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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08 (수) 15:09
분 류 사전2
ㆍ조회: 795      
[국가] 이라크 (두산)
이라크 Iraq

서남아시아 아라비아 반도와 페르시아만(灣)의 접경에 있는 나라.

I. 개관

위치 : 아라비아 반도 북동부
면적 : 43만 4128㎢
인구 : 2468만 3000명(2003)
인구밀도 : 56.9명/㎢(2003)
수도 : 바그다드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아랍어
통화 : 디나르(Dinar, ID)
환율 : 1,250ID = 1$(2003.9)
1인당 국내총생산 : 900$(2003)

면적은 43만 4128㎢, 인구는 2468만 3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56.9명/㎢(2003)이다. 정식 명칭은 이라크 공화국(Republic of Iraq)이다. 수도는 바그다드이고 공용어는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라크는 페르시아어(語)로 저지(低地)를 의미한다. 북쪽은 터키, 서쪽은 시리아, 요르단, 동쪽은 이란, 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에 접하며, 아라비아만(灣)에 면한다.

II. 자연

이라크의 국토를 구성하는 것은 중앙부를 가로질러 흐르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의 두 강 유역에 발달한 메소포타미아평원, 그 북부에서 북동부에 이르는 쿠르디스탄산지(山地)와 고원지대의 서부·남서부를 차지하는 시리아·아라비아 사막지대이다. 메소포타미아평원은 티그리스강(江)·유프라테스강의 유로를 따라 북서쪽에서 남동방향으로 가로놓여 있는데, 티그리스 강변의 사마라와 유프라테스강 하반(河畔)의 히트를 연결하는 선을 경계로 상류지역은 해발 500m 전후의 기복이 심한 자지라구릉(丘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류지역은 이 두 하천에 의해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국토의 1/3을 차지한다.

하류 지역과 이 두 하천이 합류한 다음의 샤트알아랍강(江) 연안에는 소택지(沼澤地)가 많다. 이란과 터키의 국경지대를 달리는 쿠르디스탄산지는 이란의 자그로스산맥에 이어지는 험준한 습곡산맥으로 해발고도 3,000m 이상의 높은 산들도 볼 수 있으며, 티그리스강의 분류와 그 지류인 대(大)자브강(江)·소(小)자브강(江)이 흐른다. 서부와 남부 지역은 광대한 사막지대로 국토의 2/5를 차지한다. 시리아·아라비아 대지의 연변부에 이르러서는 해발 1,000m까지 이르나 메소포타미아평원을 향하여 많은 와디를 이루며 그중 가장 큰 하수관은 전체 길이가 480km에 이른다.

기후는 사막성 건조기후로 고온건조하며 여름철은 더위가 극심하다. 연평균기온은 38~49℃, 바그다드의 7월 평균기온은 34.3℃나 된다. 1921년 7월 8일 바트라에서 관측된 58.8℃는 세계 최고기록이다. 강수량은 쿠르디스탄산지에서는 연간 400mm를 넘으나 남서부로 갈수록 점차 감소되어 바그다드에서는 156mm를 기록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5∼10월에는 거의 강수량이 없다. 시리아·아라비아 대지는 기후가 더욱 건조하여 사막경관을 이룬다.

터키 영토 내의 산지와 고원에서 발원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두 강 모두 유수량이 풍부하여 샤트알아랍강을 형성,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들어가며, 티그리스강의 지류인 대(大)자브강·소(小)자브강·우자임·디얄라 등도 쿠르디스탄산지, 자그로스산맥의 강수량을 모아 유수량은 비교적 풍부하다. 삼림은 비교적 빈약한 편이나 국토의 12%는 경지이고, 약 1/10 정도는 키 작은 풀이 자라는 스텝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서부로 갈수록 건조기후에 적응하는 내염성 식물을 볼 수 있다.

