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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26 (일)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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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147      
[현대] 우주개발 (한메)
우주개발 宇宙開發 space exploration

대기권 밖의 우주공간에 관측기기나 인간을 내보내어 새로운 지식·정보 등을 증가시키거나 또는 직저적으로 인간의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행해지는 일련의 활동.

대기권 밖에서의 관측은 지상에서의 관측으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였고, 우주공간에서의 비행은 획기적이고 다양한 우주공간 이용의 길을 열었다.

[우주개발의 선사(先史)]

인류에 있어 우주에 대한 관심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었다. 이미 고대 그리스시대에 루키아노스에 의해서 달여행에 관한 공상적 이야기가 쓰여졌다. 동양에서는 8세기에 당(唐)나라 현종(玄宗 재위 712∼756)이 선술(仙術)로 월궁(月宮)에서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 17세기에 들어서 G.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달에도 산과 평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루키아노스의 오래된 책은 재평가 되었다.

그 무렵 J.케플러도 행성의 운동에 관한 유명한 3법칙을 발표하였고 또 요정이 사람을 달세계로 데리고 간다는 내용의 소설 《Somnium(1634)》을 썼다. 당시는 이러한 공상여행소설이 대유행이었는데, 영국의 F.고드윈이 지은 《Man in the Moon(1638)》이라든가 프랑스의 C.베르게라크가 지은 《달로의 여행(1649)》 등이 출판되었다. 고드윈은 백조에 의해 이끌려가는 발상을 하였고, 베르게라크는 새총과 유사한 기구에 의해 비행하는 발상을 하였다.

[과학적인 발달사]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과학이 점차 발전하였는데, 프랑스의 소설가 J.베른이 포신 300m인 대포로 용기에 넣은 인간을 발사하는 《지구에서 달로(1865)》를 출판하였다. 또 미국의 E.E.헤일은 《The brick moon》에서 오늘날의 인공위성과 유사한 것을 가상하였다.

19세기 말에는 독일의 H.간스빈트가 로켓우주선을 착상해냈지만, 로켓의 이론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사람은 러시아의 K.E.치올코프스키가 처음이다. 그는 질량비라든지 분사속도의 중요성을 명확히 하고, 1903년에 《로켓에 의한 우주공간의 탐험》을 출판하였다. 얼마 뒤인 1919년 미국의 R.H.고더드는 <초고공에 도달하는 방법>이라는 논문에서 다단식(多段式)로켓에 의한 달 도착을 논술하였다. 그는 또 1926년 최초의 액체연료 로켓의 비상 실험에 성공하였다.

다단로켓의 사용법을 더욱 발전시킨 사람은 독일의 H.오베르트로서 그는 1923년 《로켓에 의하여 행성간 공간으로》를 썼다. 우주비행에는 로켓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명확해졌다. 그 후 1942년에는 이전의 것보다 획기적으로 크고, 또한 유도장치를 갖춘 V2로켓이 출현했다. V2로켓 자체는 신병기의 하나였지만, 그 개발자인 W.브라운은 우주비행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우주개발의 과학적 기초]

지구의 인력에 역행하여 우주공간으로 비행하는 데 있어 우선 필요한 것은 인력(引力)을 이겨내는 일이며, 거기에는 로켓 기술이 첫째 조건이다. 로켓은 다량의 추진제를 단시간에 소비함으로써 강력하고 큰 추진력을 발생시킨다. 더욱이 이 힘은 진공중에서도 발휘된다. 그런데 로켓 본체는 되도록 경량이어야 하고, 아울러 충분한 강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발사된 비행체에 대해서는 그 궤도나 자세가 적절히 유지되도록 유도·제어되어야 하는데, 전파유도를 비롯한 관성유도 등의 기술이 발달하였다. 탑재기기도 소정기간 동안 완전히 작동시킬 수 있고, 또 관측 결과가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지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전파기술이 확립되어야 한다. 또 로켓 전체로서는 부품이 매우 많은데, 부품들의 신뢰성이 높아야 한다.

신뢰성을 조화 있게 높여 효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전체의 시스템을 어떻게 조립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생기며, 여기서부터 시스템공학이라는 연구분야가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개발은 첨단적인 것으로, 동시에 많은 관련분야를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단순히 한 연구소나 회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분야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국가예산으로 충당되고 있으며, 거대과학(big science)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우주개발이라는 대사업을 국가 위신의 상징으로 여기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를 제2차세계대전에서 발달된 원자력개발에서도 볼 수 있다.

