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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6-10 (화) 12:48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403      
[근대] 인천문화원 (민족)
인천문화원(仁川文化院)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에 있는 서양식 건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 일명 제물포구락부회관(濟物浦俱樂部會館)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1876년(고종 13)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 일명 江華島條約)으로 제물포항이 개항된 후, 인천에 거주하는 독일·미국·러시아·일본 등 외국인이 1891년 사교구락부(社交俱樂部)를 발족시킴으로써 건립되었다.

원래 사교구락부의 건물은 다른 곳에 있었으나, 1901년에 현재의 건물을 짓고 회관을 이곳으로 옮겼다. 2층 양옥 구조의 벽돌 건물로 지붕은 양철이다. 내부는 사교실·도서실·당구대·식당 등 각종 시설을 두루 갖추었으며, 건물 외부에 당시로는 드물게 테니스 코트를 설치하는 등 사교 모임에 적합한 시설로 꾸며졌다.

1910년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한국이 일제의 독점적인 식민지가 되면서 각국 거류지가 철폐됨에 따라, 이 건물은 1913년 일본재향군인인천연합회(日本在鄕軍人仁川聯合會)로 이관되었고, 그 명칭도 정방각(精芳閣)으로 바뀌었다. 그 후 일본 거류민 증가와 더불어 일본 부인들의 친목단체가 결성됨으로써 1934년에는 일본부인회관(日本婦人會館)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 미군정기(美軍政期)에는 미군사병구락부(美軍私兵俱樂部)로 사용되는 등 한국 근·현대사의 파란만장한 격동과 더불어 많은 애환을 간직한 건물이다. 1952년 7월 미군으로부터 인수하여 인천시립박물관(仁川市立博物館) 설립을 위한 건물로 사용되었고, 잠시 동안은 인천시협회(仁川市協會)의 회의실과 인천시교육원(仁川市敎育院)의 청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1953년 4월 1일 인천시립박물관 개관과 더불어 인천박물관으로서 활용되는 등 ‘박물관 건물’이라는 명칭을 얻었으나, 1980년대에 새로운 인천시립박물관이 개관하면서 박물관 시대를 마감하였다. 이 건물은 특별한 건축 양식이나 구조상의 특징은 없다. 다만 인천광역시의 발달로 서양식 건물이 대부분 사라지는 현실에서 개항 이후 건축물을 통한 인천 지역의 변화상을 직접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鄕土仁川, 京仁文化財總覽.

<오환일>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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