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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02 (일)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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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074      
[국가] 크로아티아 (두산)
크로아티아 Croatia

발칸반도 서부에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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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개관

위치 : 유럽 아드리아해 동부해안
면적 : 5만 6542㎢
인구 : 442만 8000명(2003)
인구밀도 : 78.3명/㎢(2003)
수도 : 자그레브(Zagreb)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세르보크로아티아어
통화 : 쿠나(Kuna)
환율 : 6.78Kuna = 1달러(2003.10)
1인당 국민총생산 : 4,550달러(2003)

면적은 5만 6542㎢, 인구는 442만 8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78.3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크로아티아 공화국(Republic of Croatia/Republika Hrvatska)이다. 수도는 자그레브이고 공용어로 크로아티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구(舊)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6개 공화국 중의 하나였으나, 1991년 6월 독립을 선포, 연방에서 탈퇴하였다. 북쪽으로 헝가리, 동쪽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서쪽으로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접하며 남쪽으로는 길게 아드리아해에 면한다.

II. 자연

크로아티아는 전체적으로는 초승달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로서 크게 달마티아해안, 디나르알프스산맥, 동부의 도나우평원 등 세 지역으로 구분된다. 헝가리평야의 일부인 동부의 도나우평원은 도나우강(江)의 지류인 사바강과 드라바강 유역의 매우 비옥한 충적평야로 농업에 적합하다. 남서부의 디나르알프스산계에는 디나르알프스산맥 외에 엘리카카펠라·말라카펠라·플레세바카산맥 등이 아드리아해안을 따라 뻗어 있다.

달마티아해안은 침강해안으로 해안에는 익곡(溺谷)이 발달되어 있으며 연안의 1,000여 개 섬이 열도를 이루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고 지중해성 기후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기후는 아드리아해연안은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은 따뜻하며 리에카의 1월 평균기온은 5.3℃이다. 디나르알프스산맥에서 동부지방 사이는 온난습윤기후와 서안해안성 기후이나 겨울의 추위는 심한 편이다. 국토의 3분의 1이 삼림이지만 산지에는 식생이 드물어 양의 방목이 이루어질 뿐이다. 지하자원으로는 석탄·갈탄·석유·천연가스·보크사이트·철광석 등이 매장되어 있다.

III. 주민

크로아티아는 1991년 현재 주민의 78.1%는 크로아티아인, 12%는 세르비아인이고, 그밖에 유고인·회교인·헝가리인·독일인·이탈리아인·슬로베니아인 등이 살고 있다. 종교는 크로아타아인은 9세기 말에 로마카톨릭으로 개종하였다. 현재에도 전체국민의 76.5%가 로마카톨릭을 믿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크로아티아인이다. 그외 세르비아인을 중심으로 세르비아정교를 믿고 있는 비율은 11.1%이다.

언어는 크로아티아어(語)와 세르비아어가 사용되고 있으나 이 두 언어는 아주 흡사하여 방언적인 차이에 지나지 않으므로 두 언어를 통합정리한 형태인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제정하여 공용어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크로아티아어가 공용어이다. 이 언어는 라틴문자를 사용하는 반면, 세르보어는 키릴문자(러시아문자와 유사)를 사용하고 있다.

IV. 역사

크로아티아 주민은 일리리아족으로 이미 기원전 3세기에 해안지방에서는 로마와 접촉을 가졌고 내륙지방에서는 켈트족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세기 초에는 고트족, 5세기 전반에는 훈족의 침입을 받았다는 사실 이외에는 불분명한 점이 많다. 6세기에는 북쪽에서 슬라브인과 아바르인이 들어왔고, 7세기에는 슬라브인이 대량으로 이주하여왔으나 그때까지 사회적·정치적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9세기에 들어와 슬라브라는 이름과 함께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7~9세기에 북부는 프랑크왕국, 동부는 동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925년 크로아티아의 트미슬라브공(公)이 왕위에 오르면서 비로소 크로아티아의 통일이 이룩되었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1102년 헝가리왕을 통치자로 하는 헝가리-크로아티아 국가가 성립되었으며, 1202년에는 베네치아가 달마티아의 일부를 차지하였다. 더욱이 15세기 후반부터 오스만투르크의 공격이 끊임없이 계속되었고 남(南)헝가리의 모하치전투에서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연합군이 터키군에게 패하여 합스부르크가(家)의 페르디난도 1세가 크로아티아의 왕위를 차지하였다. 19세기 전반에 이르러 헝가리의 통치에 반대하는 ‘일리리아 운동’이 일어났고, 1868년 헝가리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1918년 이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왕국(1929년 이후는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되었고, 1945년 이래 유고슬라비아연방의 공화국이 되었다. 1991년 6월 독립을 선포한 이후에는 연방 이탈에 반대하는 세르비아와 전쟁상태에 돌입하였고, 국내의 세르비아인들은 따로 ‘크라이너’라는 공화국을 수립하여 크로아티아측과 맞섰다.

