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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05 (수)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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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중국 1=중화인민공화국 (한메)
중화인민공화국 中華人民共和國 People's Republic of China 중국 1

아시아 대륙의 중앙부에서 동쪽으로 태평양의 서단(西端)에 이르는 광활한 국토를 가진 국가.

중국이라고 약칭한다. 면적 957만 2900㎢. 인구 12억 2774만(1997). 동쪽으로 북한, 북쪽으로 몽골·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네팔·부탄, 남쪽으로 미얀마·라오스·베트남 등과 국경을 이루는데 그 국경연장은 약 2만㎞에 달한다. 남쪽은 황해·동중국해·남중국해에 접하고 있는데 해안선의 연장길이는 약 1만 1000㎞이다. 수도는 베이징[北京].

[자연]

<지질·지형>

세계 육지면적의 1/15을 차지하는 중국은 러시아·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으며 그 지형은 3단계의 계단식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제 1 단계 지역은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칭짱고원[靑藏高原;티베트고원·西藏高原]으로 평균해발고도는 4500m, 면적은 230만㎢에 달한다. 칭짱고원의 북단에 쿤룬산맥[崑崙山脈]과 치롄산맥[祁連山脈]이 거의 비슷하게 동서로 뻗어 있고 동쪽 끝에는 헝돤산맥[橫斷山脈]이 남북으로 놓여 있다.

제2단계 지역은 중국 북서부로부터 대부분의 중앙부를 차지하는 해발고도 1000∼2000m의 지역으로 준가얼분지·타림분지·쓰촨분지[四川盆地]·내몽골고원·황투고원[黃土高原]·윈구이고원[雲貴高原] 등 3분지와 3고원이 있는데 이 지역의 면적이 가장 넓다. 제2단계 지역과 제3단계 지역의 경계는 거의 남북방향이며 북쪽부터 대싱안링산맥[大興安嶺山脈]·타이항산맥[太行山脈]·우산산맥[巫山山脈]·우링산맥[武陵山脈]·쉐펑산맥[雪峰山脈] 등이 남부국경에까지 이른다.

이 경계로부터 동쪽이 해발고도 500m 이하의 제3단계 지역이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인류의 활동무대였던 곳으로 둥베이평원[東北平原]·화베이평원[華北平原]·창장중샤유평원[長江中下游平原]·포양분지 등이 있다. 이 지역의 동쪽 끝에는 동중국해가 있는데 수심 약 200m의 대륙붕이다. 중국의 이와 같은 대산맥의 기본 형태는 몇 차례의 조산운동을 거쳐 거의 중생대에 생긴 것이다. 새로운 강한 융기운동은 서부에서 가장 격렬하였다.

칭짱고원·히말라야산맥·쿤룬산맥·톈산산맥[天山山脈] 등은 모두 제3기 활동의 결과이다. 히말라야산맥의 시샤방마봉에서의 관측결과에 따르면 제3기 말 이래의 융기량이 약 3000m로 평균 1만 년에 약 30m가 상승했다는 계산이 된다. 중국과 네팔국경에 위치한 에베레스트산은 해발고도 8848m로 세계의 최고봉이다. 쿤룬산맥은 서쪽이 파미르고원에서 시작하여 칭짱고원의 중앙을 횡단하고 동쪽은 쓰촨분지에 이르며 길이 약 2500㎞, 평균해발고도 약 5000m이다.

동쪽에는 호흐시리산맥[可可西里山脈]과 바옌카라산맥[巴顔喀拉山脈]이 있어 양쯔강[揚子江]과 황허강의 분수령이 된다. 톈산산맥은 서쪽 끝이 키르기스스탄에서 시작되고 길이가 약 2500㎞, 해발고도 3000∼5000m이다.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는 톈산산맥에 의해 타림분지와 준가얼분지로 나뉘어진다. 톈산산맥이 융기했을 때 부분적으로 함몰하여 투르판분지[吐魯蕃盆地]·하미분지[哈密盆地]·옌치분지[焉耆盆地]와 일리곡지(谷地) 등이 생겼다. 투르판분지의 가장 낮은 곳은 해면보다 낮아 해면 밑 154m인 곳도 있다.

알타이산맥[阿爾泰山脈]은 러시아연방과 몽골 그리고 중국의 국경에 걸쳐 있으며 북서에서 남동으로 뻗어 있고 구조적으로는 톈산산맥과 같으며 몇 가지의 단계상사면(段階狀斜面)이 있다. 난링산맥[南嶺山脈]은 동서로 약 1000㎞이며 후난성[湖南省]과 장시성[江西省] 남부와 광시좡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광둥성[廣東省] 북부를 구획한다. 평균해발고도 약 1000m 정도이며 양쯔강과 남쪽 주장강[珠江]의 분수령이다. 그러나 봉우리가 연속되지 못하고 사이에는 해발고도 200∼400m의 낮은 산간 애로(隘路)가 몇 군데 있다.

대싱안링산맥은 내몽골고원의 동쪽을 북동에서 남서로 향해서 뻗은 해발고도 1000∼1400m의 기복이 완만한 산지이다. 동쪽사면은 경사가 급한 데 반하여 서쪽사면은 완만하다. 헝돤산맥은 칭짱고원의 남동부를 거의 남북으로 뻗은 세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선의 평균해발고도가 3000∼4000m이고 가장 높은 궁가산은 해발고도 7556m이다. 높은 능선과 능선 사이에는 비고(比高)가 2500m에 이르는 깊은 계곡이 있고 진사강[金沙江]·란창강[瀾滄江]·누장강[怒江] 등 몇 개의 강이 남쪽으로 흐른다.

내몽골고원은 칭짱고원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새로운 지질시대에 융기하였으나 칭짱고원만큼 융기량이 크지 못하여 해발고도가 1000∼1500m의 완만한 기복을 이루고 있다. 수백㎞의 고도차가 200∼300m이기 때문에 고원의 표면은 완만한 구릉과 같다. 제1단계와 제2단계의 경계, 제2단계와 제3단계의 경계, 그리고 제3단계와 태평양의 경계지대는 지각운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지진과 화산이 많고 지열도 높다.

대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은 류판산맥[六盤山脈], 쓰촨성 서부, 윈난성[雲南省], 타이항산맥의 동쪽기슭, 옌산산맥[燕山山脈]남쪽 기슭 등이다. 1966년 타이항산맥 동쪽의 싱타이[邢臺]대지진, 1970년 윈난성의 퉁하이[通海]대지진, 1976년 옌산산맥 남쪽의 탕산[唐山]대지진 등이 유명하다. 이 대지진으로 넓은 면적의 지면이 40∼50m씩 상승하거나 하강하였다. 지진·화산 지역에는 온천이 많아 약 1900개에 이르며 윈난성·광둥성·푸젠성[福建省] 등지에 분포한다. 칭짱고원의 해발고도 5500m지점에도 온천이 있어 90℃ 이상의 뜨거운 물이 나온다.

중국의 지형을 영력(營力)에서 보면 ① 유수작용(流水作用)이 주를 이루는 동부의 계절풍습윤구(季節風濕潤區) ② 풍력(風力)과 건조박식작용(乾燥剝蝕作用)이 많은 북서부의 건조구 ③ 주빙하작용과 빙하작용이 많은 칭짱고원구 등 3지역으로 나뉜다.

황허강[黃河]은 황투고원을 둘러싸듯 흐르는데 황투고원은 해발고도가 1000∼1500m이고 면적이 약 60만 ㎞²이며 그 70%가 제4기의 황토로 덮여 있다. 황토층의 두께는 50∼80m로서 최대 100m에 달한다. 중국 서부의 설선고원(雪線高原)은 알타이산맥 3000m, 칭짱고원 5500∼6000m, 에베레스트산 북쪽사면에서는 6200m이다. 빙하의 총면적은 4400㎞²이다. 제4기 빙하기에는 빙하활동이 북위 27∼28°까지, 윈난성에서는 북위 23° 부근까지 남하하였는데 북반구 전체와 비교할 때 상당히 저온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칭짱고원의 서부와 남부의 해발고도가 높은 지방에는 지금도 빙하가 있다.

대륙성기후이므로 영구동토(永久凍土)가 중국 전면적의 23%를 차지한다. 칭짱고원과 주요산지의 영구동토 분포의 하한해발고도는 히말라야산맥(북위 28∼29°) 5000m, 톈산산맥 중부(북위 42°) 2700∼2800m, 창바이산지[長白山地;북위 43°] 2200∼2300m, 대싱안링 남부(북위 43°) 1600∼1900m 등이다.