[우주개발의 목적]

우주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제2차세계대전 후의 이른바, 냉전의 시기부터였다. 대륙간탄도탄과 인공위성 발사용 로켓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우주개발의 첫째 목적은 군사적 이용에 있었다. 예를 들어 장거리 정찰기를 대신하여 정찰용 인공위성의 가치가 높이 평가된 것이다. 둘째로 국력의 과시, 곧 국가의 위신이 중요시되었다. 예를 들면, 스푸트니크 1호나 보스토크 1호의 발사가 성공했을 때 소련은 <이것은 사회주의체제의 승리다>라고 강조하였다. 셋째로 순수하게 과학적인 기초연구 수단으로서의 중요성인데, 이에 따라 새로이 우주과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생겼다. 넷째로 인공위성이 인간생활에 직접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의도로써, 이를 위한 인공위성을 실용위성이라고 한다.

최초의 실용위성은 1960년의 기상위성 타이로스 1호이며, 그 이후 통신·기상관측·항행·측지·지구자원 조사 등의 목적을 갖는 각종 인공위성이 발사되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우주개발이 가져온 것으로는 우주기술의 파급효과가 있다. 우주개발에는 첨단기술이 구사되는데, 이러한 기술은 다시 각 방면으로 파급되어 갔다. 예를 들면 로켓의 기체용(機體用)으로 개발된 고장력강, 로켓 탄두나 재돌입시를 위한 세라믹의 개발기술, 인공위성용 전원(電源)의 응용, 원거리 통신기술의 발전, 무중력상태의 여러 가지 활용 등이 있다. 또 우주개발에 의한 국제협력의 추진도 빼놓을 수 없는 점인데, 우주평화이용조약이 생겨나고 관측 결과를 서로 이용하거나, 우주계획을 국제협력에 따라 진행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우주탐사]

우주탐사의 시초는 관측로켓이었다. 병기로서 등장한 V2로켓은 1946년 가을, 지상에서는 관측할 수 없는 단자외선이 태양으로부터 방출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 뒤 오늘까지 많은 관측로켓이 발사되었는데, 관측시간을 확대하고 또 국지적인 관측에서 전지구적인 관측으로 확대하기 위한 인공위성을 탄생시켰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은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로서, 1957년 10월 4일에 발사되었는데, 지름 58㎝의 구형으로 초고공의 대기밀도를 측정하였다.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는, 지구를 도넛 모양으로 둘러싼 방사능대(밴앨런대)를 발견하였다. 이와 같이 과학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인공위성을 과학위성이라 하며, 주로 무인인공위성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또 유인인공위성인 경우도 그 주목적은 과학연구에 있는데, 인공위성의 궤도가 연장됨에 따라 태양으로부터 방출되는 태양풍 및 지구를입체적으로 둘러싼 자기권의 상태 등이 판명되었다.

한편 지구의 인력을 벗어나 태양 주위를 도는 인공행성이 출현하게 되었고, 또 달·금성·화성·수성·목성·토성 등을 탐구하는 각종 우주탐사체가 활약하게 되었다. 그 최초의 성공은 1962년 8월에 발사된 미국의 매리너 2호로서, 109일의 비행 후에 금성으로부터 3만 4000㎞ 떨어진 곳을 통과하며 금성의 표면온도와 그 대기의 구성 등을 측정하여 자료를 전송해 왔다. 1964년 11월 발사된 매리너 4호는 화성으로부터 약 9600㎞까지 접근하여 표면사진 21장을 전송해 왔지만 기대하였던 운하(運河)는 없었다.

달의 연착륙(軟着陸)에 처음으로 성공한 것은 소련의 루나 9호(1966년 1월 발사)로서, 달표면의 사진을 보내왔다. 행성에 대한 연착륙은 소련의 베네라 4호(1967년 6월 발사)에 의해 최초로 이루어졌는데, 금성의 대기 및 기상을 측정하였다. 화성에 대한 최초의 연착륙은 소련의 마르스 3호(1971년 5월 발사)에 의해 시도되어 그해 12월에 성공하였다. 최초의 수성탐사기는 미국의 매리너10호로서, 1973년 11월에 발사되어 다음해 3월 수성으로부터 640㎞까지 접근하여, 수성 표면이 달 표면과 유사하다는 것을 관측하였다.

