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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03 (금)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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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787      
[근대] 천두슈=진독수 (브리)
천두슈 陳獨秀 (병)Chen Duxiu (웨)Ch'en Tuhsiu. 1879. 10. 8 중국 안후이 성[安徽省] 화이닝[懷寧]~1942. 5. 27 장진[江津:충칭(重慶) 근처].

중국의 정치가.

본명은 천첸성[陳乾生]. 자는 중푸[仲甫], 호는 스옌[實庵]. 1920년 중국공산당을 창당한 주요인사 가운데 하나이며, 중국에서 혁명의 문화적인 토대를 발전시킨 주요지도자였다. 1927년에 중국공산당 총서기직에서 밀려나고 1929년 당에서 추방되었다.

교육과 초기 행적

천두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과거시험의 첫 관문을 통과한 후 만주지방에서 군관직에 근무하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몇 달도 채 안 되어 죽었다. 4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어머니 밑에서 양육되었고 할아버지·훈장·형에게서 차례로 중국의 경전과 고전문학을 배웠다. 1896년에 화이닝에서 과거시험의 첫 관문을 수석으로 통과했고 다음해 난징[南京]에서 2번째 관문도 통과했다. 그러나 과거시험을 치르면서 전통적인 교육과 관료제도가 20세기에 적합하지 않음을 확신하고 정치·사회의 개혁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항저우[杭州]에 있는 유명한 구시서원(求是書院)에서 프랑스어·영어·조선술(造船術)을 공부했다.

1901년 22세가 된 그는 자기 고향인 안후이 성의 중심지에서 청조에 반대하는 연설을 한 후 난징으로 피신했다가 다음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東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03년에 귀국하여 상하이[上海]에서 친구들을 도와 청조를 비판하는 〈궈민르바오 國民日報〉를 창간했지만 이 신문은 곧 당국의 탄압을 받았다. 그러자 1904년 안후이로 돌아가서 백화문(白話文)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속화보 俗話報〉를 발행했다.

1906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서 공부하다가 그해 안후이로 돌아와 환강중학교(江中學校) 교사생활을 하면서 우후[蕪湖]에서 또다른 백화문 간행물 〈백화보 白話報〉를 발행했다. 그가 일본에 머무는 동안 쑨원[孫文]이 이끄는 혁명당에 가입하지 않은 것은 혁명당의 강령에 따라 민족주의를 수용하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일부 기록에 의하면 그는 다음해 프랑스로 유학가서 프랑스 문화를 매우 흠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귀국 후 1910년 만주에 잠시 다녀온 그는 항저우에 있는 육군소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1911년 청조가 무너진 뒤 중화민국이 들어서자 안후이 성 도독(都督)의 비서장(秘書長)이 되었고 안후이 고등학교 교무장을 겸임했다. 1913년 총통 위안스카이[袁世凱]에 대항하는 제2혁명에 참여했다가 혁명이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하여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갑인잡지 甲寅雜誌〉의 편집을 도왔다.

사상혁명에서의 역할

천두슈가 중국의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은 1915년에 귀국해서 월간지 〈청년잡지 靑年雜誌〉를 간행하면서부터였다. 이 잡지는 후일 〈신청년 新靑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잡지에서 조국의 발전을 위해 청년들이 사상·문학·문화 전반에 걸친 방대한 혁명의 책임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잡지에 기고한 많은 젊은 필자들 중에는 백화문학을 널리 권장한 자유주의 지식인 후스[胡適], 저명한 소설가 겸 수필가인 루쉰[魯迅], 천두슈와 공동으로 중국공산당을 창당한 리다자오[李大釗]·마오쩌둥[毛澤東]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훗날 중요한 정치적·사상적 지도자들이 되었다.