사막은 109만 5000㎞²로 전국 총면적의 11.4%에 이르며, 이 가운데 타림분지 서부에 있는 타클라마칸사막이 면적 32만 7000㎞²로서 중국최대의 넓이이다. 그중 유동사구(流動砂丘)로 덮인 면적이 85%이고 나머지는 고정 또는 반(半)고정사구지역이다. 유동사구가 높은 곳은 200∼300m에 달하지만 50m 정도가 80%를 차지한다.

중국의 토양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둥베이지구는 삼림토양으로, 북쪽부터 차례로 북부의 타이가토, 동부의 암갈색 삼림토, 남부에서 화베이의 습원토(濕原土)와 암갈색토, 양쯔강 중류·하류지역과 화난[華南]의 황색과 적색의 수전토(水田土), 남부 국경 근처의 순적색토와 라테라이트 지역 등이다. 한편 둥베이지구 중앙으로부터 내몽골과 황허강 중류지역에 걸친 밤색·갈색·회색의 사막토, 그리고 일부에는 풍사(風砂)가 분포한다.

서북부의 건조·반건조지역에는 회갈색과 갈색의 사막토가 널리 분포하고 있다. 칭짱고원과 그 밖의 높은 산지는 산지삼림토와 고산갈색토, 그리고 고도가 더 높은 곳은 고산사막토로 바뀐다. 중국은 또한 수계(水系)가 발달된 나라로서 유역면적이 100㎞² 이상의 하천이 5만 개가 넘는다. 바다로 유출되는 외류유역(外流流域)은 전국 총면적의 64%이며 그 밖의 것은 내륙유역(內陸流域)이다.

수계 가운데 태평양으로 흐르는 것이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이 유역은 강수량이 연 912㎜로 약 50억m ³이며 증발량 또한 연 517㎜, 28억m ³에 달한다. 황허강이 나르는 토사는 나일강의 34배에 이르는데, 1㎞²의 황토지역에서 매년 3700t의 토양을 침식운반하는 셈이다.

<기후>

중국 기후의 지역구분은 다음과 같다. ① 둥베이형:최한월(最寒月) 평균기온은 0℃ 이하이고 최난월(最暖月)은 10℃ 이상이다. 겨울에는 건조하고 여름에는 겨울의 10배 이상의 강수량을 기록한다. Ia, Ib는 저지이므로 최난월의 월평균기온은 22℃ 이상이 된다. Ic, Id는 산지 또는 구릉지이므로 22℃ 이하이다. ② 북부 스텝형:증발량이 강수량보다 많고 저온이며 최난월의 월평균기온은 18℃보다 낮다. Ⅱa는 내몽골자치구의 스텝, Ⅱb는 몽골인민공화국의 스텝이다. ③ 북서부산악형:툰드라기후이다.

④ 북서부사막형:Ⅳa는 오르도스, Ⅳb는 고비, Ⅳc는 아루샤우루, Ⅳd는 타림, Ⅳe는 준가얼, Ⅳg는 차이다무[柴達木] 등의 분지 또는 사막지역이다. ⑤ 화베이형:북부는 스텝형이고 남부는 온대하우기후(溫帶夏雨氣候) 또는 온대다우기후(溫帶多雨氣候)로 최한월의 월평균기온은 0∼18℃ 이다. ⑥ 화중형[華中型]:연중 비가 고르게 오고 현저한 건기는 없다. 온도조건은 화베이형과 거의 같다. ⑦ 화난형:온대하우기후이지만 고온이다.

⑧ 하이난형[海南型]:최한월의 월평균기온이 18℃ 이상이고 열대사바나기후 또는 계절풍기후이다. ⑨ 서부형:북부는 냉대하우기후(冷帶夏雨氣候)로서 차고 남부는 온대하우기후로서 따뜻하며 지역차가 크다. Ⅸa는 윈난, Ⅸb는 티베트자치구 남동부, Ⅸc는 티베트자치구 동부, Ⅸd는 친링산맥[秦嶺山脈]이다. ⑩ 티베트형:고산기후로서 툰드라 또는 빙설기후(永久凍結氣候)이다.

이상과 같은 기후학적인 기후구분 외에도 농업에 따른 기후구분이 있다. 일평균기온이 10℃ 이상이 되는가의 여부는 식물의 성장에 중요하기 때문에 10℃ 이상을 유효온도라고 하며 유효온도 기간의 기온 합산을 유효적산온도(有效積算溫度)라고 한다. 이 원칙에 따라 중국을 구분하면 한온대·중온대·난온대·아열대·열대·칭짱고원지역 등 6기후구로 나눌 수 있다.

① 한온대:유효온도기간은 100일 이하, 유효적산온도는 1600℃ 이하이다. 농작물은 조생종의 봄밀·보리·감자 등을 생산하며 1년 1작이다. ② 중온대:만리장성 이북 지역과 준가얼분지로서, 유효온도기간이 100∼160일, 유효적산온도가 1600∼3400℃이다. 농작물은 콩과 봄밀이 주종을 이루며 1년1작이다. ③ 난온대:만리장성 이남으로 친링산맥과 화이허강[淮河江] 이북의 황허강 중류·하류지역과 타림분지이다. 유효온도기간은 160∼220일, 유효적산온도는 3400∼4500℃ 이다. 농작물은 쌀·옥수수·수수·면화·겨울밀이 주종을 이루고 1년2작 또는 2년3작이다.

④ 아열대:친링산맥과 화이허강 이남의 넓은 지역으로 양쯔강·주장강 유역과 윈구이고원의 거의 대부분이 포함된다. 유효온도기간이 210∼365일, 유효적산온도가 4500∼8000℃이다. 농작물은 대부분이 1년2작 이상이며 쌀은 2모작이 가능하다. ⑤ 열대:광둥성의 해안부 레이저우반도[雷州半島], 하이난섬, 윈난성의 남부지역이다. 유효온도기간은 거의 1년이고 유효적산온도는 8000℃ 이상이다. 쌀은 3모작이 가능하고 사탕수수는 1년4작, 야자·고무·마·후추·코코아 등 열대작물을 재배한다. 열대우림으로 산림자원이 풍부하다.

⑥ 칭짱고원지역: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에 저온이고 유효적산온도가 2000℃ 이하이다. 공기가 맑기 때문에 투과일사량(透過日射量)이 크다. 10월부터 5월까지 제트기류로 인해 바람이 강한데 특히 오후에 바람이 심하다. 이 지역 남부의 해발고도가 낮은 지방은, 저지에서는 쌀을, 경사지에서는 감귤류와 바나나를 재배하면서 국지적 기후의 조건을 활용하고 있다.

장마가 시작하는 날과 끝나는 날, 장마기간중의 강수량 등은 해마다 다르다.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는 화난 5월 말, 양쯔강유역 6월 중순, 화이허강유역 6월 말 무렵이며 장마기간도 해마다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양쯔강 중류·하류유역의 장마기간은 짧은 해에는 11일, 긴 해(1954)에는 49일이었다. 장마가 끝나면 성하(盛夏)의 계절이 되며 이것을 보통 루푸[入伏]라고 한다. 북태평양고기압이 대륙 위로 진출하므로 날씨가 맑고 고온이며, 국지적으로 뇌우가 동반되지만 광범위한 강수는 없다. 이것을 성하의 소건조기로서 푸한[伏旱]이라고 한다.

<생물상>

중국 식물계는 식생(植生)의 종류가 복잡하고 식물의 종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중국의 고등식물은 아한대(亞寒帶)·온대·열대에 속하며 3만 2000종 이상이 있고, 식물군계(植物群系)는 고북극군계(古北極群系)·중앙아시아군계·북아메리카군계·히말라야군계·인도말레이시아군계·일본군계·범세계군계·중국특산군계 등으로 복잡하게 분류된다. [지도]는 식생의 지역구분도이다.

Ⅰ의 한온대침엽림구역의 55%는 천연림으로 싱안낙엽송이 75%를 차지하며 등피나무·몽골소나무 등이 있다. 2차림은 자작나무이다. Ⅱ는 온대침활엽혼교림구역(溫帶針闊葉混交林區域)으로 창바이소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Ⅲ의 난온대낙엽활엽림구역(暖溫帶落葉闊葉林區域)에서는 단풍나무·자작나무·벵골보리수 등이 주종을 이룬다. Ⅱ에 가까운 랴오둥반도[遼東半島]와 산둥반도[山東半島] 에는 상수리나무와 소나무가 많다.

