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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03 (수) 00:14
분 류 문화사
ㆍ조회: 4921      
[미술] 회화1-동양회화사, 서양회화사 (한메)
회화 繪畵

참고 : 회화2

조형 예술(미술)의 한 분야. 색과 선을 사용하여 어떤 모양을 단독으로 또는 다양하게 맞추어 표현하는 평면 예술을 말한다. 좁은 뜻으로는 선을 주요표현으로 하는 데생이며 판화를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회화의 종류 및 그 명칭은 가지각색이지만 대개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① 형식면에서의 분류 : 벽화·천정화·제단화(祭壇畵)·세밀화·그림 두루마리·병풍화 등.
② 소재로서의 분류 : 프레스코화·세코화·템페라화·유화·수채화·파스텔화·글래스화·동양화·수묵화 등.
③ 주제에서의 분류 : 종교화(불화·그리스도교화 등)·신화화·역사화·인물화(초상화·자화상·풍속화·누드화 등)·풍경화·산수화·실내화·정물화·화조화(花鳥畵)·건축도 등.
④ 표현내용으로서의 분류 : 장식화·사생화·공상화·우의화(寓意畵)·풍자화·희화 등.

이것들에는 저마다 지역의 특성과 시대의 기호를 반영하는 발생 및 성쇠의 역사와 양식의 변천이 있다.

[동양 회화의 흐름]

동양 회화를 크게 나누면 중국과 인도로 나뉘어진다. 중국에서는 사물을 묘사하는 초기 인류의 조형행위를 나타낸 예로서 시안〔西安〕 반포(半坡〕촌의 반포 유적 출토의 인면어문도분(人面魚文陶盆)을 들 수 있다. 이것은 검은 색 하나로 인면과 어문을 다룬 것으로 기물의 무늬라고는 하지만 회화에 대한 소박한 인간의 지혜가 심어져 있다.

은(殷)나라 폐허 유적 등에서 발굴된 갑골문자는 문자의 발생을 구체적으로 나타내 보여 주며, 물체를 간략하게 나타낸 상형문자는 회화화에 선행한 표현형식이며 서화동원(書畵同源)이라는 중국의 독자적 예술표현의 본질을 매우 솔직하게 제시하고 있다.

한(漢)나라 시대부터 위(魏)·진(晋)시대에 이르면서 회화는 분묘의 장식이며 부장품(副葬品)으로서 실용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신화·전설·사후 세계를 주제로 삼았지만, 곧 사자의 생전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리게 되었다. 1927년 이후 발굴된 창시〔長沙〕 마왕퇴 1 호한묘(馬王堆一號漢墓)에서 발견된 백화(帛畵, 거친 천에 그려진 그림)는 천계(天界, 崑崙山)에 승선하는 사자의 모습을 도시한 것으로서 전문화가의 그림으로 추정된다. 또 무량(武粱)씨를 비롯한 한나라 묘의 내벽에서 볼 수 있는 화상석(畵像石, 돌에 얕은 돋을새김으로 도상을 부각)도 회화적 성격이 짙은 것으로 주목된다. 중국에 있어 조형예술은 서(書)와 회(繪)의 둘로 한정되어 있으며, 그 전통이 오래되고 근대까지 이어져 오지만 그 기반은 한·위·진시대에 걸쳐 형성되었다.

