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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13 (월)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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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421      
[국가] 일본 1 (두산)
일본 Japan 日本 일본 1

아시아 대륙 동쪽에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일본열도를 차지하는 나라.

I. 개관

위치 : 동북 아시아
면적 : 37만 7873㎢
인구 : 1억 2754만 6000명(2003)
인구밀도 : 337.5명/㎢(2003)
수도 : 도쿄
정체 : 입헌군주제
공용어 : 일본어
통화 : 엔(¥)
환율 : 116.74¥ = 1$(2003.9)
1인당 국민총생산 : 3만 5610$(2003)
나라꽃 : 벚꽃

면적은 37만 7873㎢, 인구는 1억 2754만 6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337.5명/㎢(2003)이다. 일본어로는 '니혼' 또는 '닛폰'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한서(漢書)에서 수서(隋書)까지 '왜(倭)' 또는 '왜국(倭國)'으로 기록하여 왔으며, 한국에서도 일찍이 그렇게 불러 왔다.

북쪽으로 홋카이도[北海道] 북쪽의 소야[宗谷]해협 및 북동쪽의 네무로[根室]해협을 끼고 러시아의 사할린 및 쿠릴열도 남단의 구나시리섬과 대하며, 남쪽으로는 난세이[南西]제도가 타이완[臺灣] 근해까지 이어진다. 서쪽으로는 동해(東海)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의 연해주(沿海州:Primorskij Kraj) 및 한국과 대하는데, 대한해협 중간에 있는 쓰시마섬[對馬島]은 부산에서 50km 거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오가사와라제도[小笠原諸島] 등이 산재하면서 태평양에 면한다.

II. 자연

1. 지세

일본열도는 환태평양조산대(環太平洋造山帶)의 일부로 세계의 불안정육괴(不安定陸塊)에 속한다. 태평양 북서부의 융기대(隆起帶)의 정상부가 해면 위에 드러난 것이 일본열도로, 홋카이도, 혼슈[本州], 시코쿠[四國], 규슈[九州] 등 4개의 큰 섬과 그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난세이제도 및 혼슈 중부에서 남쪽의 태평양으로 이어져 내리는 이즈[伊豆]·오가사와라제도로 구성된다. 호상(弧狀)으로 이어지는 이들 열도의 동쪽에는 각각 일본해구, 난세이제도해구(또는 琉球海溝), 이즈·오가사와라해구가 따르는데, 다같이 깊이 6,000m가 넘는다.

산지·평야는 조산운동의 지사(地史)를 반영하고, 또 습윤온대의 기후 조건에도 영향을 받아 그 배열과 지형이 극히 복잡하다. 일본열도의 지형구분은 지질구조를 기준으로 서남 일본과 동북 일본의 2개로 크게 구별되는데, 그 경계는 혼슈 중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이토이가와-시즈오카 구조선[漁川-靜岡構造線:新潟縣漁川市에서 靜岡縣靜岡市로 이어지는 단층구조선]이다. 지형은 지각운동이 격심했기 때문에 토지의 기복이 크고, 많은 단층에 의해 지루(地壘)와 지구(地溝)로 구획되어 전체적으로 평지가 협소한 산지지형을 이루며, 산지면적은 국토면적의 80%에 달한다. 또 새로운 지각운동의 결과 하안단구, 해안단구, 개석선상지(開析扇狀地), 융기삼각주, 융기해식대지, 해안평야 등이 각지에 형성되어 있다.

동북일본에서는 세 줄기의 산지가 남북방향으로 병행해서 달린다. 그 중에는 기타미[北見]산맥, 히다카[日高]산맥, 오우[奧羽]산맥, 미쿠니[三國]산맥, 에치고[越後]산맥, 간토[關東]산지 등 높고 험준한 산지와 기타카미고지[北上高地]·아부쿠마고지[阿武高地]·데와[出羽]산지 등 구릉성 산지가 있다.

서남일본은 다시 장대한 단층의 중앙구조선에 의해 북쪽(동해쪽)의 내대(內帶)와 남쪽(태평양쪽)의 외대(外帶)로 나뉜다. 기이[紀伊]산맥, 시코쿠산지, 규슈산지 등 외대의 산지들이 높고, 주고쿠[中國]산지, 단바[丹波]고지 등 내대의 산지는 고원상을 이룬다. 혼슈 중앙부에는 통틀어 ‘니혼 알프스’라고 통칭되는 히다[飛]산맥·기소[木曾]산맥·아카이시[赤石]산맥이 고도 3,000m급의 고봉들을 이고 솟아서 일본의 지붕을 이루며, 일본의 최고봉 후지산[富士山:3,776m]도 이 중앙부에 있다.

화산이 많은 것도 일본 지형의 특색이다. 지시마[千島], 나스[那須], 조카이[鳥海], 후지[富士], 노리쿠라[乘鞍], 하쿠산[白山], 기리시마[霧島]의 7개 화산대에 딸린 화산은 중요한 것만도 150개가 넘는다. 세계 활화산의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토의 1/4이 화산재로 덮여 있다. 또 화산군에는 칼데라를 발달시킨 것도 많은데, 특히 규슈에 있는 아소[阿蘇]화산의 칼데라는 규모가 세계 제1로 알려져 있다. 화산대와 관련하여 지진대(地震帶)가 형성되어서 지진이 잦고, 또 각처에 온천도 다수 산재한다.

일본의 하천은 일반적으로 유로(流路)가 짧고, 기울기가 급하다. 하천의 계곡에는 V자곡이 많고, 강수는 그대로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리면서 굵은 토사를 운반하여 산지의 곡구(谷口)에는 선상지의 발달이 현저하다. 그 부근에서는 하상(河床)의 퇴적·상승으로 해서 천정천(天井川)을 이루는 하천도 많다. 이시카리강[石狩川], 도카치강[十勝川], 기타카미강[北上川], 모가미강[最上川], 아부쿠마강, 도네강[利根川], 시나노강[信濃川], 덴류강[天龍川], 기소강[木曾川], 요도가와강[淀川], 요시노강[吉野川], 지쿠고강[筑後川] 등이 대하천인데, 유역면적이 가장 넓은 강은 도네강이고, 유로가 가장 긴 강은 시나노강이다.

