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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5 (목)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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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717      
[국가] 캄보디아 (한메)
캄보디아 Cambodia

동남아시아 중부 인도차이나반도 남동부에 있는 나라. 면적 18만 1035㎢, 인구 1038만 5000(1997). 정식명칭은 캄보디아왕국(Kingdom of Cambodia). 북동부는 라오스, 동부와 남동부는 베트남, 북서부와 서부는 타이에 접하고, 남서부는 시암만에 닿는다. 수도는 프놈펜.

[자연]

국토는 동서 580㎞, 남북 450㎞로서 메콩삼각주가 펼쳐지는 남부를 제외하면 주위가 높고 중앙이 낮은 지형이다. 북서부의 타이국경에는 해발고도 200~550m, 길이 300㎞의 당레크산맥이 뻗어 있다. 이 산맥의 지질은 사암(沙岩)으로, 앙코르의 석조유적으로 대표되는 크메르예술의 소재로 쓰였다. 메마른 토양에 소림(疎林)이 지표를 뒤덮고 있으며 주민도 적다.

서부에서 남부까지는 사암성이며 해발고도 1200~1500m인 카르다몸산맥·엘레판트산맥이 있고 이 나라의 최고봉 오랄산(1813m)이 솟아 있다. 동부는 동쪽으로 갈수록 차츰 높아지며 베트남과의 국경에는 안남산맥이 있다. 이들 산맥에 둘러싸인 중앙부에는 메콩강과 톤레사프호를 감싸는 저지대가 있다.

메콩강은 티베트에서 발원하는 큰 강으로서 라오스·캄보디아 국경의 콩폭포로부터 평야를 남쪽으로 흐르며 캄보디아를 남북으로 가르고 있다. 해안으로부터 500㎞ 내륙인 크라체까지 대형선박이 연중 항행할 수 있다. 크라체에서 하류의 콤퐁참에 이르는 메콩강유역에는 약 2만 ㎢나 되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 메콩강은 다시 그 하류의 프놈펜 부근에서 톤레사프호의 물을 모아 흘러들어오는 톤레사프강과 합류되고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베트남으로 들어간다.

중앙저지는 메콩강의 충적평야이고 곳곳에는 고립된 언덕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사찰이 세워져 있는 등 종교적 중심지인 곳도 있다. 우기에는 물이 불어난 메콩강이 톤레사프강을 역류하나 톤레사프호는 이 불어난 물을 조정하는 저수지 역할을 한다. 우기의 표면적은 1만㎢로서 건기의 3배나 된다. 캄보디아 경제의 중심은 이 톤레사프호 주변의 톤레사프강과 메콩강 합류점인 <4개의 팔>이라는 K자형 지역과 메콩강 하류의 참카르라는 대자연제방이 발달되어 있는 지역이다.

기후는 1년 2기로 나누어진다. 5월 중순부터 10월 초순까지 남서계절풍의 영향으로 우기가 되고 11월부터 4월까지 북동계절풍이 부는 건기가 된다. 프놈펜의 연강수량은 1395㎜인데 우기인 10월에는 1개월 동안 250㎜, 건기인 1월에는 겨우 몇㎜밖에 비가 내리지 않아 그 차이가 크다. 열대성기후이기 때문에 기온 연교차가 작으나 4월이 가장 더우며 프놈펜은 최고 40.9℃까지 올라가고 12월부터 1월까지는 평균 25.5℃로 비교적 서늘해진다.

국토의 75%를 삼림이 차지하고 있다. 밀림에는 용뇌과(龍腦科)의 상록수를 비롯한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있다.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숲에서는 밀림에 비하여 종류는 적으나 카르다몸산맥과 동부산지에는 소나무류·떡갈나무류가, 톤레사프호 주변에는 대나무류·등나무류가 있다. 해안지방은 연강수량이 4000~6000㎜나 되기 때문에 홍수림(紅樹林) 등의 밀림이 있으며 코끼리·들소·퓨마·곰 등의 동물이 있다.

