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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03 (월) 15:09
분 류 사전2
ㆍ조회: 966      
[국가] 루마니아 (두산)
루마니아 Romania

유럽의 남동부에 있는 나라.

I. 개관

위치 : 유럽 남동부
면적 : 23만 7500㎢
인구 : 2161만 6000명(2003)
인구밀도 : 91명/㎢(2003)
수도 : 부쿠레슈티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루마니아어
통화 : 레이(Romanian lei)
환율 : 3만 4039lei = 1$(2003.9)
1인당 국민총생산 : 1,720$(2003)

면적은 23만 7500㎢, 인구는 2161만 6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91명/㎢(2003)이다. 수도는 부쿠레슈티이고, 공용어는 루마니어어이다. 영어로는 'Rumania'로 표기하며, 루마니아어로는 로므니아(România)라고 한다.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동쪽으로는 몰도바, 서쪽으로는 헝가리, 남서쪽 및 남쪽은 도나우강을 경계로 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와 각각 국경을 접하며 남동쪽은 흑해에 면한다.

II. 자연

루마니아의 지형은 변화가 많으며, 전국토는 해발고도 800~2,300m의 산지, 200~800의 구릉·대지, 200m 이하의 평야로 거의 3등분되어 있다. 북에서 남동 방향으로 뻗은 카르파티아산맥은 국토의 중앙부에서 크게 서쪽으로 만곡(彎曲)하여 남(南)카르파티아산맥(트란실바니아알프스)을 이루어 서쪽으로 향하고 그 서쪽 끝에서 북과 남으로 분기하여 북쪽은 아프세니산지가 되고, 남쪽으로 향하는 산맥은 도나우강에 이르러 철문협곡(Iron Gate)을 지나 발칸산맥에 이어져 있다.

동(東)카르파티아산맥은 소메슈강(江)·무레슈강·올트강의 유역인 트란실바니아 대지와 프루트강·시레트강 유역인 몰다비아 대지와 자연적인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고도 2,500m 이상에 달하는 남카르파티아산맥은 도나우강 유역 루마니아평야의 북쪽 경계를 이룬다. 카르파티아산맥으로부터 남류하는 프루트, 비스트리차, 시레트, 부자우, 이알로미차, 아르제슈, 올트, 지우강은 그 어느 것이나 모두가 풍부한 자연미를 보여주는 계곡을 형성하고, 또 상류에서는 수력발전에 이용되고 있다. 도나우강은 불가리아와의 국경을 동쪽으로 흐른 뒤 도브루자 대지 서쪽에서 북으로 만곡하고 다시 몰도바와의 국경 근처에서 동으로 방향을 바꾸어 3개의 큰 지류를 중심으로 삼각주지대를 이루면서 흑해로 흘러 들어간다.

기후는 전체적으로 대륙기후로서 흑해 연안과 평야부의 평균기온은 11℃, 산지의 평균기온은 4℃이다. 강수량은 연평균 600∼700mm이다. 식생은 해발고도에 따라 변화하며, 삼림은 해발고도 300m 이상의 구릉·산지를 덮고 있으며, 떡갈나무·너도밤나무·전나무·자작나무 등이 생육하고 1,800m 이상은 하계의 목초지로서 이용되고 있다. 많은 하천·호소(湖沼), 특히 도나우강은 어류의 보고로서 송어·잉어·철갑상어 등의 어업자원이 풍부하다. 산지에는 사슴·여우·산돼지가 서식하며, 고지에는 알프스 영양이 살고 있다.

전국토 중 경작이 가능한 땅은 39.6%, 산림 및 잡목지는 26.7%, 작물재배지는 3%, 목초지는 19.9%, 포도원 및 과수원은 2.5%, 강·호수는 3.8%이며, 농축산업으로 이용 가능한 면적은 전국토의 62%이다. 수도 부쿠레슈티를 포함한 남부 및 남서부 지역은 지진 위험대이며, 약간의 호우에도 산사태가 발생한다.

III. 주민

루마니아 국민의 89.4%가 루마니아인이고, 그밖에 헝가리인(7.1%), 집시(1.7%), 독일인(0.5%) 외에 슬라브계, 터키인, 유대인, 우크라이나인 등 소수민족(3%)이 살고 있다. 루마니아인은 기원전부터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살고 있던 다키아인(人)과 2세기 초 로마제국에 의해 정복된 뒤 이탈리아로부터 이주해온 로마인과의 혼혈에 의해 이루어졌다. 루마니아인은 형질·언어면에서 라틴족에 가장 가까우나, 기타 종족, 특히 슬라브족과의 동화도 있었다. 종교는 그리스정교의 분파인 루마니아정교(87%)가 압도적이고, 그밖에 헝가리인이 가톨릭교(5%), 독일인이 프로테스탄트(3.5%)를 믿고 있다.