일본의 평야나 분지는 대체로 규모가 몹시 작고, 각지에 두루 산재한다. 모두 하천의 퇴적에 의한 충적평야인데, 대지(臺地)와 저지(低地)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도네강을 비롯한 여러 하천 유역의 간토[關東]평야는 일본 제1의 평야이다. 그 밖에 홋카이도의 이시카리강 중·하류의 이시카리 평야, 시나노강을 비롯한 여러 하천의 범람원·삼각주·선상지로 된 에치고평야, 기소강 외 몇몇 하천의 퇴적으로 형성된 노비[濃尾]평야, 요도가와강 등 하천의 복합삼각주 및 충적지대 등으로 형성된 오사카[大阪]평야, 지쿠고강의 충적평야인 규슈의 지쿠시[筑紫]평야 등이 중요하다.

해안선은 굴곡이 몹시 심하여 그 총길이는 2만 6000km에 이르며, 해안지형이 다채롭게 발달되어 있다. 구주쿠리하마[九十九里濱浜]해안 ·사가미만[相模灣]연안 ·니가타[新潟]해안 ·미야자키[宮崎]해안에는 넓은 사빈해안이 발달하였고, 산리쿠[三陸]해안, 기이[紀伊]해안,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해안, 니시시코쿠[西四國]해안, 기타큐슈[北九州]해안에는 리아스식 해안, 쓰루가만[敦賀灣] 동안에는 단층해안, 홋카이도 오시마[渡島]반도 남동단의 에산곶[惠山岬]이나 이즈[伊豆]반도의 해안에는 화산해안, 에리모곶[襟裳岬], 무로토곶[室戶岬] 등지에는 해안단구가 있는 융기해안, 난세이제도에는 융기산호초해안 등이 발달하여 극히 변화가 많은 해안지형을 보여주고 있다.

연안에는 대륙붕이 발달되어 있고 쿠로시오[黑潮]·쓰시마 해류 등 난류와 한류인 쿠릴 해류가 교류하여 어족이 풍부하며, 또 동중국해(海) 쪽에 형성되어 있는 대륙붕에는 석탄·석유·천연가스의 매장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기후

일본은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 및 중부 내륙고지(內陸高地)가 아한대다우기후(亞寒帶多雨氣候)에 속할 뿐, 그 밖의 모든 지역이 온대다우기후에 포함된다. 그러나 아시아대륙 동쪽의 몬순아시아 지역에 들어 있으나, 해양의 영향을 크게 받아 같은 위도에 있는 대륙동안보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더위가 심하지 않다. 한편 일본열도는 남북으로 길어 홋카이도 북단에서 난세이제도 남단까지는 위도차가 22℃나 되고, 따라서 연평균기온도 홋카이도의 와카나이[稚內]에서 6.3℃, 오키나와섬[沖繩島]의 나하[那覇]에서 22.3℃를 보여 남북차는 16℃에 달한다.

혼슈의 육지 너비는 최대 300km 정도인데, 중앙부를 척량산맥이 종주(縱走)하기 때문에 겨울에 동해 쪽 사면은 북서계절풍의 바람받이가 되어 강설일수가 지속되고, 태평양 쪽 사면은 건조한 바람이 불면서 청천(晴天)일수가 지속되는 대조적인 기후분포를 보인다. 기후구(氣候區)는 겨울의 기후차이에 의해 동해 사면과 태평양 사면 및 그 중간지역의 셋으로 나뉜다. 연강수량은 1,600∼1,700mm로 세계의 연평균강수량 1,000mm에 비해 상당히 많다. 특히 그와 같은 많은 강수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것은 장마와 태풍이다.

장마와 태풍이 가져오는 강수량은 해에 따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장마가 연강수량의 10∼40%, 태풍이 10∼35%로서, 비율은 남쪽으로 갈수록 커진다. 그 외 남부와 중부지방에서는 초여름에 장마가 잦다. 장마와 태풍은 일본의 수자원 확보에 크게 기여하는 반면 자연재해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즉, 장마가 길어지면 동북일본을 중심으로 냉해가 발생하고, 또 태풍이 잦거나 강한 태풍이 내습하면 상습적인 풍수해를 일으켜서 세계적으로 기상재해가 많은 나라가 된다.

겨울에는 시베리아 기단, 여름에는 오가사와라 기단에 덮인다.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받는 겨울은 현저하게 한랭하고, 또 동해사면은 북서계절풍이 가져오는 강설로 해서 세계 굴지의 적설지(積雪地)를 이룬다. 여름에는 전국토가 오가사와라 기단의 영향하에 들어 고온다습한 날씨가 지속된다. 봄·가을에는 양쯔강[揚子江]기단이 이동성 고기압이 되어서 일본을 덮고, 그 뒤를 저기압이 이동해 오기 때문에 날씨가 주기적으로 변화한다. 장마는 오호츠크해기단의 영향에 의한 현상이고, 열대성 저기압(태풍)은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연평균 4·5회 정도의 빈도로 혼슈·규슈에 내습한다.

