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사전2 세계사사전1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01 (수) 16:39
분 류 사전2
ㆍ조회: 516      
[근대] 공산주의 (한메)
공산주의 共産主義 communism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공유재산을 근거로 사회·정치체제를 실현하려는 사상과 운동.

공산주의라는 말은 원래 공동체를 뜻하는 라틴어 <코뮌(commune)>에서 유래하였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 사유재산제도의 모순을 지적하고 공유를 주장한 하나의 사상으로서 발생하였는데, 사회주의가 보다 발전된 형태를 뜻한다.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주의]

K. 마르크스와 F. 엥겔스는 자본주의를 관념적으로 부정하는 초기 공산주의 사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본주의 발전법칙을 해명,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으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공산주의로 이행하게 된다고 하였다. 동시에 공산주의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에 의해 실현된다고 하여 노동자계급에 의한 국제 공산주의운동을 제창하였다. 이들은 사회체제로서의 공산주의를 2단계로 나누었다.

공산주의의 제 1 단계인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사적소유가 폐지되고 생산수단이 국가로 집중되지만 노동에 따라 소득분배가 이루어지므로 분배에 있어서 차이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사회에서 공산주의사회로 나아가는 이행기인 이 시기에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요구된다.

제 2 단계는 완전한 공산주의 사회로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하고 개인의 도덕성이 확립됨은 물론 인간이 완전히 해방되는 사회이다. 이 단계에서는 국가를 대신하는 자주관리조직이 사회를 관리하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배가 이루어지므로 개인 간의 완전한 평등이 실현된다고 보았다.

[소련의 공산주의]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혁명(10월혁명)의 성공은, 공산주의가 단순한 운동에서 공산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 것을 의미한다.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키)은 18년 당 명칭을 러시아공산당(이후 소련공산당)으로 바꾸었으며, 1919년 결성된 공산주의인터내셔널(코민테른, 1943년 해산)은 가입한 각국 공산당의 활동을 공산주의운동이라 불렀다.

각국 공산주의운동에서는 오랫동안 러시아에서의 혁명승리와 사회주의국가 건설이 유일한 선례로서 모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소련의 경험과 이론에는 특수성이 많다는 점이 통설로 되어 있다. 혁명 뒤 러시아의 당면과제는 사회주의 건설이었으며, 이는 전쟁에서 파괴된 국민경제의 부흥, 중공업 육성에 의한 경제적 후진성의 극복과 함께 이루어졌다.

V.I. 레닌이 지도한 1920년대 초기에는 방대한 수의 농민경영을 사회주의적 경영으로 통합하는 것이 장기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보았으나, 실제로 I.V. 스탈린 지도하에서 20년대 말에서 30년대 초에 걸쳐 국민경제의 공업화가 급격히 전개되었다. 개인 농장을 일거에 생산농업협동조합인 콜호스에 통합하는 정책이 강행되었으며, 30년대 중반에는 국민경제 전분야에서 사회주의체제가 자리잡았다.

공산주의 건설을 최종과제로 하는 소련의 정치조직도 당시 사회상황에 의해 좌우되었다. 혁명 직후 나타난 모델은 국가조직을 근로자들의 조직으로 편성하고 근로자가 의원을 선출하며 전주민이 일상적으로 국가 통치에 참여함으로써 관료주의를 없애고 국가의 소멸을 꾀한다는 것이었으나, 혁명 직후의 혼란된 정치상황속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확립이라는 현실적 요청이 우선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제한되었다.

1936년 제정된 소련헌법은 사회주의체제 강화에 대해서는 기술하였으나, 다음 과제인 공산주의체제 건설에 대해서는 기술하지 않았으며, 선거 중심의 민주주의 제도를 제정하였으나 개인이 직접 통치에 참여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헌법이 규정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준수의 필요성이 강조되었고, 1959년에는 N.S. 흐루시초프 지도 아래 소련이 공산주의의 전면적 건설기에 있다는 명제가 채택되었다.

1961년 소련공산당 강령에서는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종료를 확인하면서 동시에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21개년 계획을 세웠다. 이 강령에 의하면 소련은 국민경제의 급속한 발전으로 1980년 국민 1인당 소득이 세계 1위가 되며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비재의 1/3이 무료로 분배된다. 국가의 기능, 특히 사회질서 유지기능이 자발적으로 조직된 사회적 자주관리기관으로 이행됨으로써 국가조직이 축소된다. 그리고 국가기관의 공선제(公選制)가 확대되어 동일인의 다선(多選)이 제한되고 집행기관 구성원도 계통적으로 교체되어 일반 근로자가 여가시간에 행정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유급 공무원수가 감소된다.

이 과정에서 국가 그 자체는 사회적 자주관리기관으로 전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강령은 공산주의 건설에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았다. 한편 64년 흐루시초프가 실각한 뒤에는 공산주의의 전면적 건설기에 있다는 명제를 철회하고, 그 대신 L.I. 브레즈네프 지도 아래 제정된 76년 헌법에서 소련이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준비하는 발달된 사회주의 단계에 있으며 이 단계는 장기간에 걸친다는 명제를 확정함과 동시에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발전, 사회단체·노동집단·개인의 국가·사회업무 관리에의 참가 확대, 효율적인 경제관리의 실현, 개인의 권리와 자유의 발전 등을 과제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가 별 진전을 보지 못하자, 1983년 Y.V. 안드로포프 지도 아래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 총회는 소련이 아직은 발달된 사회주의의 출발점에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사회주의의 개선을 전략적 과제로 정하였으며, 그 뒤를 이은 K.U. 체르넨코 또한 이 노선을 계승하였다. 1985년 이데올로기보다 실용주의를 선호하는 M.S. 고르바초프의 등장으로, 글라스노스티와 페레스트로이카를 양대 축으로 하는 개혁정책이 제시되면서 소련공산당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1990년 공산당의 권력독점이 폐기되고 대통령제가 채택되었는데, 그해 3월 소련 초대 대통령이 된 고르바초프는 <새로운 사회주의국가건설>이라는 기치 아래 개혁정책을 추진하였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91년 7월 소집된 공산당중앙위 총회를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 폐기를 골간으로 하는 신강령안을 채택하였으며, 11월 공개된 신연방조약안에는 USSR(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라는 국호를 폐기하여 소련 국호에서 <사회주의>를 삭제하였다.