공용어는 루마니아어이며, 일부에서는 헝가리어·독일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구는 흑해 연안에서 평야를 거쳐 산지에 이르기까지 거의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그것이 루마니아의 주민거주 형태의 한 특색이 되고 있다. 산지에는 유럽 역사의 초창기부터 정착한 주민들이 거의 변화를 겪지 않은 상태 그대로 살고 있어서, 1,500m의 높이까지 취락이 형성되어 있고, 목장은 같은 높이까지, 농경지는 1,170∼1,290m 높이까지 개발되어 있다. 약간의 주요 도시를 제외하면 인구집중이 눈에 띄는 곳은 왈라키아나 그밖의 유전지대뿐이고, 또 인구희박지는 카르파티아산맥의 일부와 도나우강(江) 하구 삼각주의 일부 등 자연조건이 거주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에 국한되어 있다.

IV. 역사

예로부터 카르파티아산맥 남부에서 도나우강에 이르는 지역, 즉 오늘날의 루마니아 국토에 살고 있던 다키아인은 BC 1세기에 트란실바니아·왈라키아·몰다비아를 통일하여 강대한 노예제국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도나우강 유역을 점령하려는 로마제국과 전쟁을 벌여오다가 106년 트라야누스 황제의 군대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후 다키아는 약 1세기 반에 걸친 로마 속주(屬州)의 시대를 겪게 되는데, 6세기경 슬라브인이 북쪽으로부터 발칸반도로 진출해오기까지의 기간에 오늘날의 루마니아인 조상인 다키아계(系) 로마인(人) 및 라틴속어(俗語)로부터 발전한 루마니아어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4세기에서 14세기경까지 루마니아인은 역사의 표면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 동안 한편으로는 슬라브족과 동화·혼혈하면서 루마니아어를 유지해왔다. 트란실바니아는 13세기경에 헝가리 왕조에 의해 정복되어, 제1차 세계대전 후까지 헝가리 및 오스트리아의 정치적·문화적 지배를 받았다.

14세기에 카르파티아산맥의 동쪽 및 남쪽에 루마니아인의 봉건국가 몰다비아와 왈라키아가 성립되었으나, 발칸으로 진출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군사력에 눌려서, 19세기 후반까지 그들의 간접지배를 받으면서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 동안 반(反)투르크 투쟁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으나, 17∼18세기에는 투르크가 임명하는 파나리오트(Phanariots:그리스인 高官)에 의한 지배가 강화되어 그 동안 농민들의 궁핍이 극에 달하였다.

18세기부터 자본주의적인 경제체제가 완만하게나마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또 19세기에 들어와 서유럽, 특히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도 지식인들 사이에 보급되었다. 그리하여 1848∼1849년에는 전유럽의 혁명운동의 영향을 받아, 몰다비아·왈라키아 양 공국에서 선진적인 시민층과 지식인이 주동이 되어 투르크로부터의 독립, 농노해방, 의회제도의 창설 등을 요구하는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은 또 러시아-투르크 전쟁의 결과 양 공국에 대해 발언권을 가지게 된 러시아의 무력 간섭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크림전쟁의 결과 체결된 파리조약(1856)에 의해 러시아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된 몰다비아와 왈라키아는 1859년 양 공국 공동의 군주로서 A.쿠자를 선출함으로써 민족통일을 성취하였다. 쿠자는 국가의 근대화를 위한 민주주의적인 개혁에 착수하여 진보적인 농업·교육 입법을 실시하고, 농노해방을 실현하였으나 국내 반동세력의 반대에 부딪쳐서 1866년 퇴위를 강요당하고 말았다. 대신 독일의 호엔촐레른가(家)의 카롤 1세가 세습군주로 루마니아공(公)에 추대되어, 1947년 군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그 왕통이 지속되었다.

