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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16 (일)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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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279      
[미술] 이집트미술 (두산)
이집트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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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생겨나고 발전한 미술.

I. 개관

구석기시대 이후 로마시대에 이르는 고대 이집트 미술은 BC 3100년경 제1왕조가 성립된 시대부터 점차 원시적 단계를 벗어나 제4∼5왕조시대에는 이미 고전적 양식을 보여줄 정도로 발달하였다. 그리하여 제12왕조, 제18∼19왕조, 제26왕조 등의 시대에는 특히 그 활동이 눈부셨다. 이집트인은 옛날부터 자연현상이나 동물 등을 신으로 숭배하였고, 또 내세(來世)를 믿어 사자(死者)를 후장(厚葬)하였다.

예술은 이와 같은 종교관에 입각하여 영원성을 조형화(造形化)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견고한 재료를 가지고 만들어져서 불변불후를 이상으로 하였다. 이집트인들은 종교교의(敎義)가 일단 정해지면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술양식도 수천 년에 걸쳐 지극히 미미한 변화밖에는 없었다.

II. 건축

건축의 유구(遺構)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분묘와 신전이다. 이집트인은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양자의 분리는 죽음이지만, 사자(死者)는 영혼이 머무는 곳인 시체가 멸하지 않고 공물(供物)을 받을 수 있다면 죽은 자도 저승에서 계속 산다고 믿었다. 시체를 미라로 만든 이유라든가, 또는 사자의 영원한 집인 분묘를 정비한 이유가 모두 이러한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건축상 주목되는 최초의 분묘형식은 왕조 성립기 전후에 나타난 마스타바(아랍어로 걸상)라는 왕과 귀족의 묘로서, 처음에는 지하에 현실(玄室)과 그 부속실을 만들고 지상의 상부구조에 몇 개의 방을 두어 부장품을 넣었으며, 그 위를 양건(陽乾) 벽돌로 쌓아올려 직사각형의 대(臺)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마스타바는 고왕국시대에 들어와서 귀족의 묘로 발달하여 현실은 땅속 깊숙이 파고들어간 수혈(竪穴)에 접하여 만들고 상부구조의 측면은 경사가 져서 사다리꼴을 이루었으며 그 안에 영혼만이 드나들 수 있는 출입문과 예배소, 조상실(彫像室)을 배치하였다. 제3왕조의 조세르왕은 사카라에 6단의 마스타바를 쌓아올린 형태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구축하였다. 제4왕조부터 왕의 분묘는 정사각형 추형(錐形) 피라미드가 된다. 기자의 피라미드는 북쪽부터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등 왕들의 것인데, 가장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46.5 m, 평균 2.5 t의 돌이 230만 개나 쓰인 것으로 추정되고, 현실은 석축(石築)의 거의 중앙에 있다.

이러한 피라미드는 정사각추의 석축과 예배소, 나일강변의 신전, 예배소와 신전을 연결하는 지붕 덮인 낭하 등 4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1왕조의 멘투호테프 2세 및 3세의 분묘는 테베의 델 엘 부하리에 있으며, 마스타바에 피라미드를 얹은 형태이다. 제12왕조의 왕들은 파이윰에 피라미드를 세웠으며, 그것은 규모가 작고 재료도 양건벽돌이었다. 중왕국시대에 중(中)이집트 등 사막이 나일강 가까이까지 뻗은 지방에서는 귀족의 분묘를 절벽 중턱에 설치하였다. 신왕국시대 왕들의 분묘는 테베의 ‘왕가의 계곡’에 횡혈식으로 만들어졌고, 도굴에 대비하여 입구는 비밀로 설치하였다. 그리고 예배를 위한 장제전(葬祭殿)은 멀리 떨어진 사막의 대지 끝이나 평지 위에 세워졌다.

델 엘 부하리에 있는 하트솁수트 여왕의 장제전은 경사진 길로 연결된 3개의 단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데, 중정(中庭) 둘레에 콜로네이드(列柱)를 세운 형식으로, 배경을 이루는 단애의 경관과 잘 조화되고 있다. 람세스 2세의 장제전인 라메세움, 메디네트 하부에 있는 람세스 3세의 장제전 등은 사자와 함께 신들이 모셔져 있었으므로, 그 설계는 신전과 거의 비슷하였다. 신전에는 고왕국시대의 것으로 제5왕조의 태양신 ‘라(Re/Ra)’의 신전형식이 밝혀져 있으며, 상하가 압축된 모양의 오벨리스크를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중왕국시대의 신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현존하는 것은 신왕국시대 및 말기의 것이 대부분이다.