III. 주민

이라크는 아랍인(人)이 전체 인구의 약 79%를 차지하여 압도적이며, 그외 소수민족으로 쿠르드족(族)이 16%, 페르시아계가 3%, 터키계가 2% 정도 차지한다. 특히 북부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고유의 언어를 사용할 뿐 아니라 풍속, 생활양식 등이 달라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이라크의 중요한 내정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공용어는 아랍어(語)이며 1970년 쿠르드족과의 평화협정 결과 쿠르드어의 공용어화를 인정하였다. 국민의 절대다수(95%)가 이슬람교도로 그중 시아파(派)가 52%, 수니파가 43%를 차지한다. 그리스도교도도 5% 있다.

IV. 역사

메소포타미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하천문명이 이루어진 지역으로 BC 4000년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선사시대의 유적도 많이 남아 있다. 수메르·바빌로니아·아시리아 등의 고대국가가 흥망하였으며, 아케메네스왕조·페르시아·알렉산드로스 대왕·사산왕조 페르시아 등과 같은 외부의 침입과 정복도 받았다.

7세기 중기에는 아라비아반도에 출현한 이슬람교도가 침입하여 그 세력하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8세기 중기에 시작된 아바스왕조 시대에는 쿠파, 바그다드 등이 수도(首都)가 되어 이슬람 여러 나라의 중심 영역으로서 중요한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11세기 중기 이후에는 셀주크, 몽골, 티무르의 지배를 받았으며, 153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간 오스만투르크 제국(帝國)의 속주(屬州)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페르시아만으로부터 영국이 침공하여 전화(戰禍)를 입었다. 전후(戰後)에는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는데 이에 반항하는 독립운동이 무르익어 1932년 메카의 하심가(家)의 파이살을 국왕으로 마침내 독립을 이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친독일정책을 취하였으며, 대전 후 1958년 7월 장군 카셈이 이끄는 청년장교들이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수립하였다(이라크혁명).

그후 잦은 쿠데타로 정치소요가 계속되다가 1968년 바스당이 정권을 잡았으며 1979년 사담 후세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국가의 경제재건과 군사력 증강에 힘써온 후세인 정부는 1980년 이란 침공, 1990년 쿠웨이트 침공 등으로 페르시아만의 정치적 불안을 가중시켰다. 특히 걸프전쟁에 패해 시아파 이슬람교도의 폭동과 쿠르드족의 자치운동 등으로 내정이 불안하고 전쟁피해와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조치 등으로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V. 정치

1. 외교

이라크는 중동지역 비동맹운동의 지도국을 자처하면서 강력한 반미·반이스라엘 노선을 취하고 있으며, 1968년 아랍사회주의바트당 집권 이후 아랍사회주의바스당의 이념인 범아랍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라크 내셔널리즘을 추진한다. 아랍사회주의바스당이 집권하면서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오다가 1984년 11월 국교를 회복하였으나, 1990년 걸프전쟁으로 다시 냉각되었다. 이란-이라크전쟁이 1988년 정전된 후 1990년 9월에 이란과 국교를 회복하였다. 걸프전쟁 후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경제제재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과 1968년 1월 수교하였으나 이란-이라크전쟁에서 북한이 이란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1980년 10월 단교하였다. 한국과는 1977년 3월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 이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걸프전쟁 발발로 대부분의 업체가 철수하였다.

2. 군사

이라크는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18세 이상 모든 남자는 21∼24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하는데 전쟁시에는 연장된다. 한때는 민병 48만 명을 포함하여 총 100만 명의 대병력을 보유했으나 걸프전쟁에서 상당한 병력 손실을 보았다. 2000년 현재 정규군 42만 9000명, 전차 2200대, 장갑차 3400대, 전투기 316기를 보유하고 있다.

VI. 경제

이라크는 국유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계획관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1972년 바크르 정부는 석유의 국유화를 단행하였다. 석유 수출이 재정수입의 99%를 차지하여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었으나 1990년 이후 서방으로의 석유수출이 중단되면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걸프전쟁 이후 인플레가 심하고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의 경제제재가 계속되고 있다. 이라크 국민의 어려움을 도와주기 위하여 1996년 12월부터 UN 결의에 근거하여 석유 수출이 재개되었다.