현재 시대의 작품(唐시대의 모사)과 그 이름이 공히 알려져 있는 것은 5세기 첫무렵 고개지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여사점도(女史箴圖) 런던 대영박물관》이다. 이 두루마리는 그 이전 회화의 전통을 집약하여 세련미있게 그려진 것으로서, 남녀 인물과 품속묘사 외에 산악 등 풍경을 그린 장면도 있으며, 특히 유사화로 지칭되는 선묘(線描)를 골격으로 한 섬려우아(纖麗優雅)한 화면은 중국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대 회화의 중심주제는 초상화·인물화이며, 대상 인물의 정신내용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고개지의 작화태도는 오랜동안 후세 화가들의 규범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전래하기까지 유교적 감계(鑑戒)주의가 회화의 주류를 이루어 초상·인물이 그림 소재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6세기에 이르러 남제(南齊)의 사혁(謝赫)이 《고화품록》에서 화론(畵論)을 전개해 기운생동(氣韻生動)·골법용필(骨法用筆)·응물상형(應物象形)·수류부채(隨類賦彩)·경영위치·전이모사(轉移模寫)의 6법을 논하여 큰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중국화의 이상으로서 길게 이어져와 현대에도 보편성을 지니고 회화론으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남북조 시대부터 당(唐)시대에 걸쳐서는 불교 문화가 성하여 우주적 파급효과를 가지고 세계로 비약하여 회화의 양상이 다양화되어 갔다. 불교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이 그려지는 한편 자연이며 일상생활 속에서 찾은 제재가 즐겨 그려졌다. 불화에서 그려진 정토(淨土)는 이상화된 불교도 세계의 표현이며, 이에 대해 생활 감정을 그려낸 것이 세속화였다. 이들은 표리일체가 되어 화제(畵題)의 주축을 이루고, 서방적인 기법도 받아들여져 종래의 중국회화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작풍의 글미이 나타났지만, 미의 규준은 의연하게 6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 없이 오히려 6법의 이론은 서방의 이론을 수용한 당나라시대 회화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이 시대 회화에서 볼 수 있는 사실주의·이상주의·인간주의는 영태공주(永泰公主)분묘의 연도벽화(羨道壁畵)를 비롯한 벽화 유품, 둔황〔敦煌〕 막고굴(莫高窟) 등 당나라 시대 굴벽화며 천정화에서 그 한자락을 엿볼 수 있다. 서구의 르네상스에 선행된 것으로 보이는 당나라 시대 회화는 얼마 뒤 난숙의 극에 이르러 묘필(描筆)·부채(賦彩)면에서 고도의 표현형식을 발휘한 끝에 생겨난 것이 묵화이다. 5채를 묵 한 핵으로 응집해 정교한 사실(寫實)에서 생략한 운필로 이행한 데에 중국 회화의 본질을 짐작케 하는 바가 있다.

인도의 회화는 고대 불교시대의 불전(佛傳)이나 본생담(本生譚, 석가의 전생 이야기)을 주제로 한 것이 아잔타 석굴 등의 벽화에 일부 남아 있을 뿐이며, 종교와 현실의 인간 생활을 혼합시킨 풍속화적 요소가 많다. 힌두교가 일어나자 회화는 조각에 상좌를 양보하고, 신화며 민간전설 서책의 삽화로서 미니어처(세밀화)가 화계의 주류를 지배하는 독자적 회화양식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이와같은 동양 회화의 흐름을 보면, 이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회화가 서구와 다르게 형성되어 왔으며, 인간이 사는 자연·풍토·민족성·국민상과도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서양 회화의 흐름]

오늘날 서양 회화에서 단순히 회화라고 할 경우 그 개념은 프랑스어의 타블로(tableau)라는 의미로 이해되는 일이 많다. 타블로란 형식·내용 모두 완성된 것을 가리키며, 에튀드(습작)나 에스키스(밑그림) 같은 것은 이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타블로는 본디 판그림(板畵)을 말하며, 그 역사는 고대 후기의 미이라 초상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고대 이집트에서 세로로 긴 판자에 귀인의 사안회(似顔繪)를 그려 실내에 걸고, 그 주인이 사망하면 미이라를 넣은 관의 얼굴부분에 갖다얹었던 것이다. 사안회는 죽은 뒤 그려진 것도 있다고 한다. 기법으로는 엔코스틱(蠟畵)이 쓰여졌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가 되자 판그림은 특히 비잔틴 문화권에서 이콘(성화상)으로 발달했다. 이콘은 종교적 신앙과 의식에 깊이 결부된 것으로, 거듭되는 성화상 논쟁 및 성화상 파괴운동의 대상이 되어 그 보급에 장애가 되었다. 후세 15세기의 러시아교회 수도사 루블료프는 농밀한 색채와 서정에 찬 작품을 남겨 근근히 이콘의 명맥을 유지했다.

