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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01 (토) 10:23
분 류 사전2
ㆍ조회: 1098      
[근대] 입체파=입체주의 (한메)
입체주의 立體主義 [프] cubisme

20세기 초 파리에서 일어난 미술운동.

P.R.피카소·G.브라크가 창시자이다. 입체주의라는 명칭은 일설에 의하면 H.마티스 또는 미술 비평가 L.보셀이 붙였다고도 하는데, 1908년 브라크가 그린 그림 속의 모든 대상이 기하학적 도형, 즉 정육면체(큐브)로 환원된 것이 이름을 붙이게 된 동기이다.

[원통·구(球)·원추]

1904년 P.세잔은 E.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연 속의 모든 대상은 기하학적 형식, 즉 원통·구·원추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실제 제작에서는 전통적인 원근법을 적용해서 자연을 묘사하고 있는데, 단일 시점을 전제로 하는 르네상스시대 이후의 투시도법에 따른 공간표현을 변혁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인상파에 부여되었던 조형적인 견고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세잔은 형태에 대해 철저히 탐구했다. 그 탐구는 그의 만년에 개최된 일련의 전람회에서 서서히 알려졌고, 특히 그가 죽고 1년 후에 열린 회고전은 피카소와 브라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흑인조각의 영향]

이 때 이미 피카소는 브라망크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였던 아프리카 흑인 원시미술의 도식적이고 개념적인 인체표현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피카소가 이러한 원시적인 미술과 세잔에 대한 관심, 그에 따른 새로운 탐구를 혁명적인 묘사방법에 따라 처음으로 그린 작품이 《아비뇽의 여인들(1906∼1907, 뉴욕근대미술관)》이다. 이 작품에서 피카소는 전통적인 미술의 규범을 무시하고 여러 가지 시점에서 바라본 인체를 그리고 있는데, 흑인조각에 대한 그의 연구의 흔적을 명확히 알 수 있다.

1907년 여름, 브라크는 이러한 피카소의 영향을 받아 그 자신의 새로운 회화를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10년에는 이미 입체주의적인 최초의 작품 《숲속의 나체 여인들(1907)》을 그린 J.F.H.레제가 피카소와 브라크를 알게 되어 그룹에 동참하게 되었다.

[입체파 화가들]

1911년 앵데팡당전(展)에서 입체주의에 참가했던 미술가들의 단체 전시가 처음으로 조직되었다. 이때까지 입체주의에 참여했던 화가로는 R.들로네·A.L.그레즈·A.로테·J.메친제·J.비용·J.그리스, 조각가로는 A.P.아르키펭코·C.브랑쿠시가 있다. 이 미술가들 모두에게 공통된 기본방침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 탐구의 단계적 발전 국면에는 공통된 점이 있고, 각 국면에서 작품이 나타내는 특질과 같은 시기에 발표된 과학적·미술론적·철학적 사색 사이에는 분명히 병행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입체주의 화가들이 저술한 입체주의론에 의해 확인되는데, 그레즈·메친제 공저 《입체주의론(1912)》, 그레즈의 《입체주의, 그 이해의 방법(1912)》 등이 있다.

[분석적 입체주의]

입체주의 최초의 국면은 1909년 말 무렵에 시작되는데 대상의 세분화, 즉 대상을 그 구성부분으로 분석하는 과정이라고 하여 <분석적>이라 일컬어졌다. 이 국면에서는 대상의 양적 표현과 공간구성의 문제가 가장 중시되고 색채의 문제는 경시되어 거의 단색으로 그려졌다. 이렇게 대상의 모든 순간과 양상을 한 면 위에 표현하려고 하는 조형기법은 E.후설의 현상학과 관련되어 있으며, 방법론적으로는 절대적 인식을 위해 상대적 인식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H.L.베르그송의 생철학과도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받아 왔다.

[종합적 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에 이어 1910∼12년 종합적 입체주익가 시작되었다. 이국면에서는 분석·세분화되어 있던 대상의 형태는 재통합되었고 전통적인 투시도법을 이용하지 않고 대상의 외관에 보이는 요점을 나타내게 되었다. G.아폴리네르는 들로네의 종합적 입체주의를 매우 의미심장하고 시적인 것으로서 <오르피즘(오르페우스적인 의미)>이라고 이름지었다. 들로네는 대상의 세분화라는 기법을 사용하지만, 오로지 색채의 탐구에만 전념하여 <청기사>운동에 참가한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한편 그리스는 기하학과 수학에 정열을 기울여 종합적 입체주의 최고의 화가가 되었다.

[타블로 오브제]

밝은 색조를 입체주의 화면에 도입한 것은 들로네와 레제였는데 이 개혁에 이어 1912년 피카소와 브라크가 파피에 콜레를 창시하였다. 이 파피에 콜레에 의해 <타블로 오브제>라는 개념이 형성되었다. 여기서도 화면의 객관적 사물성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세잔이 선행자라고 할 수 있는데 입체주의의 <타블로 오브제>에서 화면의 사물성은 절대적이어서 화면에 도입된 물건(봉투·우표·트럼프·헝겊 등)의 사물성과 동등하게 된 것이다.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로 입체주의 미술가들은 그들의 공통된 목적을 갑자기 상실하였으며, 입체주의의 그룹이 해체되어, 그들의 특징인 혁명적 정신도 잃어버렸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전통적인 형식으로 돌아가는 한편, 그레즈·메친제·그리스·비용 등은 <순수회화>, 즉 어떤 종류의 정서에도 속하지 않는 회화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A.오장앙과 르 코르뷔지에(본명 C.F.잔레)는 1918년 선언 <입체주의 이후>를 발표하고 순수주의를 정의하였으며, 보다 엄격한 양식에 도달할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이 주장은 신조형주의(新造形主義)로 발전하게 되었다.

<우경회>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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