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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5 (목) 14:53
분 류 사전1
ㆍ조회: 1998      
[국가] 인도네시아 (한메)
인도네시아 Republicof Indonesia

동남아시아 남부, 말레이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공화국.

정식명칭은 인도네시아공화국. 면적 191만 9317㎞². 인구 1억 9134만(1994). 서쪽 인도양과 동쪽 태평양 사이 적도 부근에 있으며, 북쪽의 아시아대륙과 남쪽의 오스트레일리아대륙을 연결하는 중간지대를 이루고 있다. 수도는 자카르타.

[자연]

<지형>

인도네시아는 지형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를 나타내는 지역의 하나이다. 각기 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 양대륙 연장부에 해당되는 얕은 순다대륙붕과 사훌대륙붕 사이에 있다. 북서로부터는 히말라야산계(山系)의 연장인 테티스구조선(構造線)이 뻗어 수마트라섬·자바섬을 비롯한 소(小)순다열도의 섬들의 형성과 동시에 격렬한 화산활동을 수반한다. 또한 동쪽에는 필리핀에서 뉴기니섬 방면을 관통하는 환태평양구조선(環太平洋構造線)이 통과하기 때문에 몰루카제도(諸島)·셀레베스섬 북부 등지에 화산활동이 일어나는 요인이 된다.

인도네시아의 화산수는 130개로 활화산이 78개나 있는데, 그 중에는 수마트라의 크린치화산, 자바의 메라피화산·브로모화산·수메르화산, 발리의 아궁화산 등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순다해협의 크라카타우화산, 숨바와섬의 탐보라화산처럼 옛날에 세계적 규모의 폭발을 일으켰던 것도 있다. 1815년 탐보라화산의 분화는 1883년의 크라카타우화산의 분화를 능가하는, 유사 이래 최대규모의 폭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상태 때문에 지반도 대부분 불안정하고 지진도 자주 일어나며, 해저지형도 복잡하고 여러 곳에 깊은 해구(海溝)가 있다. 그러나 이들 화산은 기름진 토양을 생성하기도 하여 인간 생활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기도 한다. 크고 작은 섬들과 화산이 연속해 있는 인도네시아에는 일반적으로 대륙처럼 큰 강이나 삼각주는 없다. 이 지역에서 인간의 거주지로 선택된 곳은 저지보다는 구릉지나 산간의 고원 또는 분지였다.

이러한 지역이 역사적으로 개척의 중심이 되었던 예는 수마트라섬·자바섬 등 각지에 많은데, 그 이유는 열대기후도 그 곳에서는 약간 누그러지며 유수관개(流水灌漑)에 따른 논의 개발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수마트라섬 동쪽 해안이나 보르네오섬 남쪽 해안에는 비교적 큰 강이 난류(亂流)하고 있으나, 몇몇 하항도시를 제외하면 아직도 인구가 희박하고 개발 정도가 낮다.

<기후>

인도네시아의 기후는 적도 바로 밑의 열대우림기후와 그 남북의 열대계절풍기후로 크게 나누어진다. 기온은 전역이 항상 고온으로 연평균 25∼27℃이며 연교차도 매우 적다. 그러나 높은 화산이 많기 때문에 고도에 따라 기온차가 커진다. 이리안자야의 해발고도 4000∼5000m의 고산에서는 빙하나 만년설을 볼 수 있으나, 자바섬의 해발고도 2200m의 브로모화산 부근은 연평균기온 16℃, 해발고도 700m의 반둥고원은 22℃이다.

그래서 근대에 와서 해안저지의 대도시 주민들을 위하여 고지에는 많은 휴양지가 발달하였으며 기온차를 이용하여 각종 기온에 알맞는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적도 바로 아래 지역에서는 항상 비가 내려 연평균 강수량이 4000㎜이지만, 계절풍지역에서는 우기와 건기의 차이가 뚜렷하다. 이 두 계절은 각기 4월·11월을 교대기로 한다.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남서풍을 정면으로 받는 수마트라섬 남서안과 자바섬 서부는 우기에 강수량이 많고 저지에서는 자주 범람하지만, 동부의 소(小)순다열도로 갈수록 차츰 강수량이 줄어든다. 또한 소순다열도 방면은 건기에 남동풍이 강하게 불기 때문에 건조도가 높다. 그러나 섬나라이기 때문에 아시아대륙의 열대지역에 비하면 일반적으로 견뎌내기 쉬운 기후라는 특색이 있다.