Ⅳ의 아열대상록활엽림구역(亞熱帶常綠闊葉林區域)은 해발고도에 따라 다르지만 열대삼림과 비슷하다. 삼림의 상층에는 너도밤나무과에 속하는 것이 많고 중층에는 애기동백나무과에 속하는 것이 많다. Ⅴ의 열대계절풍우림과 우림구역에서는 높이가 40m에 이르는 상록수에 넝쿨과 착생식물(着生植物)이 자란다. Ⅵ의 온대초원구역에는 가늘고 굳은 잎의 싹이 대초원을 이룬다. Ⅶ의 온대황막구역(溫帶荒漠區域)은 식생이 거의 없거나 매우 빈약하다. 오아시스에는 황철나무가 있고 염호(鹽湖) 주변에는 염생식물(鹽生植物)이 자란다. Ⅷ의 칭짱고원 고한식피구역(高寒植被區域)에서는 남향사면(南向斜面)에 초원이 펼쳐져 있다.

고원황막지대에는 작은 관목이 있을 뿐이다. 중국에 생존하는 육생척추동물은 2091종이 있어 현재 알려진 세계의 총종수의 9.9%이다. 양서류가 196종으로 세계의 7%, 파충류가 315종으로 5%, 조류가 1166종으로 13.5%, 포유류가 414종으로 9.7%이다. 중국은 제4기 이후 대륙빙하에 덮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비교적 오래되거나 진귀한 종류가 현존한다. 자이언트팬더는 현재 헝돤산맥 북부와 그 주변에서만 살고 있다.

[지지(地誌)]

중국은 전체적으로 볼 때 농업과 공업 모두 지역차가 있는데, 이는 배경이 되는 지형과 기후 등 자연조건과 지하자원의 부존상황 등에 기인한다. 농업의 중심은 총국토면적의 12%를 차지하는 평야와 10%를 차지하는 구릉 속의 소평지이고 대부분 바다에 가까운 동부에 집중되어 있다. 비교적 강수량이 많고 특히 친링산맥과 화이허강을 잇는 선의 남쪽은 연강수량이 1000㎜ 또는 그 이상인 습윤지역으로 논벼재배의 중심지이다. 이 선의 이북은 비교적 강수량이 적고, 수리시설의 개선으로 벼농사가 약간 증가했지만 여전히 보리와 잡곡이 중심이다.

총면적의 19%를 차지하는 분지가 있으나, 농업을 영위하는 비옥하고 넓은 분지는 쓰촨분지뿐이다. 국토의 서부는 동부와는 대조적으로 비가 적고 초원과 사막, 그리고 고비(礫質沙漠)가 많다. 국토 전체의 33%가 산지이고 26%가 고원인데, 대부분이 대싱안링산맥·타이항산맥·쉐펑산맥을 잇는 선을 경계로 하여 서쪽에 있다. 황투고원과 윈구이고원에서는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생산성은 낮다. 칭짱고원 북서부에는 한랭하고 건조한 한대사막(寒漠)이 있다. 에너지자원의 부존상황도 지역 차이가 큰데, 북부에는 석탄의 매장량과 석유의 생산량이 많고 남부는 하천유역에서의 포장수력(包藏水力)이 많다.

<둥베이>

둥베이지구는 헤이룽장성[黑龍江省]·지린성[吉林省]·랴오닝성[遼寧省]으로 이루어진다. 동쪽과 북쪽은 북한과 러시아에 접하고 서쪽에는 대싱안링산맥이 있으며, 남쪽에는 랴오둥반도가 바다에 돌출해서 보하이[渤海]와 황해(黃海)를 양분한다. 중국·러시아의 국경을 흐르는 헤이룽강의 남쪽에 소싱안링산맥[小興安嶺山脈]이 있고 북한과의 국경에는 창바이산맥이 가로놓여 있다. 이 산지들에 둘러싸여 중국 최대의 평원지대인 둥베이평원이 펼쳐지는데 이 평원은 남쪽의 랴오허평원[遼河平原]과 북쪽의 쑹넌평원[松嫩平原]으로 나뉜다.

쑹넌평원은 헤이룽강의 지류인 쑹화강[松花江]과 넌강[嫩江]유역에 해당된다. 또 쑹화강과 중국·러시아의 동부국경을 흐르는 우수리강[烏蘇里江]이 헤이룽강의 본류와 합류하는 지점 근처에 있는 습지성의 산장평원[三江平原]에는 많은 국영농장이 있다. 이들 농장에서는 봄밀과 옥수수 등의 식량작물 외에 콩·사탕무·아마·해바라기 등 상품작물의 재배가 성행하고 있다. 주변산지에는 침엽수의 원생림이 분포하며 종이와 펄프의 주요공급원이 된다. 랴오둥반도에는 사과농장이 많고 단둥[丹東]에서는 양잠업이 활발하다.

지하자원은 헤이룽장성과 랴오닝성에 석탄의 매장량이 많다. 석유도 전국생산량의 50%를 생산하는 헤이룽장성의 다칭유전[大慶油田]이 있고 지린성의 푸위유전[扶余油田], 라오닝성의 랴오허유전 등이 있다. 다칭유전에서는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베이징·친황다오[秦皇島]·다롄[大連]·푸순[撫順] 등지로 원유를 직송한다. 수력발전소는 쑹화강의 바이산[白山]·펑만[豊滿], 압록강의 윈펑[雲峰]·라오후사오[老虎哨] 등이 있다.

둥베이지구는 본래 여진족(女眞族) 등 유목민족이 살던 곳이고 남부는 고구려의 땅이었다. 선양[瀋陽] 이남의 랴오닝성 일부에는 일찍부터 한족(漢族)이 정착하였으나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에 한족이 본격적으로 이주한 것은 비교적 근세에 와서이다. 즉 둥베이를 중심으로 활동한 만주족이 중국 본토를 정복하여 세운 청(淸)나라 후반기 이후이며, 19세기 말 이후에는 러시아제국과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고 특히 1932∼45년 사이에는 일본의 괴뢰정권인 <만주국>의 통치 아래 있었다.

중국 수립 후 제1차 5개년계획에서 일본이 안산[鞍山]·번시[本溪]·푸순 등에 건설한 광공업 시설을 복구·확장하면서 새로운 중공업시설을 건설하였다. 창춘[長春]의 자동차생산공장과 하얼빈[哈爾濱]의 발전설비공장, 선양의 각종 중화학공업시설이 있으며 선양을 중심으로 하는 랴오닝성 북부는 대표적인 중화학공업지대가 되었다. 지금은 랴오허유전과 랴오양[遼陽]의 석유화학 등 새로운 산업시설이 생겼다. 에너지의 수요도 늘어서 석탄생산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내몽골자치구의 이민강[伊敏河]·훠린강·톈바오산[天寶山] 등의 노천굴 탄광을 개발하여 그 부족분을 메우고 있다.

<황허강 중류·하류유역>

이 지구는 베이징·톈진[天津] 등의 정부직할시와 허베이성[河北省]·산시성[山西省]·허난성·산시성[陝西省]으로 이루어진다. 황허강의 중류부 양쪽에 펼쳐진 황투고원의 대부분과 황허강 하류부를 분수계(分水界)로 하여 그 북쪽의 하이허강[海河]유역과 남쪽의 화이허강유역을 합친 화베이평원이 포함된다. 동부에는 산둥반도가 황해에 돌출해 있다.

황허강은 길이가 5460㎞, 연간유출량이 480억t이다. 화베이평원은 황허강이 운반해 주는 비옥한 황토토양과 여름에 고온다우한 기후로 예로부터 발달한 농업지대였다. 겨울밀·면화·땅콩·깨·담배 등이 생산된다. 산둥반도에는 산이 많지만 경사지를 이용하여 포도·사과 등 과수를 재배한다. 황투고원의 산시성[山西省]과 산시성[陝西省]의 농업은 펀수이강[汾水]과 웨이수이강[渭水]유역의 작은 평야에서 보리·면화 등의 생산성이 높고 고원 위에서는 잡곡을 주로 생산하지만 생산성은 낮다.

