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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09 (목)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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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358      
[국가] 알제리 (브리)
알제리 Algeria (아) Al-Jazā'ir. 공식 이름은 알제리 민주인민공화국 (Democratic and Popular Republic of Algeria/Al-Jumhīrīyah al-Jazā'irīyah ad-Dīuqrātīyah ash-Sha'bīyah).

지중해 연안, 아프리카 북서부의 마그리브(북아프리카 지방)에 위치한 국가.

지도

알제리 지도. 브리태니카백과사전 지도

아프리카에서 2번째(수단 다음)로 큰 국가이며, 수도는 알제이다. 남북길이 2,000km, 동서너비 1,800km이며, 동쪽으로 튀니지 및 리비아, 남동쪽으로 니제르, 남서쪽으로 말리 및 모리타니, 북서쪽으로 모로코, 북쪽으로 지중해와 접해 있다. 면적 2,381,741㎢, 인구 31,261,000(2002).

자연환경

알제리 남부의 넓은 사하라 지역은 전 국토의 85%를 차지하며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북쪽 지중해 해안의 '텔'이라는 작은 지역에는 평원과 아틀라스 산맥계의 산줄기들이 여기저기 산재한다. 이 산맥계에 포함되는 지역을 북쪽에서부터 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복이 있는 해안지대 및 그 남쪽에 있는 평원, 둘째, 서쪽의 모로코에서 동쪽의 튀니지까지 이어지는 마그리브 지역의 연장인 텔아틀라스 산맥, 셋째, 비가 적고 증발이 많은 오(Hauts) 고지대, 넷째, 남쪽에 있는 건조한 사하라 사막과 마그리브 지역을 분리시키는 사하라아틀라스 산맥의 순이다.

사막지대는 자갈길과 모래언덕이 넓게 퍼져 있어 겉모습이 일정해보이지만, 여기에는 산맥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아하가르(호가르) 대산괴와 알제리 최고봉인 타하트 산(2,918m)도 있다. 북부의 텔 지역은 조산대에 속해 있어 주기적으로 지진이 발생한다. 1717년에 있었던 지진으로 오난 시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1790년에는 알제에서만 2만여 명이 죽었고, 1954, 1980년에는 엘아스남에서 약 5,2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남부 사하라 지역에 오아시스와 지하수가 흩어져 있기는 하지만, 알제리의 대표적 하천은 북쪽에 있다. 강우량의 계절적 분포가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알제리의 하천들은 계절천·간헐천이며, 따라서 저수지(주로 알제 근처와 그 서쪽 지역)를 개발하여 사철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셸리프·하미즈 강 유역에서 전국 관개용수의 약 1/3을 공급한다. 북부지역의 강우량은 매우 적으며(평균 800㎜ 이하이며 때때로 400㎜ 이하로 내려가기도 함), 매년 크게 차이가 난다.

연강우량이 100㎜ 이하인 사하라아틀라스 산맥의 남부 경계선에서 사하라 사막이 시작된다. 겨울(12∼3월)에 비가 오며, 나머지 기간에는 가뭄 상태가 계속된다. 해안지역은 가장 따뜻한 달과 가장 추운 달의 기온 차가 11℃ 정도로 그 변화의 폭이 크지 않다. 예를 들어 수도인 알제의 경우 7월의 낮 평균기온은 28℃, 밤 평균기온은 21℃이며, 1월의 일일 평균기온은 9∼15℃이다. 일일·연간 기온 변화 폭은 내륙으로 갈수록 높아지고, 사막에서 가장 높다.

참나무·향나무의 침엽수림은 북동부와 텔아틀라스에만 제한되어 있으며, 전이지대인 오 고지대에서는 스텝 기후의 영향으로 풀과 덤불만이 자란다. 이곳에 서식하는 표범, 치타, 여러 종의 가젤 영양은 현재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알제리 중북부와 북동부에는 세계 최대의 천연 가스 매장지가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리비아·나이지리아 다음으로 손꼽히는 유전이 있다. 또한 알제리는 아프리카 유일의 수은 생산국이며, 세계 수요량의 약 1/10을 공급한다. 서부 사막지대의 가라제빌레트에는 철광석 광산이 있는데, 이중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것도 있다.