<생물상>

고온다습한 기후의 영향으로 군도(群島) 전체가 녹색식물로 덮여 있다. 그러나 기온차에 따라 식물분포도 해안저지의 맹그로브림·상록우림에서 해발고도 3000∼4000m 산지의 고냉지식물에 이르기까지 복잡하다. 자바섬의 고산지역에서는 알프스에서처럼 에델바이스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식물 종류도 매우 많아서 속씨식물만도 2만 5000종이나 있으며, 야자나무도 100여 종이 넘는다.

지름이 1m나 되는 세계 최대의 꽃 라플레시아(rafflesia)는 인도네시아 특유의 것이다. 이리안자야·보르네오섬 등지에서는 삼림분포도 비율이 전면적의 80%나 된다. 한편 그 밖의 섬에서는 개척의 진전에 따라 원생림이 차츰 줄어들고 제2차림을 덮이는 곳이 많아졌다. 인도네시아의 동물분포는 지리적으로 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 양계(兩系)에 걸쳐 있다.

서쪽 섬들에는 아시아계 동물이 많지만, 마카사르해협에서 롬보크해협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월리스선(Wallaceline)을 경계로 한 동쪽 섬들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계의 특질이 두드러지며 유대류(有袋類)도 나타난다. 그리고 셀레베스섬 동쪽 해안과 티모르섬 동쪽 끝을 잇는 베버선(Weber'sline)은 사슴분포의 경계가 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각종 특수한 생물이 있는데, 오랑우탄·반텡(들소)·자바코뿔소·야생조랑말·코모도왕도마뱀 등이 유명하다. 인도네시아의 민간설화에도 이러한 많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자바섬 서쪽 끝이나 코모도섬은 야생동물의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뉴기니섬 방면의 극락조, 보르네오섬의 코뿔새 등을 비롯하여 귀중한 조류나 곤충류가 많다.

[지지(地誌)]

<자바섬>

자바섬은 모든 면에서 인도네시아의 중심이다. 면적은 전국토의 7%에 지나지 않지만 동서의 역사적 교통로와도 가깝고, 또 섬을 가로지르는 화산맥(火山脈)으로 인해 토지가 비옥하여 생산물이 풍부하며, 그 풍요로움으로 인해 이미 2000년 전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야바디우>라는 섬으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전인구의 약 70%가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주로 농업으로 살아가는 섬으로는 세계 최대의 조밀성을 나타내어 농업용 토지이용도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다.

자바섬에는 제2차 말레이족에 속하는 세 민족이 거주한다. 중부에서 동부에 이르는 지역은 자바섬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개척된 곳으로 자바족이 사는데, 그들은 현재 인도네시아의 지도적 민족이며 자바섬 인구의 60%를 차지한다. 일찍부터 인도문화를 흡수하여 많은 왕국이 번영했고, 독자적인 문화·예술을 발전시켜 왔다. 이에 반하여 서부의 프리앙간산지대는 순다족의 거주지로서 인구는 자바섬의 약 20%를 차지하고, 역사적으로 자바족과 대립해 왔다. 종교적으로는 오늘날 자바족보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이다.

또한 속도(屬島)인 마두라섬에서부터 자바섬 동부에 걸쳐서는 마두라족이 거주한다. 그들은 근면하며 역사적으로 자바족과 융화가 잘 되어 왔다. 이들 세 민족은 저마다 다른 민족어를 사용하며 성격이나 생활풍습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이 밖에 자카르타·수라바야와 같은 해안도시는 자바섬 각지와 군도 각지에서 온 민족이 모여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주민의 성격에도 특수한 면이 있다.

<수마트라섬>

수마트라섬은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 섬으로 테티스구조선이 통과하여 높은 화산이 이어지는 서해안과, 순다대륙붕의 일부를 이루는 광대한 저습지가 이어지는 동해안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저습지에는 바탄하리강·무시강·인드라기리강 등의 큰 강이 흐르는데, 말라카해협에 접해 있기 때문에 하구에 일찍부터 외래문화가 유입되어 팔렘방 등 하항도시가 발달하였다.

수마트라섬의 민족분포는 자바섬보다 복잡하다. 북쪽 끝에는 아치에족이 거주하는데, 이곳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일찍 이슬람화한 곳으로, 민족성도 용감하여 20세기 초까지 네덜란드지배에 저항했던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토바호(湖)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원(院)말레이계의 바타크족의 거주지로서 오래도록 고립된 사회를 형성해 왔지만 근대에 이르러 그리스도교와 교육이 보급되어 지금은 상인이나 의사 등 근대적인 직업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늘었다.

