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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26 (일) 17:22
분 류 사전2
ㆍ조회: 631      
[현대] 우주개발 (두산)
우주개발 space exploration 宇宙開發

우주공간의 천체 등을 로켓·우주선 그 밖의 인공천체와 과학기기 등을 동원하여 과학연구와 실용적 목적으로 활동하는 일의 총칭.

I. 개관

지구도 우주의 한 구성이므로 넓은 의미로는 인간의 생활역사는 우주공간의 여러 현상과 독립해서 볼 수는 없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정밀한 천체관측을 기초로 하여 태양력(太陽曆)을 만들어 이용하였다. 그것을 개선하여 BC 45년에 제정한 것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역(曆)의 기초가 된 율리우스력이었다.

16∼17세기에 이르러 N.코페르니쿠스, G.갈릴레이, J.케플러 그리고 I.뉴턴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나타나 우주과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20세기 들어 각종 공학적 수단이 도입되면서 우주공학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957∼1958년에는 전세계의 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실시한 국제지구물리관측년(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을 통해 지구와 지구 주변 환경의 입체적인 과학관측이 세계적 규모로 실시되어 우주과학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1957년 10월 4일 인류사상 처음으로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면서 우주로의 진출이 시작되었다.

II. 역사

1. 제1기

우주개발 제1기는 미국과 소련의 우주과학 경쟁기로서, 양국 전략무기의 공격력 정비경쟁을 반영한 시기이다. 미·소간 첨예하게 우주개발 경쟁을 시작한 시기는 1958년 1월 우주개발의 선두를 소련에 빼앗긴 미국이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면서부터이다.

한편, 1950년대 후반 핵무기 운반수단이 항공기로부터 로켓으로 옮겨갔고, 핵탄두의 폭발위력 및 명중정도(命中精度)와 운반거리의 경쟁이 중심이 되었다. 초기의 대륙간탄도탄(ICBM)는 연료탱크에 주입하지 않으면 저장이 안 되는 액체추진제를 사용하여야 했고, 미국과 소련은 초기에는 이런 종류의 유도탄을 보유하였다.

1959년 초부터는 달 탐사선이 발사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로켓의 조정기술은 기술적으로 비약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따라 유도탄의 명중정도도 급속히 향상되었다. 이는 곧 선제공격을 받았을 때 받은 쪽의 발사기지가 완전히 파괴되어 반격의 기회가 상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이 사실을 중요시하고 유도탄 기지를 지하에 구축한 뒤 로켓추진제를 주입한 채로 항상 대기시켜 놓을 수 있는 미사일(유도탄)을 개발했다.

이와 함께 극북지대(極北地帶)에 레이더 탐지망을 구축하여 소련의 유도탄 공격을 사전에 탐지함과 아울러 반격의 시간적 여유를 갖게 하였다. 이에 따라 발사 직전에 추진제를 주입시켜야 하는 제1세대의 로켓인 토(Thou), 아틀라스(Atlas)와 같은 재래식 로켓은 사라지게 되었다.

2. 미항공우주국의 발족

미국에서는 유도탄의 개발을 육·해·공군 각각 독립적으로 추진하였으므로 소련과 달리 우주개발 계획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였기 때문에 실패가 잦았다. 이에 따라 미국내에서는 비판의 여론이 높아 우주개발 추진을 일원화할 필요가 생겼다.

당시 기초 항공과학의 국립기관으로 1915년에 창설된 국가항공자문위원회(NACA)가 미국내 여러 곳에 연구소를 두고 오랜 역사와 항공과학 연구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 뒤 이 조직을 중심으로 1958년 10월 미국항공우주국(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이 발족되면서 미국의 모든 우주개발은 이 기관이 전담하게 되었다.

3. 제2기

유럽의 각국도 우주개발에 적극 참여하려 했으나 그 결과는 부진하였다. 그러나 1965년 11월 프랑스는 자체 개발한 디아망 3단 로켓으로 최초의 인공위성 A1을 발사하였다. 이렇게 해서 인공위성 발사의 기술은 10년간 미국과 소련의 독점시대가 끝나게 되었다. 1970년 2월 일본, 같은 해 4월 중국 등에 의한 인공위성 발사가 이어졌다.

인공위성 경쟁과 함께 우주선을 이용한 달의 개척도 치열하였다. 달에 처음으로 탐사선을 보내고 달의 뒷면을 촬영하기는 소련이 먼저였으나 이 기간에 미국은 아폴로계획으로 1969년 아폴로 11호에 암스트롱이 탑승하여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게 됨으로써 우주개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1972년 12월까지 11호에서 17호까지(13호는 고장으로 도중 귀환) 6회에 걸쳐 달을 탐사했고 모두 385kg의 월석(月石)을 지구에 가지고 돌아왔다. 1974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연(延) 171일간 9인의 우주비행사가 체재하여 방대한 실험자료를 구득했다.