전형적인 신전형식은 카르나크(테베)의 콘수 신전에서 볼 수 있다. 양쪽에 스핑크스가 늘어선 참배도(參拜道)가 끝나는 곳에 오벨리스크를 전면에 세운 탑문(塔門)이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면 뜰이 있고 좌우에 별주랑(別柱廊)이 있다. 뜰 안쪽에 현관이 있으며, 그 곳을 지나면 다주실(多柱室)이 된다. 다주실 안쪽은 신관(神官)이나 왕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특별한 날에 콘수 신상을 얹어 나르는 성주(聖舟)를 격납(格納)하는 방과 그 밖의 방이 있고, 가장 안쪽 벽에 붙은 콘수 신상을 안치하는 방을 중심으로 3개의 방이 있다. 카르나크의 아몬 신전, 룩소르의 신전 등은 규모도 크고 형식도 복잡하지만, 부분적인 요소는 콘수 신전의 형식과 다름없으며, 다만 이것을 확대하거나 반복한 데 지나지 않는다. 이 형식은 덴데라 ·에드푸 ·필라에 등 말기의 신전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또한 사막이 나일 강변까지 근접한 지방에는 신전의 대부분 또는 일부를 단애 속으로 파들어가서 만든 암굴신전 ·반암굴신전도 있다. 아스완 댐의 건조에 따라 절단(切斷)하여 이전한 아부심벨의 신전은 전자의 예이다. 분묘나 신전이 석재를 사용하여 견고하게 세워진 데 반하여 세속건축은 주로 양건 벽돌이나 목재 등을 사용하였다. 제18왕조의 이단왕(異端王) 이크나톤이 천도하였던 수도 텔 엘 아마르나에서는 정궁(正宮)과 이궁(離宮), 고관의 저택, 새 수도 건설에 종사한 기술자의 집합주택 유구(遺構)가 발견되었다.

이집트 건축의 특징이 되는 기둥의 형식을 보면, 네모난 기둥에는 여신 하트호르의 두부(頭部)를 주두부(柱頭部)에 부조(浮彫)한 것(하트호르 기둥)과 수의(壽衣)를 입은 왕의 상(像)을 그 앞에 세운 것(오시리스 기둥) 등이 있으며, 원주(圓柱)에는 8면 또는 16면 등으로 이루어진 프로트 도리스주(柱)와 각종 식물(야자 ·연꽃 ·파피루스)을 모티프로 한 것 등 여러 형태가 있다.

III. 환조

이집트미술의 환조(丸彫)에는 신상(神像), 신전이나 분묘에 안치된 왕과 귀족의 조각상, 부장품으로 만든 소형 인물상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 재료는 돌 ·금속 ·나무 ·상아 ·도기 등이다. 석재는 섬록암(閃綠岩) ·화강암 ·각력암(角礫岩) 등 경질의 암석과 석회암 ·사암 ·앨러배스터(설화석고) 등 연질의 것이 있으며, 금속은 주로 동과 청동이고, 목재는 아카시아 ·무화과나무 등의 이집트산 이외에 침엽수의 수입재를 많이 사용하였다. 왕조 전 시대와 초기 왕조시대에는 그다지 단단하지 않으면서도 정교하게 조각할 수 있는 상아조각이 주류를 이루었다.

정교한 대형 조상은 분묘형식이 발달하여 예배소에 조상실을 설치하고 사자(死者)의 상을 안치하게 된 고왕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상에는 사자의 영혼이 머무른다고 믿었기 때문에 신체 각 부분 중에서도 특히 얼굴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왕국시대에는 제세르왕 좌상(제3왕조: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소장)이 등신대 묘상(墓像)으로는 최초의 것이며, 라호테프, 네페르트 부부의 좌상(제4왕조: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소장)은 채색이 아직도 선명하고 옥안(玉眼)이 영롱하여 현실감이 넘친다. 카프레왕 좌상(제4왕조: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소장)은 견고한 섬록암으로 된 당당한 조각으로서 품위와 위엄이 가득한 최고 걸작의 하나이다. 멘카우레왕과 왕비의 입상(제4왕조:보스턴미술관 소장)은 매우 경건한 느낌을 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이상 열거한 것은 왕과 왕족의 조상으로, 왕실의 공방(工房)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 밖에도 사설 공방에서 만들어진 사인(私人)의 조상 중에도 뛰어난 것이 많다. 가발을 붙인 것과 붙이지 않은 것 등 두 가지가 있으나 얼굴이 몹시 닮은 라노펠 입상(제5왕조: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소장), 정력적인 50대 남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카펠 입상(제5왕조: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소장), 당시 식자층으로 존경을 받은 서기(書記)의 모습을 조각한 묘상 중에서는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서기좌상(제5왕조) 등을 걸작으로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석회암이나 목재 등으로 만든 것은 일반적으로 채색되어 있으며, 두발은 흑색, 남자의 피부는 적갈색, 여자의 피부는 담황색, 옷은 백색으로 칠해져 있다. 중왕국시대에는 북쪽의 멤피스계(系)와 남쪽의 테베계 작품을 각각 식별할 수 있다.

