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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5 (목)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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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457      
[국가] 필리핀 (한메)
필리핀 Republic of the Philippines

아시아대륙 동남부 태평양과 남중국 사이에 있는 도서국가(島嶼國家).

정식명칭은 필리핀공화국(Republica de Filipinas). 면적 30만㎢. 인구 7154만(1997). 대만과 보르네오, 셀레베스섬 사이에 있다. 국토는 모두 약 7100개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대부분이 이름없는 작은 섬, 산호초섬이다. 주요한 섬은 루손·민다나오 등 2개의 큰 섬과 비사얀 제도의 7개 섬(사마르·레이테·마스바테·보홀·세부·네그로스·파나이) 및 민도로·팔라완 등 11개의 섬으로, 전국토 면적의 92.5%에 이르고, 그 인구는 전인구의 96%를 차지한다. 수도는 마닐라.

[자연]

필리핀군도는 기본적으로 제 3 기, 제 4 기의 습곡운동(褶曲運動)과 화산운동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그 골격형성에는 루손섬의 카라바료산맥 남서쪽 가파른 언덕에서 동해안 링가옌만으로 빠져나가고, 폴리요해협, 라몬만, 라구나만, 마스바테섬 북동부를 거쳐 민다나오섬의 아구산 계곡에 이르는 필리핀 단층선(斷層線)이 커다란 작용을 하였다.

또한 구조선(構造線)으로서는 북북서~남남동과 북북동~남남서의 두 방향이 확인된다. 민다나오섬 중앙고지에는 군도의 최고봉인 활화산 아포산(2954m)이 솟아 있고, 루손섬 남부에서 비콜반도에 걸친 화산지대에는 2중 칼데라로 유명한 탈호수, 세계적인 코니데(Konide)로 알려진 마욘산(2417m)이 있다.

또한 루손섬의 카가얀 골짜기, 중부 루손평야, 민다나오섬의 코타바토평야, 부기도논대지, 파나이섬의 일로일로평야, 네그로스섬의 서해안평야 등이 중요한 농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열대몬순기후에 속하며, 대부분의 지역에서 건계(乾季)와 우계(雨季)의 교체가 뚜렷하다. 더욱이 강우기를 지배하는 것은 지형, 특히 산맥과의 위치관계로서, 그 동쪽에는 북동몬순의 영향을 받아 12월부터 이듬해 2월에 걸쳐 다우기가 나타나는 데 비해 서쪽에서는 남서몬순에 의하여 6~11월에 비가 내린다.

앞의 것이 군도 동안을 대표하는 기후이고, 뒤의 것이 서안형이다. 이 밖에 산맥이나 섬의 끼인 지역에는 과우지대(寡雨地帶)가 나타나고(카가얀골짜기·중부 베사얀 등) 남부필리핀의 저위도지대는 연중 평균의 강수를 갖는 적도몬순형 기후이다(민다나오섬 남부). 군도를 엄습하는 태풍은 연평균 19개로, 이 태풍의 영향을 받는 것은 비사얀제도 이북으로서 특히 동안에서 매년 큰 피해를 입는다.

[역사]

1521년 F. 마젤란이 비사얀제도에 도착하였고 65년부터 에스파냐의 식민지배가 시작되었다. 필리핀 역사가 문헌사료에 기초하여 본격적으로 밝혀진 것은 16세기 후반 에스파냐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이다. 16세기 무렵에는 통일적인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다투(datu)라는 수장과 그 가족, 자유민(평민), 예농(隷農) 즉 가내노예의 3계급으로 구성된 바랑가이(barangay;부족)를 단위로 자립생활을 하였다.

바랑가이의 규모는 보통 30~100명 정도로 구성되었는데, 연안·항만 등 교통 요지에는2000~1만 명 이상인 경우도 있었다. 71년 에스파냐는 마닐라를 필리핀 지배의 주도로 정하고 17세기 전반까지 지방행정 제도를 개편하였으며, 종교를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켰다. 주민 경제생활은 인두세·강제노동 등을 통한 수탈로 피폐해진 반면, 에스파냐인의 소비생활은 중국계 상인과 기능인들의 갤리선 무역의 잡화업무에 의해 유지되었다.

에스파냐는 루손섬과 비사얀제도의 평지를 정복한 뒤 산지와 남부를 정복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특히 남부 이슬람지역에서는 술탄국가가 성립되어 3세기에걸쳐 몰로전쟁을 치르기도 하였다. 18세기 후반 식민지 경영을 본격화하기 위해 설탕·담배·마닐라삼 등 수출용 상품작물을 재배하는 등 경제발전을 모색하게 되었다. 1834년 마닐라항의 개항과 1869년 수에즈운하의 개통으로 상품작물재배는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자급자족경제가 상품경제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부유한 지주와 상인 등 신흥유산계급이 형성되었는데, 이들 자제 가운데는 서구의 자유사상을 수용함으로써 민족 자치와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에스파냐에 대한 저항은 식민지배 이후 계속 있었으나 정치성과 전국성을 띠지 못하였다. 그러나 1880년대에 이르러 <프로퍼갠더(선전운동)>라는 개혁운동이 일어나 민족의식이 고취되기 시작하였고, 1896년 8월 비밀결사단체인 카티푸난을 중심으로 필리핀혁명이 일어나 에스파냐 지배에 무력으로 저항하였다.

이어 1898년 E.아기날도를 수반으로 하여 독립이 선언되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공화국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그해 12월 혁명군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개입한 미국이 에스파냐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에스파냐와 파리조약을 체결하여 필리핀은 미국에 할양, 1902년부터 미국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필리핀의 완강한 저항으로 1907년 자치권이 부여되어 입법의회가 구성되었고 1916년 존스법에 의해 양원제의회가 설립되었다.