III. 주민

일본인의 기원에 대하여는 기원(紀元) 전후까지 채집 경제의 단계에 있던 토착의 조몬시대인[繩文時代人:조몬시대는 일본 선사시대의 시대 구분으로 수천년 전에서 기원 전후까지에 이르는 시대]이 그 후 한반도(韓半島)로부터 도래(渡來)하여 농경문화를 보급시킨 야요이시대인[彌生時代人:야요이시대는 일본 선사시대에서 대략 BC 300~AD 300에 이르는 시대]과 혼혈하여 형질적인 변화를 이루면서 현재의 일본인의 원형을 형성하였다는 설과, 조몬시대인이 그 이후에 도래한 사람들로부터 문화적 자극을 받아서 그들 스스로가 야요이 문화를 형성하였다는 설이 양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남일본에서 발굴되는 자료, 즉 인골(人骨)이 늘어남에 따라 긴키[近畿:현재의 京都·大阪·奈良·兵庫·三重·滋賀·和歌山의 2府·3縣을 포함하는 지방], 간몬[關門:下關·門司의 2市를 포함하는 지방]지방 등지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도래인이 야요이시대 후반에서 나라[奈良]시대에 걸쳐 상당한 수에 달한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가 주장한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에 의하면 일본의 이른바 천손족(天孫族), 즉 일본인의 지배층을 이룬 천황족(天皇族)은 고구려인과 계통이 같은 기마민족인 부여족(夫餘族)으로, 그들이 한반도 남부에 정착하였다가 그곳 임나(任那)를 거점으로 해서 일본 규슈로 진출한 후 다시 긴키지방으로 들어가서 일본열도를 정복하고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일본어는 현재까지 그 계통이 충분히 밝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어와 친족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가장 강력하게 추정될 수 있는 언어가 한국어이다. 즉, 일본어가 개음절(開音節)로 끝나는 점(즉, 모음으로 끝나는 점)과 간단한 자음 조직을 가지는 점 등은 오히려 말레이-폴리네시아어와 유사하나, 일본어가 한국어와 같이 모음조화(母音調和) 현상이 있었던 점, 일본어와 한국어는 어휘상의 유사성이 있어서 음운이 대응하는 것이 약 200어에 달한다는 점 등이 그와 같은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 한국인과의 혼혈이 오늘날의 일본인의 형질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또 일본민족이 야요이시대에서 고분시대(古墳時代:야요이시대에 이어 大和朝廷이 일본의 국가통일을 이룩한 4∼7세기의 시대)에 걸친 3~6세기경까지에 하나의 민족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고대문화는 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보면 유례가 드문 단일민족국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오키나와현[沖繩縣]을 구성하고 있는 유구인(琉球人)은 본래 그들 자신의 유구국(國)을 세운 족속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일본어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유구어는 어계상(語系上)으로는 일본어계에 속하며, 일본에서는 유구인과의 민족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의 유일한 소수민족은 홋카이도에 사는 약 2만 2,000명(1975)의 아이누인(人)으로, 그들은 본래 그들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의식주 생활이 완전히 일본화하고, 언어도 일본어를 사용한다.

한편 일본에는 1996년 현재 약 141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는데, 그 중 한국인이 약 65만 7000명으로 전체 외국인의 46.4% 정도를 차지한다. 이들 한국교포는 국권피탈 후 노동자로 이주한 사람들로, 제1차 세계대전 때와 제2차 세계대전 때 그 수가 증가하였는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다수의 한국인 노동자를 강제징용하여 일본 각지의 탄광, 군수공장 등에 투입하였다. 한국인 다음으로 많은 외국인은 중국인 23만 4000명, 브라질인 23만 2000명 등이다.

1. 종교

일본인은 두 가지 이상의 종교를 가지는 사람이 많다. 종교별 신도수는 불교가 8400만 명, 신도(神道:자연숭배·조상숭배를 기본으로 하는 일본의 고유종교로, 神社를 중심으로 발달한 神社神道가 주류)가 9200만 명을 차지하여 일본의 양대 종교가 되고 있고, 그 밖에 신·구교를 합친 그리스도교가 84만 명 있다.

IV. 역사

1. 선사시대

일본역사에서 약 1만 년 전에 시작되는 일본의 신석기시대를 조몬식토기[繩文式土器]의 보급에서 연유하여 조몬[繩文]시대라고 부른다. 조몬시대인은 수렵·어획 및 식용식물의 채집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이민족이 아니라 현대의 일본인의 조상이었다는 사실이 논쟁 끝에 인류학자들이 도달한 결론이다. 그러나 제작된 조몬식토기에 현저한 지역차가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전국토에 걸친 집단을 구성할 만한 결합관계는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유적의 밀도로 보면 혼슈 중부 이동(以東)의 동북일본이 서남일본보다 그들의 생활무대로 적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BC 3세기경 서남일본에 한반도에서 미작(米作)농업이 전래되어 야요이[彌生]시대가 시작되자 일본역사는 커다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야요이시대인은 금속기를 사용하여 도검(刀劍) 등 무기 외에 동탁(銅鐸) 등 제기(祭器)를 제작하였다.

야요이시대에는 조몬시대와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생산력의 발전속도가 빨라지고 움집[竪穴住居]에 바닥이 높은 곡물 저장창고가 있는 100호 이상으로 된 취락이 발달하였다. 아직 공동체적인 사회구성이긴 하면서도 족장(族長)이 존재하고 사유재산과 신분·계급의 제도가 싹트기 시작한 사실은 유물·유적 및 문헌으로써 추정할 수 있다. 1세기 후반의 중국의 사서(史書) 《한서(漢書)》에 의하면, 왜인(倭人)은 100여 개국으로 나뉘어 한(漢)왕조에 조공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기원 전후에 소국가적인 사회조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삼국지》<위서(魏書)>에는 3세기에 여왕 히미코[卑彌呼]가 다스리는 야마타이국[邪馬台國]을 중심으로 하는 30에 가까운 나라로 된 연합국가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야마타이국이 기타큐슈[北九州]에 있었는지, 긴키[近畿]의 야마토[大和:현재의 奈良縣에 해당되는 옛 행정구역]에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학자들 사이에 주장이 갈리고 있으나, 어쨌든 국가통일의 기운이 성숙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신분의 계층질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고대

일본의 고대사회는 야마토조정[大和朝廷]이 지배하는 국가가 성립되고, 뒤이어 율령제도(律令制度)에 입각한 국가체제가 유지된 4세기 초에서 12세기 말에 이르는 시대이다. 긴키내(內)을 중심으로 하여 오진왕릉[應神王陵], 닌토쿠왕릉[仁德王陵] 등 거대한 능묘를 비롯한 많은 분묘가 조영된 고분시대인 4세기 초에는 긴키내의 야마토를 중심으로 하여 기타큐슈까지를 포괄하는 통일국가가 생겨나서 점차 전국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세습제를 확립한 오키미[大君:王]가 군림하였다.