이 지역의 석탄은, 매장량과 생산량이 모두 중국 제1인 산시성[山西省]과 생산량 제2위인 허난성, 제4위의 허베이성, 제6위의 산둥성과 산시성[陝西省]에서 생산되고 있다. 유전은 톈진의 다강[大港], 허베이성의 지중[冀中;任邱], 산둥성의 성리[勝利], 허난성의 중위안[中原]·난양[南陽], 보하이의 청베이 등에서 잇따라 개발되었다. 중국 성립 이래 종래의 카이롼·다퉁[大同]·자오쭤[焦作]와 함께 허베이성의 펑펑[峰峰], 허난성의 핑딩산[平頂山]·이마[義馬]·산시성[山西省]의 타이구란[太古嵐]·핑숴[平朔]·산둥성의 옌저우 등에서 새로이 탄광이 개발되었다.

또 룽옌[龍煙], 첸안[遷安] 철광산의 확장 및 개발에 따라 베이징·탕산·타이위안[太原]·한만[邯鄲] 등지에 중·대규모의 제철소가 건립되었다. 치보·창저우[滄州]·텐진·베이징 등지의 석유화학과 정저우[鄭州]의 방적기계, 뤄양[洛陽]의 트랙터, 베이징·시안[西安]의 전기기계와 항공기, 타이위안의 대형기계, 지난[濟南]·베이징의 자동차, 카이펑[開封]의 화학, 바오딩[保定]의 필름, 스자좡[石家莊]·한단·셴양[咸陽]·시안·정저우·위츠[楡次] 등의 면방직, 산하이관[山海關]의 교량용 철재 등 다양한 공업이 발달했고 베이징·톈진 등은 중화학공업과 경공업이 동시에 발달한 종합공업도시로 발전하였다.

이 지역은 황하문명의 발상지로서, 시안·뤄양·카이펑·베이징을 비롯하여 한단·취푸[曲阜]·타이위안·쉬창[許昌] 등 역사적인 도시가 많으나, 이 도시들도 각각 특징 있는 근대적 공업도시로 바뀌고 있다. 특히 베이징은 중국의 수도로서 정치·문화·교육·경제·통신·교통의 중심지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다.

<양쯔강 중류·하류유역>

이 지구는 후베이성[湖北省]·후난성·장시성·안후이성[安徽省]·장쑤성[江蘇省]·저장성[浙江省]과 정부직할시 상하이[上海]가 포함되는데, 양쯔강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중국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양쯔강은 길이 6300㎞, 연간유출량이 9793억t으로, 길이는 황허강과 큰 차이가 없으나 황허강의 약 20배에 달하는 강물을 바다에 흘려보낸다.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도 많지만 황허강에 비해서 중류·하류에 큰 지류가 많다. 중류유역에는 량후평원[兩湖平原]과 포양분지가 있고 하류의 남북 양쪽 기슭에도 강남삼각주와 장화이평원[江淮平原]이 있다.

강남삼각주와 량후평원은 예로부터 곡창지대로 유명하며 지금도 쌀과 보리의 2모작과 쌀의 2기작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식량 산지이고, 장화이평원과 함께 면화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양쯔강 남쪽의 구릉지대에는 차나무밭이 분포하며 계곡에서는 채종(菜種)을 재배하고 있다. 산지에는 옻나무와 유동(油桐)이 많이 자라서 동백기름이 산출된다. 항저우만[杭州灣]에 가까운 저우산군도[舟山群島]는 중국 최대의 연안어장이다. 남쪽 해안은 어업도 하지만 원저우[溫州] 등은 감귤류의 산지이기도 하다. 강남삼각지에서는 양잠을 하며 저장성의 진화[金華]는 햄의 산지로 유명하다.

지하자원으로는 북부 화이허강 하류부근에 화이베이[淮北]·화이난[淮南]·쉬저우[徐州] 등의 탄전이 있으며 양쯔강 이남은 후난성에 탄전이 약간 있는 정도이고 나머지는 장시성의 핑샹[萍鄕]처럼 작은 탄전이 있을 뿐이다. 유전도 쑤베이[蘇北]·쳰장[潛江] 등 작은 유전뿐이다. 금속광물로는 마안산[馬鞍山]·다예[大冶]·어청[鄂城] 등의 철, 퉁링[銅陵]·다예·장시성 더싱[德興]의 동, 장시성 남부의 텅스텐, 후난성 주석광산(朱錫鑛山)의 안티몬, 수이커우산[水口山] 등의 납과 아연 등을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마안산·우한[武漢]·바오산[寶山]의 3대 제철소를 비롯하여 각종 중화학공업이 발달하였다.

특히 종합공업도시 상하이는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며 최신예의 바오산제철소와 진산웨이[金山衛]의 석유화학콤비나트도 있다. 화학공업도시로 석유화학이 발전한 난징[南京], 제철과 각종 기계공업이 활발한 우한, 국영제 2자동차공장이 있는 스옌[十堰]·주저우[株州]·샹탄[湘潭]·마안산 등 신흥 중공업도시와 이정[儀徵]·웨양[岳陽] 등의 석유화학공업도시가 있다. 한편 항저우·쑤저우 등 역사적인 도시에서도 견직물 및 다양한 기계공업이 발달했다. 이 공업도시들의 전력공급원으로는 단장커우[丹江口]·신안장[新安江] 등 많은 댐이 있고 양쯔강 본류에도 이창[宜昌]에 커저우바댐이 있다. 항저우만의 친산[秦山]과 양쓰강 하류의 전장[鎭江]에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될 계획이다.

<화난>

이 지구는 푸젠성·광둥성과 광시좡족자치구 등으로 이루어진다. 예로부터 중국 남방의 문호역할을 했으며 민족적·문화적으로 북방과 다르고 주체성이 강한 지역이다. 이 지역은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산지에서 유출되는 짧은 강들이 많은 곡저평지(谷底平地)와 작은 삼각주를 이룬다. 이 가운데에서 주장강삼각주가 가장 넓은 평야이다.

광시좡족자치구에는 카르스트지형이 발달되어 있다. 하이난섬과 5000여 개의 작은 섬들이 연안과 남중국해에 분포되어 있다. 이 지역 대부분이 북회귀선 남쪽에 있으며 연강수량은 중국에서 가장 많고 아열대식물과 열대식물이 번성한다. 농사는 벼농사가 주종을 이루고 2기작이 많으며 3기작을 하는 곳도 있다. 상품작물로서 사탕수수가 재배되고 주장강삼각주에서는 양잠을 많이 한다. 하이난섬에는 고무농장이 있고 커피도 재배된다. 바나나·파인애플·여주 등 열대과수와 감귤류도 재배한다. 그러나 산지가 많아 생산량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많은 이민자(華僑)를 냈다.

지하자원은 주장강 하구의 앞바다에서 하이난섬 연안을 거쳐 북부만까지의 연해부 해저에 석유 매장이 예상되어 외국 석유자본과의 합작으로 시굴이 진행되고 있다. 내륙부에는 약간의 철과 석탄자원 외에 텅스텐·주석·우라늄 등의 금속광물이 매장되어 있다. 에너지자원의 부족으로 광둥성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이러한 농산물·광산물을 기초로 하여 각종 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푸젠성의 산밍[三明], 광둥성의 광저우[廣州]·사오관[韶關] 등에는 중간 규모의 제철소가 있다.

주장강삼각주 등에는 근대식 제당공장과 제사·견직물 공장이 있고 마오밍[茂名]에는 석유화학공장이 있다. 난닝[南寧]·류저우[柳州]·광저우에는 기계공장이, 샤먼[廈門;아모이]·산터우[汕頭]에는 통조림공장과 전기기계공장이 있다. 1979년 홍콩[香港]과 경계를 이루는 선전, 마카오와 인접하는 주하이[珠海], 산터우, 샤먼 등이 경제특구로 지정되었고 외국자본에 대한 우대조치를 취하여 합작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수출품생산에 힘쓰고 있다.

하이난섬과 푸저우[福州]·광저우·잔장[湛江]·베이하이[北海] 등에서도 외자에 대한 개방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화교 및 그 밖의 외국자본과의 합작기업 유치에 힘쓰고 있다. 이것은 재외화교의 고향이 대부분 화난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다화[大化]·시진[西津]·신풍강(新豊江) 등에 대형댐이 있고 그 밖에 수많은 소규모 수력발전소가 있는데 이는 농촌전기공급에 이용된다.