취업인구의 80%를 점유하는 농업은 건조기후에 속하여 경지율이 12% 정도에 불과한 데다 최근 몇 년간의 흉작으로 식량위기에 직면해 있다. 연간 400mm 이상의 강수량을 가진 북부지역에서는 강수량에만 의존하는 천수경작(天水耕作)만이 가능하지만, 주요한 농업지역인 메소포타미아평원에서는 하천의 자연유하(自然流下)나 양수에 의한 관개농업이 행해지고 있다. 겨울철 농작물로는 밀, 보리, 아마, 두류(豆類), 여름철 농작물로는 쌀, 목화, 잎담배, 야채 등이 재배되며 메소포타미아의 하류지역에서는 대추야자가 재배되는데 그 열매는 주요 수출품이다.

이라크의 주요한 광물자원은 석유와 천연가스이다. 석유매장량이 1000억 배럴로 세계 제2위이며 유전은 주로 북서부 지역에 분포해 있다. 석유의 채굴은 1927년 북부의 키르쿠크 유전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외에 모술 부근의 아인자라 유전, 바스라 근방의 즈바이르 유전이 개발되었다. 석유는 파이프라인으로 지중해 연안의 트리폴리(레바논), 비니아스(시리아)로 송유되는 외에 바스라에서도 수출된다.

석유개발에서는 영국,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자본으로 이루어진 이라크석유회사(IPC)와 그 관련회사가 국토의 거의 전역의 이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1961년에 이권지역의 99% 이상을 정부가 몰수하고, 1964년에는 이라크국영석유회사(INOC)를 설립하는 등 자주적인 개발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다시 1972년에는 이라크석유회사의 국유화를 선언하였다. 2000년 11월 현재 1일 생산량은 230만 배럴이다.

공업의 발달은 낙후된 편이나 재래방식의 식품가공, 직물, 담배, 벽돌 등의 공업에 이어 시멘트, 석유정제, 석유화학, 철강, 기계 등의 근대공업도 발달되고 있다. 개발사업으로서는 석유 이권에 의한 수입을 재원으로 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수계(水系)의 치수, 수자원 개발사업이 진전되고 있으며 농지개혁, 농업기계화 등 농업면에서의 근대화계획도 진행되고 있다.

이라크의 최대수출품은 석유로 수출총액의 약 99%를 차지하나, 기타 대추야자의 과실, 시멘트 등도 수출되고 있다. 2000년 수출액은 188억 달러이고 수입은 121억 달러이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러시아, 스위스, 중국, 프랑스, 영국, 이집트, 베트남 등이다. 이라크의 국영철도는 바그다드∼바스라 간 간선철도와 바그다드에서 시리아∼터키로 통하는 바그다드 철도 등이 있으며, 총연장은 2,032km에 이른다. 자동차 교통에 의존하는 곳도 많아서 도로망도 발달되어 있다. 도로 총연장은 4만 5500km(포장도로 3만 8400km)이다. 바스라항(港)은 최대의 무역항이며 바그다드와 바스라에 국제공항이 있다. 2000년 현재 공항 110개, 헬리콥터 공항 4개가 있다.