북방계의 조각은 고왕국시대의 세련된 작풍을 계승하여 기교적으로 뛰어나지만, 약간 도식적이면서 섬약한 인상을 준다. 리셰트에서 출토된 세누셀트 l세 좌상(카이로), 하와라에서 출토된 아멘엠헤트 3세 좌상(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소장) 등이 그 보기이다. 남방계의 조각은 지방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칠고 힘찬 작풍에 멤피스의 기교를 받아들여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였다. 다얄 알 바하리 출토의 세누셀트 3세 입상(카이로) 등은 그 좋은 예이다. 고왕국시대 말기부터 하인 소상(下人小像)을 부장(副葬)하던 풍습은 중왕국시대까지 계속되었으나, 중왕국의 하인 소상은 전대와 같이 돌로 된 것이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몇 가지 예를 제외하면 별로 볼 만한 것이 없다.

신왕국시대의 조상에는 새로운 포즈도 채택되고 양감(量感)이나 선이 세련되어 우아한 작품이 많아진 반면, 표현이 형식화되어 차갑고 생기가 덜한 것이 흠이다. 제18왕조 초기의 작품은 다분히 중왕국의 작풍을 남기고 있으나 하트솁수트 여왕 무렵부터 점차 새로운 기법이 나타나서 백관(白冠)을 쓴 투트모세 3세 입상(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소장)은 남달리 무용(武勇)이 뛰어난 왕이었지만 매우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신왕국시대에는 거상(巨像)의 제작이 많아졌는데, 아멘호테프 3세와 왕비 티의 좌상(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소장)은 그 선구적인 작품이다. 아멘호테프 4세 무렵에는 투철한 사실주의가 풍미하여 왕의 추한 신체적 특징을 표현한 작품이 나타날 정도였으나, 왕이 이크나톤이라 개명(改名)하고 텔 엘 아마르나에 천도한 후부터 크게 누그러져서 왕비 네페르티티 흉상(베를린국립미술관 소장)과 같이 세련된 작품이 나타났다.

제19왕조에는 람세스 2세의 입상처럼 기교적으로는 뛰어났지만 생기를 잃은 작품이 만들어졌으며, 또 왕이 여러 신전에 봉납한 거대한 자상(自像)은 예술적으로 높이 평가될 만한 것은 못되었다. 제21∼25왕조에는 왕비 카로마마의 입상(루브르미술관 소장)과 같은 기교적 작품만이 나타났으나, 제25왕조 무렵에는 사실적인 남자상이 만들어졌다. 제26왕조에는 일반문화와 보조를 맞추어 미술도 복고적인 경향을 띠면서 고왕국시대의 작품을 많이 모방하였으나, 결국은 냉랭한 형식화에 그치고 말았다. 프톨레마이오스시대부터 로마시대에는 이집트 양식과 그레코로만 양식이 기묘하게 혼합된 조상도 만들어졌다.

IV. 부조와 회화

고대 이집트의 부조와 회화는 신전 ·분묘 등 건조물의 벽면을 장식하고, 또 비석이나 관 ·궤(櫃) 등의 이면을 꾸미는 데 이용되었다. 이 밖에 특수한 것으로서 석회암 파편에 그림을 그리거나 새기기도 한 오스트라콘, 파피루스의 두루마리 그림 등이 있다. 회화는 물론이고 부조도 여러 색으로 채색되었다.