소국(小國)의 수장(首長)들은 조정 내부에서 귀족계급을 형성하여 성(姓:한국의 姓에 해당하는 氏 위에 덧붙여서 가문의 격을 표시했던 세습적인 칭호)을 수여받고, 광대한 토지와 백성을 소유하였다. 4세기 말엽에 백제에서 한자(漢字)·유교가 전래되고, 6세기 중엽에는 역시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어 일본의 문화수준이 급격히 높아졌으며, 불교를 정치기조로 삼은 쇼토쿠태자[聖德太子] 등에 의해 각지에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다.

뒤이어 645년에 씨성(氏姓)사회를 타파하고 중앙집권적인 율령국가를 수립할 것을 목적으로 다이카개신[大化改新]이 단행되었으며, 덴무[天武]왕의 강력한 지도력으로 왕의 신성(神聖)이 강화되어 왕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율령체제가 확립되었다. 그리하여 공지공민제(公地公民制)의 원칙이 수립됨으로써 농민은 일정한 토지를 배당받아 조(租)·용(庸)·조(調)의 세(稅)를 부담하게 되었다. 그 뒤 견당사(遣唐使)의 파견에 의해 당문화(唐文化)를 흡수한 조정은 710년 나라[奈良]에 광대한 도읍 헤이조경[平城京]을 건설하였다.

그 후 교토[京都]로 천도하기까지의 약 80년 간을 나라시대라고 부른다. 그 시대에 조정에서는 국력을 기울여서 도다이사[東大寺]의 대불(大佛) 및 여러 거찰(巨刹) 조영을 추진하였기 때문에 현란한 불교문화가 꽃피었다. 일본의 고대사에서 조몬시대로부터 야요이시대로의 전환이 전적으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선진적인 문화의 영향에 힘입은 결과였다. 그 후 일본이 그 정치중심지를 긴키지방으로 옮겨 통일국가를 이룩한 고분시대에서 나라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문화 역시 한국의 고대문화의 절대적인 영향 밑에 자라난 문화였다.

그 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등, 특히 백제가 일본과 활발히 교류하였고, 또 백제 멸망 후에는 그 유민(遺民)이 다수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그들 백제인과 고구려인 등이 한학, 유학, 불교 및 회화, 불상조각, 사찰건축 등의 문화예술 외에, 생활용품 제조기술, 관개시설 축조기술 등을 일본인에게 전수함으로써 그 문화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당시의 중심적 정치무대였던 나라분지[奈良盆地]를 중심으로 구다라[百濟], 와니[和爾:王仁의 音譯] 등 지명이나 구다라사[百濟寺:大安寺의 옛이름이자 별칭], 구다라사지[百濟寺址], 구다라관음[百濟觀音:法隆寺에 있는 목조 관음보살상으로 일본의 국보] 등으로 불리는 문화적인 유적·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사실로도 백제를 비롯한 한국 고대문화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현존하는 두드러진 문화유산 중 백제인·고구려인의 손으로 된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승려의 정치개입 및 다이카개신에 공이 있었던 후지와라[藤原] 일문을 비롯한 귀족계층의 실권장악으로 왕 중심의 율령제는 난국에 직면하게 되었다.

794년에 간무[桓武]왕은 교토[京都]에 헤이안경[平安京]을 조영하여 도읍을 옮기고 율령체제의 재편성을 시도하였으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율령체제는 점차 붕괴되어 갔다. 후지와라 일문은 외척(外戚)관계를 이용하여 섭정(攝政) 또는 간파쿠[關白:왕을 보좌하여 정치를 한 令外의 관직]로서 왕의 권능을 대행하는 셋칸정치[攝關政治]를 자행하였다. 후지와라 일문 등 상류귀족은 광대한 장원(莊園)을 소유하고, 중·하류의 귀족은 고쿠시[國司:지방관]가 되어 임지에서 수탈을 자행하였다. 그리하여 율령제는 완전히 붕괴되고, 각지에 무사단(武士團)이 지반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12세기 중엽 이래 다이라[平] 일족, 미나모토[源] 일족의 두 무가(武家)가 각축하다가 미나모토가 정권을 획득하여 가마쿠라[鎌倉]에 바쿠후[幕府]를 개설하였다. 교토 천도 이후부터 가마쿠라 바쿠후가 개설되기까지의 기간을 헤이안시대[平安時代]라고 하는데, 그 시대에는 승려 사이초[最澄]에 의해 천태종(天台宗)이, 구카이[空海]에 의해 진언종(眞言宗)이 크게 보급되었고, 사찰은 광대한 사령(寺領)을 소유하면서 권세를 부렸다. 또 귀족들 사이에 국풍문화(國風文化)가 일어나서 가나 문자[假名文字]가 보급되었다.

3. 중세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는 1192년 가마쿠라에 바쿠후를 열고, 각국(各國:國은 고대 이래의 일본의 지방행정단위)에 슈고[守護:군사 및 반란 진압 등을 맡은 관리]·지토[地頭:토지관리·年貢 징수 등을 맡은 관리]를 두어 세습적인 무가(武家)정권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종래의 귀족세력도 쇠퇴하지 않아 귀족과 사사(社寺:神社와 寺刹) 등 장원 영주적 지배와 무사 영주적 지배의 2원 지배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바쿠후의 실권은 쇼군[將軍 :막부의 세습적인 국가통치권자] 밑에서 정치를 통괄하는 싯켄[執權]의 직을 맡은 호조[北條] 일족에게 넘어가고, 1221년에는 조정의 권력회복을 꾀하여 고토바[後鳥羽]왕이 난을 일으켰다.