<시난[西南]>

쓰촨성·윈난성·구이저우성[貴州省]이 포함되는데, 이 3성에는 많은 자치주와 자치현이 있고 티베트족·이족·먀오족[苗族]·야오족[瑤族]·타이족[泰族] 등 많은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 쓰촨분지는 <천부(天府)의 나라>라고 불리는 비옥한 땅으로 인구와 지하자원이 많다. 남쪽의 윈구이고원은 넓은 카르스트지대이고 돌리네는 바즈라고 불리며 이곳에 농경지가 집중되어 있다. 산이 많지만 기후가 좋아서 농사가 잘 되고 인구도 많다.

쓰촨성과 윈난성의 서쪽 반은 칭짱고원의 동쪽 끝이며, 남북으로 뻗은 험준한 여러 개의 산맥을 일컬어 헝돤산맥이라고 한다. 이 높은 산들 사이를 진사강(양쯔강 상류)·란창강(메콩강 상류)·누장강(살윈강 상류) 등이 깊은 협곡을 이루면서 남류한다. 막대한 포장수력을 가지고 있는데 쓰촨성의 궁쥐·퉁제쯔[銅街子], 윈난성의 루부화[魯布華]·톈성차오[天生橋], 구이저우성의 우장두[烏江渡] 등 대규모 수력발전소가 완성되었거나 건설중이다.

지하자원으로는 구이저우성의 수은, 윈난성의 구리·주석이 옛날부터 유명하다. 중국이 성립된 뒤 쓰촨분지의 석유·천연가스, 충칭[重慶] 부근의 철·석탄, 최근에 쓰촨성 남부의 판즈화[樊枝花]철광산·바오딩탄광[寶鼎炭鑛], 구이저우성의 류반수이[六盤水]탄전, 구이양[貴陽] 부근의 보크사이트 등이 개발되었다. 또 헝돤산맥 내부에서 다금속공생광상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쓰촨성쯔궁[自貢]에서는 천연가스 외에 지하염수를 이용한 제염도 성행하고 있다.

농업에 있어서는 쓰촨성이 중국 유수의 곡창지대로 쌀과 보리를 생산한다. 윈난성·구이저우성에서도 쌀 외에 옥수수가 많이 생산된다. 윈난성·쓰촨성에서는 사탕수수와 면화의 생산이 많다. 쓰촨성은 양잠과 채종·감귤의 생산이 전국 제1위이다. 구이저우성·윈난성에서는 담배가 많이 생산된다. 공업은 쓰촨성 두커우[渡口]의 판즈화제철소 외에 충칭의 제철소, 구이양의 알루미늄공장, 쯔궁의 화학비료공장이 있다. 청두[成都]도 큰 공업도시로 방직과 기계 등이 생산되고, 촉금(蜀錦)·마오타이주[茅臺酒;貴州省] 등이 있다.

<칭짱고원>

칭하이성[靑海省]과 티베트자치구가 포함되며 주민 대부분이 티베트족으로 종교는 거의가 라마교이다. 교통이 불편하여 인구밀도가 희박하였지만 최근에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칭짱고원의 남쪽에는 히말라야산맥이 있고 북쪽에는 쿤룬산맥 등이 있다. 고원에는 캉티쑤산맥[岡底斯山脈]·탕구라산맥[唐古拉山脈]·바옌카라산맥·아니마칭산맥[阿尼瑪卿山脈] 등이 있다. 모두 만년설과 빙하가 덮여 있는 고산이지만 고원과의 비고차(比高差)는 별로 없다.

고원은 산맥으로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강수량이 매우 적고 한랭하며 건조한 한대사막도 있다. 농경지는 야루짱부강[雅魯藏布江;브라마푸트라강 상류]의 곡저평야와 칭하이성의 시닝[西寧] 부근, 차이다무분지[柴達木盆地]의 골무드[格爾木] 부근에 있을 뿐이다. 그 밖의 대부분은 초원이며 주로 야크를 방목한다. 해발고도 3000m 전후의 낮은 농경지에서는 밀의 재배도 가능하지만, 고냉지에서 재배되는 것은 내한성 보리에 속하는 쌀보리 정도이다.

지하자원은 석탄이 해발고도 5000m의 마르찰라탄광을 비롯하여 칭하이성의 다퉁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석유는 차이다무분지 서부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나 본격적인 개발을 하지 않고 있다. 차이다무분지의 수칸후염호에서는 칼륨염을 채취하고 시톄산[錫鐵山]에서는 납과 아연을 생산한다. 황허강 본류인 룽양샤[龍羊峽]에 대규모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었고 티베트자치구에서는 라사[拉薩]의 북서쪽 양바징[羊八井]에 지열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 행정·문화·공업·교통의 중심지는 라사와 시닝이며 공장건설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시닝에는 모방직·식품·기계·의약품 등의 공장이 많다. 골무드·렁후[冷湖] 등에도 공업이 발달했고 닌치의 근대식 모방직공장도 유명하다.

<서북>

간쑤성[甘肅省]·닝샤후이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신장웨이우얼자치구로 구성되었다. 지역은 광대하지만 근대적 산업이 적고 인구가 희박한 과소지대(過疏地帶)이다. 중국에서 가장 깊숙한 내륙이며,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옛날에는 실크로드가 있었다. 신장웨이우얼자치구는 중앙을 동서로 가르는 톈산산맥에 의해 북쪽의 준가얼분지와 남쪽의 타림분지로 나뉜다. 타림분지의 한가운데는 타클라마칸사막이며 주변의 고비지대에 오아시스가 산재하여 관개농업을 한다. 준가얼분지의 톈산산맥의 북쪽 기슭에서도 관개농업을 하며 모두 밀·면화·사탕무 등을 생산하고 있다.

또 준가얼분지는 타림분지보다 강수량이 약간 많기 때문에 초지의 비율이 높고 양과 염소를 많이 방목하고 있다. 간쑤성의 동부는 황투고원이고 북서부는 허시후이랑[河西回廊]이라고 하는 고비지대로서 주취안[酒泉]·둔황[敦煌] 등의 오아시스가 있다.

닝샤후이족자치구에서는 황허강에서 끌어들인 용수로를 따라 농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는 강한 대륙성기후로, 타림분지에는 연강수량 15㎜ 이하의 건조지역도 있고 투루판은 여름에 그늘에서도 48℃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지하자원으로는 닝샤후이족자치구의 스쭈이산[石嘴山]·스탄징[石炭井], 간쑤성의 란저우[蘭州]·우웨이[武威],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하미·우루무치[烏魯木齊] 등에서 석탄이 생산된다.

석유의 경우 위먼유전[玉門油田]은 쇠퇴했지만 간쑤성 동부의 창칭[長慶],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커라마이[克拉瑪依]를 비롯하여 닝샤후이족자치구와 타림분지에서 발견되었다. 간쑤성 바이인[白銀]의 동, 진창[金昌]의 니켈, 징톄산[鏡鐵山]의 철 등 많은 금속이 발견되었고, 자위관에는 제철소가 있다.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커라마이·두산쯔[獨山子]·우루무치, 간쑤성의 란저우에는 석유화학공업이 발달했고 황허강의 류자샤[劉家峽]·바반샤[八盤峽]·옌궈샤[鹽鍋峽]·칭퉁샤[靑銅峽]에는 수력발전소가 있다.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서는 면·모의 방직물(紡織物)·융단(絨段)·옥기(玉器)를 생산한다.

<내몽골>

동쪽의 대싱안링산맥에서 오르도스지방을 거쳐 서쪽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와의 경계까지 경도 약 29°에 걸쳐 있는 중국의 북단부로 면적은 120만 ㎞²에 달한다. 몽골고원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북쪽은 몽골국과 경계를 이룬다. 서반(西半)은 바다인자란 등의 대사막과 넓은 고비이기 때문에 식생이 적은 건조지역이지만 동반(東半)은 강수량이 약간 많아서 좋은 초원을 이루어 몽골족에 의한 방목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남동쪽은 한족들의 경작지역이다.