중세 초기의 회화적 표현으로는 판그림보다 오히려 각종 벽화 및 채식사본(彩飾寫本)편이 우위를 차지했다. 이 사본에 사용된 붉은 장식문자를 라틴어의 미늄(minium, 鉛丹)과 관련시켜 미니어처라 불렀는데, 뒤에 차츰 사본의 작은 삽화라는 의미로도 쓰여지게 되어 곧 세밀화라는 개념으로 정착했다. 15세기에 제작된 《베리공의 호화로운 시도서(時禱書)》는 호화로운 세밀화의 걸작으로 프랑스 회화사상 보물로 일컬어진다.

12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에서 판그림의 부흥이 시작된다. 그것은 주로 앤티펜디엄(제단 앞장식. 본디 제단 앞에 드리우는 막을 말하는데, 판그림 또는 릴리프에 의한 것도 있다)이나 리테이블(제단 뒷부분의 칸막이)로서 제단과 밀접한 것이었다. 알프스 북부에서는 얼마 뒤인 13세기에 판그림의 부흥이 시도되었다.

르네상스기를 맞으면서 이탈리아에서는 판그림보다 오히려 벽화가 회화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플랑드르 지방 및 독일에서는 오늘날 타블로 개념에 연류되는 판그림의 기법 소재(彩料)·표현내용이 모두 비약적으로 개발되었다. 그 주요 표현형식으로 제단화가 있으며, 그 중에서도 목제 문짝식 제단에 그려진 판그림은 15,16세기의 플랑드르와 독일에서 융성의 극치를 이루었다.

이것은 중앙 부분이 좌우 여닫이식 제단 문짝의 좌우익과 표리면에 그려진 것으로, 문짝은 더러 2중으로 된 것도 있으며 또한 문짝이 둘 이상의 화면으로 된 것도 있다. 반 다이크 형제의 《간의 제단화》며 그뤼네월트의 《이젠화임 제단화》는 그 걸작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판그림은 곧 제단을 떠나 대폭(對幅)으로 만들어진 독립된 한폭의 타블로가 되어 역사·종교·인물·초상·자호상·풍경 등의 각 주제를 추구하게 된다.

15세기 중엽이 지난 무렵, 이탈리아의 만테냐·야코보·베리니 등에 의해 판과 병행하여 나무테두리에 천을 씌운 캔버스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6세기가 되어서도 북방에서는 판이 애호되었다. 그즈음 일반적으로 판에 사용된 채료는 템페라로, 빨리 마르고 화면에 물기가 없으므로 수지·아마(亞麻)에 기름기 있는 니스를 칠하여 윤기를 유지시켰다. 또한 유화 물감은 그림물감을 녹이는 매체에 기름을 이용한 방법으로 템페라에 비해 색채에 투명도와 광택이 있으며, 색을 병치하여 중합시켜도 섞여지지 않는 것이 큰 이점이다.

화가이며 미술사가이기도 한 바잘리는 유화물감 발명을 반 아이크 형제의 공적이라고 주장했지만, 오늘날 이 주장은 부정되고 있다. 그렇지만 유화물감을 사용하여 그린 가장 뛰어난 최초의 그림은 분명 이 형제의 작품이며, 특히 형제의 합작으로 추정되는 《간 제단화》는 그 안길이가 긴 공간구성과 박진감 있는 대상 묘사로 유채화의 특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동시에 이 제단화는 종교적 인물과 정경을 그리면서 거기에 후세에 인물화·풍경화·정물화·실내화 등으로 분화해 가는 근대회화의 여러 요소가 멋지게 선취되어 있다.

유화 물감 채석은 처음에 먼저 템페라로 밑바탕을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유화물감을 거듭 칠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후에 이러한 밑바탕준비는 폐지되고, 화면에 직접 유화물감을 칠하는 이른바 프리마그리기(allaprima)가 시도되고, 이것이 일반에 보급되었다. 이 유채화법은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높이 평가되었으며, 안트네로와 메시나는 이탈리아에서 이 화법을 맨 먼저 사용한 화가로서 알려져 있다. 이리하여 점차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리는 타블로의 장르가 개척되어, 이것이 시대와 함께 회화의 대표적인 방법으로서 정착되었다.