한편 1877년의 러시아-투르크 전쟁(제6차) 때 루마니아는 정식으로 투르크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국이 되었다. 그뒤 루마니아에서는 귀족·대지주를 배경으로 한 보수당과 신흥 중산층의 지지를 받은 자유당이 교대로 정권을 담당하였으나 정국은 항상 불안하였다. 역대 루마니아 정부가 직면하였던 문제의 하나는 농민문제로서, 대지주와 토지저당업자에 의한 이중착취하에 있었던 농민은 빈번히 폭동을 일으켰고, 특히 1907년 3월 러시아 제1혁명의 영향으로 발생한 대규모 농민봉기는 군대의 투입으로 간신히 진압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협상국측에 서서 참전한 루마니아는 국토의 대부분이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점령당하였고, 1917년에는 러시아혁명의 직접적인 영향에 말려들 위험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전쟁 후에 헝가리로부터 트란실바니아를, 불가리아로부터 도브루자를 획득하여 대(大)루마니아를 이룸으로써 혁명의 위기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석유개발 등에 따른 외국자본의 유입, 볼셰비즘의 서점(西漸), 세계공황에 뒤따른 나치 독일의 대두, 소련·불가리아·헝가리의 영토반환요구 등 불안한 국내 정세를 겪으면서 루마니아는 1930년대부터 독일·이탈리아에 접근하게 되었고, 1940년에는 I.안토네스쿠 장군의 파시스트 정권이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독일·이탈리아와 더불어 3국동맹을 맺고, 독일과 더불어 대(對)소련 전쟁에도 참가하였다. 루마니아의 공산화는 1944년 8월 소련군의 발칸 진출을 배경으로 일어난 쿠데타에 의해 안토네스쿠 정권이 타도됨으로써 실현되었다. 신정권은 소련과 강화를 맺고 독일에 선전 포고를 했으며, 1945년 3월 소련군 주둔하에 최초의 인민정권이 탄생하여 농지개혁을 실시하였다. 1947년 12월 군주제가 폐지되고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1948년 6월 루마니아의 주요 산업이 국유화됨으로써 사회주의 경제의 기초가 구축되었다. 1965년 새 헌법이 채택되어 국명도 루마니아 사회주의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동유럽 사회주의 제국의 개혁 물결이 고조되면서 일어난 1989년 12월의 혁명에 의해 국명이 루마니아로 환원되었다.

V. 정치

1944년 소련 침공 이후 소련통제하에서 1947년 결성된 노동당이 전국가회의를 장악하고 소련을 모방한 헌법을 채택하고 루마니아 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1965년 노동당은 공산당으로 개칭하고 민주집중제를 조직원리로 하여 1당제를 실시했다. 그후 1989년까지 정부관료와 군을 모두 장악하였다. 1974년에 1965년의 공산주의 헌법을 수정하여 인민공화국에서 사회주의공화국이 되었다. 중앙집권화된 계획경제의 실패로 1980년대부터 철저한 긴축재정을 실시했으며 국민생활은 빈궁해져 갔다. 1989년 동유럽 전역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독재를 고수하던 차우셰스쿠에 대항해 반정부시위가 발생하였다. 여기에 군대가 합세하여 정권을 대신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차우셰스쿠는 재판 후 사형되었다.

1990년 5월 대통령선거와 복수정당제에 입각한 총선거의 실시 결과, 이전 공산주의 지도세력의 연합인 국민해방전선이 자유시장 경제체제로의 점진적 전환을 주장하며 승리하였다. 그해 11월 3단계 가격자유화조치가 실시되었으나 경제사정 악화, 높은 인플레, 100만을 육박하는 실업자 문제로 정치적·경제적으로 과도기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991년 12월 신헌법을 제정하였고, 1992년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해방전선(NSF)은 지방에서, 민주연합은 도시에서 각각 기반을 구축하였다. 이온 일리에스쿠가 재선되었고 경제학자인 니콜라이 바카로이우 내각이 구성되었으며 국민해방전선은 국민통일당, 사회노동당 등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였다.

1994년 연립 정부는 국민통일당의 탈퇴위기를 맞았고, 1995년 12월 사회노동당이 탈퇴하였다. 1996년 지방 선거와 총선에서 부패척결과 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야당의 세력이 급속히 증가하여 헝가리 민주 동맹이 새롭게 연정을 구성하였다. 1996년 총선에서 에밀 콘스탄티에스쿠가 이온 일리에스쿠를 54.4%의 지지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0년 11월에는 의회 선거에서 좌파의 사회민주주의당(구공산당계)이 제1당이 되었고,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온 일리에스쿠가 승리하였다. 그 결과 2000년 12월 총리 아드리안 나스타세(Adrian Nastase)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민주주의당에 의한 소수 단독 정권이 발족하였다.