[역사·정치]

캄보디아는 1세기에 크메르족, 즉 캄보디아족이 건국한 동남아시아에서는 최초의 나라(푸난;扶南)이다. 그 뒤 몇 차례의 성쇠는 있었지만 메콩삼각주를 중심으로 해상교역국으로 번영하였고, 인도문화를 받아들여 크메르문자를 만드는 등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특히 9세기 초 자야바르만 2세가 브라만교에 의한 신권정치(神權政治)를 펴서 웅대한 석조건축을 남기는 등 앙코르문화의 기초를 쌓았다.

그러나 13~14세기에 이르러 동쪽에 있는 베트남과 서쪽에 있는 타이가 강해지면서 그 압력에 눌려 1431년 수도 앙코르마저 포기하게 되었다. 그 뒤 가까스로 존속하고 있었으나 19세기로 접어들자 유럽인이 진출하여 1863년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고 87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연방의 일원이 되었으며 제 2 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그 동안 군주제도(君主制度)는 그대로 계속되었으나 1941년 왕위에 오른 N. 시아누크가 1947년 왕국헌법을 발포함으로서 입헌군주국을 발족시켰다.

1949년 프랑스연합 내의 일국으로서 한정적으로 독립하였다가 1953년 완전 독립하여 1954년 제네바협정에서 자주독립의 중립국적 지위를 확립하였다. 독립한 뒤에 4개의 정부가 들어섰다. 첫번째는 시아누크의 캄보디아왕국으로서 1970년까지 이어졌다. 뒤이어 시아누크의 외유중에 쿠데타를 일으켜 1200년간이나 지속되었던 군주제도를 쓰러뜨린 론놀이 스스로 대통령이 되어 캄보디아공화국을 세웠다(1970~75).

그러나 시아누크는 망명지 베이징[北京]에 머무르면서 캄보디아민족통일전선을 조직하였다. 베트남전쟁중 중국이 캄보디아민족통일전선을, 미국이 론놀정권을 도와 내전으로 이어졌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뒤 미국이 원조를 중단하자 통일전선측이 우세하게 되어 1975년 4월 론놀정권은 쓰러졌으나 내전이 끝난 뒤 1976년 4월 캄보디아공산당서기장 폴포트의 민주캄보디아정부(폴포트정권)가 발족되었다.

그러나 폴포트정권은 농업을 기본으로 한 원시공산주의에 바탕을 두는 경제정책의 실패, 반대자에 대한 대량 숙청, 베트남과의 국경분쟁 등 많은 문제를 일으켰으며 약 2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캄보디아인이 학살이나 가혹한 노동으로 죽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때문에 1978년 12월 베트남의 도움을 받은 캄보디아구국민족통일전선이 결성되어 베트남군과 함께 수도 프놈펜 등 여러 도시를 점령하였고 1979년 10월 헹삼린의장을 수반으로 하는 캄보디아인민공화국(헹삼린정권)이 발족하였다.

한편 프놈펜에서 쫓겨난 폴포트정권은 국내 각지에 분산하여 게릴라활동으로 들어갔다. 민주캄보디아정부는 그 뒤 우여곡절을 거쳐 1982년 7월 손산 전총리가 이끄는 반공민족세력인 크메르인민민족해방전선(KPNLE) 및 시아누크파와 민주캄보디아연합정부(대통령은 시아누크)를 수립하였다. 1982년 7월부터 베트남군의 부분철수가 시작되어 1989년 9월 완전철수하였다.

1990년 9월 내전당사자 4파가 신정부수립까지 최고국민평의회(SNC)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였고 1991년 7월 파리평화협정에 조인, 베트남군 침공 이래 13년간 끌어온 내전이 부분적으로 종결되었다. 1993년 9월 신헌법이 발포되고 시아누크국왕이 즉위, 입헌군주제가 부활하였다. 1997년에는 캄보디아학살의 주인공 폴포트가 체포되었다.

[산업·경제]

1976년 발족한 폴포트정권은 농업을 주체로 하는 원시공산주의를 표방하고 화폐경제의 폐지, 도시의 파괴, 도시 주민에 대한 농촌으로의 강제이주 및 강제노동 등의 정책으로 막대한 인적자원을 잃었다. 또 베트남의 개입은 새로운 내전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독립 후의 5개년계획 등으로 성장하고 있던 캄보디아 경제는 단번에 파괴되었다.