V. 정치

1990년 4월 크로아티아 공화국 최초의 자유선거가 치러져 공산당이 퇴진하고 6월에 비공산 민족주의 정권이 탄생하여 유고 연방으로부터 이탈을 시도하였다. 북부의 선진공화국인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연방 최대의 세르비아 공화국과 민족대립이 강하고 경제적으로도 농업중심의 남부 각 공화국에 대한 경제부담에 대하여 불만이 컸다. 1991년 5월 주민투표에서 ‘주권국가에 의한 국가연합’에 대한 찬성이 94%에 달해 1991년 6월 독립선언을 하였다. 이를 계기로 크로아티아와 연방 유지를 지향하는 세르비아 공화국 간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6월에는 연방군대가 크로아티아에 본격적으로 개입하여 내전에 돌입하였고 9월에는 연방군이 크로아티아에 대공세를 가하였다. 12월에 세르비아인의 크라이너 자치구가 크로아티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고 역시 12월에 독일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승인한 것을 시작으로 1992년 1월 EC(European Community:유럽공동체)도 독립을 승인하였다.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은 3월 세르비아인 지구의 동·서슬라보니아와 크라이너 세 지구에 30개국 1만 4000명의 국제연합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정전 감시활동을 전개하였다. 크로아티아는 5월에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함께 UN에 가입하였다. 8월 독립 후 최초의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F.투즈만(F.Tudjman)이 당선되었다.

1993년 1월에는 크로아티아군이 정전을 파기하고 크라이너를 침공하여 발발한 내전으로 1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1994년 1월 유고연방측과 관계정상화 협정에 조인하고, 같은 해 3월 크라이너 지역 세르비아계와 휴전 협정에 서명하였다. 2000년 2월 중도좌파 야당연합의 스티페 메시치(Stipe Mesic)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민주정권 교체가 평화적으로 실현되었다.

의회는 상·하 양원제였으나 2001년 3월 상원을 폐지하고 1원제로 하였다. 의석수는 151석이고 임기는 4년이다. 주요정당은 크로아티아민주동맹(HDZ), 크로아티아민주독립당(HND), 크로아티아사회민주당(SDP), 크로아티아자유당, 크로아티아농민당(HSS), 크로아티아사회진보당(HSLS), 크로아티아 국민당(HNS) 등이다. 1999년 현재 국방비는 9억 5000만 달러이고, 병력은 1998년 현재 육군 5만 명, 해군 3000명, 공군 3180명이다.

VI. 경제

원래 크로아티아 경제는 농업과 목축을 기반으로 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대대적인 석탄 및 유전 개발로 전통적인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변모하였다. 그 결과 구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의 6개 공화국 중에서 인접한 슬로베니아와 함께 중요한 선진 공업지대를 형성하였다.

도나우평원을 주산지로 하는 석탄의 생산량은 구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 내에서 최대였으며 사바강(江)과 드라바강 사이의 평야에서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채굴된다. 이들 광산자원과 스플리트 수력발전소(22만kW)의 동력을 기초로 시사크의 제강·정유, 시베니크 부근의 알루미늄·제련, 리예카의 정유·조선, 슬라본스키브로드의 철도차량, 스플리트의 플라스틱 등의 중화학공업과 식품가공·제지펄프·섬유 등의 경공업도 발달하였다.

1990년대 들어 1992~1995년간의 유고내전으로 산업시설이 파괴되고 70여만 명에 달하는 전쟁난민 유입, 과도한 국방비 지출 등으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점차 경제가 회복되었으나 1999년 들어 코소보사태 등이 일어나면서 다시 경제상황이 악화하였다. 그러나 최근 경제의 중심인 관광산업이 서서히 회복하면서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 2000년 경제성장률은 3.7%, 실업률은 22.6%이다.

