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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02 (목) 15:29
분 류 사전2
ㆍ조회: 600      
[근대] 독일배상문제 (두산)
독일배상문제 獨逸賠償問題

제1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에 대한 독일의 배상과 관련한 여러 문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연합국과 독일은 베르사유조약을 맺어 전후의 여러 문제를 결정하였다. 이 조약에 의하여 독일은 전쟁도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연합국에 대하여 일정한 배상금을 지불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1921년 4월 27일 런던에서 열린 연합국배상위원회는 배상총액을 1,320억 골트마르크(약 320억 달러)로 결정하고, 매년 20억 골트마르크와 여기에 독일의 총수출액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을 더하여 연합국에 지불하도록 독일에 통고하였다.

독일은 1921년 5월에 1차로 10억 골트마르크와 수출액의 25%에 해당하는 약 3억 골트마르크 분의 현물을 배상액으로 연합국에 지불하였다. 그러나 1922년에 지불해야 할 2차분 배상액에 대해서는 이를 마련할 재원이 전혀 없었다. 1921년 12월 독일은 제1회 지불, 1922년 7월에 제2회 지불의 유예를 신청하였다.

이와 같은 독일경제의 부흥을 도모하기 위하여 24년 4월 미국의 재정가 C.G.도스를 위원장으로 하는 연합국배상위원회가 5년간의 잠정안(도스案)을 작성, 독일은 이 안을 받아들여 소정의 배상지불을 이행하였기 때문에 독일·프랑스간의 화해도 성립되어 1925년 12월의 로카르노조약, 1926년 9월 독일의 국제연맹 가입 실현 등으로 1928년까지 유럽은 상대적 안정을 가져오게 되었다.

도스안은 배상총액과 1929년 이후의 지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위원회가 미국의 실업가 O.D.영을 위원장으로 하여 1929년 2월 설립되고 6월 영안(案)을 작성, 9월 독일은 영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직후 뉴욕의 주식 폭락을 발단으로 대공황이 유럽에 파급되었고 독일경제는 혼란에 빠져, 1931년 7월 미국에 지불 일시정지를 요청하는 지불유예령을 신청하였는데 그것이 인정되었다.

1932년 6월 로잔에서 열린 배상관계국회의에서 영안은 공황에 의해서 무의미하게 되었음을 성명하고 배상총액을 감액하여 지불하기로 하였으나, 이것도 다음해인 1933년 1월에 들어선 A.히틀러 정권에 의한 베르사유조약의 의무이행 거부로 지불되지 않았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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