서해안 중부의 고원을 중심으로 미낭카바우족이 산다. 그들은 수마트라 최대의 민족집단으로서 모계사회의 전통이 남아 있고 특유의 가옥형태를 가졌으며, 현재는 자바족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고 있다. 동해안 일대에는 말레이인이 분포하며, 옛날에는 몇 개의 소왕국을 형성하였는데, 말라카해협을 사이에 둔 말레이반도 방면의 말레이인과 동일계통이다.

이 밖에 북부산지에는 가요족·아라스족, 남부지방에는 람풍족 등이 거주하고 있다. 수마트라섬은 옛날에는 밀림으로 덮여 있는 곳이 많았으나, 20세기부터 서양자본이 진출하여 북동부의 메단을 중심으로 담배·고무의 대농원이 개발되었고, 또 동해안 저지의 유전개발로 상황은 크게 변했다. 이러한 상황변동은 제2차세계대전 후에도 지속되어 전쟁중 800만 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1984년에는 3192만 명을 넘어서 <제2의 자바>로 발전하고 있다.

<셀레베스섬>

이 섬의 특이한 형상은 테티스·환태평양의 2대 구조선의 활동결과로 생긴 것인데, 지역적으로는 우중판당(옛 이름 마카사르)을 중심으로 한 남서부반도와 메나도를 중심으로 한 북동부반도의 두 지역만이 잘 개발되어 있다. 남서부에는 부기족·마카사르족 등의 여러 종족이 거주하며, 예로부터 선원이나 상인으로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활동하였으며 논농사가 발전하였다.

북동부에는 종족상 이들과 조금 다른 미나하사족이 사는데 이들도 농·어업을 생업으로 하며, 근대 이후에는 대부분 그리스도교도가 되어 인도네시아의 그 밖의 힌두교나 이슬람교 문화권 지역과는 다른 지역문화를 보이고 있다. 또 셀레베스섬 중앙의 산지는 원말레이계 토라자의 거주지로 특유의 문화를 남겼다. 이곳은 아직 많이 개척되지 않고 있다.

<보르네오섬>

보르네오섬(칼리만탄)은 수마트라섬을 능가하는 세계 제3의 큰 섬으로 전체섬 중 70%가 인도네시아령이다. 북부의 말레이시아령과의 경계에는 분수령을 이루는 높은 산맥이 이어져 있고 해안 쪽으로는 저지가 펼쳐져 있으며, 특히 남부는 큰 습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저지 사이를 카푸아스강·바리토강·마하캄강 등 큰 강이 흐르고 있으나, 이러한 적도 바로 밑의 거대한 우림형기후지역이 화산성의 비옥한 토양을 갖추지 못한 점 때문에 개척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으며 인구도 희박하다.

해안 가까이에는 말레이인·자바인·중국인 등이 거주하지만 보르네오섬 본래의 원주민은 원시말레이계의 다야크족으로 오지(奧地)에 많은 부족이 나뉘어 살고 있으며, 수렵이나 화전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 보르네오섬은 대부분이 밀림지역이지만 최근에 동부의 일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유전·삼림자원의 개발과 남부 해안지역에서의 고무재배 등 부분적으로 개척되어 가고 있다.

<소순다열도·몰루카제도>

소순다열도·몰루카제도는 특수한 지역을 구성한다. 발리섬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건조도가 심해지고 사바나경관이 나타나는 곳도 있다. 발리족은 자바족과 비슷하며 뛰어난 농경민인데,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순수한 힌두교신앙을 유지하는 유일한 민족이며, 이로 인하여 이 섬은 고유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지니고 있다. 동쪽 여러 섬의 주민은 종족적으로 원말레이계·멜라네시아계의 요소가 강하며 화전경작 등을 주로 하고 있다.

또한 몰루카제도는 옛날부터 각종 향료의 독점생산지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다른 소순다의 섬들과는 달리 일찍부터 외래문화와 접촉하였다. 현재 몰루카제도의 중심은 암보이나섬이며, 그곳에 사는 암본족은 네덜란드 통치 아래 그리스도교도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리안자야>

이리안자야는 세계 제2의 큰 섬인 뉴기니섬의 서반부이다. 자연이 복잡한데다 척량산맥(脊梁山脈)에 4000∼5000m의 고산이 즐비하다. 또 남쪽 경사면에는 광대한 대습원이 전개되며 섬 대부분이 적도우림(赤道雨林)으로 덮여 있어서 <녹색사막>이라고 불린다. 원주민인 니그로이드계의 파푸아족이 흩어져 있는 개척지를 제외하면 인구는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최근 서쪽 끝의 첸드라와시반도를 중심으로 유전의 채굴이 시작되어 있어, 앞으로 이리안자야의 개척 가능성은 크다.