1991년 8월 소련연방체의 존속을 명분으로 한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로 소련에서의 공산당은 사실상 그 종말을 고하였고 1992년 1월 1일을 기해 독립국가연합이 창설됨으로써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해체되었다.

[유럽의 공산주의]

제 2 차세계대전 이후 J.B. 티토 지도 하에 혁명에 성공한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한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 등의 동구 유럽국가들이 공산화되었다. 이후 다극화체제의 세계정세 아래 1964년 루마니아가 탈소(脫蘇) 자유화를 선언하는 등 소련군 점령 아래 공산화되었던 국가들이 독자노선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1965년 체코사건은 이러한 독자노선 움직임과 관련해 소련과 충돌한 대표적인 예였다.

유고슬라비아는 1950년대 이래 기업의 자주관리조직을 전(全)정치조직의 기초로 두어 왔다. 소련 및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공산당의 강력한 지도체제가 확립되어 있으나 동유럽의 몇 나라는 복수정당체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 이외 정당의 지위는 낮다. 또한 개인의 진정한 자유는 집단과 조직을 통한 정치참여에 의해 실현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나, 출판의 자유 및 정치적 자유는 충분히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동유럽에 1989년 8월 폴란드에서 자유노조 출신 T.마조비에스키총리가 주도하는 비공산연립정권이 성립된 것을 시작으로 헝가리·동독·체코·불가리아·유고슬라비아·루마니아 등으로 비공산화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헝가리는 공장내 민주주의를 정치생활의 기초로 둠으로써 정치생활의 활성화를 도모, 서구식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으며, 체코에서는 1990년 시민혁명과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1993년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공화국으로 분리) 수립으로 공산정권이 붕괴되었다.

유고슬라비아에서는 공산정권 붕괴 후 유고연방(후에 5개 국가로 분리)이 분리되었으며, 동독의 경우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급속한 비공산화가 전개되어 이듬해 10월 서독과의 통합이 공식적으로 선포됨으로써 공산정권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 밖에 불가리아·루마니아에서도 비공산정권이 수립되었으며 1992년 4월 마지막으로 알바니아에서 비공산정권이 이루어짐으로써 동유럽 공산주의 시대의 막을 내렸다.

[중국]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후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노선과 급격한 사회주의 건설을 주장하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노선이 대립하였으나 58년 마오쩌둥 지도 아래 농촌을 일거에 공산주의화하는 노선이 강행되었다. 즉 농민은 군대를 모델로 한 거대한 인민공사로 조직되어 호령에 따라 작업이 행해지고 식사도 집단적으로 행하는 이른바 병영식 공산주의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농업생산의 파괴를 초래하여 그 수습을 둘러싸고 중국공산당 지도부가 분열함에 따라 1966년 마오쩌둥파는 <문화대혁명>에 의한 반대파탄압을 개시하였다. 1976년 마오쩌둥이 죽은 뒤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 노선에서 이탈하여, 농업·공업·국방·과학기술 분야의 <4가지 근대화>노선을 내걸었다. 그러나 정치의 근대화는 배제되었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노선이 확립된 이후 중국은 경제적 자유와 개방의 폭을 넓혀 왔으나, 높은 인플레·소득격차·관리들의 부정부패 등이 상승효과를 나타내 실효를 보지 못하고, 빈부격차가 표면화되는 등의 문제점을 초래했다. 이에 1989년 급진개혁주의자 후야오방[胡耀邦] 사망을 계기로 천안문사태가 발생하였다. 천안문사태가 강경보수파에 의해 진압된 이후 장쩌민[江澤民] 총서기를 필두로 한 중국공산당은 기존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정치적 강경노선과 경제적 온건노선을 병행, 전개하고 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윗글 [근대] 공산주의 (브리)
아래글 [근대] 공산주의 (두산)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159 사전2 [근대] 베르사유체제 (브리) 이창호 2004-12-01 558
158 사전2 [근대] 베르사유체제 (한메) 이창호 2004-12-01 706
157 사전2 [근대] 베르사유체제 (두산) 이창호 2004-12-01 585
156 사전2 [근대] 국제공산주의운동 (두산) 이창호 2004-12-01 317
155 사전2 [근대]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 (브리) 이창호 2004-12-01 882
154 사전2 [근대] 코민테른=인터내셔널 (한메) 이창호 2004-12-01 704
153 사전2 [근대] 코민테른=인터내셔널 (두산) 이창호 2004-12-01 250
152 사전2 [근대] 공산주의 (브리) 이창호 2004-12-01 902
151 사전2 [근대] 공산주의 (한메) 이창호 2004-12-01 516
150 사전2 [근대] 공산주의 (두산) 이창호 2004-12-01 550
1,,,919293949596979899100,,,11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