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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04 (화)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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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 토기 (브리)
토기 土器 earthenware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인간이 흙·물·불·공기 등 여러 가지 원료를 섞어 만들어낸 인류역사 최초의 합성물이다. 흙은 지구상의 어디에서나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이며 물과 섞어 반죽하여 여러 가지 모양을 빚어낼 수 있고, 마른 뒤에도 그 형태를 유지하며 불에 구우면 단단해진다. 또한 흙에 여러 가지 물질을 섞으면 흙의 성질을 개선시킬 수 있어 기능에 따라 다양한 토기 제작 기술이 발달한다. 토기를 넓은 의미로 말할 때는 일반 용기와 더불어 벽돌·흙인형 등 흙으로 빚어 만든 모든 것을 포함하지만 일반적으로 토기라고 할 때는 그릇으로 쓰이는 용기만을 말한다.

용기로서의 토기도 만든 방법이나 그릇의 성질에 따라 토기(土器 earthenware)·석기(器 stoneware)·자기(磁器 porcelain/celadon)로 나누어진다. 토기는 석기나 자기와 몇 가지 점에서 구분된다. 토기는 900~1,200℃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구워 유리질화되지 않은 상태로, 기공이 많고 흡수력이 높은 편이며 표면의 색과 질감이 각양각색이다. 자기는 1,400℃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 완전히 유리질화하고 흡수력이 없으며 단단하고 흰색 또는 반투명한 빛깔을 띤다. 석기는 토기와 자기의 중간 성질을 띤 것으로 자기에 가까운 편이나 바탕흙에 불순물이 섞여 있어 회색 또는 황갈색을 띤다.

기원

토기의 기원에 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바구니 같은 용기를 보강하기 위해 찰흙을 발라 쓰던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 흙을 말려 열매나 풀을 담기 시작하면서 차차 불에 구워 단단하게 만들어 쓰게 되었다는 설, 신석기시대에 음식물 저장의 필요성과 조리방법의 변화에 따라 토기를 만들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토기는 고고학상의 시대구분에 따르면 신석기시대 이후에 만든 것으로 나타난다.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에 있는 차탈휘위크의 신석기시대 촌락에서 발굴된 조잡하고 푸석푸석한 토기는 약 9,000년이 지난 것으로 생각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신석기시대 초기의 유적인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유적에서 6,000~7,000년 전에 만들어 쓴 토기가 나오고 있다.

이제까지 나타난 세계 최고의 토기는 일본 서북지방에서 1만 2,000년 전에 만든 토기라는 설도 있다. 서아시아에서는 BC 7500년부터 햇볕에 말린 벽돌을 이용하여 집을 짓고, 흙인형과 그릇들을 만들어 쓰기도 했다. BC 4000년경 이집트의 선 왕조시대에는 유약을 바른 토기도 만들게 되었다.

제작 방법

토기를 만드는 방법은 손으로 빚는 방법과 물레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물레를 이용하면 보다 정연한 형태의 용기를 만들 수 있다. 물레를 이용한 토기제작은 BC 4000년경부터 나타났다. 손으로 빚는 방법은 다시 3가지로 나누어진다. 반죽한 흙을 손으로 주물러 모양을 내는 손빚기, 고리 모양의 흙을 쌓아나가는 테쌓기, 흙띠를 돌려 쌓아나가는 서리기 방법 등이 있다. 작은 그릇을 만들 때는 손빚기로 간단히 만들 수 있으나, 큰 그릇을 만들 때는 테쌓기나 서리기 방법을 이용한다. 그릇꼴을 만든 다음에는 그릇벽을 다듬어 마무리하게 되는데, 그릇벽을 다듬는 방법으로는 물손질·빗질·깎기·긁기·흙물입히기 등이 있다. 그릇벽을 다듬고 나면 그릇에 무늬를 넣거나 색칠을 하게 된다.

