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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02 (일) 10:24
분 류 사전2
ㆍ조회: 1221      
[국가] 헝가리 (한메)
헝가리 Republic of Hungary

중부 유럽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헝가리공화국. 면적 9만 3031㎢. 인구 1015만 7000(1997). 동쪽으로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서쪽으로 오스트리아, 남쪽으로 크로아티아와 유고슬라비아, 북쪽으로는 슬로바키아에 둘러싸인 내륙국가이다. 수도는 부다페스트.

[자연·지지]

신생대 제 3 기에 형성된 알프스·카르파티아·트란실바니아알프스 및 디나르알프스 등 여러 산맥에 둘러싸인 대규모 구조분지의 주요부분을 차지한다. 국토의 약 60%는 해발고도 200m 이하의 낮은 평야로 다뉴브강이 거의 중앙부를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로지른다. 국토는 지형적 특색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뉜다.

<척량산지(脊梁山地)>

중앙산지 또는 북부중대(中帶)산지라고도 한다. 제 3 기에 형성된 습곡산맥의 한 지류로서 지질구조적으로는 연속해 있으나 그 뒤 국지적인 화산활동을 수반한 단층운동에 의해 분단되어 많은 지루산지(地壘山地)가 형성되었다. 또한 다뉴브강의 서안 트란스다뉴비아대지쪽에는 크고 작은 여러 형태의 산지가 알프스 동쪽 기슭에서 다뉴브강변까지 이어진다. 이들 중 바코뉘산지는 규모가 가장 큰 산지로서 아름다운 삼림으로 덮여 있으며, 그 주변지역에는 보크사이트가 매장되어 있다.

또한 바코뉘산지 남쪽 가장자리에는 단층운동에 의해 형성된 동유럽 최대의 발라톤호가 있다. 호숫가에는 유럽에서 흔치 않은 현무암의 바다초니산이 멀리 바라다보이며, 그 산기슭은 포도주의 명산지로 유명하다. 이 척량산지는 또다시 다뉴브강 동쪽으로 뻗어 베르소니·체르하트·마트라·뷔크·젬플렌 등의 산지군을 형성한다.

마트라산지의 케시산(1015m)은 헝가리 최고봉인데 그 주변은 석탄·갈탄 산지로 소규모의 철광석도 산출되며 그 중심지인 미슈콜츠는 인구 제 2 위의 공업도시이다. 그 북부에 펼쳐져 있는 돌로마이트[白雲岩]지역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를 가진 아그텔렉의 종유굴이 있어서 관광·휴양지로 유명하다.

<소평원과 대평원>

소평원은 알프스산맥·카르파티아산맥 및 척량산지로 둘러싸인 구조분지로서 다뉴브강 서안부를 차지하며 알프스에서 발원하는 라바강·라브카강 등이 이 지역을 동쪽으로 흐르며 다뉴브강 북쪽은 슬로바키아령이다. 대평원의 대부분은 낮고 편평한 티소강 유역에 걸치며 광대한 평원을 형성한다.

외견상으로는 토양의 질이 고른 단순한 평탄지처럼 보이지만 오랜 지질시대를 통하여 티소강과 그 지류인 쾨뢰시강은 이따금 범람하여 유로를 바꾸었기 때문에 자연제방 자리에는 사질토의 낮은 언덕을 형성하고 하천이 흐르던 자리에는 저습지(低濕地) 등이 복잡한 토양층을 형성하였다. 또한 바람의 작용에 의한 비사지(飛砂地)나 사구지 등이 평탄한 데 비하여 토양·수문조건이 비교적 복잡하게 되어 있다.

북부의 니르세그는 황토 및 사질토양이 풍부하여 양질의 감자·옥수수·담배 등을 생산한다. 중부의 다뉴브강과 티소강 사이의 지역은 북서에서 남동으로 이어진 사구열의 발달로 배수가 잘 되는 사질토양지대이므로 케치케메트를 중심으로 포도·살구·딸기·파프리카 등의 과수재배와 원예농업이 활발하다. 티소강 동부의 쾨뢰시강 하류역은 지하수위는 비교적 높지만 강수량에 비해 증발량이 많아 염분이 집적되기 쉬워 알칼리성 토양인 곳이 많다.