헹삼린정권이 수립된 뒤에도 내전이 계속되어 경제상태는 개선되지 못하였고, 농촌은 황폐해지고 많은 주민이 난민으로 변하여 국제적인 원조물자로 가까스로 생활하고 있다. 캄보디아 산업의 중심은 농업으로서 취업인구 가운데 농민 비율은 90%에 이르렀다. 주요 농산물은 쌀로, 80만호나 되는 농가 가운데 67만호가 쌀농사를 하였으며, 주요 생산지는 중앙저지대 칸달·타케오·프레이벵, 그리고 북서부 쪽에 있는 바탐방 등이다.

그러나 메콩강의 범람에 의존하는 조방적(粗放的) 1모작이었기 때문에 생산성은 낮고, 산출량은 1~1.5t/1만 ㎡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낮은 산출이다. 그러므로 취업인구는 많지만 농업생산액은 국민총생산의 1/3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저생산성에다 토지 소유의 불균등성도 큰 문제였다.

토지소유자의 비율 그 자체는 전농민의 80%나 되지만, 토지가 매우 세분화되어 농가 1호당의 소유 면적이 너무 적었다. 소유면적 1ha 이하의 농가가 55%인데 비하여 2~5ha가 12%, 5ha 이상이 11%였다. 5인 가족당 1ha의 농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농업 이외에 소규모 목축이나 어업 등을 영위하는 자급적 농가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폴포트정권이 1975~76년에 관개망(灌漑網) 정비와 토지개혁을 단행하여 토지 사유를 폐지하고 2~3모작을 할 수 있게 계획하였으나, 그 뒤의 혼란 때문에 무산되었다. 어업은 톤레사프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우기에 주위의 토지가 물 속으로 잠기는 특이한 자연조건으로 플랑크톤이 대량으로 발생하여 알맞은 어장이 되고 있다. 담수호에서 1㎢당 어획량은 세계 제 1 위로, 1년에 11~13만t이다. 우기가 끝나는 11월부터가 어기이며, 농어과의 물고기류 및 잉어·폐어류(肺魚類) 등이 주요 어획물이다.

광업은 사파이어·루비 등의 보석류를 산출하며, 철광석·인광석·금·지르콘 등이 매장되어 있다고 하나, 아직 조사가 충분하지 않다. 전력은 수입한 석유에 의한 화력발전으로 얻고 있으며, 키리롬고원에 댐이 건설되었다. 공업은 시아누크시대에 약간의 경공업이 발전되었다.

외국원조로 국영공장이 세워져, 콤퐁참과 바탐방에 방적공장이, 프놈펜에는 유리공장이, 캄포트에는 인산비료공장이, 콤퐁솜에서는 석유정제공장이 설립되었다. 소규모 사기업이 늘어났는데, 그 반수 이상은 종업원수 50명 이하로 정미·도자기·수산가공 등을 영위하였다. 1969년말 공장수는 3670개였으나, 폴포트정권은 농업에만 의존하는 원시공산주의를 표방하고 공업은 완전히 포기하였다.

과거의 무역은 쌀·고무·옥수수 등을 아시아 여러 나라에 수출하고, 프랑스·일본 등지로부터 각종 공업제품을 수입하는 형태였으나, 만성적인 수입초과 상태였다. 그런 경향은 더욱더 심해져 73년 이후는 공식적 통계가 없기 때문에 불분명하지만, 1972년도 수출 1000만 달러에 비하여 수입은 1억 100만 달러였고, 수입이 수출의 10배 이상이라는 극단적인 수입초과를 보이고 있었다. 그 뒤 국토가 몹시 황폐해졌고, 자립경제를 이룰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현재 폴포트정권은 중국를 위주로, 헹삼린정권은 베트남을 위주로 하는 공산권으로부터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교통은 프랑스 영토로 되면서부터 내륙지방의 미곡을 실어서 출하하기 위하여 도로가 정비되었고, 호치민∼프놈펜∼바탐방 사이와 콤퐁솜∼프놈펜 사이 등에 간선도로가 있다. 국도의 총길이는 5100㎞나 되지만, 정비가 충실하지 못하다. 교량이 많이 건설되어 있고, 가장 긴 것은 톤레사프강에 있었던 약 700m의 다리였는데, 1975년에 파괴되었다.