토기에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민무늬토기[無紋土器]도 있지만 대부분의 토기에는 무늬장식이 있다. 토기 무늬는 실용성을 위한 것도 있지만 때로는 상징성과 예술성을 위해 장식을 한 경우도 있다. 무늬를 넣는 방법으로는 새기기·찍기·누르기·깎아내기·색칠하기 등이 있다. 한국의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는 새기기·누르기·찍기 방법들이 쓰이고, 청동기시대 붉은간토기와 검은간토기에서는 칠하고 나서 갈아낸 수법을 볼 수 있다. 중국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양샤오 문화[仰韶文化]의 채색토기는 색칠 수법의 전형을 보인다. 토기를 만들어 어느 정도 말린 뒤에는 불에 구워 단단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토기를 굽는 방법은 한데가마[露天窯]에서 굽던 것으로부터 차츰 높은 온도를 얻기 위한 가마시설로 발전했는데, 중국에서는 BC 4000년경의 양샤오 문화기에 이르러 반지하의 수직가마가 나타나 950℃의 높은 온도를 얻을 수 있었다. 가마에는 한데가마와 같은 열린가마도 있고 수직가마·수평가마·굴가마[登窯] 등 닫힌가마도 있다. 한데가마에서 구운 토기는 공기 중의 산소 공급이 많아 바탕흙에 섞여 있는 철분이 산화염 상태를 이루어 토기빛깔이 붉은색 계통을 띠게 되고 가마에서 구우면 산소가 부족해 환원상태로 되어 철분이 원래 색으로 돌아가 회색계통을 띠게 된다.

기능

토기는 일상 생활용기와 의례용기로 나눌 수 있다. 생활용기에는 조리용기·식생활용기·저장용기·운반용기 등이 있다. 조리용기는 음식물을 끓이거나 발효시키는 데 쓰이는 것으로 신석기시대에는 뾰족밑토기와 같은 형태가 많으나 그릇의 기능이 분화되면서 세발솥·시루 등으로 발전하고 그릇뚜껑이 있으며 음식물 찌꺼기가 붙은 채 유적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식생활용기는 음식을 담아먹는 그릇으로 크기가 작은 편이고, 사발·대접·접시·잔·병 등 그릇 모양이 기능에 따라 다양하다.

저장용기는 곡식·발효식품 등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데 쓰이는 것으로 항아리·독 등이 있으며 그릇이 크고 때로는 저장움을 따로 만들어 보관하기도 한다. 운반용기는 나르는 데 쓸 수 있도록 손잡이가 달린 것이 많다. 의례용기에는 독널[甕棺], 무덤에 껴묻거리로 넣어둔 용기, 그밖에 의식에 쓰이던 명기(皿器)·제기(祭器) 등이 있다. 의례용기는 생활용기와 그릇 형태에서 크게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용기에 비해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한국의 토기

우리나라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토기가 나타난다. 신석기시대에는 흔히 빗살무늬토기로 대표되는 새김무늬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민무늬토기와 덧띠토기, 붉은간토기 등이 일부 보인다. 빗살무늬토기는 도토리 모양의 뾰족밑 형태와 납작밑의 바리형토기가 있다. 뾰족밑토기는 서해안을 중심으로 남해안지역에까지 퍼져 있고, 납작밑토기는 동해안을 따라 분포하며 랴오둥[遼東] 지방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방의 신석기시대 토기들과 연결된다.

이제까지 나타난 결과로는 납작밑토기가 뾰족밑토기보다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나 두 형식 사이의 선후관계는 아직 뚜렷하지 않고 지역과 쓰임새에 따른 차이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빗살무늬토기에 이어 민무늬토기가 널리 쓰이게 되는데 토기에 무늬를 새기던 전통이 사라지는 것은 대량생산과 관계되는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시대 토기들은 고운 바탕흙에 얇게 빚어 무늬를 다양하게 새기고 있으나 민무늬토기에는 바탕흙에 굵은 모래알을 섞는 것이나 토기 크기가 작고 투박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실용성과 생산성을 중시한 것을 알 수 있다.

민무늬토기는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로 지역에 따라 특징적인 모습을 보인다. 평안남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한 서북지역에는 청동기시대 초기의 고인돌무덤과 집자리에서 팽이형 토기가 많이 나오고 그뒤를 이어 미송리형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미송리형 토기는 서북지방으로부터 랴오둥 지방에 걸쳐 비파형 동검과 함께 짝을 이루고 있어 고조선의 영역을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함경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지역에서는 구멍띠토기[孔列土器], 중부지방에서는 송국리형 토기 등 지역별로 특징 있는 토기들이 나와 문화유형에 따른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일정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문장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철기시대에는 그릇아가리에 흙띠를 붙여 보강한 점토띠토기와 적갈색경질토기가 나타나고 이어서 삼국시대 초기에는 와질토기(瓦質土器)가 옴무덤의 껴묻거리로 많이 나온다. 와질토기는 물레를 써서 빚은 정연한 형태를 보여주나 소성온도가 낮아 무른질을 띠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화도에서 구운 회청색 경질도기(硬質陶器)가 주를 이루나 연질의 적갈색 토기도 일부 만들어 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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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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