이 때문에 경지의 개발이 제한되어 자연발생한 초원은 예로부터 방목장으로 이용되어 목축업이 발달하였다. 이러한 스텝 모양의 초원을 푸스타(puszta)라고 하는데, 제 2 차세계대전 후 티소강 상류역에서의 댐 건설에 의한 발전과 관계용수의 확보, 하류역에서의 배수시설 건설로 푸스타는 차츰 경지로 변하고 있다. 제 2 차 세계대전 후 제 1 차 5 개년계획에 따라 포도산지로 유명한 토카이 남쪽 티소강에 티사루크댐과 관개용수로가 건설되었다.

<트란스다뉴비아대지>

황토로 덮인 광대한 대지로 서쪽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고도가 높아지면서 알프스 산기슭으로 이어진다. 많은 하천이 이 대지 위를 동쪽으로 가로질러 흐른다. 지하수위는 지표면 밑 20~30m로 낮기 때문에 가뭄 때에는 한해(旱害)를 입기 쉬운 지역이다.

<메체크산지>

트란스다뉴비아대지 남부에 고립해 있는 이 산지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지질구조적으로는 디나르알프스계에 이어져 있다. 산지 주변에 규모는 작지만 헝가리에서 가장 양질의 석탄을 생산하는 코믈로탄전 및 페치탄전이 있다. 이 나라를 관류하는 다뉴브강은 유럽 중·동부 최대의 국제하천이며 항공로의 발달로 그 가치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지금도 중요한 교역교통로의 하나이다. 부다페스트는 중요한 국제하항 중 하나로 매일 다뉴브강의 하황정보(河況情報)를 연안에 있는 여러 하항으로 발신한다. 헝가리 국토 대부분은 대륙성기후에 속하지만 남서부 산지는 어느 정도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부다페스트의 연평균기온은 11.3℃, 연강수량 615.1㎜이다.

[역사]

BC 10세기 마자르족은 조상 대대로 살던 땅 우랄을 출발한 뒤 터키계의 여러 민족과 접촉하다가 895년 카르파티아분지로 침입·정착하였다. 마자르 7부족은 이 땅에 연합국가를 세우고 이중수장제(二重首長制)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차츰 유목·기마생활에서 정주·농경으로 생활양식이 변화하자 씨족적 지배체제도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하였다.

10세기 말에는 게자와 이스트반 1세 부자(父子)에 의해 국가통일이 이루어져 초대왕조인 아르파드왕조가 성립되었다. 동시에 그리스도교로의 귀의도 진척되어 1000년 이스트반은 로마 교황으로부터 국왕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스트반 지배 아래서는 왕성주제(王城州制)가 실시되었고 봉건적 주종관계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 국내에서는 이교반란과 지방영주층이 대두하였고, 대외적으로도 발칸반도 등을 둘러싸고 로마·비잔틴제국에 대립하여 지배체제가 동요하였다.

12세기 말부터는 왕령지(王領地)의 분해가 진행되어 대호족이 할거하였다. 1222년 대호족에 대항하여 귀족의 여러 가지 특권을 인정하는 금인헌장(金印憲章)이 국왕에 의해 공포되었다. 1241년 몽골 침입 후 벨라 4세는 여러 민족의 식민에 의한 국토의 재건을 시도하였고, 또한 13세기 말에는 농민이 이동의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조건은 대호족을 이롭게 만들어 군웅할거시대를 초래하였다.

국토가 영방(領邦)으로 분열되는 것은 소영주·귀족과 국왕과의 동맹으로 모면하였으나 분권화의 경향은 계속되어 대귀족과 중소귀족의 대립이 표면화되었다. 14세기 중엽 이후 대외적으로는 세력이 확장되었으나, 국내적으로 대귀족의 강대화가 추진되어 15세기 전반에 이르러 국토의 약 40%를 60여 대귀족이 차지하게 되었다.

