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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15 (수)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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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177      
[국가] 폴란드 (브리)
폴란드 Poland (폴)Polska. 공식 이름은 폴란드 공화국(Republic of Poland/Rzeczpospolita Polska).

동부 유럽에 있는 국가.

지도

폴란드 지도. 브리태니카백과사전 지도

수도는 바르샤바이다. 남북으로 약 650km에 걸쳐 뻗어 있고, 가장 넓은 지점에서의 동서 너비는 약 690km이다. 북쪽으로는 발트 해에 면해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러시아와 리투아니아, 동쪽으로는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 남쪽으로는 체크와 슬로바키아, 서쪽으로는 독일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면적 312,685㎢, 인구 38,644,000(2002).

자연환경

남부의 산악지역을 제외하고는 국토의 거의 대부분이 북유럽 평원에 속하는 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면적의 75% 이상에 해당하는 지역의 해발고도가 200m 이하이다. 폴란드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지형에 따라 6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가장 북쪽의 첫번째 지역은 소택지와 사구들로 이루어진 발트 해 연안지역이며, 그 아래 2번째 지역인 빙하평원지대는 최후에 형성된 빙상의 남부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많은 호수가 있다. 3번째 지역은 바르샤바·브로추아프·포즈나인 시 등이 있는 폴란드의 중심부인 중앙 저지대이고, 4번째 지역은 나지막한 구릉지대를 포함한 소폴란드 고지이다. 5번째 지역은 수테티 산맥(크루슈네 산맥 포함)으로 이루어진 남서부 지역이며, 마지막 남단 지역은 카르파티아 산맥과 그 기슭으로 이루어져 있다. 폴란드의 최고봉은 슬로바키아와의 국경지대인 카르파티아 산맥에 있는 해발 2,499m의 리시 봉이다. 비수아·오드라( 오데르) 강이 폴란드의 주요수계이며, 발트 해로 유입된다.

폴란드는 해양성기후와 대륙성기후의 점이지대에 있어 겨울에는 춥고 눈이 많으며, 여름에는 따뜻하다. 연평균기온은 남서부의 저지대에서는 8℃이며, 보다 추운 북동부지역에서는 7℃이다. 연평균강수량은 약 600㎜이다. 삼림이 국토의 1/4 정도를 차지하며, 주요수목은 소나무·낙엽송·너도밤나무·참나무·자작나무 등이고, 높은 곳에서는 가문비나무가 자란다. 카르파티아 산맥 중 고도가 높은 곳에는 아고산성 및 고산성 식생이 분포하며, 사슴·멧돼지·말코손바닥사슴·갈색곰·살쾡이 등의 포유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폴란드는 비교적 광범위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역청탄(남서부의 구르나실롱스크)과 황(남동부의 타르노브제크)의 매장량은 세계적인 규모이다. 아연 생산은 이전보다 많이 줄었으나, 구리와 은에 있어서는 주요 생산국의 위치에 있다. 이밖에 갈탄·암연·중정석·석고·천연가스 등도 상당량 매장되어 있다.

국민

우크라이나인·독일인·리투아니아인·벨로루시인 등 소수민족 집단이 있지만, 폴란드는 민족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뚜렷한 단일민족국가이다. 폴란드어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이며 전체인구의 약 90%가 로마 가톨릭교도이다. 제2차 세계대전중 나치 점령하에 폴란드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죽음을 당했으며, 그중 유대인의 수가 약 300만 명으로 당시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던 거의 모든 유대인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폴란드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전후 최고의 자연인구증가율을 기록했으며, 1950∼95년에 도시 거주자가 전체인구의 2/5 미만에서 3/5 이상으로 증가했다. 평균수명은 남자 약 68세, 여자 76세이다.

경제

1990년 폴란드 정부가 실시한 경제 긴축 프로그램은 악성 인플레이션을 둔화시키고 예산 적자폭을 감소시킴으로써 국가운영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가속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더욱이 이 프로그램의 이행으로 인한 경기후퇴는 대부분의 체제변환 국가들이 경험했던 것보다 덜했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 경제는 옛 소비에트 진영 국가 중에서 가장 강세를 보였다. 폴란드의 국내총생산(GDP)은 5년 연속(1991∼96) 꾸준히 증가해 1994∼95년에는 개혁 이전의 수준을 넘어섰다.