[역사]

인도네시아는 태고 때부터 좋은 환경 때문에 인류의 발상 발전지가 되어 왔다. 이른바 자바원인(피테칸트로푸스에렉투스)을 비롯하여 모조케르토인·솔로인 등 원시인류의 유물이 자바섬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주민의 대부분은 말레이민족계로 크게 원말레이계와 제2차말레이계로 나누어지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외래문화의 수용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서부의 자바섬·수마트라섬에는 기원 전후부터 인도상인의 동쪽 진출과 함께 힌두교·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인도문화가 유입되었다. 논벼재배기술을 비롯하여 산스크리트계의 문자와 문학도 전해져서 종래의 원시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민족문화가 전개되었다. 정치적으로도 많은 힌두계·불교계의 나라들이 일어났다.

5세기에는 다르마왕국(서부자바), 6세기에는 칼링가국(중부자바)이 나타났고, 같은 무렵에 수마트라섬의 팔렘방에서는 불교계의 스리비자야왕국이 번영하였다. 그 세력은 8세기에는 중부자바에까지 미쳐 샤일렌드라왕국의 융성을 가져왔으며 장대한 보로부두르 불교유적도 이때 건설되었다. 또한 보로부두르와 함께 장려한 힌두교 유적인 프람바난사원군(群)도 9세기에 만들어졌고, 중부자바는 동남아시아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 뒤 문화의 중심은 중부자바에서 동부자바로 옮겨져 11세기 이래 에를랑가·싱고사리·케디리 등 힌두교계 여러 왕국이 발전하였다. 또한 몰루카제도의 특산물인 육두구·정향나무 등의 향료가 옛날부터 외국상인들을 끌어들여 자바섬은 무역의 중계지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 말 원(元)나라의 쿠빌라이는 이 남해의 부유한 섬을 노리고 대원정군을 파견했으나 싸움에서 패하였다. 자바섬에서는 이 승리로 강대한 힌두교의 마자파히트왕조의 융성을 보게 되었고, 명재상 가자마다의 지도 아래 현재 동남아시아의 도서부 거의 대부분 지역을 지배하여 인도네시아사(史)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당시는 서쪽으로부터 이슬람세력도 동진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수마트라섬 북쪽 끝의 아치에·말라카해협을 제압하여 말라카, 보르네오섬 북안(北岸)의 브루나이 등의 기지를 획득하면서 15세기 중엽에는 몰루카제도에 도달하는 한편 자바섬의 연안도시에도 세력을 확대시켰다. 1527년 마자파히트왕국은 이 공격에 의해 멸망하였고, 자바섬에는 새로 데마크(후의 마타람) 및 반탐 두 이슬람왕국이 일어났다.

이때 포르투갈·영국·네덜란드 등 서유럽 나라들이 잇달아 인도네시아지역으로 진출하여 향료무역의 독점과 식민지 획득을 노리고 서로 격렬한 싸움을 벌였는데, 결국 네덜란드의 전면적인 승리로 끝났다. 네덜란드는 서(西)자바의 자카르타항에 새로이 바타비아성(城)을 건설하여 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의 중심기지로 삼았다. 이 회사는 처음에는 향료 등 특산품 독점이 목적이었지만, 영토지배에 편승하여 이후 3세기 반에 이르는 식민지 지배체제를 확립하였다.

19세기 초 유럽정세의 변동으로 한때 영국에게 점령당했고 빈회의에서 또다시 네덜란드의 수중에 들어갔는데, 네덜란드는 강제재배법(强制栽培法)을 시행하여 원주민들로부터 착취를 강행하였다. 즉 중심지인 자바섬에서 원주민의 논에 사탕수수·커피 또는 쪽 등의 특산물을 강제로 재배하게 하여 대부분 무상으로 거두어들여 수출하였다.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이렇게 인도네시아로부터 착취한 거대한 이윤에 의해 국내 근대화를 완수하여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었으나, 원주민은 빈곤과 기아에 시달렸다.

또한 19세기 후반부터 수마트라섬·자바섬을 중심으로 실시된 대농원과 유전개발도 역시 네덜란드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원주민사회는 여전히 빈곤상태로 방치되었고 교육혜택도 받지 못하였다. 물론 이러한 식민지정책의 강화에 대하여 가끔 저항운동이 일어나 1825∼30년의 자바전쟁,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수마트라섬의 아치에전쟁 등 대규모 전쟁이 있었으나 모두 네덜란드에 의하여 무력진압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인도네시아인의 민족주의운동도 20세기에 들어오자 차츰 활발해졌다. 그 도화선 역할을 한 사람이 자바귀족의 딸인 카르티니였다. 그녀의 사상에 자극을 받아 조직적인 정치활동도 시작되었고, 네덜란드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에 의한 네덜란드정권의 붕괴는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다.