미국은 1972년 3월 파이어니어10호를 발사하였는데, 그것은 이듬해 12월 목성에 접근하여 표면의 모양과 목성의 위성 가니메데의 기괴한 모습을 전송해왔다. 파이어니어11호(1973년 4월 발사)도 1974년 12월에 목성, 1979년 9월에 토성에 최근접하여 각각 관측에 성공하였다. 1977년 9월에는 미국에서 보이저1호가 발사되어 1979년 3월 목성에 접근하였고, 1980년 11월에는 토성에 접근하여 토성고리의 미세구조 및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관측하였다.

보이저1호보다 약간 앞서 1977년 8월 보이저2호가 발사되었는데, 그것은 1981년 8월 토성에 최근접하여 토성고리의 보다 미세한 구조를 밝혀냈고, 이어 천왕성으로 향하였다. 천왕성에 접근한 것은 1986년 1월로, 천왕성의 자세한 상과 어두운 고리체계, 5개의 주요 위성을 관측하였다. 또 1989년 8월에는 해왕성에 최근접한 후 태양계행성 탐사를 종료하였는데, 보이저2호는 태양계를 벗어난 최초의 인공물이 되었다.

한편 블랙홀·펄서·퀘이사 등을 관측하기 위하여 고에너지천문관측위성(HEAO)과, 1983년에 미국에서 발사한 적외선관측위성(IRAS) 및 우주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발사된 우주배경복사탐사기 COBE 등에 의해 우주에 대한 의문점들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유인우주계획]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1957년 11월 발사)에는 라이카라고 하는 개를 탑승시켜 우주에서 1주간을 지내게 했는데, 이것은 곧 인간이 탄 우주선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한편 미국은 머큐리계획으로 유인우주선을 실현시키려고 하였다. 머큐리캡슐은 총중량 1.3t으로 1인승인데, 7명의 우주비행사가 선발되어 훈련이 시작되었다.

소련에서도 4.7t의 1인승 우주선 계획이 진척되어, 1960년 8월 개 2마리를 태운 스푸트니크 5호를 무사히 회수함으로 유인우주선의 실현이 머지 않았음을 예감하게 했는데, 마침내 1961년 4월 12일에 실현되었다. 우주선 이름은 보스토크 1호, 탑승자는 Y.A.가가린이었고, 1시간 48분 동안 지구를 일주하고 무사히 소련 영내에 착륙하였다. 그때 가가린은 <지구는 푸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비행은 인간이 우주로 나선 최초의 기록이며, 이로부터 본격적인 우주시대가 시작되었다. 보스토크에 한발 뒤진 미국의 머큐리계획은 그 다음해 2월 20일에 J.H.글렌이 탑승한 프렌드십 7호가 미국 최초로 지구를 3바퀴 도는 데 성공함으로써 실현되었다. 1인승에 이어 2∼3인승의 우주선이 등장, 1964년 10월 소련의 보스호트 1호는 3인승으로 지구를 16주하였다. 또 1965년 3월의 보스호트 2호는 2인승이었으며, 탑승원 중 A.레오노프는 세계 최초로 우주선에서 나와 10분 동안 우주유영을 하였다.

한편 미국의 2인승 우주선은 1965년 3월 제미니 3호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아폴로계획에서 필요한 랑데부 및 도킹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였다. 최초의 랑데부는 1965년 12월 15일 제미니 6호(65년 12월 15일 발사)와 제미니 7호(65년 12월 4일 발사)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이어서 제미니 8호는 1966년 3월 16일 표적용 무인우주기 아제나와 처음으로 도킹하였다. 소련에서도 소유즈 4호(1인 탑승, 69년 1월 14일 발사)와 소유즈 5호(3인 탑승, 69년 1월 15일 발사)의 도킹에 성공하고, 5호의 탑승원 2명이 4호로 옮겨탔다.

1969년 7월 16일 발사된 아폴로 11호는 7월 20일에 인류 최초의 달착륙에 성공하였다. 달 표면에 내려선 사람은 N.A.암스트롱과 E.E.올드린이었는데, 암스트롱은 그때 <이것은 한 인간으로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도약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아폴로 11호의 달까지의 왕복비행시간은 195시간 19분이었다. 소련의 소유즈 11호(1971년 6월 6일 발사)는 미리 궤도에 쏘아올린 살류트 1호와 도킹하여 탑승자 3명이 살류트로 옮겨타며 각종 실험을 하여 6월 30일 드디어 지구로 귀환했지만 탑승자 3명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때 비행시간은 약 570시간에 이르렀으며, 우주스테이션의 시초가 되었다. 1973년에는 미국에서 아폴로우주선 발사에 사용된 새턴5형 로켓 제3단의 내부를 개조하여 우주스테이션으로 이용하는 스카이래브계획이 실시되었다. 1973년 5월 14일 새턴5형 로켓이 발사되어 무인실험실(스카이래브 1호)이 궤도에 올랐다. 같은 달 25일 달 착륙부를 제외한 아폴로우주선이 새턴IB형에 의해 발사되어 스카이래브와 도킹하고 3명이 옮겨탔으며, 여러 가지 과학기술실험을 한 뒤 우주체재 28일 만에 귀환하였다.