바쿠후는 난을 진압하여 지배권을 확립했으나, 2회에 걸친 원(元)의 침공을 받아 쇠퇴해갔다. 바쿠후의 지배체제의 쇠퇴와 더불어 각지에서 바쿠후 반대의 기운이 고조되고, 그 세력을 규합한 고다이고[後醍]에 의해 1333년 바쿠후는 붕괴되었다. 미나모토에 의한 바쿠후가 가마쿠라에 존속한 기간을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라고 하는데, 그 시대에는 신흥 무사계급의 성장과 더불어 정토종(淨土宗)을 비롯한 많은 신흥종파가 일어났다.

문화는 계층적으로는 귀족에서 무사로, 지역적으로는 교토에서 각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가마쿠라 바쿠후가 무너진 뒤 고다이고왕은 왕 독재에 의한 관료국가의 수립을 기도하였으나 무사계급의 반대에 부닥쳤다. 무사 출신의 아시카가다카우지[足利尊氏]가 새로운 왕을 옹립하여 북조(北朝)를 세우자 한동안 남북조(南北朝)가 대립하는 내란이 지속되었으나, 결국 아시카가가 승리하여 1336년 교토의 무로마치[室町]에 바쿠후를 세웠다. 그러나 무로마치 바쿠후는 처음부터 기초가 취약하여 내분이 잦더니, 마침내 중앙정부로서의 위력을 상실하고 교토를 중심으로 한 일개 지방정부 체제에 불과한 처지가 되었다.

바쿠후에서 임명한 슈고는 점차 독립하여 임국(任國)을 영지화하고 슈고다이묘[守護大名], 즉 슈고의 신분에서 성장한 다이묘[大名:領主]가 되었으며, 다시 그들이 완전히 독립하여 상호 항쟁하는 전국(戰國) 다이묘가 됨으로써 전국시대(戰國時代)로 접어들었다. 무로마치 바쿠후가 명맥을 유지한 1572년까지를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라고 하는데, 그 시대에는 전국시대가 겹치기도 하여 고대에서 전해 내려온 문화재를 많이 상실하였으나, 반면 귀족화한 무사계급에 의해 기타야마문화[北山文化]·히가시야마[東山]문화로 불리는 문화가 일어나고, 또 화폐경제의 발전에 따라 일어난 도시의 상공업자들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도(茶道), 가도[華道:꽃꽂이], 노가쿠[能樂], 수묵화(水墨畵) 등 새로운 문화가 일어났다.

4. 근세

전국시대 말기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중앙으로 진출하여 아시카가의 쇼군[將軍]을 축출하고, 그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전국을 통일하였다. 도요토미는 전국통일을 완수하기 전부터 검지(檢地), 즉 농지측량이나 농민소유의 도검몰수(刀劍沒收:농민이 무사가 되는 것을 방지) 등을 단행하여 봉건적 토지소유제 확립과 신분제의 확립을 도모하였다. 1590년에 통일을 완수한 도요토미는 1592∼93년, 1597∼98년의 두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하여 조선에 막대한 전쟁 피해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거듭하다가 전쟁에 실패한 채 그의 사망을 계기로 철군하고 말았다.

그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적대세력을 물리치고 1603년에 바쿠후를 열기까지의 시대를 아즈치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라고 하는데, 그 시대에는 웅장한 성관(城館)의 조영과 호화로운 무사저택의 건축 등을 중심으로 한 모모야마문화[桃山文化]가 결실을 맺었다. 또 그 시대에는 조총(鳥銃) 등 새로운 문물이나 그리스도교가 전래되어 이른바 남만문화(南蠻文化:포르투갈인의 내항으로 전래된 유럽 문화)가 일어났다.

한편 조선침략 때 끌려간 조선의 도공들은 그 후의 일본의 도자기공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또 그때 일본에 전해진 우리 활자와 활판기술은 뒤에 게이초판[慶長版]이라고 부르는 일본 최초의 목활자(木活字) 인쇄의 서적을 나오게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江戶:현재의 東京]에 도쿠가와 바쿠후(일명 에도 바쿠후)를 개설한 뒤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폐쇄하기까지의 약 260년 동안을 에도시대[江戶時代]라고 한다.

도쿠가와 바쿠후는 봉건제도의 강화를 도모하여 쇼군[將軍]을 정점으로 하는 바쿠한 체제[幕藩體制:藩은 大名의 영지 또는 그 관할조직]를 확립하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질서를 엄중히 하였다. 전국을 200개 이상의 다이묘령[大名領]과 바쿠후 직할령으로 분할하고, 무사는 다이묘의 성관(城館)이 있는 성읍(城邑)에 거주시켰기 때문에 소비도시로서의 성읍이 다수 생겨났다. 또 그리스도교를 엄금하고 쇄국을 단행하였다.

에도시대의 바쿠한 체제를 지탱한 것은 무거운 조세를 부담한 농민이었는데, 농민은 50∼60호로 구성되는 마을에 편입되어 바쿠후 또는 한[藩]에서 파견하는 벼슬아치의 지배를 받았다. 또 농민은 전답의 매매를 금지당하고, 의식주에 대해서도 엄한 구속을 받았으며, 또 오인조(五人組)가 조직되어 납세나 범죄에 대한 연대책임을 강요당했다.

에도시대에는 초기의 분란이 수습되자 그 후에는 태평한 세월이 지속되어 도시의 신흥 상공업자, 즉 조닌[町人]을 중심으로 한 겐로쿠문화[元祿文化]가 긴키지방에 꽃피고, 뒤이어 에도를 중심으로 유흥적인 색채가 짙은 서민문화인 에도문화가 발전하였다.