루마니아의 대통령은 임기 4년이며 의회는 이원제로 상원 140석, 하원 345석이고 임기는 모두 4년이다. 외교적으로는 1990년 이후 서방으로의 접근 및 인근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 2001년 1월부터 OSCE(구주안보협력기구) 의장국이 되었으며, 2000년 2월부터 정식으로 EU(European Union:유럽연합) 가맹 교섭을 개시하였다. 병역은 육군·공군은 1년, 해군은 1년 6개월 복무하며 총 병력은 18만 5000명이다.

VI. 경제

루마니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토지개혁이 급진적으로 실시되어 1945∼1948년에 110만ha의 농지가 농민에게 분배되고, 다시 1949∼1962년에 농업의 집단화(集團化)가 단행되어 산악지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농지가 협동조합에 흡수되었다. 인민공화국을 건설한 1947년부터는 주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단행하는 것과 병행하여 공업화를 주축으로 한 계획경제를 강력히 추진하였다.

특히 1964년 이래 소련의 패권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주독립노선이 확립되자, 경제발전은 그 노선추구를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그리하여 국내에서 원료를 조달할 수 있는 화학·금속·동력·건축자재·식품 등 공업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의 성과가 상당한 수준에 달하게 되었으며, 특히 금속공업은 동유럽권에서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페트로샤니 저지에서는 국내 석탄생산량의 반에 해당되는 역청탄이 산출되고, 그밖의 모트루 계곡에서는 갈탄이 산출되어 로비나리·투르체니의 화력발전소로 공급된다.

루마니아의 가장 중요한 지하자원인 석유는 주요 유전(油田)인 플로이에슈티·볼데슈티·피테슈티(아르제슈) 등지에서 채유되고 있다. 플로이에슈티는 이 나라 최대의 유전이자 최대의 석유화학 공업도시이고, 그 밖에 송유관으로 원유 공급을 받는 주르주·갈라치·콘스탄차 등지에 정유공장이 있다. 많은 유전이 집중되어 있는 왈라키아 평야 외에 트란실바니아 지방에서 천연가스가 산출되어 화학공업원료·발전용 연료·가정연료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아르제슈·비스트리차·올트·로트루 및 도나우 등의 하천에 수력발전소, 로비나리·투르체니 등지에 화력발전소가 건설되어 전력생산은 1950년 21억kWh이던 것이 1998년에는 524억 9500만kWh로 증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식품공업과 방직공업이 각각 전체 공업생산의 32%와 13%를 차지하여 소비재공업 중심의 공업구조를 보여왔으나 전후(戰後)에는 중화학공업의 신장이 현저하다.

제철공업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에 의존해왔으나 오늘날은 많은 철광석을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수입하여 생산을 크게 늘리고 있다. 갈라치의 대규모 제철 콤비나트를 비롯하여 후네도아라·레시차 등지에 제철소가 있어 연간 1,100만t의 철강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에 구리·납·금·수은·아연 등 광물자원이 풍부하여 비철금속을 포함한 금속공업은 전체 공업생산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기계공업도 크게 발전하여 부쿠레슈티·플로이에슈티·브라쇼브·아라드·피테슈티 등지에서 석유채굴용 기계·트랙터·농업기계·승용차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필요로 하는 기계설비의 2/3 이상을 자급하고 있다. 화학공업은 유전지대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며, 근래 농약·비료·화학섬유 계통의 공업들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시멘트 및 제재공업은 주로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섬유·피혁·식품 등 소비재공업은 부쿠레슈티·브라쇼브 등지를 중심으로 지역특화(地域特化)가 비교적 현저하다. 자연환경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유형의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1년 과거 집단화되어 있던 토지를 10ha 이내에서 전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법률을 제정하였고, 토지 매매도 가능하게 되었다. 영농의 기계화도 상당히 진척되어 있다. 곡물로는 밀·옥수수·보리·호밀·귀리 등이 재배되고 또 포도·사과·배·복숭아·자두 등 과수재배가 성하다. 특히 포도 생산은 세계적이며 양질의 포도주 생산국으로도 유명하다.

축산업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산업으로 그 비중도 비교적 높다. 주요 가축은 양·돼지·소 등인데, 특히 트란실바니아알프스, 도나우 유역평야 및 산지 등의 초지에서 이루어지는 소 사육은 루마니아의 중요 산업의 하나다. 그 밖에 벌꿀·누에고치의 생산이 많고 흑해·도나우강 등에서 수산업 및 수산가공업이 활발하다. 또한 COMECON(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경제상호원조회의) 가맹국으로 러시아 연방 및 동유럽 제국과의 교역이 주로 많았으나 1991년 COMECON의 해체와 더불어 서유럽과의 교역, 특히 플랜트 도입 등이 증가되고 있다.