주요 산업은 섬유·석유·화학·기계·조선·식품·알루미늄제품·제지 산업 등이며 그밖에 치즈·설탕·맥주·담배·텔레비전·라디오 등이 생산되고 있다. 토지이용에서는 농경지가 156만ha로 27.6%를 차지하고 산림이 201만ha로 35.6%를 차지한다. 농업은 동부의 사바강·드라바강 유역의 평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주요 농작물인 감자·옥수수·밀·보리 외에 포도·사과·올리브 등의 과일과 토마토·담배·해바라기 등이 생산되고 있다. 목축의 경우는 소·젖소·돼지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닭·말·양도 사육한다.

공업발전의 기초가 되고 있는 광업에서는 탄화도가 낮은 아탄(亞炭)과 갈탄을 포함한 석탄, 원유, 천연가스, 보크사이트, 철광석이 생산된다. 해외무역에서는 2000년 현재 수출과 수입이 각각 43억 9000달러와 79억 1000달러로 국제수지상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주된 무역 대상국은 이탈리아·독일·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슬로베니아이며 주요 수출품은 의류·원자재·연료·식료품 등, 수입품은 자동차와 전기기계 등이다. 리예카와 스플리트는 이 나라 굴지의 무역항이고, 디나르알프스산맥을 건너 자그레브로 연결되는 철도가 놓여 있다.

VII. 사회

구(舊)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에 속하였던 당시에 슬로베니아와 함께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한 크로아티아는 독립과 내전으로 인하여 187억 달러로 추정되는 경제적 피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인접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부터의 계속적인 난민 유입 등으로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다. 2000년 현재 인구증가율은 0.93%로 출생률 12.82%, 사망률 11.51%이며 이민자 수는 인구 1000명당 7.98명이다. 평균수명은 73.67세로 남자 70.04세, 여자 77.51세이다. 1997년 현재 도시 인구율은 57%이다.

언론기관으로는 국영통신사 HINA가 1991년에 발족하였다. 9세기에 가톨릭으로 개종된 후 가톨릭이 널리 퍼져 있으며, 옛 그리스도교 문헌이 글라골문자로 쓰여 있는데, 도서지방에서는 최근까지 이 문자를 사용하였으나 일반적으로는 라틴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VIII. 문화

크로아티아 문학에서 대표적인 작가는 15~16세기의 ‘유디타’라는 서사시를 쓴 마르코 마룰리치와 ‘로비냐’를 쓴 하니발 루치치를 들 수 있다. 그밖에 아우구스트셰노아, 안톄코바치지, 구스타브 마토슈, 아우구스트체사레츠, 베코슬라브 칼레브, 크를레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크로아티아 문학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미술에서는 아드리아 해안도시인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중세교회 건축물이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또 크로아티아 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판화이고, 음악에서는 첼리스트 야니그로와 자그레브필하모니오케스트라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나라의 행정·문화의 중심지는 수도인 자그레브로, 고딕양식의 자그레브성지와 과학아카데미, 1669년에 세워진 자그레브대학교가 있다. 국내 최대의 공업도시인 동시에 사바강의 하항이고 육상과 항공교통의 중심지이다. 아드리아 해안도시인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는 고대 로마에서 중세에 이르는 유적지와 달마티아해안 특유의 아름다운 경치와 온화한 기후 등으로 관광도시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크로아티아 교회음악의 최초 악보는 11세기까지 역사가 거슬러올라간다. 12세기부터 있어왔던 크리스마스 곡은 아직도 불리고 있다. 크로아티아에는 500개가 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도 드문 경우이다. 크로아티아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두 명의 르네상스시대 작곡가들이 있는데, 첫번째는 줄리제 스크자베티치(Julije Skjavetic)로 그의 모테트(motet-성경구절에 곡을 붙인 무반주 성악곡) 작품들은 1945년 드레스덴의 파괴로 사라졌다가 1993년 카라코우(Krakow)에서 발견되었다. 두번째는 이반 루카시치(Ivan Lukacic)로 스플리트성당의 오르간 지휘자였다.