실업률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문제로 대두되었으나, 둘 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감소하기 시작했다. 폴란드의 경제적 과도기 동안에 핵심적으로 추진된 것은 대규모 민영화였다. 1994년 정부는 500개 이상의 대기업과 중기업을 민영화하고, 그 소유권을 15개 국영 투자기금에 분할시켜 국민들이 주식을 살 수 있도록 했다.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도 대부분 민간소유로 운영되었던 농업은 GDP의 1/10 미만을 차지하고 있으며 경제활동인구의 약 1/4을 고용하고 있다. 폴란드는 호밀과 감자의 주요 생산국이며 그밖에 주요 작물로 밀과 사탕무우가 있다. 대부분 농가가 혼합농업을 하여 전국적으로 돼지와 소를 볼 수 있다.

산업생산은 경제적 과도기 초입에는 급감했으나 여러 부문에서 다시 반등했다. 산업(광업, 제조업, 공공사업)은 현재 GDP의 약 1/3을 차지하며, 전체 노동력의 약 1/5을 고용하고 있다. 전자·통신장비 같은 기술집약적 산업이 특히 번창하는 가운데 기계류·수송장비, 식품업, 금속 및 금속제품, 화학제품, 음료수, 담배, 직물 등이 제조업 부문의 주요 분야가 되고 있다.

폴란드 경제에서 가장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 분야는 서비스 부문이다. 폴란드 금융체계의 중심에는 독립적인 국립은행이 있어서 통화와 금융 부문을 규제한다.

수출의 2/3 및 수입의 3/5이 유럽연합(EU) 국가들에 대한 것이다. 최대 무역상대국은 독일로서, 수출의 2/5 및 수입의 1/4을 차지한다. 거의 모든 석유제품이 수입되며, 전력은 거의 전량이 역청탄과 갈탄을 이용하는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다.

정치·사회

1990년대초에 폴란드 정치는 과도기적인 상황을 겪었다. 1947년 이래 공산당인 폴란드 통일노동당(Polish United Workers'[communist] Party/PUWP)이 집권해온 1당체제 국가로 소련이 모델이 되어 정치구조와 행정조직이 이루어졌다. 최고의 정치적 권한은 당 중앙위원회의 정치국과 당 제1서기가 행사했다. 그러나 1989년 폴란드의 정치체제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고, 그 결과 폴란드는 소련 진영의 공산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다당제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개혁은 빠르게 진행되어 공산주의 반대세력(연대노조 등)이 자유선거에 참가하는 것이 허용되었고, 선거 결과 PUWP가 소수파로서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1989년 4월 PUWP와 연대노조가 체결한 역사적인 협정에 따라 폴란드 의회는 이전의 단원제에서 하원(460석)과 상원(100석)의 양원제로 전환되었다. 그후 지방의회 및 국회의원 선거에서 PUWP에서 갈라져 나온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여러 당들과 PUWP의 옛 동맹세력인 통일농민당 및 민주당이 연대노조의 여러 분파에 맞서 경쟁하는 양상을 띠었다. 4월 협정은 또한 집단지도체제를 이루었던 국가평의회를 없애고, 대신 국회에서 선출하는 대통령에게 강력한 집행권을 부여해주었다. 대통령은 하원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당의 의원 가운데서 총리를 선임하며, 총리는 내각을 구성하게 되었다.

1992년 새 임시 헌법은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정부 형태를 규정했다. 이 헌법은 1989년 개혁헌법에 명시한 것처럼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하고, 국회의원 역시 4년 임기로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각료회의 또는 정부는 총리가 지명한다.

폴란드는 종합적인 교육체계를 통해 낮은 문맹률을 유지하고 있다. 7∼15세의 학생에게 의무교육이 실시되며, 모든 학교교육이 무상으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인쇄매체와 전파매체는 정부의 통제를 받다가 1990년 언론계가 독립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폴란드의 사법체계는 대법원, 특별사법기관, 지방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의 포괄적인 사회복지제도는 경제위기 동안 부담이 가중되어 1990년대에 들어서는 점차로 민영화되는 과정에 있다.

문화

폴란드는 세계적인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19세기 전반기 문학계에는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가 등장했고, 20세기에 활동한 폴란드의 작가들 가운데 헨리크 솅키에비치, 부아디수아프 레이몬트, 체수아프 미우오슈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프레데리츠 쇼팽은 폴란드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며,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명성을 누린 연주가들 가운데서 피아니스트인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와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 특히 유명하다.

역사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슬라브계 부족들이 일찍이 BC 2000년에 비수아 강 유역에 정착했다는 이론이 증명되었다. 슬라브 종족은 비수아 강 유역으로부터 여러 방향으로 이주하여 결국은 동슬라브족·남슬라브족·서슬라브족 등으로 차별화되었다. 800∼960년에 서슬라브계의 몇몇 부족은 서로 연합하여 작은 국가들을 이루었다. 이 국가들 가운데 하나를 통치한 피아스트 왕조는 오늘날의 포즈나인 주변지역을 통일했는데, 이 지역을 흔히 대(大)폴란드라고 한다.