1458년 마티아스 1세가 중·소 귀족의 지지를 얻어 국왕이 되자 대귀족을 억누르고 중앙집권화를 추진하였다. 대외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어 중부유럽에 제국을 세웠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 국내는 또다시 혼란해졌으며 1514년 대(對)오스만 십자군 모병을 계기로 농민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에 패한 농민은 이동의 자유를 빼앗겼고 부역을 강요당하였다. 혼란 속에 약체화된 헝가리군은 1526년 모하치전투에서 오스만제국군에게 패한 뒤 17세기 말까지 중앙헝가리는 오스만제국의 점령 아래 있었고 헝가리 서부는 합스부르크가의 세력 아래 들어갔다.

한편 동부의 트란실바니아는 오스만제국의 보호 아래 있으면서도 독립을 유지하였으며 이곳을 거점으로 30년전쟁에서는 트란실바니아공 베틀렌이 이끄는 군대가 대합스부르크동부전선을 형성하였다. 또한 18세기 초에는 라코치 피렌체 2세가 대합스부르크독립전쟁을 지휘하였다. 종교적으로도 트란실바니아는 신교의 요새로 존속하였다.

독립전쟁에서 패배한 뒤 헝가리는 합스부르크가의 세습왕제를 인정하였고, 제 1 차세계대전까지 지배를 받으며 독일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발전하여 18세기말 농민은 다시 이동의 자유를 얻었다. 19세기에 나폴레옹전쟁과 서유럽에서의 여러 개혁의 영향으로 중류귀족의 지지를 받은 혁명가 L.코슈트의 지도로 1848년 민족독립을 목표로 한 혁명이 일어나 농노해방을 실현시켰다. 혁명이 진압되고 합스부르크절대주의가 부활되었으나 1867년 안팎으로 위기에 빠진 오스트리아와의 사이에 아우스글라이히(和協)가 성립되어 오스트리아·헝가리 2중왕국이 탄생하였다. 이 체제 속에서 헝가리는 경제적인 번영을 이룩하였다.

제 1 차세계대전말 이중왕국 붕괴와 함께 혁명이 발발하여 M.카로이 내각이 탄생하였으며 1918년 11월 공산당이 창건되어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이듬해 3월 외교정책에서 실패한 카로이에 이어 B.쿤이 이끄는 소비에트공화국이 성립되었으나, 국제적 반혁명과 국내정책의 실패로 약 4개월만에 무너지고 M.호르티 데 노지바냐에 의한 권위주의적 지배체제가 들어섰다. 호르티 데 노지바냐체제에서는 경제가 침체되었고 몰락 중류귀족층이 기반이 되어 파시즘화가 진행되었다.

외교정책에서도 친이탈리아·친독일파가 실지회복운동(失地回復運動)과 결부되어 우위를 차지하였으며 제 2 차세계대전에서는 추축국쪽에 참전하였다. 전쟁 후 소련군의 점령 밑에서 여러가지 개혁이 이루어졌고 1948년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 합동하여 공장 등의 국유화를 이루었으며, 농업의 집단화도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사회주의 정권이 성립되었다. 그 뒤 헝가리사건 등 1950년대 정치적 변동과 1960년대말 이래의 여러 차례에 걸친 경제개혁을 거쳐 안정된 사회발전의 길을 걸었다. 1989년 10월 23일 공산당이 해체되고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게 되었으며 공식명칭이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정치·외교·군사]

1989년 변혁 이후 정치체제의 큰 변화는 변혁 이전과 뚜렷하게 시대를 구분지웠다. 1989년 변혁 이전에는 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으며 기본법은 1949년 8월 20일 발효, 1972년 4월 및 1983년 12월에 수정된 헌법이다. 1972년의 수정으로 헝가리인민공화국은 사회주의국가라고 명기되었으나 국호는 변하지 않았다.

헝가리 정당·정부 지도자는 1956년 헝가리사건을 계기로 대외적으로는 소련에 충성을 서약하면서 국내적으로는 사회주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의 경제적·정치적 자유화를 추진함으로써 교묘한 정치적 현실주의를 발휘하였다. 1989년 이전 국가권력의 최고기관은 일원제 국회였다. 국회는 헌법, 법률의 제정, 국가예산과 국민경제계획의 승인, 인민공화국 간부회와 각료회의의 선출, 대법원장과 대검찰총장의 선출, 선전과 강화의 결정 및 채택, 국제조약 체결과 비준 등을 행한다.