에도시대 중기 이후 바쿠후와 한(藩)은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렸고, 그래서 전후 세 차례에 걸친 개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쿠후의 통제력은 점차 쇠퇴되었다. 무사계층의 생활이 어려워져가는 반면 상업이나 가내공업·거간제공업의 발전에 따라 조닌의 경제적 기반은 점차 강화되어, 그들이 문화의 담당자가 되었다.

도쿠가와 바쿠후 말기에는 산업혁명으로 국력이 강화된 구미제국(歐美諸國)이 내항하여 개국을 요구하였는데, 처음 그것을 거절한 바쿠후도 1853년과 1854년의 2차에 걸쳐 함대를 이끌고 온 미국의 M.페리 제독의 압력에 굴하여, 쇄국정책을 포기하였다. 그 결과 격렬한 내분항쟁이 지속되는 와중에서 반(反)바쿠후 세력이 급속히 형성되어 바쿠후체제는 내부로부터 붕괴되었다. 정권유지의 불가능을 깨달은 바쿠후는 1867년 11월 조정(朝廷)에 대한 정권 반환, 즉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제의하고, 다음날 그것이 수락됨으로써 에도시대는 끝을 맺었다.

5. 근대

일본은 대정봉환에 의해 조정이 왕정복고를 선언하고, 조신(朝臣)과 반(反)바쿠후의 주동 세력인 사쓰마한[薩摩藩], 조슈한[長州藩] 등 서남웅한[西南雄藩]을 중심으로 하는 신정부를 수립하여, 공의세론(公議世論)의 존중과 개국 진취의 방침을 밝힌 5개조의 서문(五箇條ノ御誓文)을 발표하였다. 신정부는 전국을 진압한 후 에도를 도쿄로 개칭하여 수도로 삼고, 원호(元號)를 메이지[明治]라고 고쳤다. 또 봉건적인 여러 제도를 폐지하고, 급속한 근대국가로의 전환을 꾀하였다. 정부는 문명개화라고 불린 구미(歐美)의 기술·제도의 직수입을 추진하는 한편, 왕을 신격화하고 신토[神道]에 국교적(國敎的)인 성격을 부여하였다.

사족(士族)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운동을 세이난전쟁[西南戰爭]으로 진압하고, 또 번벌(藩閥) 전제정부 타도를 외치는 민권운동이 일어나서, 정부는 프로이센 헌법을 본 뜬 메이지헌법[明治憲法]을 제정하였다. 정부지도 하에 산업의 근대화가 추진되어, 제1차·제2차의 산업혁명이 달성되었다. 한편 청일(淸日)·러일[露日] 두 전쟁을 일으켜서 타이완[臺灣]·한국·사할린을 식민지로 획득하고, 다시 대륙으로 진출하여 제국주의국가로 변신하였다.

또 영일동맹(英日同盟)에 의해 동(東)아시아에서 발판을 굳히고,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연합국 측에 가담하여 큰 이득을 얻어 세계열강과 어깨를 겨루는 나라가 되었다. 대전 후 구미제국에 일어난 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호헌(護憲)·보통선거 등의 운동이 일어났고 평화주의·국제주의의 풍조가 활발해져서 정당내각(政黨內閣)이 탄생하였다.

또 노동운동이 활발해져서 이른바 다이쇼[大正:明治 다음의 왕(1912~1926) 또는 그 年號] 데모크라시 시대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쇼와[昭和:大正 다음의 천황(1926∼1989) 또는 그의 연호] 초기에는 세계적 불황의 물결에 휩쓸려서 일본의 경제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였다. 그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륙침략을 꾀하였으며, 점차 군국주의·국수주의의 경향이 강해져갔다.

일본은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켜서 동북 중국에 만주국을 세우고 다시 중국과 충돌하여 중·일(中日)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독일·이탈리아와 3국동맹을 맺고, 이른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명목으로 동부아시아를 지배하려 하였다. 그러나 미국·영국 등과 대립하여 결국 태평양전쟁에 돌입하였고,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소련의 참전을 계기로 1945년 8월 15일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하였다.

6. 현대

일본을 점령한 연합국은 일본의 비무장화와 민주화를 추진하고, 농지개혁·재벌해체 및 전쟁범죄자의 재판·공직추방을 실시하였다. 또 국민주권 하에 남녀평등 및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 신헌법이 제정되었다. 일본의 패전에 의하여 한국이 8·15광복을 맞았고, 만주국이 중국에 복귀하였으며, 사할린·쿠릴 열도와 타이완이 각각 소련과 중국에 반환되는 한편 오키나와[沖繩]를 미국이 분할점령하였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막대한 손해를 입었으나 전후에는 한국의 6·25전쟁에 의한 특수경기(特需景氣)로 경제부흥의 발판을 마련한 뒤 1951년의 연합국의 대일(對日) 강화조약(소련 불참)과 미일(美日) 안보조약에 의해 주권을 회복하여 자유진영에 가담하였으며, 장기간에 걸친 보수당정권 밑에서 급속히 경제대국으로 발전하였다. 경제의 급격한 발전에 의해 국민의 생활수준은 크게 향상되었으나, 반면 공해문제·물가상승 등을 초래하였다.

한편 소련·중국 등과 공산국가와도 국교가 회복되어 일본의 국제적 지위는 높아졌다. 1989년 1월 쇼와왕의 사망으로 1990년 11월 아키히토[明仁]가 왕에 즉위하였으며, 연호는 헤이세이[平成]이다. 1955년 이후 38년간 집권한 자민당이 1993년 중의원선거에서 과반수 획득에 실패하여 정권을 상실했으며, 같은해 8월 7개의 야당연립정부인 호소카와[細川]정권이 탄생하여 전후 정치에 큰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1994년 6월에는 자민당, 사회당, 신당사키가케 등의 연립정부가 탄생하여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사회당 위원장이 새로운 총리로 선출되었고, 1998년 7월 자민당 당수인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가 일본의 84대 수상으로 취임하였다. 2000년 4월 5일 재임중 사망한 오부치 게이조의 뒤를 이어 모리 요시로[森喜郞]가 일본의 제85대 내각 총리대신으로 취임하였다. 2001년 4월에는 자유민주당의 고이즈미 준히치로[小泉 純一郞]가 자유민주당, 공명당, 보수당 3당의 지지로 제87대 총리로 취임하였다.

