다.

[사회·문화]

약 60개 종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이지만 타이계(系) 라오족(族)이 인구의 60%를 차지한다. 라오족은 메콩강 연안의 저지대에서 주로 논농사를 하며 살고 있다. 타이담족(黑타이)은 북부 삼누아, 타이카오족(白타이)은 루앙프라방, 타이딘족(赤타이)은 삼누아·시앙쿠앙·비엔티안에 많다. 고도(高度)에 따라 종족분포가 명확한데, 500~1000m의 중·고지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억압받은 라오텡이라 불리는 프로토말레이계 종족이 화전·채집·수렵생활을 하고 있다.

1000m 이상에는 카무족 등 인도네시아계 민족, 1500m 이상의 고지에는 먀오족·야오족〔瑤族〕·이족 등 중국계 민족이 산다. 이러한 소수민족들 가운데 18세기경 중국에서 남하해 온 인구 약 10만의 먀오족이 가장 강력하며 북부산지·자르평원·루앙프라방시(市) 등에 분포되어 있다. 10만 이상의 화교, 베트남인이 도시에 거주하며 상업활동을 한다.

그 밖에 소수이지만 크메르인·타이인도 있다. 의무교육은 5년이고, 고등교육으로는 의대·고등사범·고등기술학교 외에 비엔티안에 시사방봉대학이 있다. 전에는 문맹률이 높았지만 1985년에는 문맹을 일소했다고 발표했다. 크메르왕국에 지배당했던 시대에 소승불교가 전해져 란상왕국에서 국교가 된 이래 불교가 융성했다. 해방 후에는 국교가 없어졌지만, 여전히 국민의 95%가 소승불교도이고, 약 2000개의 사원에 7000여 명의 승려가 있다. 산지민족들은 애니미즘을 믿고 있다.

라오족은 타이족의 지족(支族)이기 때문에 언어·문화면에서도 타이족과 비슷하다. 옛날에는 캄보디아와 함께 인도문화, 100년에 걸친 식민지시대에는 프랑스문화, 최근에는 사회주의국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중국문화의 영향도 강하다. 그러나 수제(水祭), 메콩강의 보트경주, 로켓제(祭), 랑퐁무용 등 전통문화도 뿌리깊이 남아 있다.

신문은 인민혁명당 기관지 《파사송》, 정부발행 일간지 《카오상 파테트라오》, 군(軍)기관지 《파테트 라오》 등이 있지만 발행부수는 모두 적다. 라디오방송은 비엔티안에 라오스 국영방송이 있고 텔레비전 방송도 하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한국은 1950년 3월에 라오스를 승인했고, 1957년 친선사절단이 라오스를 다녀왔다. 1962년 3월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7월엔 유재흥(劉載興) 주타이대사를 라오스 주재 겸임대사로 임명하기 위해 아그레망을 요청했으나 국교가 수립되지 않았다.

1973년 11월 잠정조처로 비엔티안에 통상대표부가 개설되었고 1974년 7월 연립정부와 외교관계를 수립, 10월에 천병규(千炳圭) 주타이대사가 겸임대사로 라오스국왕에 신임장을 제정했으나 라오스는 1975년 7월 외교관계를 일방적으로 단절하였다가 1995년 10월 25일 국교를 재개하였다. 한편 북한과는 1974년 6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7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윤길진>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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