1945년 8월 17일 국민당의 지도자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계속해서 식민지 재지배를 목표로 하는 네덜란드군과의 오랜 격전 끝에 1949년 말 네덜란드로부터 주권을 회복하였다. 네덜란드는 또 이리안바라트(지금의 이리안자야)에 대해서 집착을 버리지 않았으나, 이곳도 1969년 국민투표로 인도네시아령이 되었으며, 1976년에는 포르투갈령으로 남아 있던 티모르섬 북동부를 회수하였다. 서유럽세력의 침략 이래 주권을 회복하기까지에는 370여 년이 걸린 것이다.

[정치·군사·외교]

<정치>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의 정치는 초대대통령 수카르노의 통치 아래 판차 실라(건국 5원칙)에 입각한 강력한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광대한 영토와 다수민족을 가진 이 나라의 통일은 쉽지 않았다. 아시아―아프리카회의 개최, 말레이시아와의 대결정책, 이리안바라트의 탈환 등 국민의 눈을 바깥으로 돌린 정책에는 괄목할 만한 데가 있었으나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국내경제의 건설은 불충분했으며,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민중의 생활고도 증대하였다.

이는 수카르노가 이용한 국내 공산당 세력이 차츰 커져서, 1965년 공산반란군이 쿠데타를 기도함으로써 일어난 <9월 30일 사건>의 계기가 되었고 그의 실각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를 대신하여 대통령이 된 수하르토는 국내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제1의 목표로 삼고 외자도입에 노력했으며, 공산당 세력을 철저히 배제하였다. 그리고 강력한 군대를 배경으로 하여 정권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임기 5년)을 원수로 하는 단일국가이고, 대통령은 동시에 총리를 겸하며, 또한 군과 경찰의 최고사령관을 겸한다. 이를 보좌하는 것은 부통령을 비롯한 13명의 각료이다.

입법기관으로는 국가의 기본정책을 정하고 대통령을 선출하는 국민협의회(MPR)와 국민협의회에 종속되면서 또한 그 일부를 이루는 단원제국회(DPR)가 있다. 국회는 수카르노시대에는 여당이었던 국민당(PNI)을 비롯하여 많은 정당이 난립하였고, 1991년 현체재 아래에서의 주요 정당은 골카르·개발통합당·인도네시아민주당 등이다. 행정구역은 전국이 27개 주로 나뉘어져 있는데 수도권 대(大)자카르타, 전통적인 술탄왕국의 존재를 인정한 요그야카르타특별지역 및 정치적으로 중요시되는 아치에특별지역 등이 이에 포함된다. 주는 다시 수많은 현으로 나뉘며, 현 밑에 시 및 큰 촌락으로 이루어진 쿠차마탄 등의 기본 행정단위가 있다. 이들 행정단위마다 각기 수장(首長)이 있으며 또 주민대표가 모이는 회의가 있다.

<군사>

군대는 수카르노시대 이래 정권을 유지하는 중요한 지주인데 육군은 병력 21만 5000명, 해군은 4만 3000명이며 프리깃함·잠수함·미사일정 등을 중심으로 한다. 공군은 병력이 2만 4000인데, 영국·오스트레일리아·미국 등으로부터 공급받은 항공기를 중심으로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 밖에 군대장비를 갖춘 경찰군·민병 등이 약 10만 명으로 조직되어 있다.

<외교>

외교면에서 현재는 수카르노시대와는 달리 유연한 대외정책을 취하여 각국의 경제적 원조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과는 <9월 30일사건> 이래 국교가 단절되었다가 90년 재수교하였다. 인근 여러 나라들과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형성하고 있으며, 차츰 그 중심적 존재로서의 지위를 확립해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제는 최근 석유자원 개발로 수카르노시대에 비하여 상당히 발전하였으나, 아직도 부의 분배에서는 두드러진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빈부격차의 해소, 그리고 자바섬 중심의 정책에 대한 다른 지역의 불만 등은 국내정치에 있어서 하나의 불안정한 조건을 형성한다. 특히 수하르토의 장기집권에 대해 학생·지식인층 사이에서 상당한 반발이 나타나고 있어 장래의 정치적 동향은 예측을 불허한다.

[경제·산업]

주민의 대다수는 여전히 농촌에 거주하며, 자급농업이 경제생활의 기반을 이룬다. 여기에는 2가지 기본적인 유형이 있다. 하나는 자바섬·발리섬 및 수마트라섬의 일부와 제2차 말레이족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한 논(사와)경작이고, 다른 하나는 원말레이족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하는 화전(라단)경작이다. 쌀은 국민의 주식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수확면적에서 논과 화전의 비율은 거의 7:1이 된다.