국민

알제리 국민의 4/5 이상은 아랍인이며, 그밖에 소수민족으로는 베르베르족이 대표적이다. 언어는 아랍어(공식언어)·베르베르어·프랑스어 등을 사용한다. 알제리에 분포하는 베르베르계 종족으로는 카바일족·차우이아족·음자브족 등이 있는데 음자브족은 이바다이트파 이슬람교도이다. 또다른 베르베르계의 투아레그족은 알제리 사하라의 남동부에 있는 아하가르, 아드라르 대산괴의 오아시스 근처에 사는 유목민이다.

하라틴족은 아프리카 흑인의 피를 물려받은 수단인들로, 알제리 전역에 산재하는 작은 오아시스에 모여 산다. 이들 외에도 소수의 프랑스인·스페인인·이탈리아인이 있으며, 이슬람교가 이 나라의 공식종교이다. 연간 인구증가율은 높은 편에 속하며, 다른 아프리카 저개발국가와 같이 출생률과 사망률이 모두 높다. 1950년대 이후로 출생률이 점차 낮아졌으나, 사망률도 함께 낮아져 출생률 감소 효과를 상쇄시켰다. 전체인구의 2/5 이상이 15세 이하이며, 인구의 1/2이 도시에 산다. 알제리 실업문제의 해결책이었던 유럽 이민은 프랑스의 이민제한 조치로 1970년대 중반 이후 감소했다. 평균수명은 남자 67세, 여자 69세로 북아프리카의 평균치 보다 높은 편이다.

경제

알제리는 주로 석유와 천연 가스 수출에 기반을 둔, 부분적으로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개도국형 중앙계획경제체제를 갖추고 있다. 국민총생산(GNP)이 인구성장률을 훨씬 웃돌며, 1인당 GNP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다. 전국토의 약 3%만이 가경지인데, 대부분이 개간되었으나 관개시설을 갖춘 곳은 많지 않다. 재배작물로는 밀, 보리, 시판용 야채, 과일(오렌지 등), 대추, 완두, 콩, 렌즈콩(편두), 담배, 사탕무 등이 있다. 목초지는 대부분 건조한 방목장이며, 그곳에서 양·염소·소·나귀·노새·낙타·말 등을 기른다. 알제리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국내 수요량의 1/4에 불과해 나머지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알제리 독립전쟁중에 황폐화된 삼림은 재림사업으로 부분적으로 복구되고 있는데, 코르크참나무가 특히 많다. 세계적인 코르크 생산국일 정도로 알제리는 지중해 연안에 길게 접해 있음에도 어업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 광업부문에서는 석유와 천연 가스 생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른 주요광물로는 품질 좋은 철광석·모래·자갈·돌부스러기·인광 등이 있고, 석고·소금·중정석(重晶石)·점토·아연·구리·납·수은·은 등도 소량 채굴된다. 알제리는 1980년대초에 자원고갈을 막기 위해 석유생산량을 줄였다. 대부분의 전력은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되며, 나머지는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로 충당한다.

제조업에서는 탄화수소계열이 지배적인데, 액화천연가스(LNG)와 정제된 석유생산물 등이 이에 포함된다. 그밖의 공업생산품으로 강철, 무쇠, 액화석유 가스(LPG), 나프타, 시멘트, 비료, 자전거, 경운기, 자동차 등이 있다. 경공업 생산품으로는 질그릇, 페인트, 폴리에스테르 섬유, 전기제품, 신발류, 밀가루, 식용유, 포도주, 담배 등이 있다.

1962년 독립한 뒤 알제리는 탄화수소·광업·중공업·운송업·금융업·해외무역 부문을 점차 국유화했으나, 소비재를 생산하는 일부 경공업과 주택건설업 분야는 소매업, 소규모의 부동산 소유, 농업부문과 함께 개인이 관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약 1/5은 농업에 종사하며, 용역업·건설업·상업·금융업·제조업의 순서로 고용 분포를 보이고 있다. '노동자 총연합'은 1956년에 만들어진 상업동맹조직으로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알제리 소작농 전국연합'은 농민들을 대표하는 단체이다. 예산수입은 법인세와 그밖의 세금에서 뿐만 아니라 탄화수소 부문에서 얻는 수익(전체수입의 약 1/2)에서 나온다. 알제리의 시중은행들은 1967∼72년에 국유화되었다.