폴란드의 건국연도로 인정되고 있는 996년은 피아스트 왕조의 미에슈코 1세(963∼992경)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해이다. 그후 수십 년 뒤에 폴란드 남부에 거주하던 종족들이 연합하여 소(小)폴란드를 이루었다. 1047년 대폴란드와 소폴란드 모두 피아스트 왕조의 카지미에슈 1세를 군주로 인정했다. 피아스트 왕조는 1386년 리투아니아의 대군주 요가일라(야기에우오)가 피아스트 왕조의 왕위계승자인 야드비가 공주와 결혼하여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같이 지배하는 야기에우오 왕조를 세울 때까지 폴란드를 통치했다.

야기에우오 왕조의 계승자들은 1572년까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통치했으며, 폴란드는 리투아니아와 하나가 되면서 15세기와 16세기초에 중동부 유럽에서 세력을 떨칠 수 있었다. 야기에우오 왕조의 군주들은 그 당시 헝가리와 보헤미아에 대한 통치권도 확보했으며, 튜튼 기사단, 오스만 제국, 모스크바 대공국과 같은 강력한 적대세력도 물리쳤다. 그러나 폴란드의 왕들은 왕국 내의 토지를 소유한 귀족계급에게 점차 더 많은 특권을 베풀어야만 했으며, 귀족들은 그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농민들을 노예로 삼았다.

1572년 야기에우오 왕조가 몰락한 후 폴란드의 귀족계급은 유럽의 여러 왕가와 폴란드의 귀족 가문에서 왕을 선출했다. 이들은 일부러 유약하거나 무력한 인물을 왕으로 뽑았고, 그 결과 권력은 점차 이기적이고 논쟁적인 귀족계급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결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국가는 이웃 강대국들이 활기를 되찾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점차 약화되었다.

폴란드는 1650년대에 남동부의 변경지대(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 타타르인들과 카자흐족이 일으킨 대규모 반란을 가까스로 진압했으나 1655년 스웨덴과 러시아의 침공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이들 국가들 사이에 지속적인 분쟁이 시작되었다. 안으로는 경제의 후퇴와 함께 로마 가톨릭교도와 그리스정교회교도 사이에 야기된 사회적 분규에 시달렸다.

1772년 폴란드 제1차 분할이 이루어져 폴란드 영토의 1/4 이상이 러시아(폴란드 북동부의 일부 지역)· 오스트리아(남부의 갈리치아 지방)· 프로이센(북서부의 폴란드령 포메른 지역과 에르멜란트 지방)에 넘어갔다. 1793년 제2차 분할이 진행되어 러시아와 프로이센에 더 많은 영토를 빼앗겼다. 1795년 제3차 분할의 결과 주권국으로서의 폴란드는 완전히 소멸되었으며, 대신 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가 그 자리를 메웠다 (→ 색인 : 폴란드 분할).

1815년 러시아 제국 내에 독자적인 정치체제와 군사력을 갖춘 폴란드 왕국이 수립되었으며, 폴란드인들은 1830, 1863년에 제정 러시아의 폭정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끝났다. 이 두 반란을 겪은 후 러시아는 폴란드인들의 교육체제에 러시아화 정책을 반영했고, 이를 본떠 프로이센의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 역시 폴란드인들을 상대로 엄격한 독일화 교육을 실시했다. 결국 오스트리아에 합병된 폴란드령만이 다소나마 자치권을 누렸다.

제1차 세계대전(1914∼18)과 러시아 혁명(1917)이 끝난 후 1918년 연합국에 의해 독립국가 폴란드가 재수립되었고 이후 3년에 걸쳐 독일·오스트리아·러시아가 영토를 반환함으로써 영토가 확대되었다.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에 육군원수 요제프 피우수트스키가 폴란드의 정치를 장악했는데, 그는 1926∼35년에 독재정치를 실시했다. 동쪽의 소련, 서쪽의 나치 독일과 불편하나마 지속되던 공존체제는 1939년 독일이 침공하여 폴란드 서부지역의 2/3를 차지함으로써 끝이 났으며, 나머지 1/3은 소련이 점령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함으로써 폴란드 전역이 나치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은 대량학살을 통해 폴란드의 문화를 말살시키고, 폴란드의 소수민족 집단인 유대인들을 멸족시키기 위한 정책을 실시했다 (→ 색인 : 제2차 세계대전). 1944∼45년 겨울에 소련의 적군이 폴란드 땅에서 독일 세력을 몰아냈으며, 적군의 보호 아래 공산주의자들이 이끄는 폴란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당시 영국 런던에 있었던 폴란드 망명정부는 무시되었음).