또 오르도스지방의 우위안[五原] 부근에서는 황허강에서 물을 끌어 관개농업으로 봄밀·잡곡(조·옥수수)·사탕무·감자·유료작물(油料作物) 등을 생산한다. 가축은 삼하마(三河馬)·삼하우(三河牛) 등을 비롯하여 양·소·말 등이 많다. 지하자원으로는 철과 희토광물(稀土鑛物) 등이 있어 바오터우[包頭]제철소의 원료로 사용된다. 또 이민강[伊敏河]·훠린강·톈바오산·준가얼·우다[烏達] 등에는 대규모 탄전이 있다. 지란타이염지[吉蘭泰鹽池]의 소다는 우하이[烏海]에 있는 화학공장의 원료로 사용된다. 공업이 발달한 지역은 구도(區都) 후허하오터[呼和浩特]와 그 밖에 바오터우·우하이·츠펑[赤峰]·퉁랴오[通遼] 등지이며, 몽골 국경 근처의 엘롄하오터[二連浩特]에서는 최근 석유가 개발되고 있다.

[역사]

<중국의 성립>

1949년 10월 1일 중국공산당은 베이징에서 중국의 성립을 선언하였고, 국민정부군을 대륙에서 몰아냄으로써 거의 중국 전 국토를 평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는 안팎에 걸쳐서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국가조직면에서 당을 기축으로 국가를 통치한다는 방침에 변함은 없었지만, 당이 그대로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 전체를 대표하는 국가형태를 이룩해내는 노력이 필요했다.

만 18세 이상의 남녀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주어 인민대표 1226명을 선거로 선출하여 1954년 7월 베이징에서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헌법과 그 밖의 중요법안을 가결했으며, 국가주석에 마오쩌둥[毛澤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에 류사오치[劉少奇], 국무원 총리에 저우언라이[周恩來] 등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중국정부가 변경인 옌안[延安]에서 문화가 오래되고 인습의 골이 깊은 베이징으로 진출하자, 간부당원 사이에서는 독직·낭비·관료주의의 경향이 나타났고, 당은 이를 배제하기 위하여 이른바 3반운동(三反運動)을 창도(唱導)해야만 했다. 정풍운동(整風運動)이라고 일컫는 이와 같은 숙청은 문예·학술 분야로도 확대되어, 애매한 혐의로 희생되는 사람이 속출하였다.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던 중국정부는 소련식 중공업국가 건설을 목표로 1953년부터 제1차5개년계획에 착수하였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그 뒷받침이 되는 농업진흥이 필요했으므로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농촌의 공산화를 꾀하였고, 1955년부터 생산합작사(生産合作社:후의 人民公社)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지방에서 혼란을 일으켰으며, 생산이 감퇴되었다. 당중앙에서는 이것이 공산화가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속단하고, 1958년부터 <대약진운동>으로 농민의 협동화에 박차를 가하였고 생산증대를 강요하였다.

그 결과 생산은 더욱 감축되어 1959년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는 이런 실패를 반성하였고, 류사오치를 국가주석에 선임, 방침을 변경하였다. 농업이 1959년부터 3년 연속 대흉작으로 심각한 국난에 직면하자, 새 정부는 농촌의 지나친 공사화(公社化)를 중지하고 농가의 자류지(自留地;자기소비를 중심으로 부업에 의존하는 경작지)를 인정하였으며 자유시장을 부활시켜 농민의 생산의욕 증진에 힘썼다. 이 조정정책이 주효하여 1962년 무렵에는 생산도 회복되고 위기상태에서 벗어났다.

<문화대혁명>

이러한 조정정책은 공산주의의 원리, 특히 마오쩌둥의 의지와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동지를 규합하여 권력회복을 꾀하였다. 군부의 린뱌오[林彪]와 상의해서 배후를 굳혔고, 청소년들을 홍위병(紅衛兵)이라 하여 동원함으로써 이른바 문화대혁명을 추진하였다. 학교나 공장에는 대자보(大字報)를 내붙여 간부를 공격, 사퇴하게 하였으며 지방정부나 당간부도 이에 동조하지 않는 자는 추방하였다.

국가주석 류사오치, 당총서기 덩샤오핑[鄧小平]과 그 계파의 간부가 모두 퇴진하였고 마오쩌둥이 복귀했으나, 이 무렵에는 그의 지도력이 이미 쇠퇴기에 들어서, 대신 린뱌오가 실권을 장악하고 마오쩌둥의 처 장칭[江靑]과 신진인사인 왕훙원[王洪文]·장춘차오[張春橋]·야오원위안[姚文元] 등 4명이 그 뒤를 이었다. 문화대혁명운동의 처음 의지는 어디까지나 언론투쟁이었으나 이 운동의 주력이 청소년 쪽으로 옮겨지자 군중심리에 선동된 폭도들의 파괴적 충동을 차단할 수 없었다.

학교는 교사가 추방됨으로써 휴교를 하게 되었고, 공장은 자본주의적인 기계가 파괴되어 휴업상태에 빠졌으며, 고적과 사찰도 봉건적 유물이라 하여 파괴되었다. 이 폭동이 수습되고 질서가 회복된 것은 69년 무렵이었다. 마오쩌둥은 당주석으로서의 실권은 회복하였으나 지도력을 완전히 잃어 린뱌오나 장칭의 망동을 막지 못하였다.

린뱌오는 마오쩌둥의 저술 가운데서 좋은 어구를 골라내어 《마오주석어록[毛主席語錄]》을 편집하고 스스로 서문을 작성하여 전국민, 특히 학생과 청소년들에게 매일 암송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마오쩌둥이 우상화되었고 린뱌오는 제2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전국대표대회에서 린뱌오는 마오의 후계자로서 차기 당주석으로 지명되었으며, 이것을 당규에 넣도록 하였다. 여기에 반발한 장칭 일파와 격렬한 당쟁이 되풀이되었고 알력은 점점 심해져서 1971년 7월 신변의 위험을 느낀 린뱌오는 비행기로 국외탈출을 꾀하다가 내몽골 상공에서 추락, 목숨을 잃었다.

장칭 일파는 이른바 비림비공운동(批林批孔運動)이라 하여, 몇 천년 전에 사설(邪說)을 주창하여 중국사회를 정체(停滯)에 빠뜨렸다고 하는 공자와 함께 린뱌오를 극악무도의 표본처럼 비난하였다. 그러나 비림비공운동의 이면에는 저우언라이를 곤경에 빠뜨리려 한 계획도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유동적인 형세 속에서 장칭일파로부터 비방을 받은 것은 저우언라이로서도 심한 타격이었으나, 마오쩌둥의 신뢰를 받아왔던 그는 정적에 대항하는 가운데서도 실각중인 덩샤오핑을 등용하여 자신의 후임자로 생각할 만한 여유가 있었다.

1976년 1월 저우언라이가 세상을 떠나자 이러한 불안정한 균형이 깨지게 되었다. 마오쩌둥이 저우언라이 후임으로 무명에 가까운 화궈펑[華國鋒]을 대리총리로 기용한 것은, 당의 분열을 우려하여 그로 하여금 조정(調停) 역할을 하게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장칭·왕훙원·장춘차오·야오원위안, 이른바 4인방(四人幇)은 정권 탈취의 기회로 판단하고, 1976년 4월 청명절(淸明節)에 저우언라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군중이 톈안먼[天安門] 앞에 모여서 시위를 벌였던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덩샤오핑을 실각시켰다. 게다가 9월에 마오쩌둥이 죽자 장칭 일파의 권력회복운동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이에 신변의 위험을 느낀 화궈펑은 덩샤오핑 등 저우언라이파의 힘을 빌리고 군부의 원조를 얻어 4인방을 일망타진 체포, 재판에 회부하였다.

4인방이 몰락한 뒤 정계의 실권은 차츰 덩샤오핑에게 옮겨 갔다. 저우언라이의 후계자인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론을 영원한 진리로 생각하지 않고 실천 가능한 부분을 선택하여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는 달리 당내에는 아직도 무조건 마오쩌둥을 신봉하고 그의 이론을 빠짐없이 준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왕둥싱[汪東興] 일파가 있었다. 양자의 싸움에서 결국 덩샤오핑이 승리하여 왕둥싱은 추방되었다. 이와 함께 왕둥싱과 가깝고 태도가 애매모호한 화궈펑도 비판을 받아, 당주석과 국무원총리를 사임하고 당부주석이 되었다가 다시 당중앙위원으로 격하되어 정국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덩샤오핑은 최고실권자가 되었으나, 국가주석과 당주석 등 현직에 나서지 않고 1981년 국무원총리에 자오쯔양[趙紫陽], 당총서기에 후야오방[胡耀邦]을 내세워 놓고 눈에 띄지 않는 직책에서 군부를 장악하는 등 실력 있는 후견인 역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종래의 마오쩌둥 초기의 영원혁명론은 퇴색하고 대신 저우언라이가 주장한 상식적인 경제발전정책, 즉 농업·공업·국방 및 과학기술의 <4가지 근대화>가 지도원리가 되었고, 그 실현을 우선적으로 추구하였다.