한편 혁명 후 EC(European Community:유럽공동체) 등 서방의 경제원조가 확대되고 있으며, 경제개방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있으나 급격한 인플레로 인한 실질소득의 감소와 임금인상 투쟁 등이 겹쳐 정국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992년 출범한 N.바카로이우 내각도 국영기업의 민영화(民營化)를 다짐했으나 그 성과는 아직 미흡하다.

2000년 수출액 104억 달러, 수입액 131억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섬유·의복, 금속 및 금속제품, 기계·전기 기기, 구두, 수입품은 기계·전기 기기, 섬유 제품 및 동원재료, 광업품 등이고 주요 수출국은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수입국은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등이다. 1993년은 1989년 이후로 침체되었던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한 때이며 경제개혁이 시작된 해이다. 국내총생산은 3.4%(1994), 6.9%(1995), 4%(1996)로 계속 성장세를 보였지만 1997년에는 정부의 경제 개혁 철폐로 -6.6%의 성장을 보였고 1998년에는 -7.3%로 나타났다. 그러나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아래 경제개혁과 긴축재정을 실시하여 2000년에는 1.6%의 성장률을 보였다.

1. 교통

루마니아 철도망은 총길이 1만 1385km(1996), 도로망은 15만 3359km(1996)인데, 1968년 이래 철도의 전철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철도망은 부쿠레슈티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도나우강(江)의 수운은 이 나라 교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갈라치를 비롯한 여러 하항이 있고, 하구에 있는 술리나항(港)에는 도나우강 국제관리위원회가 있다. 또 흑해의 해항(海港) 콘스탄차는 근대적인 무역항으로 외국 선박들이 많이 기항한다.

항공교통은 국영 루마니아항공(Tarom)이 국내선·국제선에 취항하고 있다. 1999년 현재 62개의 공항이 있다. 관광수입은 루마니아의 주요 외화획득원의 하나로, 근래 외국관광객의 증가가 눈에 띈다. 주요 관광자원으로는 흑해 연안의 휴양지, 도나우강 삼각주의 자연생태계, 카르파티아산맥의 호수·계곡·석회암동굴 및 유서 깊은 수도원·성당 등이 있다.

VII. 사회

루마니아는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유럽에서 문맹률이 높은 나라 중의 하나였으나, 전후 교육의 보급이 현저하여 현재 10년의 무상 의무교육제가 시행되고 있고 15세 이상 문맹률도 4%(1992)로 줄어들었다. 10년 의무교육에서 8년을 마치면 각각 전문화된 4년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코스가 있고, 그 위에 대학이 있다. 학문연구의 중추기관은 루마니아 학술원이다. 루마니아는 충실한 사회보장제도를 자랑하고 있으며 완전 무료의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으나, 의료기술은 서유럽에 비해 낙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인구증가율은 -0.21%, 출생률은 1,000명당 10.76명, 사망률은 12.29명, 영아사망률은 19.84명이다. 평균수명은 69.93세로 남자는 66.1세, 여자는 73.99세이다.

VIII. 문화

17세기경부터 고대 슬라브어(語) 등으로 씌어진 종교문서의 루마니아어 번역이 활발해졌고, 1688년에 성서 번역이 완성되었는데, 그것은 루마니아어의 문어(文語)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루마니아의 문학이 독자적인 문학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부터인데, 거기에는 프랑스의 계몽주의 및 민족적인 자각 등이 그 원동력으로 크게 작용하였다.

19세기 후반에는 루마니아 최대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낭만파의 거장 미하일 에미네스쿠, 산문에서 새로운 언어적 발전의 길을 연 I.크레앙가, 국민적인 희곡작가이자 소설가인 I.카라잘레 등이 루마니아 문학을 유럽문학의 수준으로 올려 놓았다. 20세기 초기에는 루마니아의 문화유산이 농민 사이에만 순수하게 유지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농본주의 문학운동과 서유럽과의 일체화를 주장하는 서구파 문학운동이 대립하는 가운데 M.사도베아누, L.레브랴누 등 리얼리즘 작가 및 T.아르게지를 대표로 하는 상징파 시인 등이 배출되었다.