제2차 발사는 같은 해 7월 28일로, 59일간 우주에 체재하였다. 역시 그해 11월 16일로, 우주체재기록을 84일간으로 늘인 제3차 발사로 스카이래브계획은 성공하였다. 이 계획에 이용된 무인실험실은 1979년 7월 12일 오스트레일리아 남서부 일대에 분열 낙하하였는데, 발사 당시의 고도는 440㎞였다. 소련의 살류트는 7호까지 발사되어, 소유즈와는 T7호까지 도킹을 하였다. 이 T7호는 1982년 8월 19일 발사되어 12월 10일 귀환하였는데, 거기에는 여성우주비행사 S.사비츠카야가 동승하였다.

미국은 스카이래브에 이어 스페이스셔틀(우주왕복선)의 비행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기체를 수십 회에 걸쳐 사용·회수하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한 것으로서, 과학기술의 실험(스페이스래브) 이외에 우주스테이션의 조립이나 그곳으로부터의 인공위성 발사·회수·수리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스페이스셔틀에는 1977년 최초의 시험비행을 시작하여 1981년 4월 지구궤도 비행에 성공한 컬럼비아호 이후에, 챌린저호·디스커버리호·아틀란티스호·엔데버호 등이 운행되었다. 그러나 챌린저호는 1986년 1월 28일 발사 1분 13초 만에 폭발, 승무원 7명이 모두 사망하는 참사를 당하였다.

스페이스셔틀이 운행된 이후, 1983년 11월 28일 유럽우주기구(ESA)가 건조한 스페이스래브가 컬럼비아호에 의해 궤도에 올려졌고, 1984년 2월 7일에는 챌린저호의 승무원인 B.맥켄들리스와 R.L.스튜어트가 생명줄 없이 우주유영(宇宙遊泳)에 성공하였다. 또 4월 11일에는 챌린저호에 의해 고장난 관측위성인 솔라맥스가 최초로 우주공간에서 수리되었고, 1985년 6월 24일 발사된 디스커버리호는 통신위성 3기를 발사하고, 엑스선관측위성을 수리하는 등 스페이스셔틀은 여러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또 스페이스셔틀의 운행에는 여자승무원은 물론 미국 국적 외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각국의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등 국제적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2년 5월 14일에는 엔데버호가 고장난 인텔새트 6호를 우주공간에서 회수·수리·재발사하는 개가를 올렸는데, 이를 직접 수행한 엔데버호의 3명의 승무원은 8시간 29분의 최장 우주유영 기록을 세웠다. 한편 소련은 1986년 2월 20일 살류트를 대신하는 우주스테이션 미르를 궤도에 올렸고, 스페이스셔틀 등을 발사하기 위한 대형 로켓인 에네르기아를 개발하였다. 이어 1088년 10월에는 소련식 스페이스셔틀인 브란의 궤도비행에 성공하였다.

[세계의 우주개발 동향]

스푸트니크 1호 이후 발사된 우주기(宇宙機)의 수는 수천 개에 달하며, 그 중 소멸되거나 회수된 것을 제외하고 약 40% 정도가 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우주기 중의 97% 가까이가 인공위성이며, 그 중 거의 70%가 군사위성으로 추측된다(미국은 군사위성을 그대로 발표하지만, 소련은 군사위성과 과학위성을 일괄하여 <코스모스>라고 하였는데 그 실체는 군사적 목적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주개발에 있어서 구소련과 미국 다음으로 프랑스를 들 수 있다. 프랑스는 중거리탄도탄 개발에 주력하였는데, 그것을 개선하여 1965년 11월에 자국산 로켓으로 자국제의 인공위성 AI를 궤도에 올렸다. 이어 일본은 1970년 2월에 처음으로 오스미[大隅]를 쏘아올렸고, 그 뒤를 이어 중국이 1970년 4월에 동방홍(東方紅)을 발사하였는데, 그 무게는 173㎏으로서 일본 오스미의 7배이다. 중거리탄도탄에서 대륙간탄도탄으로 개발을 추진하던 영국은 1971년 10월 무게 66㎏의 프로스페로라는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렸는데, 블랙애로(Black Arrow)라는 로켓을 사용하여 오스트레일리아의 기지에서 발사되었다.