높은 인구증가에 따라 쌀 증산에 큰 힘을 쏟고 있는데 비마스계획과 임바스계획을 실시함으로써 쌀의 생산량이 4624만t(1994)을 초과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전 평균 600만t에 비하면 두드러진 증산이지만 아직도 충분하지 않아 상당한 양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쌀의 대용식으로 옥수수·카사바·감자류 등이 이전부터 밭 또는 논의 이작으로 생산되어 중요한 자급식량이 되었다.

그 밖에도 각종 과일·콩류가 생산되어 많은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식량자급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전인구의 2/3가 집중된 자바섬에서는 전체 농가의 25%가 0.5∼1ha의 경지를 가지고 있을 뿐이며, 0.1ha 이상의 농가를 합하면 66%가 되고 게다가 나머지 34% 이하는 0.1ha의 극빈층이다. 식량증산과 확보는 인도네시아가 직면한 최대문제 중 하나이다. 네덜란드식민시대에는 특유한 열대자연조건 및 대량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한 플랜테이션(栽植耕)이 각지에서 발달하여 자바섬의 사탕수수·차·커피, 수마트라섬의 고무·담배, 동부 여러 섬의 코코야자 등은 인도네시아의 경제번영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당업은 이미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세계경제의 영향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그 밖의 플랜테이션생산도 대전 후에는 격렬한 민족주의의 공격 아래 부진한 상태에 빠졌다. 종래의 외국인 소유의 대농원을 국유화시켰으나 대개 군인이 관리자가 되어 과학적 발전이나 경영법에서 이전만큼 능률을 올리지 못했으며, 또한 대농원이 차지하고 있던 토지는 자급식량 생산지로 바뀌기도 하였다.

플랜테이션의 면적은 전경지의 3%를 조금 넘는 정도이다. 그리고 고무재배에서는 아직도 농민의 소규모 재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나 인도네시아경제에서는 농원생산물이 외화획득에 있어서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다. 현재는 천연고무·야자유·커피·차 등이 주요 수출농산물이고, 정부도 농업다각화의 일환으로 이들 농산물증산에 노력하고 있다. 삼림자원도 풍부하여, 특히 반출하기 편리한 보르네오섬·수마트라섬 등에서는 활발히 벌채되어 중요수출품이 되고 있다.

지질상태가 복잡한 인도네시아에는 지하자원의 분포도 다양하며, 특히 근대에는 석유·주석·보크사이트 등을 대규모로 채굴하기 시작하여 세계 유수의 광업생산국이 되었다. 그러나 생산은 역시 식민지체제와 결합되어 있어서, 현지경제의 자주적 독립성 또는 공업화에 기여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석유는 인도네시아의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이다.

석유자원은 수마트라섬이 가장 풍부하며, 아치에·잠비·팔렘방 각 주를 중심으로 양질의 유전이 있고 보르네오섬 동부의 발릭파판·타라칸지구에도 유전이 있다. 자바섬은 동부지방의 유전이 알려져 있다. 이들 각 유전 개발은 제2차세계대전 전부터 네덜란드·미국계 석유회사에 의해 활발히 추진되었으나, 1960년 이후 국가기업으로 바뀌어 페르타미나사(社)를 중심으로 경영되고 있다.

최근의 석유생산은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채굴구역은 해저까지 확대되어서 연간산유량 5억 5726만 6000배럴(1992)이다. 석유의 국내 소비량은 생산량의 약 12%이고 나머지는 모두 수출하는데, 원유·천연가스의 수출은 전체 수출액의 66%나 된다. 또한 석유회사가 내는 세금은 정부세입의 60%를 차지하여 국가활동의 큰 지주가 되고 있다. 이 밖에 셀레베스섬 동안, 이리안자야 등에도 풍부한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

주석은 방카섬·빌리톤섬·싱케프섬 등의 <주석군도(朱錫群島)>를 중심으로 18세기 초부터 채굴되어 왔으나, 근년에는 생산량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저품위 사석(砂錫)의 이용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밝은 전망을 보이고 있다. 이 밖에 보크사이트는 빈탄섬에서 채굴되며, 철광은 서자바, 보르네오섬 남동부, 수마트라섬 남부 등지에서 새로이 발견되고 있다. 수산업은 옛날부터 자바섬·수마트라섬 연안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는데, 생선은 고온 때문에 부패하기 쉬운 지역이므로 건어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마두라섬·자바섬 동쪽 연안에서는 제염업이 활발하다. 근해에 좋은 어장이 많지만 대규모어업은 최근부터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암보이나·메나도 등이 중심기지가 되고 있다. 그 외에도 인도네시아에는 양어지(養魚池)를 이용하는 해안·내륙 어업이 활발하여 식생활에 필요한 동물성 단백질의 공급원이 되고 있다. 총어획량은 364만t(1993)에 이르며, 이것은 제2차세계대전 이전 평균보다 14배에 해당된다. 공업화는 인도네시아정부가 근대화의 일환으로 가장 힘을 기울이고 있는 정책 중 하나이다.