국회에 직속되며 국가를 대표하는 집단적 원수에 해당되는 인민공화국간부회는 국회 휴회중에 헌법의 제정·개정을 제외한 국회의 권한을 대행한다(다음 국회에서의 승인이 필요). 또한 특히 국회의 선거기일의 결정, 국회의 소집·해산, 법안의 제출, 조약의 체결·비준, 대사·공사와 고급 문관·무관의 임면·사면 등을 한다. 간부회는 의장(대통령) 1명, 의장대리 2명, 서기 1명, 간부회원 17명으로 구성된다.

국가행정의 최고기관은 각료회의이고 그 구성원은 의장(총리) 1명, 의장대리(부총리) 약간 명, 각 주지사, 국가계획국 장관, 중앙인민통제위원회 의장 1명으로 되어 있다. 각료회의 구성원은 간부회의 제안에 의해 국회에서 선출·해임한다. 1956년까지 정당은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합동(1948)하여 만들어진 근로자당 외에 민족농민당·소농업자당이 있었으나, 그 뒤 1956년 발족하여 1989년까지 존속하였던 헝가리사회주의노동자당만이 있었다.

당대회는 4년마다 개최되었고 당의 최고권력기관이었다. 대회에서는 중앙위원회·중앙통제위원회의 구성원이 선출되며 중앙위원회는 대회기간 중 당의 운영을 맡고 적어도 3개월에 한 번 총회를 개최한다. 그 구성원 중에서 정치국원과 서기국원을 호선한다. 총 인구 중 당원의 비율은 약 0.5%로 그리 많지 않지만 <적이 아니면 우리 편이다>라는 원칙 아래 유연한 정책을 펴 국민의 여러 요구를 적극적·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 이외에 애국인민전선·공산주의청년동맹·공산주의여성동맹이 있었다. 특히 애국인민전선은 지역 주민의 이익과 당의 정책을 조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고 1985년 선거 이후 그 정치적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그 밖에 노동조합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1989년 변혁으로 많은 변화가 행해졌으며 그 중 국회에서 특징적인 것은 최초로 정당설립을 인정하는 결사법·집회법을 가결하고 복수정당제도를 실시한 점이다.

사회주의노동자당(공산당)은 1989년 10월 당대회에서 공산당을 공식 해체, 사회당으로 변신하였으며 다당제·시장경제 도입을 포함한 신강령을 채택하였다. 같은달 다당제와 대통령제도 도입 개헌안이 통과되었으며 23일 국가명칭을 헝가리공화국으로 바꾸었다. 1990년 3월 실시된 총선에서 민주포럼이 국민의회 386석 가운데 165석을 차지해 압승한 데 이어 5월 비공산연립정부가 정식출범, 8월 실시된 의회선거에서 제 2 야당인 자유민주동맹의 A.곤츠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정당은 민주포럼·자유민주동맹(SDS)·독립소지주당·헝가리사회당·기독민주국민당·청년민주동맹 등 30여 개에 이른다.

<외교>

옛 소련 및 동유럽 여러 나라와 양국간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하였으며 바르샤바조약기구, 코메콘(COMECON;경제상호원조회의)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헝가리 의회는 90년 6월 26일 바르샤바조약기구 탈퇴를 의결하였다. 자원이 부족한 헝가리로서는 코메콘체제를 중시하였으나 1968년 <체코 사건>이나 1980∼81년 <폴란드 사건> 때에는 군사개입을 억제하는 자세를 보였다. 또한 주변 여러 나라와의 민족문제 해결에는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였다. 이처럼 헝가리는 외교의 제 1 근간을 사회주의제국과의 우호에 두었다.

외교의 제 2 근간은 데탕트의 추구이다. 최근에 <경제개혁>과 함께 무역확대, 자본·기술의 도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고, 그 전제로 데탕트가 요구되고 있다. 1973년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에 가입하였다. 지역적으로는 서유럽·북유럽제국과의 관계강화 외에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 등 다뉴브강 유역의 여러 나라간 협력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80년에는 중부유럽국제은행이 부다페스트에 설치되었다.