1945년 폴란드의 국경선은 다시 변경되었는데 재수립된 폴란드 정부는 동쪽의 넓은 영토를 소련에게 빼앗겼지만 패망한 독일로부터 서쪽으로 상당한 영토를 획득했다. 한편 소련의 지도자 요시프 스탈린은 폴란드를 확실하게 소련의 세력권 안에 두고 싶어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볼레수아프 비에루트가 이끄는 폴란드의 공산주의자들은 자유선거를 축소하고 반공산주의자들의 대대적인 체포를 실시하는 한편 농장을 집단화하고 산업시설을 국유화했다. 1948년 PUWP가 공식적으로 결성되어 폴란드를 통치하기 시작했고, 1952년에 소련의 체제를 본떠 만든 헌법이 채택되었다. 결국 폴란드는 스탈린이 주도하는 전체주의 세력권 안에 놓이게 되었다.

스탈린이 죽고 3년 뒤인 1956년 폴란드의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일으켰으나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계속되는 위기상황에서 부아디수아프 고무우카가 PUWP의 당수가 되었고, 그의 집권하에(1956∼70) 폴란드의 집단농장들이 해체되는 한편 공산정권의 전체주의적 통제가 많이 완화되었다. 그러나 1970년 고무우카의 경제정책이 계속 실패하자 노동자들은 다시 연속적인 파업을 일으켰고, 기에레크가 고무우카를 밀어내고 당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기에레크 역시 소련의 간섭 속에서 폴란드의 경제를 효과적으로 가동시키는 것에 실패함으로써 1970년대말 폴란드 국민들은 또다시 고물가와 식량난·주택난을 겪어야 했다. 1979년 크라쿠프 대주교였으며 카롤 보이티우아 추기경이었던 교황 요한네스 파울루스(요한 바오르) 2세가 교황이 된 후 첫 방문지로서 모국 폴란드를 찾았다. 폴란드의 로마 가톨릭교도들은 교황의 방문을 맞아 열광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와 같은 교회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은 소련식 정치체제에 대한 간접적인 시위이기도 했다.

1980년 8월 전기기술자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파업이 그다인스크 조선소에서 일어나 다른 도시들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들은 바웬사의 지도하에 연합하여 불법적 노동조합인 연대자유노조를 결성했고, 연대자유노조는 그후 결국 정부의 양보를 얻어내 명백한 합법적 조직으로 인정을 받았다. 기에레크의 뒤를 이어 스타니수아프 카니아가 PUWP의 서기장이 되었으며, 카니아의 실각 이후에는 국방장관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장군이 서기장 지위에 올랐다.

연대자유노조는 계속되는 파업의 와중에서 정부에게 더 많은 양보를 요구했고, 야루젤스키는 이에 맞서 1981년 12월 계엄령을 선포했다. 연대자유노조는 다시 불법화되었고 지도층은 체포되었다. 계엄령은 18개월 후에 해제되었지만 정부는 계속해서 국내의 반대세력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그후 수년 동안 폴란드의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1988년 노동자들의 소요사태가 다시 일어나자 야루젤스키는 즉각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연대자유노조 운동세력과의 협상을 받아들였다.

1989년 4월 정부와 연대자유노조 간에 체결된 협상 결과 새로이 합법화된 연대자유노조가 양원제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자유선거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 정치체제에 광범위한 개혁이 이루어졌다. 1989년 6월 의회선거에서 연대자유노조가 압승을 거둔 후 공산주의자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1990년에는 바웬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정부의 경제 긴축 프로그램이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촉진시켰으나,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빈부격차의 심화와 연대자유노조 내부의 정치적 분열에 대한 좌절감이 확산되면서 1993년 의회선거에서 사회민주주의로 전향한 과거 공산주의자들에게 승리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1995년 사회민주주의 후보인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에프스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한국과의 관계

1989년 6월 서울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했으며, 그해 11월 1일 공식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북한과는 1948년 10월 16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국과 상호무역사무소 개설협정(1989. 5), 무역협정(1989. 11), 투자보장협정(1989. 11), 항공협정(1991. 10), 문화협정(1993. 6), 사증면제협정(1993. 11) 등을 체결했다. 1996년 현재 대한 수출액은 1억 6,013만 달러이며, 대한 수입액은 7억 8,196만 달러이다. 1997년 현재 교민은 6명, 체류자는 1,750명이다.

참고문헌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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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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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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