17세기 크로아티아 음악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바로크음악 작곡가 빈코 젤리치(Vinko Jelic )는 유럽에서 막 나타나기 시작했던 반음계난 연탄법등의 기교를 자신의 음악에 소개하여 유명해졌다. 18세기에 활약한 루카 소르코세비츠(Luka Sorkocevic)의 교향곡들은 현재도 세계적으로 널리 연주되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민요는 유명한 유럽 음악가들에 의해 종종 그 테마가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그 예로 프란츠 하이든의 교향악 No. 164 D단조에서 크로아티아 민요인 "Oj, Jelena, Jelena, jabuka zelena"가 주 테마로 사용되고 있다.

크로아티아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예로 스플리트에는 4세기경의 로마 황제 디오크레티아누스의 아름다운 궁전이 남아 있으며 비잔틴문화의 흔적으로는 포렉(Porec)에 있는 6세기에 세워진 유프라시우스(Euphrasius) 바실리카공회당이 있다. 크로아티아에는 더 오래된 문명의 흔적도 많이 남아 있는데 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BC 3000-2000년의 초기 청동기시대 문명인 부세돌(Vucedol)문명으로 고대 이집트나 수메르문화, 트로이문명과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IX. 과학기술

크로아티아의 과학자 프레데릭 그리소고노(Frederik Grisogono)는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로 달의 인력에 의한 조수 이론으로 유명하며 반대 조류를 발견하였다. 최초의 기술적 발견은 파우스트 브란식(Faust Vrancic)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의 발명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낙하산으로 베니스에서 시험되었다. 그 이전 다빈치는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대충의 스케치에 그쳤을 뿐이었다.

마린 게탈더스(Marin Ghetaldus)는 크로아티아 과학의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주로 광학과 수학, 물리학 분야에 업적을 남겼으며 그의 포물선 거울은 영국의 해양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프랑조 도민(Franjo Domin)은 정전기를 이용하여 전기 치료법으로 환자를 치료한 최초의 의사였다. 조십 부체티치(Josip Vucetic)는 범죄학자이자 인류학자로 과학적 지문학(지문으로 신원을 파악하는)의 선구자이다.

최초의 수력발전소가 크로아티아에 세워진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력발전소는 1895년 크르카(Krka) 폭포에 세워져 시베닉(Sibenik)시를 밝게 밝혔다. 동물학자로 세계적 이름을 떨친 스프리디온 브루시나(Spiridion Brusina)는 600개 화석의 종을 분석, 분류하였으며 크로아티아의 과학 대중화에 이바지 하였다. 유럽의 자연 과학자들은 그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50개의 종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에두와르 펜칼라(Eduard Penkala)는 일종의 화학 펜을 발명하였는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펜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또한 최초로 비행기를 만든 사람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는 설명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한 과학자로 전기교류기술과 삼파장 시스템의 아버지이다. 또한 그는 고주파 기술과 무선통신 기술에 기여한 바가 크다. 테슬라의 수없이 많은 발명은 현대 문명의 개발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에디슨(T.A. Edison)과 공동수상 하기로 되어있던 노벨상 수상을 거절한 바 있다.

지진학에서 유명한 지구의 모호층(Moho-layer or Moho-discontinuit)은 위대한 크로아티아의 지리학자 안드리자 모호로비치치(Andrija Mohorovicic)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의 발견은 지진파의 움직임과 지구 내부 구조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보스코비치(J.R. Boskovic)의 힘의 이론과 함께 그의 발견은 크로아티아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일 것이다.

X. 대한관계

1992년 4월 한국은 크로아티아를 승인하였고, 같은 해 11월 정식으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1995년 무역협정, 2001년 외교관 및 관용여권 사증면제 협정을 체결하였다. 한편 북한은 1992년 5월에 크로아티아를 승인하였고 11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2000년 현재 한국과의 교역량은 대한(對韓) 수출이 129만 달러이고, 대한 수입이 3370만 달러로 대한국 무역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주요 수출품은 종이·직물·의약품 등이며 수입품은 텔레비전·자동차·오디오 등이다. 특히 한국의 자동차는 1999년에 1만 121대가 판매되어 시장 점유율 20% 이상을 기록하였다. 한국인 15명이 체류하고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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