외교의 제 3 근간은 중동·아프리카 지역과의 협력이다. 자원의 확보, 자국 공업제품의 판매라는 견지에서 이들 여러 나라와의 관계가 확대되고 있으며, 기술협력·유학생유치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1990년 1월 폴란드·체코 등과 함께 유럽공동체(EC)와 유사한 동구 3국경제공동체의 설립을 제안하였다. 1991년 11월 EC 준회원국 협정을 체결하여 1999년 EC 가입을 목표로 외교역량을 강화하고 있으며 EFTA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군사>

1955년 창군 이래 바르샤바조약기구에, 1969년 주네브군축위원회에 가입하였으나 1990년 6월 26일 헝가리 의회는 바르샤바조약기구 탈퇴를 만장일치로 승인, 이 기구 해체를 선도한 결과가 되었다. 병역제도는 징병제로 총병력은 내무부 산하 국경수비대 1만 8000, 국방부 산하 보안군 800, 육군 6만 6400, 공군 2만 100명 등 10만 5000(1991)에 이른다. 1991년 6월 헝가리 주둔 소련군이 완전히 철수하였다.

[경제·산업]

19세기 중반 헝가리는 합스부르크제국 내의 낙후된 농업지대였다. 아우스글라이히 이후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자본의 영향 아래 공업화가 진행되어 전통적으로 융성한 식품공업 외에 광산·기계 등의 부문도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 동안 섬유공업의 확충 및 중공업도 진전하였다. 이 기간에도 기본적으로는 농업이 주산업이었고 1941년 농업인구는 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전후 토지개혁으로 대토지소유가 해체되고 소농이 지배적인 농업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950년대 농업집단화, 60년대 집단화농장의 합동운영을 거쳐 오늘날에는 대규모 협동조합농장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이 운영되고 있다. 한편 낙후된 공업은 기업의 국유화, 1950년대 전반의 급격한 중공업화, 1960년대부터 공업진흥정책 등으로 공업의 중심이 중화학부문으로 옮겨져, 1988년 산업구조는 광공업 50%였고 농림·수산업은 13.8%였다.

1956년 헝가리 사건을 계기로 종래의 과도한 중앙집권적인 계획경제를 고치기 위해 <경제개혁>이 여러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경제개혁안은 1966년 결정되었으며 1968년 이후 기업에 활동의 결정권을 대폭 인정하고 이윤추구를 용인하는 시장기구를 도입하는 등 종래의 사회주의경제의 틀을 넘어 개혁이 실시되어왔다. 1980년대 들어 다시 경쟁원리의 명확화와 저수익 부문의 파산선고에 따른 정리 등 제 2 단계의 개혁이 진행되었으며, 개인의 경영 능력에 기초를 두는 실질적 합명회사·합자회사 등의 새로운 기업형태의 도입도 실시되었다.

또한 지방자치단체나 공단의 채권발행, 파산법 시행, 공개증권거래소의 개설계획 등 대폭적인 개혁이 추진되어 왔다. 1989년 사기업 육성과 외국인에 대한 투자규제를 완화하는 신회사법을 제정하였으며 90년 들어서는 민영화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어 국영기업의 민영화 및 중소기업 육성노력에 박차를 가하였다. 1990년부터 정부는 가격자유화·임금통제·정부보조금 삭감 및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긴축정책 수행 등 포괄적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누락 외채, 긴축정책의 부작용, 에너지 가격의 상승, 1991년 코메콘체제 붕괴로 인한 역내 교역의 감소, 실업률 증가 등으로 침체상태를 보이고 있다.