철도는 서부의 미곡을 반출하기 위하여 부설된 프놈펜∼푸르사트∼바탐방∼포이페트 사이의 385㎞, 수도와 해안을 연결할 목적으로 제 2 차세계대전 후에 부설된 프놈펜∼콤퐁솜 사이의 270㎞ 등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낙후되었다.

메콩강 톤레사프수계를 중심으로 1932㎞의 내륙 수로가 있으며, 메콩강 어귀에서 350㎞ 상류의 프놈펜까지는 항상 2000t급 선박이 항행 가능하며, 소형선박은 상류인 크라체까지 항행할 수 있다. 해항은 콤퐁솜항구 밖에 없다. 1960년 프랑스의 원조로 완성한 것이며 현재 1만 5000t급 선박이 4척 이상 접안할 수 있다. 프놈펜에 국제공항이 있다.

[사회·문화]

인종은 크메르인이 90%를 차지한다. 1975년 이전에는 중국인(화교) 35만, 베트남인 20만, 참인 9만, 말레이계 소수민족 9만, 유럽인(주로 프랑스인) 5000명 등이 있었다. 화교는 이주한 역사도 오래되었고, 13세기 말에는 그 동향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나, 대부분은 18∼19세기에 이주하였다. 금융·경제의 실권을 쥐고, 특히 미곡에 대한 중개운수업에서 활동하였으나, 캄보디아인으로 동화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폴포트정권이 없애버렸다.

크메르인은 피부색이 검은 빛을 띤 주황색이고 눈은 검으며, 평균 신장은 165㎝이며, 머리털은 고수머리이다. 인종의 기원은 고(古)몽골로이드에 속하고, 언어계통으로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 속하는데, BC 200년 무렵부터 코라트고원 방면에서 이주하여 왔다. 그 뒤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도 하였다. 참파왕국의 먼 후손인 참족은 말레이계로서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톤레사프 호반에 거주하면서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크메르루라는 종족도 있는데, 그들은 과거에는 미개인으로 취급되어 업신여김을 받으며 살았다. 북동부의 삼림 속에 거주하며 수렵이나 화전농업 등에 종사하고 있는데, 1975∼78년 폴포트정권의 게릴라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형적인 농업국가이기 때문에 국민의 90%가 농촌에 거주하고 그 가운데 80%는 중앙저지에 거주한다(1970). 일찍이 농촌의 공동체를 품이라고 불렀고, 30호 정도를 1단위로 하고 있었으나, 식민지시대에 쿰이라는 새로운 촌락으로 재편성되었다. 쿰 가운데에는 1∼2개의 사찰, 화교가 경영하는 상점, 초보적인 학교시설 등이 있었다. 원래 농지의 규모는 각 농가가 거의 비슷하여 지주가 얼마되지 않았으나, 시아누크시대에 지주가 늘기 시작하였고, 관료나 화교 등의 세력이 커졌다.

프놈펜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는 인구의 10%에 지나지 않았으나 전쟁의 참화를 피하여 도시로 들어오는 사람이 늘어났고, 수도 프놈펜은 1970년 무렵 50만으로 늘어났다가, 그 뒤 200만 명의 대도시로 불어났다. 폴포트정권은 농촌으로의 강제이주정책을 취하였고, 캄보디아인민공화국은 일부 옛 도시 주민을 또다시 도시로 돌려보내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므로 1982년 프놈펜 인구는 약 50만까지 줄었다.