1916~27년 중국은 강력한 중앙정부 없이 많은 군벌들이 각지에서 일어났고, 군벌간의 전쟁이 잦아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다. 이에 더욱 혁명적인 사명감을 가진 천두슈는 1917년 베이징대학교[北京大學校] 문과대학 학장에 임명되자, 주변에 많은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교수와 학생들을 모이도록 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1918년 12월 급진적인 성향을 띤 〈매주평론 每周評論〉을 발행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문학은 5·4운동을 이끌었다. 이 운동의 명칭은 산둥 반도[山東半島]에 대한 독일의 권리를 일본에게 양도한다는 베르사유 조약에 대해 중국정부가 일본 측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자, 1919년 5월 4일 학생들이 대규모 항의시위를 한 데서 유래되었다. 이 운동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한 천두슈는 문과대학 학장직을 사임해야 했고, 1919년 6~9월 3개월간 투옥되었다.

중국공산당의 창당

천두슈는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후진국의 근대화를 위한 모범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석방된 후 얼마 안 되어 상하이에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1920년 5월 상하이에서 몇 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중국공산당을 창당하고 총서기로 선출되었다(현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1921년 7월을 공식적인 창당시기로 규정함). 그는 7년 동안 당의 확고한 지도자로서 총서기직에 있었는데 종종 중국의 레닌으로 비유되었다.

1920년 12월 자신의 공산주의 이념을 선전하기 위해 광둥[廣東] 독군(督軍)의 초빙을 수락하고 광저우[廣州]로 가서 광둥 성정부(省政府) 교육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1922년 가을에 그가 2년 전 공산당 기관지로 만들었던 〈신청년〉의 후신으로 영향력 있는 당 기관지 〈향도주보 嚮導週報〉를 발간했다. 1922년 11~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공산당 조직인 코민테른 제4차 대회에 참석한 후 쑨원이 창당한 국민당과 합작하라는 코민테른의 지시를 마지못해 따랐다.

1925년 국민당 내의 우파가 공산당원들을 공격하자 다시 한번 국민당에서 집단 탈당하자고 제안했지만 코민테른에 의해 거부되었다. 1927년 국공합작(國共合作)이 깨지자 코민테른은 합작 실패의 책임을 천두슈에게 씌워 그를 총서기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1929년 11월 공산당에서 쫓겨났고 그후 몇 년 동안 중국의 트로츠키파와 공산당 내 소수파들의 지지를 얻어 당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1932년 10월 15일에 1927년 이후 계속 거주해온 상하이의 외국인 조계지(租界地)에서 외국 행정당국에게 체포되었다. 난징[南京]의 국민정부 당국에 인도된 그는 1933년 재판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중일전쟁이 발발한 후 1937년 8월에 가석방되었다. 그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1938년말 전시(戰時) 임시 수도인 충칭에 와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악화된 건강상태로 친구도 별로 없이 충칭의 서쪽에 있는 소읍 장진에서 은거하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천두슈는 중국의 전통적인 가치를 부인하여 거침없이 항의했으며, 공산주의를 폭넓은 노동대중을 기반으로 한 대중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가 목표로 한 중국 혁명에서 부르주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죽기 얼마 전까지도 여전히 사회주의자의 입장을 고수한 채 스탈린의 독재를 비난했다. 그리고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사법부·야당·자유언론·자유선거와 같은 민주적인 기관을 옹호했다.

참고문헌

중국근대의 혁명사상(예전학술사상총서 3) : 丸山松幸, 천성림 역, 예전사, 1989
진독수평전(이데아총서 22) : T. C. 쿠오, 권영빈 역, 민음사, 1985
Research Guide to the May Fourth Movement : Chow Tse-tsung, 1963
The May Fourth Movement:Intellectual Revolution in Modern China : Chow Tse-tsung, 1960
Biographic Dictionary of Chinese Communism, 1921-1965 : Donald W. Klein·Anne B. Clark, 1971
Biographical Dictionary of Republican China, vol. 1 : Howard L. Boorman (ed.), 1967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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