<농업·임업·수산업>

농업형태는 혼합적이며 주요 작물로는 옥수수·밀 등이 있고 사과·포도 등 여러 과일류도 생산된다. 축산으로는 돼지가 가장 많아 88년 833만 두나 되었고 경주마의 생산으로 유명하다. 수산업에서는 하천·호소에서 잉어·농어 등의 민물고기를 연간 약 4만 t 정도 어획한다. 삼림자원은 많지 않은 편으로 산림은 국토의 18% 정도를 차지하며 졸참나무·아카시아·너도밤나무·삼나무를 중심으로 연간 500만∼600만 ㎥의 목재를 생산한다

<광공업>

광물자원은 빈약하여 철광석 20%, 석유 10% 정도를 자급하고 있다. 다만 보크사이트는 연간 약 300만 t을 생산하며 수출도 하고 있다. 그 밖에 천연가스의 60%, 석탄(약 75%가 갈탄)의 90% 이상이 자체공급되어 에너지 자급률은 전체적으로 50%에 가깝다. 1970년대에는 석유의존도가 높았으나 80년대 들어 석탄 사용량이 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기반의 취약성도 작용하여 공업은 자원이 절약되고 특히 가공도가 높은 제품의 생산이 두드러진다.

또 소비생산으로의 일관된 중시정책에 의해 공업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소비재의 생산비중이 매우 높으며 이것은 동유럽 여러 나라 중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1988년 공업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소비재의 비중은 35.7%로 동유럽에서 가장 높다. 공업생산의 주력은 기계·금속가공·화학·식품가공 등이다. 1970년대 공업생산 동향은 1971∼75년 평균총생산액이 계획을 상회하는 6.4%라는 높은 성장을 실현한 데 비해, 1976∼80년에는 경제긴축정책의 영향을 받아 공업생산도 급속한 정체에 빠졌다.

1980년대에도 긴축정책이 계속되어 공업에서의 에너지 소비억제가 실시되었으며 경제의 균형화에 기여하는 부문이 중시되고 기업의 시장적응력이 제고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업생산에서의 기계·화학 공업부문 비중이 계속 확대되고 식품생산이 재검토되는 반면 연료·철강·비철금속·건재(建材)의 여러 부문이 감소하는 경향이다. 또 소비재 중에서도 유리·도자기 공업의 생산수준은 유지되고 있으나 섬유·봉제품의 생산비중은 감소하였다. 현재 헝가리는 산업구조의 본격적인 변혁이 전자·자동차·화학·제약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무역>

무역의존도가 높은 편으로 국내최종생산물의 30%가 수출되는데, 특히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광공업부문에서는 최종생산물의 50%가 수출된다. 수입은 총지출의 15%를 차지한다. 무역품목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반가공품·완성품을 수입하고 반가공품·식료품을 수출하며 개발도상국에는 원재료·식료품을 수입해서 반가공품·완성품을 수출한다. 주요 수출품은 기계·차량·의약품·의류·육류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석유·기계·자동차·화학품·철강·섬유원료 등이다.

무역수지는 개발도상국과의 무역을 제외하고는 적자였으나, 1980년 전반에는 수입억제와 환율저하 효과에 의해 흑자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전반 행해진 경제개혁의 진전으로 비국영부문에서의 투자수요가 급속히 높아졌으며 서방측 자본의 유입과 맞물려 수입이 급증함에 따라 1985년 이후 적자가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서방측과의 교역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제도적으로도 1972년 서방측 출자비율 49% 이내의 합병병기업 설립이 인가되어 1979년 이탈리아·프랑스·오스트리아·서독·일본과의 공동출자에 의한 중부유럽국제은행이 설립되었다.

[사회]

<주민·언어>

국민의 96.6%는 헝가리인이고 소수민족으로 독일인 1.6%, 슬로바키아인 1.1%, 루마니아인 0.2% 외에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집시·유대인 등이 있다. 외국에도 헝가리인이 살고 있는데 인근 여러 나라와 북아메리카에 약 450만 명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루마니아에는 약 170만 명,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60만 명이 살고 있으며, 유고슬라비아·오스트리아·러시아에도 많이 있다.

따라서 이들 여러 나라에서의 헝가리인 처우문제가 상호 외교관계에 미묘한 영향을 끼친다. 또한 미국의 200만 명, 캐나다의 14만 명의 헝가리인은 대부분이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유럽 전역에서 이주한 사람들과 그 자손들이지만, 제 2 차세계대전 후의 이민·망명자도 많다. 도시와 농촌의 인구비는 도시쪽이 약간 많은데 도시인구의 대부분은 수도 부다페스트에 집중해 있다.