1929년 세계공황이 시작되자 미국 내에서 필리핀독립 주장이 높아져 1934년 타이딩스―매더피법이 제정되고 이듬해 M.L.케손을 대통령으로 하는 필리핀 연방정부가 발족되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이듬해 일본 지배 아래 들어갔고, 1943년 일본 점령군이 J.라우렐을 대통령으로 내세워 괴뢰인 필리핀공화국을 세우자 반일게릴라운동이 거세졌다. 1945년 미국이 필리핀을 탈환하고 1946년 4월 총선거가 실시되어 M.로하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7월 독립하였다.

[정치]

독립 후 필리핀 정치는 미국 정치형태를 모방한 1935년 헌법을 기초로 삼권분립·보수양당제 형태를 취하였다. 또한 자유당(LP)·국민당(NP)의 2대 정당이 교대로 정권을 담당하는 미국형 민주주의가 유지되었다. 1950년대 초까지 경제위기와 제 2 차세계대전 당시 항일게릴라 조직을 모태로 한 후크단(후크발라하프)의 반란으로 정치적으로 혼란하였으나 1953년 R.막사이사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이후 C.P.가르시아와 D.마카파갈의 정권을 거쳐 1965년 F.E.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었다. 마르코스는 경제개발을 목표로 내세워 외자도입·공업화·농업개발·토지개혁 등을 추진하여 1969년 이 나라 대통령으로는 처음 재선되었다. 이후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1972년 9월 계엄령을 선포, 3선금지규정을 폐지하는 등 장기집권을 시도하였다.

1973년 대통령에게 입법권을 집중시키는 새로운 헌법을 공포하고 <새로운 사회>라는 강령 아래 군부의 정치적·경제적 진출이 확대되었다. 1976년 전국 13개 지방대표를 뽑아 입법자문회의를 소집, 잠정국민의회 규정을 수정하였다. 1978년 4월에는 공선의원(公選議員)·직능대표·임명의원 등 200명으로 구성된 국회 대행기관인 잠정국민의회가 발족되었으며 이와 함께 마르코스는 대통령 겸 총리에 취임함으로써 형식상 의원내각제 체제를 갖추고 족벌독재체제를 구축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독재정치의 모순과 부패에 대한 비난이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1983년 8월 B.S.아키노 전상원의원 피살에 군부가 개입되었다는 의혹으로 반정부운동이 증폭되었다. 이 밖에 국제적인 비난의 소리가 높아지고 경제적 위기에까지 몰리자 마르코스는 타개책으로 대통령 조기선거를 실시하였다. 1986년 앞당겨 실시된 선거에서 마르코스는 반대파 정·부통령 후보인 C.아키노의 미망인 및 S.라우렐 전상원의원과 경쟁하였다.

선거 결과 마르코스가 승리하였으나 야당측은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아키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였다. 곧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국민의 저항과 함께 엔릴레 국방장관과 F.라모스 군참모총장서리가 군부혁명을 일으켜 아키노 대통령의 신정부가 출범하였다. 1987년 2월 임기 6년, 중임불가를 원칙으로 한 대통령중심제의 신헌법을 발효하였다. 그러나 8월 이래 5차례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며 1989년 12월 아키노 집권 이래 최대 규모의 군부 반란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라모스 국방장관이 당선되었다. 이후 필리핀 의회는 공산게릴라 및 회교도 분리주의자들의 사면과 불법화된 필리핀공산당(CPP)의 합법화 조치를 승인한 데 이어 라모스 대통령도 정식으로 합법화하였다. 현재 입법부는 양원제를 채용하여 상원은 정원 24석, 임기 6년으로 중임이 가능하며, 하원은 정원 250석(50석은 대통령이 지명함), 임기 3년으로 3차 연임이 가능하다.

정당으로는 인민의 당(LABAN), 민주국민연합당(UNIDO), 국민당(NP), 자유당(LP), 인민당(PNB), 신사회운동당(KBL) 등이 있다. 독립 후 60년대까지 친미외교노선으로 일관하여 66년 월남파병, 아시아태평양이사회(ASPAC)·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가입하였다.

<외교·군사>

1946년 일본군 패퇴 후 그 해 7월 독립하였으나 미국에 종속된 명목상 독립이었다. 1946년 체결된 필리핀통상법으로 그 뒤 28년 동안 미국의 경제적 지배에 놓였고, 1947년 군사기지협정·군사원조협정 등이 체결되어 미국은 필리핀에 있는 23개 군사기지를 89년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1951년 다시 양국간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독립외교를 표방하고 중국·옛 소련과 광범위한 관계를 수립하고 동남아 여러 나라 및 일본과의 관계유지, 미국과의 균형관계 모색 등을 골자로 하는 신외교정책을 1973년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1975년 중국·소련과 국교를 맺었다. 대미 관계는 1974년 라우렐랑크협정의 만기 실효를 계기로 그때까지의 특수한 관계에서 점차 실무적 관계로 변화하였다.

마르코스 퇴진 이후 미국·일본·서방 및 아시아 회원국과의 관계가 긴밀하게 유지되고 있다. 1991년 상원은 미국과의 새 군사기지 협정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며 1992년 미군이 철수함으로써 수비크만 미해군기지가 폐쇄되었다. 군대는 육·해·공군 및 통합국가경찰의 4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원제이다. 총병력은 10만 8500명이며 1990년 국방예산은 10억 5200만 달러였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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