V. 정치

1. 천황제

일본의 구헌법에서 ‘통치권의 총람자(總攬者)’로 되어 있던 왕은 신헌법에서는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가지지 않는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되어,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따라 형식적인 국사(國事)행위를 하는 데 불과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왕과 신도(神道)의 종교적인 연관성도 부정되었다.

2. 국회

일본에서 주권인 국민의 의지를 반영하는 기관인 국회는 ‘국권의 최고기관’으로 규정되어 국정의 핵심을 이룬다. 영국식 의원내각제를 채용했기 때문에 국회는 첫째로 총리 지명권, 중의원(衆議院:하원)의 내각 신임 또는 불신임의 의결권 등을 가진다. 둘째로 국가의 유일한 입법기관으로서 모든 법률안을 심의·의결하는 권한을 가진다. 의안의 제출권은 내각(총리)·의원 양자가 가지나 예산안 제출권은 내각만이 가진다. 또 조약의 승인도 국회의 권한에 속한다. 셋째로 미국적인 삼권분립의 이념에 입각하여 국회는 국정조사권(國政調査權), 재판관의 탄핵재판권을 가지나, 반대로 내각의 중의원 해산권, 최고재판소의 법령 위헌(違憲)심사권에 의해 견제되고 있다.

국회는 양원제로 중의원·참의원(參議院)으로 구성되는데, 중의원은 예산안 심의·총리지명·조약비준 등에 관해 참의원보다 우월(優越)한 권한을 가지고, 또 일반 법안에 관해서도 양원의 의결이 다를 때는 중의원이 2/3 이상의 찬성으로 참의원의 의결을 뒤엎을 수 있다. 중의원은 임기 4년으로 의원수는 480명이며, 참의원은 임기 6년, 의원수 247명으로 3년마다 지역구와 전국구의 1/2씩을 선출하고 임기 중 해산은 없다.

3. 내각

일본의 행정권 주체인 내각의 총리는 국회의원 중에서 국회의 의결로 선출된다. 총리는 다른 20명 이내의 국무대신(大臣)을 임명하는데, 그 과반수가 국회의원이어야 한다. 내각은 행정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국회에 대하여 연대책임을 지며, 개개의 국무위원의 독주는 금지되고 있다. 내각은 일반적인 행정권 외에 국회에 대한 의안제출권·조약체결권·예산편성권·사면(赦免) 결정권·최고재판소 장관지명권(천황이 임명) 및 판사임명권 등 권한을 가진다. 또 헌법이나 법률실시를 위한 정령(政令)을 제정하는 하급입법권을 가진다. 내각 밑에는 각 성(省)·청(廳)이 있다.

4. 지방자치

구헌법에서의 관선지사(官選知事)에 의한 지방행정에 대신하여, 신헌법에서는 주민에 의해 선출된 지사를 장(長)으로 하는 지방공공단체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인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 및 의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다. 특히 주민의 지방의회 해산청구권, 장(長) 및 의원의 해직(解職)청구권 등은 직접민주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시(市)·정(町)·촌(村) 자치단체의 경찰이나 교육위원 공선제(公選制)가 폐지되고, 재정면에서 중앙의 통제가 강화되는 등 지방자치의 현실은 당초의 기대에 어긋나는 점이 많다.

5. 정당

일본의 주요 정당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⑴ 자유민주당(自由民主黨):일본자유당(日本自由黨)과 일본민주당(日本民主黨)이 1955년 10월에 보수합동에 의해 성립된 정당으로, 1947년의 일본사회당 내각을 제외하고는 그 전신인 민주자유당(民主自由黨)이 1948년 10월 제2차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내각을 출범시킨 이래 계속 정권을 확보해왔다. 1993년 8월 제1야당으로 전락해 '55년체제'가 붕괴되었다. 2001년 4월 고이즈미 준히치로[小泉 純一郞]가 자유민주당, 공명당, 보수당 3당의 지지로 제87대 총리로 취임하였다.

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 등을 끌어들여 사회당 연립정권을 발족시켜 다시 여당으로 복귀하고 1996년 무라야마 총일 퇴진 후에는 총재 하시모토 류타로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1998년 오부치 게이조가 당수에 선출되어 총리에 선출되었고, 그는 정권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자유당당수 오자와를 영입해 199년 연립정부를 출범하였다. 자유민주당은 기본정책으로서 외교·안보면에서는 미일 안보조약을 축으로 하여 자위력(自衛力) 증강을 주장하고, 내정면에서는 경제의 고도성장 정책을 펴왔다. 그리고 전쟁포기를 규정한 현헌법의 개정을 기도하고 있다. 주요 지지계층은 농어민, 경영자, 관리직, 판매서비스, 노무직 등으로, 중소도시·농촌에 기반을 두고 있다.

⑵ 일본사회당(日本社會黨):일본노동조합 총평의회(總評議會) 산하의 조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하여 사무직, 생산공정·판매서비스 노무직, 일부 농민을 지지기반으로 하며, 도시에 기반을 두고 있다. 1994년 연립정부 구성으로 집권한 사회당은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있다. 즉, 비무장중립원칙 포기, 미일방위조약 승인, 자위대합헌론(自衛隊合憲論) 지지, 당명개정검토 등 종래의 정책을 뒤엎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⑶ 민사당(民社黨):전일본 노동총동맹계(系)의 조직노동자·중소기업자 계층을 지지층으로 하는 도시정당(都市政黨)으로, 야당 중에서는 자유민주당에 가장 가까운 정책을 취하고 있다. 1960년 사회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중도연정을 목표로 결정하였다. 주요 정강정책은 의회정치의 추구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확보다.