이렇게 성립된 타블로는 르네상스 이후 미술의 주류로 역사에 새겨지고 있지만, 여기에서의 으뜸가는 과제는 뀤세계와 인류의 발견(야콥 브룩화일드뀥으로 정의되는 르네상스의 이념을 반영하여 조리정연한 파악과, 그 감각적으로 정밀한 평면상에서의 재현에 있었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특히 중요하다. 첫째는 형상을 형상으로서 존립시키는 공간을 정확하게 질서잡는 것이며, 둘째는 형상을 형상으로서 눈앞에 두고 있는 빛을 정확한 색채로 옮겨 놓는 것이다.

평면상에서의 공간 표현 방법은 원근법으로서 이미 BC5세기의 그리스 화가 아가탈코스들에 의해 앞서 시행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깊은 고찰에 의해 이론적으로 확립된 것은 르네상스기에 들어와서였다. 부르넬레스키며 알베티는 원근법의 수리적 구조를 뚜렷이 하고, 마사쵸·우첼로·레오나르도 다 빈치·라팔엘로 등은 이것을 정력적으로 연구하여 훌륭한 성과를 올렸다. 독일 화가 뒤러는 이론과 실제 작품에 의해 원근법을 알프스 이북으로 가져간 위대한 존재였다.

17세기 바로크시대에 이르러 르네상스의 새 정신은 알프스를 넘어 유럽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이른바 이 여러 국민적 미술시대를 맞아 타블로는 점점 융성의 극치를 이루었는데, 이탈리아의 카라바쵸, 에스파냐의 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 벨기에의 루벤스, 네덜란드의 렘브란토, 프랑스의 푸생 등은 각각 명암의 대비, 동적인 구성, 색채의 순화, 고전 회귀 등을 무기로 르네상스 회화에 수정을 꾀하면서 새로운 공간 표현을 가져온 화가로서 알려진다.

한편 색채표현, 특히 형상의 감각적 재질 묘사는 반 아이코형제의 의발(衣鉢)이 승계되어 플랑드르 지방을 중심으로 퍼지고, 특히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전한 실내화·정물화·풍경화에서는 정교하고 치밀한 재질묘사가 거의 트로프뢰유(속임 그림)로서 추진되고 있다. 본디 유복한 상인을 예술의 패트런으로 하는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재질감의 정확한 묘사가 화가의 기량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으로써, 이것이 빛을 정확하게 색채로 옮겨놓을 수 잇는 소재(유채물감)의 발명을 촉진했다. 그리고 유화의 발명은 빛에 대한 화가의 감각을 점점 예민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절대 왕정 시대부터 프랑스 대혁명을 거쳐 나폴레옹 시대에 이르는 회화는 그 전반이 로코코식의 아연화(雅宴畵), 후반이 고전주의회화로 상반되는 이념을 반영하고 있지만, 고전주의와 대립한 로망파 회화도 포함하여 역사화며 우의화를 주류로 하는 이른바 그랑 팡튀르(대회화) 시대였다. 18세기 프랑스의 샤르댕은 이 시대에 있어 플랑드르회화 전통에 따른 단순한 정물화로 이름을 날린 화가이나 그는 사물이 단일한 빛의 반영에 의해 고립되어 존재하는 게 아니고 사물과 사물 사이 빛의 교류로 상호 의존해 성립되고 있음을 발견한 선각자였다.