이와 함께 우주정거장도 띄우기 시작하였는데, 최초의 우주정거장은 1971년 소련이 발사한 살류트이며, 미국의 우주정거장 스카이래브(sky-lab)는 1973년에 지구궤도에 올려져 1980년까지 사용되었다. 현재 사용 중인 우주정거장은 1986년 소련이 쏘아올린 미르이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는 1972년 5월 미국과 소련간의 협정 조인에 따라 1975년 7월 15일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을 마감하는 협조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소련이 발사한 소유스 19호가 궤도에 오른 뒤 미국의 아폴로 18호가 지상을 출발하여 궤도상에서 도킹하여 공동실험을 한 뒤에 다시 분리한 뒤 무사히 자기 나라로 귀환했다. 이것을 ASTP(Apollo-Soyuz Test Project)라고 부르며 이것을 끝으로 제2기의 우주개발의 막은 내렸다.

4. 제3기

미국내에서는 베트남전쟁의 격화와 군비(軍費) 증가로 정부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자 급속히 우주개발 관계의 비용도 삭감되어 이 일에 종사하는 인원도 감원되었다.

따라서 바이킹계획, 보이저계획, 스페이스 셔틀계획 등을 제외한 많은 우주개발계획이 취소되었으며, 개발비용 삭감으로 그 개발진행의 속도도 늦어졌다. 이런 미국 사정과는 달리 다른 일본이나 유럽 여러 나라는 오히려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며, 소련도 1970년대에는 매년 100대 이상의 각종 위성을 발사하였다.

미국은 30대가 평균대수이었던 것에 비하면 큰 대조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양적 측면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은 14kg이었던 것이 1970년대 말에는 10t을 넘는 것이 만들어졌다. 제3기의 업적으로는 유인우주선으로 어떤 천체를 정복하는 대단한 성과는 없었으나 화성·목성·토성 등 행성에 대한 탐사가 이루어져 새로운 우주개발 연구성과를 거두었다.

1966년 소련의 비너스 3호가 금성으로 발사되었고, 1975년·1976년 미국의 바이킹 1·2호가 화성에 착륙, 화성 표면이 붉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생물이 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밖에도 1977년 보이저 1·2호로 목성의 고리를 발견하였고, 1980년·1981년에는 보이저호를 토성에 발사하여 토성 사진을 구하기에 이르렀다. 1986년에는 천왕성, 1989년에는 해왕성으로 발사되어 각각 행성 사진을 보내오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1980년대부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번 사용하면 폐기해야 하는 로켓을 대신할 우주왕복선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III. 분야

우주개발을 분야별로 나누면, ① 우주공간의 과학적연구:지구물리, 태양계의 행성들을 포함한 공간이나 천문학적 연구가 여기에 포함된다.

② 우주공간의 영역을 이용하여 지구상의 경제·산업활동을 실시 지원하는 일:지상 각 지점간의 통신중계·기상관측·자원탐사 등이 사회생활과 밀접하게 관계한다.

③ 우주공간을 이용하여 국가의 안전보장에 필요한 활동을 하는 일:여러 종류의 군사위성을 통해 얻은 정보자료를 분석함으로써 자국의 안전보장을 위한 참고자료 또는 실시수단으로 쓴다.

④ 우주개발의 각 분야를 추진, 지원하는 일:우주계획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소재 개발과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에 적재할 각종 계기·수단을 개발·제작함과 동시에 사업운영을 한다. 이 분야는 특히 고성능 로켓 제작에 필요한 재료의 개발과 인공위성에 실어야 할 소형 컴퓨터·통신기계·관측기기, 기타 장치의 경량화(輕量化)·소형화(小型化)에는 세밀한 과학기술의 응용이 필요하고 산업기반의 정비와 정부 차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IV. 전망

스페이스 셔틀까지를 제3기로 하고, 우주왕복선의 활동시대가 열린 것을 미래(未來)라는 말로 구분한다면, 우주개발은 가까운 미래(제4기)에는 탐사의 목적보다는 실용화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이라고 여겨진다. 스페이스 셔틀은 20세기 말까지 570회 우주왕복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우주발전선·우주공장·우주제약소·각종실험소·우주병원·우주도시·우주농장, 그리고 우주군사기지가 건설될 것이고 또한 보다 더 비약을 위한 우주정거장이 건설되고 달세계에로의 이민의 발판을 만들 것이다. 인간은 지구뿐만 아니라 달·화성·금성까지도 생활권으로 만들 부단한 노력의 첫단계로서 지구주변의 우주공간의 생활화가 바로 가까운 미래의 우주개발의 목표가 되고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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