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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9 (월) 15:29
분 류 사전2
ㆍ조회: 496      
[근대] 빌헬름2세 (한메)
빌헬름이세 -二世 Wilhelm Ⅱ 1859~1941

독일 황제·프로이센 왕(1888∼1918).

통칭은 카이저. 프리드리히 3세의 맏아들로, 부왕(父王)이 99일간의 치세로 세상을 떠난 뒤, 29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재능이 뛰어났으나 성격이 불안정한 보수적 사상의 소유자였다. 즉위한 뒤 곧 재상(宰相) O.E.L.비스마르크와 사회민주당 대책 및 대(對)러시아외교 등을 둘러싸고 대립하여, 1890년 3월 그를 파면시켰다.

친정(親政) 개시와 더불어 사회주의자진압법을 철폐하고, 사회정책의 확충을 시도하는 등 사회개량정책을 추진하였다(<신항로>의 시대). 그러나 사회민주당의 진출이 그치지 않자, 이에 격분하여 1894년 다시 탄압정책을 썼다. 한편 그는 <독일의 장래는 해상(海上)에 있다>고 보고 적극적인 대외팽창정책, 이른바 <세계정책>을 전개하였다.

1897년 중국에서 독일인 선교사가 살해되자 자오저우만[膠州灣]을 점령하여 산둥성[山東省]을 독일의 세력권에 넣었으며, 또한 빌칸과 서아시아로 진출하는 데 열중하여 스스로 터키를 방문, 바그다드철도의 부설권 획득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세계정책의 도구로서 대함대의 건조에 착수했으며, 국민들 사이에 해군과 식민지에 대한 열정을 일깨웠다.

그러나 대외팽창은 다른 열강과의 사이에 마찰을 증대시켜서, 1904년 이후 영국은 프랑스에 접근했고, 여기에 1907년 러시아도 참가해서 삼국협상이 이루어졌다. 깊어지는 고립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독일은 1905년과 1911년 두 차례나 모로코사건을 일으켰으나, 영국·프랑스의 결속은 오히려 더 굳어졌다.

그 뒤 그는 자신을 잃고 정치에서 떠남으로써 제1차세계대전 중에 군부의 독재가 시작되었다. 1918년 11월 패전에 이어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퇴위하여 네덜란드로 망명하였으며, 여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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