알제리의 철도는 북부에 집중되어 있다. 도로의 경우 2/3 정도가 포장되어 있다. 사하라 횡단도로 3개 중 가장 긴 도로는 골레아에서 타만라세트를 연결하는 포장도로로, 이 도로는 다시 남쪽으로 니제르(1985년 완공)·말리로 각각 연결된다. 알제리의 대표적 항구는 알제이며 이외에도 아르제우·베자이아·오랑 등이 있다. 5개의 국제공항이 있고 작은 규모의 공항과 비행장이 있다. 또한 사하라의 유전 및 천연 가스 매장지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송유관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알제리의 대표적 수출품은 석유와 천연 가스이며, 그밖에 비료·포도주·감귤류·철광석 등이 있다. 최대 수출대상국은 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미국이다. 수입품으로는 공업원자재·기계류·수송장비·식료품·소비재 등이 있고, 주요수입국은 프랑스·미국·이탈리아이다.

정치·사회

1962년 독립 이래 알제리는 유일한 합법정당인 민족해방전선(Front de Lib ration Nationale/FLN)이 통치했다. FLN은 대통령,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리, 국가인민회의를 통해서 국가를 지배했다. 1989년 새 헌법이 제정되어 다당제가 허용되었으며, 1991년 처음으로 자유 총선이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이슬람구국전선(FIS)의 승리가 예상되자 군부는 의회 결선투표를 취소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폐렴·트라코마·홍역·이질·성병·장티푸스와 같은 질병이 아직도 성행하는데, 농촌지역에는 의료시설이 부족하여 방역사업·건강교육·보건사업의 확대가 요구되고 있다. 높은 인구증가율과 이농현상으로 도시는 심각한 주택난을 겪기도 한다. 문자해독률은 50%를 조금 넘으며, 대다수가 아랍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공식적으로 학령기 아동은 9년간 의무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해당연령의 아동 가운데 약 90%가 그 혜택을 누린다. 또한 25세 이상 인구의 4/5 이상이 정식 학교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실정이다. 중등교육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으며, 고등교육의 중심지는 1879년 설립된 알제대학교이다. 정부가 모든 언론매체를 통제하며, 가장 널리 배포되는 신문은 기관지인 〈엘무자히드 el-Moudjahid〉이다.

문화

1962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래 알제리 정부는 프랑스가 통치하는 동안 크게 위축된 아랍 문화의 전통을 되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술형태 가운데 하나가 문학인데, 문학에는 알베르 카뮈, 에마뉘엘 로블레스, 르네 장 클로 같이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작가들이 프랑스어로 쓴 작품과, 프랑스어로 씌어졌지만 토착 알제리의 작가들이 고유의 표현방식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그려낸 작품, 그밖에 아랍어나 베르베르어로 씌어진 시와 희곡 등이 있다. 양탄자·보석·목공예품에는 전통적인 예술양식의 자취가 더욱 강하게 남아 있다.

이슬람교는 과거의 전통을 되살리는 문화적 연결고리 구실을 하는데, 시민들은 아직도 예언자 마호메트의 탄생축일인 물루드 같은 이슬람교 축일을 기념한다. 알제리에는 많은 민속학·고고학 박물관과 국립예술학교가 있으며, 훌륭한 초기 건축물의 본보기가 되는 아름다운 반구형 지붕의 유서 깊은 모스크가 많다.

역사

고고학적 발굴작업의 결과 약 50∼70만 년 전 알제리 북부에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던 것이 밝혀졌다. BC 1000년초에 페니키아 상인들이 지중해 연안에 정착했고, 지금의 튀니지에 있던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으며 후에 카르타고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BC 146년 카르타고는 로마에 넘어갔으며, 40년에 로마는 해안지방을 확고히 지배하게 되었고, 알제리는 로마인들이 마우레타니아 카이사리엔시스라고 부르던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해안 배후지역은 로마의 통치권 밖에 있었다. 5세기에 로마가 멸망하자 반달족, 그리고 뒤를 이어 비잔틴족이 침입해왔으며, 이 시기에 그리스도교 세력이 커졌고, 라틴어가 북부 아프리카 전역에 널리 퍼졌다. 7세기에 이슬람교도의 침입이 시작되어 711년까지 북아프리카 전역이 우마이야드족의 손에 넘어감으로써 토착 베르베르족은 이슬람교에 교화되어갔다. 740년에 이교인 카리지의 영향으로 북아프리카인들은 우마이야드족의 통치에서 벗어났다.