주요한 안료는 대자(代裏)의 적색, 황토의 황색, 감청석(紺靑石)의 청색, 공작석의 녹색, 그을음의 흑색, 백악(白堊)이나 석고(石膏)의 백색 등이었고, 그것을 아교 ·수지 ·달걀 흰자위 등에 개어서 사용하였다. 부조와 회화의 표현은 공통적으로 인물의 얼굴이 반드시 옆을 향하게 하고, 눈과 어깨는 정면을, 복부는 거의 옆, 다리는 완전히 옆을 향하게 했다. 이는 인체의 각 부분에 대한 관념을 종합한 관념상으로서 종합하는 방법에 일관성이 없어 프리미티브(primitive) 예술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초기의 부조에는 신전에 봉납하기 위해 만든 팔레트가 있으며, 그 중에서도 나르메르왕의 남북 이집트 통일이라는 역사적 위업을 나타낸 화장용판(化粧用板)이 특히 유명하다. 제3왕조의 헤시라의 목제 패널(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소장)은 윤곽이 정확하고 살붙임의 기법이 미묘하다. 제5왕조시대에는 민간의 분묘가 발달하여 예배소의 벽면에는 생존시의 윤택하였던 생활이 내세에도 계속되도록 비는 여러 즐거운 정경이 조각되었다. 사카라의 티의 분묘(제5왕조)에는 집 안에서 일하는 각종 기술자나 농부 ·뱃사공 등 집 밖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극명하게 묘사해놓았다.

회화에서는 메둠에서 출토된 오리의 그림(제4왕조: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소장)이 깃털의 모습까지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어 벽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벽화는 중왕국시대의 중부이집트 호족의 묘에도 그려진 것이 있으나 현재의 보존상태는 좋지 않다. 신왕국시대부터 그레코로만시대를 포함한 말기에 걸쳐 조영된 신전이나 장제전의 벽면에는 수많은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이 경우, 일반 예배자에게 공개되는 부분에는 왕의 전기적(傳記的)인 주제가 다루어지고, 은밀한 부분에는 왕이 신들을 예배하고 신들이 왕에게 은총을 내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레코로만시대의 부조는 둥그스름한 느낌을 주고 윤곽이 유연하게 표현되어 인체의 해부학적 정확성을 잃고 있다.

분묘벽화는 신왕국시대 테베의 왕릉이나 귀족의 분묘에 그려진 것이 많고, 오늘날에도 선명한 색채로 전하는 작품이 많다. 레크미라 ·낙트 ·멘나 등지의 분묘벽화가 그 좋은 예이다. 아마르나시대에는 왕실 가족의 단란한 장면과 아톤 신앙에 연관된 새나 짐승의 모습 등 특색있는 주제가 다루어졌다. 파피루스의 두루마리 그림에는 사자(死者)가 위험한 저승길을 여행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주의사항을 모은 《사자의 서(書)》 등이 있다.

V. 공예

공예품으로는 석기를 비롯하여 도기 ·금세공품 ·목공예품 ·섬유제품, 짐승의 엄니[牙]나 뿔로 만든 물건, 피혁제품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주요한 것을 들면 석기로는 선왕조시대 후기의 프레이킹 기법에 의한 수석제(燧石製) 소도(小刀)가 특히 뛰어나며, 석제 용기로는 선왕조시대에 견고한 돌로 만든 그릇과 왕조시대의 반투명한 앨러배스터 제품(製品)이 매력적이다.

토기는 선왕조시대 후기의 것이 조형적으로나 장식면에서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도차(陶車)는 제1왕조 무렵부터 사용된 듯하다. 유약(釉藥)은 협의의 선왕조시대 이전인 바다리기(期)의 석태(石胎)에 이미 나타나 있다. 이것은 선왕조시대에 들어서면 인공적으로 마련된 듯한 석영분말의 태(胎)에 응용되었으며, 이 도기는 왕조시대에 계속 발달하여 기물(器物) 이외에도 분묘에 부장하기 위한 인형이나 동물상 ·우샤브티(使役用人形) ·부적류 및 타일 등의 건축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유약은 알칼리질로서 빛깔은 청색 ·녹색 ·보라 ·백색 ·황색 등이었다.

유리 제품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제18왕조시대의 유품이 전하며 그 가마터가 테베와 텔 엘 아마르나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로마시대 이전까지는 유리공예에서 샌드 코어(砂芯)기법이 사용되었다. 이집트에서 제일 먼저 이용된 일반금속은 동(銅)으로서, 그 기원은 BC 500년으로 거슬러올라가고, 서아시아에서 비롯된 청동이 보급된 것은 중왕국시대부터였다. 구리와 청동의 가공기법에는 단조(鍛造) ·주조 ·금은피복(金銀被覆) 등이 있었다.

금은 일찍부터 사용되기 시작해 그 세공기법도 놀랄 만한 수준이다. 많은 보석으로 장식한 금관과 금제흉식(金製胸飾) 등이 만들어졌는데, 제12왕조의 뛰어난 유품이 전한다. 금을 대량으로 사용한 예로는 제18왕조 투탕카멘왕의 금제관(棺)이 특히 유명하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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