자국산 로켓으로 자국제의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외에, 자국제 관측계기를 외국의 인공위성에 실어서 발사하거나, 자국산 위성을 외국에 의뢰하여 발사하는 방법도 드물지 않다. 예를 들면 1962년 4월에 영국제 전리층관측기구를 실은 인공위성 에어리얼 1호가 미국로켓에 의해 발사되었고, 같은 해 9월에는 캐나다제 인공위성 알루에트 1호가 미국의 로켓에 의해서 발사하였다. 1964년 12월에는 이탈리아제 인공위성 산마르코 1호가 미국의 로켓을 이용하여 이탈리아인 팀에 의해 발사된 일도 있다. 이것은 로켓 발사의 훈련을 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1992년 8월 한국 최초의 과학위성 우리별 1 호(KLTSATA)를 프랑스령(領) 기아나의 쿠루기지에서 아리안로켓으로 발사했으며, 1993년 9월에는 우리별 2 호를 발사했다. 또 1995년에 방송·통신 겸용 위성 무궁화호(KOREASAT)를 미국의 델타Ⅱ 로켓으로 정지궤도에 쏘아 올렸다. 무궁화호는 통신과 방송의 기능을 수행하며 직접위성방송은 물론 영상회의·고속팩시밀리·유성방송중계·도서벽지통신 등 다양한 서비스로 난시청지역을 해소하고 통신이용수준을 높이게 된다.

스페이스셔틀이 실용단계에 들어가면, 관측기구나 인공위성 자체를 스페이스셔틀에서 발사하는 것이 일반화될 것으로 보이며 그럴 경우에는 국적이 다른 승무원이 동승하게 될 것이다. 이미 1978년 3월에 발사된 소련의 소유즈 28호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인 우주비행사가 동승하였고, 이는 1977년 9월부터 비행을 계속하고 있던 살류트 6호 무인우주기와 도킹하였다. 이러한 방식의 국제우주선은 그 뒤 폴란드나 독일과의 사이에서도 실시되었다. 또한 1975년 7월에는 소유즈 19호와 아폴로우주선이 같은 날에 발사되어 도킹한 뒤 양쪽의 우주비행사가 옮겨탄 일도 있는데, 당시 최대의 곤란은 언어문제였다고 한다. 그러나 스페이스셔틀 등장 이후 우주개발에서의 국제협력은 여러 형태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각국의 우주개발체제와 그 주요기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정부의 한 기관으로서, 미국전역에 시설을 갖추고 항공·우주에 관련된 연구와 개발을 하고 있다. 부속기관으로는 존슨 우주센터, 마셜우주비행센터, 케네디우주센터, 고더드우주비행센터, 제트추진연구소, 랭글리연구센터, 루이스연구센터, 전자공학연구센터 외에 전세계에 산재해 있는 데이터 수집시설을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유럽우주연구기구(ESRO)와 유럽로켓개발기구(ELDO)가 분리되어 있었으나, 1975년 5월에는 유럽우주기구(ESA)로 통합되었다. 가맹국은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네덜란드·스위스·벨기에·덴마크·스웨덴·에스파냐·아일랜드 등 11개국으로 본부는 파리에 있다. 프랑스는 ESA의 주요 회원국으로 그와는 별도로 국립우주개발센터 및 기아나우주센터, 툴루즈우주센터를 두고 있다. 독일도 ESA의 주요 회원국으로 우주연구개발실시기관인 항공우주연구소를 가지고 있다. 그외의 나라들도 각자 독특한 우주개발 체제와 기관들을 가지고 있다.

[우주개발의 장래]

우주개발에 관한 기술은 그 첨단적 성격으로 보아 점점 더 깊고 넓게 발전되어 나갈 것이다. 그것은 또 폭넓은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세계 각국에서 거대과학의 특질을 나타내면서 활발히 진행되어 나갈 것으로 짐작된다. 더욱이 우주탐사 및 측지·항행 등의 실용면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그와 같은 측면의 발전은 과학·기술은 물론 인간 생활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주개발에 있어 경비의 증대는 큰 문제인데, 그 대책의 하나로서 스페이스셔틀의 실용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가까운 장래에 스페이스셔틀이 실용단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며, 우주개발도 비약적인 진전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동시에 우주개발을 통한 국제간 협력이 긴밀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홍용식>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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