그뒤 이슬람화된 베르베르족의 제국들이 생겨났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스페인까지 영역을 확대한 알모라비데 왕조(1054경∼1130)와 알모아데 왕조(1130경∼1269)이다. 이 시기가 북아프리카 이슬람 문명의 황금시대였다. 알모아데 왕국의 쇠퇴와 함께 베두인족이 이동해왔는데, 이들이 들어오자 토착민들은 유목민화되었다.

16세기초 스페인이 북아프리카에 침입하자 아프리카인들은 오스만 제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1536년까지 이 지역에 효과적 통치체계가 확립되었다. 1830년 프랑스군은 바르바리 제국의 해적행위가 수세기 동안 지중해 무역을 위협했다는 것을 구실삼아 알제리로 들어왔다. 1847년까지 프랑스군은 알제리인들의 저항운동을 대부분 진압했으나 접전은 1884년까지 계속되었다.

그후 1954∼55년에 알제리 독립운동이 절정에 달해 독립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프랑스는 50만 명의 군대를 파견해 FLN을 탄압하고 독립운동을 진압하려 했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은 평화협상을 제안했고 1962년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이후 정권을 장악한 FLN은 1962년 7월 3일 독립을 이루어냈고, 대부분의 프랑스인 거주자들은 알제리를 떠났다.

후아리 부메디엔(1965∼78 집권) 장군과 차들리 벤제디드(1979∼92 집권) 장군의 집권하에서 알제리는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원유와 가스개발을 국가가 운영하는 중앙계획경제 형태를 띄게 되었다. 그러나 FLN의 장기집권은 부정부패와 국가운영 미숙이라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1988년 반정부 운동이 격화되자, FLN은 1989년 복수정당제를 허용하는 새 헌법을 제정했다.

절대적 권한를 행사하던 FLN은 다른 정당의 설립으로 위협을 받았는데,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었다. 1991년 첫 자유 총선에서 FIS의 승리가 예상되자 군부는 이를 막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반정부운동과 테러리즘으로 정부에 대항했다. 무장 이슬람 세력에 대한 정부의 진압이 실패를 거듭하여 1995년 사실상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

한국과의 관계

알제리는 1962년 독립 이래 계속 한국을 적대시해오다가 근래에 다소 융통성 있는 자세로 상호교류에 임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정부 인사들의 공식방문 등으로 물꼬를 트기 시작해 상호 경제협력과 통상교역 등으로 활기를 띠게 된 두 나라의 관계는 한국의 건설회사가 알제리에 합작투자사업을 시작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1990년 1월 공식외교관계를 수립하고 4월 공관을 설치했으며, 1992년에는 주한 알제리 공관이 설치되었다.

통상현황은 1996년 대한수입이 7,343만 달러, 대한수출이 1억 7,882만 달러로 기록되었으며, 주요 수입품목은 섬유·자동차·전자제품·전기기기 등이고, 수출품목은 알루미늄제품·화학제품·광물연료 등이다. 한편 북한은 1963년 4월 알제리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이어 상주공관을 설치했으며, 그동안 정치·군사 및 각 분야에 걸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알제리가 실용주의노선을 표방함으로써 경제교류에서 실질적인 이득이 없는 북한과의 관계진전은 보류된 상태이다.

참고문헌

Algeria : A Country Study : Harold D. Nelson(ed.), 1979
Algeria's Infra-Structure : J. C. Pawera, 1964
Systémes de parenté et structures familiales en Algérie : Robert Descloitres·Laid Debzi, 1963
L'Algérie de demain : Francois Perroux (ed.), 1962
Sociologie de l'Algérie : Pierre Bordieu, 1961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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