인구의 자연증가율은 세계대전 후 계속 내려가 동유럽권에서는 유일하게 증가율이 감소하는 나라이다. 공용어는 헝가리어이며 러시아어는 의무교육기간인 8년간 교육되지만 전혀 보급되어 있지 않다. 청년·지식인층에는 영어가, 제 2 차세계대전 이전 세대인 장년층에는 독일어가 비교적 많이 사용되나 다른 나라에 비해 외국어의 보급률은 높지 않다. 소수민족의 언어는 지역적으로 의무교육 단계에서 보장되고 있다. 한편 슬로바키아·유고슬라비아·루마니아에는 각기 헝가리어 출판국이 있어서 헝가리어 서적이 발행되고 있다.

<국민생활>

근로자의 지위별 인구구성비는 소득 종사자 약 494만 명 중 노동자 55.7%, 사무직 26.3%, 농업생산협동조합원 14%, 자영업자 4%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취업인구가 감소하여 노동력 부족을 나타내고 있다. 근로시간은 1971년 7월부터 주 5일 42시간제를 단계적으로 채용하여 82년 1월부터는 전국적으로 채택되었다. 1984년부터 주 40시간제가 받아들여졌다. 유급휴가는 연 15∼24일이며 근속연수에 따라 늘어난다.

출산휴가는 3개월 유급이며 산전·산후 3년간은 일정액의 유급으로 육아휴가가 보장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여성도 취업하고 있어 한 가정의 월수입은 평균임금의 거의 2배가 된다. 정신근로자에 비해 육체노동자의 임금은 20% 정도 높다. 의료는 원칙적으로 무료이지만, 실제로는 진료 때 사례가 필요하며 상당한 비용을 강요 받는다. 연금생활자가 해마다 증가하여 장래의 노인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혼자 사는 노인의 경우 연금만으로는 충분히 생활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한편 자녀를 둔 부인에게는 아동 수에 따라 아동수당이 지급된다.

<교육·종교>

국민학교는 8년제(6∼14세)로 의무교육이며 무상이다. 중등교육은 4년제로 일반중학교 외에 직업중학교와 공업중학교가 있다. 일반중학교의 취학률은 69.1%, 직업중학교는 16.6%(1988)이다. 종합대학은 부다페스트·페치·세게드·데브레첸에 각각 1개 교씩 있고 그 밖에 공과대학 6개교, 의과대학 4개 교, 예술대학 3개 교, 경제대학 1개 교가 있다. 교회의 사회적인 영향력은 제 2 차세계대전 후 약화되었으나 1957년 종교의 자유와 교회의 권리가 재확인되었으며 71년 정부와 로마교황청과의 관계도 정상화되었다. 국민의 67.2%가 가톨릭, 25%가 프로테스탄트이고 그 밖에 그리스정교도·유니테어리언·유대교도 등이 있다.

[문화]

<국민문화의 개화>

헝가리 국민문학의 시초는 16·17세기 2대 시인 B.발라시·M.즈리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국민문화가 꽃 핀 것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반의 민족주의 고양기로 학사원·민족박물관·민족극장 등의 창설이 잇따랐으며, 시인 M.초코나이 비테즈·M.뵈뢰슈마르티, 독립전쟁에서 죽은 사랑과 혁명의 시인 S.페퇴피, 극작가 K.키슈팔루디, 사극 《뱅크밴(1821)》의 J.카토나와 E.시글리게티 등이 잇따라 나왔다.