과거의 극좌이론이 범한 과격하고 공상적인 정책이 차례로 조정되고 잘못 비판당했던 희생자의 권리와 죽은 사람의 명예도 회복되었다. 중국은 건국 이래 40여 년 동안 경제건설이 매우 침체되어 있었으나 현대에 안정을 얻어서 4가지 근대화에 매진하게 되었다. 근대화란 곧 서유럽화와 수정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K.마르크스나 마오쩌둥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한 일탈행위였다.

전에는 당내 좌파의 공격을 받아 좌절되었을 정책이 덩샤오핑 밑에서 지장 없이 수행된 것은 정권이 안정되어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그 배후에는 저우언라이가 오랫동안 키워 온 인맥과 새로운 정책을 요구하는 세계정세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서유럽화정책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농촌에서는 부(富)가 한곳에 치우쳐서 이른바 만원호(萬元戶;연간수입이 1만 元 이상인 집)가 생겨났다. 또한 권력자의 세력이 자손들에게 세습되는 세습귀족제가 다시 나타날 우려도 있었으나 이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중국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마오쩌둥의 이상(理想)은 아니었으며 문화대혁명 때에 가장 강력하게 규탄받았던 폐해이기도 하였다.

한편 경제 분야의 성과에 비해 정치 분야의 개혁은 부진하여 관료의 부정부패, 공산당의 권력집중 등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갔다. 1989년 4월 후야오방의 사망을 계기로 그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집회가 시작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민주화 요구 시위가 일어났다. 이에 대해 리펑[李鵬] 총리는 계엄령을 선포, 학생들의 무기한 농성이 진행되고 있던 톈안먼광장을 무력진압하여 사태를 수습하였다. 그러나 톈안먼 사태로 인하여 중국은 국제적 이미지를 흐리게 되었고 사회적·정치적 혼란을 겪게 되었다.

<국제정세>

중국은 건국 당시에는 옛 소련의 원조를 받는 일이 많았고, 그들과 동맹을 맺어 굳건한 단결을 자랑하였다. 제1차5개년계획은 소련식 중공업 건설을 목표로 하였고, 각종 플랜트를 수입하였으며 기술자를 초빙하여 그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옛 소련에서 J.스탈린이 죽은 뒤, 그의 독재 압정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는데, 그 비판 가운데 마오쩌둥에게 해당되는 것도 있었으므로 양국 사이에는 점차 위화감이 확산되었다.

옛 소련을 수정주의(修正主義), 중국을 교조주의(敎條主義)라고 서로 헐뜯는 노선전쟁이 고조되었고 1960년 옛 소련은 중국에 건설중이던 공장의 옛 소련 기술자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중국은 큰 타격을 받았으나 자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여 계획을 완성시켰다. 이와 같은 양국관계의 결렬 배후에는 현실적인 영토문제가 숨어 있었다. 오랫동안 중국령이었던 외몽골은 러시아혁명 때 소련 적군(赤軍)의 원조 덕분에 백군(白軍)을 쫓아내고 중국으로부터 독립(몽골인민공화국)함으로써 소련의 동맹국이 되었다.

중국은 소련이 구(舊)제정러시아시대의 팽창정책을 계속 수행하는 신(新)차리즘에 불과한 나라라고 비난하였다. 69년 우수리강 가운데의 작은 섬인 전바오[珍寶;다만스키]섬의 귀속을 둘러싸고 양국 사이에 무력충돌사건까지 일어났는데, 이는 중국이 더 이상 소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이것이 중국외교의 전환점이 되어 이후 중국은 서방 여러 나라의 국제사회로 복귀하려는 노력을 시작하였다.

1971년 국제연합에 가입하여 대만(臺灣) 대신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한편 미국이 후원하는 남쪽의 베트남공화국 내부의 부패·혼란을 틈타 중·소 양국이 지원하는 북쪽의 베트남민주공화국에 의하여 베트남이 통일되었으나, 베트남은 통일 후 전적으로 옛 소련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중국과의 국교단절을 서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국 내의 화교 및 중국계 인민에게 압박을 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계의 이면에도 영토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흩어져 있는 도서군(島嶼群)과 남해제도(南海諸島)를 모두 중국령이라고 선언하고, 베트남령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중국과 대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옛 소련을 가상의 적으로 삼은 미국은 중국에 접근을 꾀하여 72년 R.M.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하고 국교재개를 합의하였다. 1979년 미국은 중국과 우호조약을 맺고 대만과는 외교관계를 단절하였다.

옛 소련(러시아)은 오래 전부터 시베리아 개발을 열망하였으며, 제2시베리아철도 개통을 추진하면서 중국에 줄곧 화해를 요청하였다. 이에 중국은 외몽골로부터의 소련(러시아)군 철수, 베트남에 대한 원조 정지,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소련군 철수 등을 요구하여 큰 진전이 없었으나, 계속적인 노력 끝에 1989년 역사적인 양국정상회담의 성사로 30년 불화를 청산하였다.

[정치·외교·군사]

<정치개관>

중국은 한국의 3·1운동과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일어난 1919년5·4운동 이후 제국주의의 침략과 봉건적 지주제의 수탈에 반대하는·민주주의투쟁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 뒤 30년 동안 북벌전쟁·토지혁명전쟁·항일전쟁·국공내전(國共內戰) 등 4단계에 걸친 무장투쟁을 거쳐 1949년 중국을 수립, 사회주의로의 이행단계에 들어갔다. 중국은 노동자계급이 기본 주체세력이 되어 농민을 긴밀한 동맹자로 삼고 그 밖의 민주세력과 통일전선을 펴며 권력을 장악하였고, 이후 토지·주요자원·주요시설 등 생산수단의 공유화와 노동에 따른 분배제도를 시행하여 사회주의의 건설과 인민생활의 향상을 도모해왔다.

그러나 구제도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지도한 중국공산당의 경험부족과 당 최고지도자에 대한 과도한 개인숭배 등의 병폐가 나타났다. 1955년 농업의 집단화와 수공업·개인상업의 개조를 지나치게 서둘렀고 1958년 경제법칙과 객관적인 조건을 무시한 <생산대약진>정책을 시행하였다. 1966∼76년 계급투쟁이 없어야 할 사회주의 사회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서 국민경제와 사회·문화의 발전속도가 상당히 늦어졌다.

1978년 중국공산당 제11기 제3차중앙위원회의 총회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의 정치개혁과 개방정책이 채택되어 당의 노선과 정책은 대폭적으로 시정되었고 사회 전반에 걸친 근대화가 일정한 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1984년 이후 경제과열현상과 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등으로 개혁정책에 제동이 걸리는 듯 하였으나 1990년 이후 경제안정과 정치력에 힘입어 개방·개혁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정치제도>

중국의 현행헌법은 1982년에 제정된 것으로서 1954년·1975년·1978년의 헌법에 이어서 4번째의 헌법이다. 현행헌법은 제1조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계급을 지도계급으로 하는 노농동맹(勞農同盟)을 기초로 한 인민민주주의 전정(專政)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사회주의 제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근본제도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전정>이란 집권 또는 독재라는 의미로, 현행 헌법의 서언(序言)에서는 인민민주주의 전정은 실질적인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전정이라고 설명하였다.

중국의 국가최고권력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이고 그 상설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이다. 이 대표대회와 상무위원회가 국가의 입법권을 행사한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각 성(省)·자치구·직할시와 군대에서 선출된 약 3000명의 대표(이 가운데 20%는 여성)에 의해서 구성된다. 각 소수민족도 각각 적당수의 대표(전체의 13% 정도)를 갖고 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대의원의 임기는 5년이며 대표대회는 원칙적으로 매년 한번 회의를 개최하도록 되어 있고 헌법개정과 기본적인 법률의 제정, 인민공화국의 주석과 부주석의 선출, 인민공화국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선출, 전쟁과 평화문제의 결정, 그리고 그 밖의 주요직권을 행사한다.

