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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6-02-25 (토) 17:21
분 류 사전2
ㆍ조회: 1222      
[근대] 슈만 (한메)
슈만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독일 낭만파의 대표적 작곡가.

츠비카우 출생. 서점·출판업을 한 아버지는 라이프치히대학 문학부에 적을 두고 소설을 썼을 정도로 문학적 소질이 풍부했으며, 어머니는 외과의사의 딸로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슈만은 문학적·음악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7세 때부터 거의 자기 스타일로 피아노를 치거나 작은 무곡풍의 곡을 써서 음악적 소양이 풍부함을 나타냈다.

12세 때 《시편 제150번》을 작곡하였으며, 스스로 조직한 아마추어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초연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16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슈만의 장래를 걱정한 어머니와 후견인들의 설득으로 법률을 배우기 위해 김나지움에 다니기 시작했다. 1828년 3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라이프치히대학 법과에 진학했는데, 대학생활 후반에는 하이델베르크대학 법과로 전학했다.

그러나 그동안 슈만은 차츰 음악에 깊이 관계하여 친구와 실내악을 즐기거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연주회에 자주 다녔으며, L.베토벤이나 F.P.슈베르트의 작품을 가까이했다. 또한 하이델베르크에서는 법과교수 A.J.티보가 음악론저서까지 펴낸 사람으로, 음악 실천면에서도 학생과 함께 G.팔레스트리나의 고전대위법을 연구하는 서클의 지도자였던 점도 슈만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 교수의 권유로 당시 라이프치히에서 유명했던 피아노교사 F.비크의 제자가 되었다.

1830년 가을부터는 비크의 집에 묵으면서 명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수업에 힘썼으나, 이 무렵 비크는 천재적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듣던 그의 딸 클라라와 함께 연주여행을 하는 일이 많아 수업은 물론 사제관계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때까지 슈만은 미완성인 채로 남은 2곡의 피아노협주곡의 스케치와 피아노독주 소품의 스케치를 남기고 있었으며, 창작면에도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1831년에는 전해에 완성시킨 《아베그변주곡》을 작품1로 출판하여 작곡가로서 미래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또한 1831년 말 라이프치히의 《일반음악신문》에 F.쇼팽에 관한 논평을 투고하여 날카로운 감성과 정확한 통찰력을 보이는 등 명석한 두뇌와 문학적 재능으로 음악평론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지나친 피아노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친 그는 피아니스트의 길을 단념하고 창작에 전념하게 되었다.

1832∼33년 사이에 상당수의 피아노곡을 썼으며, 1832년에는 《나비》 《파가니니연습곡》 《인테르메초》를 잇따라 출판하였다. 34년은 슈만에게 있어 일대 비약의 해였다. 44년까지 10년 동안 자신이 단독으로 주필한 《음악신시보》를 창간하여 당시 음악저널리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는 한편, 창작면에서는 《교향적 연습곡》과 《사육제》를 완성하여 피아노 음악사상 한 획을 긋는 신양식의 작품으로서 새로운 시대의 츌발점이 되었다.

이리하여 창작과 평론활동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1835년 무렵부터, 그때 막 천재 소녀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확립한 스승의 딸 클라라에게 연애감정을 품게 되지만, 비크는 두 사람의 연애를 엄하게 금지했다. 이러한 시련 속에서 슈만은 36∼38년 사이에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피아노곡의 대부분을 작곡했다. 《환상소곡집》 《어린이의 정경》 《크라이슬레리아나》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비크에 대해 젊은 두 사람은 부친의 허락없이 결혼할 수 있도록 재판으로까지 몰고 갔으며, 1840년 9월 12일 겨우 결혼을 했다. 아내 클라라와의 정열적인 연애는 음악사상 유명한데, 이러한 인생의 큰 전환과 때를 같이 하듯 슈만의 창작은 피아노음악에서 <가곡의 해>라 불리는 성악작품으로 집중되어갔다. 《리더크라이스》 《시인의 사랑》 《여자의 사랑과 생애》를 비롯해 《미르테의 꽃》 등 가곡집의 걸작이 이 해에 완성되었다. 그 뒤에도 1841년 <교향곡의 해>, 1842년 <제1차실내악의 해>, 1843년 <오라토리오의 해>라고 하는 집중적·체계적인 창작자세를 보였다.

슈만이 활동했던 장소를 보면 본거지는 1844년까지의 라이프치히이지만, 1844년 말부터 1850년 9월까지 드레스덴시대, 그리고 1850년 9월부터는 뒤셀도르프시대가 된다. 마지막 말년의 2년간은 청각이상과 환각증상에 시달리면서 본 교외 엔데니히의 정신병원에서 혼자서 살았으며, 1856년 7월 29일 46세로 생애를 마쳤다.

<김중석>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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