음악에서도 민족적 격정을 상징하는 베르붕코슈양식의 발달과 독일음악의 영향을 받아 서유럽에서 널리 활동한 F.리스트와 민족오페라 확립자 F.에르켈이 나타났다. 학술분야에서는 비교언어학의 S.자르마티, 티베트학의 S.쾨뢰시 초마, 수학의 J.볼리아이 등이 활동하였다. 이 국민문화의 개화는 독립전쟁 패배 후의 염세주의가 팽배한 가운데에서도 시인 J.아라니와 시극 《인간의 비극》의 I.마다치에게 계승되어 1867년 이중왕국 성립과 함께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부다페스트에는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하여 새로운 건물이 많이 들어서 세기전환기에 걸쳐 독특하고 화려한 문화를 자랑하였다. 미술에서는 역사화의 마다라스·B.세케이, 벽화의 로츠, 사실파의 M.문카치, 풍경화의 L.파르·N.페렌치, 천재화가 촌트바리, 인상파의 P.시녜이 메르세 등이 등장하였으며 특히 공예미술은 조르나이의 아르누보 양식의 도자기가 유명하다. 문학에서는 M.요카이와 헝가리 리얼리즘의 선구자 K.미크사트, 과학에서는 산욕열을 연구한 I.P.제멜바이스, 물리학의 L.외트뵈시, 전기기관차의 칸도 등이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발전기>

20세기에 접어들자 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전통적인 국민주의를 뛰어넘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상징주의 시인 E.아디를 중심으로 서유럽 문예사조의 영향을 받은 신세대그룹의 잡지 《뉴가트(西方)》가 1908년 창간되어 문단에 충격을 주었고, 이 파에서 M.바비치, D.코스톨라니, E.모리츠 등이 배출되었다.

이 밖에 희곡 《릴리옴(1909)》의 F.몰나르, 전위적 풍자의 F.카린티 등의 도회파(都會派), 문학적 농촌사회지를 만든 민중파, V.마야코프스키와 대비되는 요절시인 A.요제프 등이 활동하였다. 음악에서는 주로 빈에서 활동한 오페레타의 F.레하르와 T.가르만, 그리고 민요의 채록을 통하여 혁명적인 현대음악의 지평을 개척한 B.바르토크와 E.코다이 등의 작곡가가 활동하였다.

미술에서는 분리파와 연결되는 리프로나이, 전위파의 L.카샤크, <노르차크(8인회)>의 주도자 케른슈토크와 델코비치의 표현주의가 꽃피었다. 학술에서는, 철학의 G.루카치, 사회사상의 D.사보, 생화학의 A.센트죄르지, 국외로 나간 사회학의 O.야시와 경제학의 K.폴라니 등이 있다. 1910년대에 본격화된 영화계에서는 A.코르다나 G.H.커티스·페예슈·산타, 루마니아 국적의 쉬테 등 국외에도 널리 알려진 작가가 많이 있다.

시인으로는 L.나지와 베레슈가 뛰어났다. 영화계는 망명에서 귀국한 영화이론가 B.발라즈가 제작한 《유럽의 어디에서(1947)》 이후 한때 침체하였으나 파브리·얀초에 이어 실험 그룹 <발라즈 스튜디오>에서 배출한 카보르·코샤·D.사보, 단편·기록영화의 후사리크·호모키나지 등이 차례로 국제영화상을 받아 성황을 보이고 있다. 미술에서는 도예의 코바치가 유명하다.

음악에서는 지휘의 E.오르만디·A.도라티·G.숄티와 첼로의 J.슈타르케르, 바이올린의 J.시게티 등 많은 거장을 낳은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피아노의 랑키를 비롯한 국제적인 신예를 배출해내고 있으며, Z.코다이의 음악교육이론은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도입하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헝가리는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북한과는 1948년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정치·경제·문화 등 각 방면에 걸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한국과는 1987년 8월 상호무역사무소 개설에 합의, 12월 부다페스트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하였으며 헝가리도 1988년 3월 서울에 상공회의소 사무실을 상주시켰다. 1988년 9월 양국은 준대사급 상주대표부를 교환하였으며 1989년 2월 21일 정식 수교하였다. 같은 해 2월 문화협정, 3월 이중과세방지협정 및 과학기술협력협정, 11월 항공협정 및 관광협정, 1991년 3월 일반여권 사증면제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1989년 10월 메제시 부총리가 방한하였고 같은 해 11월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공식방문한 데 이어 1990년 11월에는 곤츠 대통령이 방한하였다. 통상은 1993년 11월 현재 대한수출 1793만 달러, 대한수입 7350만 달러이다. 1992년 12월 체류민 수는 295명이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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