네덜란드식민시대에는 자바섬을 중심으로 소규모 경공업이 성립되었을 뿐이었다. 독립 뒤에 각종 공업육성에 착수했으나, 그것은 섬유·식품·담배 등의 소비물자 생산이 주였고, 경영규모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공업의 기초가 되는 대규모 수력발전은 서자바의 자치르푸르강, 동자바의 브란타스강, 수마트라의 아사한강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수하르토정권 성립 후에는 이른바 펠리타계획(5개년 계획)이 69년부터 시작되어, 외국자본의 적극도입으로 공업생산은 상당히 활발해졌다. 이 계획을 통하여 건설된 공장은 모두 인도네시아측과의 합병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조선·방직·금속·제재·비료·약품·제지·전기기계·시멘트·유리·자동차·타이어 등 각 부문에 걸쳐 있다. 공장의 약 1/3이 자카르타 주변에 모여 있다. 그러나 아직도 공업부문에서의 생산량은 전국총생산의 10%에 미치지 못하며 취업인구도 전인구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가운데 1982년부터 일부 조업을 시작한 수마트라의 아사한강 종합개발을 통한 공업의 발전은 주목을 끈다. 무역은 경제부흥, 발전으로 최근 두드러지게 신장하였다. 수출총액은 368억 2300만 달러(1993)이며, 주요품목은 원유를 비롯하여 천연가스·목재·석유제품·생고무·커피·콩·주석 등이다. 수입총액은 283억 2780만 달러(1993)이며, 기계류·원유·철강·자동차·석유제품·쌀·유기약품 등이 주요품목이다.

무역 상대국으로는 수출은 일본·미국·싱가포르 등이고, 수입은 일본·미국·사우디아라비아·싱가포르 등이며, 일본은 최대 무역상대국이다. 이러한 최근의 경제발전은 국민총생산에 잘 반영되고 있는데, 1인당 GNP는 1968년 겨우 68달러에서 93년 730달러로 상승했으며, 1990년에는 외화준비액도 53억 9200만 달러가 되었다. 이것은 주로 석유가격의 오름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1인당 GNP는 아직도 다른 아시아 여러 나라에 비해 낮고, 또 빈부의 격차가 크며, 격심한 인플레이션은 가라앉았으나 아직도 국민 대다수의 생활수준은 별로 좋아지지 않고 있다.

[교통]

인도네시아는 식민지시대부터 동남아시아에서는 가장 교통이 발달한 지역이었으며, 교통망은 역시 자바섬에 집중되어 있다. 자바섬은 가는 곳마다 도로망이 정비되어 있고, 최근에는 수마트라섬에도 북(北)아치에와 남(南)람풍을 연결하는 종단국도가 건설되는 등 도로망이 정비되고 있다. 철도는 연장이 약 6600㎞이다. 해상교통은 좋은 항구들이 많고, 섬과 섬사이의 교통은 국영 페르니사(社)가 맡고 있다.

드넓은 지역을 연결하는 데는 항공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영 가르다사(社)를 비롯하여 무르파티·만다라 등 각 회사가 이에 참여하고 있다. 자카르타의 새로운 하림국제공항에는 세계 각지의 항공기들이 운항하고 있으며, 수마트라의 메단국제공항과 함께 중요한 문호가 되고 있다. 이 밖에 각종 통신기관의 근대화가 추진되고 있다.

[사회]

인도네시아사회는 다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어 각 방면에서 다양성을 나타내고 있다. 주민들의 생업은 농림·수산·광업 등 1차산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 훨씬 비율이 높으며, 그 중에서도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인도네시아사회의 공통된 특징으로는, 외래의 여러종교의 침투에도 불구하고 신앙이나 사유형식(思惟形式)의 기반으로 애니미즘이 강한 것, 촌락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적 상호부조제(이를테면 고톤론욘 등), 그리고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주민생활을 규제하는 특유한 관습(아다트)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자바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왕족과 귀족의 혈통을 이은 사람(은다라), 인텔리·식자층(원티리), 그 밖의 일반서민층(아방강) 등 3계층으로 구별하고, 제각기 세습되어 내려오는 전통적인 직업에 종사해 왔다. 도시는 농촌사회와는 달리 귀족·식자층과 더불어 상인과 외국인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 봉건적인 계층의 차이는 도시나 그 주변에서 감소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경제소득의 차이에 의한 계층차가 두드러지고 있다.