중국의 최고행정기관은 국무원(國務院;中央人民政府)이고 총리 1명과 부총리 약간명, 국무위원 약간명, 각 부의 부장, 각 위원회의 주임, 회계검사장(會計檢査長), 비서장으로 구성되며 그 임기는 인민대표대회의 임기와 같다. 국무원 총리의 인선은 공화국 주석의 제청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선출하며 부총리 이하의 국무원 인사는 총리의 제청에 따라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인준한다. 국무원의 직권에는 행정법규의 제정과 결의·명령 등의 반포,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상무위원회에 대한 시안(試案)의 제출, 그리고 경제·사회 발전계획과 국가예산의 수립·집행, 그 밖에 헌법으로 규정된 많은 주요사항이 포함된다.

중국의 지도정당은 노동자계급의 전위인 중국공산당이다.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사상을 행동지침으로 삼는다고 82년 당의 제12차전국대표대회에서 결정된 현행 당규약에 규정되어 있다. 오늘날 중국공산당 당원은 5000만 명에 이르고 있으나 간부대열의 혁명화, 세대교체, 교육수준의 제고, 전문화가 요구되고 있다. 현행 당규약에는 중앙과 지방에 규율검사위원회가 신설되어 이에 따른 점검활동이 시작되었고 당중앙에는 서기국만 두고 주석과 부주석을 폐지함으로써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공산당 외에 중국국민당혁명위원회·중국민주동맹·중국민주건국회·중국민주촉진회·중국농공민주당·중국치공당(中國致公黨)·구삼학사(九三學社)·대만민주자치동맹(臺灣民主自治同盟) 등 8개의 민주정당이 있다. 이 정당들은 모두 조직이 작고 신규로 입당하는 청년이 많지 않지만 중국공산당과 각종 인민단체, 그리고 각계의 대표와 함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라는 통일전선을 조직하여 공산당과 장기공존·상호감독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에 힘쓰고 있다.

중국의 선거제도는 전국인민대표대회의 대표와, 성·직할시·구(區)가 설치되어 있는 시(市)의 인민대표대회의 대표는 한 급 아래의 인민대표대회에서 선출된다. 구가 없는 시와 시관할구·현(縣)·향(鄕)·민족향(民族鄕)·진(鎭)의 인민대표대회 대표는 선거민이 직접 선출한다. 만18세 이상의 중국국민은 민족·종족·성별·직업·출신계급·종교·교육정도·재산상황·거주기한 등에 관계없이 모두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진다.

중국의 사법기관으로는 최고인민법원과 지방의 각급 인민법원, 특별인민법원이 있다. 검찰기관으로는 최고인민검찰원, 지방의 각급 인민검찰원, 특별인민검찰원이 있다. 인민법원은 국가의 재판기관이며 사건의 심리는 원칙적으로 공개되고, 피고인은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중국에는 형법·형사소송법·민사소송법이 있지만, 인민들의 법률관념이 희박하여 전국적으로 준법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또 60여 만 명의 사법요원이 있지만, 법학을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은 8%에 불과해서 사법요원에 대한 수준 높은 사법교육이 시급한 실정이다.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인민단체로는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中華全國工商業連合會)·중화전국총공회(中華全國總工會;노동조합의 전국조직)·중국공산주의청년단·중화전국청년연합회·중화전국학생연합회·중국소년선봉대(中國少年先鋒隊)·중화전국부녀연합회 등이 있다.

<지방행정>

중국의 각 성·직할시·시·시관할구·현·향·민족향·진에는 모두 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부가 있다. 지방의 각급 인민대표대회는 지방의 국가권력기관이며 인민대표의 임기는 성·직할시·구가 설치되어 있는 시에서는 5년, 구가 없는 시·시관할구·현·향·민족향·진에서는 3년이다. 지방의 각급 인민대표대회는 행정구역 내의 경제와 문화, 공공사업의 건설에 대한 계획을 심사·결정한다.

현급 이상 지방의 각급 인민대표대회는 행정구역 내의 국민경제와 사회발전계획, 예산과 집행상황의 보고를 심사·승인한다. 현 이상 지방의 각급 인민대표대회에는 상무위원회를 두고, 성과 직할시의 인민대표대회와 상무위원회는 지방의 법규를 제정할 수 있다.

지방의 각급 인민대표대회는 각각 동급의 인민정부의 성장(省長)과 부성장·시장·부시장·구장(區長)·부구장·현장(縣長)·부현장·향장(鄕長)·부향장·진장(鎭長)·부진장을 선출하거나 파면할 권한을 가진다. 지방의 각급 인민정부는 지방의 각급 국가행정기관이다. 도시와 농촌에는 주민의 거주구역마다 주민위원회 또는 촌민위원회라고 하는 대중적 자치조직이 있어 거주구역의 공공사업과 공익사업을 관장하고 치안유지에 협력한다. 소수민족의 자치지역에는 자치기관으로 자치구와 자치주, 자치현의 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부가 있고 그 밖에 민족의 특징에 따라 자치조례를 제정하여 민족문화의 번영을 위한 행정을 시행하고 있다.

<외교>

1954년 국무원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인도와 미얀마를 방문하여 두 나라와 함께 평화5원칙을 제창하였다. 주권과 영토보전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상호내정불간섭, 평등호혜, 평화공존이라는 이 5원칙은 국제정세의 어지러운 변화를 극복하고 전세계의 호응을 얻어 많은 나라에서 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후 중국외교의 기본원칙은 평화5원칙을 준수하며 제3세계의 단결을 지원하고 피압박민족과 피압박인민의 반제·반식민·반패권투쟁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대소·대미관계는 오랫동안 불화가 계속되었는데 이는 1974년 국제연합 특별총회에서 덩샤오핑(당시 국무원 총리)이 주창한 <3개의 세계론>을 통해 명백해졌다. 3개의 세계론이란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미·소양대국을 제1세계로, 서유럽과 동유럽 여러 나라를 미·소 양대국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제2세계로, 미·소의 억압 밑에 놓인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및 그 밖의 발전도상국과 중국을 제3세계로 보는 견해로서 그 밑바닥에는 중·소 양국 공산당의 대립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시대의 도래, 1979년 이후 경제개혁을 위한 서방으로부터의 자본과 기술도입의 필요성, 동부유럽의 민주화 등을 경험하면서 더이상 외교적 고립상태나 민주화에 대한 억압이 이 시대에는 걸맞지 않음을 깨닫고 외교방침을 전환, 다방면으로 국제무대에 진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로써 비우호적인 국가들과도 관계를 개선하여 현재 130여 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다. 한편, 영국은 협정에 따라 홍콩의 주권을 1997년까지 중국에 반환하기로 되어 있다. 대만과의 관계는 1991년 이후 경제협력과 교류차원을 넘어서 통일을 향한 정치적 대화를 모색하는 단계로 접어들어 1992년 5월부터 중국 주민의 대만 왕래 절차를 간소화 하는 등 양측 관계가 진전되고 있다.

<군사>

중국 군대는 인민해방군이라 하고 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가 이를 통솔한다. 중국공산당 내에도 중앙군사위원회가 있고 당군사위원회의 주석과 부주석이 국가군사위원회의 주석과 부주석을 겸하는 전통이 있으므로 사실상 군대는 당에서 지도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해방군의 전투부대는 4개의 성에 걸쳐 있는 7개의 대군구(大軍區)로 나뉘어서 주둔하고 있으며 대군구는 다시 성군구(省軍區)로 세분된다.

전투부대는 명목상 국방부에 속하지만 지휘권은 군사위원회의 총참모장과 각 군구의 사령원(司令員)이 가지고 있다. 보병을 위주로 하는 단일병종(單一兵種)에서 출발하였으나 공군·해군, 포병·장갑병·공병, 철도병·통신병, 화학전부대·전략로켓부대 등을 창설, 혼성군으로 발전하여 지금은 여러 군종(軍種)과 병종(兵種)을 합친 혼성집단군이 조직되어 있다. 1984년 병역법을 개정하여 상비군을 줄이고 전시에 동원할 수 있는 예비군을 증가시켰다.

중국 해방군은 선발징병제(육군 3년, 공군·해군4년)를 채택하며 총병력은 400만 명 전후였으나 1985년 6월 100만 명을 삭감시킨다고 발표하였다. 그 뒤 병력의 삭감으로 인한 여유 예산으로 장비의 질을 향상시켜 전력의 현대화에 성공하였다. 1964년 처음으로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였고, 1966년 원폭과 미사일결합 실험을 하였으며, 1967년 수소폭탄도 보유하게 되었다.

(뒤에 계속)

<김현욱>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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