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사전2 세계사사전1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17 (금) 07:54
분 류 사전2
ㆍ조회: 209      
[현대] 냉전 (두산)
냉전 cold war 冷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양극체제하에서의 사회주의진영과 자본주의진영 간의 정치 ·외교 ·이념상의 갈등이나 군사적 위협의 잠재적인 권력투쟁.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전쟁으로, 열전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냉전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평론가 W.리프먼이 저술한 <냉전 The Cold War>(1947)이라는 논문에서 비롯되었고, 미국의 재정전문가이며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버나드 바루크가 1947년 의회토론에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항복하자 미 ·영 양국과 소련 사이의 불안정한 전시동맹관계는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1948년까지 소련은 동유럽 제국에 좌익정부를 건설하였으며, 미국과 영국은 독일 내 양국 점령지구의 대소(對蘇)배상을 중단하는 것으로 이에 대응하였다. 미국과 영국은 소련의 항구적인 동유럽 지배와 서유럽 및 그밖의 지역에서 소련의 영향을 받는 공산당이 집권할 가능성을 우려하였다.

한편 소련은 독일의 군사위협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동유럽에 대한 지배를 계속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주로 이데올로기적인 이유에서 공산주의를 세계적으로 보급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47년 3월 “오늘날 발트해(海)로부터 아드리아해(海)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둘러싼 철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는 윈스턴 처칠의 반공연설, 미국의 상 ·하양원합동회의에서 미국이 공산세력을 저지하는데 지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트루먼 독트린, 이어 6월 트루먼 독트린에 발맞추어 유럽부흥을 위해 실시한 마셜원조계획 등이 초기에 자본주의가 행한 냉전이다. 이에 대해 사회주의권에서는 47년 7월 이후 소련과 동구 제국간 또는 동구 제국 상호 간의 물자교환협정 및 통상차관협정을 체결하고, 10월 소련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코민포름을 결성하였다.

그 후 냉전체제가 고착화되어가는 과정에서 48년 4월 서독이 독일점령지역에 대한 통합을 행하고, 통화개혁을 시행하였는데, 이에 대해 소련이 베를린을 봉쇄함으로써 냉전은 극에 달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은 남부(미국), 서부(영국), 서북부(프랑스), 동부(소련)의 4개 지구로 분할 ·점령되었고, 이의 공동관리를 위해 연합국의 베를린통치기구(Allied Kommandatura)가 구성되었다. 이와 함께 베를린을 제외한 전 독일도 4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고 독일에 대한 공동관리를 위해 독일관리위원회(Allied Control Council)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서방측 3개국과 소련간에 의견대립이 격화됨에 따라 소련은 48년 3월 20일 동위원회를 탈퇴하고 이때부터 단계적으로 서방측 점령지역으로부터의 베를린출입을 제한하였다.

이에 대해 서방측은 6월 중순 그들의 점령지역 내에서 통화개혁을 단행하고 이를 베를린에 적용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소련은 연합국의 베를린통치기구까지도 보이코트하고, 6월 25일 서방측 점령지구로부터 베를린에 이르는 모든 육로와 수로를 전면 봉쇄하였다. 서방측 3개국은 미군을 주축으로 하여 인원과 물자의 대규모 공수작전을 전개함으로써 이에 대항하였다. 이렇게 되자 9월에는 독일인에 의해 베를린시의 행정도 분열되어 동서에 각각의 시청이 생겼다. 이렇듯 베를린은 양대 진영의 냉전의 초점이 되었다.

이와 같은 위기는 49년 4월 12일 소련의 봉쇄해제로 일단 해소되었으나, 그 동안의 봉쇄과정을 통해 서베를린에는 자본주의적 사회질서가 형성되었고, 동베를린에는 사회주의적 사회질서가 형성되었다. 그 결과 그해 가을 서독에는 독일연방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이, 동독에는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이 수립되었다.

한편,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분단도 냉전으로 인한 것이다.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미 ·소 양국은 카이로회담의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 위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각각 남한과 북한을 점령하였다. 이들의 점령목적은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사회질서유지를 위한 것이었지만, 38선을 경계로 북한은 소련에 의해 사회주의체제가 들어섰고, 남한은 미국에 의해 자본주의체제가 수립되어 양체제의 대결이 첨예화되었다.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 1953~57년 냉전이 다소 완화되었지만, 양진영의 관계는 여전히 소원하였다.

소련 블록 국가들 간의 방위동맹체인 바르샤바조약기구가 1955년에 결성되었으며, 그해 서독은 나토에 가입하였다. 미국과 소련은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에서 경제 ·군사 ·외교상의 세력경쟁을 벌였다. 1958~62년 냉전의 최종단계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1962년 소련은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비밀리에 쿠바에 설치하려고 하였다. 이 쿠바 미사일 위기로 두 초강대국은 전쟁의 일보 직전까지 치닫는 극한 대결을 벌였으나, 가까스로 미사일 철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 후 미국과 소련은 핵보복의 결과를 깊이 인식하고 핵무기를 사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는데, 이것을 냉전의 종식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로써 양대 블럭으로 나뉘어져 극한 대립양상을 보였던 국제질서는 보다 다극화된 양상을 띠게 되었다. 또한 약소국들이 독립을 주장할 여지가 더 많아졌으며, 양대 강대국은 핵무기의 확산방지를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1990년 9월 12일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은 ‘대(對)독일 화해조약’을 조인, 독일의 통일을 인정함으로써 동 ·서 냉전체제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어 11월 21일에는 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 34개 회원국들이 파리헌장에 서명하였고, 이 파리헌장에서 ‘대결과 분열의 시대는 유럽에서 종말을 고하였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를 냉전의 종말로 보는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전자는 사회주의권이 몰락함으로써 냉전체제 자체가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냉전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반면 후자는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국제질서가 평화공존기에 들어선 것은 확실하지만, 냉전의 구도 자체는 그대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윗글 [근대] 코민테른=인터내셔널 (두산)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9 사전2 [근대] 소비에트 (브리) 이창호 2004-12-01 314
8 사전2 [근대] 케렌스키 (두산) 이창호 2004-12-01 305
7 사전2 [근대] 트로츠키 (한메) 이창호 2004-12-01 303
6 사전2 [근대] 트로츠키 (두산) 이창호 2004-12-01 301
5 사전2 [근대] 전체주의 (두산) 이창호 2004-12-12 297
4 사전2 [근대] 소비에트 (두산) 이창호 2004-12-01 291
3 사전2 [근대] 3월혁명 (두산) 이창호 2004-11-30 285
2 사전2 [근대] 코민테른=인터내셔널 (두산) 이창호 2004-12-01 262
1 사전2 [현대] 냉전 (두산) 이창호 2004-12-17 209
1,,,10110210310410510610710810911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