식민지시대의 네덜란드인 지배층을 대신하여 지금은 인도네시아인 관료와 군인 그리고 중국계 외국인 등이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대도시 뒷골목의 빈민가는 끊임없이 주변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불법점거자들에 의해 확대되어 사회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 헌법상으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며 국교(國敎)는 없다. 국민의 90%가 이슬람교도로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은 애니미즘과 힌두교 등에서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

독실한 이슬람신자가 많은 지역은 수마트라섬 북부의 아치에, 서자바의 순다지방 등을 들 수 있다. 그리스도교도는 전국에 약 600만 명 정도 있으며 이것 역시 지역차가 많아서 이들의 분포가 많은 곳은 중부의 동자바, 셀레베스섬 북부, 수마트라섬의 바타크지방, 암보이나섬 등이다.

[문화]

인도네시아문화는 역사를 통하여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기반을 이루는 말레이민족문화에 인도·중국·이슬람·유럽 등 각종 외래요소가 가미되어 다양성을 띠고 있다. 이들 가운데 어떤 것은 표면적 구성요소에 불과하지만 특히 인도문화는 원주민문화와 깊이 융합하여 문화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유의 와양(wayany;그림자극)·가믈란음악(gamelan)·무용을 비롯하여 고전문학도 모두 그 영향 아래 발전해 왔다.

이들 대부분은 조령숭배(祖靈崇拜) 등의 신비주의와 결부되어 인도문화가 유입되기 전부터 인도네시아지역에 있었던 것이지만 인도문화가 가미됨으로써 그 내용이나 표현방법이 한층 풍요롭고 완전한 것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라마야나(R겸mayna)》 《마하바라타(Mah겸bh겸rata)》 등의 이야기는 현재에도 널리 인도네시아문화의 각층에 걸쳐 퍼져 있다.

또 바틱(batik;자바사라사織)의 무늬나 금은세공·크리스(creese;말레이인의 단검)·목조(木彫) 등의 공예품에서도 인도문화의 영향을 볼 수 있다. 또한 감수성이 풍부한 민족으로서 훌륭한 가요곡도 많이 남겼다. 그 곡조는 하와이음악의 곡조와 비슷하여 말레이·폴리네시아 민족의 잠재적인 등질성을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비주의는 인도네시아문화에서 두드러진 특색 중 하나로 많은 전설·민간신앙·주술 등을 통하여 전승되고 있다.

아직도 일상생활에서는 주술사(呪術師)의 점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편으로는 최근 유럽적인 것과의 결합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려는 노력도 나타나고있다. 언어는 종족에 따라 다르므로 일상생활에서는 제각기 토착어가 사용되나 상호간의 교섭을 위해서는 말레이어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독립 뒤 이것을 개량한 인도네시아어를 정식 국어로 정하여 사용함으로써 국민적 통일을 도모하고 있으며, 학교 교과서도 지역을 불문하고 이 언어로 된 것을 사용하고 있다.

교육은 식민지시대에 네덜란드가 고의로 우민정책을 취한 일도 있어서 식자자(識字者)의 수가 제2차세계대전 전에는 겨우 6%에 지나지 않았는데 현재에는 교육체계가 일단 정비되어 정부가 문맹자 일소에 노력하고 있다. 1985년 현재, 문맹률은 남자 17%, 여자 34.6%이다.

7∼12세의 초등학생 수는 2655만 명, 13∼18세의 중등학생 수는 768만 명이고 대학 이상의 재학생 수는 80만 명 정도이다. 국립대학 가운데는 인도네시아대학·가자마다대학(요그야카르타)·에를랑가대학(수라바야·말랑)·바자자란대학(반둥)·공과대학(반둥) 등이 유명하다. 또한 기술교육을 위한 5개의 훈련센터도 1975년에 창설되었다.

[한국과의 관계]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한국은 1966년 인도네시아와 영사관계를 수립하였고, 1973년 상주대사관을 설치하였다. 1970년대부터 한국건설업체가 진출하였고, 1979년에는 마두라지역 유전개발에도 참가하였다. 무역은 한국이 강판·합성섬유 등을 수출하고, 유류·커피·원목·천연고무 등을 수입하는데, 1994년 한국과는 수출 28억 4286만 달러, 수입 25억 3969만 달러였다. 북한과는 1964년 수교하였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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