북서부에 있는 제 2 의 도시 바탐방은 4만, 콤퐁참·시엠레아프·캄포트 등은 각각 2만을 넘지 않는다. 화교·베트남인·프랑스인 등이 경영하는 상점가는 파괴되었으며, 경영자가 바뀌기도 하였다. 캄보디아문화의 과거 영광은 놀랄만한 것이었으나, 15세기 타이에게 멸망된 뒤로는 극도로 쇠퇴하여, 주민도 숲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1953년 독립 후 정부는 교육에 역점을 두는 동시에 전통예술을 부활시키는 데 힘썼다. 교육면에서는 1968년에 학생수가 국민학교 약 100만, 중학교 약 10만, 대학 약 1만 5000이었고, 1977년에는 문맹률이 10% 밖에 안되었다. 폴포트시대에는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폐지시켰으나, 헹삼린정권에서는 다시 시작되었다. 음악·무용·연극은 앙코르나 타이 지배시대 이래의 전통을 간직하여, 고대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를 저본(底本)으로 한 주제 등이 다루어지고 있다.

캄보디아 축제일에는 이러한 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예술가를 양성하는 음악학교·예술대학·극장 등을 건설하였다. 문학은 타이문학·유럽문학 등의 영향을 받았다. 헹삼린정권 아래에서는 1개의 일간신문과 그 밖에 구국전선기관지가 있었다.

라디오방송국도 캄보디아방송국과 국영 캄보디아통신이 있어 정치적 프로나 음악프로를 방송하고 있다. 1975년 이전에는 텔레비전방송국도 있었으나 현재는 방영하지 않는다. 또한 폴포트정권 아래에서 <민주 캄보디아 소리>를 선전방송하고 있었다. 서적류는 별로 없으나, 정치적 팜플렛은 그 수가 많다.

사회생활은 인도문화를 기본으로 하는 농경문화가 토대를 이루고 있다. 주식은 쌀이며, 부식물은 민물고기, 소금에 절인 생선과 채소 및 축산물 등이고, 생선젖과 소금이 주조미료이며 부식물 섭취량은 하루에 평균 1600cal 정도로 적다. 주거는 주로 자연제방 등 약간 높은 곳에 마련되며, 바닥은 대나무로 엮은 고상식(高床式)이고, 지붕은 마른 종려나무로 덮는다. 전통적 복장에는 집에서 만든 검정색이나 밤색으로 물들인 무명으로 삼포트라고 하는 사롱이 있는데, 프놈펜 등 도시에서는 유럽식 복장을 한다.

옛날에는 힌두교를 믿었으나, 타이족이 침입한 이후로는 소승불교권으로 들어갔다. 대다수의 주민은 대중적 불교의 일파인 모하카이파에 속하고 있으나, 1975년 이전에는 귀족적 타마유트파도 유력하였다. 절(와트)은 농민의 제례나 민회(民會)의 터전으로서 마을생활의 중심적 역할을 하며, 남자는 20세까지 한 번은 승려 생활을 하도록 정해져 있어서, 시아누크시대에는 승려인구가 약 6만 8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토지나 숲의 수호신 네아쿠타의 신앙과 힌두교가 뒤섞여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1975∼78년 사이에 불상 파괴가 단행되고 승려는 논밭의 강제노동으로 쫓겨났으며, 사찰은 곡물창고나 병사(兵舍)로 이용되는 등 수난이 심하였다. 11만 명이나 되는 참인은 일찍이 브라만교도들이었으나, 15세기 개종하여 현재는 이슬람교도가 되었다. 중국인들은 도교·대승불교, 베트남인들은 카오다이교·가톨릭을 믿고 있었다. 그 밖의 소수민족은 자연숭배를 하고 있다. 공용어는 크메르어이며, 독자적인 크메르문자가 있다.

[한국과의 관계]

1962년 7월 총영사관을 개설하였고 2년 3개월 뒤 무역협정을 체결하였으나 북한권투선수 망명거부사건으로 주프놈펜 총영사관을 폐쇄하였다. 론놀정권이 들어서면서 양국은 70년 8월 5일 수교합의 하였으나 75년 4월 크메르루지의 프놈펜 장악으로 단교하였으며 92년 2월 양국간 첫 외교관계 접촉이 프놈펜에서 이루어져 관계 개선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편 북한은 1964년 2월 28일 수교합의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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