[근대 회화의 전개]

샤르댕의 이 발견은 로망파에 이어 사실주의를 주장한 크루베와 대회화를 대담하게 부정하고 자연광에 주목한 마네를 매개로 하여 인상파 미학의 중심을 이루는 외광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게 된다. 특히 뀤화가는 눈이다뀥라고 한 모네는 뀤자연계의 물리적 자아(헬름홀츠)뀥인 빛이 망막에 미치는 인상을 남김없이 색채로 옮겨 놓는 작업을 그림 그리는 목적으로 삼았다. 리얼리즘의 궁극적 추구로 일컬어지는 인상파는 이렇게 하여 르네상스 이래 회화가 지향한 과제의 한 정점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인상파 이후 20세기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회화는 위와 같이 종래의 회화에 대한 비판·수정·극복의 족적이 많건 적건 새겨져 있다. 북유럽 화가 뭉크는 뀤이제와서는 독서하는 남자들이나 뜨개질하는 여자들이 있는 실내화를 그릴 때가 아니다. 느끼고 고뇌하고 사랑하는 산 인간을 그려야만 한다뀥고 결의하고, 종래의 시각 예술에서는 다루는 일 없었던 죽음과 에로스같은 내면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후속 세대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 그가 내면적 테마설정에 임하여 하나하나의 작품에 타블로로서의 완결성을 구함과 동시에 이것들을 일련의 뀤생의 프리즈(frieze,帶狀장식뀥로서 매듭지으련는 의도였던 것도 주목된다.

뭉크를 선도자로 독일에서는 20세기 첫무렵 반리얼리즘 입장에 선 표현주의운동이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인상파 미학의 수정 입장에 있는 고갱의 감화를 받은 화가 모리스 도니는 뀤회화란 군마(軍馬)든 나부(裸婦)든 그밖의 무엇이 거기에 그려져 있든, 어떤 질서에 의해 총괄된 색채로 덮씌워진 한 장의 평면이다뀥라고 정의하여 새삼 회화의 평면성을 확인함과 동시에 그 평면의 자율성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문제 제기를 했다.

회화는 주제보다도 먼저 화가가 주체성을 가지고 배치배합한 색채와 형태에 대해 우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드니의 정의는 세잔에서 큐비즘으로 발전하는 이념 중에서 더한 철저하게 시도되고 있다. 본디 원근법은 단일 시점에서 본 외게의 체계화에 불과한 것이므로, 이로 말미암아 평면상에 나타나는 것은 공간의 일류전(illusion)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같이 하여 그려진 타블로는 말하자면 벽에 뚫린 단순한 구멍, 제 2 의 창과도 같은 것이다.

회화가 기본적으로 평면이라고 한다면 그 평면을 착시(錯視)에 의해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게 아니고, 반대로 입체를 주체적으로 평면으로 환원시키는 새로운 방법이 고안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 방법은 인상파가 시행했던 것처럼 빛의 인상을 타율적으로 색채로 옮겨놓는 것으로는 달성시킬 수 없다. 차라리 대상에 대한 화가의 복안적(複眼的)인 관철에서 얻어진 색채형태를 화가의 감성과 조형이론에 비추어 재구성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인식을 한 큐비스트는 대상의 분석과 재구성에 의한 자율적 표현세계를 타블로에서 구했다.

그런데 종래의 미술사에서는 예를 들면 보쉬·브뤼겔·고야·르동·아이소르 등의 환상표현은 대회화 시대의 샤르댕처럼 역사의 왕도를 벗어난 예외로 보이기 쉬웠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환상표현이 결코 특수한 게 아니고 만인이 의식 밑 세계에 억압되어 있는 바램이며 욕망의 백일몽으로서 이 의식 밑의 이미지 보고를 찾으려는 것이 쉬르리얼리즘이다. 이에는 종래의 회화수법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달리나 마그리토의 트로프뢰유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것으로 종래와는 다른 비합리세계를 열려 하고 있다.

"예술적 목적에 쓰여지는 한 모든 소재는 평등하다"고 하여 각종 혼합기법을 사용한 클레는 다다이즘과 쉬르리얼리즘에서는 종래의 타블로 개념이 없는 소재를, 게다가 반예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추상회화 입장에서는 타블로의 완결성을 의심스럽게 보고 있다. 회화는 시종일관된 표현세게를 일방적으로 보는 이에게 주려는 게 아니며, 보는 이를 미지의 색체형태 체험속에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액션 페인팅에서는 화면을 그리는 행위의 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회화는 타블로 시대를 지나 새로운 개념을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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