VII. 사회

주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아랍인과 소수민족 간의 인종분쟁과 이슬람교 각 종파간의 종교분쟁이 잦다. 아랍인 중에는 7세기의 대이동 때 아라비아반도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한 계통과, 원주민이 아랍화(化)한 계통이 있으며, 그 비율은 거의 반반이다. 쿠르드인은 이란, 터키, 시리아에까지 걸쳐 거주하는 북부 쿠르디스탄 지방의 페르시아계(系) 주민으로 이라크 영토 안에 약 1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의 95% 이상은 이슬람교도로서 북부지역에는 정통파와 수니파(派)가, 남부지역에는 분파(分派)의 시아파가 많다. 일상생활은 이슬람교도가 지켜야 하는 1개월간의 단식, 날마다 있는 예배 등의 종교적 실천과 금주(禁酒) 등의 계율엄수가 바탕이 되어 있다. 일반주민의 주거는 햇볕에 말려 만든 벽돌로 지은 집이 기본이나 메소포타미아 하류지역에서는 대추야자의 잎을 사용한 주거가 일반적이다. 1972년부터 전교육과정이 무료이며 의무교육은 12년이다. 그러나 교육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문맹률이 비교적 높아 1970년 말부터 문맹퇴치운동을 벌였다. 15세 이상 문맹률은 42%이다(1995).

주요 일간지 4개, 국영방송 및 텔레비전방송국 6개, 라디오방송국 4개, 통신사  INA(Iraqi News Agency) 등이 있으나 언론은 국가에서 통제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유적, 사적, 누린 바빌론의 유적은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약 85km 떨어진 유프라테스강 연안에 있으며, 20세기 초의 발굴에 의하여 신바빌로니아시대 전성기(BC 7세기)의 신전, 성탑, 왕궁, 성벽 등의 유구(遺構)가 밝혀졌다.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에 있는 수메르인(人)의 고대 도시 우르의 유적과 북부의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의 유적들로 그 유구의 해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크테시폰은 바그다드 남동쪽 약 30km에 위치하고 있으며 AD 6세기에 호슬로 1세에 의하여 건조된 왕궁의 돔(dome)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다. 카르발라에는 AD 7세기에 이곳에서 순교한 이슬람교 시아파(派)의 시조 알리의 아들 후세인 일가의 묘소가 있어 그 남쪽 나자프에 있는 알리의 묘소와 같이 시아파의 성지로 되어 있다. 바그다드 북쪽 120km에 위치한 사마라에는 아바스왕조의 AD 9세기 후기에 건조된 나선상(狀)의 미날레트(이슬람사원의 첨탑)가 남아 있다.

2000년 인구증가율은 2.86%, 출생률은 1,000명당 35.04명, 사망률은 6.4명, 영아사망률은 62.49명이다. 평균수명은 66.53세로 남자는 65.54세, 여자는 67.56세이다.

VIII. 문화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는 문학과 예술생활이 크게 바뀌어 발레와 극장, 현대 미술 등이 쏟아져 들어왔다. 문학 중 시(詩)가 많이 발전하여 아랍어(語)를 쓰는 나라에 많이 알려졌다. 이라크 문화정보부는 가죽제품, 구리제품, 카페트 제조와 같은 전통 공예와 예술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바그다드에는 많은 미술관과 국립도서관이 있다. 도시에는 또한 8~9세기의 아브바시드 건축이 남아 있다.

IX. 대한관계

이라크는 북한과 1968년 정식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한국과는 1981년 영사 관계, 1989년 대사급 관계를 맺음으로써 남북 동시수교국이 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이란-이라크전쟁 당시 이란을 지원함으로써 1980년 단교조치되었다. 1991년 1월 주이라크 한국공관, 1994년 주한 이라크공관이 잠정 폐쇄되었다. 1997년 외무장관 법률고문 알 사드, 1999년 산업차관 라세드가 방한하였다. 1994년 대한축구협회 회장 정몽준, 1999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사장 김은상, 2000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사장 황두연이 이라크를 방문하였다.

한국과는 1982년 뉴스협정, 1983년 무역 및 경제기술과학 협력협정, 1985년 항공협정, 1987년 문화협정, 외교 공관부지 교환협정이 체결되었으며, 1977년 건설업체의 첫 진출 이후 한국의 중요한 해외건설시장이 되었다. 2000년 현재 대한(對韓) 수입 2296만 7000달러, 대한 수출 5억 850만 7000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원유이며 수입품은 기계류, 철강제품, 고무제품, 알루미늄제품 등이다. 2001년 현재 교민 및 체류자는 15명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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