1944년 이후 루마니아에 일어난 정치적·사회적 변혁은 그 문학을 사회주의 리얼리즘 일색으로 바꾸어놓았다. 루마니아에는 일찍이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를 거쳐 비잔틴 예술이 전래되어 중세의 유품들 중에 볼 만한 것이 많다. 그 초기의 중요한 건축으로 쿠르테아데아르제슈에 있는 군주성당(1350∼1380)을 들 수 있는데, 그리스 십자형교회인 이 성당은 그리스도전(傳)을 내용으로 한 중세의 장려한 벽화가 훌륭하다.

그후 왈라키아 지방에는 세르비아의 건축양식이 널리 퍼졌고, 다시 15세기에는 몰다비아 지방에, 외벽에 많은 장식을 한 특색 있는 회당(會堂)들이 세워졌다. 트란실바니아 지방은 변방적인 위치관계 및 이민족의 침입 등으로 루마니아 예술의 토착권 밖에 있었다. 이곳에는 비잔틴 양식과 토속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목조의 작은 사원들이 무수히 산재해 있다. 또 이곳에는 11세기 이래 독일인이 이주하여, 통칭 ‘검은 교회’로 불리는 브라쇼브의 고딕 회당 등이 있다.

음악에서는 20세기의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게오르게스 에네스코가 루마니아적인 표현양식으로 유명하며, 루마니아 출신 극작가 이오네스쿠는 부조리극 《대머리 여가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는 현대적 경향의 20세기 시각예술을 창시하였다.

스포츠로는 축구·체조·요트가 인기 종목인데, 루마니아는 전통적인 요트강국이며 여자 체조에서는 특히 몬트리올올림픽의 영웅 나디아 코마네치를 배출하였다. 축구는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는 등 세계적 수준을 보유하고 있으며 온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IX. 과학기술

루마니아는 1854년 전신업무를 국영으로 시작하였고, 1984년 전신법을 제정하였다. 1984년 전화업무가 국영으로 시작되었고, 1992년 최초의 광섬유 케이블 7.5km가 수도 부쿠레슈티에 구축되었다. 정치 경제적 문제로 인하여 전기통신분야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9년 현재 공중 통신서비스를 위한 본회선수는 384만 회선이다. 1990년부터 산업자원부가 통신장비제조 및 공급에 대한 책임을 맡고 통신부가 롬 포스트, 롬 텔레콤, 롬 라디오콤뮤니카티 3개 조직으로 재편되었다.

롬 텔레콤은 1991년 설립된 국영 전기 통신사업자로 PSTN을 통한 음성전화 서비스를 독점 제공하고 있으며, 1997년 현재 5만 3759명의 근로자가 있다. 1999년 현재 약 3,300여 마을에 전화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어 정부는 외국의 참여를 통한 경쟁체제 도입을 결정하였고 국내 장거리망을 완전히 디지털화하기 위해 광섬유 케이블을 구축할 예정이다. 셀룰러 전화서비스는 1993년 설립된 텔레포니카 루마니아가 서비스를 시작하였고, 사용요금이 비싸 일반 대중들에게 보급되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1999년 현재 셀룰러 가입자는 27만 9611명으로 1.24%의 보급률을 보인다. 1999년 현재 주요 인터넷 사업자는 1992년부터 서비스를 개시한 이유넷과 인터콤피, 카파넷, 로직 텔레콤 등 30개사가 있다. 방송은 1997년 7월 현재 텔레비쥬네 루마니아(TVR)가 2개의 채널을 제공하고 있고, 112개의 지상파 방송국이 있으며, 940개의 CATV 면허가 발부되었다. 지역방송사로는 안테나1, 텔레 M, 프로 TV 등이 있다. 텔레 M은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몰도바에도 방송을 보내고 있다. 1997년 말 현재 TV 보유 가구수는 약 700만 가구이다.

X. 대한관계

루마니아는 북한과 1948년 11월에 수교했고 한국과는 1990년 3월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1994년 3월 I일 대통령 일리에스쿠, 2001년 외무장관·상원의장이 방한하였다. 1990년 체육교류협정·무역협정·경제과학기술협정·투자보장협정, 1991년 항공협정·문화협정, 1993년 이중과세방지협정·비자면제협정, 1996년 일반사증면제협정, 1997년 투자보장협정 개정 각서, 항공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2000년 현재 대한(對韓) 수출 3200만 달러, 대한 수입 1억 600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승용차 및 부품, 컬러 TV 등 가전제품, 합성수지 등, 주요 수입품은 농산물(밀, 옥수수), 철강제품, 석유화학 제품 등이다. 2000년에 한국 상품의 루마니아 수입시장 점유율은 13위이다. 1998년 현재 교민은 364명이고 체류자는 237명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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