⑷ 공명당(公明黨):불교 니치렌종[日蓮宗]의 창가학회(創價學會)가 의회에 의원을 진출시킴으로써 성립된 정당으로, 1955년 지방의회에, 1956년 참의원에, 1967년 이후 중의원에 진출하였다. 중도혁신(中道革新)을 내걸고 있으며, 중소기업자·판매서비스 노무직층을 지지층으로 하는 도시정당이다. 1993년 비(非)자민세력 결집에 공헌했다.

⑸ 일본공산당(日本共産黨):1922년 지하조직으로 결성된 후 전후 합법정당으로 공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시적으로 세력을 떨쳤으나, 점령군에 의한 탄압 및 과격한 전술로 말미암은 국민의 지지상실 등으로 해서 크게 후퇴하였다. 미일 안보조약 폐기, 비무장중립, 자주방위, 독점자본 본위의 경제성장정책 반대 등 자유민주당에 가장 대결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지층은 자본주의체제의 비판세력으로 지식노동자, 일반노동자 및 중소기업자 등을 들수 있다.

⑹ 기타 정당으로 자민당에서 탈당하여 1993년 결성된 신당사키가케[新黨先驅], 신생당(新生黨)이 있으며, 1993년 중의원 선거에 처음 참여한 일본신당(日本新黨)이 있다.

6. 외교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 외교는 대미의존(對美依存) ·반공산권(反共産圈) ·경제중심주의 외교로 특징지을 수 있다. 패전 후 1952년 4월까지의 점령기간 중에는 일본은 외교자주권을 가지지 못하고, 그 대외정책은 미국의 점령정책을 구현하는 선에서 실시되었다.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서 소련 등 공산권 제국이 조인을 거부한 가운데 강화조약과 더불어 미일 안보조약이 체결되었으며, 다시 강화조약 발효일에 중일(中日)조약이 조인되었다.

그와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일본 외교의 반공·대미의존의 노선이 확정되었고, 한편 미일 안보조약의 체결은 군사비 지출을 적극 줄이면서 경제입국의 길을 추구하려는 일본의 의도에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전후의 세계경제를 자유무역의 원칙으로 운영하고 있던 미국에 협력하는 것은 경제를 발전시켜서 국가가 살 길을 열고자 한 일본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고, 또 자유무역의 원칙에 크게 지배된 전후의 세계경제 속에서 일본의 경제 중심주의는 크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일본은 1955년에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가맹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취하는 선진 공업제국들 중에서도 점차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1956년의 일·소 국교회복과 국제연합 가입에 의해 일본은 국제사회에 복귀하게 되고, 다음해에 기시[岸] 정부는 UN(United Nations:국제연합) 중심주의, 자유주의제국 국가와의 협조, 아시아의 일원으로서의 입장의 견지라는 외교 3원칙을 발표하였다. 기시 정부에 의한 1960년의 미일 안보조약의 개정은 양국간의 군사동맹의 성격을 띠었고, 1965년에는 역시 반공·대미의존의 기본노선에 따라 한일(韓日) 기본조약을 체결하였다. 경제의 고도성장에 따른 세계 각지에 대한 경제진출은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높였다.

중국의 UN 가입(1971)을 계기로 국제정치는 다극화 시대로 이행하였고, 1972년의 미국 대통령 닉슨의 중국 방문 이후 아시아에는 신정세가 진전되었다. 일본은 그와 같은 아시아의 신정세에 신속한 반응을 보여, 대통령 닉슨의 중국방문 후 같은해 9월에 총리 다나카[田中]가 중국을 방문하여 양국간 국교를 정상화하는 한편 종래의 타이완과의 조약을 백지화하였다.

1974년에는 일본·중국간 항공협정이 체결되어 정기항공로가 개설되고, 1978년 10월에는 중공의 부총리 덩샤오핑[鄧小平], 1980년 5월에 총리 화궈펑[華國鋒]이 방일(訪日)하는 등 양국관계의 급속한 강화를 시도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는 냉전 종식 이후 급속히 재편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1992년 6월 UN평화유지활동(PKO)법을 제정하여 패전 후 처음으로 자위대 해외파병의 길을 터놓았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과의 무역역조문제 해결을 강력히 추진함에 따라 일본에 외교·경제상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일본은 서방7개국정상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아시아 유일의 국가로 한반도 정세는 물론 중국의 WTO(World Trade Organization:세계무역기구) 가입 등 아시아 지역문제들에 대한 적극적 역할을 하고 있다.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강화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7. 군사

일본은 헌법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육해공군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그 원칙은 1950년의 6·25전쟁 발발 직후 맥아더 사령부의 지시에 의해 7만 5000명의 경찰예비대가 설치됨으로써 파기되었다. 1952년 미일 안보조약이 발효되자 일본은 미군의 주둔을 인정하는 한편 일본의 재군비 의무 때문에 일본군대는 미국의 원조에 의해 점차 증가되었다.

경찰예비대는 1952년 보안대(保安隊)가 되고, 1954년 자위대(自衛隊)가 되어 명실상부한 군대로 변모하였다. 1960년의 안보조약 개정으로 자위대는 일본의 방위뿐만 아니라 재일미군(在日美軍)의 방위의무를 지게 되어, 미국의 핵우산 밑의 안보체제 하에서 일본은 급속한 군비증강을 이루어왔다. 총병력 약 24만 명으로 이 가운데 육상자위대가 14만 8676명, 해상자위대가 4만 4217명, 항공자위대가 4만 5377명 등으로 세계 유수의 군대로 성장하였다. 2001년 현재 국방비는 461억 달러이다.

(뒤에 계속)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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